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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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에 결성되어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이며 시나위, 백두산과 함께 대한민국의 1980년대 그룹 사운드를 대표하는 3대 밴드이다.
밴드 음악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개척자들이라고 불리며 결성 당시는 헤비메탈 밴드라 홍보했었다. 문제는 분명히 헤비메탈을 '''지향'''한 건 맞는데 막상 결과물은 하드 록 정도에 가까웠고 5집 이후부터는 하드 록의 느낌마저 내다버렸기 때문에 록 밴드라 정의한다. 김태원도 그 당시 홍보는 잘못되었다며 하드 록이 맞다고 말한다. 13집에서 다시 하드 록으로는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 1980년대
2.1. '디 엔드' 시절 과 '부활'의 탄생
김태원, 이지웅, 황태순, 이태윤[1] 이 결성한 '디 엔드'가 시초.
김태원이 고등학교 졸업 무렵 지방 야간 업소[2] 에서 기타 연주자로 일하던 중 월급을 압류당하고 술취한 손님들의 횡포에 회의를 느끼고 스무살 무렵 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대문의 악기 연습실에서 이태윤을 만나 1985년 4월7일 '디 엔드'[3] 를 결성한다.
시나위 출신의 김종서가 시나위에서 해고당한 후[4] 여러 밴드를 거친 뒤 1985년에 디 엔드에 들어간다. 김종서의 가입과 함께 1985년 7월 3일 부활로 개명한다.[5] 이후의 부활 공연에서 그 해 최다 인원 기록까지 세워서 1985년 부활은 보컬상까지 받게 된다.
이 당시 부활의 공연은 1, 2부로 구성되었다. 김종서를 제외한 4명 멤버의 기량을 뽐내는 1부, 그리고 김종서가 등장하여 완벽한 로버트플랜트 카피로 마무리 짓는 2부로. 1985년 부활은 파고다의 수많은 밴드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으며 이 때부터 강남엔 시나위, 강북에는 부활이라는 이야기기가 생겨났다. 또한 당시에는 양 기타리스트 김태원과 이지웅의 비중이 거의 비슷했다. 카피곡의 솔로는 대부분 이지웅이 도맡아 했고 자작곡의 솔로는 김태원의 분량이 조금 더 많았다.
그러나 김종서는 부활로 활동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또다른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한다. 김종서는 훗날 방송에서 리더를 누가 하느냐의 문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6] 현장토크쇼 TAXI에서는 매니저와의 갈등이 탈퇴의 원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7]
그 즈음 김태원이 연습실에 자주 놀러오던 동네 후배였던 이승철이 1985년 말에 공개 테스트를 받게 된다. 이승철의 홈피에 가보면 자신이 김종서의 후임으로 임명된 것은 어머니의 돈줄 땜이었다는 얘기를 농담이라고 적어놨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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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태원(기타), 김종서(보컬), 황태순(드럼), 이태윤(베이스) 이지웅은 사진에 없다.
2.2. 1986: 1집 Rock Will Neve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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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987: 2집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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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멤버 왼쪽부터 이승철, 정준교, 김태원, 서영진,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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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90년대
1990년 김태원은 홍성석, 황길상, 이현주[10] , 황태순과 함께 '''Game'''[11] 이라는 밴드를 만들지만 김태원은 1987년에 이어 앨범 발매 1년 후인 1991년에 대마초 복용으로 또 입건되어 교도소에 가게 되는 바람에 음반도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냥 어영부영 해체되었다. 자세한 건 Game(밴드) 참고.
3.1. 1993: 3집 기억상실
[image]'''기다림을 억누른다는건 지나간 상황을 뛰어넘고자 실행하는 처음이다.'''
3집 멤버 왼쪽부터 김태원,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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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995: 4집 잡념에 관하여
하지만 3집 이후 1995년에 낸 4집 '잡념에 관하여'는 상업적으로 실패를 하게 되며 김재희는 팀을 떠나게 된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난해한 음반으로 3집의 히트로 벌어들인 모든 돈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레코딩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프로그레시브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앨범으로 김태원은 10분에 가까운 대곡 '잡념에 관하여'를 자기의 수작 중 하나로 꼽는다.
통일을 테마로 한 '244!저무는 날의 끝', 소말리아 기아 난민을 소재로 한 '늘 너의 곁으로'는 록의 사회 참여 의식이 살아 움직이는 곡으로 록의 진정한 정신을 보여주는 노래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244 저무는 날의 끝'의 가사에 나오는 숫자 1983은 남북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시작한 해이며 244는 부산과 신의주 사이를 달리다가 분단 후 멈춰 버린 미카형3-'''244'''호 증기기관차를 말한다.
여담으로, 4집 앨범 커버가 페이스북 로고와 거의 일치하는데 Photo & Art Work은 K.T. KIM이 디자인 하였다. 당시 9살이던 마크 저커버그가 부활 앨범을 봤을수도(...)
여기에서 이 앨범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애정어린 분석을 볼 수 있다. 다들 그렇게 평가하듯이 완성도는 굉장히 높고 김태원의 곡을 오래 들어온 사람에게 100% 김태원 그 자체인 앨범을 묻는다면 대부분 이 앨범을 거론할 정도로 김태원 본인의 색이 진하게 들어간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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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멤버 왼쪽부터 김태원, 김재희, 정준교, 김성태
3.3. 1997: 5집 불의 발견
4집의 참패 이후 김태원은 송탄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박완규를 보컬로 영입하고 드러머도 정동철(부활 탈퇴 후 현재는 송탄에서 드럼라운드라는 드럼학원을 운영 중이다)로 교체하며 5집 '불의 발견'을 발표하며 부활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린다. '불의 발견'이란 제목은 타오르는 불 같은 목소리의 박완규를 발견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동명의 연주곡도 앨범에 실려있다.
타이틀곡인 'Lonely Night' 말고도, 같은 앨범에 수록된 ''''마술사'''',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한 '21C 불경기',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믿음' 등 명곡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박완규도 이때 파워풀하고 군더더기 없이 처리되는 고음과 카리스마#s-1를 보이며 당대 최고의 고음을 자랑하던 김경호와 비교될 만큼의 네임밸류를 형성하지만 5집 이후 팀을 탈퇴해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보컬이며 연주며 정말 하나같이 고난도 노래이기때문에 녹음했던 당시의 박완규는 살이 쏙 빠졌다고한다. 현재의 김태원도 다시 치려면 2달은 연습해야 될거같다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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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멤버 왼쪽부터 김태원, 박완규, 정동철, 정준교
3.4. 1998: 6집 이상(理想) 시선
이후 춘천에서 날고 긴다, 남자·여자 노래를 가리지 않고 고음이 한계없이 올라간다는, 하늘소리·킹덤 등 밴드에서 활동하던 김기연을 보컬로 영입한다. 또한 4·5집에서 객원멤버로 참여하던 키보디스트 겸 백 보컬 최승찬이 정식으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드러머도 최승찬의 추천으로 티삼스에서 드럼을 치던 채제민으로 변경되면서 1998년 8월 3일 6집 '이상(理想) 시선'을 발표하게 된다. 김태원이 방송에서 "가장 많이 괴롭힌 보컬"이라고도 했을만큼 녹음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경국 녹음 과정에서 보컬의 성대결절이 생기게 되었다. 방송에서도 김태원은 그 때문에 활동도 거의 못했다고 하며 언급을 피해가지만, 최근 영상들이 발굴되며 성대결절에도 불구하고 활동은 이어갔다. 사실 2011년 박완규에게 비밀을 부르게 한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김태원은 성대결절에 걸렸다고 보컬을 바꾸거나 하지 않다. 실제로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라이브 영상도 몇개 남아있다. 그러나 결국 부활은 2집 때처럼 임시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앨범이 상업적으로 실패한 것도 있으나 근본적인 해체 원인은 김태원과 최승찬의 감정의 골이 생기며 김태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불화로 탈퇴하며 주니퍼를 결성. 부활은 임시해체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때 채제민은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최승찬의 권유로 팀에 합류했기에 최승찬의 말을 듣고 떠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기연도 자연스레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곡인 "가능성"은 부활의 서정적인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노래이다. 또한 이 곡의 녹음 직후 보컬 김기연의 성대결절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곡의 라이브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아직도 라이브 애창곡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정규 콘서트 뿐 아니라 락 페스티벌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수록곡인 "너에게로"는 "가능성"보다 더 타이틀곡 같은 곡으로, 뮤비도 찍고 활동도 이 곡으로 한 것을 보아 더블 타이틀 곡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최근에 6집을 김태원이 언급하며 타이틀곡이라고 하기도 했다. "가능성", "거리"와 한께 김태원이 6집시절을 얘기할 때 자주 이야기하기도 하고 부활이 출연하는 방송에 BGM으로 깔리기도 한다. 이 곡을 원래 박완규가 부를 예정이었고 Lonely Night처럼 박완규의 맞춤곡으로 작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의 인터뷰 등을 보면 부활 맴버들의 말이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21] 또한 최근 방송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 곡의 키는 김기연이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내리겠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거리"라는 곡 또한 부활의 서정성을 많이 드러내고 있으며, 김태원이 자주 언급하는 곡이다. 이 곡 또한 음역대가 꽤 높다.
