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룔(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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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룔(Oryol, 러시아어 : Орёл)은 러시아 제국해군의 보로디노급 전함 제 3번함으로, 함명은 러시아어로 독수리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비잔티움 제국부터 이어져 온 러시아 황제의 문장이기도 한 '쌍두의 독수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함명은 1667년에 러시아 최초의 군함에 사용된 후 대대로 주력함에 붙여졌던 함명인데 그 이름을 이어받은 최후의 함이 바로 이 함선이다. 러시아에서는 포로가 된 자는 반역자로 취급되어 극형에 처해지는데 이 배도 일본에게 노획되었기 때문에 포로가 된 것으로 간주하여 더 이상 이 이름의 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1900년 5월 20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갈렐누이 섬 조선소에서 기공해 1902년 7월 6일 진수 후 1904년 10월 1일에 완공된 오룔은 태평양 함대에 배치되어 함장으로는 니콜라이 융크 대령이 취임했다. 러일전쟁으로 인하여 자매함 3척과 함께 제 2 태평양 함대 제 1 장갑함대 소속으로 극동으로 파견되었다.
1905년 5월 14일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서는 5발의 30.5cm 포탄, 2발의 25.4cm 포탄, 39발의 15.2cm 포탄, 그리고 21발의 소구경 포탄을 맞았지만 침몰에 이르는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 43명이 전사하고 80명 가까이가 부상당했다. 함장인 융크 대령도 이 때 부상을 입었다.
거의 모든 전투능력을 상실한 오룔은 전함 '임페라트르 니콜라이 1세', 해방전함 '게네랄 아드미라르 아플라쿠신', '아드미라르 세냐빈', 2등 방호순양함 '이즈무르트'로 구성된 니콜라이 네브가도프 해군소장의 잔존함대에 합류하는데, 5월 15일에 일본해군에 포위된 네브가도프 소장은 일본군에 항복하면서 오룔도 일본해군에 넘겨졌다.
융크 대령은 5월 16일에 사망하여 바다에 수장 되었고 포획된 오룔은 2년에 걸친 개장공사 후 일본해군의 전함인 이와미(石見)[1] 로서 일본해군에 편입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시 이와미는 동맹국이던 러시아에 반환되지 않아 칭다오 공략전에 참가했다. 시베리아 출병당시엔 1920년까지 연해주의 경비에 나섰으며 1921년까지는 캄차카의 경비에 종사했다.
1922년 9월 1일에 함적에서 제적된 이와미는 1923년 5월 9일에 무장이 철거된 후 잡역선으로 편입되어 표적함으로 지정된 후 1924년 7월에 폐선으로 지정되어 요코스카 및 미우라 반도에서 이루어진 5일부터 9일의 항공폭격 훈련시 표적함이 되어 7월 10일에 격침처분되었다. 현재 이와미의 주포인 30.5cm 포신이 쿄토의 요사노쵸에 남겨져 전시되고 있다.
[출처]
1. 제원
2. 개요
오룔(Oryol, 러시아어 : Орёл)은 러시아 제국해군의 보로디노급 전함 제 3번함으로, 함명은 러시아어로 독수리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비잔티움 제국부터 이어져 온 러시아 황제의 문장이기도 한 '쌍두의 독수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함명은 1667년에 러시아 최초의 군함에 사용된 후 대대로 주력함에 붙여졌던 함명인데 그 이름을 이어받은 최후의 함이 바로 이 함선이다. 러시아에서는 포로가 된 자는 반역자로 취급되어 극형에 처해지는데 이 배도 일본에게 노획되었기 때문에 포로가 된 것으로 간주하여 더 이상 이 이름의 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3. 상세
- 기본적인 설명은 보로디노급 전함 문서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4. 활동
1900년 5월 20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갈렐누이 섬 조선소에서 기공해 1902년 7월 6일 진수 후 1904년 10월 1일에 완공된 오룔은 태평양 함대에 배치되어 함장으로는 니콜라이 융크 대령이 취임했다. 러일전쟁으로 인하여 자매함 3척과 함께 제 2 태평양 함대 제 1 장갑함대 소속으로 극동으로 파견되었다.
1905년 5월 14일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서는 5발의 30.5cm 포탄, 2발의 25.4cm 포탄, 39발의 15.2cm 포탄, 그리고 21발의 소구경 포탄을 맞았지만 침몰에 이르는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 43명이 전사하고 80명 가까이가 부상당했다. 함장인 융크 대령도 이 때 부상을 입었다.
거의 모든 전투능력을 상실한 오룔은 전함 '임페라트르 니콜라이 1세', 해방전함 '게네랄 아드미라르 아플라쿠신', '아드미라르 세냐빈', 2등 방호순양함 '이즈무르트'로 구성된 니콜라이 네브가도프 해군소장의 잔존함대에 합류하는데, 5월 15일에 일본해군에 포위된 네브가도프 소장은 일본군에 항복하면서 오룔도 일본해군에 넘겨졌다.
융크 대령은 5월 16일에 사망하여 바다에 수장 되었고 포획된 오룔은 2년에 걸친 개장공사 후 일본해군의 전함인 이와미(石見)[1] 로서 일본해군에 편입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시 이와미는 동맹국이던 러시아에 반환되지 않아 칭다오 공략전에 참가했다. 시베리아 출병당시엔 1920년까지 연해주의 경비에 나섰으며 1921년까지는 캄차카의 경비에 종사했다.
1922년 9월 1일에 함적에서 제적된 이와미는 1923년 5월 9일에 무장이 철거된 후 잡역선으로 편입되어 표적함으로 지정된 후 1924년 7월에 폐선으로 지정되어 요코스카 및 미우라 반도에서 이루어진 5일부터 9일의 항공폭격 훈련시 표적함이 되어 7월 10일에 격침처분되었다. 현재 이와미의 주포인 30.5cm 포신이 쿄토의 요사노쵸에 남겨져 전시되고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