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공신후자연표
高祖功臣侯者年表 第六
중국 전한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표(表)에 나오는 10개의 '''연표''' 중 여섯 번째.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쟁패할 때 도운 '''143명'''이 후로 봉해지고, 봉국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사항을 기록한 연표다. 여러 봉지의 명칭를 국명(國名)으로 표시하고 수봉된 자들의 주요 공훈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해당 제후가 재위한 기간을 숫자로 표시해 두었다. 후제(侯第)라고 하여 제후들의 등급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제후들의 봉국은 숫자가 엄청나긴 하지만 대부분은 후대로 가면서 죄를 짓거나 대가 끊어져 후국이 폐지되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오초칠국의 난을 거치며 중국이 군현제도를 확립하면서 사라지게 된 것. 이는 황제들이 여후의 천하를 용인했던 신하들에게 보복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부분에서 원죄가 없는 건 육가 한명 뿐이다. 하지만 공신들의 추대로 제위에 오르면서도 여후의 죽음을 기뻐하긴 커녕 역으로 공신들을 두려워한 한문제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여후치세의 보복보단 황제조차 멋대로 갈아끼우는 공신들의 힘이 위험했기에 숙청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한무제의 시기에 이르면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기에, 아무래도 과거의 개국 공신들의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던 점도 있다. 어지간한 시대라면 개국공신들은 최고의 영웅이지만 이미 그 당시에 곽거병이나 위청 같은 인물들이 날뛰고 있었던 판이니……
사마천은 이런 후국들이 멸망해 버린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는데, 첫 번째는 최고 통치자의 주도면밀하지 못한 법 체제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 자신 역시 행동을 똑바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확실한 죄명도 없이 봉작을 박탈당한 제후들에게 동정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사마천이 봉분제에 가진 나름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을 확인하려면 사기의 표를 봐야 하는데, 국내에서 사기의 표를 번역한 판본은 김원중 판과 정범진 판, 신동준 판이 있다. 이 중에서 김원중, 신동준 판은 표 전체를 번역했으며, 정범진 판은 표의 서문만 번역했다. 김원중 스스로 말하기를 '표'를 번역하는 작업이 사기 번역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 한다. '표' 가 단순한 연표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본기에는 기록된 일이 표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던가, 거꾸로 본기나 열전에서는 언급이 없는 일이 표에서는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서로 대조하며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서》의 제16권 고혜고후문공신표는 고제 · 혜제 · 여태후 · 문제 시대에 후로 봉해진 사람들을 다루는데, 대부분 고제의 공신들이라 결국은 이 표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며, 상충하거나 상보적인 부분도 있어 같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한서는 황실은 왕자후표, 외척은 외척은택후표에 기술했기 때문에 고혜고후문공신표 말고 그쪽에서 겹치는 쪽도 좀 있다.
1. 개요
중국 전한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표(表)에 나오는 10개의 '''연표''' 중 여섯 번째.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쟁패할 때 도운 '''143명'''이 후로 봉해지고, 봉국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사항을 기록한 연표다. 여러 봉지의 명칭를 국명(國名)으로 표시하고 수봉된 자들의 주요 공훈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해당 제후가 재위한 기간을 숫자로 표시해 두었다. 후제(侯第)라고 하여 제후들의 등급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제후들의 봉국은 숫자가 엄청나긴 하지만 대부분은 후대로 가면서 죄를 짓거나 대가 끊어져 후국이 폐지되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오초칠국의 난을 거치며 중국이 군현제도를 확립하면서 사라지게 된 것. 이는 황제들이 여후의 천하를 용인했던 신하들에게 보복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부분에서 원죄가 없는 건 육가 한명 뿐이다. 하지만 공신들의 추대로 제위에 오르면서도 여후의 죽음을 기뻐하긴 커녕 역으로 공신들을 두려워한 한문제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여후치세의 보복보단 황제조차 멋대로 갈아끼우는 공신들의 힘이 위험했기에 숙청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한무제의 시기에 이르면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기에, 아무래도 과거의 개국 공신들의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던 점도 있다. 어지간한 시대라면 개국공신들은 최고의 영웅이지만 이미 그 당시에 곽거병이나 위청 같은 인물들이 날뛰고 있었던 판이니……
사마천은 이런 후국들이 멸망해 버린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는데, 첫 번째는 최고 통치자의 주도면밀하지 못한 법 체제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 자신 역시 행동을 똑바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확실한 죄명도 없이 봉작을 박탈당한 제후들에게 동정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사마천이 봉분제에 가진 나름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을 확인하려면 사기의 표를 봐야 하는데, 국내에서 사기의 표를 번역한 판본은 김원중 판과 정범진 판, 신동준 판이 있다. 이 중에서 김원중, 신동준 판은 표 전체를 번역했으며, 정범진 판은 표의 서문만 번역했다. 김원중 스스로 말하기를 '표'를 번역하는 작업이 사기 번역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 한다. '표' 가 단순한 연표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본기에는 기록된 일이 표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던가, 거꾸로 본기나 열전에서는 언급이 없는 일이 표에서는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서로 대조하며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서》의 제16권 고혜고후문공신표는 고제 · 혜제 · 여태후 · 문제 시대에 후로 봉해진 사람들을 다루는데, 대부분 고제의 공신들이라 결국은 이 표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며, 상충하거나 상보적인 부분도 있어 같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한서는 황실은 왕자후표, 외척은 외척은택후표에 기술했기 때문에 고혜고후문공신표 말고 그쪽에서 겹치는 쪽도 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