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희
1. 개요
어윤희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유관순과 같이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 생애
어윤희는 당시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듯 일찍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다 전사하고 만다. 그 뒤 여기저기를 떠돌다 1909년에 늦깎이로 학교에 입학해 졸업한다. 이후 외딴 섬에서 전도사를 하기도 한다.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나 경기도 개성 지역의 시위를 주도한다. 그 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그 해 12월 24일에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하는 등 전혀 꺾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유관순 등의 동료 죄수들과 연락하며 1920년 3월 1일에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다시 만세운동을 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만세운동을 진압한 간수들은 주동자를 색출하기 위해 죄수들을 고문했고, 결국 유관순 등이 순국하게 된다. 한편 어윤희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간수의 밥을 나르는 조선 여자를 질책하여 잘못을 뉘우치게 했다. 또한 이러한 인물들을 갱생시켜 옥중의 애국지사들과 연락하는 역할을 맡기기도 한다.
출옥한 후에는 위와 같은 일들로 명성을 얻어 개성 지역의 민족운동 지도자가 되었다. 감리교의 개성 지역 지도자가 되는 한편,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위험한 일도 도맡아 했다. 또한 여성의 권리와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에도 앞장서서 노력했다. 더 나아가 전국에 흩어져 있던 여성운동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여 근우회를 창립해 봉건제의 탈피와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을 호소했다. 근우회는 1930년까지 118개의 지회가 설립되는 등 상당히 큰 조직으로 발전했다.
1931년에 신간회가 해체되고나서는 일선에 물러나 아동복지에 노력한다. 1937년에는 감리교와 개성 유지의 지원을 받고 보육원을 설립해 고아들을 돌본다. 1945년 광복을 무사히 보고 월남하여 다시 보육원을 건립하고 아동복지에 활동하다 1961년에 사망한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3. 참고 자료
- 정상규 저.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휴먼큐브. 2017년. 277~27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