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보속완

 


'''시호'''
승천태후(承天太后)
'''연호'''
숭복(崇福, 1164년 ~ 1178년)
''''''
야율(耶律)
''''''
보속완(普速完)
'''생몰년도'''
? ~ 1177년
'''재위 기간'''
1163년 ~ 1177년
1. 개요
2. 생애
3. 여황제였는가?


1. 개요


서요태후이자, 섭정. 야율대석감천후의 딸, 야율이열의 여동생, 야율직로고의 고모이다.

2. 생애


서요의 제2대 황제 야율이열이 일찍 사망하자, 그의 아들 야율직로고가 아직 어려서 고모인 야율보속완이 야율직로고를 대신하여 태후의 자리에 올라서 수렴청정을 하였다. 그러니까 기록이 남지 않아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야율이열의 황후가 요절해서 야율보속완이 대신해서 태후로 추대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권신 소알리랄(蕭斡里剌)의 아들 소타로불(蕭朵魯不)과 혼인했으나, 그의 동생인 소박고지사리(蕭朴古只沙里)와 사통하고 남편을 살해했다. 이에 1177년, 아들의 죽음에 격분한 시아버지 소알리랄이 거병함으로써 간통남인 박고지사리와 함께 반란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시호는 승천태후이다.

3. 여황제였는가?


승천태후가 측천무후와 같은 여황제였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 요사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아들이 어려서 임금의 유언으로써 누이동생 보속완이 나라를 권한했다. 칭제(稱制)하고 숭복으로 개원했으며 호는 승천태후이다. 태후는 부마 소타로불의 남동생 박고지사리와 함께 정을 통했고 부마를 내쫓아 동평왕으로 삼아서 없는 죄를 꾸며 만들어 그를 죽였다. 부마의 아버지 알리랄이 군사로 그 궁전을 둘러싸 보속완 및 박고지사리를 사살했다. 보속완은 14년동안 재위했다.

子幼,遺詔以妹普速完權國,稱制,改元崇福,號承天太后。後與駙馬蕭朵魯不弟朴古只沙里通,出駙馬為東平王,羅織殺之。駙馬父斡里剌以兵圍其宮,射殺普速完及朴古只沙里。普速完在位十四年。

요사 30권 본기 제 30 전문

한자를 잘 보자. 稱帝가 아니라 稱制이다. 稱制는 임조칭제(臨朝稱制)의 줄임말으로 수렴청정을 뜻한다. 즉 여황제를 칭한 것이 아니라 수렴청정을 14년간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