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코시 존슨

 

'''은코시 존슨
Nkosi Johnson'''
'''이름'''
은코시 존슨
'''국적'''
[image]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생'''
1989년 2월 4일
'''사망'''
2001년 6월 1일
'''가족'''
양모 메리 게일 존슨, 양부 앨런 존슨, 친모 다프네, 신원불명 친형/친누나, 외할머니
'''학력'''
요하네스버그 멜파크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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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초기
2.2. 게스트 하우스
2.3. 입양
2.4. 입학 투쟁
2.5. 은코시 쉼터
2.6. 사망
3. 업적


1. 개요


1989년 2월 4일부터 2001년 6월 1일까지 역사상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에이즈 환자이자 사회운동가다.

2. 생애



2.1. 초기


1989년 2월 4일 남아프리카 공화국뉴캐슬에 위치한 줄루족 빈민촌에저 태어났다. 이미 인지하지 못한 채로 에이즈에 감염된 어머니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된 채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은코시의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1990년 요하네스버그로 가서 하루 한끼를 먹으며 힘들게 살았다. 돈이 어느정도 모인 후 병원 진단 결과 두 모자가 전부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은코시의 어머니의 일터였던 미용실부터 마을 전체로 소문이 퍼져 결국 은코시의 어머니는 해고된 채 무단 점유지의 작은 오두막에서 지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몇달 후 추방되었다.

2.2. 게스트 하우스


생활이 어려워지자 결국 은코시의 어머니가 의사로부터 전해들은 백인 에이즈 환자만 있던 게스트 하우스로 갔고, 다행히도 한동안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냈다. 그러나 얼마 후 계속된 자금난으로 게스트 하우스는 폐쇄되었다.

2.3. 입양


1992년 폐쇄 직후 은코시의 어머니는 은코시를 게스트 하우스 가족에 입양했다. 입양한 후에도 10일에 한 번 꼴로 은코시를 보러 왔다고 한다.
안정된 생활으로 몸무게가 적게나마 늘었고, 결핵과 호흡 곤란 등 일부 증상이 개선되고 있었다. 이것을 계속 보며 은코시의 양모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보호소 설립 계획을 굳혔다.
1997년, 결국 오랜 투병 끝에 친모가 사망했다.

2.4. 입학 투쟁


당시 에이즈 환자는 입학이 가능했으나 입학 사례가 없었고, 학부모들의 반대에 시달렸다. 다행히 입학에 성공했으며, 신문 헤드라인이 전부 이 투쟁으로 도배되었다.

2.5. 은코시 쉼터


입학 투쟁 성공으로 1999년 4월 은코시 쉼터가 만들어졌다. 이것으로 유명세를 탄 은코시는 미국에 초청받았고, 에이즈 환자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대륙 건너기를 실현했고 다른 기후 탓에 힘들었지만 인터뷰를 모두 소화해냈다. 그리고 익명의 여성에게 천문학적의 가격의 에이즈 치료제인 지도부딘을 선물받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탓인지 오히려 별다른 효과 없이 몸무게가 빠지게 되었다. 제13회 국제 에이즈 대회가 더반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연설했다.

2.6. 사망


날이 갈수록 은코시의 몸은 수축해지고 머리카락 또한 계속해서 빠져나갔다. 2001년 1월, 졸라 쉼터에서 목욕을 하는 중, 갑작스런 발작으로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2001년 6월 1일, 결국 은코시는 사망했다. 사망 당시 몸무게는 9kg였다고 한다.

3. 업적


  • 서구권에 에이즈를 알린 것: 힘든 상태에서도 미국 내에서의 인터뷰와 연설로 전 세계에 에이즈가 무엇인지, 또 에이즈의 심각성을 알렸다.
  • 남아공 내 에이즈 인식 개선: 에이즈 아이들의 현실을 아파르트헤이트와 비유하여 알리는 연설로 당시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어린 아이한테 하나 배웠다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