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희

 

1. 개요
2. 생애

王師熙
(? ~ ?)

1. 개요


조선고종 시기의 인물.

2. 생애


왕사희는 왕희의 후손으로, 선조 왕희는 자신의 본관을 개성 왕씨로 속이고 숭의전에서 고려의 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다 족보 위조가 들통나 쫓겨난 전적이 있다. 왕사희는 선조를 본받아 족보를 고쳤고 1876년(고종 13) 2월 숭의전참봉에 제수된다. 전 참봉 왕재기(王在基) 등 왕훈의 후손들은 왕희의 후손이 참봉이 된 것에 반발해 1878년(고종 15) 3월 경기 암행어사 이헌영에게 이를 알렸고, 같은 해 7월 개성유수 조경하가 마전군에 가서 진위를 알아보게 된다.
개성유수가 왕사희와 왕훈의 후손 양가 친척을 한곳에 불러모아 이조의 입안(立案)과 왕씨 세보를 대조하며 거슬러 올라갔는데 문적(文蹟)상의 근거가 양쪽에 다 있었다. 의정부는 이 해 10월에 개성유수의 대조 결과와는 별개로 왕훈의 후손이 정파로 정해진 바 있으니 왕사희는 파면하고 그 후손을 참봉으로 차임해야 한다고 아뢴다. 고종이 의정부의 청을 따르면서 왕사희는 2년만에 참봉직에서 쫓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