어쨌든 김기연 또한 음역대가 높은 보컬이었기 때문에 5집과 마찬가지로 부활 앨범중 특히나 고음역대의 노래로 이루어졌으며 5집만큼은 아니지만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성대결절도 원래 미성의 하이톤을 가진 김기연이 부활의 색깔에 맞추기 위해, 두꺼우면서도 높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보컬 스타일을 무리하게 바꾸면서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6집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팀이 불화로 해체 수순까지 가기도 했고, 김기연에게 미안한 마음 또한 있었기 때문에 잘 언급하지 않고 있었으나, 2020년즈음 김기연 시절의 라이브 영상이 올라오고, 김태원클라스나 채제민의 유튜브 등에서 점점 다루기 시작하더니, 2021년 1월 방송에 김태원과 함께 김기연이 등장하면서 베일에 쌓여있던 6집 시절의 이야기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여담으로 김기연은 가수 생활은 접고 춘천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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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멤버 왼쪽부터 채제민, 정준교, 김태원, 최승찬, 김기연
4. 2000년대
4.1. 2000: 7집 Color
6집의 참패 때문에 7집에서는 김태원 이외의 멤버가 모두 교체되는 희대의 사태가 일어난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던 7집 'Color'(2000)에서는 아기천사·신조음계에서 활동했던 이성욱을 보컬로 영입하고 작곡가로 이름을 알려가던 엄수한과 최재훈 밴드 등에 몸담으며 베이스 세션으로 지명도가 높았던 서재혁, 전인권 밴드에서 활동했던 김관진이 합류했다.
그러나 역대 앨범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작품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사의 부도로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CD 생산 또한 2천장에 그치며 절판되고 만다. 그리하여 7집은 저주받은 명반이란 꼬리표를 달게 된다.
하지만 7집이 실패만 있던 것은 아니다. 7집에서 기존의 올드팬 외의 매니아층이 두터워졌고, 그 당시에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몇 년 지나 부활을 알게 된 팬들이 7집 음반을 구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뒤지고 다니는 기현상이 종종 벌어진 것이다. 오프라인에 흩어져 있던 부활의 팬들은 7집을 전후해 온라인에서 모여들기 시작했고 부활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공식 팬클럽인 다음 카페 부사모(부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대표곡은 타이틀곡인 '안녕'과 부활 팬 사이에서 그보다 더 유명한 '리플리히'. 리플리히는 독일어로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독성 있는 김태원의 기타 전주와 보컬 이성욱의 절제된 파워가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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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멤버 왼쪽부터 이성욱, 김태원, 엄수한, 김관진, 서재혁
참고로 위의 사진은 2000년에 발매된 앨범에서만 볼 수있고 2011년 재발매 앨범에서는 볼 수 없다.
7집 초판본은 재발매 되기 전 중고음반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었다. 이성욱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그 많던 7집을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은 라면 받침대로 이용하다가 분실되었는데 2011년 뒤늦게 재조명 되었을 때는 한장도 남은게 없어서 중고음반시장에서 40만원에 겨우 1장 구입했다고(...)2017년 현재는 초판본, 재판본 모두 품절된 상태이다.
2013년 남자의 자격 불쌍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편에 나온 이성욱은 그당시는 CD가 어느 정도 나가던 시절이었음에도 600장만 나갔다고 하자 김국진이 '아니 캐롤송 낸 거예요?' 옆에 있던 윤형빈은 '내 청첩장도 1000장 나갔는데' 라며 씁쓸해했다.
타이틀곡 안녕은 400프로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여 만들었다. 여기서 프로란 스튜디오를 3시간 반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며 아무리 길아봐야 10프로 안으로 끝나는데 400프로라니... 1프로가 3시간 반이면 분으로는 210분이다. 여기에 400을 곱하면 84000분. 한시간이 60분이니 나누기 60을 하면 1400이니 1400시간이 된다. 1400시간을 하루의 기준인 24로 나누면 58.333...인데 24×58=1392다. 그러니까 안녕 하나 녹음하는데 무려 58일하고도 6시간, 거의 두달을 공들인것이다.
2018년 12월에 고음질 180g 블루컬러 바이닐(LP)이 한정판으로 출시되어 예약판매에 들어갔다. 앨범명은 부활 7th BEST.
부활 7집은 9곡의 신곡이 담긴 DISC 1과 1집부터 6집까지의 베스트를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담은 DISC 2로 구성되어 있다. 본 한정판 고음질 바이닐(LP)에는 두 번째 DISC에 담긴 베스트 10곡을 여과 없이 담아내었다고 한다.
4.2. 2002: 8집 새, 벽
7집의 실패 이후 이성욱은 팀을 떠나게 된다. 훗날 이성욱은 인터뷰에서 본인의 의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이승철이 자신을 밀어냈다고 밝혔고 김태원도 자신이 재물에 눈이 멀어 이성욱을 탈퇴시켰다고 인정했다. 김태원은 다시 이승철을 보컬로 맞이하고 드러머 채제민을 재영입하여 스페셜 음반을 기획한다.
공감토크쇼 놀러와 and 드라마에서 밝혔지만 이승철의 재결합으로 부활의 앨범을 낸다는 조건하에 작곡에 들어갔는데 워낙에 곡이 안 나오고 아내가 캐나다로 말 없이 가는 등 힘든 상황이 반복되자[22] 강변북로에서 아내가 너무 그립고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자살충동까지 겪다 꿈에서 '''Never Ending Story'''가 생각이 나 작사·작곡했다고 한다.
이 앨범이 8집 '새, 벽'이다. 1·2집의 명곡들을 3집 이후 부활의 특징인 '절제된 느낌'으로 추려낸 것은 보너스. 판매량은 약 25만장으로, 이 당시 MP3로 음반 시장이 침체되었고 월드컵까지 겹친 걸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수치다. Never Ending Story는 2002년 노래방 애창곡 1위 곡이기도 하다.
타이틀곡 "Never Ending Story"는 부활을 대표하는 발라드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발라드로 손꼽힌다. 엠넷에서 각종 시상식과 음원 차트 자료, 음악 전문 도서, 음악 전문가의 의견 등에 따라 선별한 레전드 100 송에서 "서정 록의 부활"이라는 평가와 함께 선정되었고, 음악취향 Y의 발라드 베스트 100에서 18위로 선정되었다. 또한 이 곡으로 지상파에서 9년 만에 sbs 인기가요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통속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가슴을 건드린 김태원의 보편적인 가사와 멜로디", "매번 감탄한다. 처음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항상 드는 생각은 어떻게 이런 멜로디를 만들 수 있을까이다. 김태원이 작사/작곡한 「Never Ending Story」는 인트로부터 끝까지 어색한 곳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면서도 비단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다. 쓸 만한 멜로디는 이미 다 바닥 났다는 21세기이지만 여전히 보석 같은 음표들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승철의 목소리도 노래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라는 호평을 받았다. 김태원이 첫번째로 출연한 현장토크쇼 TAXI에서 모 음악대학에서 매우 난이도가 높은 곡으로서 소개되고 있다고 한적이 있다. 코드 진행이 단어 하나하나 마다 달라지는 이상한(?)곡.
