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대지)

 


왕일(王一)
대지(소설)의 등장인물이다.
왕룽의 큰 아들. 중국 발음으로 왕이로 국내에 나온 대지 번역판에선 대지의 주인공인 왕룽(王龍)과 마찬가지로 중국 발음으로 이름이 나왔다. 그 이름처럼 둘째와 셋째 이름은 각자 왕얼(王二), 왕싼(王三)이다.
1부 대지에선 이름이 안 나오고 장남으로만 나오다가 2부인 아들들에서야 이름이 나온다. 3부 흩어진 집안에선 아주 공기화.
그래도 왕룽이 큰아들이라고 대처로 유학까지 보내준 보람이 있는지 작은 할아버지 가족의 횡포[1]가 심해지자 아편 중독시켜버리자는 의견을 낸다. 아편도 싼 건 아니지만 수시로 돈을 퍼붓는 것보단 낫다는 판단. 이때만 해도 꽤 열정적이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준재였다.
대지에선 사춘기 무렵 왕룽의 첩인 롄화에게 반하기도 해, 아버지가 나가고 없는 자리에서 롄화와 반갑게 단둘이서 이야기를 하는 걸 왕룽이 아내인 오란의 이야기로 알아차려서 왕룽에게 호되게 맞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롄화의 말로는 단둘이 이야기하는 정도 이상으로 선을 넘은 적도 가까이 다가온 적도 없다고는 하지만. 이 일을 겪은 후 왕룽은 아들이 이전에 가고 싶다고 했던 남방 유학을 보내버리고 롄화에 대해 이전까지 뜨겁게 타올랐던 정념도 다소 꺼진다.
경제적으로 약삭빠른 둘째 왕얼과 달리 좀 게으르며 그냥 편히 살고 싶어하는 성격. 때문에 아버지인 왕룽이 살아있을 때부터 아버지의 뜻과 반대로 그 땅들을 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삼국지,수호지 같은 책을 즐겨보며 군인의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죄다 옛날 이야기. 그래서인지 군벌이 되어버린 막내 왕싼에게 자신의 둘째 아들을 보내 군인이 되게 하려고 했으나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약한 아들은 군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목을 메어 자살하고 만다. 그걸 한으로 여기는데, 반대로 둘째 왕얼의 아들은 군대에서 잘 적응하고 공로를 세워 왕싼 휘하의 작긴 해도 그래도 튼튼한 세력을 가진 군벌을 세우고 군림하는 통에 그걸 배아파하기도 했다.
큰아들[2]은 지역 경찰서장의 외동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꽤나 한량이라서 서장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경찰서장의 딸이라는 권력도 있고 하니 왕이는 거액의 혼수품과 지참금을 후하게 제시하며 사돈을 맺고자 했지만 서장이 애지중지하던 딸을 저런 난봉꾼에게 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결국 둘이 몰래 만나다가 서장에게 들키게 되고 분노한 서장이 왕이의 큰아들을 감옥에 처넣었다. 어쩔 줄 몰라하다가[3] 왕이는 군벌인 왕싼에게 부탁하여 현장에게 큰아들을 석방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려보내게 한다. 그러면서 왕얼도 나서서 이 행정명령이 내려오는 요소요소에 뇌물을 뿌리고, 행정명령이 도착할 즈음에 서장에게 꽤 많은 액수의 뇌물을 바치며 화해를 제안하자 서장도 결국 왕씨 집안의 재력과 권력을 몸소 체험하여 못 이기는 척 결혼을 승낙한다.
3부에선 그 비중이 크게 줄어서 왕이,왕얼 및 그의 아들들이 그래도 조연으로 나오는데 왕이는 공기화되면서 뭐 대충 잘 살고 있는 듯 싶다.[4] 지은이 펄 벅이 붉은 대지라는 4부를 쓰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그의 행방이 어찌되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1937년에 미국에서 흑백영화로 만들어진 대지에선 주인공인 왕룽과 오란을 백인 배우가 분장하고 맡은 것과 달리 중국계 배우인 키예 루크(1904~1991)가 맡았다. 참고로 이 배우는 영화 그렘린에서 기즈모가 있던 가게 주인 할아버지를 맡았던 그 노배우이다.

[1] 왕룽의 삼촌. 자수성가한 왕룽 일가에 붙어 수시로 노름값 술값 등을 뜯어냈다. 처음엔 왕룽도 도리상 은전을 내주었지만 흉년이 들어 자기 자식들조차 세끼 밥만 겨우 먹는 와중에도 돈을 요구하자 왕룽도 폭발해 내쫒으려했지만 실은 삼촌은 마적단 부두목이었고 이시점에서 꽤 부농격인 왕룽이 마적에게 한번도 습격 당하지 않은 건 이 때문이었다.[2] 대를 이어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둘째보다 더 군인에 적합한데도 보내지 못하였다![3] 일단 뇌물을 바치며 용서를 구해보았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뇌물의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인데, 항상 거액을 굴리는 왕얼과 달리 왕이는 항상 현금을 넉넉하게 보유한 편이 아니었다.[4] 일단 3부에서는 남부의 항구 도시에서 적절히 부유하게 잘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