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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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약칭 남아공(南阿共)은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공화국이다. 1815년 영국 식민지가 되었고 1910년 영국의 자치령이 된 이후부터 1961년까지의 국호는 남아프리카 연방(남아연방)이었으며, 영국 국왕이 국가원수였다.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이집트,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과 함께 국가인지도가 높은 나라이다.
세계에서 호주와 더불어 금이 풍부한 나라 중 하나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고도화된 산업국이다. 남아프리카 지역이나 블랙 아프리카에서는 우월한 강국으로 아프리카 연합의 실질적인 수장국이다. 세계순위 상위권에 드는 대학이 드문 아프리카임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몇몇 대학들만은 지속적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학문적 기반도 상당한 편임을 알 수 있다.[2]
수도가 프리토리아(행정), 블룸폰테인(사법), 케이프타운(입법), 세 군데로 나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한국으로 치자면 청와대, 대법원, 국회의사당이 서로 다른 도시에 따로 떨어져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된 건 남아프리카 연방을 결성할 때(1910) 4개 구성국 중 가장 작은 나탈 식민지의 피터마리츠버그를 제외한 3개국 수도에다 3부 기관을 각각 하나씩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트란스발 수도 프리토리아에 행정수도, 오렌지자유국 수도 블룸폰테인에 사법수도, 케이프식민지 수도 케이프타운에 입법수도를 준 것. 하지만 정작 최대인구 도시는 3개의 수도 중 하나가 아닌 요하네스버그이다.[3]
남아공 지도를 보면 가운데에서 약간 동쪽으로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것과 동쪽 끝이 뭔가 쥐 파먹은 듯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두 구멍은 레소토(서)와 에스와티니(동)이다.
역사적으로 이 나라 때문에 나미비아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늦게 독립한 국가가 되었다.[4] 제일 늦게 독립한 국가는 남수단 공화국, 두 번째로 늦게 독립한 국가는 에리트레아.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와 그 전에 독립을 선언했던 서사하라는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제외. 그리고 남아공은 1976년 독립을 선언한 서사하라를 2004년부터 독립국으로 인정해주고 있다.여기와 서사하라 항목 참조.
한국전쟁 당시 UN군 일원으로 참전하였다.[5] 평택에 남아프리카 공화국군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가 위치하고 있으며[6] ,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2. 국가 상징
2.1. 국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연원은 1910년에 이 지역을 영국이 남아프리카 연방이라는 이름의 자치령으로 지정한 것에서 유래한다. 영국은 보어전쟁으로 이 지역을 완전히 복속시켰으나 보어인들의 반발을 고려해 내정에 대해 완전한 자치권을 가지는 자치령으로 지정했는데, 본래 단일한 지역이 아니라 케이프 식민지, 나탈 등 지역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보니 중립적인 명칭인 '남아프리카'를 선택했다. 1961년에 남아프리카 연방이 영연방에서 탈퇴해 국명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바꾸었지만 정치체제를 나타내는 부분만 바꾼 것일 뿐 '남아프리카'라는 이름은 유지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식 언어는 1994년 이래 11개이지만 각 언어의 공식 국명은 모두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번역한 말을 쓴다.
한국에서는 나라 이름이 길다보니 '''남아연방'''[7] 이나, '''남아공'''과 같이 주로 약칭이 쓰인다. 남아프리카라고 줄일 수도 있겠으나 아프리카 남부와 헷갈려서 일반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다. 영어나 아프리칸스어는 아프리카 남부를 각각 Southern Africa, Suider-Afrika라고 불러서 이 나라와 구분이 된다.
인터넷 주소 등에 쓰이는 국제 도메인은 .za인데 옛 공용어였던 네덜란드어 국호 (Republiek van) Zuid-Afrika에서 따온 것이다.
2.2. 국기
이전에는 옛 네덜란드 국기와 동일한 귤색, 하얀색, 파랑색의 삼색기에 중간의 하얀색에 유니언잭[8] , 오렌지 자유국의 국기, 트란스발의 국기가 들어간 국기였으나, 1994년 넬슨 만델라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전의 3색기에 아프리카민족회의 깃발을 결합한 것으로 Y자 모양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린 무늬의 3색기로 바뀌었고 귤색이었던 것이 빨강으로 바뀌었다.[9] 빨간색은 남아공의 독립과 흑인들의 희생과 열정, 초록색은 남아공의 농업, 삼림, 농촌, 국토를 뜻하며 노란색은 남아공의 주산물인 금을 비롯한 광물과 광업을 상징하고 파랑은 열린 하늘과 인도양 및 대서양을 상징하며 검정과 하얀색은 남아공에 사는 백인과 흑인을 Y자는 화합을 상징하며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 그리고 그 외 부족과 종족들, 남아공 지방정부의 화합을 나타낸다.
이전에 쓰이던 국기는 아파르트헤이트 이전부터 쓰이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외에서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억압과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래서 남아공의 올림픽 참가가 다시 허용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에도 자국 국기가 아닌 올림픽 위원회 깃발을 사용한 바 있다. 이외에 다른 스포츠 대회에서도 현 국기가 제정될 때까지 국기 대신 협회 깃발을 쓰기도 했다. 옛 국기는 대다수 국민들, 특히 남아공 흑인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2015년에는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로디지아의 국기와 함께 이 깃발을 가슴에 달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결국 2019년부터 옛 국기 사용을 언론, 교육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법이라고 규정하였다. #
2.3. 국가
3. 행정 구역
총 9개 주 로 되어있고 직할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찍부터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부유한 주이며[11] 흑인이 제1인종이 아닌 유일한 주이기도 하다. 컬러드가 48.8%를 차지하며, 백인의 비율도 15.7%로 높은 편인데 덕분에 남아공의 다른 주와 달리 민주동맹당(DA)이 가장 강세를 보인다. 사실상 민주동맹의 기반 지역. 이외에 네덜란드인들이 과거 데려온 말레이계도 소수나마 거주한다. 케이프 타운을 비롯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많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에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남아공 면적의 1.5%밖에 차지하지 않는 가장 작은 주지만, 인구가 1470만명으로 가장 많고 경제력도 최고인[13] , 남아공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와 경제, 금융의 사실상 수도인 요하네스버그가 모두 있으며, 이외에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흑인 거주지로 세워졌다가 도시로 발전한 소웨토도 있다. 백인 비율이 15%로 가장 높은 편인데, 아프리카계들은 프리토리아에, 영국계는 요하네스버그에 많이 거주한다. 1994년 이전에는 독립적인 주는 아니었지만, 이른바 PWV(Pretoria-Witwatersrand-Vereeniging)로 불렸다.
주의 이름은 보어인들이 세운 오렌지 자유 주(Orange Free State)에서 유래되었다. 1994년 프리 스테이트로 개칭되었으나, 당시 남아공에 있던 주 4개 중에서 유일하게 경계가 바뀌지 않고 살아남은 주[15] 이다. 레소토와 접해 있는 지역인 만큼 주민들은 주로 소토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재까지도 주 안에 남아 있는 백인의 대부분은 아프리카너이다. 주의 대부분은 1000m가 넘는 고원지대. 지역의 대부분이 카루(Karoo)라는 반사막 지역이며 삭막하기에 그지없다. 요하네버그와 케이프타운을 차로 오고간다면 무조건 들르게 되는곳이다.
