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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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경의 첫 번째 권'''으로,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세상이 야훼에 의해 창조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장이다.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창세기 1장 1절/3절, 공동번역성서
쓰여진 최초 목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야훼가 어떤 권위를 지니고 있고, 왜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를 섬겨야 하는지''' 설명하기 위함이다.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하와(이브)가 등장한다.[6] 또한 신약처럼 역사서적인 형태가 아닌 시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찬양이 주 주제이다.
물론 성경적으로는 아담과 하와를 최초의 인류로 보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2장의 에덴동산과 아담과 하와와 관련된 서술을 1장에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보는 것이다. 1장을 개괄적인 설명으로, 그리고 2장에서는 개괄적으로 바라본 사건을 인류(아담과 하와)를 중심으로 보는 방식이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이루어진 성서비평학적인 성과로 인해, 현대 신학계에서는 창세기 1장의 창조와 2장의 창조를 다른 전통의 창조설화라고 보고 있다. 즉, 창세기 1:1부터 2:3까지는 P자료, 2장 4절 이후로는 J자료의 일부로 본다 (아담 항목 참조).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인 카인과 아벨 이야기나 노아, 므두셀라,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 등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여기서 나온다. 또한 그 유명세로 이런저런 곳에서 패러디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하와와 이브가 혼용되는데 성경에서는 가톨릭·개신교 공히 원전의 발음인 '하와'를 쓴다. '이브'는 그리스어 이름인 '에바'를 다시 영어식으로 표기한 발음.
2. 줄거리
2.1. 아담에서 바벨탑까지 (1장 1절 ~ 11장 9절)
태초에 야훼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여 천지를 창조한다.[7] 이 창조는 7일 동안 이어졌으며,[8] 창조한 6일 중 마지막 날(7번째 날은 安息日)에는 야훼 자신의 형상을 본따 흙을 빚고 생명을 불어넣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탄생시켰다. 야훼는 아담에게 온갖 동식물의 이름을 짓는 권리를 주고 에덴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도 좋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면 반드시 죽으리라 경고했다. 이후 아담이 짝이 없어 외로워하자 잠자는 틈을 타 갈비뼈를 빼내 최초의 여성인 하와[9] 를 탄생시켰다.[10]
어느날 뱀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면 눈이 밝아져 야훼와 동등해질 것이라고 유혹했고, 이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이를 먹였다.[11] 이윽고 두 사람이 자신의 당부를 어긴 것을 알게 된 야훼는 크게 분노하며 두 사람을 책망했으며 하와에게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아담에게는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평생 땅을 갈아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저주를 내렸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야훼로부터 가죽옷을 받고 에덴에서 추방되었으며, 인간이 생명의 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을 누릴 것을 염려한 야훼는 케루빔과 불칼[12] 을 두어 생명의 나무를 지키게 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장남 카인과 차남 아벨을 낳았다. 카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양치기였는데, 세월이 흐르고 야훼에게 제사를 바칠 때 카인은 자신이 기른 곡식을 바쳤지만 야훼는 새끼양의 고기를 바친 아벨의 제사만 받고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카인은 아벨을 들로 불러내 돌로 쳐 죽였고 결국 추방되게 된다.[13]
이후 아담과 하와는 또 다른 자식 셋을 낳고 카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은 세상에 번창해 나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야훼가 만든 인간들이 타락하자, 야훼는 세상을 물로 심판할 생각을 하고 므두셀라의 손자 '''노아'''를 불러 방주를 만들게 한다. 40일에 걸친 대홍수가 끝나고[14] 다시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이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다.
어느 날 함이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고 비웃으며 형제들에게 알리는 일이 생긴다. 반면 셈과 야벳은 뒤로 걸어서 아버지의 몸을 보지 않고 이불로 덮어 드렸다. 술에서 깬 노아는 분노해서 "함의 자손인 가나안은, 형제들에게 속한 가장 낮은 종이 될 것"이라고 저주한다.[15]
노아 이후 인류는 다시 번성하였다. 인류는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땅의 평야에 모여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말자'는 취지 아래 성을 짓고,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기로 결정한다. 바벨탑을 쌓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야훼는 그전까지 하나이던 언어를 모두 뒤섞어 버린다.[16]
결국 바벨탑은 흐지부지되고, 이야기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브라함은 셈의 9세손이다.
