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1. 개요
2. 패션의 역사와 변천
2.1. 고대, 중세의 패션
2.2. 서양 패션의 역사와 변천
2.3. 한국 패션의 역사와 변천
3. 패션 이론
3.1. 패션의 구성요소
3.2. 패션의 원리
4. 패션 관련 산업
4.1. 패션산업 특징
5. 패션 관련 직업
6. 패션 교육
7. 패션의 문화별 차이
8. 패션업계와 일반인의 괴리감
9. 기타
10. 패션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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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이나 두발의 일정한 형식을 일컫는 말. ‘옷맵시’, ‘유행’, '풍조', '양식' 등과 비슷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도 가지각색에 유행이란게 흔히 그렇듯 세월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 복고 패션이 다시 유행하는 패션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이런 패션을 선도한다고 일컬어지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많은 패션쇼를 여는데 사실 일반인들 입장에선 해괴한(...) 옷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이유는 패션쇼하면 오트쿠튀르 이미지가 있어서다. 사실 기성복패션쇼인 프레타포르테 패션쇼는 단정하고 입을만한 옷들이 많이 나온다.

2. 패션의 역사와 변천



2.1. 고대, 중세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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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 고려할 점이 많은 바지보다 허리에 두르기만하면 되는 치마의 등장이 인류사에서 먼저였다.
바지의 형태는 주로 승마를 많이 하는 유목민에게서 정주민으로 전파가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중국에는 바지가 도입된 계기가 조무령왕의 이른바 "호복기사(胡服騎射)" 즉 "북방 이민족처럼 바지를 입고 말을 타며 활을 쏜다."라는 사자성어의 사례를 통해 전해내려오며, 인도의 경우도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쿠샨 왕조에 의해 승마에 적합한 바지 및 단추 달린 외투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경우는 유럽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스키타이 유목민들이 입던 바지가 켈트족에게로 전파된 것을 계기로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공화정 시기까지는 켈트인들이 바지를 입는다고 상당히 괴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이후 원로원에서 "이제 바지를 입은 원로원 의원이 나오는 거 아닌가?"하는 농담이 나온다던지 등등. 그러나 고대 말 전쟁수행능력의 중심이 보병에서 기병으로 이동한 것은 물론 바지를 입는 풍습이 있던 게르만족들이 서로마 제국 쇠퇴와 멸망을 계기로 유럽 각지에 정착하면서, 오늘날 유럽의 일상적인 복장이 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토가를 입는 로마 원로원의 권위는 어느정도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중세 초 완전 몰락하고 대신 유럽에서 봉건 기사들이 소영주로 장원을 다스리는 봉건제가 자리잡으면서 바지가 더 빠른 속도로 보편화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는데, 고대 유럽이 기독교화하기 이전에는 남성의 나체 노출에 대해서 금기가 적었기 때문에 바지 대신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말을 타거나 의자에 앉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지만, 신체 노출의 보다 엄격한 기독교가 보급되면서 게르만족의 대량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동로마 제국 등에서도 아래에 바지를 먼저 입고 위에 전통적인 로마식 튜닉을 입는 식으로 복장이 변화하게 된다. 다만 바지의 기원 때문에 바지가 용감한 남성이 입는다는 고정관념은 바지가 본래 기마민족의 복장이었다는 사실이 일반에 잊혀진 오늘날에도 어느정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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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수하는 농민들을 묘사한 11세기 동로마 제국의 성경필사본 삽화[1] 중세가 되면서 바지가 일반인들에게도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지와 치마의 차이 외에도 남성은 단발 여성은 장발을 기르는 문화가 보편화된 것 역시 전쟁 때문이었다. 시민군이 중심이 되었던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머리를 길게 기른 상태에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면 전투 중 땀이 눈 속으로 들어가는데, 창과 방패를 든 상태에서 땀을 훔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고 이를 계기로 서구 남성의 보편적인 헤어스타일은 단발로 굳어진다.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튀르크인 등등의 변발 역시 전투 과정에서 편의를 위해 고안된 헤어스타일이다. 다만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이 완전히 머리를 변발처럼 빡빡 밀지 않은 이유는 햇빛이 강한 지중해 기후상 머리를 밀고 투구를 쓰면 두피에 자연스럽게 화상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고대 그리스-로마의 헤어스타일은 당시 투구 디자인에 맞추어 이마부터 목 윗부분까지 덮고 그 아래까지는 깎는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각기 지역의 생활습관과 환경을 반영한 패션이 대부분이었으나,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일반인 기준으로는 기초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일례로 우리나라만 해도 화폐가 민간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에는 삼베무명 옷감을 화폐 대용으로 활용하였는데, 이는 옷감으로 활용할 목화나 삼베를 재배하는 것도 일이지만 목화나 삼베를 손으로 가공해서 옷감으로 만드는 일에 엄청난 양의 노동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관료제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관등을 중심으로 복식에 대한 규칙이나 제한사항이 까다롭게 규정되었다. 고대에도 패션 산업이 돈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소재 면에서는 고대뿐 아니라 중세까지 천연직물이나 가죽만을 이용했기에 특히 비단모피는 동서를 막론하고 귀한 취급을 받았다. 견직물은 나일론이 보급되기 이전까지 동서고금 고급 의류의 대명사로 통했다.
색깔에 있어서 특기할 사항은 금색과 보라색이 고귀함을 나타내게 된게 이때부터다. 금색은 당연히 황금때문이었고 보라색 천은 보라색의 염료가 매우 귀했기에 그랬다.