- 동남부: 콰줄루나탈(KwaZulu Natal)/주도: 피터마리츠버그(Pietermaritzburg)
- 동부: 음푸말랑가(Mpumalanga)/주도: 넬스프뢰위트(Nelspruit)
- 서부: 노던케이프(Northern Cape)/주도: 어핑턴(Upington)
- 서북부: 노스웨스트(North West)/주도: 마히켕(Mahikeng)
- 남부: 이스턴케이프(Eastern Cape)/주도: 비쇼(Bhisho)
- 북부: 림포포(Limpopo)/주도: 폴로콰네(Polokwane)
2011년 기준 남아프리카공화국 주별 인구구성은 다음과 같다.출처
4. 자연(기후)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로 유명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처럼 기린, 아프리카코끼리, 코뿔소, 얼룩말, 영양, 악어, 사자, 하마, 표범, 치타, 타조, 하이에나, 독수리 등 여러 동물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바나 초원지대와 물가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해변 지역에는 물개나 펭귄도 살고 있다. 사파리 동물 관광업으로도 꽤 유명한 나라인지 특히 남아공 최대의 국립공원인 크루거 국립공원은 이 나라의 관광 산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여담으로 '존 베티'라는 환경보호론자가 만든 호랑이 협곡(Tiger Canyon)이라는 사유지에는 호랑이들이 살고 있다.[18]
기후대는 전체적으로 내륙 지방은 반건조 기후이지만, 지역별로 변화가 커서, 동쪽 지대는 온난 습윤 기후와 나미비아와 접한 북서부의 나미브 사막, 보츠와나와 접한 북부의 칼라하리 사막으로부터 모잠비크와의 국경 부근의 아열대 기후, 남서쪽 해안 지대는 지중해성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단 적도에서 남쪽으로 많이 내려온 곳(남위 30도 부근)에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온대기후에 속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4계절이 대한민국과 반대이며, 습한 지역보다는 건조한 지역이 많다. 과도한 목장으로 인한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남서부는 겨울에 비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 북동부는 아열대성 기후이다. 트란스발의 고저에는 겨울에 서리가 내리며 여름에는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린다. 강우량은 서에서 동으로 갈수록 많아지며 여름 6개월 동안에 집중된다.
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인데, 6개의 주요 식물구계 중에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2개의 국가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가 호주라는 대륙국가임을 볼 때 상당히 좁은 곳에 수많은 독자적인 식물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며 특히 원예가들에게 사랑받는 수많은 알로에와 다육식물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2018년 9월에는 남아공에 예상치 못한 눈이 내려 사자와 기린 등 야생동물들이 당황한 듯한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 웬 눈?…사자·기린 등 야생동물도 당황
5. 역사
6. 정치
1910년에 대영제국의 자치령으로 출범한 남아프리카 연방은 영국의 예를 따라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1950년대 초반까지는 컬러드, 아시아계도 제한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21] 1953년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연합당의 표밭[22] 인 컬러드와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피선거권을 없애고 몇 명의 의원들(그것도 백인)만 뽑을 수 있게 투표권도 제한했으며 1970년대 들면서 이마저도 없애버렸다. 아파르트헤이트 원칙에 따라 따로 의원을 뽑자고 명분을 내세우며 따로 의회를 만들었긴 했는데... 권한이 별로 없다보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 실상은 완전 폐지된 거나 다름없었다.[23]
1980년대 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조금 완화했는데 이때 백인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의회를 백인 의회, 컬러드(흑인-백인 혼혈) 의회, 아시아인 의회로 나눈 것. 다만 컬러드 의회와 아시아인 의회는 권한이 미약했는데, 인구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유색인종 의석이 10% 겨우 되는 백인 의원석보다 적었다.[24] 그래서 삼원제가 시행했을 당시엔 컬러드와 아시아인들의 투표율이 매우 저조했다. 어쨌거나 80년대 후반-90년대 들어 아파르트 헤이트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는 과정에서 흑인 의회도 추가해 사원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협상 끝에 양원제로 전환되었다.
1994년 이후 현재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일단 대통령이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겸하지만, 대통령과 부통령이 직선제가 아니라 의회(하원)에 의한 간선제고, 장관들도 의원 중에서 뽑히며, 또한 대통령이 제한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거나 의회가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등 의원 내각제에 가깝다. 대통령은 하원의원 중에서 선출되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는 하원의원을 사직하도록 되어 있다. 대신 대통령 임기는 하원의원 임기에 종속되지 않고, 하원 의원과 같은 5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재임이 가능해 최대 임기는 10년이다. 내각제 국가와는 달리 제1정당 대표직을 잃는다고 해서 대통령을 사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당 대표직을 잃게 되면 대통령으로서의 공직 수행에 큰 타격이 오기 때문에 당 대표직을 잃으면 오래 못 가 사임하게 된다. 이 때 하원에서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되며 이 때 뽑힌 대통령은 잔여 임기만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1994년 선거부터 완전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백인독재정부가 행했던 개리맨더링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로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인은 인구 수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거제도의 특징으로는 다른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들과 달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특정 득표율 이하 득표한 정당을 당선되지 않게 하는 봉쇄조항이 없어서, 0.2% 득표한 정당이 의석을 획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모든 선거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로 승리해서 군소정당 난립으로 인한 혼란은 나타나지 않는다.
흑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적으로 인종차별은 철폐되었다. 선거에 있어서도 완전 비례대표제와 압도적인 흑인 인구로 인해 언제나 흑인 후보가 백인 후보에게 승리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득표율이 보통 60% 초-중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득표율이 떨어져가고 있지만 제1야당인 민주동맹(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남아공당-연합당-진보연맹당-민주당계열)의 득표율이 20% 초반(그나마도 이것도 많이 올린 편)인지라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래도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덕택에 의석점유율은 국민당이 대놓고 인종차별을 펼쳤을 시절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득표율 자체는 국민당 독재시절보다는 높은 편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흑인 대통령 및 그가 임명하는 각료와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권력이 집중되었다. 흑인이 80%인 나라다보니 자연스런 현상이기는 하나 그 과정에서 사회 혼란이 불거지고 공무원 부패가 심각하여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래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25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게걸음을 한 적이 있을지언정 흑인 중심 공무원사회도 안착을 했다.
남아공 출신 유명 코미디언인 트레버 노아가 2009년 쯤 1994년 이후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드립을 친 적이 있다.#
내용인 즉슨:
-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땐 백인들이 전부 떠나겠다 했지만 다 남았다. 만델라는 위대한 인물 이었으니까.
만델라는 평화, 화합, 공존을 주장했고 비록 흑인들 사이에 백인에게 복수하자는 적개심이 팽배했지만 27년 동안 감옥살이에 온갖 탄압을 당한 원로 어르신이 말하니 다들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반대세력도 있어 대표적으로 만델라의 부인 위니 만델라가 백인에 대한 전면적인 복수 및 무장투쟁을 주장하자 만델라는 그녀와 이혼 까지 하는 선택을 두었고 결국 평화적으로 흑백 정권교체를 이뤄내 아파르트헤이트 최후의 대통령인 드클레르크 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남아공의 아프리카化는 만델라가 퇴임한 뒤, 음베키 정권 시절 시작되어 급격히 실현되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남아공 백인들은 주로 호주로 많이 이민을 떠났다. 호주에서도 주로 서부에 있는 퍼스에 갔고 남아공 이민촌이 있다고 한다. 남아공과 기후가 비슷해서라나.[25] 음베키는 2008년 9월, 임기종료 7개월을 앞두고 하야한다.
2008년 9월~2009년 4월 집권. 음베키 시절 부통령이었다가 음베키 하야 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임기가 짧은 이유는 전 대통령이 사임한 후 선출되는 남아공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잔여임기만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 주마가 대통령이 되었다. 확실히 많은 것이 달랐는데 왜냐면 이제는 흑인들도 호주로 가려면 얼마쯤 드냐고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부터 주마의 과거 극단적인 백인탄압을 지향하는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고 비리스캔들이 잦았는데다 성추문도 심해 강간으로 기소당한 적도 있고[26] 오랜 친구의 딸과 관계해 혼외자를 낳기도 했다. 비전도 그렇고 도덕성도 없는 인물이 대권후보로 떠오르니 같은 출신민족인 줄루족을 제외하면 흑백 가릴거 없이 모두 주마를 꺼렸고 국가붕괴까지 염려했다. 그리고 집권 후 몇년 뒤 정말 현실이 되었다. 집권당 ANC가 2016년 지방선거 때 제1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백인정당 취급받던 DA 에게 패배했을 정도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진행형 인 주마의 임기 도중 9번의 탄핵시도가 있었다. 물론 ANC의 반대로 전부 부결됐지만 그만큼 주마 때문에 만델라의 정당도 흔들릴 정도. 일례로 만델라가 서거한 2013년 12월 만델라의 장례식이 소웨토 FNB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당시 남아공 인들은 조문 온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조의 연설에 부부젤라와 환호성으로 응답했지만 정작 자국의 대통령인 주마의 연설엔 한도끝도 없는 야유로 대했다. 실제로 주마는 2009년 선거에서 당시 91세 고령으로 노쇠해 집에서 요양하던 만델라를 끌어내 자기 선거운동에 이용하기도 했으니 비판을 받을만 했다. 그리고 주마는 2018년 2월 14일 집권여당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리콜로 인해 하야했다.