2.1.1. 창세기 6장 이야기
창세기 6장 문서 참조.
2.2. 아브라함에서 이사악까지 (11장 10절 ~ 25장 18절)
지금의 이라크 땅에 살던 아브라함, 당시 이름 '아브람'은 가족과 함께 하란 땅에서 지내고 있었다. 단 아브람에겐 75세의 나이에도 자녀가 없었는데 어느 날 야훼가 아브람에게 나타났다. 아브람은 야훼로부터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고 아브람에게 복을 주고 큰 민족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면서 아브람은 나머지 가족은 하란에 남겨둔 채, 자기 조카 롯과 사라이[17] 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온다. 세겜 땅에서 아브람은 야훼로부터 이 땅을 주겠다는 계시를 듣고 야훼를 향해 제단을 쌓는다. 그리고 여기저기 장소를 옮기는데[18] 남쪽인 네게브 지역까지 내려갔지만 이때 그 지역에 기근이 들어 농사와 목축 모두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다시 이집트 땅으로 가는데, 이때 자기 마누라 사라이의 미모를 보고 혹시 목숨이 위태로워질까봐 "사람들에게 내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말해주시오"라고 한다. 위장이랄 것도 없이 진짜 아브람의 이복누이다.[20]
사라이가 이집트로 가니 과연 이집트인들은 그녀의 미모에 놀랐다. 신하의 말을 듣고 사라이를 궁전으로 부른 파라오도 보고 반하고, 사라이를 아내로 삼는 대신 막대한 재물을 아브람에게 준다. 결국 이 사태는 야훼가 파라오를 데꿀멍하게 만들어 해결된다. 아브람은 사라이는 돌려받았으면서 파라오에게 재물을 돌려줬다는 기록은 없다![21] 파라오는 아브람 일가를 이집트에서 쫒아낸다.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람과 롯은, 땅에 비해 가축이 많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다. 아브람은 떨어져 사는 것이 좋겠다며 롯에게 먼저 땅을 고르라고 배려해줬다. 롯은 땅이 기름져보이는 요단 평원을 선택하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남는다. 이때 다시 야훼가 나타나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롯은 이후 요르단 땅을 전전하다 소돔 가까운 곳으로 옮긴다. 소돔과 고모라는 너무나 악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중에 야훼는 유황불을 내려 이곳을 멸망시켰다. 이때 아브람이 야훼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50명, 30명, 20명, 10명이라도 있다면 용서해달라고 몇 번이나 청했지만, 결국 의인이 그만큼 되지 않아 멸망했다.[22][23]
그전 어느 날 롯의 집에 인간으로 변장한 천사들이 방문했는데, 소돔 성의 온 남자들이 몰려와서 "오늘 너희 집에 온 사람들을 알고자 하니[24] 내놓으라"고 한다. 이에 대한 롯은 "내게 남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딸 둘이 있으니, 내 딸로 대신하라"고 한다.[25] 하지만 사람들은 무시했고, 보다 못한 천사들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해 위기를 넘겼다. 막장 소돔 땅 내의 유일한 의인이었던 롯의 일가는 천사의 도움 덕분에 멸망 직전에 도망칠 수 있었으나, 롯의 아내는 도망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만다.
