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해군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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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United States Naval Academy.
미국의 해군사관학교이다.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Annapolis, Maryland)에 위치한 4년제 연방 교육기관.
홈페이지
2. 상세
5개의 사관학교 (육군, 해군, 공군, 해양, 해안경비)중 두번째로 오래됐으며 미합중국 해군과 미합중국 해병대 장교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다. US News에서 2020년 발표한 National Liberal Arts Colleges 에서 6위 ( https://www.usnews.com/best-colleges/rankings/national-liberal-arts-colleges), Top Public Schools National Liberal Arts Colleges에서 1위에 랭크 되었다. (웨스트포인트는 2위, 미국공군사관학교는 3위). (https://www.usnews.com/best-colleges/rankings/national-liberal-arts-colleges/top-public). 입학자격은 16∼20세의 미혼인 미국시민으로 대통령, 부통령, 상원, 하원 의원의 추천자 그리고 명예 훈장 수여자의 자녀 중에서 체력 테스트와 신체 검사후에 선발한다.[1] 신입생들의 평균 SAT 성적은 1300점 정도, 하지만 상위 75퍼센타일은 1500점이 넘는다. 사관학교 특성상, 현역군인, 예비학교(prep-school), 운동특기, 상이군인 자녀, 다른 일반대학에서 지원등을 감안하면,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입학하는 것은 매우 경쟁이 치열하다. (합격률 8% 미만).[2] 입학생의 70퍼센트 이상이 고등학교 운동부 주장 (캡틴) 출신이다. 4년동안 학문과 군사교육을 이수하며 졸업하면 학사 학위 수여와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非항공, 해병장교는 5년, 회전익기를 조종하는 장교는 8~11년, 고정익기를 조종하는 장교는 6~8년 의무복무하게 된다.
3. 역사
1845년 10월 10일에 창설되었다. 창설의 주체는 해군장관이었던 조지 밴크로프트. 미 육군 기지 포트서번 자리를 인수하여 해군사관학교로 개조하였다. 첫 입학생은 50명이었고 교수는 7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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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해군사관학교.
남북전쟁이 터지자 북부의 연방 정부는 해군사관학교를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였다. 1861년에 로드아일랜드로 이전하였다. 북군 해군의 장교 24%가 사임하고 남군 해군으로 옮기면서 인력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1865년 전쟁이 끝나자 해사는 다시 애너폴리스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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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의 졸업생들.
남북전쟁 이후에 육군의 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들어온 것에 비해 미국 해사는 상당히 백인 중심이었다. 해군의 엘리트적 기질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긴 하다. 일본군도 일본육군사관학교에는 소수나마 조선인이 들어갔지만 일본해군병학교에는 거의 없었고 그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은 일본군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인물들이 주축이 되었다. 미국 해사는 1949년에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론 6번째 입학생이자 첫 번째 졸업생인 웨슬리 앤서니 브라운(Wesley Anthony Brown, 1927-2012)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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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브라운. 1969년 소령(Lieutenant Commander)으로 전역했다. 같은 해사 출신으로 3년 선배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크로스컨트리를 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은 미국의 인종통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4. 생도 생활
미 해병대의 인원도 미국 해사에서 일정 부분 보충된다. 나머지는 OCS와 ROTC로 보충된다.[3]
생도대장(Commandant of Midshipmen)은 원칙적으로 준장이 임명되지만 미 해군이 타군에 비해 장성 티오가 굉장히 적은 편이라 실제로는 제독 진급이 확정되거나 유력한 해군이나 해병 대령이 임명되는게 일반적이다. ISAF 사령관을 지낸 존 앨런 해병대장도 대령~준장 시절 해병대 출신으로서 생도대장을 지낸 사례가 있다. 2017년 현재, Robert B. Chadwick II 미 해군 대령이 제 87대 생도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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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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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을 플립(Plebe)이라 부른다. 임시입교(Plebe Summer) 동안에만 White Works 라고 부르며, 이 시기엔 복장을 수병처럼 입혀 굴린다. 2학년은 흔히 소포모어라 부르는 일반 대학들과 달리 '영스터(Youngster)'라고 부른다. 3학년은 세컨 클래스, 4학년이 퍼스트 클래스(퍼스티, Firstie)라고 불린다. 또한 3학년 이전까지는 자퇴에 있어 학비 반납 의무도 없고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3학년으로 진급할 때 2 for 7 서약을 하는데, 이는 차후 2년간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7년간 의무복무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이후 자퇴시 그 동안의 교육비를 현금으로 해군 측에 반납해야 한다.
