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과

 


[image]
油果/油菓
1. 개요
2. 설명
3. 제조 방법
4. 역사 속의 유과


1. 개요


한과의 종류. '과줄', '꿩과자', '산자'라고도 불린다.

2. 설명


멥쌀과 술로 찰떡을 쳐서 빚은 것을 한 입 크기로 만들고 여러 날 동안 꼬박 말린 다음, 기름에다 튀기고 그 위에 조청을 입히고 겉을 깨 등의 견과류나 고물, 쌀튀밥 등에 굴려 마무리한 과자. 현대의 스낵이나 팝콘 종류와 비슷한 원리의 과자로 튀기면서 부피가 늘어난다. 덕분에 팝콘이나 뻥튀기처럼 속이 텅 비어있는 데다 가벼운 과자 부분의 식감이 특징이다.[1]
본래는 레시피가 복잡한 데다가 비싼 고급 한과였다. 지금처럼 싸구려 물엿이 아니라 귀한 조청을 입혀서 텅 빈 속을 달콤한 맛으로 채우는 과자였다. 과거의 기술(고려왕조 이상)로는 유과처럼 속이 텅 빈 가벼운 맛과 질감을 내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어려운 조건들을 맞추기 위한 조리 과정들을 고려한 끝에 만들어내야 했다. 이런 정성과 재료들이 들어갔으므로, 유밀과 다음으로 최상급으로 여겨진 한과였다.
'''하지만''' 요새는 싸구려 시장의 복제품으로 대체된 음식이다. 본래는 달달한 고물과 바삭하고 텅 빈 껍질을 아삭아삭 씹었을 때, 캐러멜화되어 있던 조청이 입 안에서 녹으며 부서진 껍질들과 어우러지는 고급스런 맛이었다. 하지만 이런 맛의 유과를 먹어본 사람은 '''매우 적을 것이다'''. 속이 빈 한과를 대량생산할 기술이 보급되자, 전통시장의 공장화 과정에서 대량생산품이 원본의 이미지를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뻥튀기에 물엿과 색깔을 입힌 과자''''라는 혹평이 나올 정도로 초저가 음식이 되었다. 현재의 유과를 뻥튀기에 비유하는 것은 단순한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싸구려 쌀강정이나 뻥튀기를 튀기던 공장들이 대량생산에 동참하거나, 전통시장에서도 뻥튀기보다 한 단계 위의 입가심 과자 정도로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는 어떤 과자였는지 기억하는 사람들도 점점 사라지는 실정이다.
극히 일부의 제대로 만드는 유과는 오늘날에도 제법 비싸다. 어떻게 보면 이 음식의 과자 부분은 맛의 보조 역할일 뿐, 캐러멜화 된 조청이 부서진 껍질과 고물과 함께 씹히고 녹을 때마다 각각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맛의 변곡(變曲)을 즐기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2] 그런데 비싼 조청을 입혀내고 또 팔릴 때까지 조청의 끈기를 유지하는 기술이 어렵고, 이런 조청의 맛을 껍질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하는 것 자체가 공장 생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유과를 만들어서 판매를 하는 사람들한테도 '유과 같은 싸구려 과자를 왜 이렇게 비싸게 팔아먹냐?'라고 사기꾼 취급하는 고객들이 생길 정도로, 그냥 뻥튀기의 상위호환 과자로서 정착하는 중이다.

3. 제조 방법


본래의 유과를 만드는 과정은 번거로움 그 자체이다. 쌀을 엿기름으로 삭히고 졸여 조청을 만드는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유과가 될 찰떡을 말리는 과정에서 습도가 너무 건조하면 갈라지고 단단해져서 못 쓰고, 너무 습하면 마르지 않고 곰팡이가 스는 등 자연 조건도 맞아야 한다. 튀길 때도, 집청할 때도 신경 써야 할 과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드는 방법은 찹쌀을 물에 10일 정도 담궈서 골마지가 낄 때까지 삭힌 후(손으로 만지면 부스러질 때까지) 쪄서 떡메로 친 다음 반죽을 늘여 적당한 모양으로 만든 다음 말린다. 여기까지 만든 것을 '바탕'이라고 한다. 그 다음 기름솥을 2개 준비하여 하나는 100, 다른 하나는 160 정도로 예열한 다음, 바탕을 온도가 낮은 기름솥에 담갔다가 어느 정도 부풀면 높은 기름솥에 넣는다 이 때 갑자기 부푸므로 모양을 잘 잡아줘야 한다. 튀겨진 강정은 조청에 담갔다가 튀밥이나 깨고물을 묻혀 완성! 주의할 점은 삭힌 찹쌀을 쪄서 떡메를 치기 전에 콩물과 술을 넣지 않거나, 처음 찹쌀을 물에 담가 삭히는 과정을 소홀히 하면 튀길 때 말린 바탕이 잘 부풀지 않는다고 한다.
조청이 아닌 물엿을 넣은 것은 건조되면 너무 딱딱해진다. 쌀튀밥 고물도 눅눅하고 조청이나 물엿은 있는지 없는지 과자처럼 부스러기가 풀풀 날린다.
유과의 아이덴티티는 겉은 부드럽게 바삭하고 씹으면 조청이 스며드는 캐러멜 같은 쫀득함이건만 이런 유과는 요즘 일반 시장이나 마트, 백화점에서도 보기 어렵다. 그나마 시골 읍내에 소규모 유과 공장에 가면 어지간히 보관을 잘못하지 않는 한 딱딱하게 굳지 않는 나름 제대로 된 놈들을 찾을 수 있다.
경남 함양의 개평마을에선 이 유과를 기름 없이 구워낸다. 강가에서 고운 자갈을 채취해서 자갈을 가열한 뒤 자갈에 유과를 넣어 익히면 마치 기름에 튀긴 것처럼 고르게 익힐 수 있다고 한다[3]. 옛날 기름이 귀한 시절 기름 없이 과자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전통이라고 한다.

4. 역사 속의 유과


박문수가 안성에서 어머니가 싸준 찹쌀유과로 나한전에 봉양을 드린 후 장원급제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이곳의 칠장사는 수능 때가 되면 북적인다고 한다.
맛상무가 설특집으로 유과를 제대로 된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다만 말린 떡을 미리 준비한 상태에서 만들었다.
[1] 단, 비싼 유과는 내부가 비어있지 않다. 과자 속이 부스스한 실밥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쫀득쫀득한 조청과 함께 과자 부분을 씹을 때 머릿 속까지 '스스슥' 하고 씹는 소리가 울릴 정도이다. 여담이지만, 서양인들은 이런 식감을 싫어하는지라 오히려 속이 텅 빈 싸구려 유과를 더 좋아했다는 경험담이 있다고 한다.[2] 차(茶) 문화가 발달한 고려 왕조부터 전해지는 음식이라는 점도 이러한 복잡한 맛의 추구에 한 몫 했다. 씹을 때마다 맛을 느낄 정도로 섬세한 과자는 커피보다는 담담한 맛을 가진, 차여야 어울린다. 현대 한국에서는 차 문화가 거의 실종되었으므로, 대량생산을 하는 공장에선 그 의미를 더욱 살리기 힘든 과자인 셈이다.[3] 이는 현대 과자 제조 공정에 자주 사용되는 파칭 공법과 매우 비슷하다. 파칭에서는 소금이나 석회석을 열 전달 매개체로 한다는 것이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