롯은 산으로 들어가 딸들과 함께 동굴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연세가 많고, 자신들은 결혼할 남자가 없어 일가의 후손을 잇지 못할까 염려한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드려 취하게 한 후 차례로 동침을 했다. 이로 인해 모압과 암몬 민족이 탄생한다. 롯은 술에 취해 이 일을 몰랐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는 야훼의 약속을 받고도 10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어고 자신들은 더 늙어가자 다마스쿠스 출신의 하인 엘리에셀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상속자로 하기도 했다가, 결국 사라가 첩을 들이도록 종용해 이집트 출신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의 장남 이스마엘을 낳는다. 이스마엘을 낳아 의기양양해진 하갈은 자신의 주인을 업신여겨 사라가 자신을 학대하자 못 참아서 도망치다가 천사를 만나고 다시 사라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이후에 사라가 드디어 아들 이사악을 낳는다.[26]
이로 인해 이스마엘과 이사악과의 후계문제 갈등이 생기고 만다. 결국 이스마엘이 14살이나 어린 이복 동생 이사악을 괴롭히고 그의 어머니 하갈와 함께 이사악의 탄생 연회에서 그를 모욕하자 분노한 사라에게 두 모자는 내쫓기고 만다. 이사악이 태어날 때 사라는 90대, 아브라함은 100살이었다. [27]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꿀 때는 이사악이 태어나기 1년 전, 즉 아브람이 99살 때이다. 사라이도 이때 이름을 사라로 바꾼다. 그리고 그때부터 야훼의 명령으로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했다. 아브라함도 이스마엘도, 밑에 있는 남자 하인(외국인 포함)들도 전부. 그리고 태어난 남자아이는 출생 이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는데 지금까지 유대교에서는 이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흘러 이사악이 새로운 족장이 되고 친척 집안에서 데려온 리브가와 결혼한다. 나중에 아브라함은 헤브론 근처 막벨라 동굴에 먼저 죽은 아내 사라와 함께 묻힌다.[29]
2.3. 야곱 이야기 (25장 19절 ~ 38장 30절)
이사악은 아들 에사오와 야곱을 낳았는데, 이들은 뱃속에서부터 사이가 안 좋아서 하도 싸워대니 리브가가 배가 아파서 못 견뎠다[30] . 나올 때는 야곱이 에사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장남 에사오는 짐승남으로 야외를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걸 좋아했고, 야곱은 비교적 초식남 기질을 보였다. 아버지 이사악은 에사오가 잡아오는 고기 때문에 에사오를 더 좋아했으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더 좋아했다.[31]
에사오는 맏아들이 갖는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야곱에게 죽 한 그릇의 대가로 장자권을 팔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이사악이 죽기 전에 장자 상속을 하려고 에사오에게 사냥 가서 고기를 잡아오라고 시켰는데, 리브가가 이를 눈치채고 야곱에게 염소 떼에게 가서 염소 새끼 2마리를 잡아서 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야곱은 어머니가 만든 그 염소 요리를 가지고 얍삽하게 에사오처럼 털 있는 것처럼 변장하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상속권을 받아낸다. 열심히 사냥하고 와보니 동생 야곱이 아버지 상대로 사기친 걸 안 에사오는 아버지에게 울부짖으며 '''"아 상속권 다시 돌려주세요!!"'''라고 사정하지만[32] 아버지 이사악으로서도 취소는 불가능했고 결국 축복의 말 대신 저주의 말이 내려지는[33] 안 좋은 결과만 초래한다. 결국 열받은 에사오는 야곱을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하고[34] , 아들이 끔살당할 걸 걱정한 어머니 리브가는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야곱을 보낸다[35][36] .
외갓집에서 외사촌 누이인 라헬을 보고 반한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그녀와의 결혼을 전제로 한 노예계약서를 작성하고 7년간 미친 듯이 그 집에서 일해준다. 드디어 대망의 결혼식 날, 첫날밤을 보내고 신부의 얼굴을 보니…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였다! 야곱은 라반에게 이런 일이 어딨냐며 울부짖지만, 라반은 원래 동생 먼저 결혼시키는 법은 없다며, 라헬을 얻으려면 7년을 더 일하라고 말한다[37] .
야곱은 결국 여자 때문에 도합 14년을 노예로 외삼촌 집에서 일한다. 게다가 아내들은 자기 여종들까지 첩으로 두게 하니[38] 결국 자식은 10명 넘게 낳았어도 제대로 된 재산이 없고, 임금을 10번이나 삥땅치며 허송세월했다는 생각에 야곱은 분노가 치민다[39] .