육공사와 달리, 해양대 및 해경사와 함께 생도 정복이 현역 장교들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근무복은 검정색 근무복을 입어 카키색 근무복을 입는 장교와 차이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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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Herndon Climb를 보여주고 있다. 1학년들이 헌던 기념비(Herndon Monument) 꼭대기에 놓여져 있는, 임시입교[4] 때 쓰는 수병용 정모 형태의 모자를 떨어뜨리고, 생도들이 쓰는 정모를 대신 올려놓는 행사이다. 이 행사를 통해 1학년들은 1학년의 생활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알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자를 교체하고 난 후에는 "Plebe no more!" 이라고 외친다. 모자를 교체한 사람은 나중에 학교장으로부터 별이 3개 달린 견장을 받는다. 한 가지 재밌는 소문이 있는데, 모자를 교체한 사람은 그 기수중에 가장 빨리 별을 단다고 하나, 그냥 소문이고 아직 실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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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참 때 가는 기지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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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는 미 해사 사관생도들. 흰 자켓은 해군, 검은 자켓은 해병이다.
졸업식의 생도들.
여성 생도의 경우 1975년부터 입학이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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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여성 생도 중 웬디 로렌스(Wendy B. Lawrence, 1959-) 해군 대령(예)은 해사 출신 여성으로서 최초로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5] 웬디 로렌스의 경우 집안 배경이 매우 빵빵하다. 해사에 입학한 후 아버지 윌리엄 로렌스 제독이 해사 교장으로 부임했으며 딸이 졸업/임관하는 흐뭇한 모습을 교장으로서 직접 보기도 했다. 아버지 윌리엄 로렌스도 해군 항공대에서 전투 조종사로 복무[6] 하여 쓰리스타까지 다는 등 무용담이 대단한 인물인데, '''최초로 항공모함에서 발진해 마하2 속력을 돌파한''' 인물이자 중령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격추되어 전쟁포로 생활을 6년이나 하면서 비슷한 시기 포로로 잡힌 제임스 스톡데일 중령(명예 훈장 수훈자이며 훗날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중장까지 오른다)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의 고된 고문과 매질을 견뎌내면서도 포로들의 저항을 주도하고 같이 수용되었던 모든 포로들의 계급과 이름을 기억해서 훗날 미군 베트남전 포로들의 행적을 찾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DDG-110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도 머큐리 계획 당시 최종 리스트에까지 올랐다가 아깝게 떨어지기도 했는데[7] 딸이 아버지의 우주에 대한 꿈을 대신 이뤘다.
웬디 로렌스 외에도 해사 출신 우주비행사가 매우 많다. 일단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앨런 셰퍼드와 아폴로 13호의 사령관이었던 짐 러블이 해사 출신이고, 버락 후세인 오바마 행정부의 찰스 볼든 NASA 국장도 해사를 나와 해병대 항공대에서 복무하며 우주왕복선 파일럿으로 활동한 2성 장군 출신이다. 역대 NASA 우주비행사들을 배출한 대학별로 랭킹을 매기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눈여겨볼 점은 공사가 생기기 전에 해사 졸업 후 공군에서 복무하다 우주비행사가 된 이들도 꽤 있다는 것.
'''마이컬슨-몰리 실험'''의 기념물이다. 이 실험을 했던 앨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Albert A. Michelson)은 해사를 졸업하고 의무복무 이후 전역하여 민간인 과학자로 활동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시 재소집되어 소령까지 올랐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데, 이는 미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 중에는 최초이다.
5. Navy Midshipmen
스포츠팀의 이름은 Navy Midshipmen인데, 육사의 Army Black Knights나 공사의 Air Force Falcons에 비해 이름의 간지는 떨어지는 편(...)[8] 이다.
