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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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Miller'''
1782. 2. 15. ~ 1849. 12. 20.
윌리엄 밀러는 미국침례회 설교자였다.
그는 1782년 메사추세츠의 침례교 가정의 16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부터 식견이 넓고 독서에 조예가 깊던 밀러는 볼테르, 토머스 페인 등의 이신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미영전쟁이 발발해 군대에 입대하고, 플래츠버그 전투 등에 참가하며 육군 대위 까지 경험한 그는, 전쟁에서의 극적인 경험들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허면서 그의 이신론적 믿음도 흔들리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과부가 된 어머니에게 돌아가게 되면서 그는 어머니를 위해 외삼촌이 목회하고있던 침례교회에 출석하게된다. 그곳에서 장로의 부탁으로 이사야서 53장을 주제로 한 설교문을 낭독하던 중, 그는 겉잡을 수 없는 감동을 체험하게 되면서 그는 신실한 신도가 된다.
그러나 본래 이신론자였던 그는 이신론자 친구들에게 믿음을 시험받았고, 이에 그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성경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는 2년간의 연구 끝에 다니엘서 8장에 적힌 예언[1]을 토대로 1843년이나 1844년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라 이러한 성경 연구결과를 냈음에도 연구가 끝난 1818년 부터 13년 동안이나 침묵했었다. 결국 그는 1831년 기도를 통해 재림운동에 대한 마음을 굳혔으며, 본격적으로 재림운동을 시작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교파를 막론하고 밀러를 추종했다. 이들을 밀러주의자(Millerites)라 부른다.
이후 날짜를 확정하던 과정에서 예수의 재림날짜를 1844년 10월 22일로 확정하였으나, 알다시피 그 날, 예수의 재림은 없었다. 이러한 예수재림에 대한 추종자들의 실망을 “1844년 대실망 사건(Great Disappointment)“이라 부른다. 다만 이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안식교가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예수재림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했으며, 5년 후 로 햄프턴에서 눈을 감았다.

[1] 다니엘서 8:14; 먼저 말한 거룩한 이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저녁과 아침이 이천삼백 번 바뀔 때까지입니다. 그제야 성소가 복구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