하지만 문제는 정규 보컬이었던 1집, 2집과는 달리 8집에서 이승철이 제작자인 탓에 부활팀과 제작자의 시각차로 인한 갈등으로 이승철은 8집을 끝으로 다시 부활에서 탈퇴하게 된다.[23] 이 인터뷰를 통해 드디어 진실이 드러났는데, 이승철이 계속 '이승철과 부활'이라는 명칭을 계속 고집했고 그 타이틀로 공연실황 DVD 이승철 with 부활이까지 발매되자[24] 이승철과의 갈등은 더욱 심해져 결국 이승철이 떠나가게 된다.[25] 당시 이승철은 MR 들고 혼자 행사를 뛰기도 했고 이 부분 역시 갈등의 요소였음을 김태원이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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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집 멤버. 왼쪽부터 김태원, 채제민, 엄수한, 이승철, 서재혁
4.3. 2003: 9집 Over the Rainbow
2003년 발표한 9집 'Over the Rainbow'에서는 1000 :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정단을 보컬로 영입하고[29] 보다 밴드 멤버들의 색깔이 개성적으로 살려내어 채제민, 정단, 서재혁의 곡도 수록된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하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후 타이틀곡 '아름다운 사실'이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에 삽입되면서 영화의 흥행과 중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부활도 중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여 북경차트 TOP 10에 오르게 된다.
중국의 명감독 천카이거가 총 제작을 맡은 24부작 TV드라마 화니재일기(和니在一起)의 주제가로 아름다운 사실이 선정되어 이를 기점으로 중국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자 북경을 중심으로 두달간의 프로모션 투어를 진행하였다. 아름다운 사실을 중국어로 부른 미려적사실(美麗的事室)과 사랑할수록을 중국어로 부른 설야적가(雪夜的街)가 수록된 중국어판 싱글앨범이 중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는데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어판 싱글 앨범으로 기록된다.
국내에서도 9집은 조용히 잊혀진 듯 언급되나, 사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뒤늦게 컬러링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중국 현지 활동을 마친 후, 정단은 음반사가 원하는 보컬리스트 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이 이유로 정단을 방출한 걸로 알고 있고 정단 본인도 예능에서 그런 농담을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이유라는 것이 채제민 유튜브에서 밝혀졌다.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김태원이 음악감독을 담당한 작품으로 이후 이재한 감독과 부활과의 오랜 인연이 현재 순간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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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집멤버 왼쪽부터 서재혁, 정단, 엄수한, 김태원, 채제민
4.4. 2005: 10집 서정
역대 보컬들의 특징인 날카로운 비음이 아닌 새로운 목소리를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준비된 신인 보컬리스트 정동하를 영입하여 제작된 앨범으로 타이틀곡 '추억이면'은 정동하 특유의 깊은 서정성, 더블 타이틀 곡 '슬픔을 이기는 기도' 또한 정통 락큰롤 넘버로 밴드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두 곡 모두 방송 프로그램에서 라이브로 선보였다.
베이시스트 서재혁의 곡인 '노을'이라는 곡은 조인성이 열연한 영화 비열한 거리의 OST에 실리며 뒤늦게 인기를 끌기도 한다. DJMAX 온라인에도 10집 앨범 노래가 수록되었다.
이 앨범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담긴 곡인 '4.1.9 코끼리 탈출하다'가 수록되어 있다. 2005년 4월 19일 건국대 앞 어린이 대공원에서 공연을 하던 코끼리 6마리가 갑자기 동물원 우리를 탈출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자유와 그 허망함'을 노래했다고 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품인 '가브리엘 오보에' 일부를 편곡하고 곡의 후반부는 창작곡으로 만들어졌다. 한낮 시울 시내 코끼리 탈출 소동 #
또한 뮤직비디오에 조승우가 출연하면서 본인의 팬심(...)을 담아 대신 같이 한 곡 작업하기로 했고, 그 결과물이 '작은 너에게' 이다.
10집은 데뷔 20주년 기념 음반으로 3번 트랙인 '슬픔을 이기는 기도'를 제외하면 거의 발라드로 채워져 있는데 발매 당시 대중들이 부활의 발라드를 좋아해줬다는 이유로 팬 서비스 차원에서 발라드로 대부분을 채웠다. 과거에는 타이틀은 발라드로, 나머지 앨범 수록곡은 나름 실험적인 음악을 채운 반면 10집 이후 부터는 음반의 대부분을 발라드로 채워 기존의 부활 팬이나 락 팬들에게 비판을 받기 시작한다.
1집부터 9집까지 찌르는 비음을 가진 고음역들이 주된 보컬이었다면, 정동하의 보이스는 다소 두텁고 발라드에 적합한 편이다. 9집 <아름다운 사실>까지가 김태원표 락발라드, 10집부터는 발라드라고 이해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김태원의 에세이에 보면 "나는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마약과 감옥살이, 알코올중독도 이겨내고 현재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고통이 따라야 히트곡이 나오는 거라면 더 이상 명곡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제 어떤 스토리를, 인생의 가사를 쓰기 위해 가시밭길을 걷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라는 대목이 있는데, 에세이가 2011년 작이므로 정동하가 보컬을 하는 중에 그의 심경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동하 다음 김동명이 김기연을 닮은 보컬이기도 하고.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원래 10집 트랙은 발매된 것과는 달리 계획되어 있었던 모양.
4.5. 2006: 11집 사랑
2006년에 발표한 11집 '사랑'은 정동하가 이승철 외에는 같은 보컬로 두 장 이상의 앨범을 낸 적 없던 부활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앨범이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가 '친구야 너는 아니'의 가사를 선사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이후 이해인 수녀는 부활 팬클럽 카페에도 직접 글을 올리고 시를 헌사하는 등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정동하의 순수한 느낌을 주는 음색은 이때가 절정이며 13집을 기점으로 창법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과는 밴드와의 기대와는 다르게 11집은 부활의 앨범 중에 가장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최악의 부진을 보였으며 (빚과 함께) 그 여파로 활동은 미적지근해졌다. 또한 다른 앨범들이 1, 2년만에 신보를 내고는 했던 것에 반해 휴식기가 길어만 가면서 부활의 긴 역사 중에 가장 힘든 시기로 꼽힐 만하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리더 김태원은 기존의 약간의 신비주의를 버리고 예능에 적극적으로 출연하면서 지명도를 높이고 12집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데 큰 힘을 준다. 김태원의 예능 출연을 욕할 수 없는 게 이런 이유 때문. 하지만 최악의 부진이라고 해도 6집처럼 활동조차 못했던 시기보단 훨씬 사정이 나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긴 시간동안 함께 하던 키보디스트 엄수한이 팀을 탈퇴한다. 비록 엄수한이 팀을 떠났지만 부활 앨범 Thanks To에는 엄수한을 향한 인사가 담겨있다. 이와 관련해 채제민은 앞으로 건반멤버는 뽑지 않기로 했으며, 엄수한이 다시 돌아올때 까지 그 자리를 비워두기로 했다는 글을 부활의 팬클럽에 올렸다. 근황이 궁금하다면, 8대 보컬 정단의 유튜브를 찾아보자. 정단의 콘서트에 참여한 듯.
소속사에 의향에 따라 보컬리스트가 떠나야만 했던 비운의 시기를 지나 '부활 엔터테인먼트'를 창립, 초대 대표는 그동안 부활의 재정을 담당해 왔던 브레인헤드인 베이시스트 서재혁이 맡는다. 대표이긴 하나 멤버 전원이 공평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회사의 창립은 부활의 멤버 변경이 없는 안정기를 가져왔으며 10집까지 함께하던 CJ와 결별하고 11집에 만났던 기획사가 계기라고 한다. 채제민의 제안과 서재혁의 실행력으로 부활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이 즈음 김태원의 예능 출연이 가히 신드롬적인 인기를 가져오며 부활과 부활 멤버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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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집멤버 왼쪽부터 서재혁, 정동하, 김태원, 채제민, 엄수한
4.6. 2009, 2010: 12집 25th Anniversary Retrospect Part. Ⅰ & Ⅱ
12집은 2파트로 나눠서 2009년 <25th Anniversary : Retrospect I>를 발표하고, 2010년 봄에 <25th Anniversary : Retrospect II>를 발표했다.