2.2. 서양 패션의 역사와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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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패션은 20세기 이전까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에 풍성한 치마가 일관된 옷의 형태였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등장한 게 바로 파팅게일과 코르셋. 당시 귀족 여성들의 허리는 죽어 나갔다. 이 코르셋이 귀족 여성들의 허리를 인정사정없이 조여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코르셋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지는데 그 갈비뼈가 폐에 박혀서 그대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풍성한 치마 때문에 사소한 불씨에도 옷이 불타 결국 화상으로 죽는다든지, 혹은 치맛자락이 마차 바퀴에 끼게 되어 마차에 치여 죽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남성의 패션도 한때 여성 패션처럼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근현대 전쟁에서 전열보병의 시대가 지나고 은엄폐가 중요해지면서 군복이 간소화된 것을 계기로 전반적인 간소화가 이루어졌다.
허리는 잘록, 치마는 풍성이었던 서양 여성 의복이 변화하게 된 전환점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긴 전쟁으로 인해 남자들이 전장에 끌려나가 남성 노동인구가 부족하게 되자 그 자리를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메웠고, 기존의 여성복은 일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의복이 변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전시경제 과정에서 고급 옷감에 대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비교적 저렴한 옷감으로 이를 대체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나일론 등 인조 섬유가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면서 이후 여성 패션은 심미성과 활동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의 오트쿠튀르를 중심으로 발전하던 하이패션 필드는 2차대전 종료 이후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전후 이탈리아 경제와 산업이 급속이 성장하던 과정에서 밀라노의 패션 산업이 비교적 저렴한 노동비와 칼 라거펠트 같은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영입한 것을 바탕으로 파리를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세계 패션업계의 중심이 바르셀로나, 베를린, 런던 등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미국 같이 거대한 내수규모를 지닌 나라에서도 의복문화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캐주얼 의상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과거 저급하게 여겨졌던 프레타포르테를 하이패션 업계에서도 다루기 시작했다. 또한 60년대의 히피 운동이나 록큰롤 팬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거나 유행한 미니스커트나 토플리스 모노키니, 유럽에서의 68운동 당시 등장한 노브라는 오늘날의 의복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브 생로랑이나 가브리엘 샤넬, 장 폴 고디에 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 60년대 이후로는 유니섹스 패션도 대중화되어, 남성과 여성의 복장 구분이 전보다 모호하게 되었다.
사실 유니섹스 패션은 서유럽과 미국의 영향보다는 소련2차대전 이후 동구권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한 이후 전세계적으로 더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이런 사회주의 국가들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많은 여성 당원과 여군을 운용한 것은 물론, 당원이나 군인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충분히 해줄 만한 상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군인이나 당원들의 제복 디자인에 상당히 공을 들였었다. 서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남녀 복식의 구분이 어느정도 허물어진 대에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하겠다.