2012년 마리카나 광원 파업 때 일어난 경찰 학살 사건[27] 과 주마의 부패 추문을 계기로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the 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COSATU)[28] , 코사투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 년간에 걸친 논쟁과 내부투쟁 끝에 결국, 2017년 코사투 내 두 번째 규모 노동조합이었던 남아프리카금속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Metalworkers of South Africa, NUMSA)을 포함한 일부 노동조합이 코사투를 탈퇴했다. 남아프리카금속노동조합을 포함한 코사투 이탈 노동조합들은 새로운 노총 남아프리카노동조합연맹(South African Federation of Trade Unions, SAFTU)을 결성했다. 새롭게 결성된 남아프리카노동조합연맹은 기존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사회개혁 추구가 실패했음을 선언했고 곧이어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결국 2018년 7월부터 새 노총 주도로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Socialist Revolutionary Workers Party, SRWP)이 창당 과정 중에 있다. 새롭게 창당되고 있는 이 정당은 선거에 참여한 적이 아직 없으므로 각급 의회에 의석은 없다. 그러나 단일 노동조합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남아프리카금속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Metalworkers of South Africa, NUMSA)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으므로 새로운 정치적 변수로 떠오를 수도 있다. 이 정당은 경제자유투사당과는 달리 노동조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2019년 총선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57.5%'''을 받았는데, 첫 평균 60% 지지율을 무너졌다. 오히려 경제자유투사가 대약진하였다. 야당 민주동맹을 대신해서 자유전선 플러스도 조금 약진했다. 특이하게 이슬람 정당인 알 자마아(Al Jama-ah)가 원내진입하였다.
7. 경제
8. 사회
현재 남아공의 총 주민수는 6004만 1996명[29] 이라고 하는데 이중 흑인이 약 80%이고 백인이 약 10% 이며 나머지 10%는 케이프 컬러드(Coloured)와 아시아인(주로 남아시아인)이라고 한다.
8.1. 언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로는 아프리칸스어, 영어, 줄루어 등 11개가 있다. 아프리칸스어와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들은 흑인들의 토착 언어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면서 공용어가 되었다.
2011년 기준 모국어 인구로는 흑인들이 쓰는 응구니(Nguni) 계통의 줄루어(22.7%)와 코사어(16.0%)가 가장 많았고, 그 외 인종들이 쓰는 아프리칸스어(13.5%)와 영어(9.6%)가 그 뒤를 이었다. 소토-츠와나 계통의 북부 소토어(9.1%), 츠와나어(8.0%), 남부 소토어(7.6%) 사용자도 인구의 5%를 넘겼다. 남아공은 흑인 인구가 80%를 넘지만 이들의 언어가 이런 식으로 제각각이기에 자신의 언어로만 소통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프리칸스어는 남아공에 처음 유입된 백인들인 보어인의 언어로, 보어인의 대부분을 이루는 네덜란드계가 쓰던 네덜란드어가 점차 변형되면서 생긴 언어이다. 따라서 네덜란드어와의 유사도는 현저히 높지만(어휘 90%가 같음) 문법적으로 크게 달라지고, 무엇보다 영국의 지배 하에서 남아공의 '네덜란드어' 구사자들이 스스로를 네덜란드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닌 보어인이라는 별도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별도 언어로 보고 있다. 남아공의 공용어 변천도 이러한 변화를 잘 나타내주는데, 본래 남아공의 공용어는 영어와 '네덜란드어'였다가 아프리칸스어가 추가된 것이고, 나중에 네덜란드어가 제외되었다.
영국 지배의 영향으로 영어 역시 남아공의 공용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영어는 프리토리아, 케이프타운 등 거의 대도시에서만 쓰이고 도시 바깥으로 나가면 거의 통하지 않으며, 시골 지역으로 갈수록 영어가 더 안 통한다. 즉 영어를 모국어로 한 인구는 전체 인구의 9% 밖에 되지 않아 인구의 대다수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어권 국가라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 영국 이민국이나 미국 이민국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비자 신청자에게 영어 능력을 요구하며 남아공 대학에서 영어로 전공한 학위는 영어 구사 능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모어로 쓰는 인구만 적을 뿐이지 영어가 국제적으로 많이 쓰이고 아프리칸스어에 비해서 이미지가 괜찮으면서도[30] 흑인 언어에 비해서는 써먹을데가 훨씬 많아 교육 언어로 선호받고 민족 간 소통어로도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31] 중등교육 이상 받은 사람은 대다수가 영어를 구사할 줄 알며 남아공의 공영방송사인 SABC에서도 아프리칸스어나 줄루어, 코사어 등 다른 언어로 제작된 프로그램에다가 영어 자막을 따로 달아서 편성한다. 집권당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서도 인종 차별의 이미지가 있는 아프리칸스어보다는 영어를 민족 간 소통 언어로 밀고 있다.
남아공 영어는 기본적으로는 영국식 발음과 철자법을 쓰고 있지만 약간의 억양 차이가 난다. 특히 사회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상류층과 공식 석상에서 쓰이며 RP와 발음이 거의 비슷한 Cultivated
- 중간 계층이 쓰는 General
- 아프리칸스어 화자 및 노동자 계층이 쓰는 독특한 발음인 Broad
남아공에는 이민자들이 많은 만큼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그리스어, 구자라트어, 힌디어, 포르투갈어[33] , 텔루구어, 우르두어, 이디시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모어 화자들이 소수 있다.
8.2.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 하면 역시 소수의 네덜란드, 영국계 백인들과 다수 흑인 사이의 인종차별과 갈등이 대표적이었는데 백인들의 권력독점으로 인해 백인에 대한 우대와 혜택 그리고 독식 등이 늘어나게 되면서 어느 분야 가릴 것도 없이 흑인과 차별화되었다. 학교에서도 백인 출신만을 입학 허가해주는 대학교가 있는가 하면 화장실이나 목욕탕 등도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으로 나뉘어있는 등 생활면에서까지 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편이었다. 미국의 N-word에 대응하는 남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멸칭으로 kaffir[34] 라는 고유의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8.3. 빈부격차와 양극화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여전히 사회 내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2008년 기준 남아공의 지니 계수는 세계은행에 의하면 소득기준으로 0.7, 소비 기준으로 0.63에 달했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8%를 장악하고 있는 수준. 지니계수를 도시마다 살펴보면 요하네스버그는 '''0.75''', 프리토리아와 더반 0.72, 케이프타운 0.67을 찍었다.# 전 세계의 지니계수가 0.68 정도로 추정되는 걸 감안하면 전 세계 모든 나라 간의 빈부격차보다 요하네스버그 도시 안에서의 빈부격차가 더 크다는 것이다. 인종별로 뜯어보면 인구의 9%에 불과한 백인과 79.2%인 흑인이 각각 소득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2012년 기준으로 흑인의 56%가 빈곤층이었지만 백인 중 빈곤층은 2% 정도였고, 교육적인 면에서도 2008년 기준으로 남아공의 대학 진학률은 6명당 1명 수준이었지만 취업 연령대 흑인 중 대학 교육을 받은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참고.