그래도 사관학교들 간의 라이벌리가 매우 강성인데, 특히 매년 11월 말~12월 초에 열리는 미식축구 게임인 육해전(Army-Navy Game)이 유명하다. 1890년에 웨스트포인트에서 첫 시합을 했고 이 때는 24:0으로 해사가 이겼다. 최근엔 2002년부터 2015년까지 14회 연속으로 이기다 2016~8년 오랜만에(?) 육사 흑기사팀에 3년 연속 깨졌는데, 이것이 역대 육해전 최장 연승 기록이다. 2019년 120회 때 다시 해사가 31:7로 이겼다. 2019년 현재 기록(2019년 120회차 경기까지의 기록)은 해사 61승 52패 7무로 해사가 9승차로 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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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해전은 미 3군 사관학교 대항전 중 가장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미 대학 미식축구 경기이고, 미 육사와 해사는 전국 미식축구 대학팀들 중 강호들로 정평이 나있다. 이때는 양 사관학교 동문들의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들과 양 군 참모총장들까지 배석하여 격려차원에서 열띤 응원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기는 4회전까진 웨스트포인트와 아나폴리스를 교대로 했다가 이후부턴 대부분 타지에서 하는데, 그 중 필라델피아가 89회의 경기를 치러 가장 많은 육해전 유치 기록을 갖고 있다. 그 외엔 뉴욕 11회, 볼티모어와 이스트 러더포드(East Rutherford) 4회, 아나폴리스와 웨스트포인트가 각 3회, 파사데나, 프린스턴, 시카고 각 1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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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F-14 전투기 2대'''에 'Go Navy', 'Beat Army' 라고 적어 붙여놓고 응원비행을 한 적도 있다(...). 위 사진은 그 기체의 도장을 재현한 프라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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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포스터는 1964년 로저 스타우벅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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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 게임.
포스가 대단하다. 운동장엔 육사, 관중석엔 해사 인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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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에 열린 114회 시합에 배석한 조너선 그리너트 당시 해군참모총장과 레이먼드 오디에어노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다.
2014년도 육해전 경기 전, 양 사관학교 선수단이 등장하면서 육사에서는 육군 항공대의 아파치 헬기가, 해사 팀 등장 후엔 해군 항공대가 호넷 전투기의 Fly Over로 기선제압을 시전하는 것이 가히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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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NCAA Division I 남자농구 챔피언십 8강에 올랐던 농구팀 멤버들. 맨 뒤 센터에 50번을 달고있는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로빈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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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역사적인 인물이 배출되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우완 불펜투수 미치 해리스가 그 주인공으로, 2008년 '''졸업'''[9][10] 한 뒤 함정장교로 페르시아만에도 갔다오고 중남미 마약 퇴치 작전도 뛰며 '''5년간 성실히 복무한 뒤 대위로 전역'''하고는 2008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13라운드에서 지명한 뒤[11] 꿋꿋이 기다려준 관조네 마이너리그로 훌훌 떠났다. 마이너리그에서 꼴랑 80mph에 그치던 구속 때문에 온갖 설움을 겪었지만 절치부심하며 구속과 몸상태를 끌어올린 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데뷔'''하였다. 2015년에 데뷔한 뒤 오래 있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한달 이상 빅리그에서 생존하며 나름대로 진기록을 써나가는 중이며, 현충일에는 군생활 때 신었던 전투화를 신고 훈련을 하기도 했다고. 참고로 애너폴리스 출신 빅리거는 역대 1921년 졸업생 니모 게인즈(Nemo Gaines) 외에는 없다. 사실 게인즈 역시 잠깐 허락 받고 휴가 나와서 4경기 등판한 것 뿐임을 감안하면 해리스는... 용자도 이런 용자가 없다(...).
