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1. 昏睡
1.1. 원인
1.2. 여담
1.3. 관련 문서
2. 婚需


1. 昏睡


가장 좁은 의미의 혼수는 coma라는 영어로 번역될 때처럼 가장 심한 의식 장애, 즉 '''살아 있지만 죽은것과 같은 상태'''[1]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가벼운 의식장애에서 가장 심한 의식 장애까지 의식의 변화 모두를 의미한다.
또 착란, confusion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므로 특히 의학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그 의미에 유의하여 정확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영어로는 coma. 의식불명 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건강에 따르면 급성 질환으로 인해 의식 장애가 발생하면 의식은 각성(alert)-기면(drowsy)-혼미(stupor)-반혼수(semicoma)-혼수(coma)의 순서로 장애가 나타나고, 그 역순으로 회복된다고 한다.
다음의 내용은 위 출처를 바탕으로 위의 각 단계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 각성은 정상인이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상태이다.
  • 기면 상태에서는 각성이 감소하므로 소리나 통증 등의 외부 자극이 없으면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또한 주의력의 결핍과 혼돈이 나타나 대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지만 자극을 주면 느리고 적절하게 반응한다. 즉, 심할 정도로 졸리지만 힘겹게나마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 혼미 상태에서는 비교적 강한 통증 자극을 주거나 환자를 지속적으로 심하게 흔들어야 깨울 수 있다. 환자를 깨우면 눈을 뜨기는 하지만 적절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며 자극을 제거하면 곧 수면과 같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즉,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상태를 말하며, 이 다음부터는 수면이라고 볼 수 없는 위독한 상황에 진입한다.
  • 반혼수 상태는 아주 심한 자극을 주어도 깨우기 어렵지만 반사적 움직임을 보인다.
  • 혼수 상태는 자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아주 심하게 자극을 주어도 환자를 깨울 수 없는 상태이다. 자발적인 움직임이 없고 극히 심한 통증 자극을 가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전신마취를 하면 경험(?)할 수 있다.)
보통은 몇 주 이내로 깨어나지만, 11개월 동안 지속된 사례도 있고,@ 심각한 경우 수 년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혼수 상태에 빠져있는 기간이 길 수록 환자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거나 사망할 확률이 상승한다.

1.1. 원인


이러한 혼수 및 의식 혼탁을 일으키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병적인 변화(혹은 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사질환)에 의한 경우, 뇌종양이나 뇌부종 등으로 인해 뇌탈출(뇌헤르니아)이 발생하여 뇌줄기(숨골, 뇌간)가 압박을 받는 경우, 그리고 각성 상태의 유지에 필요한 뇌줄기 및 시상에 발생한 다양한 병적인 변화에 의해 혼수 및 의식 혼탁이 발생할 수 있다.
크게 나누면 뇌병변이 문제가 되는 경우와 뇌병변 외의 원인이 문제가 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으며 뇌병변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혼수로는 당뇨성 혼수, 간성 혼수, 요독증 등이 있다. 뇌병변 외의 원인으로 일어나는 혼수는 '대사성 혼수'라 하며 영어로는 metabolic coma라고 한다.
환자가 혼수에 빠졌을 때 뇌병변으로 인한 혼수 인지, 대사성 혼수인지를 감별하는 것은 당사자인 환자와 의사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치료 방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1.2. 여담


혼수를 영어로 하면 coma인데 coma의 형용사 형은 comatose이며 comatous가 아니다.
필요할 경우 약물을 이용해 환자를 일부러 혼수 상태에 빠트리기도 한다. 주로 고통을 덜어줄 때 사용한다. 멋진 신세계의 코마가 여기서 나왔다.

