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 카디르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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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카디르 칸(우르두어: عبد القدیر خان 압둘 카디르 한, 1936년 4월 1일 ~ )은 파키스탄의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다.
원래 칸 박사는 네덜란드의 민간 핵연구소 유렌코에 취직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1971년 조국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 인도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며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큰 충격과 치욕에 빠진다.
파키스탄에 비해 국력이 압도적인 인도를 견제하려면 핵을 반드시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한 칸 박사는 유렌코의 핵심기술인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빼돌려 파키스탄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칸은 핵발전소 부지를 알아보는 동시에, 돈에 환장하는 일본과 서방의 회사들을 이용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부품과 재료를 사들인다. 인도는 이미 핵보유국이 되었기 때문에 칸은 더욱 열심히 움직였고, 특히 자주 방문하는 나라가 있었다.
바로 중국. 칸은 핵탄두를 실어나를 미사일 기술을 얻기위해 중국에 자주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에도 노동 미사일 기술을 제공받는 대가로 우라늄 농축 기술을 제공하여 북한의 핵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우라늄 농축 기술 커넥션은 기존에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 의해 동결된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만을 가지고 있던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을 가능케함으로써 제2차 북핵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 특히나 핵개발 건설을 위한 완성품 제조를 치밀하게 분산-위장시키고 위장회사로 거래하는 수법을 처음 쓴 장본인이다.
파키스탄은 칸 박사의 지도하에 1998년 5월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해 이슬람권 최초의 핵보유국이 되었으며 파키스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칸 박사는 북한 등 다수의 국가에 핵확산을 지원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하였다.
1. 개요
압둘 카디르 칸(우르두어: عبد القدیر خان 압둘 카디르 한, 1936년 4월 1일 ~ )은 파키스탄의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다.
2. 생애
원래 칸 박사는 네덜란드의 민간 핵연구소 유렌코에 취직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1971년 조국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 인도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며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큰 충격과 치욕에 빠진다.
파키스탄에 비해 국력이 압도적인 인도를 견제하려면 핵을 반드시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한 칸 박사는 유렌코의 핵심기술인 원심분리기 설계도를 빼돌려 파키스탄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칸은 핵발전소 부지를 알아보는 동시에, 돈에 환장하는 일본과 서방의 회사들을 이용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부품과 재료를 사들인다. 인도는 이미 핵보유국이 되었기 때문에 칸은 더욱 열심히 움직였고, 특히 자주 방문하는 나라가 있었다.
바로 중국. 칸은 핵탄두를 실어나를 미사일 기술을 얻기위해 중국에 자주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북한에도 노동 미사일 기술을 제공받는 대가로 우라늄 농축 기술을 제공하여 북한의 핵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우라늄 농축 기술 커넥션은 기존에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 의해 동결된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만을 가지고 있던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을 가능케함으로써 제2차 북핵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 특히나 핵개발 건설을 위한 완성품 제조를 치밀하게 분산-위장시키고 위장회사로 거래하는 수법을 처음 쓴 장본인이다.
파키스탄은 칸 박사의 지도하에 1998년 5월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해 이슬람권 최초의 핵보유국이 되었으며 파키스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칸 박사는 북한 등 다수의 국가에 핵확산을 지원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