야곱은 자신의 장기인 사기 치는 기술로 외삼촌 라반을 꼬드겨 막대한 재산을 얻어낸 뒤, 20년째 되는 날 바로 야반도주해 버린다. 덩달아 라헬은 아버지인 라반의 보물 1호인 수호신상들을 가지고 도망쳐버린다. 당시 드라빔이라고 하는 수호신상은 재산 상속권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이는 라헬이 아버지 재산을 먹튀한 셈이다. 라반이 수호신상을 찾으려고 야곱을 질기게 쫓아왔지만, 결국 돌무더기를 두고 계약하여 좋게 해결했다.
중간에 야훼가 보낸 천사와의 씨름에서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명을 얻는다. 이때 천사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엉덩이뼈를 쳤다. 그 이후로 야곱은 발을 절게 된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은 형 에서가 복수할까봐 덜덜 떨었지만, 대인배 에서는 20년 만에 만난 야곱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이렇게 형과 사이좋게 화해하고 가나안에서의 삶을 영유한다.
야곱의 아들은 각각 레아의 사이에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이싸갈, 스불론, 몸종 실바와의 사이에서 갓와 아셀, 라헬과의 사이에서 요셉과 베냐민, 몸종 빌하와의 사이에서 단과 납달리, 이렇게 12명이다. 특히 요셉과 베냐민은 맨 마지막에 태어난 자식들이고, 라헬은 베냐민을 낳은 직후 사망한다.
그 와중에 막장 집안의 면모를 드러내는 사건이 터진다. 평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 요셉을 편애하던 야곱의 태도에 다른 아들들은 분노해 있었다. 어느 날 요셉이 부모님과 형들이 자기한테 큰절을 하는 꿈을 꿨다고 이야기하자 손을 좀 봐줘야겠다고 의견이 모인다. 마침 요셉이 형들을 부르게 위해 멀리 나왔을 때 죽이려 했는데, 맏아들 르우벤이 차마 형제를 죽일 수 없다고 반대해서 옷을 벗기고 메마른 우물에 처넣었다. 르우벤은 요셉을 나중에 꺼내줄 생각이었으나 다른 형제들이 마침 지나가던 이집트 노예 상인에게 넷째 유다의 제안으로 몸값 은화 20냥에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는 사자가 잡아먹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아버지 야곱은 진짜로 요셉이 죽은 줄 알고 멘붕에 빠졌다.
게다가 그 이전에는 딸내미 '디나'는 '세겜'이라는 이방인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아들들이 이를 복수한다며 세겜에게 디나의 남편이 되려면 할례(포경수술)를 해야 한다고 꼬드긴 뒤, 사흘 뒤 아직 어기적거릴 때 시므온과 레위가 스켐 가족을 살해하기도 했다. 야곱이 보복이 두렵다며 두 아들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그럼 우리 누이가 창녀가 되어도 좋다는 말씀?"이냐며 반문한다. 한편 유다라는 아들은 며느리인 다말과 관계를 가져 아들까지 낳고, 장자 르우벤은 새어머니 빌하와 관계를 가져 장자권을 잃어버린다.[40]
창세기 38장에는 오나니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어원은 유다의 차남 '오난'이다. 유다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첫째 '엘'와 결혼한 '다말'은 갑자기 남편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과부가 된다. 둘째 '오난'은 형사취수혼 제도에 따라 다말과 결혼하지만 질외사정으로 야훼의 분노를 사 죽임을 당한다.(…)[41] 이제 셋째 '셀라'가 다말과 결혼해야 하지만, 아들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유다는 셋째가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간만 끌고 있었고, 이 때문에 결국 며느리 다말이 신전 창녀로 위장하고 유다와 관계를 가져버린 것. 이때 유다도 아내가 죽어 홀아비 상태였다. 다말이 임신을 하고 있음을 안 유다는 열받아서 다말을 불태워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관계를 맺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자[42] 살려주는 대신 다시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다말은 각각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를 낳았다.
