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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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玉鏡(1929 ~ 2016). 대한민국의 수학 교수. 호는 췌정(萃亭).
1929년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現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소질을 보여 중학교 4학년(현재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대학 2학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하며, 경남중학교(現 경남고등학교)[1] 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6월 19일에 입학식을 하고 1주일간의 수강신청과 오리엔테이션을 마치자 바로 6.25 전쟁이 터지고 만다. 당시 대학생은 징집을 면할 수 있었으나 전쟁 중에 대학생으로 공부만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해군사관학교에 8기로 입교했다. 1954년 소위로 임관 후 1955년 해군사관학교 수학 교관으로 발령 받아 부임하여 1965년까지 재직하였고, 1955년에서 1956년까지 2년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위탁생으로 수학했다.
1968년 서울대학교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94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고, 2016년 7월 7일 사망했다.
윤정한 동아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아들이다.
'살아있는 계산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계산력이 뛰어났다고 전하며,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발행한 '미적분학' 교과서에 'Calculo ergo sum(나는 계산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윤옥경 교수의 문구가 실려있다.
수학 참고서로 유명한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 집필에 많은 도움을 주어 '수학의 정석' 초판 머리말에도 윤옥경 교수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실제로 본고사 시절에는 수학의 정석이 서울대학교 입시에 가장 알맞은 책으로 평가 받았다고 한다.
1. 개요
尹玉鏡(1929 ~ 2016). 대한민국의 수학 교수. 호는 췌정(萃亭).
2. 생애
1929년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現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소질을 보여 중학교 4학년(현재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대학 2학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하며, 경남중학교(現 경남고등학교)[1] 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6월 19일에 입학식을 하고 1주일간의 수강신청과 오리엔테이션을 마치자 바로 6.25 전쟁이 터지고 만다. 당시 대학생은 징집을 면할 수 있었으나 전쟁 중에 대학생으로 공부만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해군사관학교에 8기로 입교했다. 1954년 소위로 임관 후 1955년 해군사관학교 수학 교관으로 발령 받아 부임하여 1965년까지 재직하였고, 1955년에서 1956년까지 2년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위탁생으로 수학했다.
1968년 서울대학교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94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고, 2016년 7월 7일 사망했다.
윤정한 동아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아들이다.
'살아있는 계산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계산력이 뛰어났다고 전하며,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발행한 '미적분학' 교과서에 'Calculo ergo sum(나는 계산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윤옥경 교수의 문구가 실려있다.
수학 참고서로 유명한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 집필에 많은 도움을 주어 '수학의 정석' 초판 머리말에도 윤옥경 교수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실제로 본고사 시절에는 수학의 정석이 서울대학교 입시에 가장 알맞은 책으로 평가 받았다고 한다.
[1] 당시는 고등학교가 없고 중학교가 6년제였다. 1951년에 중학교 3년 + 고등학교 3년으로 학제 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