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욱(부활)

 



'''부활의 7대 보컬리스트
이성욱
'''
'''출생'''
1974년 12월 7일 (49세)
'''데뷔'''
1991년 아기천사 2집 앨범 '아기천사'
'''활동'''
아기천사 보컬, 신조음계 보컬
부활 보컬(2000~2001)
1. 개요
2. 부활에서의 짧은 활동과 결별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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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래 신조음계, 아기천사의 보컬이었으며 제1회 포토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이후에 부활의 7대 보컬로 영입이 되면서 활동했다.
특유의 미성과[1] 높은 음역대, 그리고 Fa 발음이 특징. 창법에서는 좋아하는 밴드인 스틸하트의 보컬 밀젠코의 영향이 드러난다.
부활 탈퇴 이후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싱글을 몇 곡 발표했는데, 그리 조명받지 못했다. 이후 가수에서 은퇴했다가 2011년 <누구나 사랑을 한다> 이후 다시 가수로 복귀했다.
긴 공백기를 가졌지만 이후에 복귀하고 성량은 조금은 떨어졌지만 특유의 미성과 가창력이 아직도 보존이 됐다는게 놀랍다. 성대결절이 왔었다는걸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을 정도로.
2019년 현재는 남양주에서 수제맥주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단과 함께 종종 이곳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열곤 한다. 4대 보컬 김재희의 말로는 인근에서 제일 잘나간다고..

2. 부활에서의 짧은 활동과 결별


부활의 7대 보컬로 영입이 되어서 7집 'Color'으로 부활의 앨범을 내게 되었다. 유명한 곡으로는 '리플리히', '안녕' 등이 있다.
하지만 7집을 내고 소속사가 얼마 안가 부도가 나면서 음반을 거의 팔지 못하게 되면서 밴드가 위태해지자[2] 리더인 김태원이 때마침 러브콜을 보내오던 이승철을 보컬로 기용하면서 그를 내보내게 되었다. 김태원은 잠시 나가 있으면 다시 불러주겠다고 약속했으나, 8집인 '새벽' 이후에 이승철이 부활을 떠나버리고 결국 정단이 보컬을 맡게되었다.
2010년 남자의 자격에서 이성욱이 출연하여 자진탈퇴가 아니라 짤린 것이라고 말하자 김태원이 재물에 눈이 어두워 그랬다면서 사과했다. 영상
이후 2013년 박완규와 함께 출연한 '고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밝히길 당시 이성욱의 상황이 안정적인 수입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 가수로 복귀하긴 어려웠다 한다. 부활에 들어가기 전부터 정단과 알던 사이인 걸 감안하면 이성욱이 안정적인 수입 때문에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소개해준 사람이 정단일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이승철과 본격적인 음반 작업에 들어가는 김태원에게 무릎 꿇고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일화를 보면 일단 방출 당시에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던 게 확실한 듯. 김태원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탈퇴 후 이성욱이 미사리에서 부활이름을 사용해서 공연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방출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이성욱이 부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3. 여담


9집 보컬리스트 정단이성욱이 7대 보컬이 되기 이전에도 친하게 지내던 사이. 녹음실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있는 이성욱에게 정단이 '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라고 묻자 이성욱은 '아... 몰라 부활에서 계속 노래하래. 짜증나' 라고 대답했다고(...). 본인 말로는 실제 성격은 상당한 악동이라고 한다. 또한 김태원이 역대 보컬중 가장 싫어하는(...) 보컬. 노래 실력은 극찬하지만 워낙에 불성실했다고(...).
2011년 부활이 재조명 받으면서, 정단, 박완규와 같이 부활의 콘서트에 종종 나와서 부활의 레퍼토리를 부르며 가수로서 복귀했지만, 불행하게도 2011년 6월 26일 공연장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를 당해서 중태에 빠져서 활동을 중단했다. 뉴스에 나오기를 비오는 날 택시에 치여 상당한 부상을 입었으며 인도에 쓰러져 앉아 구급차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의료진들이 말하기를, 뇌에 출혈이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혼미했다고... 어느정도 회복된 뒤 박완규가 mc를 보던 음악프로에 출연해 리플리히를 열창했는데, 박완규는 이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해서 부활의 큰집, 작은집, 분가된 집까지 전부 모였다고(...) 담담하게 이 친구가 아직도 어깨에 철심이 있습니다... 하는게 포인트. 지금은 회복했고 정단, 박완규와 함께 부활 콘서트에 출연하면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통신사 쪽에서 일하면서 연봉이 1억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누구나 사랑을 한다>를 녹음한 이후에 노래를 너무나도 하고 싶었는데, 김태원이 말하기를, '''"너도 이제 노래만 하면 돼!"''' 라는 조언을 듣고(...) 아내를 설득해서 다시 가수가 되었다고(...) 지금 노래를 못하면 나중에 너무 후회가 될것 같다는 말에 아내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고. 이유는 너무 간절해보였다고(...) 박완규의 권유로 천년의 사랑을 리메이크 하는 등, 가수로서 활동했다.
부모님 없이 자라서 가족이란 존재가 항상 그립다고 밝혔다. 조금 놀랄만한 이야긴데, 아내와 결혼해서 아이를 가져보려고 했지만 음악적인 좌절도 있고, 힘들게 살아서 멀쩡해보여도 몸이 많이 망가져 정상이 아니라 잘 되지 않았고, 의학의 힘을 빌려도 힘들었기에 아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가수생활을 접고 직장생활을 한 이유[3]는 입양을 하려면 어느정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4] 방송에서 밝히기 전엔 주변 지인들도 몰랐고, 박완규, 김태원, 정단 세명만 알았다고 한다.

[1] 다만 실제 목소리는 의외로 허스키한 편이다. 본인이 직접 밝히길 발성을 미성처럼 내는 것이라고..[2] 어느 정도냐면, 6집은 김기연의 성대결절로 실질적인 활동은 아예 하지도 못했는데 그 6집보다도 망했다. 토크쇼에서 6집이 바닥을 쳤다면 7집은 땅을 파고 들어갔다고.[3] 위에 언급된 부활에 다시 복귀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4] 박완규와 마찬가지로 미사리에서 목격담이 꾸준히 들려올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