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사고

 


'''항공계 최악의 해 1985년을 마무리한 추락사고'''
1. 사고 과정
2. 사고 원인
3. 테러?
4. 추모


1. 사고 과정


1985년 12월 12일, 미 육군이 대여한 애로우 항공의 DC-8 전세기가 이집트에서 이륙해 독일뉴펀들랜드를 경유한뒤 켄터키의 포트 캠벌 육군기지로 가는 중이었다. 탑승자 248명 전원 모두 육군 제101공중강습사단 장병들이었고, 5개월간 시나이 반도에 파병되었다 귀국하기 위해 탑승했다.
당시 기장는 존 그리핀으로 비행교관이기도 했다. 부기장은 존 코넬리, 항공기관사는 마이크 파울러로 조종사들은 비행 전 점검 절차를 진행했다. 비행기는 이후 겐더 공항에서 재급유를 했으며, 이륙 마지막 순간에 활주로가 변경되어 22번 활주로에서 오전 6시 46분에 이륙했다. 그런데 이륙한지 2초 후 속도가 떨어지고 '''비행기가 숲에 추락한 뒤 폭발했다.''' 관제탑에서 폭발을 목격해 소방대를 출동시켰으나 불길이 너무 강해 진압이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탑승자 256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는 101 공수사단이 창설된 후 겪은 사건 또는 단일 전투 중 가장 큰 사망자 수였다.[1]

2. 사고 원인


원인은 결빙과 과적이었다.
애로우 항공의 지침서의 평균무게는 남녀 노소의 무게 평균으로, 약 77kg인데 탑승자 대부분은 건장한 남성이었고, 파병 후 귀국하는 이들 특성상 꽤 무거웠을 개인 수하물과 장비까지 계산하면 평균 무게는 100kg이나 되었다. 총 탑승 중량은 24.5톤으로 적하목록에 기재된 중량보다 5.5톤 무거웠다. 이것도 모르고 이륙해 사고가 난 것이었다.
또한 당시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날개에 쌓인 얼음이 얼어붙은것 또한 이유였다.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얇은 얼음층이 꼈는지는 알아보지 않고, 큰 얼음이 얼어있는지만 확인했는데 이것은 당시에 얇은 얼음층의 위험성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3. 테러?


사고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하드 소속이라 밝힌 한 남성이 자신들이 비행기를 테러했다고 미국 영사관에 통보했다.
그런데 파편에서는 폭발물이 하나도 검출되지 않았고, 추락 당시 목격자들이 엔진에서 불꽃을 목격하긴 했으나 이는 실속할 때 기수를 너무 높게 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희생자의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것이 공중 폭발의 증거라는 설도 있었으나 이는 화재로 인한 것으로 드러났고, 정체불명의 도료도 잔해를 치우던 굴삭기에서 묻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와중에 전세기에서 정체불명의 상자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적하목록에 없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집트에서 이륙할 때[2] 누군가가 몰래 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것이 기체 추락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4. 추모


[image]
추모비는 101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FT.campbell에 설치되었다.
[image][3]
갠더 호수에는 1285편의 희생자를 기리는 동상이 설치되었다.

[1] 2차 세계 대전에서 101 공수사단은 2043명이 사망했지만 전쟁기간 모두 합쳐서이며 단일 전투로는 256명 이상 사망한 전투가 없었다.[2] 당시 이집트는 보안이 허술했다.[3] 아이러니하게도 위 사진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는 101 강습사단을 태우고 추락한 비행기인 DC-8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