5.1. 전설의 감독
5.1.1. 미식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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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감독 웨인 하딘 (1959~1964 재임. 2017년 작고.) - 오렌지 볼 진출 (1960), 코튼 볼 클래식 진출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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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감독 조지 웰시 (1973~1981 재임. 현재 생존.) - 홀리데이 볼 우승 (1978), 리버티 볼 진출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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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까지 해사 미식축구팀의 해사-육사 라이벌전 14연승을 이어나갔던 켄 니우마타롤로 감독 (2007~ 현재 재임중.) - 텍사스 볼 우승 (2009), 암드 포스 볼 우승 (2013), 포인세티아 볼 우승 (2014), 밀리터리 볼 우승 (2015, 17)
5.1.2.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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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감독 벤 카네베일 (1946~1966 재임. 2008년 작고.) - NCAA 토너먼트 8강 진출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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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감독 폴 에반스 (1980~1986 재임. 현재 생존.) - NCAA 토너먼트 8강 진출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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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감독 돈 디보 (1992~2004 재임. 현재 생존.) - NCAA 토너먼트 3회 진출 (1994, 97, 98)
6. Selection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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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public.navy.mil/surfor/Pages/US-Naval-Academy-Holds-Ship-Selection-for-Class-of-2018.aspx
https://www.youtube.com/watch?v=mxtT_N9vMu4
수상함 장교(surface warfare officers)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해사 버전 신인 드래프트. 장차 수상함 장교가 될 4학년 생도들은 졸업 전 자신들이 장차 복무할 함정을 미리 선택한다. 행사진행은 거의 프로선수 드래프트와 비슷하며, 현역 해군 제독이 사회를 본다. 성적순으로 나와 복무할 함정을 선택하기 때문에, 성적 우수자일수록 진로 선택에 유리하다. 졸업 후 바로 배치되는 건 아니고, 임관한 뒤 함정 병과 소위 신분으로 초군반을 수료한 뒤 선택한 배에 배치된다.
인기의 기준은 그때 그때 조금씩 다르지만, 보편적으론 당연히 커리어를 쌓기 좋으면서 함선의 중심 주둔지가 생활하기에 좋은 지역이고 배 자체도 너무 낡고 오래되지 않은 배들이 인기가 높다.
7. 동문
해군의 역사적인 고위급 장교들 대다수가 해군사관학교 출신인데, 이들 외에도 각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초중급 장교들이 꽤 있다. 특히 NASA에서 우주 비행사를 뽑을 때마다 해사와 해군 출신자들이 공사/공군 출신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쟁하는 편이다.. 2013년 기준으로 역대 NASA 우주비행사를 배출한 대학 통계(NASA 2013년 우주비행사 통계 참조)를 매기면 해사가 압도적(...)으로 많다.[12]
육사 출신으로 엘리트 장교들이 채워지던 공군의 초창기에는 소수지만 해사 졸업생들 중에서도 공군으로 임관한 자원들이 있었는데, 제독들의 반란으로 서로 으르렁대던 시기임을 생각하면 그들의 군생활이 얼마나 험난했을지는... 공군의 전신이 육군 항공대인지라 공사가 생기기 전까지 육사 출신자들이 공군 초창기 장교단을 형성했고, 비행사관후보생(Aviation Cadet) 과정에서도 많은 이들이 배출되었다. 반면 해사 출신은 공사가 없어서 공군 임관이 적극 권장되던 시기에도 제독들의 반란 직후였기 때문에 공군 임관을 께름칙하게 여기는 풍조도 있었다. 게다가 이들이 임관하던 시기의 해군참모총장이 다른 이도 아니고 알레이 버크 제독이었으니(...). 거기에 더해, 해군 항공대의 규모가 크고 고정익기를 대거 보유한 데다 모는 기종들도 공군이랑 큰 차이 없어 육군과 달리 눈치밥 먹으며 공군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 개리 러프헤드 : 1973년 졸업자. 29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 데이비드 로빈슨 :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센터로, 고등학교 때 주에서 한가닥 하는 농구선수였음에도 대학 장학금을 받지 못해 SAT를 쳐서 해사에 들어왔다(...) 6피트 7인치라는 지나치게 큰 신장 때문에 신체검사에서도 간당간당했는데 해사 들어와서도 계속 크는 바람에 7피트의 키로 인해 복무에 부적합하다고 퇴교될 뻔도 했지만 특례로 생도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해사 농구부에서 운동을 계속했는데 기량은 역시 우월했기 때문에 그가 재학 중일 때 해사 농구부는 NCAA 남자농구의 다크호스가 되었으며, 그는 1987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받았다. 교칙상 5년 복무가 원칙이었으나 해군장관이 지나치게 큰 키로 항해 병과에 배치되기 힘든 그의 사정을 인정하여 지상에서 의무복무 2년을 마친 후(복무기간에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출전해서 동메달을 땄다) 1989년부터 자신을 지명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활약하여 첫 시즌 신인왕을 먹었고 두차례 드림팀 멤버로도 활동하여 올림픽 금메달 두개를 땄으며 2003년 은퇴할 때까지 NBA 4대 센터로 군림하여 2009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야말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농구선수. 해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팬들이나 선수들 사이에서 The Admiral(제독)로 불렸다.
