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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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2세기 말~3세기 말의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진수의 역사서 정사 삼국지 혹은 나관중의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이 둘은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서로 다른 부분도 많다.[4] 중국의 서기 184년 후한의 쇠퇴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한 군웅할거 시대부터 사마염이 건국한 서진이 중국을 통일한 280년까지 있었던 역사를 다룬 책[5] 으로 이것의 소설판인 삼국지연의는 중국 4대 기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 많으며 21세기인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동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다.
2. 연의와 정사
크게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로 나뉜다. 정사는 말 그대로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이며 연의는 소설이기 때문에 '실제 역사를 토대로 쓴 가상의 이야기'이다. 삼국지연의는 관우와 제갈량이 스타가 된 소설이기도 하며 연의 이후로 더욱 제갈량은 '''지혜의 화신''' 취급을 받고 관우는 '''관왕''' 혹은 '''관제'''라 불리며 무신(武神)이 되어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6] 여기에 다른 오호대장군도 정도는 다르지만 무속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근데 확실히 넘어가야 할 것은 관우가 관제묘로서 신으로 추앙받고 백성들이 유비 등을 추앙하고 제갈량 등을 지혜의 화신으로 섬긴 것은 연의보다 훨씬 이전이었다는 점이다. 추가로 많이 착각하지만 조조는 연의 이전에도 악역이었다.[7] 서주 대학살이나, 병역을 2년에서 평생으로 늘린 둔전제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즉, 연의 이전에도 이미 관우, 제갈량, 조조 등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연의에서는 그러한 평가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상 현대의 '삼국지 컨텐츠'에 관해서, 연의와 정사의 구분은 모호하다고도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실제 역사, 삼국지연의라는 소설, 각지의 민담, 그 후에 여러 창작 작품들에서의 모습이 뒤섞인 이미지인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정사, 연의 식으로 확실시 구분하는 미디어 믹스보다는 둘을 적절하게 섞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2010년 드라마 삼국이나 2017년의 대군사 사마의같이 기존의 삼국지의 주제였던 "영웅들의 천하쟁패"에서 벗어나 한 세력의 내부 분쟁에 집중하는 등 파고파도 계속 소재가 쏟아지는 물건이기도 하다. 가끔 연의와 정사를 헷갈리고 연의의 인물과 사건들을 실제 역사로 알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연의는 소설이다. 물론 완전 허구가 아니라 7실 3허라 할 만큼 역사에 허구를 덧붙인 정도. 그리고 정사 삼국지는 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고 오히려 그들이 죽은 이후 삼국시대가 더 비중이 큰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이는 진수가 삼국시대가 거의 끝날 때쯤 삼국지를 저술했기 때문이다.[8]
사실 역사적 연구보다는 설화와 민담의 발전사를 연구하는 자료로 쓰는 편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다. 특히 정사에서 삼국지평화를 걸쳐 삼국지연의로 변화하는 과정과 당시의 시대상을 본다면. 역사상으론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진 몰라도 민담이나 민중문화의 발전에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란 텍스트는 1800년 동안 민담과 역사서들이 모두 버무려져 만들어진 내용이라 삼국지의 발전 과정을 보려면 민담과 경극 등을 보는 것도 좋다. 캐릭터들의 발전이나 변화를 보는 것도 재밌는데, 일례로 원나라 시기의 연극에서 제갈량은 난세를 종결짓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신선이지만 유비가 황제가 되고 3년밖에 못 산다는 걸 알고 출사를 망설이다가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출사를 결심한다. 이것이 명나라 시기에는 삭제되고 제갈량이 이상을 위해 망설임 없이 출사하는 것으로 바뀐다.
3. 영향력
'''나는 『삼국지』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만큼 수많은 독자들에 의해 의미가 풍부해지고, 이야기가 더욱 다채로워지고, 삶의 의미를 더욱 영원하게 만든 이야기는 없다.'''
