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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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음악 그룹 '''부활'''의 리더,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작사가, 작곡가. 부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능력의 소유자이자 히트메이커다.
2. 상세
1980년대 록밴드가 번성하던 시절 백두산의 김도균, 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곤 했다. 당시 발라드적 음색 탓에 시나위, 백두산에게 그건 록 음악이 아니라고 질타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직접 들은적은 없다고 본인이 유튜브 영상에서 밝힌바 있다.
반면 김태원은 후에 라디오스타에서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이 트로트 가수로 활동한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자 굳이 생활고나 현실에 관해 얘기하지 않고 '''"트로트가 락보다 아래인 장르냐''', 음악이란 큰 바다일 뿐인데 그걸 변절이라 할 수 없다"고 유현상의 편을 들어주었다. 특히나 폴 메카트니가 했던 말이라며 '''"음악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보다 더 끔찍하다"'''라고 강력하게 말했을 정도.(다만 김태원이 말한 것과 달리 폴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뭐 어디까지나 백두산의 당시 말은 김태원이란 사람을 저격했던 것도 아니고 음악에 관해 한마디 한 것뿐이기에 별 감정은 없는 듯하다. 나란히 두 팀이 방송에 나와 사이좋은 모습을 보인 적도 있고. 그리고 감정을 떠나 그의 음악적인 철학까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 회자되는 '서대문파' 기타리스트로, 간단히 말하자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자아도취하면서 밥도 안 먹고 16시간씩 치는 기타리스트. 부활 데뷔 전까지는 게리 무어나 지미 페이지 풍의 블루스-하드록 기타, 특히 서스테인이 많이 필요한 미드템포 애드립에 능한 것으로 유명했다.[5] 부활의 전신이 되는 The End 시절에는 타카사키 아키라에 빠져서 완벽한 헤비메탈을 하고 싶어했다고.[6]
3남 2녀 중 셋째로 위로 형 둘에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다. 막내 아들이기에 애정을 많이 받았고 갖고 싶은 것도 가지면서 자랐다고 한다. 국민학교 4학년 때는 축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충암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짤려서, 숭실고등학교로 전학한 후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기타에 전념하였다. 여학생에게 기타를 쳐주고 싶어 2년 걸릴 기타를 1년 만에 쳐냈다고 한다.
데뷔 후에 김도균, 신대철이 리치 블랙모어나 타카사키 아키라 등의 영향을 적잖이 받으면서 헤비하면서도 속주 중심의 테크니션으로 변하는 가운데 단순하고 서정적인 곡조, 혹은 전주나 간주에서의 사운드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이는 김태원이 그 둘에 비해서 팝음악 작곡가로 월등히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면모는 부활 초기의 대표곡인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7] 에서 잘 드러난다.
부활의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한다. 다만 1집의 '희야' 같은 경우는 김태원이 쓴 게 아니라 김태원의 친구인 작곡가 양홍섭의 작사, 작곡, 2집의 '회상3'는 '마지막 콘서트'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승철이 리메이크하면서 바꾼 이름이며,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위해 썼다. 가사에서 나오는 소녀가 바로 아내다. 여담이지만 가사에서 소녀가 울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당시 김태원이 약에 취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 '회상3'는 부활2집을 녹음하던 도중 녹음실에서 이승철이 보는 앞에서 한 번에 쓰였다고 한다.
신정환과 탁재훈이 진행하던 KBS의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신정환이 '마지막콘서트'의 소녀를 안다고 말하여 이승철을 당황하게 만든 바 있었다. 당연히 당시의 신정환은 김태원도 그의 아내 이현주도 모르는 상태였다.
부활 출신의 보컬 중 가장 성공한 이승철과는 그야말로 '''영화 속 애증의 관계다.''' 둘 이 여러가지 일은 많았으나 간간히 합작해서 음악 작업을 하고, 그 때마다 명곡들이 발표되었기에 다시 한 번 이승철이 부활에 합류해 주길 바라는 팬들도 있다. 사실 이승철과의 관계가 너무 영화 같아서 그렇지, 이승철 이외의 다른 보컬들도 우여곡절도 많고 오래 가지 못했다. 특히 김태원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역대 부활 보컬들을 엄청 쪼았다고 본인이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 밴드에서 언급. 사실 문제아 보컬 김성민 때문에 한창 열받아 있을 때 언급한 것으로 전문은 김성민이 1년 내내 항상 걱정만 할 뿐 뭐 하나 나아지는 게 없다고 화를 내며 "오늘은 일단 참을 건데요. 끝나고 보자고. 망치기만 해봐. 다 엎을 거야. 내가 역대 부활 보컬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보여준다!!"라고 씩씩대자 윤형빈과 이경규의 멘트와 자막으로 부활 보컬들에겐 인자한 국민 할매가 아니라 마귀 할멈이라고 언급한다.
