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투엘 카메라

 

Aktuelle Kamera

1. 개요
2. 영상 보기
3. 여담


1. 개요


동독의 DFF에서 제작하였던 뉴스 프로그램. 1952년 12월 21일부터[1] 방송을 시작해서 1990년 12월 14일[2]까지 방송하였다. 처음에는 오후 8시에 방영했으나, 서독 ARD타게스샤우(Tagesschau)와 시간이 겹쳐서 시청률에 밀리자 1960년대 중반 즈음에 시간대를 오후 7시 반으로 변경한 역사가 있었다.[3] 다만 편견과는 다르게 동독 주민들에게 시청률은 낮지는 않았는데 동독 지도부에게 애석(?)하게도 동독 주민들은 8시에 방송되는 ARD의 타게스샤우나 7시에 방송되는 ZDF의 호이테와 방송 내용을 비교하면서 시청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방송 내용이 어떻든간에 체제선전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서독에서 시청률이 높은건 딱히 아니었기도 했고.[4] 현재도 구 동독지역 TV방송국에서 틀어준다. 타게스샤우가 재방송되는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7시 30분 저녁방송이 메인이었지만 저녁에만 편성했던것은 아니고 아침, 점심이나 늦은 밤시간대, DFF2에서도 악투엘 카메라가 편성되었기는 했는데 단신보도 위주였다. 물론 이건 ARD 타게스샤우와 ZDF 호이테도 마찬가지이기는 했다.
논조 자체는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타 공산권 국가 뉴스보다는 형식면에서는 세련되었다는 평이다. 다만 의외로 맨 처음에는 관영방송적인 논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당시에 TV가 사치품으로 간주될 정도로 귀한 것이었고 TV 방송권역도 별로 넓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이 때문에 동독 지도부에서 악투엘 카메라의 논조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아서 비교적 자율적인 논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1953년 동베를린 시위를 자세하게 보도한 것이 문제가 되었고, 동베를린 시위가 진압된 이후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까지는 정부와 당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로 극 초기때의 자율적인 논조로 전환되었지만[5] 흡수통일과 함께 방송사 운영비용 분담 및 기능 중복을 이유로 DFF1이 ARD로 흡수통합되기로 결정나며 1990년 12월 14일자로 방송이 종료되었다.

2. 영상 보기



1988년 8월 20일 방송분. 카를 마르크스 슈타트에서 열린 제8차 에른스트 텔만 피오네르단(Pionierorganisation Ernst Thälmann) 대회를 첫 꼭지로 보도한다.[6]

1989년 10월 6일자 방송분. 동독 정권 40주년 특집으로 호네커 연설, 고르바초프의 동독 방문 등을 보도한다.

1989년 11월 9일자 방송분. 동독의 여행자유화 조치에 관한 기자회견을 보도한다. 이 보도로 인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1990년 12월 14일 마지막 방송.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고별방송 직전 마지막 뉴스 꼭지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 및 한-소 수교 소식이었다.

3. 여담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주인공 알렉산더가 어머니를 속이기 위해 악투엘 카메라 컨셉의 가짜 뉴스를 제작한다.


[1] 타게스샤우보다 5일 일찍 방송이 시작되었다.[2] 독일 통일 자체는 1990년 10월 3일에 이루어졌으나, 통일 이후에도 1~2달 가량 방송되었다. 악투엘 카메라 마지막 방송의 다음날인 1990년 12월 15일에는 동독의 TV방송국이었던 DFF1이 ARD로 흡수통합되었다.[3] 거의 모든 외국 방송이 금지되는 북한과 달리 동독은 합법적으로 서독의 라디오 청취나 TV 방송 시청을 허용하고 있었다.[4] 참고로 서독에서도 동독TV 시청은 합법이었지만 주로 스포츠 중계나 드라마, 만화영화 같은 것들이 인기가 높았고, 뉴스 프로그램은 내용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냥 아오안이었다.[5] DFF2에서 AK Zwo가 방영되었다. DFF2는 DFF-Länderkette라는 구 동독 지역 채널로 변경되어 Aktuell이라는 뉴스프로그램을 계속 방송하다가 1992년 1월 1일에 방송이 종료되었다.[6] 업로더는 5월 1일 노동절 행사인 줄로 잘못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