Part.1의 타이틀곡 '생각이 나'는 김태원의 예능 인기몰이와 동반하여 큰 인기를 누렸으며[39] '''2009 MAMA 록음악상을 수상'''하였다. 베이시스트 서재혁이 이 곡을 타이틀로 하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가 반대했기에 성공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Never Ending Story'를 타이틀 곡으로 할 때에도 "형,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불멸의 히트곡이 되었다고 한다.
Part.1에는 서재혁이 작곡하고 정동하가 서재혁과 함께 가사를 쓴 곡이 수록되었고 Part.2에서는 정동하의 자작곡과 서재혁의 작곡도 수록되었다. 특히 Part.2는 당시 김태원이 입원 중이었고 채제민과 정동하도 부상 중이었기 때문에 서재혁의 역할이 무척 컸다고 한다. 김태원은 "이번 앨범은 재혁이 혼자 만들다시피 했다", 채제민은 "유일하게 이 친구(서재혁)가 건강했기에 앨범이 나올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재혁은 부활에 처음 참여한 7집부터 한 곡 이상 자신의 곡을 수록하고 있다.
2009년으로 정동하와의 계약 기간이 끝났으나, 김태원이 다시 5년 재계약까지 하면서 얼마나 정동하를 아끼는지 보여주었다. 보컬 재계약은 20년을 훌쩍 넘는 부활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채제민은 '''"역대 부활의 음악적 색채를 가장 잘 소화해내는 보컬리스트"'''로 정동하를 이야기했으며 김태원 또한 '''"앨범을 만들 때 보컬리스트에 맞춰 어쩔 수 없이 한두 곡 씩을 제외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정동하의 경우는 그렇게 제외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정동하의 뛰어난 실력을 공인하였다. 정동하 또한 "앞으로 30주년, 40주년에도 함께 하고 싶다"며 밴드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표현하였다.
5. 2010년 ~ 2013년
2010년 남자의 자격에 출현한 김태원이 밴드 미션을 위해서 사랑해서 사랑해서를 작곡하였다. 이후 반응이 좋아 부활이 리메이크하여 2010년 9월 7일 싱글로 발표하였다.
5.1. 2011: Collarboration Project 1,2,3
2011년 초- 베이시스트 서재혁의 제안에 김태원의 어레인지를 더하여 부활의 새로운 비상을 알리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
그 첫 번째로 1월 17일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싱글 '비밀'이 발표되었는데, 5집 보컬 '''박완규'''가 함께 했으며, 발매와 동시에 음원 차트 1위를 하는 등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결국 박완규가 메인스트림에 우뚝 서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박완규는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압도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
2011년 4월 7일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2 김태원이 정훈희에게 선물했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누구나 사랑을 한다'가 발표되었다. 역대 부활의 보컬인 박완규, 이성욱, 정단, 정동하가 한 자리에 모여 노래를 녹음하였다. 김태원이 '''"실력이 있음에도 현 음악계 특성상 조명받지 못했던 이들의 귀환"'''을 위해 만든 곡으로 가스펠적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싱글의 수익금은 전액 아이티 후원에 쓰인다고 한다. 4월 26일 스케치북에서 이들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다.[46] 이 곡에 대한 보컬들의 평가가 재밌는데, 이 곡은 김태원이 병으로 앓아 누웠을 때 쓴 곡이라고 한다. 박완규는 "이 형이 정말로 살고 싶구나" 였고, 이성욱은 "이건 태원이형이 어디서 카피한 것 같은데"(...) 라며 김태원 색깔에서 굉장히 벗어나있다고 한다. 앞서 말했지만 이 곡은 원래 정훈희에게 줬었던 곡이라, 정훈희에 맞춰서 곡을 썼기 때문에 그동안의 김태원의 색깔에서 약간 벗어났을수도 있다.
2011년 8월 4일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의 3번째인 '이별에서 영원으로'가 공개되었다. 보컬은 윤시내. 부활 최초의 여성 보컬과의 협연으로 막내 정동하가 프로듀싱을 담당하였다. 덕분에 윤시내는 무척 편안하게 녹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던 록 성향의 청량한 사운드에 윤시내 특유의 힘있으면서도 담담한 보컬이 인상적인 곡으로 음악 프로그램에서 두 아티스트의 협연 또한 CD 퀄리티의 탁월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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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서재혁(베이스),정단(보컬),이성욱(보컬),정동하(보컬),박완규(보컬),김태원(기타),채제민(드럼)
5.2. 2012: 13집 Purple Wave
2010년 3월 'EBS스페이스 공감'에서 김태원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기승전결을 가진 정규 앨범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번에 12집은 미니 앨범 형태로 발표하게 되었지만 13집은 무리해서라도 정규 앨범 형태로 찾아뵙겠습니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그 약속대로 6월 8일 음원 선공개된 13집 <Purple Wave>는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규 앨범이었다. 전날인 7일, 기자단과 부사모 회원 180명을 초청하여 올레스퀘어에서 앨범 발표 기자간담회 및 쇼케이스가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타이틀 '차갑다' MV(이재한 감독 작품)와 네 곡의 라이브를 선보였다.
아직 CD 발매 이전임에도 음원 차트 1위, 수록곡 전곡의 TOP 10 석권 등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정통 락 발라드 뿐 아니라 펑키 락 넘버, 스래시 메탈 풍의 곡, 연주곡 등 다채로운 사운드가 담겨있어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6번 트랙 '1982' 에서는 랩까지 나온다.
김태원은 "2집 이후로 팀이 깨지면서 상당히 불안한 상태에서 앨범을 발매해왔다. 하지만 이번 13집은 어느 정도 안정된 환경에서 우리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채로 마음껏 작업했기에 그만큼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12집 앨범 발매 당시에는 간경변, 암 등의 지병 때문에 작업이 힘들었지만 이번 앨범은 몸이 회복된 상태에서 1980년대의 진취적 기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20대 시절 부활 느낌의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정동하는 "제가 부활에 들어온 지 8년 됐지만 이토록 에너지 넘치는 음반 작업은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베이시스트 서재혁 또한 "후배 뮤지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앨범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대한민국 100대 앨범에 항상 부활 1, 2집이 이름을 올리지만 다른 앨범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13집이 랭킹 안에 들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신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드러머 채제민도 오랜만에 자작곡을 수록하는 등 김태원의 소망대로 '''멤버 전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락밴드만이 가능한 정규 앨범'''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김태원이 tvN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해 말하기를, 타이틀곡 '차갑다'는 정동하가 부활에 들어온 지 8년만에 '''김태원을 감동시킨 노래'''라고 한다. 현재 창법의 밑바탕이 된 지점.
하지만 반응은 그렇게 뜨거웠던 것은 아니기도 했으며 히트곡이 평가의 기준은 아니지만 이 앨범 역시 김태원의 예능 활동 후 발표한 곡 중 가장 히트친 '생각이나'를 넘기는 별다른 히트곡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정동하와의 마지막 앨범이 되게 된다.
참고로 2번 트랙 '부활'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를 편곡 재구성한 후 부활 멤버들이 상당 분량 새로운 멜로디와 가사를 붙여 만든 곡이다. 이 곡에서 가사가 있는 짧은 부분의 멜로디 중 "아물어 가기 위해" 부분이 7집의 마지막 트랙인 'Second Dimension' 의 "너도 잠이 들겠지" 부분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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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집 멤버 왼쪽부터 채제민, 서재혁, 정동하, 김태원
5.3. 그 외의 활동
2009년 2월 10일에 부활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인 '25th Song Book-사랑,이별,그리움...'[50] 이 발매됐지만, 전체적으로 원곡의 훌륭함에 미치지 못한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12월 김태원과 부활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4부작 ''''스페셜 연작시리즈 - 락 ROCK 樂''''이 방영됐다. 김태원과 신대철이 경쟁하던 시절, 이승철이 합류한 부활의 최전성기 시절 등 1980년대 중반 한국 록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싶다는 감독의 의지로 제작됐다. 탄탄한 배우와 매력적인 스토리로 만들어져 락음악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 뿐 아니라 드라마 자체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2011년 5월 6일 '''5집 '불의 발견'이 재발매'''되었다. 콜라보레이션 싱글 '비밀'까지 수록해서 더욱 소장가치를 높였다.