다만 2017년 초 시점에는 백인의 빈곤율도 급등했으며, 백인 빈민은 white squatter라 불린다.[35] 이들은 아파르트헤이트 하에서도 가난했지만 그때는 그나마 기본 생계는 백인 정부가 책임졌다. 물론 현 남아공 정부에선 25%에 달하는[36] 흑인 실업자들 취직시키기도 바쁘다. 하류층 백인들은 가난에 빠지면 이들을 보호할 사회 안전망이 전무하며 오히려 흑인들과의 경쟁에서 상대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인지 부유하지 못한 백인청년들의 경우 유럽 계열[37] 로 이민을 준비하거나 아시아 계열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38]
일단 청년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건 대학등록금이며, 남아공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너무나 비싸고 중산층들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장학금을 못받으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사실상 끊기게 되므로, 등록금 인하 시위를 벌이는 경우가 허다한데 정부에서는 돈이 없다며 이러한 요구들을 묵살하는 중이다.[39][40] 그래도 시위가 크게 벌어지면 요구를 들어주는 시늉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현상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비싼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는 이들만큼이나 학교 문턱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빈곤한 흑인층 문제도 심각하다. 빈곤한 흑인들이 양산된것은 지난 1994년경부터였다. 백인의 정치 권력 독점이 철폐되고, 흑인에 대한 법적 규제도 철폐되면서 수천만 명의 흑인 노동력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직업 교육을 받은 흑인이 적었던 데다가 5백만명 정도의 백인들만으로 돌아가던 남아공 경제력이 하루 아침에 4천만의 인구를 부양하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 흑인들이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하고 여전히 빈곤한 상태에 갇히게 되었다.
반면 오히려 흑인 정권 출범덕에 BEE (Black Economic Empowerment) 프로그램[41][42] 등과 같은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부자가 된 몇몇 운좋은 흑인 기업가들도 있는데, 이들 중에는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무능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즉 제대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사람이 정경유착으로 인한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으로 엄청난 부를 축재한 셈이다. 남아공의 빈곤에 대해 경고해 온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BEE 프로그램이 소수의 흑인 엘리트에게만 기회를 제공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인간적이지 않은 빈곤"에 빠뜨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43][44] 결국 흑인 중에서 성공한 사람이 늘어났다고 해서 빈부격차가 해소되기보다는 흑인 집단 안에서의 빈부격차만 더 심화되었고 흑인 간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BEE 거래에 대한 조언을 돕거나, BEE 계약자가 넘겨주는 하청 계약을 통해 BEE 정책의 혜택을 받은 소수의 백인[45] 혹은 정경유착한 기업들 이외의''' 상당수 백인 기업들은 다국적 기업에 편입되거나 도태'''되고 있으며, 살아남은 기업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남아공 관광부는 COVID-19 사태로 인한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원 외에 관광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별도의 2억 란드(약 136억원) 지원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관광숙박업체 중 BEE 등급에 따른 우선 혜택 배정'을 지원금 집행 기준으로 내세워'''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BEE 기준을 적용하면 백인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소규모 관광회사와 대규모 관광기업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거센 반발이 야기되는 등 정부의 노골적 혜택배제에 대한 백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고 이는 또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46]
8.4. AIDS
2016년 기준 HIV 감염률 세계 랭킹 4위. 성인의 18.90%가 감염자다.
사회 혼란 속에서 AIDS 발병자가 늘어났는데, 타보 음베키 대통령(1999년~2008년 재임)과 그 치하의 높으신 분들이 '''무능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HIV가 남아공 전역에 급속도로 확산되는 걸 막지 못했다.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에이즈 때문에 죽은 사람을 하나도 모른다"라고 무책임한 발언을 한 적도 있고 장관이라는 자가 에이즈 치료책으로 홍당무와 마늘을 먹으라 하지 않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에 만델라가 흑백화합 정책에 신경을 쓰는 동안 의료정책에 관여했으니 에이즈 환자 비율이 급속히 높아지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는 얘기도 있다. 음베키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꽤 양호한 에이즈관(觀)을 가지고 있었으나 궁핍한 남아공의 재정이 에이즈 약을 보급하기엔 가격이 심히 비싸다는 점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는데, 에이즈와 HIV 바이러스간의 인과관계가 정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설이 나오게 되자 이를 믿게 되었고[47] 이후에는 이하생략. 만델라도 움베키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비난하고 남아공의 경제성장률을 상당부분 까먹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다른 원인도 있는데, 흑인들 사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워낙에 깊다보니까 콘돔 끼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아예 세균을 통해 흑인들을 절멸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니 높으신 분들이 하는 말을 잘 신뢰하지 않았다.
2008년에는 남아공 인구의 10%, 특히 '''임산부의 28%가 HIV 감염자'''였다. 비공식 통계도 아니고 '''공식 통계'''가 이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3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그나마 만델라와 은코시 존슨, 그 후원자들이 열심히 에이즈 퇴치하려고 발 벗고 나섰고 주마 대통령[48] 시기 들어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공급하는 정책[49] 덕분에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타국에 비하면 여전히 심각하다.
2012년 조사에서 흑인 남성의 16.6%, 여성 24.1%가 감염자였던 반면 백인은 남성 0.2%, 여성 0.5%, 인도계는 남성 0.8%, 여성 1.0% 정도가 감염자였다. #
8.5. 치안
총기난사 및 강도 사건 관련 치안동향 (주 남아공 대사관, 2020.1.23)
치안이 매우 좋지 못한 나라 중 하나다. 1960-70년대에도 치안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말기인 80년대에 범죄율이 급증해 # 만델라 정권이 출범한 1994년에는 살인 사건이 월평균 1,400건에 달했는데, 이는 통상 하루에 47명이 살해당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남아공에 비해 700만명정도 인구가 적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의 사망자가 연간 35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50]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강간 범죄도 심각해서 여자의 경우 혼자 여행하거나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절대 금물. 물론 남아공도 사람사는 곳이다 보니 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지만 워낙 빈부, 교육, 국민 수준의 격차가 크다보니 혼자 돌아다니는 여성을 음란한 여자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혼재해있고 외국인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51] 특히 한국 여성들은 동양인 여성이라 남아공 남성 기준에서 이국적이고 티가 잘 날뿐만 아니라, 멀리 외국 여행을 나온 상황을 만만히 보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해있는 지역에서는 성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52]
'''남아공의 치안수치'''는 남아공 정부가 치안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면서 전체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에 있기는 했다. 범죄의 절대 건수는 줄지 않았지만 비율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가령 콰줄루-나탈 주의 살인율은 1994년 10만 명당 95에서 2011년 35로 줄었고, 남아공 전체로 볼 때는 동기간 67에서 32로 감소했다.[53] 다만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다시 살인율이 점차 상승하는 추세로, 90년대 중반 10만 명당 60명대였던 살인율은 2011-12년에 30.1명으로 저점을 기록한 이후 2017년 4월~18년 3월 기준으로 10만 명당 35.8명으로 상승했다.[54][55] 14p
아이러니한 것은, 1917년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살인에 대해선 대부분 사형을 선고했으며 1992년 넬슨 만델라에 의해 사형 폐지[56] 가 될 때까지 매년 수백 명의 흉악범을 처형할 정도로 강력히 법을 집행하는 국가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중국, 이란을 제치고 사형집행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했다.[57] 하지만 잦은 사형집행에도 범죄율은 낮아지지 않았다.[58] 이런 판국에도 남아공 정부는 강력범죄에 대응하는 플라잉 스쿼드(Flying Squad)[59] 의 장비나 인력지원을 충분히 하지 않았고, 낙후된 치안을 개선하려는 명확한 의지조차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곧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게 되었고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60] 과거 암울한 독재정치를 거쳤기에 경찰 권력이 너무 강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남아공이라 흑인정권 안정화 이후에는 용의자에 대한 경찰의 선제 발포조차 규제했지만, 제이컵 주마 행정부 들어서 월드컵이 다가오자 그러한 규제까지 죄다 바꿔가며 만연한 범죄 소탕에 안간힘을 써야했던 것이다. 결국 대도시 지역 치안수치는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이미 막장까지 간 터라 그 효과는 말 그대로 땜질 수준이었고, 근본적 해결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요원한 상황이다.
