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참금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


持參金, dowry
결혼할 때, (주로) 여성이 시집갈 때 친정에서 가져가는 돈이나 물건. 전근대에 여성은 유산 상속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딸에게 재산을 미리 증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반대로 남성이 장가를 가면서 여성의 친정에게 돈이나 물건을 줄 때는 '신부값/신부대'(Bride Pric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지참금과 신부대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2. 상세


지참금도 친정의 급에 따라 규모가 천지차이이기 때문에, 장가 한 번 잘 들어서 집안 살림살이가 확 핀 남자들도 많다. 중세 이전에는 왕이 대영주의 상속녀에게 장가들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기도 했다.[1] 대표적인 가문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다.
지참금이 남편과 아내 중 어느 쪽의 소유가 되는지는 문화권마다 다른데, 보통은 부부의 공동 재산으로 본다.[2] 특히 남편과 일찍 사별한 아내들은 시집갈 때 받은 지참금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반면 아직도 남존여비가 남아있는 인도에서는 남편 쪽에서 아내의 친정에 몇 번이고 지참금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때 친정에서 더 이상 그 금액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3] 아내를 살해한 후 주방에서 타죽었다고 신고하고 새로운 아내를 맞이한다.[4] 자세한 것은 주방에서 타죽은 부인 문서로.[5]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서도 지참금 문제로 인해 결혼을 못 했던 여자가 있는데 주인공이자 재벌의 아들인 란초의 친구들 중 하나인 라주의 누나가 그랬다. 라주네 집안은 굉장히 찢어지게 가난해[6] 라주의 누나가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을 못 했다. 물론 라주가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면서부터 가난한 집안을 다시 부유한 집안으로 되살림과 동시에 누나의 지참금을 마련해 결혼할 수 있게 성공하고 더불어 라주 본인도 큰 집을 마련하고 결혼하는 데 성공하지만. 반대로 서민 집안 출신인 파르한은 그래도 괜찮긴 했다. 파르한 본인도 외동아들이라 지참금 문제는 없었다. 어쨌든 이 지참금 문제로 인도 북서부에서는 여아출산을 꺼려하여 여아낙태가 성행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노총각들이 넘쳐나게 된다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물론 상류층이야 약간 낮은 카스트의 여성과 결혼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하층민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초현상이 너무나도 심각해서 빈곤지역에서 신부를 구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워지고 도시화율과 교육수준도 올라가면서 신랑측과 신부측간의 갑을관계가 역전되는 경우도 흔해져서 빈민층일 경우에는 다우리를 푼돈 정도로 내도 별 상관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이것도 계층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서 상대적으로 결혼상대로 많이 선호받는 상류층이나 전문직 남성에게 시집갈려면 갑질을 감수해야되는 경우가 드물지않은것도 여전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슬람권은 남존여비가 강하지만 지참금은 남자 측에서 내며 이혼할 때도 남자가 위자료를 준다.[7] 그리고 그 재산은 원칙적으로는 부부의 공동 재산이 아니라 여자의 독립된 재산이다. 이렇게 규정된 이유는 이슬람 창시 전의 아랍 문화가 너무나도 여성 인권이 시궁창이어서 아내쪽의 최소한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이다[8]. 이 지참금이라는것이 형편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몇년치 봉급'''에 해당될 정도로 고액이기 때문에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인도와 다른 이유로 노총각들이 넘쳐나는 경우가 많다.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같이 부유한 나라에서는 사는 남성들의 경우에는 지참금을 아낄려고 인도, 예멘, 이집트.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자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허다하거나 허다했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노총각들이 넘쳐나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골머리일 정도.
특히 이집트나 이란, 레바논, 모로코, 알제리같이 청년실업률이 높은 나라에 사는 경우에는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는 지참금 마련하는것이 쉽지가 않아서 남성 혼인연령이 크게 늦어질수밖에 없고 자연히 남편과 아내와의 나이차가 많이 나는 편이다. 여자는 20대 초반 정도에 결혼하지만 남자는 30대가 넘어서 결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그렇다. 그래서 인도여성이 아랍권으로 가서 시집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아랍신랑측이나 인도신부측에서나 둘다 금전적으로 이득이다. 즉, 인도인 신부 입장에서는 지참금을 내줘야되는데 오히려 받게되니 이득이었고 아랍인 신랑 입장에서도 지참금을 아낄수있었으니 금전적인 면에서 따진다면 그야말로 원원이라는 것. 물론 이런식의 결혼이 그렇듯이 쌩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는것이다보니 당사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중에 깨진다거나 하는 일들도 허다하기는 한다 반대로 전쟁통이거나 심하게 가난한 나라이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빈민층 여성 친정이 자기 자식을 결혼시킨 다음에 지참금을 받고 생계를 잊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보니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중국도 이런식의 지참금이 있는데 1980년대까지만해도 지참금 문제가 그리 없었지만, 중국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혼수문화 또한 호화로워졌고, 또한 도농격차와 산아제한정책의 여파로 노총각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지참금의 액수가 급속히 불어나서 대도시 지역의 경우에는 지참금의 액수가 한국돈 수천만원에 해당되는 금액을 내줘야하고 상당수의 경우에는 집까지 신랑측 집안이 마련해줘야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다보니 남아를 선호하는 관습의 영향으로 아들을 낳았다가 호되게 당하고나서는 아들을 낳는것을 후회하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을 정도(...)이다.