2011년 6월 20일 부활 팬들의 오랜 숙원이던 '''7집 'Color'가 재발매'''되었다. 이렇게 함께 한 역대 보컬리스트들과의 라이브 콘서트 Wonderful Days 시즌 3를 상반기에 진행하였으며 연일 매진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7월 2일,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OST로 'The Only Road'가 발표되었는데 역동적인 멜로디에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트링 세션, 날카로운 기타와 폭발적인 드러밍, 정확하면서도 리듬감 넘치는 베이스, 질주감 넘치는 보컬 등으로 "'인형의 부활'에 버금가는 명곡"이라는 찬사와 함께 이후 발매될 13집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드높이는데 공헌하였다. 특히 이 곡은 베이시스트 서재혁의 편곡이 빛을 발하는 곡으로 서재혁은 김태원이 작곡한 많은 곡들의 편곡을 담당하고 있다.
11월, KBS 스타 인생극장에 출연하며 부활 멤버 4인을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이때 4집 보컬 김재희가 김태원 편에 출연하였으며 이후 김재희 또한 뮤지컬 롤리폴리에 출연하고 싱글을 발매하는 등 또 다시 역대 부활 멤버의 '''부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 4월 16일, 드러머 채제민이 경인방송 FM 90.7 저녁 10시~12시까지 '채제민의 도깨비 라디오'를 단독 진행했다. 예능에서도 푸근한 입담을 자랑하는 채제민인 만큼 능숙하게 코너를 이끌어갔으며 락 전문 방송을 표방한 것도 큰 특징이다. 동료인 서재혁과 정동하도 고정 게스트로 참여했다.
2012년 4월 28일, 베이시스트 서재혁이 명동성당에서 9년 여를 사귄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서재혁 본인이 핸섬한 외모의 소유자답게 한 달 전에 공개된 아름다운 웨딩 화보가 검색어 1위에 오르며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김태원의 예능 대성공 이후 그가 자연스레 1980년대 락 음악 전성시대를 공중파에 자주 언급하면서 백두산의 유현상과 김도균, 시나위의 신대철도 자연스럽게 예능에 출연하며 긴 공백을 끝내고 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바야흐로 최전성기의 한국 락 음악의 3파전이 '''부활'''한 셈으로 MBC 다큐멘터리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서도 이러한 면이 잘 조명되어 있다.
2013년 5월 15일, Mnet 대한민국 음악의 발견 '''LEGEND100''' ARTIST 프로젝트에서 부활은 레전드 100 - 아티스트에 선정되었으며, 부문별 아티스트에서는 '어렵지 않은 서정적 선율로 록 음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업적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록&밴드(역사성, 영향력, 연주력) 20 부문과 싱어송라이터(작곡, 작사, 프로듀싱, 창작, 감성) 20 부문에 선정되었다. 부활8집 수록곡인 Never Ending Story는 레전드 100송에 선정되었다.
201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보컬 정동하가 부활과 이별했고, 2014년 1월 3일, 정동하가 부활의 보컬을 그만두고 솔로 가수로 전향할 것임이 발표됐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많은 팬들이 충격을 받았는데, 거기다 정동하의 결혼식에 부활 멤버가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는 소식이 퍼지고 별다른 해명이 없자 예전부터 조짐을 보이던 부활의 팬덤은 김태원을 선호하는 팬과 정동하를 선호하는 팬으로 갈라서게 된다. 부활 팬카페 '부사모'에는 여전히 부활과 정동하를 모두 아끼는 모습이 보이지만 디시인사이드의 '김태원갤'과 '정동하갤'에서는 각자 정동하와 부활을 언급하는 게 금기시 될 정도로 사이가 험악하다.[51] 정동하는 10월 솔로 1집 'BEGIN'을 발매하며 부활과의 결별을 다시 일깨워 줬으며, 이를 보는 부활의 팬들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고.
어쨌든 당시 크게 나뉘었던 부활 팬과 정동하 팬의 대립은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으며, 결혼식에 불참한 이후 정동하가 콘서트에 와 김태원과 포옹을 하며 '생각이 나'를 부르거나 채제민, 서재혁과도 종종 연락한다는 이야기를 보면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된 모양. 부활의 10대 보컬인 김동명과도 전화통화를 하면서 부활 얘기를 나누곤 하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어찌됐든 이별의 순간에는 서로에게 조금씩 서운한 감정이 있겠지만 결국 부활을 중심으로 음악적 자산을 쌓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 부활을 중심으로 선배 보컬과 후배 보컬, 심지어 부활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던 손진영과도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감정적으로 대립했다고 볼 수 있는 이승철조차 콘서트에서 부활 시절의 노래를 부르는 상황이니 이 정도면 더욱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6. 2014년 ~ 현재
6.1. 김동명 시기(2014 ~ 2019)
2014년 5월. 탑보컬 출신의 김동명이 유튜브에 예전부터 꾸준히 커버곡 등을 올려왔는데, 이에 김태원 갤러리의 갤러들은 좋은 보컬이 들어왔다며 기대했다. 김동명을 부활의 보컬로 영입했다.
사실 2014년 초부터 7-8개월 동안 부활 보컬의 공백기 때에는 부활 밴드가 절박했던 시기라고 김태원은 말하고 있다. 유튜브상에서 보컬을 찾았던 일화도 화제다. 대중에게 음악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는 부활은 연습실에서 부단한 노력을 하며 음악적 리더 김태원은 보컬 김동명에게 음악적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한다. '김태원은 보컬에게 단점을 주로 말하고 보컬은 단점 듣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면서 부활의 음악적 완성도를 가꾸고 있다 한다.
김동명의 보컬이 담긴 첫 노래인 신곡 '사랑하고 있다'가 2014년 8월 22일, 싱글로 발매되었다.
네이버에 이번 싱글을 프로모션하면서 작업과정을 남겼다.
곡이 나온 후에는 역시 부활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유투브 시절과는 또 다른 원숙해진 보컬과 곡으로 여러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어떤 몰지각한 사람들은 정동하가 탈퇴했는데도 해체하지 않고 또 나왔다고 욕을 한다. 그런 부류는 무시하자.
2014년 10월 25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한국을 빛낸 우리의 트로트' 특집에 참여하여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을 열창하였지만 아쉽게도 폴 포츠를 데리고 온 임태경에게 단 3표 차이로 우승을 못하게 되었다. 이 노래를 듣고 김종서는 새 보컬인 김동명에게 '역사를 새로 쓰고있다. 꺾임이 없는 강한 성대를 지닌 락커의 탄생'이라고 표현하였으며, VOS의 김경록 또한 김동명의 고음에는 '거북함이 없는 듣기 좋은 고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계속될 새로운 보컬의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 편을 기준으로 부활은 불후의 명곡 고정출연이 되었다.
2014년 11월 8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전설의 포크듀오 특집 2편'에 참여하여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을 부르고 431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고 우승하였다.
2014년 11월 11일 신곡 'To be one'이 공개 되었다.
통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곡이다. 김태원은 '독일의 통일과 함께 장벽이 무너졌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장벽이 무너질 때 그곳에서 부활이 공연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길 바란다'고 곡의 제작 과정에서 줄곧 이야기해왔다.[52] 1994년 '244! 저무는 날의 끝' 2002년 '새,벽' 2014년 'To Be One'은 10년 주기로 부활이 발표하는 통일을 염원하는 곡이기도 하다.
2015년 부활은 '''30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불후의 명곡에 보컬 '김동명'이 혼자 경연에 참여하였고, 약 3개월만인 2015년 4월 25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세월과 인생을 노래하다, 음유시인 서유석' 편에 오랜만에 팀으로 참여하여 락 버전으로 편곡한 '홀로 아리랑'을 선보였고, 428표로 최종 우승하였다.
비운의 음반이라 불리던 7집의 타이틀 곡 '안녕'이 추석 특집으로 방영 된 심폐소생송에서 심폐소생사 이영현에 의해 다시 불려지게 되었다. 김태원은 이 앨범에 공도 굉장히 많이 들였는데 실패했다며 아쉬워했고, 또 이 앨범으로 인해 가족이 힘들었다는 사연을 공개했다. 실패한 이유를 꼽자면 홍보사 부도와 함께, 노래가 너무 어려워서라고.