-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 로버트 헤레스 : NASA와 별개로 진행되었던 공군의 우주 프로그램 MOL에서 선발된 우주 비행사로, 프로그램이 취소된 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NASA로 전속되지 못하고 공군에서 복무하여 NORAD&우주사령관, 초대 합참차장까지 지냈다. 해사 졸업 후 공군으로 임관해서 4성 장군을 달았던 단 4명의 용자에 속한다.[13]
- 로저 스타우벅 : 농구에 데이비드 로빈슨이 있다면 풋볼엔 스타우벅이 있다고 할 수 있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레전드 미식축구 선수.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고 1964년 임관하여 1968년까지 복무한 뒤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입단했다.
- 리사 노왁
- 리처드 매크
- 리처드 리 아미티지
- 마이크 멀린 : 합참의장을 지냈다.
- 미셸 하워드 : 최초의 여군 4성제독이다.
- 브루스 매캔들리스
- 세실 헤이니
- 알레이 버크
- 앨런 베이커 : 해사를 졸업하고 수상함 장교로 복무하다 종교에 귀의하더니 미국 개혁교회 목사가 되어 군목으로 복무하며 해병대 군종실장[14] 까지 올라간 전무후무한 커리어의 소유자.
- 앨런 셰퍼드 :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자 달에도 갔던 그 앨런 셰퍼드다. 중령 계급으로 우주 탄도비행을 갔다왔으며, 돌아온 뒤 귓병을 앓아서 행정직으로 밀렸다가 수술을 받고 복귀하여 아폴로 14호를 타고 달에 가서 골프(...)도 치는 등 활약을 했다. 달에 갔다와서 제독으로 진급하여 이후 소장으로 전역했다. 우주인 명예 훈장 수훈자.
- 어니스트 에반스 : 최종계급 중령. 명예 훈장 사후 추서.
- 어니스트 킹
- 에릭 올슨 : 1973년 졸업생. 해군 출신으론 처음으로 SOCOM사령관을 지냈다.
- 엘모 줌왈트
- 웬디 로렌스
- 윌리엄 로렌스
- 윌리엄 리히: 1897년 졸업생. 해군원수를 지냈다. 아들은 윌리엄 해링턴 이름을 땄다.] 리히도 해사 1927년 졸업자로 해군소장을 지냈다.
- 윌리엄 맥마이클 셰퍼드 : 최종계급 대령. 네이비 씰 출신의 NASA 미션 스페셜리스트 우주인으로서 ISS Expedition 1[15] 의 선장을 지낸 우주인 명예 훈장 수훈자. 우주비행사들 중 보기드문 네이비 씰 출신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챌린저호 폭발사건 당시 잔해 수색작업에 참여한 기록으로 역사에 남았다.
- 윌리엄 앤더스 : 아폴로 8호의 멤버로서 짐 러블, 프랭크 보먼(육사 출신 공군 파일럿)과 함께 인류 최초로 달 궤도 비행을 하고 돌아왔다. 졸업 후 해군이 아닌 공군으로 임관해서 공군소장까지 진급했다.
- 윌리엄 홀시
- 제리 리넨저
- 제임스 서덜랜드
- 제임스 스톡데일
- 제임스 웹
- 조너선 그리너트
- 존 리처드슨
- 존 매케인 1~4세 : 오늘날에는 대통령 후보를 지낸 존 매케인이 제일 유명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 아들까지 4대가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해군 가문이다. 그것도 그냥 해사 출신이라는 게 아니라 부자가 각각 포스타까지 달았던 먼치킨들(...)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은 1958년 졸업생으로 최종계급은 대령이고, 2009년 졸업하고 임관한 존 매케인 4세는 선조들의 이름이 워낙 막강하기에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대외적으로는 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 존 앨런: 1976년 졸업자. 미 해병대로 들어가 ISAF 사령관을 지냈다.