2.4. 요셉의 인생역전 (37장 12절 ~ 50장 26절)
한편 이집트 땅에 노예로 끌려간 요셉은 파라오의 경호대장 보디발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그의 집사일을 한다. 이렇게 능력을 인정받을 즈음 용모가 잘생긴 요셉을 마음에 품은 경호대장의 아내에게 수차례 동침 요구를 받지만 거절한다. 경호대장의 아내는 앙심을 품고 요셉을 강간범으로 모함하여 요셉은 감옥에 갇힌다.
그러다 감옥에 함께 수감된 파라오의 포도주를 책임지던 관리의 꿈을 해몽해준다. 이것을 계기로 풀려난 관리가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파라오의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사람으로 추천하여, 파라오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요셉은 앞으로 이집트에 닥칠 7년간의 대풍년과 뒤이어 닥쳐올 7년간의 대기근을 예측하고 대책까지 얘기해 재상의 직위에 올라 인생역전을 이룬다. 이후 요셉의 말대로 대풍년이 이어져 대기근에 대비하여 창고에 곡식을 모아두고, 7년간의 대흉년이 시작되자 모든 창고를 열어두어 곡식을 나눠준다. 이때 주변 이웃나라들도 흉년이 시작되자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가는 사람들이 속출하였고, 야곱의 가족들이 살던 가나안도 예외는 아니어서 야곱의 가족들도 곡식이 떨어져가는 상태였다. 이때 야곱의 아들들, 즉 베냐민을 제외한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이집트로 내려온다.
이집트로 내려온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보고 엎드려 절을 한다. 10여 년 전에 요셉이 꿈을 꿨던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진 셈. 그러나 형들은 이집트의 재상이 요셉인 줄을 알아채지 못했고, 요셉은 이를 알고 있었다. 요셉도 10년 전에 형들이 자신에게 했던 분을 삭이지 못했는지 화나는 듯한 말투로 너희들은 누구냐며 형들에게 물었고, '우리는 가나안 땅에서 곡식을 사러 온 사람들이다.'라며 형들이 답했지만, 도리어 '너희들은 분명 스파이일 것이다.'라며 형들을 감옥에 사흘 동안 감옥에 가둔 후, 동생인 베냐민을 데려오라며(이때 베냐민이라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형들에게 명령한다.[43]
3. 2가지 창조 이야기
기본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창세기 및 모세오경 전체의 저자는 모세다.[44] 다만 현대의 성서주석학에서는 창세기가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여러 원전 텍스트들이 조금씩 섞여 편집되었다고 보며, 내용이나 표현, 문체 등이 서로 상이한 여러 부분들로 나누어지는데 최소 2계통으로 신명기계(D), 사제계(P) 등으로 나뉜다고 본다.[45]
가장 단적인 예는 창세기 2장인데, 천지창조가 6일 만에 끝나고 7일째에 쉬는 창세기 1장의 내용이 계속 이어지다가 2장 4절에서 갑자기 전혀 다른 천지창조의 내용이 재등장하며, 여기서 갑자기 야훼에 대한 호칭도 바뀐다. 창세기 1장 ~ 2장 3절에서는 야훼를 אֱלֹהִים(엘로힘)이라고 칭하는데, 2장 4절부터는 [46] '''יְהוָה''' 로 칭한다. 이는 한국어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엘로힘과 테트라그라마톤을 개신교 개역개정판에서는 '하나님' 및 '여호와'로, 가톨릭 성경에서는 '하느님' 및 ''''주''''로, 공동번역성서에서는 각각 '하느님' 및 '야훼'로 구분했다.