10월 8일 한글날을 기념하여 작업한 '노래처럼'을 공개하였다. 김재희, 박완규, 이성욱, 정단, 김동명이 참여, 보컬 5인방이 같이 불렀다.
불후의 명곡 2 - 전설을 노래하다 221회에서 전설로 다시 한 번 찾아왔다. 전설 특별 무대에선 김태원의 딸, 크리스 레오네가 'Mother'를 불렀다.
2015년,부활의 30주년을 맞아 부활에 들어온지 15년이 된 부활 멤버 베이스 서재혁은 '한 해마다 의식하고 살지 않듯이 열심히 하다보니, 30년을 갈 수 있는 큰 힘이 된 해가 2015년'이라고 했고, 부활은 음악적 리더가 김태원으로 확실히 있고 멤버들 간의 나이차가 있는 그룹의 특징을 언급했고, 드럼의 채제민은 부활이란 밴드명이 잘 지어졌다고 한다.
여담으로 박완규의 입에서 살짝 언급된 건데, 이름 석자면 국민들 대부분이 알만한 가수도 언오피셜 보컬로 채용된 적이 있다고 한다.
다만 항상 탈퇴시키거나, 탈퇴하거나 둘중 하나라고.. 즉, 부활과 작업을 시도라도 해본 보컬은 꽤나 많다는 이야기. 그 외에도 김태원이 부활 보컬로 뽑기 위해 눈여겨본 보컬들도 상당히 있었으나 김경호처럼 부활의 음악과 목소리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경우도 있다.
2016년 2월 21일 MBC 인기예능 음악프로인 미스터리음악쇼 복면가왕에 김동명이 출연했다. 상대는 스틸하트의 밀젠코마티에비치였다. 김동명이 5표차로 아깝게 탈락했다. 프로그램 최초로 팝송대결이었고 김동명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며 팬들이 많이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2라운드에는 밀젠코마티에비치가 부활의 비와당신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원곡감성에 가깝게 불렀다. 그 이후 밀젠코는 라디오나 락페스티발에 초대되어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계속 부르며 부활을 홍보하는 역할까지 한다. 2016년 11월6일 김동명은 복면가왕에 재출연하게 되었으며 가왕전에 진출하여 첫번째 출연 때 겪었던 아쉬움을 풀기도 했다.
2016년 5월 30일부터 김태원이 MBC표준FM라디오 원더풀라디오 김태원입니다(월~금, 오후8시10분~10시)를 단독 진행했다. 진행초기에 건강이 악화되어 2주간 자리를 비운 것을 제외하고 한번도 자리를 비운적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재혁에 따르면 김태원은 일년에 5번 이상 감기에 걸려 고생한다고 하는데 라디오를 진행하고 나서 부터는 감기에 걸린적도 없고 예방적으로 독감 백신을 맞을 정도라고 하니 라디오가 건강지킴이 역할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동료인 채제민과 서재혁도 고정게스트로 함께 하고 있다.
2016년 6월에 들어 '막걸리 드림'과 '서시'[53] 를 발표 했다.
2016년 7월 김종서, 박완규와 함께한 부활콘서트 -Friends 기자회견에서 김태원은 '''이번 공연은 부활이 겪어 온 30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풀어가는 무대가 될 것''' 이라고 하며 변화를 예고 했다. 1대 보컬 김종서는 활동당시 부활로서의 긍지가 있었다. 앨범도 안 냈는데 500석, 1000석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며 회상했다. 또한,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한자리에 이렇게 모인다는 건 한국의 록 씬에서 기적과도 같다면서 후배들에게 선례와 같은 거울이 되고 싶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2016년 12월 3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 활동을 성황리에 마무리 하였다.
2017년 6월 5일 김태원은 라디오 오프닝에서 부활의 앨범 편곡 방향을 의논하기 위해 라디오 끝나고 멤버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7월 김동명의 인스타그램에 뮤비 촬영 중 카페인과 니코틴을 환영하는 근황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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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서재혁, 김태원, 채제민, 김동명
여담으로 김동명이랑 함께할 앨범은 기대를 꽤 많이 받고 있다. 팬들도 김동명의 목소리를 잔뜩 담은 정규앨범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고, 멤버들 역시 김태원의 징크스를 믿고 기대하는 중[54] 패혈증으로 열흘정도 입원한 김태원을 보며 채제민은 '태원이형의 히트곡을 보면 항상 큰 고비가 있었다. 이번엔 믿고 있다' 라는 드립을 쳤다.
2017년 12월 3일 MBC 예능프로그램 '오지의 마법사'에서 신곡 '꽃'의 음원을 일부 공개하였다. 김태원은 곡 쓰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네팔에서 만난 기타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영감을 많이 받아 위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토크에서 밝히길, 2년 반 동안 무려 740번 정도 수정했다고 한다.
2018년 2월 2일 신곡 부활 30주년기념 싱글 '꽃'이 공개되었다.
가을 발매 될 14집 정규 앨범의 첫 번째 싱글로 소개되었던 '''꽃'''은 부활이 겪어왔던 33년간의 여정 속에 그들이 존재 할 수 있었던 그 이유와 의미가사실을 포함한 은유로 그려진 곡이다. "상실과 채워짐과 기다림이란 희열이 어쩌면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슴으로전하고 있다고 한다. # '꽃' 김동명의 절제된 감성이 아름답게 표현됐다.
2019년 4월 29일 보컬 김동명이 5년 계약만료로 인한 부활로서의 활동이 종료되었다. 새로운 부활에 대한 공식발표가 곧 있을 거라고 한다.
김동명 보컬 기간동안 정규앨범이 나온다, 나온다 하다가 몇년째 나오지 않고 계약을 종료하자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나오고 있다. 우선 박완규는 검증된 보컬이고, 탈퇴한 부활 보컬 중에서도 가장 부활과 교류가 뛰어났던 보컬이다. 또한 탈퇴 이후 오랜 기간 암흑기를 보내다 '''부활을 통해 부활한''' 박완규가 친정으로 돌아온 걸 비판하는 팬은 없을 것이다.
허나 주로 나오는 비판은 김동명이라는 좋은 보컬을 앨범도 내지 않고 그냥 떠나보낸 것. 이전부터 김동명이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곡이나 캠페인으로 다같이 부른 곡을 제외하면'사랑하고 있다'와 '꽃' 단 두 곡으로, 그 목소리를 담은 앨범이 없다. 덕분에 김동명 하면 생각나는[55] 뚜렷한 부활에서의 앨범 없이 비교적 젊고 잠재력있는 보컬을 떠나보냈으니, 새 보컬을 아꼈던 팬들이 저조한 음반 활동에 실망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유일하게 정규 앨범이 없는 정식 보컬로 남았으니..
사실 이건 김태원 본인의 심각한 완벽주의적 성향과 관련한 문제인데. 정동하를 제외하고 오래 간 보컬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56]
물론 김동명과 김태원 개인적으론 탈퇴 이후 김동명이 김태원에게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부탁할 정도로 관계는 좋은 편이다. 개인 관계에 대해 크게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지만 13집 이후로 몇년간 나오질 않는 정규 앨범 덕분에 팬들이 지쳐가니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태원은 "유일하게 앨범을 내지 못했다. 5년 동안 고생했다. 사실 리더가 흔들린 것이다. 정동하 탈퇴 후 보컬이 교체되고 사랑 받으면 힘이 나지만 힘들었다."는 심경을 밝혔다.# 10년간 현재 부활의 기반을 다져놓은 보컬이 탈퇴한 만큼 고생을 많이 한 듯. 10대가 아닌 11대로 박완규가 재영입된 것 또한 이러한 심적인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당시엔 김태원이 밝히지 않았으나, 14집 작업 도중 발생한 두 번째 패혈증으로 후각을 잃고 우울증을 앓을 만큼 최근 김태원의 건강 상태 역시 심상치 않기 때문에 본인이 만족할 만한 앨범을 내긴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부활이라는 밴드가 오래된 만큼 건강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바로 멤버 구성원의 건강 문제로 인해 공연에 차질이 생기는 것.