'''치안부재의 구체적 상황'''을 보면, 특히 최대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악명이 높다. 이곳은 대낮에도 총기로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강도사건이 매우 많다.[61] 이 때문에 요하네스버그 시내를 다녀보면 온갖 집들이 다 철창으로 되어있으며, 대문, 울타리, 창문, 심지어는 아파트 입구까지 다 철창으로 싸여 있다. 담장 위에는 전기 철조망도 있는것을 볼 수 있다.[62]
밤에는 더욱 위험한데, 술병을 들고 주정부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길가에서 술병 던지는 일이 상당히 많은데 흑인들이 사는 동네 길가를 보면 술병 파편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63] 뿐만 아니라 당국의 공식적 관리범위에서 이탈해 약물남용,구걸,위생 등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노숙자 숫자가 요하네스버그에서만 약 1만5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64]
도시뿐 아니라 시골은 치안이 더욱 좋지 못하며, 범죄무리들이 곳곳에 난립하는 중이다. 도시에서는 누구 보는 사람이라도 있지만 시골에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인지, 이런 지역을 지나가는 고속도로 등의 안내판에는 "'''범죄경보. (차를) 절대 멈추지 마세요. 괴한에게 습격당할 수 있습니다.'''" 라는 표지판까지 붙어있을 정도다.[65][66]
위의 악명높은 요하네스버그와 그 주변 치안이 마치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인들이 꽤 거주하고 있는 케이프타운이나 블룸폰테인과 같은 수도와 대도시 내 주요 백인 생활 지역의 경우 '''안전수칙'''만 잘 지킨다면 총을 볼 일은 의외로 드물다고 봐도 된다. 단 멋모르고 진입한 관광객은 아차 하는 순간에 현지인들은 안 가는 곳에 들렀다 봉변당할 수 있으니 반드시 주의. 그리고 같은 요하네스버그 권역이라 해도, 구도심의 열악한 치안 사정을 피해 부유층과 대기업들이 대거 이주해 간 샌튼 (Sandton) 시티 같은 곳은 그나마 관광객들도 자주 오고 즐겁게 시간 보내다 갈 수도 있는 곳이지만 현지 사정 전혀 모르는 분들은 시내 = 다운타운인가? 하는 식으로 착각했다가 정말 큰일나는 수가 있다. 외교부에서도 '''여행객들이 범죄피해를 주로 당하는 곳인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 Park Station 및 Berea, Yeoville, Hillbrow, Soweto 지역 등에는 출입을 삼가고''', 필요할 경우에는 2인 이상이 동행하며, 항상 주변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으니 명심할 것.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에는 Farm murder(아프리칸스어로 Plaasmoorde)라고 하는, 백인 농장주에 대한 공격과 살인도 문제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로 백인 농장주들에 대한 보복성 습격과 살인은 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지만[67]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의 미온적 대처뿐 아니라 현 대통령 제이컵 주마가 공공연하게 백인 자체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타보 음베키 시절만 해도 표면적으로나마 인종 간 갈등을 봉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주마는 백인 추방 및 토지 몰수를[68] 공공연하게 주장할 정도로 백인에 대한 적개심을 자주 이용하는 정치인이라 남아공 백인들, 특히 도시보다 시골에 살며 농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아프리카너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살해나 습격이 정권의 비호나 묵인하에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주마 대통령 및 그 측근들은 백인 농장주들에 대한 습격이 단순히 경제적 이유에서 벌어지는 강도라고 일축하지만, 실제 피해자들의 피해 상황을 보면 경제적인 이유로 저지른 범죄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공격이 잔인하고 여성이나 어린아이에게까지 끔찍하게 성폭행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서 과연 인종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지 않은 유형의 범죄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69]
9. 문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대가 있는 곳이었다. 높이는 무려 216m. 하지만 마카오 타워가 233m로 제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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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시맨 1편의 마지막 장면은 God’s Window라는 산에서 촬영된 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안개가 펼쳐져 있지는 않고 아침에만 아주 가끔 산 아래가 안개 투성이가 된다고 한다. 영화 촬영시에는 안개가 피는 것을 밤새워 기다리고 촬영했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이스포츠가 국제무대에서 제 역할을 하는 국가이다. 과거 이집트가 있으나마나한 활동이라도 벌였지만 벌써 대략 10년 쯤 전 얘기고 이젠 그냥 없는 취급 당하는 것에 비해, 현재 그나마 남아공만이 준메이저급 이상 규모의 세계 대회에 모습을 비추며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림포포 주에 거주하는 로베두 족의 구름과 강수를 통제할 수 있는 등의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어지는 세습 여왕인 비의 여왕(Rain Queen) 모자지(Modjadji)가 나름 알려져 있다. 1800년부터 확립되어 전통적으로 모계 계승으로 이어졌는데 6대 이후로 현재 7대는 공석인 상태이다.
놀랍겠지만, 헌법에서 성적 지향에 대한 인권을 명시한 세계 최초의 국가로, 2006년에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아프리카에서는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비교적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아프리카에서 동성결혼 합법화한 나라로써는 유일하다. 이렇게 된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 탄압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공휴일 가운데 흑인 투쟁과 관련된 공휴일[70] 이 매우 많다. 또한 2월, 7월 , 10월, 11월에 공휴일이 아예 없고 아프리카에서는 대체휴일제가 매우 잘 시행되는 나라인데, 공휴일이 일요일인 경우에만 시행된다. 4월은 '''타이밍만 잘 맞으면 한국의 5월, 10월에 못지않은 황금연휴를 누릴 수 있다.''' 즉, 남아공에서 가장 공휴일이 많은 계절은 가을이고 그 다음으로 여름, 겨울, 봄이 뒤띠르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러한 기후와 서구권의 영향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리 또한 긍정적인 평을 듣고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이 로스트 디너를 즐기는 모습과 같이 영국 요리, 캐나다 요리, 호주 요리의 영향력을 받았지만, 말레이시아 요리, 인도네시아 요리, 네덜란드 요리, 독일 요리, 인도 요리, 파키스탄 요리, 방글라데시 요리, 스리랑카 요리, 네팔 요리의 영향력도 존재하고 아프리카 특유의 요리의 모습도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우편도 남아공우정국이 남아프리카 우편 전체의 허브로 쓰인다.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와 함께 독자적인 영화 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아무래도 영어권이라 해외 진출이 용이한 구석이 있고 경제력도 괜찮은 편이라...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사회 고발을 다루는 영화도 많이 나왔다.
2010년대 들어서 인기를 끄는 일렉트로 힙합 듀오인 Die Antwoord가 이 나라 출신이다.
2015년 남아공의 got talent류 장기자랑 프로그램에서 3살의 나이로 디제잉 공연을 보여준뒤 세계 최연소 DJ로 기네스북에 오른 DJ Arch jnr도 남아공의 인물이다.
9.1. 스포츠
남아공의 인기스포츠는 축구가 아닌 럭비와 크리켓이다. 이는 주로 영 연방권 국가들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인데, 남아공에서는 다수의 흑인들보다 소수의 백인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달아오르지 않는 남아공월드컵 열기
주요 스포츠로는 럭비, 축구, 크리켓이 인기가 많다. #2, #3, #4 해당 스포츠를 즐기는 계층이 분명하게 나뉘는 편인데 경제적 여유 때문에 공을 제외한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지 않는 축구는 흑인층에서, 고가의 장비가 반드시 필요한 크리켓이나 럭비는 백인층에서 더 많이 한다. 특히 크리켓은 백인과 인도계에서 인기가 많고 럭비는 거진 백인, 특히 아프리카너들의 민속스포츠와 같은 위상을 갖고있다. 과거 인종차별이 극에 달할 당시에 흑인들에겐 축구와 권투가 인기 많았다.
9.1.1. 럭비 유니온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애칭이 백호인 것처럼 애칭으로 스프링복스(남아프리카 산양, Springbok)으로 불린다.
1995년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오랫동안 국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남아공은 월드컵 1년 전만 하더라도 잉글랜드에 패배할 정도로 약체였지만 만델라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감동 드라마를 이룩할 수 있었다. 당시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통해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목표로 했는데, 마침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을 반인종차별과 화합의 장으로 삼았다.
