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맥마이클 셰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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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McMichael Shepherd
1949년 7월 26일 태어난 미국의 군인, 우주 비행사. ISS의 초대 사령관이자 네이비 씰 출신으로 기이한 이력을 남긴 인물에 속한다.
테네시 오크리지에서 태어났으나 잠시 체류하던 동네였는지 본인은 고향을 뉴욕의 바빌론으로 여긴다. 애리조나의 피닉스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뒤에 1967년에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971년에 소위로 임관했고 네이비 씰의 흉악하기 짝이 없는 지옥훈련 BUD/S를 수료하여 해군특수전사령부에 들어간다. 1978년에는 MIT에서 기계공학과 해양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에 NASA의 우주 비행사로 뽑힌다. 1986년 그의 네이비씰 근무 경력이 때 아닌 도움이 되는데 챌린저호 폭발 사건으로 구조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전원이 사망했기 때문에 실제론 잔해 수색 작전이 됐지만...[1] STS-27 아틀란티스 미션[2] , STS-41 디스커버리 미션[3] , STS-52 컬럼비아 미션[4] 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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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합동 프로젝트이기도 한 ISS의 최초 장기 상주 프로젝트인 Expedition 1의 사령관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나머지 승무원들은 러시아 출신의 항공 엔지니어 유리 기젠코와 파일럿 세르게이 크리칼료프[5] 로, 소유즈를 타고 ISS에 도킹하여 136일을 체류하고 STS-102 미션에서 Expedition 2팀[6] 과 교대하여 디스커버리를 타고 복귀하였다. 공식 포트레이트는 소유즈 미션으로 시작한 특성상 러시아 우주복을 입고 찍었다.
이후 STS-102로 귀환한 뒤 NASA를 나와 해군 특수전사령부에서 특수 보트의 개발에 참여하다가 2002년 퇴역했다. 최종 계급은 해군 대령.
[1] 이런 심해잠수나 그에 관련된 특기가 있으면 우주비행사로서 활동에 의외로 도움이 꽤 된다. 우주에서의 활동이란 것이 심해에서의 활동과 유사한 면이 꽤 있어서... 때문에 NASA에서는 SEAL 외에도 심해잠수사 출신 우주인도 뽑곤 했다.[2] 이 미션은 펜타곤의 기밀 위성을 궤도에 올렸다. 아직까지 기밀로 유지되고 있는데... 챌린저 사고 이전에 올려야 했던 SDI와 연계된 위성을 뒤늦게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때 아틀란티스는 거의 훗날의 STS-107 컬럼비아급으로 손상이 심했던지라 승무원들은 죽을 각오를 한 채 재돌입에 들어갔다고. [3] ESA와의 합작 프로젝트인 율리시스 태양 극지방 탐사선을 전개하여 목성으로 스윙바이를 보냈다.[4] 이탈리아 우주국과의 합동 미션으로, 지구 연구를 위한 관측 위성과 관련된 미션이었다. 또한 1991년 사망한 스타 트렉의 원작자 진 로덴베리의 화장된 유해를 우주에 가져간 미션이기도 하다.[5] 이 둘은 미르 엑스퍼디션 경력도 갖고 있다. 둘 다 소련/러시아 연방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크리칼료프는 이후 Expediton 11의 사령관이 된다. 크리칼료프는 STS-88 미션에서 미국 측 사령관 로버트 카바나와 함께 사상 최초로 ISS에 입성한 러시아 우주비행사이자, 8회의 EVA와 역대 우주 체류기간 1위인 803일 9시간 39분의 금자탑을 세웠고 은퇴한 뒤에는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사 훈련센터의 소장과 에네르기아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러시아 측에서는 Expedition 1 발표 전에 크리칼료프가 미션 사령관이 되어야 한다고 툴툴대기도 했지만 셰퍼드 역시 노먼 태거드에 이은 역대 두번째 미국인 Cosmonaut라는 점에서 미국이 고집을 부릴만도 했다. [6] 수잔 헴스가 참여한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