2014년 5월 메인 보컬이 공석인 상태에서 춘천공연을 한 적 있었고[57] , 2016년 8월에는 김태원이 패혈증 치료를 위한 입원으로 필리핀 공연에 불참했으며[58] , 2016년 12월에는 서재혁의 허리디스크 수술로 인해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은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예정된 공연을 차질없이 소화하고 더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6.2. 박완규 재영입 시기(2019 ~ 현재)
2019년 4월 29일 보컬 김동명이 5년 계약만료로 인한 부활로서의 활동이 종료됨에 따라 보컬 박완규를 재영입한다고 발표하였다.
2019년 5월 21일 박완규를 보컬로 한 신곡 '그림'의 음원이 공개되었다.
2019년 6월 18일 채제민의 개인방송에 박완규가 게스트로 출연해 14집 관련 떡밥을 풀었다. 곧 녹음이 시작될 것이며, 5집이 '불의 발견'이었는데 이번 14집은 '불의 재발견'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부활의 음악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9년 8월 5일 부활의 공식팬카페의 From 부활을 통해 서재혁은 개인신상 및 건강 문제로 팀활동을 할 수 없어서 부활을 탈퇴한다는 글을 직접 올렸다. 이로써 서재혁은 20년간의 부활 구성원으로서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음을 공식화하였다. 2018년 베이스 연주자 오디션이 있었고 5명의 세션이 번갈아 가며 비공식 행사에 등장했으나, 2018년 8월부터 베이시스트 이윤종이 발탁되어 2020년 초까지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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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윤종, 채제민, 박완규, 김태원
2020년 초부터는 베이스 기타로 최우제가 영입되어 활동한다. 위에 서술된 5명의 세션 중 하나로, 채제민의 개인방송에 박완규와 함께 나와 봄여름가을겨울에서 10년 정도 베이스 세션 생활을 하고 다른 가수들 세션으로 활동하다가 입단했다고 밝혔다.
2020년 6월 17일, 부활의 공식팬카페의 From 부활을 통해 정규 14집을 예비하는 의미의 싱글의 작업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고 박완규가 글을 올렸다. 김태원, 채제민, 박완규 그리고 새로운 베이스 기타로 영입된 최우제까지 거의 폐관수련하듯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 생방송에서 14집은 12월에 나올것이라 예고하였다.
2020년 9월 11일 신곡 순간이 공개되었다.영상
채제민이 이 문서를 보면서 직접 부활의 역사에 대해 8집까지의 역사를 팩트 체크해줬는데, 아무래도 대부분이 팬들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틀린 부분은 있는듯. 김태원의 유튜브 채널 김태원 클라쓰와 더불어 자세한 뒷이야기가 밝혀지고 있는 덕분에 수정 또한 이뤄지고 있다. 영상이 제법 길긴 해도 부활 멤버 시점에서 자세한 썰들을 풀어주는 흔치 않은 영상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보도록 하자.
7. 결성 30주년
2015년 부활은 결성 30주년을 맞이했다. 부활은 오래 버텼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음악계에 많은 시사점을 남기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한 밴드가 한 이름으로 30년을 버텨왔다는 건 대단한 일 이라고 한다. 성시권 대중음악평론가는 '우리나라 80년대 밴드 음악을 대중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으며 '록이라고 하면 거부감이 있었는데 록 음악의 파격적인 멜로디에 감성적인 발라드를 도입해서 록발라드라고 불리우는 슬로우록을 통해 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했다.
이헌석 대중음악평론가는 '부활은 록이 비주류 언더그라운드 장르라는 틀을 깨줬다. 록밴드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작법과 방식을 보여줬으며 록 음악은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장르가 아니고 수입해 온 장르지만 부활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 모두 한국적 정서와 감성이 베여있다'고 하였으며 '부활은 척박한 한국의 록 음악 시장에서 때로는 대중 가수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때로는 힘든 시기를 묵묵히 인내하며 30년을 지속해 왔다' 라며 ''국내 록 밴드들도 충분히 롱런할 수 있는 팀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30여 년간의 활동에 대한 기록과 업적이라면 누적된 정규 앨범이 13장, 디지털 싱글 12장, 라이브 앨범 3장, 베스트 앨범 2장, 리펙키지 앨범 1장, 프로젝트 앨범 5장, 동료가수에게 작사 작곡 해 준 60여곡, 영화 ost 4장, 드라마 삽입곡 10곡을 포함한 음반들과 부활을 거쳐간 역대 20명의 정규 멤버들이 부활을 떠나서도 각자의 고유 영역에서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59]
김태원은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멤버들이 팀을 나갈때는 괘씸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잘되길 빌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모이니까 좋다. 명절 같다'라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많은 멤버 교체속에서도 20년 동안 부활을 든든히 지탱하고 있는 드러머 채제민, 베이시스트 서재혁의 존재감이야 말로 원년멤버인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카리스마 못지 않게 무겁고 단단하다. 또한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회상3' '사랑할수록' 'Lonely Night' 'Never Ending Story' '아름다운 사실'등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스테디셀러 명곡들은 부활이 '대한민국의 록의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지키는 일등 공신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태원은 '보컬 10명이 다 모이는 날 까지 부활은 계속 될 것이다' 라고 했으며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면 소울의 무게가 엄청 날 것'이라며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을 예고하기도 했다.
부활은 결성 30주년을 맞이하여 언론인터뷰# # #와 30주년 기념콘서트# # # # # # #를 기획하고 홍보영상# # # # # #을 만들어 30주년을 기념하고 대한민국에서 록밴드로 30년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겼다.
8. 정규 앨범 외 음반 활동
부활의 음반활동은 부활(밴드)/앨범 목록문서를 참조하자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2000년대 이후 부터 정규앨범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뮤지컬, 공익송, 예능, 콜라보레이션 앨범활동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9. 주요 출연 프로그램
부활의 주요 출연프로그램은 부활(밴드)/주요 출연 프로그램문서를 참조하자
10. 수상 내역
11. 공연 활동
부활(밴드)/공연 문서를 참조하자
[비공식] [1] 현재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s-1'의 베이시스트이며, 사실 위대한 탄생 경력 이전에 국내 세션 베이시스트 중에서 그야말로 '탑 오브 탑'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디 엔드' 시절에 김종서가 영입되기 전까진 베이스 겸 보컬이었다. 헤비메탈보다 소프트 록을 좋아해서 탈퇴했다고 한다.[2] 드라마 락락락에서 묘사하기로는 용인 관광 카바레, 마산 카바레 등의 나이트 클럽[3]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인 The End에서 감명받은 김태원이 그룹명을 지었다고 함[4] 오디션 겸으로 첫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혼자 느낌에 취해서 막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직후에 신대철에게 해고당했다. 김종서가 시나위에 정식으로 재가입한 것은 부활을 탈퇴한 후이며 시나위 2집부터이다.[5] 부활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데 드라마 락락락에서는 드러머 황태순이 지었다고 나왔으나 그 당시 매니저이던 백강기는 본인이 지었다고 출간된 책에서 밝혔다. 매불쇼에 출연한 김태원은 이태윤이 명명했다고 밝혔다.