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알몬드

 


[image]
Edward Mallory "Ned" Almond (1892년 12월 12일 ~ 1979년 6월 11일)[1]
1. 개요
2. 1차 세계대전
3. 2차 세계대전
4. 6.25 전쟁


1. 개요


1892년 버지니아 주 루레이 출생. 1916년 미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2. 1차 세계대전



3. 2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에서 92보병사단을 지휘했다.
그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지휘했던 제92 보병 사단은 전군의 골칫거리로 전락하여 당시 미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조지 마셜 장군이 직접 개입하가며 사단을 재편성/훈련시켜야 했으며, 임무에 실패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책임을 자신의 흑인 장병들에게 돌렸던 졸장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제92 보병 사단은 흑인 부대와 일본인 부대의 혼성 사단이었다.) 몇 안 되는 실험적 혼성 부대 지휘에 실패하고 전투까지 패한 알몬드 장군은 예비역은 고사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 마땅하였으나, 마셜이나 맥아더 장군 등과 같은 고위 장성들과의 연줄로 살아남아 한국전쟁에서 10군단장에 임명된다.

4. 6.25 전쟁


6.25 전쟁기간 동안 미군 10군단을 지휘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맥아더의 Yes맨으로, 무리한 진격 명령을 내려 사태에 일조했다.
현리 전투 당시 자신이 지휘하던 10군단 관할 내에 있던 국군 3군단의 병참로 '오마치(=오미재) 고개'에 대한 방어를 소홀히 하고, 심지어 중공군에게 피탈되고도 이를 3군단에게 알리지 않아 3군단 와해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반면 흥남 철수 당시 민간인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현봉학 박사 등 한국군 지휘관의 요청을 받아들여 민간인이 해상으로 철수할 수 있도록 한 위인이기도 해 호불호가 갈린다.
게다가 총탄이 빗발치는 야전에서도 쓸데없이 안락함을 추구해서 부하들은 물론이고, 다른 장교들에게도 상당한 위화감을 샀다. 일단 루이스 풀러 미 해병장군도 그와 식사를 하면서 은식기에 아마포로 된 테이블보 등 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상차림과 서비스를 보고 '전장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치'라고 회고했다. 하여간 이러다 보니 참석자들은 차라리 차량 조수석에 앉아 식어빠진 전투식량을 먹는게 마음이 편할 지경이었다고(출처-콜디스트 윈터, 데이비드 핼버스템).
한마디로 그냥 미국판 똥별로 생각하면된다. 상사(맥아더)에 대해 순수 예스맨으로서 온동네 똥칠은 다하고 다닌 인물이다. 2차대전부터 거한 똥은 다 싸지르고 다녔지만 맥아더의 예스맨 참모로서 비호받은 셈.
[1] 실제 발음은 Almond(άːmənd) '아몬드'나 '아먼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