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리카와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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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attle of Yarikawa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전투.
2. 전개
사카이 진은 부랑배들을 모병하고, 몽골군 주둔지를 혼자서 박살내는 등 여러 굵직한 활약을 떨쳤고, 결국 몽골군의 사령관인 코툰 칸은 이를 보다못해 진이 주둔한 야리카와를 공격하기로 결정, 장수 테무게와 다수의 몽골군들을 야리카와로 보낸다.
몽골의 장수 테무게가 이끄는 몽골군은 야리카와성을 포위하고, 성문을 열고 항복할 것인지 지옥을 맛볼 것인지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진은 야리카와의 우두머리인 야리카와 우지마사에게 협력을 요청하지만, 야리카와의 난[2] 이후 시무라 가와 철천지 원수 사이가 된 야리카와는 이를 거부한다. 진과 유나가 지금은 쓰시마 전체의 위기이니 그런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라며 설득하지만, 우지마사는 '야리카와 성이 뚫릴 일은 절대 없으며, 몽골군은 본토가 목적이므로 언젠가는 쓰시마를 떠날 것이다'고 하고 이를 무시한다. 심지어 우지마사는 몽골에 의해 섬 전체가 난장판인 이 때를 이용하여 야리카와가 다시 한번 쓰시마의 지배자로 군림할 생각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우지마사의 안이한 생각에 반발하여 성 밖에서 몽골과 싸우는 부하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궁병 다이코쿠가 진에게 몽골에게 잡힌 동료들을 구해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진과 유나, 타카는 무사히 인질들을 구한다. 망령의 싸움에 감탄한 다이코쿠는 테무게와의 공방전 시에 진에게 협력할 것을 약속하고, 우지마사는 자신들이 어떻게든 설득해보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테무게와 몽골군은 밤에 야리카와성의 정문을 공격하고, 진과 다이코쿠를 포함한 야리카와의 사무라이들, 농민군들은 맞서 싸운다. 진은 몽골군들을 야리카와 성의 백성들의 지원을 받으며 몽골군을 차례차례 쓰러트리고, 성 중앙에 도달하여 테무게와 몽골군을 처치한다. 그리고 진은 테무게와 1:1 전투를 벌이고, 진은 테무게의 머리를 벤다.[3] 망령의 모습에 겁을 먹고 사기가 떨어진 몽골군들은 후퇴하고, 진과 농민군은 그들을 추격하여 죽인다.
이로써 야리카와 공방전은 끝났다.
3. 결과
전투는 야리카와 연합군의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망령 전설이 한층 널리 퍼지게 되고, 농민군들과 진의 유대가 깊어지는 결과도 낳았다. 농민들은 '우리도 몽골과 맞서 싸울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10여년간 시무라 가문과 원수사이였던 야리카와 가문이 쓰시마의 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원념을 떨쳐내고 함께 힘을 합치고, 고립되고 몰락한 골칫거리 사무라이 가문에서 누구보다도 마음 든든한 협력군이 되었다는 결과도 낳음으로써 쓰시마 전체가 하나가 되는데 큰 공헌을 한 전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몽골군들은 피해가 막심했다. 장수 테무게의 사망, 다수의 몽골군 사망, 야리카와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코툰 칸이 직접 나서고 이후 타카가 사망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4. 관련 문서
[1] 정확한 날짜의 추산이 어렵다.[2] 15년 전 우지마사의 아버지인 야리카와 토키요리가 쓰시마를 차지하기 위해 시무라 가문을 상대로 일으킨 반란. 야리카와 가는 이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여 사무라이 가문으로써 몰락하지만, 살아남은 후예들은 여전히 토지의 지위를 잃지 않고 야리카와의 백성을 이끌고 있었다. 진의 어린 시절 회상을 보면 야리카와의 자객이 사냥 중이던 시무라를 기습하는 등, 시무라 가에 대한 원한은 없어지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3] 이때 처음으로 '''망령의 자세'''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