[6] 당시 큰 형님 이지웅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나이가 모두 같았고 20대 초반이라서 알력다툼이 있었다고 김종서-김태원이 같이 출연한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7] 이 매니저가 훗날 이승철-부활 갈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백강기'이다. 여담이지만 백강기씨는 부활이 곧 31주년이 되는데도 페이스북에서 이승철with부활 혹은 이승철&부활이 맞는 표기라는 드립을 친다(...)[8] 당시 부활에 오디션을 봤던 사람들이나 부활과 안면을 트고 지내던 뮤지션들의 증언에 의하면 몇 차례 보컬들을 섭외했으나 대부분 김태원의 맘에 들지 않았고, 혹은 맘에 들어서 스카웃하러 가면 이미 다른 밴드나 기획사 소속이라 잘 안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계속 부활에 들어가고 싶다고 어필하던 이승철한테 노래를 시켰더니 생각보다 잘했고 그래서 이승철을 몇 차례 객원보컬 형식으로 쓴 후 정식으로 보컬로 기용했다. 하지만 당시 고가의 신디사이저를 사들고 밴드에 가입한 건 사실이었다 한다. 이승철이 김태원에게 처음 인정받은 노래가 Deep Purple의 'Soldier Of Fortune'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부른 노래는 다른 한국 노래였다고 한다.[9] 차이는 없다. KK 다우닝이나 글렌 팁톤이 각자 다른 스타일로(다우닝은 면도날로 깎아내던 날카로운 스타일이고, 팁톤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스타일이다. 연달아 두 기타리스트가 선보이는 솔로가 일품) 동등하게 리드기타를 맡던 전성기 쥬다스 프리스트는 둘 다 동일하게 리드기타라고 표기되며, 누가봐도 리드와 리듬기타 (세컨 기타)로 나뉘는 슬래쉬와 이지 스트래들린의 건즈 엔 로지스는 속지로 리드와 리듬 기타로 다르게 평가된다. 명목상 둘 다 리드지만 실질적으론 역할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둘 다 주 기타리스트를 뜻하는 의미로, 하지만 다르게 표기한 것일 수도 있다.[10] 김태원의 부인과 이름이 똑같아서 동일인으로 추정되었는데, 후에 김태원은 인터뷰에서 동일인이라고 시인했다.[11] 원래 이 밴드의 보컬은 신성우가 처음 영입되었었는데, 신성우가 김태원에게 아무 이유 없이 쫓겨나고, '우리세상'이라는 팀에 있던 홍성석이 보컬로 영입되었다.[12]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 OST 음반에도 실려있다.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OST에 이근형의 편곡으로 다시 실렸다.[13] 기억상실, 그리움 그리운 그림[14] 사랑할수록, 소나기, 흑백영화, 흐린비가 내리며는[15] 8.1.1[16] 시간의 칠[17] 이분쉼표[18] 초판본과 재발매본이 완전히 다른 노래라 해도 된다. 초판본은 코드 변주가 잦은 게 흡사 4집을 연상케 하며 박완규의 보컬 표현 역시 재발매본의 간명함에 비해 훨씬 풍부하고 다채롭다.[리메이크2] A B C D 부활 2집의 곡을 리메이크 녹음.[19] 원곡은 위풍당당 행진곡이다.[20] 2011년 재발매 때 추가.[21] 박완규는 원래 자신의 곡이였다고 하고 채제민은 김기연에 맞추어 적은 곡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곡을 만든 김태원은 김기연에 맞춘 곡이라고 했으나 박완규에 맞추어서 만들었다고 하는등 헷갈려 한다.[최승찬] 보컬인 김기연이 보컬을 맡지 않고, 키보디스트 최승찬이 보컬을 맡음.[22] 하지만 무릎팍도사에서는 아내가 캐나다로 간 건 정신지체가 있는 아들 때문이라고 했다. 이 역시 영향을 미쳤으리라 사료된다.[23] 김태원은 본인이 짐을 싸서 제작사에서 나왔다고 표현했다. 수익도 1/n이 아닌 기획사 사장인 이승철이 주는대로 받았다고 한다.[24] 이승철 with 부활 명칭으로 된 DVD는 김태원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제작자인 이승철은 수익을 더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고 김태원은 부활이라는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리더의 입장이 있지만(...) 앨범만 30만장이 판매되었고 전국단위콘서트가 연일 매진되는 상황에서 제작자인 이승철은 투자 대비 수익은 엄청났을 걸로 예상할 수 있다[25] 당시 상황에 대한 이승철 본인의 입장과 뒷이야기를 KBS 해피투게더에서 후일담으로 밝힌 바 있다.[26] 인천 유나이티드가 이 노래를 공식 구단가로 썼다. 홈경기에서 선수 입장 직전에 이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노브레인의 드러머 황현성이 작곡한 'Here Is The Glory'가 2013년부터 K리그 앤섬으로 선정되면서 선수 입장 시 '새벽' 대신 앤섬을 사용하고 있다.[리메이크1] 부활 1집의 곡을 리메이크 녹음.[27] 부활 2집 수록곡이던 '천국에서' 후속편.[28] 새,벽. 네버엔딩 스토리[29] 실제로는 공개 오디션에서 적당한 인재를 찾지 못해 지인의 소개로 정단을 영입했다고 정단 본인이 직접 밝혔다.[리메이크3] A B C 부활 3집의 곡을 리메이크 녹음.[30] 원래 타이틀곡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추억이면'으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31] 부활 데뷔 20주년 기념으로 조PD가 새롭게 편곡하여 녹음.[32] 3집에 수록된 김재기 추모곡 '8.1.1'을 잇는 곡.[33] 부활 데뷔 20주년 기념으로 조승우가 녹음, 원곡은 5집 수록.[34] 작은 너에게[35] 회상3[36] 거미의 줄[37] 노을[38] 순수[39] 남자의 자격 자전거 여행 미션의 막바지에 BGM으로써 깔렸으며 이 덕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그리고 2010년 남격 송별회에서 정동하가 자신을 무명에서 벗어나게 해준 곡이라 소개한다.[40] 곡이 마이클 부블레의 'Home'과 비교해보면 매우 유사하다. 크게 표절 논란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41] 영화 아이 러브 유 OST로 7집 보컬인 이성욱이 원곡을 녹음. 물론 영화가 대차게 망했기 때문에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고 음반을 구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네이버 뮤직, 멜론등에서 "아이 러브 유 OST"로 검색하면 음원을 구할수가 있다. 그리고 유튜브에도 풀려있기때문에 CD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얼마든지 들을수 있는 노래.[42] 훗날 정동하가 언급하길, 오르골이 '뽈칵'하고 열리는 소리의 소스가 없어 입으로 낸 소리라고 한다.[43] 원래는 정동하의 콘서트,팬미팅에서 들을 수 있는 '너는 알고있니'가 원곡이였다고 한다.[44] 최진영 1집 수록곡, 김태원이 작사-작곡하였다.[45] 도원경의 5집에 수록된 '어느 마음 추운 날' 이라는 곡을 가사와 노래 제목을 바꿔 수록[46] 그 전에 이미 컬투쇼에서 라이브를 보여주었는데, 열악한 환경에도 엄청난 라이브를 보여주었다.[47] 명왕성이 행성에서 제외 될때 소외되어버린 것들에 대한 묘사를 표현했다.[이단비] 이 곡의 작곡가인 이남이의 딸인 이단비가 보컬을 담당했다[48] 정동하, 손현진, 백청강, 이태권이 보컬로 참여했다[49] 1982[50] SG워너비, 문희준, 이루 등이 참가했다. 당시 부활의 보컬인 정동하도 '비(悲)' 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비'라는 곡은 의외로 정동하 팬들에겐 오래오래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51] 최근엔 '전 직장' 정도로는 언급을 하는 분위기.[52] 통일에 관한 김태원의 소망은 2011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할 때에도 본인의 꿈으로 얘기한 것이다.[53] 윤동주 시인의 서시이다.[54] 항상 크게 힘들고 나서 쓴 곡이 레전드가 된다는 징크스. 1993년도 사랑할수록, 2002년 네버엔딩스토리, 2009년 생각이 나 모두 건강상이나 형편에서 아주 큰 문제가 있을 때 탄생한 곡이다.[55] 박완규의 론리 나잇, 이성욱의 안녕, 정단의 아름다운 사실, 정동하의 생각이 나[56] 워낙 유명한 이야기지만 '누구나 사랑을 한다'로 정동하, 박완규, 이성욱, 정단 4명의 보컬이 활동할 때도 노래 한 곡 만들고 나면 살이 쭉쭉 빠진다고 할 정도로 완벽주의였다. 소싯적 박완규가 녹음실에서 귀신을 봤다고 할 정도로 혹독한 방식으로 녹음을 해왔다고.[57] 이때는 건강문제는 아니지만..박완규, 이성욱, 정단이 객원보컬로 참여[58] 기타 세션 한명만 참여[59] 김종서, 이승철 등 보컬 7인방은 현역에서 활동중이며, 위대한탄생의 베이시스트 이태윤, 음악제작자 김병찬, 예술학박사 김관진, 실용음악과 교수로 활동중인 엄수한, 간간히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최승찬, 이지웅, 정동철,정준교는 음악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60] 사랑할수록 2주연속[61] 네버엔딩스토리 2주연속[62] 김태원[63] 김태원[64] 김태원[65] 김태원[66] 남자의자격 미션인 청춘합창단에 김태원이 지휘자로 참여, 참가곡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67] 김태원[68] 김태원[69] 김태원[70] 김태원, 한글날에 발표한 아나운서합창단과 부활이 참여한 곡 '노래처럼'[71] 김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