유구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며 중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인지도가 높다.[11] 삼국지연의는 중국사대기서 중 하나로 꼽히며 실로 지난 몇 백 년 동안 한반도[12] 를 비롯한 동아시아권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를 놓친 적이 없는 명소설이다.'''삼국지연의는 중국 문학의 4대 고전 소설 중 하나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총 80만개의 단어와 거의 1,000명에 가까운 극적인 캐릭터들(대부분의 역사 인물)을 120장에 담고 있다. 이 소설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 작품들 중 하나이며, 이 지역에서 문학적인 영향력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문학에 대한 그것과 비교되어 왔다. 이 소설은 아마도 후기 제국과 현대 중국에서 가장 널리 읽혀진 역사 소설일 것이다. 허버트 자일스[10]
는 중국인들 스스로 삼국지연의가 그들의 모든 소설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원래 본고장인 중국은 물론이고, 같은 중화권인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 등지에서도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당연히 2차 창작도 매우 활발하여 그동안 연극으로 수없이 많이 상영되었고 만화책이나 소설책 등으로도 수없이 많이 출간이 되었으며 영화, 드라마, 게임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13]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역사물 미디어 믹스라고 봐도 부족할 정도다. 중화권은 아니지만 한자문화권인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에서도 전근대 시기부터 인기를 끌었고 현대에 와서도 소설책이나 만화책으로 수없이 많이 출간된 데다 게임도 활발히 제작되기 때문에 역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매우 높다. 이미 수백 년 전에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는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소설과 민담 등에서 빈번하게 인용되었다. 그래서, 언어의 장벽이 없을 경우 삼국지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있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생판 처음만난 동아시아권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삼국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삼국지의 높은 인지도는 어디까지나 한자문화권의 영향권인 동아시아 국가에 국한하는 것에 비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양권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14] 서양에서는 와패니즈들이 일본 만화, 게임등을 통해 삼국지를 처음 접하기도 한다. 특히 높은 확률로 일본 게임 진삼국무쌍 시리즈와 SD건담 삼국전을 통해 삼국지를 처음 접한 경우가 많다. 삼국지를 읽어본적이 없는 서양인 와패니즈들은 일본 문화 컨텐츠에서 종종 삼국지 관련 비유나 드립이 나올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벙찌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삼국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경우도 있다.[15] 중국어가 싫다는 이유로 등장인물들의 인명을 일본어식으로 읽는 극단적인 와패니즈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대다수의 외부인들한테 냉소적인 반응을 받는다. 일부 무개념 와패니즈들의 악평과 달리 서양의 학자들은 흔히 삼국지연의를 소개할 때 동아시아에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영향력을 끼친 소설이라고 소개한다.[16]
2004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중고, 초등학생 전범위에서 삼국지가 기억에 남는 도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성인 4명 중의 1명은 1년에 1권도 안 읽는 책맹임을 감안했을 때, "책을 읽는 한도 내에선 모든 사람이 거의 다 읽어봤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각종 신문 기사에서 뻑하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인용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언어생활에서 삼국지를 잘 모르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자문화권에 속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때 문법만큼 어려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신문이나 뉴스에서 "박근혜를 둘러싼 십상시", "OOO 감독이 삼고초려 끝에 태극전사의 감독직을 수락했다.", "OOO 정부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인적쇄신의 칼을 빼들었다.", "OO회사가 심각한 적자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다가오는 대선, 여야 대권주자들의 군웅할거", "강원 지자체들이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도원결의를 맺었다" 같은 사자성아나 격언같은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리는데 여기서 십상시, 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군웅할거, 도원결의에 대한 주석이나 보충설명 따위는 아예 없다.