3. 여담


조선시대 이전에는 한국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현대 한국에는 혼수#s-2라는 형태로 변형이 되었다.

[1] 다만 이 경우는 지참금보다는 아내 쪽을 통한 상속에 가깝다.[2] 예시로 헨리 2세와 결혼한 엘레오노르의 경우 본디 아키텐 지방의 상속녀로서 루이 7세와 결혼했는데 이후 서로 맞지 않아 이혼한 후 다시 결혼한 상대가 헨리 2세다. 그런데 헨리 2세는 이 결혼으로 인해 아키텐 지방을 얻게 되었는데 아키텐 지방의 상속자는 앞서 말했듯 엘레오노르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바뀌니까 바뀐 남편 따라 소속도 바뀐 것[3] 실제로 남편 측의 지참금 요청이 너무 과해 친정이 파산해버리자 남편은 아내를 죽여버리고 "다른 여자랑 혼인해야지~!"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실화도 있을 정도.[4] 원래라면 살인죄니 처벌받아야 하지만 처벌 받을 확률은 낮다. 각주에서 나오듯이 경찰관들이 눈 감고 넘겨주는 사례가 더 많아서.[5] 사실 이는 전통 가부장제에서도 기인하는 바로 과거엔 남자는 무력 + 노동력을 확보했으나 여자는 그게 없으니 지참금(경재력)으로 보완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게 아내들에게 남편들이 (친정의 재산이 다 없어질 때까지) 우려먹기가 가능했기에 악용된 것. 더 문제는 이런 짓을 벌여도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들도 그냥 넘어가주는 부패한 경찰관들이 더 많다고 한다. 이런 사단을 저지르는 대상 중에 경찰관들도 무시 못할 지역 유지들도 있고.[6] 아버지가 전직 우체국장이었고 어머니가 전직 교사인 고스펙 집안이긴 했지만, 아버지가 불치병에 앓게 되어 우체국장을 그만두게 되자 어머니도 교사를 그만두게 되고 결국 돈을 벌지 못해 좆망한 케이스.[7] 단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의 여자가 이혼을 먼저 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케이스이기도 하므로 이혼을 요구하는 남자가 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8] 같은 이유로, 이슬람권 국가들 특유의 일부다처제도 실은 이슬람 창시 이전에는 돈만 있으면 부인을 몇 명이고 무제한으로 두는 것이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등, 아주 막나가는 지경이어서 기존보다 부인의 수를 줄여나가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일부일처제를 지지하여 이를 불쾌하게 여긴 무함마드가, 일부일처제를 장려하고자 부인을 4명까지만 두라고 선을 그어놓은 게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비 이슬람권 국가들 중에는 '''수십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부인을 둔 사람의 사례도 있는 걸 생각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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