신학계에서 이에 관해 설명한 대표적인 해석은 문서가설이 있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의 본 저자는 모세 본인이 아니라 그보다 후대의 편집자들에 의한 것이란 내용으로, 고전적 문헌가설에 의하면 모세오경이 J, E, D, P 4가지의 문서에 기초했다고 본다. 이 이니셜은 각각 Jahwist, Elohist, Deuteronomist, Priestly 의 첫 글자를 따왔고, 연대순에 의거하였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내용은 가장 후대(B.C 5세기)에 쓰여진 P문서에 의한 내용이고, 2장의 내용은 J문서에 의한 내용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4출전 모델도 고전적인 모델이 되어버렸고,[47] 따라서 고전이라는 의미에서는 알아둘 필요가 충분하지만, "1970년대부터 확고부동한 것처럼 보이던 이 가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48] "그 고전적 형태는 이제 동조자가 거의 없"다.[49] 비록 고전적 모델이 전적으로 완전히 거부된 것은 아니고 D와 P의 존재는 그 후로도 연구자들의 폭넓은(그러나 개별적 강조점들은 상이한) 동의를 얻고 있지만, J와 E는 "극히 의문시되거나 단호히 부인되고 있다."[50] 다수의 출전이라는 관점을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개론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JEDP라는 4출전 모델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냥 "다양한 출전이 있구나" 쯤으로 생각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문헌 가설에 의존하지 않고 1장과 2장을 설명하는 견해로는 '모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창세기를 작성했기 때문에, 표현과 문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나, 1장과 2장에 쓰인 '식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지칭하는 대상도 다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해석 등이 있다. 또한 창세기 1장과 2장이 다른 것이 '''클로즈업 기법'''을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봐도 의문점은 있다. 아담과 하와가 나오는 2장의 창세설명에서는 초목이 땅에 자라기 전, 즉 야훼가 천지를 만든 후부터 비를 내리기 전 사이 수수께끼의 시점에, 진흙으로 형상을 빚고 숨을 불어넣어 아담을 만들었다고 돼 있다.
가장 먼저 갈리는 건 흙이 무엇을 상징하냐는 것이다. 흙이 그냥 흙인지 아니면 원자를 상징하는 것인지 아니면 흙과 같던 존재인 유인원을 상징하는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갈린다.
그런데 1장에서는 낮과 밤 → 하늘 → 땅과 바다, 식물 → 해와 달 → 물고기와 새 → 집짐승, 길짐승과 사람의 순으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에덴동산 내에서 동물을 만든 것이야 에덴 밖의 상황을 따로 생각하면 되겠지만, 식물의 경우는 1장에서 식물을 인간보다 먼저 만들었다고 했는데 2장에선 명백하게 땅에 아직 초목이 없었다고 하니[51]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냥 읽어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더 나아가서 저자 자체는 모세 본인이지만 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구전들 혹은 기록들을 모세가 종합해서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구성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결국 어느 쪽도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논란에 관해서는 조심스럽다.
한편 소수의 창조과학론자나 이원론자는 '''세계가 2번 창조되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근거는 2절의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않았다.'에 두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가 한 번 창조된 후, 루시퍼가 배반해서 전쟁이 일어난 여파로 재창조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 에녹서의 내용을 일정 부분 배경으로 할 뿐, 성경 어디에도 2번째 창조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루시퍼의 배반 운운은 전적으로 근본주의자들과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자들의 추측에 불과하며, 성경에는 루시퍼라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사야 14장 12절에 샛별[52] 이란 이름으로 간접적으로는 언급되지만 이 구절로도 근거는 한참 부족하다.[53]
게다가 루시퍼의 배반으로 첫 세계가 파괴되고 야훼가 다시 한 번 세계를 창조한 것이라면, '''루시퍼는 세계를 파괴할 정도로 그 능력이 야훼와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리스도교 신앙으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54]
혹은 "1장에서 창조한 세계의 인간들이 1장과 2장의 사이에 시간적 격차가 있어 2장에서 타락한 인간들(흙)[55] 가운데서 아담을 선택하여 창조주 야훼를 알게 하는 영(숨결)을 불어넣었다." 라고 하여 아담이 첫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진짜로 인류의 첫 번째가 아니라 '최초의 신앙인'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할때 아담은 분명히 첫 번째 인간이고 위의 논리대로 해석하자면 인류는 아담의 원죄로 타락한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타락한 인류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신약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동의 할수 없을것이다.