- 지미 카터 : 최종계급 대위. 해사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었다.[16]
- 짐 러블 : 최종계급 대령. 아폴로 8호의 사령선 조종사였으며 아폴로 13호의 선장을 맡기도 한 그 인물로, 우주인 명예 훈장을 받았다.
- 찰스 볼든 : 해병대 항공대 출신의 우주 비행사. 소장으로 퇴역했으며 2009년에 NASA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 체스터 니미츠
- 토머스 스태퍼드 : 아폴로 10호 선장,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아폴로 우주선 선장으로 활동한 우주비행사. 미군 역사상 장성 계급을 달고 우주에 올라간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공군으로 임관하였는데, 1952년 졸업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별을 다는등 중장까지 가장 빠른 진급을 했다.
- 프랭크 플레처 : 동명이인인 삼촌/조카 모두가 해사 출신으로 제독까지 지냈다. 게다가 둘 다 명예 훈장까지 받은 능력자.
- 피터 페이스 : 미합중국 해병대 출신 최초의 합참의장.
- 하이먼 리코버
- 해리 해리스: 1978년 졸업생. 일본계 미국인으로 첫 4성제독에 오른 인물.
7.1. 가상의 동문
- 용호의 권 시리즈 - 존 크로리: 임관 후 파일럿 훈련을 받고 파일럿으로 근무했다.
- 톰 클랜시 작품 - 잭 라이언: 양덕들은 1972년 졸업자로 추정한다.
- 스플린터 셀 시리즈 - 샘 피셔. 임관 후 DEVGRU에서 복무했다.
- 70 - 한석규: 2005년에 소위로 임관, DEVGRU에서 복무 도중 한미 장교 교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 근무했다고 나온다.
- 마션 - 멀리사 루이스
- 블랙 팬서 - 에릭 킬몽거(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19세에 졸업 후, 대학원은 MIT를 졸업, 네이비 씰에 입대한 뒤 JSOC에 소속되어 공작 임무를 수행했다.
8. 기타
2006년 제작된 제임스 프랭코 주연의 영화 아나폴리스가 해군사관학교의 이야기...를 다뤘다기엔 무늬만 해사 영화지 사실상 복싱 영화라서 이도저도 아니라는 혹평을 듣고 잊혀졌다.
미 해병대에서 의외로 힘을 잘 못 쓴다. 미 해병대는 학군들이 강세이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해병대사령관이 해군사관학교 출신임을 감안하면 의외인 점.[17] 미 육군, 미 해군, 미 공군에서 학군은 한국보다는 비율이 높지만 그래도 사관학교보다는 소수파인데 미 해병대에서만은 반대가 된다. 그나마 해병대 출신으로서 합참의장까지 지낸 피터 페이스 장군이 해사 출신이긴 하다.
2002년 해사 졸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국내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위대한 지도자를 향하여(In the Shadow of Greatness)>라는 제목의 책인데, 배형수 예비역 해군준장이 번역한 퀄리티가 좀 많이 아햏햏해서 읽다가 경악하는 수가 있다. 그래도 해사에서의 생활과 임관 후 초급장교로서의 이야기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원문과 비교&대조해서 읽는 등의 방식으로 읽어볼 가치는 있다. 중요한 문서 잘못 세절해서 까일까봐 똥줄태우다가 솔직하게 보고했다는 상대적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해상에서의 검문 검색, F-14 최후의 여성 조종사, 아프간에 떨어져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해군[18]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다만 진주만 공습 이후 첫 졸업기수인 1942년 기수[19] 와 자신들을 비교[20] 하며 조국에의 헌신 같은 이야기를 하는등 미국만세 분위기가 짙긴 하다.
