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1. 개요
2. 상세
3.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의미
4. 여담


1. 개요


기자: 남의 시선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여성: 아니오,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구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 든요.'''

2016년 들어 한국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상, 또는 그와 관련된 해시태그.

2. 상세


우연히 한 페이스북 유저가 올린 글 누군가가 퍼간 글 순서대로 발굴된 것으로 추정된다. 뒤늦게 알려진 것으로, 해당 뉴스 기사는 1994년 9월 17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X세대 젊은이들의 변화하는 옷차림에 대해서 보도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이전의 획일적이고 집단주의적 풍조에서 벗어나 점차 개인의 욕망과 호불호를 자유롭게 표출하기 시작했는데, 변화하는 사회상 속에서[1] 당당하고 쿨하게 자신의 패션을 드러내 보이는 모습이 위 영상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실제로 부모가 젊은 자녀를 야하다고[2] 구박하면 자녀가 발끈하며 '''"이건 개성이거든요!"''' 라고 쏘아붙이는 클리셰 역시 1990년대 만화책이나 만평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보다시피 굉장히 거리낌 없고 스스럼없고 당찬 말투가 특징인데, 어떤 이들은 이를 2010년대 중반의 젊은이들의 위축되고 우중충한 모습과 비교하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듯하다. 그러나 이 영상은 SNS 상에서 새로운 의미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3.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의미


이 영상이 SNS의 많은 화제가 되었던 것은, 주체적이라는 관점에서 이 여성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긍정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을 선택함으로써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의식하지 않았다' '''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은 채로 셀카를 찍고, 그 사진에다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요 해시태그를 달아서 올리는 것이 한때 퍼져나가기도 했다. 하필이면 "조크든요" 인 이유는 영상 속의 해당 여성이 발음을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레퍼토리는 '''"내가 내 맘에 드는 옷을 입고 나갔는데 알지도 못하는 웬 아줌마/아저씨가 쓸데없이 옷 가지고 오지랖을 부리네? 그래서 나더러 뭘 어쩌라고?"'''와 같은 내용이다.
마침 해외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 세운 음란물 정책이 여성의 유두를 금지하는 바람에 젖꼭지를 허하라(Free the Nipple) 운동이 일기도 했고,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물로서의 브래지어에 반대하는 브래지어 없는 날(No Bra Day) 운동이 호응을 얻은 바 있었기에 함께 이슈가 되었던 점이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슬랙티비즘의 일부일 뿐 이 영상 자체로는 페미니즘에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여성은 자신의 의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3세대 페미니스트)는 주장과 "여성은 여성성이 강조되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서 스스로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래디컬 페미니스트) 는 주장이 상충될 수도 있다. 즉, 가슴이 훤히 보이거나 콜라병 같은 허리를 강조한 야한 옷을 입어서 "성적 대상화를 시키는 옷인데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느냐?" 는 질문이 들어왔을 때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라고 반론할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건 페미니스트 진영 내에서도 찬반논란이 심한 대목이다. 한때 엠마 왓슨이 이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실제 쟁점이기도 했고 '''"페미니즘은 여성을 때리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 ##

4. 여담


  • 1994년 5월 13일 KBS 뉴스 9에서도 비슷한 요지의 보도가 있었다.
  • 2020년 정관장 광고에 나와서 다시 한 번 더 발굴되었다. 성령이라는 배우가 이 대사를 맡았다.
  • 원본 당사자는 현재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1] 이 시기는 중산층이 꽤 확보되어 있었고 1980년대부터 이어진 호황을 한껏 즐기던 상황이었으며 (비록 부정부패 같은 것은 심각했을지언정) 사회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낙관적이었다.[2] 오늘날에는 19금, 후방주의의 의미로 통하는 표현이지만, 그때는 "야하다" 는 말이 경박하고 상스럽고 천해 보인다는 뉘앙스로 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좁아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