[17] 결국,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독자들이 전부 다 삼국지를 읽어봤다는 전제로 신문기사가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그 외에도 정당, 스포츠, 아이돌, 대기업, 음원 차트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3가지가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천하삼분지계라는 표현이 나오고,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선거판에 출마선언을 하면 "OOO 후보가 공개적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야말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 격이다" 등의 관용표현이나 격언은 물론이며, 자주 쓰는 단어들인 계륵, 수어지교, 복룡봉추, 백미(白眉), 읍참마속 등도 삼국지와 관련이 있다. 현대 인터넷에서도 방구석 여포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쿨가이 관우나 마속과 등산 드립 같은 밈이 존재하며, 똑똑한 사람을 두고 제갈량의 이름을 본따 X갈량, 제갈X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았을 때, 삼국지의 영향력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삼국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고 읽어봤기 때문에 배경지식과 내용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18] 2020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진중권을 예형에 빗대어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다만, 워낙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책을 읽는 사람들만 포함하면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이 꽤 많은지는 몰라도 전체를 따지면 내용이 너무나도 길고 방대하기 때문에 다 읽어보지는 못하고 조금씩 겉만 핥아본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삼국지를 책으로 접하지 않고 만화나 영화, 드라마, 게임 같은 기타 창작물로 접한 경우도 많은데, 삼국지를 다루는 만화나 게임 같은 경우도 고증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는 전혀 거리가 멀고 대중적인 부분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대부분이다. 게다가, 정사 삼국지는 국내에서도 제대로 번역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발번역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으니 안 읽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편이 맞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대중매체 속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라서 원전을 읽지 않았어도 등장인물의 이름 정도는 정말 많이 알려진 편이기 때문에 친구 몇 명만 모여 있어도 대화를 걸면 두세 명쯤 30분짜리 대화에 끼워넣을 수도 있다. 이는 근대 이전에는 더욱 보편적이어서, 한국에서도 관왕묘가 지어졌고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인용구로 자주 이용되었다. 고려 초창기에 만들어진 서운사 요오화상비(了悟和尙碑)에서는 태조 왕건이 궁예와 견훤을 타도한 것을 조조가 유비를 격멸한 것에 비유하였다.[19] 임꺽정에 등장하는 서림의 머리가 제갈공명 빰친다든가, 흥부전에 나오는 '비요 비요 장비라' 같은 표현이 있다.
사서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각색하기도 좋다. 관우가 대군 가운데서 일기토로 안량의 목을 따온다든지, 유비가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가는 부분도 그렇고, 유비와 조조의 경우는 실제 역사상으로도 드라마틱한 라이벌리를 보여주었기에[20] 사서를 조금만 뒤지면 멋진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유비와 조조가 대비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어려서는 유비가 좋고, 성장하면 조조가 좋아지고, 나이가 더 들면 다시 유비가 좋아진다"는 말도 돌아다닌다.
사실 삼국지라지만 정작 삼국이 제대로 싸우는 것을 다루는 작품은 없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창작물에서는 여러 군웅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조조가 패권을 쥐자, 이에 대립하는 유비와 제갈량의 분투가 주 스토리 라인. 오나라는 가끔씩 유비나 조조를 뒷치기하거나 훼방 놓는 게 대부분이며, 그나마 삼국지연의에 와서야 오나라가 주요 세력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인기야 말할 것도 없이 최고급이었다.
4. 관련 정보
5. 주요 사건과 전투
- 184년 황건적의 난
- 184 ~ 189년 양주의 난
- 189년 십상시의 난
- 190년 동탁 토벌전
- 192년 계교 전투
- 192년 동군 전투
- 192년 연주 구원전
- 192년 ~ 195년 삼보의 난
- 193년 ~ 194년 서주 대학살
- 198년 여포 토벌전
- 200년 의대조 사건
- 200년 관도대전
- 203년 ~ 207년 하북통일전
- 208년 장판 전투
- 208년 적벽대전
- 208년 제1차 합비 공방전
- 212년 ~ 213년 제1차 유수구 전투
- 218년 ~ 219년 한중 공방전
- 219년 형주 공방전
- 220년 후한 멸망/조위 & 촉한 제국으로 승격. 손오 왕국으로 승격.
