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톨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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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초기 행적
3. 라이베리아 대통령
4. 새뮤얼 케니언 도의 쿠데타와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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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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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와 톨버트
윌리엄 리처드 톨버트 주니어(영어: William Richard Tolbert Jr, 1913년 5월 13일 ~ 1980년 4월 12일)는 라이베리아의 20대 대통령으로 1971년 ~ 1980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다.

2. 초기 행적


라이베리아 몬체라도 주 출생으로 1879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부터 이주된 해방 노예의 자손으로 톨버트 일족은 라이베리아에 이주된 가장 큰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 일족 중 하나였다. 초등, 고등 교육을 받고 1934년 라이베리아 대학교에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빅토리아 A. 데이비드와 결혼했다.

3. 라이베리아 대통령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해 라이베리아 유일의 합법 정당이던 진실 휘그당에 들어가 1951년 윌리엄 V. S. 터브먼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에 임명되고 1955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5년에는 침례교 목사로 아프리카에서는 최초로 세례 세계 얼라이언스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971년 터브먼 대통령의 사망후에 대통령직을 계승했다.

4. 새뮤얼 케니언 도의 쿠데타와 피살


1980년 3월 톨버트는 PPP의 가브리엘 바커스 매튜스를 반역 혐의로 체포하고 PPP를 해산시켰다. 이에 4월 12일 새뮤얼 케니언 도와 17명의 라이베리아군 상사가 이끄는 쿠데타가 발생해 대통령궁을 폭격했고 톨버트는 그의 지지자 26명과 함께 살해되어 무덤에 묻혔으며 성난 군중들이 시체에 돌을 던지고 모욕하기도 했다. 10일 뒤인 4월 22일에는 외무부 장관 찰스 세실 데니스 등 톨버트 내각원 13명이 몬로비아의 바클리 트레이닝 센터 근처의 해변에서 공개적으로 총살당했는데 이중 4명만이 살아남았고 그중 재무부 장관 엘런 존슨 설리프는 훗날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의 정치적 지배 133년이 끝나고 새뮤얼 케니언 도는 민족 수복 위원회라 불리는 군부 통치를 수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