그때까지 남아공 내에서 럭비는 백인들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해서 남아공 럭비 대표팀이 국제경기를 할때에는 백인들은 럭비 대표팀을 응원하지만 흑인들은 상대팀을 응원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대표팀 역시 1명의 흑인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백인 선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만델라는 백인 선수들에게 흑인들의 국가[71] 를 배우게 했고, 만델라가 수감되어 있던 로벤섬 감방을 방문하고, 흑인 마을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럭비를 가르치는 시간을 갖는 등의 행사를 가지며 스포츠를 통한 화합을 꾀했다. 그 결과 흑인들의 저항가요 '응코시 시키렐레'가 스프링복스의 응원가가 되었고, 만델라는 흑인들이 그렇게 저주해 마지 않던 스프링복스 특유의 녹색 유니폼을 입고 럭비 월드컵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프링복스는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결승전에 진출하여 뉴질랜드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전설적인 럭비선수인 조나 로무가 있던 뉴질랜드 대표팀에 맞서 스프링복스는 필사적으로 싸워 결국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하였다. 선수들은 우승 후 둥근 원을 그리고 눈믈을 흘리며 기도하는 세리머리를 펼쳤고 경기장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육색 국기가 휘날렸고 대부분이 백인이었던 6만 관중은 '넬슨'을 외치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때의 남아공 럭비월드컵 대표팀의 행보를 다룬 영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이다. [72] 과거에는 정말로 백인만 받아주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Springboks였지만 지금은 흑인 선수들도 여럿 활약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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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계에서 모두에게 강국으로 인정받는 몇몇 나라들 중 하나이며 럭비팬들에게 물어보면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넣는다. 10년 전쯤에는 실제로 최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었고 지금은 다소 밀렸지만 여전히 5위권 내에는 든다. 2019년 2월 기준 세계 랭킹 5위.[73] 럭비의 인기가 상당히 많다지만 실제로 가보면 럭비의 수준이 높다. 우월한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플레이에 능하며, 그에 어울리게 무시무시한 떡대들을 자랑하는 선수들로 가득차있다.(원래 럭비선수들 자체가 떡대가 장난 아니지만 이들은 더하다) 현재 최강팀인 뉴질랜드가 덩치 큰 마오리족 선수들을 다수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힘보단 현란한 스킬로 승부하는 이미지가 강하다면 선 굵고 투박하고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럭비는 남아공이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아공 럭비 국대는 2007년 월드컵 우승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후에는 그만큼 실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비록 2011년 월드컵 에선 8강전에 호스트 이자 역시 럭비 강국인 '''뉴질랜드''' 를 만나 혈투 끝에 탈락해 그냥 그런거라 넘길 수 있어도 2015년 월드컵 에선 '''일본 한테 패하질 않나'''[74] ...그래도 준결승 까지 올라 3위를 하긴 했지만 남아공 럭비팬들의 눈높이에는 한참을 못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1995년 처음 우승을 하고 2007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우승을 못 하며 기량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던 럭비 국대는 2019년 일본 럭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32-12로 꺾고 12년 만에 다시 우승을 거두었다.''' 만년 우승후보인 뉴질랜드를 잉글랜드가 잡아주고 힘이 빠진 상태에서 거둔 우승이라는 평도 있지만, 이 우승은 무려 남아공 럭비 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국대 주장을 맡아 우승한 대회라는 크나큰 의미가 있다. 이 팀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흑인 선수는 주장은 커녕 국가대표로 받아주지조차 않았던 팀이기 때문. 이 때문에 영화 1995년의 만델라의 인종주의 극복 노력과 남아공 럭비 국가대표팀 우승을 다루었던 인빅터스가 다시 주목 받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또한 2023년 럭비 월드컵을 유치하려 준비했지만, 최종 선정에서 프랑스에 밀려 탈락하고, 2027년 럭비 월드컵 유치 계획을 가지려다가 결국 포기했다.
9.1.2. 크리켓
아프리카에서 유일무이한 크리켓 강국이기도 하다. 크리켓에서는 그럭저럭 수준이 아니라 영연방에서 인도, 호주, 파키스탄과 함께 세계정상권을 노릴만한 강팀. 세계랭킹 1위 자리에도 여러번 오른적이 있다.
9.1.3. 축구
축구는 주로 흑인들이 즐긴다. 남아공 프로축구리그인 Premier Soccer League (약칭 PSL) 은 흑인들이 주로 즐기고 선수들도 그리고 팬들도 흑인 위주이다. 국가대표의 인기는 2010년 월드컵때 반짝 모든 인종에게 사랑받았지만 조별예선 탈락 및 그 후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백인들과 다른 인종들도 축구를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주로 유럽축구, EPL 이나 라리가 를 즐겨보고 UEFA 챔피언스 리그 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등을 경도가 비슷해 현지와 비슷한 시각에서 즐긴다.
남아공 프로축구리그는 이집트, 콩고민주공화국과 함께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나눠먹는 리그 중 하나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축구 항목 참고할 것.
9.1.4. 그외
- 골프가 대중화 되어 굳이 상류층이나 부유한 계층이 아니더라도 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상당한 편 이라 게리 플레이어나 어니 엘스 같은 걸출한 골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국제대회에 야구대표팀을 보내는 국가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국제대회 예선을 겸하는 올아프리카 게임에서 가장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주는 국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본선에 참가 했지만 전패로 탈락했으며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부터는 예선부터 참가하였지만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10. 외교
11. 여권
12. 군사
13. 창작물에서
SF 영화 디스트릭트 9의 주 무대로 등장한다. 감독 닐 블롬캠프와 주연 배우 샬토 코플리가 남아공 출신이며, 디스트릭트 9의 원형이 되는 단편 영화의 제목이 <Alive in joburg(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였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기존의 남아공 인종갈등 구조에서 외계인이 개입되어 있는 색다른 구도로 화제가 되었다.
재난 영화 2012에서는 대재난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문명 재건을 위해 정착할 예정인 곳으로 나오기도 했다. 대재난으로 인해 남아공의 영토가 지면 상승으로 해일 피해를 덜 입었기 때문이다.
웨스트우드 비브라토에서는 케이프 타운에 주인공의 악기 수리점 'WESTWOOD VIBRATO'이 있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에서는 Nod가 공략하는 아프리카 주둔 GDI 최후의 기지가 남아공에 있는데[75] , 임무선택 지도화면에서 볼 수 있는 공격의 방향으로 봤을 때 희망봉에서 배수의 진을 친 듯.
메탈슬러그 3 미션 3의 배경이 메탈슬러그 디펜스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헐크와 헐크버스터 슈트를 입은 아이언맨이 한바탕 대결을 벌이는 곳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다. 해당 장면의 배경이 마블 코믹스에 나오는 가공의 아프리카 국가인 와칸다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헐크버스터 등장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요하네스버그이고, 극중에서 헐크를 진압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은 남아공 경찰이며, 아프리카 국가임에도 흑인 뿐만 아니라 백인 엑스트라가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촬영 장소인 남아공을 묘사한 것이 맞다고 봐야 한다. 이상하게도 작중에서는 소코비아나 대한민국 서울과는 달리 남아공이라고 자막이 나오지는 않는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의 주인공인 놈베코 마예키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태어난 곳이다.
굿바이 만델라,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와 같이 넬슨 만델라를 다룬 영화나 파워 오브 원과 같이 인종차별 영화들 중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꽤 있다.
풋볼매니저에서 기본 선택 가능 리그로 등장하는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이다.
14. 출신 인물
14.1. 실존 인물
- 넬슨 만델라(정치인)
- 데즈먼드 투투(종교인, 사회운동가)
- 닐 블롬캠프 (영화감독)
- 데이브 위텐버그(성우)
- 미리암 스토클리(가수)
- 브로닌 멀렌 : KBS 미녀들의 수다의 前 출연자, 방송인
- 사라 바트만[76]
- 샤를리즈 테론(영화배우)
- 샤카 : 줄루 왕국의 군주
- 샤를린 위트스톡 : 현 모나코 공비(公妃)이자 전 수영선수
- 샬토 코플리[77] (영화배우)
- 스탠리 스큐스 : 수학자이자 스큐스 수의 고안자
- 아놀드 보슬루 (영화배우)
-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육상선수) : 장애인으로서 일반 올림픽에도 출전하는 등 여러 가지 드라마를 그려왔다. 그러나 전 여자친구를 쏴죽여서...
- 일론 머스크(기업가) : 어머니가 캐나다인 시민권자이기도 해서 성인이 되자마자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 조디 셱터(前 F1 드라이버, 現 농업 종사자)
- J. R. R. 톨킨 :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 여러 판타지 작품들을 펴내며 판타지계의 아버지가 된 인물. 항목 참조.
