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락

 


'''베트남의 역사'''
문랑(반랑)

'''구낙(어우락)'''

남월(남비엣)
Âu Lạc(어우 락) / 甌雒(甌駱)
1. 개요
2. 역대 군주


1. 개요


베트남 역사상 두 번째 나라. 춘추전국시대 촉나라의 왕자 안양왕문랑을 멸망시키고 건국했지만,[1] 안습하게도 역대 국왕은 안양왕 단 한명밖에 없는 나름 단명국가. 안양왕 본인의 대에서 멸망했다. 안양왕의 성을 따서 '촉가'라고도 불려진다. 구낙이라는 국호는 당시 베트남의 주류민족인 구족과 낙족의 연합으로 탄생했다고 하여 구낙이라 칭해진다.
베트남 월인 왕조와 중국 한족 왕조들의 기나긴 악연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베트남의 유명한 관광지이자 당시 구낙의 수도 고라에 세워진 고라성은 당시 중국 진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하지만 이후 초한전쟁 시기의 중국 군벌인 조타의 침공으로 멸망했는데, 멸망 이유는 고구려의 호동설화와 같은데 안양왕의 딸내미인 미주가 조타의 아들인 중시와 사랑에 빠졌고 중시는 미주에게 어우락 왕조의 주력무기인 쇠뇌를 부셔달라고 요구를 했고 미주는 안양왕이 황금거북에게서 받은 쇠뇌를 부숴버린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참고로 딸은 아버지에게 목이 달아났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청동기 문화인 반랑국을 멸망시킨것은 어우락 왕조의 청동기 쇠뇌무기였지만 남월국의 경우 철기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청동기 쇠뇌는 철기무기에 대적할수 없기에 무너졌다고 보고 있다. 초창기 철기는 최고스텟의 청동기에 비해 큰 메리트가 있지 않았다는 주장이 존재하나 남비엣이 쓴 철기 무기는 초창기 철기무기가 아닌 한나라에서 배워온 철기무기였다.[2]

2. 역대 군주


대수
왕호

재위기간
1
안양왕(安陽王)
촉반(蜀泮)
기원전 257년 ~ 기원전 208년

[1] 일부 베트남 학자들은 안양왕이 베트남 사람이었다는 주장도 하는 모양. [2] 세계 각국사 시리즈 동남아시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