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황후 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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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사황후 염씨는 이름이 희(姬)로 후한 안제(후한)의 황후이다.
2. 상세
할아버지 염장(閻章)은 명제(후한) 영평 연간에 상서(尙書)를 지냈는데, 두 여동생이 황제의 귀인이 되어서 이미 이때부터 황실의 인척으로 간주되어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없었다. 아버지 염창(閻暢)은 특별한 이력이 보이지 않는데, 원초 2년에 황후가 즉위하고서 시중으로 임명되었던 듯 하다.
원초(元初) 원년에 간택되어 액정(掖庭)에 입궁하였는데 재색이 있어 귀인이 되고, 다음 해에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투기하는 마음이 있어 안제가 궁인 이씨를 총애하여 황자 유보를 낳자 마침내 그녀를 짐주로 독살하였다. 이로서 후궁을 장악하였고, 그녀의 일족 또한 그녀를 바탕으로 관직과 봉작을 얻었다.
건광(建光) 원년에 어렸던 안제를 옹립하여 계속해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화희황후 등씨가 사망하여 안제가 친정하게 되자, 안제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황후의 친정인 염씨 가문을 중용하였다. 황후의 형제들은 모두 경교(卿校)의 자리에 올라 금병(禁兵)을 장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황후는 자신의 일족 및 환관인 강경(江京), 번풍(樊豐) 등과 공모하여 궁인 이씨 소생으로 황태자였던 유보를 제음왕으로 폐출시키기에 이른다.
이후 안제가 장릉(章陵) 행차길에 갑작스럽게 병으로 사망하자 죽음을 숨기고 신속히 낙양으로 귀환하여 방계로서 나이가 아주 어렸던 장제의 손자이자 제북혜왕(濟北惠王)의 아들인 북향후(北鄉侯) 유의(劉懿)를 황제로 세웠다. 그리고나서 황제의 나이가 어린 것을 이유로 화희황후처럼 임조칭제하고, 자신에게 반하는 세력을 축출하고 그 자리에 일족 및 친위 세력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북향후가 즉위한지 200여일 만에 병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 되자, 황후와 그녀의 일족은 계속하여 정권을 유지하고자 북향후처럼 어린 황족을 불러들여 옹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황문(中黃門) 손정(孫程) 등의 환관들이 계책을 꾸며 제음왕으로 페출되었던 유보를 즉위시켰고, 염씨 일족은 모두 유배가거나 주멸되었다. 황후 또한 이궁으로 옮겨 유폐되었다가 바로 다음 해에 사망하였는데, 12년을 재위하였다. 아마도 근심과 화가 심하여 분사하였던가, 모종의 손길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된다.[1]
3. 둘러보기
[1] 실제로 순제는 염황후의 손에 어머니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