- 존 맥스웰 쿳시
- 캔디스 스와네포엘
- 트레버 노아: 코미디언
- 트로이 시반[78] (가수, 연기자, 유튜버)
- 캐스퍼 리 [79] (유튜버)
- 케빈 리차드슨 : 동물 행동 연구가
14.2. 가상 인물
※ 해당국가 작품 제외
- 코넬리아 보보 워셔 - 웨스트우드 비브라토
- 클로디아 - 드리프트 걸즈
- 호이트 볼커 - 파 크라이 3
- 쉐바 아로마,조쉬 스톤 - 바이오하자드5
- 아체베 - 마블코믹스[80]
- 버니스 - 블랙 서바이벌
- NTW-20, NS2000 - 소녀전선
- 올리비아 셔먼 - 좀비고등학교
[1] 코이산어에 속하는 ǀ함(ǀXam, (쯧)함)어로. 발음은 대략 "(똑)께 에 (쯧)하라 (쯧)께" 정도로 읽는다. 괄호 치고 (쯧), (똑)처럼 표기한 발음은 흡착음. 참고로 ǀ함어는 현재 남아공의 공용어는 아닌데, 현재는 사어가 되었기 때문이다.[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2] 국외 소재 대학교 일람 (남아공)[3] 요하네스버그는 최대 도시일 뿐이지만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소재지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4] 나미비아는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남아프리카 연방의 위임통치령이 되었고 아파르트헤이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1920~90년까지 무려 70년이나 남아연방(현 남아공)의 위임통치를 받았다.[5] 남아공과 한국전 (South African Embassy Seoul 공식홈)[6] 그 기념비가 안성이 있는 동쪽에 있어서 착각할 수 있지만, 평택이 맞다.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라 기념비가 있는 구역 옆쪽의 조그마한 언덕길을 가로질러야 비로소 행정구역이 안성으로 바뀐다. 다만, 소재지인 평택시 용이동은 1983년 2월 14일까지는 안성군 원곡면 소속이었다.[7] 1961년 이전의 경우 지칭. 옛 백과사전 표제어로 남아있다.[8] 영국령 케이프 식민지와 나탈 식민지를 상징한다.[9] 영국과 네덜란드를 동시에 고려해서라는 얘기도 있지만 정부차원에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10] 입법수도, 의회 소재지[11] 웨스턴케이프주 비즈니스 정보 (South African Embassy Seoul 공식홈)[12] 행정수도 프리토리아가 있다.[13] 하우텡주 비즈니스 정보 (South African Embassy Seoul 공식홈)[14] 사법수도, 대법원 소재지[15] 트란스발과 케이프는 아예 여러 주로 나뉘었고, 나탈도 콰줄루-나탈로 이름이 바뀌며 경계가 약간 바뀌었다.[16] 바스코 다 가마가 여기를 지나갈 때 크리스마스여서 Terras Natalis(포르투갈어로 Natal이 크리스마스)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브라질에도 나탈이라는 도시가 있다.[17] 37만 제곱킬로미터가 조금 넘어, 남아공 면적의 30% 이상을 차지한다.[18] 호랑이는 원래 아시아 특산종 동물이기에 아시아에서만 제한적으로 분포한다. 하지만 존 베티 환경보호론자가 호랑이를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데리고 와서 기르고 있다.[19] #[20]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1] 백인 남자는 모두 투표할 수 있었지만 컬러드, 아시아계는 일정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다.[22] 컬러드나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는 정당인 국민당에 투표하지 않았다.[23]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동아시아계 중 일본계, 대만계, 홍콩인들은 honourary white, 즉 '''명예 백인''' 으로 준 백인 대접을 받아 백인 지역에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한국계의 경우에는 일본계/대만계와는 달리 국가적 차원의 대우가 아닌 일본인/홍콩인 등과의 혼동에 의해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고한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한국계들의 증언으로 당시 남아공은 유럽의 선진국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반면 중국 대륙 출신들은 흑인과 같이 취급당해 차별받았다. 그런데 1994년에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고 흑인 경제 육성 정책(BEE)이 시행될때 중국인들은 차별받았던 역사 때문에 '''흑인과 같은 대접'''을 보장받아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24] 1960년 샤프빌 시위와 1976년 소웨토 학생운동 같이 이전에도 반 아파르트헤이트 시위가 있었지만 격화된 건 1980년대였고 또 가장 큰 이유는 불평등한 삼원제 때문이었다.[25] 실제로 남아공 백인들이 가장 많이 이민가는 곳이 호주이다. 기후도 비슷하지만 영연방 국가다 보니 문화와 생활 양식도 비슷하기 때문에 남아공 사람들, 특히 백인 농민들 입장에선 가장 쉽게 이민을 고려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뉴질랜드로도 많이 간다.[26] 에이즈 단락에 나온 주마의 발언이 이 때 나온 것이다. 성폭행 피해자로 지목된 여성이 에이즈 환자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때 "30분 내에 샤워했으니 괜찮다"는 발언을 한 것[27] 실탄을 사용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파업 중인 광원 44명이 사망한 사건[28]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투쟁에 적극 참여한 노동운동가들이 주도로 창립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 최대 규모 노총[29] 2021년 공식통계 기준[30] 아파르트헤이트를 주도한 국민당은 아프리칸스어를 주로 쓰는 보어인들이 주도한 정당이었다. 영어를 쓰는 영국계 남아공인들이 아파르트헤이트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메인은 역시 보어인들이었다.[31] 아프리칸스어는 보어인들과 컬러드나 쓰고, 그 이외 주민들에게 잘 쓰이지 않은 데다가(다만 아프리칸스어를 따로 배워서 써먹는 사람은 상당하다.) 흑인 언어는 종족별로 다르기 때문에 민족 간 소통어로 쓰이기 힘들다.[32] 영화상에선 아프리칸스어 모어 화자이다.[33] 인접한 모잠비크에 있던 포르투갈계가 넘어오기도 했다.[34] 현지 발음으로 "꺄프르" 비슷하게 들린다. 본래 '불신자'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아랍인들이 흑인 아프리카인들을 부르는 멸칭이었으며 그것이 잔존해 남아공에서 쓰이는 멸칭이 되었다. 남아공 출신들에게 있어서는 N-word보다 더 심한 모욕으로 간주되는 듯.[35] DW (2016.07.23) : South Africa whites feel the pain of poverty, too [36] 취업포기자는 제외[37] 영국 등지의 경우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임을 증명하면 다소 쉽게 비자를 얻을 수 있다.[38] 남아공 또한 영미권의 일부로 인식되며, 영어가 모어가 아닌 아프리카너 백인들도 제 2언어로 대개 영어를 준원어민 수준으로 한다는 점이 감안되어서인지 남아공 국적의 학사학위 소지자들은 영미권의 다른 국가로 유학을 갈 때 TOEFL, IELTS를 보지 않아도 된다.[39] South African student leaders vow to continue tuition fee protests (The guardian : Fri 7 Oct 2016)[40] FeesMustFall 시위 (위키백과 영어판)[41] BEE는 '포괄적 흑인경제육성법'을 지칭한다. 이는 과거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 하에 불이익 받은 흑인(유색인) 계층을 위한 경제활동 장려정책이다. 각 기업의 '''흑인 경영권이나 소유권 비중에 따라''' BEE 등급을 매기고, 높은 등급을 보유한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에겐 공공기관 조달 및 입찰 시 특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남아공 내 흑인 경제 육성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42] 남아공 공공조달의 필수 충족 요건이 되는 흑인 경제 육성법 B-BBEE (2017-08-22 요하네스버그무역관)[43] BEE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 (위키백과 영어판)[44] But in practice, BEE resulted in strategic investment deals that concentrated ownership in the hands of a select group of politically connected black South Africans. ( OCCRP : 16 October 2019)[45] 현지언론 business tech (6 April 2016) : How many whites are benefitting from BEE[46] 남아공 관광부 지원책 인종차별 요소 논란 (2020-04-30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47] 음베키는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따냈을 정도의 엘리트였다. 보건정책에 손을 대서 그렇지.