[1] 해안경비 사관학교를 제외한 4개의 사관학교(육군, 해군, 공군, 해양)가 동일[2] https://www.usnews.com/best-colleges/united-states-naval-academy-2101[3] 우리나라 역시 해병대 장교를 해사에서 보충하며 한 기수에 20명 정도다.[4] 가입교 순화[5] 로렌스 외에는 리사 노왁, 수니타 윌리엄스, 그리고 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 시대를 대비하여 2013년 선발된 니콜 만(Nicole Mann, 해병대 출신)이 있다. 정작 여군의 비율이 더 높다는 공사에서는 여성은 수잔 헴스만이 배출되었다.[6] 웬디는 헬리콥터 조종사로 복무했는데, 여성은 90년대 초반 테일후크 스캔들 전후로까지 전투기 전방석에 배치되지 못하고 후방석 관제사나 헬리콥터 같은 지원용 기종만이 가능했다. 대한민국보다 이르긴 하지만 천조국도 여군 차별의식에 쩔어있던 시대를 막 헤어나오는 중이다. 지금도 심심하면 동성간 이성간 성폭력 스캔들 터지는게 미군의 실태.[7] 당시 각 군별로 라이벌 의식이 강했던 편이라 3군별로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암묵의 룰이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머큐리 세븐은 적절(...)하게도 해병대 출신 존 글렌, 공군 출신 거스 그리섬, 고든 쿠퍼, 디크 슬레이튼, 해군 출신 앨런 셰퍼드, 월리 시라, 스콧 카펜터로 비율이 꽤 그럴듯 했다.[8] 로고 역시 육사가 간지 탑이다. 휘날리는 망토를 두르고 한손에는 검을 든 흑기사가 그려진 육사의 로고에 비해 해사는 듣보잡 산양(...).[9] 보통 미국 프로 스포츠의 대학 선수들은 '대졸'은 별로 없고 대학 재학 중에 지명받으면 계약금 합의에 이를 경우 그냥 대학에서 자퇴하고 프로에 입문한다. 그래서 웨스트포인트나 애너폴리스 출신으로 기록된 여러 프로 선수들도 사실 졸업이 아니라 중퇴하고 프로에 입문한 경우가 많다. 해리스의 경우는 3학년에서 4학년 올라가던 2007년 여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었지만 2학년 마친 뒤로 "2년 추가 재학 / 5년 의무 복무" 서약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0] 미치 해리스가 데뷔할 무렵 NCAA 디비전 1의 탈삼진 선두가 해군사관학교 3학년 좌완투수인 루크 길링엄이었는데, 구속은 좀 딸려도 스카우트들이 눈이 휘둥그래질 절륜한 성적을 찍었음에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주요 유망주 논의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미 복무 서약을 마친 3학년을 억지로 퇴교시킬 수는 없음을 스카우트들도 알기 때문이다. [11] 이 해 카디널스는 2라운드에서 랜스 린을 지명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남들처럼 3학년 마치고 24라운드에서 지명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했더라면 제이슨 헤이워드, 프레디 프리먼, 크레이그 킴브럴 등과 함께 애틀랜타의 중추로 성장했을지도 모르는 일. [12] 통계가 학부/대학원 졸업자를 대학별로 각각 집계한 것이라 우주비행사들 대부분은 여러 학교에 중복으로 집계되지만, 해사는 학부 졸업생만으로 53명이나 배출했다. 뒤로는 마찬가지로 학부만 있는 미국공군사관학교가 37명, MIT가 36명, 해군대학원(Naval Postgraduate School)이 35명, 스탠퍼드 대학교, 퍼듀 대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가 20명 내외.[13] Lawrence A. Skantze, 헤레스, Monroe W. Hatch Jr., James B. Davis 넷 뿐이다.[14] 해군 군종병과는 해군 군종센터장이 소장으로 최선임이고 해병대 군종실장이 준장으로 2인자이며 해군 군종센터장으로 올라가는 주요 진급코스에 속한다.[15] ISS 장기 체류 프로그램.[16] 육사 출신은 율리시스 S. 그랜트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있다.[17] 미국의 경우 해군ROTC에서 해병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해병대ROTC가 있는 한국해양대, 제주대 외에는 해병대로 임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 의무 직별처럼 해병대에 붙어다니거나 지상비행장에 온 해군 조종사, 네이비 씰 같은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각종 이유로 해군 인원들도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많이 돌아다니며 적잖은 사상자를 냈다. 책 내용에 의하면 이런 해군을 아프간에서 본 육군 중사가 "길 잃으셨나봐요? 바다는 꽤 멀텐데ㅋㅋ"하며 농을 던진다(...)[19] 해당 기수의 네임드로는 엘모 줌왈트가 있다. 다만 줌왈트는 당시 국가 전체가 전시체제라서 1년 조기 임관. [20] 2002년 기수는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며 임관한 첫 기수이다. 테러 소식이 전해진 사관학교에서 충격과 공포에 빠진 생도들의 모습도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