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국가
1. 개요
오스만 제국의 국가는 본격적으로 서구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마흐무트 2세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주된 국가 행사때 예니체리에 속한 군악대인 메흐테르[1] 가 행진곡을 연주하는 식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국가'라는 개념을 도입한건 그가 처음. 때문에 오스만 제국 멸망기까지 사용된 국가들은 전부 서구풍, 특히 고전주의적인 요소와 터키 음악의 음계를 가미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장엄하다. 한편 듣고 있으면 왠지 음울해서 제국 말기의 느낌이 전해지기도 한다. 하미디예 행진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사가 없는것도 특징.
오스만 제국의 국가는 마흐무트 2세 이후 새로운 파디샤가 즉위할때마다 바뀌었으며 , 마지막 파디샤인 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자기만의 국가를 갖지는 못했다.
2. 마흐무디예 행진곡
Mahmudiye Marşı
사용시기는 마흐무트 2세 재위 시기인 1808-1839년, 훗날 오스만 제국으로 귀화한 이탈리아인 주세페 도니체티(Guiseppe Donizetti)와 그의 형제인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가 작곡했다. 둘은 훗날 오스만 황실로부터 작위를 받아 파샤(Paşa)라는 직함으로도 불린다.
3. 메지디예 행진곡
긴 버전
짧은 버전
Mecidiye Marşı
압뒬메지트 1세 재위 시기인 1839-1861년에 사용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주세페 도니체티가 작곡했다. 두 종류가 있는데, 긴 버전과 짧은 버전이 있다.
4. 아지지예 행진곡
Aziziye Marşı
압뒬라지즈 재위 시기인 1861-1876년에 사용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인인 칼리스토 과텔리(Callisto Guatelli)가 작곡했다.
5. 하미디예 행진곡 (1기)
압뒬하미트 2세 재위 시기인 1876-1909년에 사용되었으며, 터키인이고 메흐테르 대장(Mehterbaşı)인 네지프 파샤(Necip Paşa)가 작곡했다. 이전에는 2기곡이 하미디예 행진곡의 전부인양 서술되어있었지만, 네지프 파샤가 작곡한 곡은 2개이다. 서구풍이 강한 1기와 터키풍이 강한 2기 모두 그 외의 오스만 제국의 국가와 비교했을때 가사가 있는 것도 특징. 언어 개혁 전이라 당연히 오스만 터키어로 되어있지만, 번역본도 함께 첨부한다. 1기 가사는 특히 페르시아어 단어와 페르시아 특유의 문법인 -i 가 남용되기 때문에 현대 터키인들도 거의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2기 곡에 비하면 지극히 당대 유럽 왕실찬가스러운 느낌이 든다.
6. 하미디예 행진곡 (2기)
Hamidiye Marşı
내용은 대략 오스만판 장공기념가 같다고도 하는데 전반부는 대충 맞지만, 후반부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안다면 웃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내용. 철도라든가 조선소라든가 하는 '근대화' 사업을 벌인 것은 그나마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탄압하지 않았다거나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후반부는 얼토당토 않다. 압뒬하미트 2세는 오스만 제국 최후의 전제 군주로, 암살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은 별궁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소통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수많은 사진사와 비밀 경찰, 언론 검열을 통해 제국을 통치했다. 그러니 탄지마트를 비롯하여 '근대화 개혁'의 맛을 본 국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라 꼴을 보다못해 봉기를 일으킨 세력이 세계사 교과서에까지 나오는 청년 튀르크당이다.
마찬가지로 네지프 파샤가 작곡한 서구적인 음악도 사용했다.
같은 시기에 사용된 서구풍의 하미디예 행진곡
7. 레샤디예 행진곡
Reşadiye Marşı
메흐메트 5세 레샤트의 재위 시기인 1909-1918년에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인인 이탈로 셀벨리(Italo Selvelli)가 작곡했다.
[1] 이것이 세계 최초의 군악대다. 이전까지 군대에 나팔 같은 것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음악소리를 신호용으로만 사용했던 다른 국가와는 달리 오스만 제국은 사상 처음으로 군사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에도 음악을 사용했다.[2] 금각만(Golden Horn)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