2.3. 한국 패션의 역사와 변천


조선시대까지 서양과 비슷하게 왕조체제였기에 파격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계급사회에서 패션의 멋을 추구한다는 것은 주로 귀족, 내려가도 부유한 서민까지의 일이였기 때문이다. 다만 여성한복의 노출도가 증가한다던지 하는 소소한 변화는 있었다. 또한 한국의 전통의복은 북방 의복인 호복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근현대 시기에는 개성을 허용치 않는 전체주의적인 사회 풍조가 강했기에 무난하고 튀지 않는 기성복이나 전통적인 감성의 옷이 선호되었다. 이 시절에는 패션에도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는지, 특히 여성복의 상의에 대해서는 불과 1990년대 중반까지도 상당히 보수적이라 노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1970년대는 군부독재의 영향으로 성인조차 장발을 단속당하고, 경찰들이 까지 들고 다니며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시절이니 사회풍토를 알만했을 것이다 지금같으면 성추행으로 문제될 일. 물론 그렇게 단속한다는 자체가 미니스커트가 꽤 유행했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겠지만. 하여튼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영장 가면 여성들 수영복은 원피스 수영복이 대세였지, 비키니 입은 여성은 드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러던 것이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개방되면서 갑자기 개인주의의 물결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마침내 X세대 담론이 형성되면서 온갖 괴랄한 패션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2] "왜요, 개성이잖아요!" 라는 표현이 이슈가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의 일. 그러나 일부에서는 "말이 좋아 개성이지,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려는 또 다른 획일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찢어진 청바지에 배꼽티는 그야말로 기성 세대의 뒷목을 잡게 만들 패션이었다. 물론 지금도 일상 생활에서는 입기 어렵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의상을 판매하여 이윤을 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와 같이 패션을 "단속"하려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든 편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지켜야 할 선은 남아 있어서, 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패션을 할 경우 주위의 눈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은 결국 돌고 돈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과거보다는 많이 유연해졌지만 아직도 한국 같은 집단주의가 우선시되는 동아시아 사회에선 유행을 따르지 않고 개성을 내보이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존재한다. 다만 2020년대 들어서는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를 제외하고는 젊은층에게는 그리 통용되지 않아, 불금에 도시의 번화가에 나가 보면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3. 패션 이론



3.1. 패션의 구성요소


    • 선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킨다.
    • 선에 의해 공간이 분할된다.
    • 선의 방형, 두께, 배열의 규칙성, 길이에 따라 다른 자극을 준다.
  • 실루엣: 인체가 착용한 옷의 표면이 외부의 공간과 접촉하여 만들어지는 전체 형태. A형, H형, O형, X형 등으로 분류한다.
  • 컬러
    • 색상에 따라 온도감, 무게감, 팽창과 수축, 대비 효과 등을 연출할 수 있다.
  • 재료의 질감 Texture: 시각으로 어떤 재질을 보았을때 연상되는 촉감, 그리고 실제 만져보았을 때 느껴지는 촉감.
    • 시각적 촉감: 표면외관(울퉁불퉁함, 밋밋함), 표면마찰(까칠까칠함, 부드러움, 매끄러움), 온도감, 투명성, 광택
    • 실제 촉감: 유연성(뻣뻣함), 압축성(단단함, 부드러움), 신축성, 탄력성, 밀도(치밀함, 촘촘함)
  • 무늬 pattern: 모티프라고 하는 기본 문양을 반복적으로 배열하는 것.

3.2. 패션의 원리


  • 조화의 원리
    • 유사성
    • 대비/대립성
  • 통일과 변화의 원리
    • 근접: 분리된 물건을 가까이 둠으로서 연결된 느낌을 준다.
    • 반복성: 물건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한다.
    • 연속성: 물건을 연결시키되, 조금씩 연결을 변화시켜 신선함과 통일감을 준다.
  • 대칭과 균형

  • 규모와 비례
  • 리듬
  • 강조

4. 패션 관련 산업


흔히 프랑스이탈리아가 패션 산업 강국으로 일컬어지며, 파리밀라노의 이미지도 패션의 도시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편이다. 실제로 이쪽 브랜드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 소위 "명품 브랜드"가 되어, 달리 광고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알아서 그 가치를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분야에서 뛰는 디자이너들은 정기적으로 패션쇼를 열어서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고 세일즈한다. 2010년대 이후로는 점차 사회공헌적인 패션쇼도 늘어나고 있으며, 예를 들어 소아암 환아들을 위한 기부를 한다거나, 다운 증후군 환자나 불구가 된 장애인들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3]. 과거에는 좀 비현실적인 8등신 인간들(...)만이 밟아볼 수 있는 무대였지만, 점차 좀 더 "현실적인" 몸매의 모델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 그리고 패션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로 상당수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는 그야말로 괴악한 미학을 뽐내기도 한다.(...)
흔히 세계 4대 패션 위크(Fashion Week)로는 런던, 파리, 밀라노, 뉴욕을 꼽는 경우가 많지만, 런던의 경우 나머지 세 컬렉션에 비해 명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명성이란게 으레 그렇듯 다른 나라, 다른 도시 제품들이라고 질적으로 떨어진단 소린 아니다.