[48] 사실 이 양반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에이즈 예방은 관계 후 30분 내에 샤워하면 된다고 했다.[49] 그 이전에도 상당수 주들을 중심으로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공급하고 있었다. 이를 중앙정부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다.[50] 그나마도 범죄조직에 의한 살해나 강도살인 및 거리에서 일어나는 피살보다는 감정 과잉으로 인한 우발적 살인이거나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해사건인 경우가 굉장히 많아서 일본과 비슷하다.[51] 현지어에 익숙하지 않아 자신의 상황에 대해 도움을 호소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지 공권력이 외국인에게 배타적일 가능성이 높아 적절한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52] 남아공 백인 사회와 흑인 사회의 성평등 의식 수준을 본다면 정말 이게 같은 나라가 맞는가 싶은 수준이다. 현지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마치 제1세계와 제3세계 국가 국민이 하나로 뒤섞여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남아공 백인 사회는 상당히 성차별이 해소된 사회로 서유럽에 근접한 수준의 의식을 보이는 반면, 비싼 등록금을 지불할 여력이 전혀 없어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이가 절대다수인 흑인 사회에서는 성평등은 커녕, 기본 인권 의식조차 희박하다.[53] 이는 인구 증가 때문인데, 백인 인구는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상당히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흑인들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그만큼 인구가 증가하기는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에이즈로 나라 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막장이었기 때문에 인구 폭증 수준까지는 아니다.[54] South Africa crime stats 2020 (현지 언론 business tech : 2020.07.31.)[55] 58 people are murdered every day in South Africa (현지 언론 business tech : 2020.07.31.)[56] 처음에는 한국처럼 무기한 중지됐다가 결국 폐지됐다.[57] Capital punishment in South Africa (위키백과 영어판)[58] 그래서 사형 제도가 범죄 발생 억제에 효과가 없다는 증거 사례로 뽑히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형폐지로 인해 사형수 대신 무기수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한 것은 또다른 골칫거리가 되었다. ( 연합뉴스 2012-11-20 : 남아공 사형폐지 17년 새 무기수 24배 증가) [59] 특별기동수사대로, 2인 1조로 운영된다. 긴급대응을 위해 시속 240km까지 달릴 수 있는 특별 순찰차에 R5 카빈으로 무장하고 있다.[60] 월드컵을 앞두고 외신들이 치안에 대한 우려를 쏟아낸 것이 큰 압박이 되었다.( 세계일보 2010.01.10. : 남아공 월드컵 테러 대비 초비상) 당시 남아공 현지치안에 대한 흉흉한 소문으로 인터넷 여론이 좋지 않았고 특히 일본 인터넷 등지에서는 남아공의 치안부재를 지적한 요하네스버그 가이드라인(ヨハネスブルグのガイドライン)이 확산되어 일명 남아공 괴담으로 한국에 전파되기도 했다. 월드컵 개최 후 남아공 월드컵 취재 방송사 PD가 잇따라 피습되고 2015년에는 강도가 생방송 카메라를 개의치 않고 취재진을 공격하는 등의 사건이 벌어지며, 단순괴담이 아닌 어느정도 실체있는 글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연합뉴스 2010.06.06. : 남아공 월드컵 취재 방송사 PD 잇따라 피습) ( JTBC 2015.03.12. : 남아공 2인조 강도, 생중계 준비하던 취재진 공격 '황당')[61] 경찰의 주력무기가 UZI와 같은 서브머신건 임에도 매년 200여명의 경찰이 순직하는 곳이고( 연합뉴스 2020.09.21. : 남아공 조직범죄와 싸우던 최고위 수사관 피살 파장), 돈 내놓으라고 하는 강도가 그나마 착한 강도이며 대부분은 그냥 사람을 죽이고 훔친다고 한다.[62] 연합뉴스 2020-11-07 : 집집마다 전기 펜스 두른 남아공[63] 동네를 다녀보면 대낮에도 혼자 술병들고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Western Cape 정부가 2017년 10월에 발간한 ''Alcohol Abuse Booklet'' 3페이지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교통 사고의 절반 이상, 도로 사망, 가정 폭력 및 살인의 60 % 이상이 알코올 소비 및 유해한 알코올 사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락다운을 실시하면서 2020년 3월말부터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6월에 봉쇄령을 완화하자 다시 무간지옥으로 돌아갔다.( 연합뉴스 2020.06.11. : 남아공 다시 술 팔자 살인 급증) [64] 연합뉴스 2020.04.13. : 남아공 수만명 노숙자 대다수, 봉쇄령에도 길거리 방치[65] A traffic sign on the N12 highway in South Africa (reddit)[66] 예를 들어 지난 2017년 여름 남아공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나 코넬리우스 강간 살인 사건만 해도 케이프타운 북쪽의 와인농원지인 스텔렌보스구에서 발생했다. 차에 타있던 21살 여학생 한나 코넬리우스와 친구를 4명의 범인들이 납치(carjacking) 한 후 무차별 폭행하여 무력하게 만들고 윤간, 고문, 살인한 사건으로 방화를 제외한 웬만한 강력 범죄가 모두 자행됐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었다. 한나는 윤간당한후 살해되었고 같이 있던 한나의 친구는 필사로 도망가서 겨우 살아났으나 그녀 역시 윤간과 고문을 당하여 두개골 및 팔 골절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범인들은 나중에 남아공 경찰에 모두 검거되었다.[67] 주로 백인 농장주들의 흑인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와 임금 체불이 큰 원인이 되고 있으며, 발생 건수 자체는 사실 90년대에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추세였다.[68] 현재 남아공에서는 인종 간 토지 소유 불평등이 심각한데, 백인이 소유한 땅은 남아공 전체 경작지의 73%에 달하지만 흑인소유지는 4%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흑인들의 불만과 반감이 굉장히 크다.[69] 인종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남아공 자체가 범죄율이 높은 데다가, 고립된 농장이 외부 공격에 취약해 좋은 타깃이 되며, 실제로 살해당하는 비율은 백인 농장주들보다 흑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70] 3월 21일 인권의 날, 4월 27일 자유의 날, 6월 16일 청년의 날, 8월 9일 여성의 날, 9월 24일 유산의 날, 12월 16일 화해의 날.[71] 당시 남아공은 흑인의 국가와 백인의 국가가 달랐다고 한다.[72] 만델라 대통령 역에는 모건 프리먼,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프랑수아 피에나르 역할은 맷 데이먼이 맡았다. 맷 데이먼은 이 역할을 위해 엄청나게 벌크업을 했으나... 키 178cm의 평범한 덩치인 데이먼이 196cm/108kg의 피에나르를 완전히 커버하기엔 무리여서 만델라로부터 트로피를 받는 명장면이 나올 때 보면 럭비팀 주장이 대통령보다 왜소한 다소 안습한 장면이 연출된다. 연기는 훌륭했지만...[73] 요즘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이 축구의 독일팀을 능가하는 기세로 부동의 원톱을 지키고 있어서 우승은 다소 요원한 모양.[74] 일본도 아시아 권 에선 유일하게 럭비다운 럭비를 하지만 럭비가 국기나 다름없는 남아공, 호주, 뉴질랜드, 잉글랜드 등 에선 한입거리 정도로 취급당한다. 하지만 이 경기는 마치 축구로 비유하자면 '''브라질이 잠비아한테 진 격이라 할 수 있겠다'''.[75] 반대로 GDI의 타임라인에서는 맨 마지막에 Nod의 성지가 있는 사라예보를 공략하게 된다.[76] 흔히 남아공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나미비아 출신.[77] 닐 블롬캠프와는 학교 동창이라, 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에 자주 출연한다.[78] 출생은 남아공이지만 높아지는 범죄율로 인해 아주 어렸을 때 호주로 가족 전체가 이민.[79] 출생은 영국이지만 남아공에 가족 전체가 산다.[80] 마블 코믹스의 빌런으로 블랙 팬서의 숙적 중 하나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며 어딘가에 사는 가난한 농부인 그는 악마 메피스토에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고 한다.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는 손인형 다키와 대화하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데 티찰라에 대한 강박, 증오에 의해 더욱 더 악화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