약간 다르게 1장의 아담은 200만 년 전의 인류를 의미하고 2장의 아담은 진짜 8000년 정도 전의 하나님의 뜻을 부여받은 이스라엘의 아담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인류에 있어 아담이 새로운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범죄하여 연대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해석을 한다. 아담의 원죄 역시 상징적 영적 타락을 의미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이 가능했는데 사실 아담을 인류의 공통조상으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안된다고 본다.
가장 급진적인 주장으로는 2장의 아담은 그냥 실존인물이 아닌 그저 창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문장에 불과하다고 본다.
3.1. 창세기 1장 해설
흔히들 창세기에서 '無로부터의 창조'가 나온다고 인식하지만, 성서주석학적으로 이는 부정된다. 가령 창조 이전의 땅이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The Hebr. is ''tohu'' and ''bohu''. It is not '''creation out of nothingness, a formula which first occurs in 2 M 7:28''', but a sense of bringing order out of chaos, or shape and form to that which had none. Not to have shape or form amounts to non-existence.
(번역: 히브리어로 tohu와 bohu. 이는 2마카 7,28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카오스로부터 질서를 가져온다는 관념이거나, 혹은 비어있는 것을 모양짓고 꼴짓는다는 관념이다. 모양과 꼴이 없는 것은 비실존이다.)
- The Revised New Jerusalem Bible 창세기 1장 2절 주석
간단히 말해서, '無로 부터의 창조'는, 마카베오기 하권에서 명시되지만, 히브리 성경과 신약에는 적혀있지 않다.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설화들은 창조가 질서로 소개된 것과 일치한다. 하느님의 개별적인 창조행위에서는 피조물의 물질적 기원보다는 나누고 구분하고 배분하고 배열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 창조는 일차적으로 질서를 세운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빛과 어둠이 구분된 것이다. 따라서 질서가 세워지지 않고 구분되지 않은 것을 정돈하는 일이 창조가 이야기하는 핵심인 것이다. 구약성경은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해서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초기 유다이즘의 시기(2마카 7,28)에 와서 비로소 하느님께서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이런 사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구약성경의 관점으로는 무엇보다도 질서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기 이사야서에 벌써 등장하는 "새로운 창조"도 무엇보다 이미 현존하고 있는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클라우스 베르거, 《예수. 1》 447쪽
2마카 7,28은 순교자와 부활신학의 틀을 바탕으로 성경에서 처음으로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호세 모랄레스, 《창조론》 62쪽
흔히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고 고백된다. 그렇지만 구약 성경에는[a]
이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을 언급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서로는 주전 2세기 후반에 쓰여진 마카베오 하서를 들 수 있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에 나타난 우주와 세상 창조에 대한 이해〉
'''The Bible[a]
does not affirm creatio ex nihilo. Instead biblical authors consistently say that God creates out of something.''' When exploring options for how Christians might best think about God as creator, it’s difficult to overemphasize this biblical point: '''According to Scripture, God creates from something.'''Biblical writers offer various descriptions of the “something” out of which God creates. In Genesis, the Spirit works with tohu wabohu (formless void), or what is often translated “primordial chaos” or “shapeless mass” (1:2). God creatively transforms chaos and shapelessness into something new: the heavens and the earth (1:1). God creates out of something, even if the “something” is initially vague, disordered, or messy.
Genesis also speaks of the tehom, the “face of the deep,” over which God hovers when creating (1:2). The “deep” is a something, not literally nothing. Many biblical scholars believe tehom signifies the presence of primeval waters as God creates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New Testament’s most explicit theory of initial creation, 2 Peter 3:5, supports this view: “Long ago by God’s word the heavens came into being and the earth was formed out of water and by water.” Water, of course, is something not nothing. … In sum, we search Scripture in vain for passages supporting creatio ex nihilo. Biblical writers say that God initially (and continually) creates from something.