- 221년 ~ 222년 이릉대전
- 222년 ~ 225년 조비의 남정
- 228년 ~ 234년 제갈량의 북벌
- 228년 석정 전투
- 242년 ~ 252년 이궁의 변
- 242년 서안평 전투
- 244년 낙곡대전
- 246년 제1차 양맥 전투
- 246년 비류수 전투
- 246년 기리영 전투
- 249년 고평릉 사변
- 252년 동흥 전투
- 259년 제2차 양맥 전투
- 260년 사마소 시군
- 263년 촉한멸망전
- 264년 성도 대학살
- 266 ~ 268년 제1차 교지의 난
- 269 ~ 271년 제2차 교지의 난
- 270년 ~ 279년 독발수기능의 난
- 272년 서릉 전투
- 280년 오멸망전
6. 여담
- 이글루스의 역사밸리를 보면 상당한 수의 역사 관련 포스팅이 삼국지 관련이었다가 다른 소재로도 갑론을박이 잦아지게 되었다.
- 참고로 삼국지의[21] 직전이자 시작과 끝[22] 의 시기로서 이 무렵의 우리나라 역사로부터 등장하는 대표 3국의 통치자들로는 아마 이렇게 추정된다.
- 많이 유명한 작품인 만큼 최근 중국 양산형 게임들이 많이 써 먹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로 "유명한 삼국지 오리지널 캐릭터를 게임에서 직접 만나보세요"를 밀고 있지만 정작 현질을 해야 얻을 수 있는건 함정. 카드가 나오는 형태의 소셜 게임에선 거의 단골메뉴급으로 자주 나온다. 특히 주로 게임 내의 카드 속성이 3가지로 구분되는 경우 그냥 세력별로 나누면 되기 때문에 매우 써먹기 좋기 때문.[23]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온다. 캐릭터 짜느라 머리 깨질 일 없이 이름, 성격, 특기, 외형이 알려진 수백 명의 인물들을 저작권의 문제 없이 활용할 수 있으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리하다. 게다가 캐릭터의 행동이나 스토리를 플레이어에게 제대로 전달시키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삼국지 관련 게임이라면 "제갈공명 몰라? 적벽대전 몰라?"로 간단하게 정리되니. 하지만, 그런 만큼 삼국지 관련 미디어 믹스가 수없이 많이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수준과 질이 낮은 작품도 범람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는 이런 현상이 극심한데 매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삼국지 관련 게임이 쏟아지고 또 망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괜찮은 작품이더라도 워낙 흔한 소재라서 묻히거나 잊히기 쉽다.
7. 관련 문서
[1] 한국과 일본에서는 삼국지연의라고 부른다.[2] 중화권과 베트남에서는 삼국연의라고 부른다.[3] 남녀끼리의 연애를 다룬 Romance가 아니라 중세 서사시의 일종이라는 뜻의 Romance다.[4] 다만 삼국지를 말할 때 흔히 말하는 '정사'에는 정사 삼국지 이외에 삼국시대를 일부 다룬 후한서나 진서 등 몇몇 역사서의 내용을 포함해서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나관중 이후 시대 삼국지연의 판본 오리지널 설정이나 화관색전 등이 포함되기도, 않기도 한다. 심지어는 20세기, 21세기에 창작된 설정이 후대 삼국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 가령 도원결의 에피소드 시작 장면을 "황건적을 물리칠 의병을 구한다는 방문 앞에서 우연히 세 사람이 만났다"고 하면 기존 연의를 따른 것이고 "유비가 차(茶)를 사러 갔다 황건적 마원의를 만나 위기를 겪고 장비 덕에 목숨을 건진 뒤 장비에게 가보인 칼을 줬다가 어머니가 열 받아 차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라고 하면 요시카와 에이지를 따른 본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코에이사의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 시작된 수많은 설정들이 있다.[5] 극소수는 영제의 즉위 때부터 치는 경우도 있다.[6] 관우 신앙은 관우가 죽고 난 뒤 얼마 뒤부터 시작되어 이미 민간에선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관우의 입지가 대단하기에 삼국지연의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최후등이 추가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물론 삼국지연의 후에 우주를 뚫을 기세가 된 것도 맞다. 한국 서울에 있는 동묘가 바로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7] 이는 삼국시대가 끝나고부터 고작 몇십 년 이후의 사람인 석륵이 "장부가 일을 꾸미는 데 있어서는 마음이 호탕해서 일월과 같아야 하오. 