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전한)
1. 개요
진나라 말기와 초한쟁패기의 인물로 유태공의 둘째 아들이자 유백의 동생이며, 유방, 유교의 형이다.
이름은 백중숙계에서 따온 유중(劉仲)이며 희(喜)라는 이름도 있다.
2. 생애
유방에 따르면 유태공이 유방은 유중처럼 노력하지 않는다고 꾸중한적도 있다고 하니, 난세가 오기 전에는 양아치(...)였던 동생 유방보다는 성실히 가장 노릇을 한 모양.
초한쟁패기 당시 활약상은 불분명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유방은 그를 대나라의 왕으로 임명했다. 단 임명된 시기는 애매한 것이 사기의 오왕비열전과 고조본기에 따르면 유방이 백등산 전투에서 흉노에게 깨진 후 귀환하는 길인 고제 7년(기원전 200년)에 그를 대나라 왕으로 삼았다. 하지만 고조공신후자연표와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를 따르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후 고제 6년(기원전 201년)에 왕으로 삼았다.
전자가 맏다면 유방 딴에는 둘째 형의 능력을 믿어서 흉노와의 전선인 대나라를 맡긴 것이며, 후자에 따르면 통일 후 나름대로 포상을 해준 것인데 무엇이 옳은지는 불분명. 단, 그가 흉노에게 패하는 등 썩 좋은 군재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에 후자가 옳을 가능성이 크다.
왕이 됐지만 흉노와의 싸움에서 크게 지고 달아나는 추태(...)를 보였고[1] 낙양으로 달아났다.
다행히 동생이 황제인 덕에(...) 목숨은 건졌으며 합양후(郃陽侯)로 강등만 당했다.
그 후에는 조용히 살아간 듯 하며 혜제 2년(기원전 193년)에 사망했다. 오왕이며 오초칠국의 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유비가 그의 아들이다.
시호는 대경왕(代頃王).
[1] 사기에 따르면 고제 8년(기원전 199년)이며 한서에 따르면 고제 7년(기원전 2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