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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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윤종규
'''출생'''
나주시
'''가족'''
배우자, 슬하 1남 1녀
'''학력'''
광주상업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 학사
'''직업'''
금융인, 공인회계사
'''소속'''
KB금융지주 회장
1. 개요
2. 기업인 커리어
3. 이야깃거리


1. 개요


대한민국공인회계사이자 기업인. KB금융지주 제4대 회장.
나주시 출생. 광주상고-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경영학 석사학위와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KB금융지주 회장을 맡고 있고 연임에도 성공했다.

2. 기업인 커리어


금융권의 대표적 ‘상고 신화’의 주인공이다. 광주상고를 나온 그는 1973년 외환은행에 입행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성균관대 경영학과[1]를 졸업했다. 제25회 행정고시에도 2차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학내 시위를 주도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최종 임용에서 탈락했다. 대한민국 공인회계사 시험을 합격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11월 18일 ‘제 24회, 25회 행정고시 면접탈락 사건’을 놓고 시위참여를 이유로 행정고시 합격자를 임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결론냈다.
삼일회계법인에 들어가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부대표 자리까지 수직 승진했다. 업무 추진 능력이 남다른데다 주변 사람과의 화합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국민은행과의 인연은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시절 회계컨설팅을 맡은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그를 눈여겨본 김정태 통합 국민은행장[2] 이 취임 후 2002년 3월 첫 임원인사에서 그를 국민은행 재무·전략기획본부장(최고재무책임자·CFO)으로 영입했다. 당시 김 행장은 윤 내정자를 데려오기 위해 다른 부행장을 모두 임명한 뒤 CFO 자리만 비워 놓고 있었다는 뒷얘기를 남겼다. 영입이 최종 결정되자 김 행장은 인사 보도자료를 내 ‘상고 출신 천재’라는 문구를 넣도록 직접 지시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의 금융권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4년 9월 감독당국으로부터 KB국민카드 합병 회계 처리와 관련, 감봉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뒤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자진사퇴했다. 김 행장이 같은 사안으로 ‘문책경고’를 받고 사퇴하자 함께 물러난 것이다.
2005년부터 5년간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KB금융으로 복귀한 것은 6년여 만인 2010년이다. 당시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김앤장법률사무소 상임고문으로 있던 윤종규를 지주사 부사장으로 영입해 CFO를 맡겼다. 이 때도 그의 중재 능력과 전략가로서의 면모가 빛났다는 평이다.기사
2014년 10월 22일 KB금융지주 4대 회장으로 내정됐다. 2016년에는 연임하는데 성공했다. KB금융은 2017년 6월 말 시가총액에서 7년 만에 신한금융을 앞섰다. 또한 2017년 1분기엔 최대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이 은행권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기사 회장 취임 이후 과감한 M&A를 통해 실적을 올렸다. 2014년 KB캐피탈[3]을 인수한 데 이어, 2015년 6월 업계 2위권 손해보험사인 KB손해보험[4]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2016년에는 현대증권을 인수하였으며, 2020년에는 대졸 남성 위주의 대면판매조직 Life Planner®로 유명한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3. 이야깃거리


  • 외환은행 재직 당시 만난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다. 그의 아들은 공인회계사를 최연소로 합격하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했으며, 딸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재직 중이다.[5]

[1] 야간[2] 윤종규 회장 못지 않게 국민은행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유능한 금융인이다. 동원증권 사장 출신으로 통합 국민은행장이 되면서 국내 최초로 로또 복권 사업을 담당하여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벌어들였고, 9.11테러 때는 5천억 원을 투자해서 원금을 제하고도 2,500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자신이 공약한 대로 '''연봉 1원'''에 대한 대가로 40만 주의 스톡옵션을 행사하면서 12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었는데, 반절은 사회에 환원했다고. 재계약 후에는 연봉 3억 원을 받았는데, 연임을 포기하면서 2004년에 자리에서 물러났다.[3] 구 우리파이낸셜.[4] 구 LIG손해보험.[5] 고소장 위조건으로 2016년 6월 부산지검 사표 냄, 현재 변호사(기사 : http://www.vop.co.kr/A000014108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