1.3. 관련 문서


  • 식물인간 - 소생할 가능성 있음, 장기적 생존 가능
  • 뇌사 - 소생 및 장기적 생존 영구히 불가, 기계에 의존하여 단기적인 연명만 가능

2. 婚需


'''타국어 표기'''
'''영어'''
'''Dowry'''
'''독일어'''
'''Mitgift'''
'''러시아어'''
'''приданое'''(쁘리다노예)
'''스페인어'''
Los '''Dote'''
'''프랑스어'''
'''Dot'''
'''터키어'''
'''çeyiz'''(체yㅣ즈)
'''인도네시아어'''
'''mas kawin'''
'''에스페란토'''
'''Doto'''
결혼할 때 들어가는 준비물 또는 자금을 말한다. 이를테면 가구가전제품, 식기, 등.
역사적으로 동서고금 농경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로 산업화 사회에 진입한 곳에서 지금도 오랜 전통을 가진 집안에는 남아있다. 외환위기 이후 집 등 혼수를 장만하다가 빚을 지게 되는 허니문푸어가 생겨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오랫동안 남성을 마련해오고 여성은 살림살이를 장만해온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2010대부터 너무 높은 집값과 청년실업, 양성평등, 결혼에 대한 기피 현상으로 이러한 인식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예비 사위쪽에서 무조건적으로 집을 장만해오라는 틀딱들이 많은게 현실이다.
고대부터 조선 중기까지는 기본적으로 데릴사위제에 가까워,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 기본이었다는 건 틀린 얘기로, 정확히 말하면 딸을 가진 처가댁에서 굳이 부계 승계를 고집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현상으로 변화였을뿐, 고려시대만 되어도 부계 승계가 많이 받아들여졌었다.
과거의 여성의 혼수는 인도지참금과 같은 제도였다. 만일 혼수가 시집식구들의 마음에 차지 않으면 시집살이를 더 가혹하게 시키는 등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을 시집 보낼 때는 우리딸 잘 봐달라며 빚을 내서라도 좋은 것을 주면서도 시가 식구에게 굽신거린 경우가 있었다. 또한 혼수를 마련하지 못해서 시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당시에는 노처녀가 많으면 사회적 골칫거리로 여겼던지라 나라에서 직접 혼수용품을 보조해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여성이 남성의 집에 들어가 살기만하면 되었으므로 남성은 따로 집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현대에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핵가족화가 진행되며 과거 주거지를 제공했던 남자가 자연스레 집을 구하게 되었다. 또한 집값의 폭등으로 인해 오롯이 남성만의 힘으로 집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혼수 대신 집을 함께 구매하는 경우도 있는 등 혼수문화가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핵가족화가 진행된 이후로는 대출을 받아 같이 갚아나가는 형태도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80后바링허우)가 결혼할 때 남성이 신혼집을 마련하고 여성의 집안에 예물을 보내는데, 가난한 집안의 남성들은 돈이 부족해 이조차 못하는 일이 많아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어도 결혼하고 싶은 일부 남성들은 '꼭 집이 있어야만 하냐, 예물을 줘야만 하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신부 집안에서는 '어차피 우리가 챙기는 게 아니라 신혼집에 가구를 들이는 거고, 그 정도 돈도 없어서야 가족을 어떻게 먹여살리려고 결혼을 한다고 하느냐'고 하여 이러한 문화는 아직도 많이 바뀌지 않았다. 바링허우 세대의 부모 세대가 '집 없이는 결혼도 없다'고 확고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에서 집을 싸게 혹은 공짜로 공급받았을때라면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시대가 달라져버렸고, 집값이 한참 비싼 대도시 지역에서도 이러니까 골칫덩어리인것이다.
서양은 결혼을 가족 간의 결합보다 개인의 결합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에 집안에서 보태주는 경우가 잘 없어서 혼수를 여자가 마련해온다는 인식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집이고 뭐고 부모님에게 절대 손 벌리는 경우가 없고 전부 은행 대출로 해결해야 하고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대도시 지역의 집값이나 월세비가 젊은층들에게 하도 비싸다보니 부모가 집값의 일부를 분담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시도때도 없이 주택저당대출을 50대까지 끌고 가는 거 볼 수 있다. 서로 합의해서 알아서 준비하는 경우도 있으나 없다고는 못 한다. 특히 상류층이 그렇다. 아무래도 경제적 사정이 여유로우면 한국의 중산층-빈곤층처럼 결혼준비과정에서 고민하거나 충돌할 일이 없다. (근데 상류층이면 정략결혼에 시달린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혼인 잘못해서 증발해버리면 곤란하니까... 빈곤층은 당연히 자유연애다). 한편 서양은 결혼을 안 하고 동거 형태로 사는 경우도 많아서 상황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신부 가족이 결혼식 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것이 관례인데, 신랑의 아버지가 주례(주로 목사) 비용을 부담하는 것 외에는 모든 준비를 신부측이 한다고 한다.
반대로 인도아프리카 등에선 아예 지참금을 마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1959년 일본 아키히토 황태자에게 시집간 쇼다 미치코는 어마어마한 양의 혼수를 싸들고 갔다. 대형 트럭 몇 대로 실어나를 양이었으며, (당연히)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녀의 친정이 닛신#s-4 제분이라는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재벌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1990년 미치코 황후의 작은아들 아야노미야 후미히토 황자에게 시집 온 가와시마 키코도 혼수깨나 들고 시집왔다. 당시 키코는 가족들과 함께 가쿠슈인 대학 교직원[2]용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혼수품을 보관해 둘 공간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싸들고 시집왔어도, 그녀들은 일본 황실 특유의 매운 시집살이를 면하지 못했다.

[1] 식물인간, 뇌사 등[2] 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가 가쿠슈인 대학 경제학부 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