-Thomas Jay Oord, 《God Always Creates Out of Creation in Love,》 in Theologies of Creation, pp. 109-110
A large number of Bible scholars reject the idea that Genesis describes creatio ex nihilo. Terrence Fretheim says, for instance, “God’s creating in Genesis 1…includes ordering that which already exists…. God works creatively with already existing reality to bring about newness.” ...... The New Testament also does not support creatio ex nihilo. We’ve already seen that the most explicit initial creation passage – 2 Peter 3:5 – says God brings the earth into existence by means of water. ... In sum, we search Scripture[a]
in vain for passages supporting creatio ex nihilo. Biblical writers say God initially (and continually) creates from something.
4. 논쟁
성경 맨 앞에 위치해있는 만큼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읽혀졌고, 그만큼 대중적인 논쟁도 엄청나다.[56] 이에 비견할 책은 요한묵시록 정도.
근현대 과학이 밝혀낸 여러 과학적 사실과 창세기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갖가지 논쟁이 많다. 성서 해석학이나 성서 형성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 1장은 일종의 '''신앙고백'''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자들은 창세기 1장을 '역사이자 명백한 사실'로 보지만, '야훼가 우주를 주관하시는 위대한 존재'라는 고백의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백이 형성된 계기는 바빌론 유수 이후 바빌로니아의 마르두크 신앙으로 야훼 신앙이 흔들리는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 1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야훼가 명령하자 천지 만물이 생겼다'고 했을 뿐 그것의 구체적인 생성 원리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애당초 창세기 1장의 목적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신앙 관점에서의 해석과 고백'의 차원이지, 과학 연구의 결과물은 아니라고 봐야 합당하다. 주님이 우주[57] 를 자신의 피조물로 만들어내는 등, 이는 고대근동신화의 안티테제로서 작용하는 면이 매우 강하다. 이와 같은 입장은 특히 진화론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그래서 과 같이 성경을 역사, 과학의 관점에서 보는 전문 학계에서도 이 창세기, 특히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이전의 내용에 대해선 신화, 신학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다만 이 역시 반론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시 고대 사람들은 우주가 만들어진 원리에 대해 과학적 탐구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자연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인들은 신화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설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동 사람들 뿐 아니라 이집트, 인도, 중국, 아메리카 대륙 등 여러 지역의 고대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대 유일신교을 믿은 이스라엘인들은 실제로 그렇게 창세기에 나온대로 자연과 우주는 창조되었다고 믿었고 그러한 자신들의 믿음과 신앙을 창세기라는 하나의 편으로 모세가 작성했다는 것이다. 야훼가 우주 탄생의 구체적 원리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대인들은 야훼는 우주를 주관하시는 존재라는 신앙고백 수준으로만 생각하며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고대 근동인들의 신앙고백의 차원일 것이다.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유일신교 천지창조 신화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야훼가 사람을 창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여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장 7절부터 어떻게 창조했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이것은 관점에 따라서는 천지창조보다도 더 중요한 구절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하는 구절이기 때문.
창세기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창조과학에서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궁창 위의 물이 지구를 보호해주고 그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현시대를 사는 우리보다 훨씬 길게 살았다고 본다.[58] 그러나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그냥 이때 제대로 된 달력이 자리잡지 못해 날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금이야 날짜를 세는 게 너무 당연한 행위지만, 과거에 1년을 세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발달된 수학을 바탕으로 한 천문학자들의 노력이 있고 나서야 가능해진 것이었다. 결국 이집트 정도까지 가야 제대로 된 역법이 등장하는데, 이집트 시대 이후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최고령이 모세(120세) 정도로 여전히 과거 기준으로 너무 많고 뻥이 첨가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800세마냥 비현실적인 나이를 가져다 두진 않는다. 그리고 전통적인 유대인의 달력은 1년이 평년 기준으로 355일 정도로 태양력보다 10일 정도 짧은 달력을 쓴다. 수천 년 누적된 오차와 복잡한 역법 계산으로 아무래도 예전에는 윤년이 틀렸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출애굽기의 광야 생활이 사실이라면 제대로 된 달력 계산을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 외로 심한 오차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 숫자 그대로를 대입해서 다른 의미부여 같은 건 하지 말자. 유일하게 나이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바로 므두셀라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노아의 홍수가 났기 때문. 아니면 홍수 때문에 사망했거나.[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