짐은 조맹덕 부자나 사마중달 부자처럼 고아나 과부를 속이며 '''간교한 술책'''으로 천하를 빼앗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비꼬고 있다.[8] 삼국시대는 대중적으로는 대단히 유명한 시기지만,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을 기점으로 본다고 해도 100년, 실질적인 삼국시대는 50여 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역사학 연구에서 삼국시대만을 주로 다루는 경우는 별로 없다. 큰 그림에서 후한 말과 위진남북조를 잇는 시대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정도. 이것은 혹자들이 하는 말처럼 무슨 삼국시대가 쩌리시대니 하는 이유라기보다는, 원래 전문적인 역사학에서는 인물 하나, 자잘한 사건 하나하나에 큰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것은 일반 역덕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군담물식 역사관 때문에 생기는 괴리다. 가령 초한쟁패기만 해도 일반인들은 한신이나 장량 소하 같은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지만, 역사 연구에서는 대체로 진한교체기의 역사적 흐름 중 하나로 묶어서 연구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수당교체기나 원말명초 시기만 해도 어디까지나 이 시기를 묶어서 연구할 뿐이지, 두건덕이나 진우량 이런 인물 하나 하나에 크게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9] 추천사 부분 참고[10] 19세기 권위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중국어 교수.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의 관련 인물이기도 하다.[11] 한 예로 흔히 중국사에서 역적의 대명사로 쓰여진 망탁조의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해보자. 역적 4인의 이름자(망 + 탁 + 조 + 의)로 구성된 이 말은 구성원 중 망 1명만 빼고 '''전원 삼국지 주요 등장인물이다.''' 망도 삼국시대의 초반 배경인 동한의 건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이기에 간접적으로 얽힌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12] 삼국지연의는 조선시대부터 베스트셀러였다.출처[13] 삼국지 관련 모바일 게임은 한달에 한번 꼴로 나오는 수준이다.[14] 서양권에서 삼국지랑 맞먹을 만한 작품으로는 아서 왕 전설이나 샤를마뉴의 12기사 등이 있다.[15] 와패니즈들 사이에서는 '''일본인들이 좋아한다는 이상한 중국 소설'''로 통하고 있으며 일본사가 아닌 중국사라서 몰입이 안된다는 등 악평을 하거나 '''"일본인들이 멋진 닌자와 사무라이를 놔두고 중국 소설 나부랭이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삼국지에 혐오감을 내비치는 무개념들도 있다. 토탈워 삼국이 처음 공개되었을때 이런식으로 반발했던 와패니즈들이 많았다.[16] 출처: 1, 2, 3[17] 이들 중 삼국지 내용을 몰라도 한자 만으로 뜻을 알수 있는 말은 군웅할거, 고육지책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는 대충 뜻을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은유적인 의미가 들어간게 사실.[18] 그러나 이 문단의 내용에서 적어도 고사성어와 관련된 부분은 걸러 읽을 필요가 있다. 비단 삼국지가 아니더라도, 현대에 '''고사성어의 출처와 배경을 알고서 고사성어를 인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라. 다만 일개 창작물에서 유래된 단어나 격언이 고사성어처럼 통용된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영향력을 갸늠할 수 있다.[19] "이로써 높은 영(靈)의 위력을 의지하고, 잠시 신용(神用)을 수고롭게 하여 먼저 원흉(元兇)의 악당들을 제거하였으니, 마치 위황(魏皇)인 조조(曹操)가 촉(蜀)나라 유비를 격멸한 것과 같다고 하겠다." 조조의 평가가 높고 유비를 악당에 비유하고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20] 논영회에서 조조가 대놓고 "세상의 영웅은 그대와 나뿐이다"라고 선언했다거나, 유비가 "나와 조조는 상극이다"라고 얘기한다거나[21] 당고의 금/십상시/황건적[22] 아시다시피.[23] 다만 깊게 들어가면 3국 중 하나에 편입시키기 애매한 인물도 엄청 많은데 이런 경우는 주로 여포나 동탁 세력, 혹은 몹(!)으로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