4.1. 패션산업 특징


특징으로는 대표적인 여초집단이다. 해외든 한국이든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디자이너는 여초현상이 가장 심한데. 아이러니한것은 탑클래스 유명 패션디자이너는 대부분 남자라는 점이다. 남자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실력이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많지만, 여자디자이너는 그래도 대부분 중간은 가는편이다. 여초현상이 말해주듯 여자디자이너들이 사실상 패션산업의 얼굴이라고 볼수있다.
서양에서는 패션계에 게이들이 많은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렇게 많은것은 아니며, 일반인 남자들도 굉장히 많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비춰지는것과 달리 회사다니는 일반직장인이라고 생각하면된다. 한국같은 경우 패션계에 종사하는 남자들중 게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오히려 극혐하는 분위기다. 한국문화 정서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업무가 많고 바쁘다보니 그런것에 신경쓸 시간이 없다.

5. 패션 관련 직업


  • 패션 디자이너
  • 패션 모델
  • 패션 머천다이저
  • 모델리스트
  • 패션쇼 디렉터
  • 패션 스타일리스트
  • 패션 에디터
  • 패션 포토그래퍼
  • VMD
  • 샵매니저
  • 패션그래픽 디자이너
  • 3D패션 스페셜리스트

6. 패션 교육


대학교에서 패션전공을 하던지, 패션학원에서 배울 수 있다.
학교와 학원은 차이점이 있는데, 대학에서는 조형원리부터 시작한다든지 컬렉션을 구성하다든지 등 패션을 크게 배운다면, 학원은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게 실무중심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육의 문제점으로는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다하더라도 취업하게 되면 도식화 한장 제대로 못 그려서, 마치 새로운 분야에 입문한 것처럼 처음부터 실무중심으로 공부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미대출신 4년제 패션전공 학생들은 미술도 최소 2~3년 공부하고 패션도 4년을 공부하고 사회에 나온 건데, 실무중심으로 배워온 학원출신보다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경력이 생기고 지위가 올라가고, 혹은 자신의 브랜드를 전개하게 되면 무조건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때부터는 미술을 하고 대학에서 크게크게 구성하면서 배워온 것들이 매우 쓸모있게 된다. 패션에 대한 깊은 생각이라든지, 미적감각, 철학적 접근, 패션과 예술의 차이, 카피에 대한 고민, 컬렉션의 효율적 구성 등 이런 것들은 시간이 많은 대학생들이 아니면 사실 고민할 시간도 토론할 시간도 없다. 그러니 사회에 처음 들어오면 몇 년은 구른다 생각하고 인고의 시간을 갖고 참다보면 자신이 공부해온 것이 쓸모없는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되고, 빛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학원교육같은 경우 실무중심에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현업에 종사하거나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경우가 많아서 회사업무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학원교육만 잘 받아도, 실무에 대한 감을 어느정도 잡고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을 해서 시장경험까지 더해져 일은 어느 정도 하게 되지만, 문제는 한계점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는 것에 있다. 즉 밑천이 들어난 것인데, 그때서야 부랴부랴 미술사나 복식사도 찾아보겠지만, 몇 페이지 보다가 덮을 확률이 높고, 원래 하던데로 패턴데로 똑같이 맴돌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경우 몇 년의 긴 시간의 계획을 잡고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발전은 없는데, 나이도 30살 이상이 된 경우가 많기에 공부도 잘 안 된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렵더라도 시간을 만들어 기초적인 것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7. 패션의 문화별 차이


