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고등학교
1. 개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조병옥박사, 유관순열사 등의 인사가 거쳐간 유서깊은 사립고등학교. 기독교 감리교의 미션스쿨이다. 같은 재단의 영명중학교와 함께 있다. 줄여서 영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2.1. 연혁
2.2. 역사
본교는 1906년 미 선교사 윌리엄[1] 선교사가 개교한 학교이다. 1908년 졸업생 3명을 최초로 배출한 뒤로, 유관순 열사가 잠시 재학하고 조병옥 박사가 졸업하는 등 인재를 배출하였다. 또한, 1919년 4월 1일, 공주 읍내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앞서 윌리엄 선교사를 포함한 미국인을 전부 추방하고 적국인이 세운 학교라는 이유를 앞세워 강제 폐교시켰다.
광복 후, 제 1기 졸업생인 황인식 교장에 의해 1949년 12월 1일 재설립되었다.
3. 상징
교목 : 은행나무 [2] .
교조 : 독수리
교화 : 진달래: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당하고 복교된 학교의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함.
4. 특징
기본적으로 미션스쿨이기 때문에 채플 수업이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실시한다.
4.1. 교육목표
가.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인 육성.
나.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민주시민 육성.
다. 수준 높은 학력을 지닌 지식인 육성.
라. 튼튼한 체력과 정서를 갖춘 건강인 육성.
4.2. 남녀 공학인데 남초 학교
어째서인지(90년대기준 여자3개분반이 있었지만 00년대 이후 새로부임한 명문고교감출신 교장이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여자반을 없에려다가 장학생받는 걸 감안해서 정원을 줄이고 합반하는 수준에서 남겨놨다카더라) 남녀공학임에도 여학생 수가 극단적으로 적다. 한 학년당 약 160~170명 정도인데 여학생 수는 약 10명정도가 일반적이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전교생 250~260명 정도에 여학생 수가 약 30명정도였는데, 그 대부분이 장학생인 경우가 많아서 평반에는 여학생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2007년도 0명, 2008년도엔 3명까지 줄어들었으나 이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한다)
그래서 우스게 소리로 공대 예비체험이라고 자조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3]
5. 교통
공주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나, 산 중턱에 있어 의외로 접근성은 떨어진다. 특히 겨울에 오르막길에 얼음이 얼면 상당히 위험하다.(박물관과 분식집-도서관 방향 길은 급경사와 빙판으로 인해 미끄러지는 일이 다반사이며 도서관을 거치는 계단 또한 얼면 위험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시내 어디에서든 영명고등학교로 통하는 길이 있어 가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시내로만 나가면 된다. 명목상의 교문은 존재하나 산이라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엄청 많으며 일반인도 사용하는 길이기에 막을수도 없어 사실상 일반학교처럼 학생의 교외출입을 통제할 수 없어서 예전엔 점심시간에 몰래 외출해서 외식이나 여가생활(피씨방,당구장)을 즐기거나 쇼핑을 즐기기도 했었다
참고로 과거 25번(현재의 공주 버스 125)의 지선인 25-1번이 구 국립공주박물관 도로를 경유했었다. 현재는 국고개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다시 고지(...)를 타야한다... 당연하지만 현재의 구 박물관 앞을 경유하는 노선은 '''전혀 없다.''' 이유는 일단 왕복 2차선으로 차선도 적고 그나마 있는 차선도 상당히 좁다. 무엇보다 이렇다할 인프라가 있는 거리도 아니고 그저 주택들만 즐비하다보니 아무래도 다닐 이유가 없다.
6. 출신 인물
7. 학교 생활
7.1. 기숙사
- 대체로 규정이 자유로운 편이다. 주말에는 토요자습이 없으면 운영하지 않으며 방학, 공휴일에도 문을 열지 않는다.
7.1.1. 기숙사 시설
- 학교내 다른 건물에 비해서는 새 건물이다.
- 1층에 사감실과 공용 자습실, 2층에 여자방과 남자방이 같이있으며 , 나머지 층에는 남자방이 있다.
7.1.2. 기숙사 체육대회
- 가끔씩 기숙사생들과 사감선생님들끼리 체육대회를 한다. 체육대회라 해봤자 종목이 축구밖에 없다.
7.2. 장학생반
- 옆동내 학교처럼 선후배간 위계질서는 강하지 않지만 요즘은 거의 하지않는 강제자습을 밤 11시까지 한다.
8. 여담
- 100주년 기념탑 근처에 조병옥 박사와 유관순 열사의 흉상이 나란히 있는데 조병옥 박사에게 과한 의혹이라고는 하나 친일 의혹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 100주년 기념탑 이전에 구학교 건물이 있었으나 개보수하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보니 결국 철거하였다. 철거 당시 여러 유물이 나왔는데 학교에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구학교 건물 사진은 본관 교실에 걸려 있다고 한다.
- 흉상의 위치가 묘하게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다른 흉상들에 비해 윌리암 선교사를 더 치켜세우는 위치에 있어서 적당하다.
- 2006년 100주년 기념행사를 실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