문화마다 허용되는 패션과 금기시되는 패션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아시아권 국가에서 타이츠는 반 속옷에 가깝게 여겨지지만, 러시아동 · 북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타이츠는 청소년들의 유니섹슈얼한 겨울나기 복식이며, 영미권 여성들에게 타이츠는 바지 대용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복장이라도 문화마다 그 맥락과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
한편 기후 풍토에 의해 패션이 반강제로(?) 정해지기도 하는데, 풍문에 따르면 제국주의 시대 때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와 남미 오지에서 현지인들에게 강제로 서양식 복식을 입히려고 시도했다가 피부병이 돌고 거하게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즉 습기가 높고 젖기 쉬운 환경 때문에, 피부병이 발생했다는 이야기. 또한 옷이 생경하기 때문에 세탁에 민감하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케이스에서는 옷이라는 개념 대신 피부에 물감 등으로 치장을 하거나 문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민족적 표지(ethnic marker)라고 부르는데, 옷을 입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내부인과 외부인을 식별하기 위한 용도다.
종교나 인습에 의해서 패션이 고정될 수도 있다. 일례로 중동 지역에서는 차도르, 부르카, 니캅 등 여성의 신체를 가급적 보여주지 않은 채 검은 천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이런 패션은 이슬람권 국가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다.[4] 과거 청교도들도 금욕을 위해 온몸에 걸칠 옷들을 전부 회색으로 통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별 패션 차이는 많이 완화되고 있는 편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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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보수적인 나라로 여겨지는 이란에서도 패션에 대한 인식은 점점 바뀌고 있다. 서양의 문물을 문란하게 여겼던 이란의 기성세대와 달리, 서양으로 유학을 갔다 온 이란의 부유층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란의 전통적 문화에 반하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그들의 럭셔리한 라이프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일부 한정. 그런데 의외로 이란의 특히 테헤란에서의 이런 모습은 1970년대까지는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팔레비 왕조가 물러나고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란의 사회상이 변화된 것이라고. 구글에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모습을 치면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물론 세속화되고도 다시 되돌아간걸 보면 그 시절도 완벽히 자유로웠다고 보긴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만 말이다.

8. 패션업계와 일반인의 괴리감


일반인들과 패션업계는 괴리감이 매우 크다고 할수있는데,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패션은 보통 코디, 스타일링이 대부분이라고 할수 있다. 즉 패션=코디라는 일반인의 생각에 업계측은 난감할수밖에 없다.
패션이라는 분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기때문에 그것만으로는 규정할수 없다. 정작 패션디자이너들만 하더라도 자신의 코디에 신경쓰지 않는 디자이너들도 꽤 있는데, 패션과 관련된 해야할일이 100가지인데 코디는 그중에 1가지일뿐이라, 코디에만 집중하다가 다른 중요한 일들을 놓칠수는 없기때문이다. 코디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자신이 디자인한 옷의 스타일링에 신경쓰지 않는것은 아니다. 디자이너의 스타일링 능력은 자신의 디자인능력보다 잘하는 경우가 많으며,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군이 따로있지만 패션디자이너 자신이 패션화보라던지 패션쇼에서 스타일리스트까지 겸하는게 보통이다.
일반인의 패션에 대한 이런 인식은 문제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는데, 패션에 관심이 많고, 코디를 잘하기때문에 자신은 패션을 꽤 잘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패션사업을 하는 경우이다. 사실 재능이 있다면 학교나 패션학원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패션산업에 대해 어깨넘어서라도 배워야하는데, 아무런 지식없이 실무에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코디능력을 주무기로해서 할수 있는 패션사업은 거의 없다고보면 되고, 그나마 사입이 있긴하지만, 사입은 패션업계라기보단 유통업으로 분류되고, 정작 패션이라는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일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니 일반인은 패션에 관심이 많더라도 이런 우를 범하는 일은 있으면 안된다.

9. 기타


  • 스코틀랜드인 남성들이 입는 킬트는 16세기에서 비슷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본래 지금의 위상이나 형태가 아니었다. 이후에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보편적 전통의상으로 만든 것.

10. 패션 관련 문서



[1] 당시 사람들이 성경시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구체적으로 뭘 입었는지 알 턱이 없으므로 당시 평상복을 그려넣는 경우가 많았다.[2] 인터넷에서 1990년대 후반 광고들이나 음악 프로그램 사진들을 검색해 보면 쏟아져나온다.[3]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패션쇼가 개최된 적 있다. 2012년에 서울특별시에서 주최한 패션쇼는 환경보호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개최되었고, 이 쇼에 서울시장인 박원순도 일일 모델로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다. [4] 이것을 무조건적으로 비판만 해도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실한 신자들이 금욕하는 것과 같은 맥락. 다만 이러한 것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다.[5] 인터넷의 발전으로 문화별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