특히 김태원이 돈 때문에 잘랐다고 인정한 이성욱[8] , 조금 복잡한 관계였던 박완규[9] , 그 외 부활 디스코그라피에나 언급되는 수많은 탈퇴한 전 멤버들. 김태원의 좋게 말하면 음악적 욕심과 완벽주의[10] , 나쁘게 말하면 독선과 아집 때문에 밴드 이름 그대로 음반 낼 때마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기를 반복한 그의 음악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좋은 예로 안녕을 만들 때 400프로나 투자했었다. 여기서 프로란 스튜디오를 3시간 반 쓸 때를 칭한다. 보통은 한 프로나 두 프로, 아주 많아야 10프로 안에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400프로면... 진지하게 계산을 해보다면 1프로가 3시간 반이면 분으로는 210분이다. 여기에 400을 곱하면 84000분. 한시간이 60분이니 나누기 60을 하면 1400시간. 1400을 하루의 기준인 24로 나누면 58.333...인데 24×58=1392다. 그러니까 안녕 하나 만드는데 무려 58일하고도 8시간을 공들였다 이건 멤버들이 먼저 죽어날 지경... 너무 무리한 녹음으로 인해 이때 이성욱이 성대결절에 걸렸다. 김기연도 괜히 녹음 과정 중에 성대결절에 걸린 것이 아니다.
보컬들과 음악적 견해 차이로 헤어질지언정 인간적으론 종종 교류하는 모양이다. 서로 아예 척을 진 걸로 많이 알고 있는 이승철과도 부활 멤버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기도 했다. 보통 팀을 탈퇴하면 특별히 교류가 없는 게 정상인데 부활 보컬들과는 1년에 한 두번은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뮤지션 중엔 정말로 드물게 장비에 큰 욕심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케이블TV의 모 프로그램에서 김구라가 기습적으로 그의 집에 인터뷰를 간 적이 있었는데, 집에 있는 것은 당시 엔도서 활동으로 받았던 일렉기타 하나와 통기타 하나 이렇게밖에 없었다고 한다... 좋은 기타를 선물받은 적도 많지만 후배나 지인들에게 대부분 나눠주었다고 한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한때는 공연에서는 앰프+이펙터(GT-6)'''하나'''[11] + 기타 조합으로 연주를 한다고 한다. 다만 이는 김태원의 '복잡한 건 싫다'라는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VOX사의 Tonelab LE 멀티이펙터 + BOSS사의 EQ페달 GE-7 + Vertex사의 볼륨페달을 함께 사용한다
1987년과 1991년 대마초로 두 차례 입건되었다. 결국 그는 대마초를 끊기 위해 "아내를 위해 약을 끊어야겠다 결심하고 외진 섬으로 들어갔다"며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은 섬으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약병을 돌멩이를 묶어서 과감히 바다로 던졌다. 근데 다시 건져 냈다고 한다...
약을 바다에 던진 것은 반드시 약을 끊고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코란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종교서적을 섭렵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히며 "'결국 약병을 건지기 위해 수경까지 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MBC 드라마넷 미인도에서 밝혔다. 참고로, 병역면제 사유도 저 마약 전과 때문이다.
2008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본인의 금단 현상을 언급하던 중에 "항간에는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라는 윤종신의 질문에, "문제가 뭐냐면 그걸 하면 그 위를 가게 되니까... 하얀색 그거... 그걸로 가는 거에요"라고 말해 대마초를 넘어 마약으로 가게 됨을 경고했다. 이 이야기는 방송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고 넘어갔다. 어쨋든 금단증상으로 괴랄한 폭식을 했다고 한다.[12]
1989년 이승철이 탈퇴한 뒤엔 4년 동안 거지로 살았다고 한다. 학원 영어, 수학강사를 하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하루 1000원씩 줬다고,[13] 통장도 이 즈음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이승철이 '마지막 콘서트'로 리메이크한 '회상3'의 저작권 수입 때문에. 1집과 2집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14] 1993년도 첫사랑을 위한 곡 '사랑할수록'이 들어간 3집을 쓰고 모든 자신의 상황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 누구도 자신이 뜰 거라고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술과 마약에 찌들어 있었고 끝내는 정신병원에 감금당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렇게 망가진 자신에게 제 발로 찾아와준 김재기가 있었기에 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15]
작곡적인 능력으로 말한다면 '네버 엔딩 스토리'의 굴지의 히트 이후로는 자기복제 경향이 심해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부활 팬층도 어느덧 나이가 40대 이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팬들이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팬이 아닌 사람들도 부활이 신선한 사운드를 들려주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는 모양이다. 다르게 보면 김태원 특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활 앨범은 따로따로 떨어진 곡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곡이 김태원의 사랑 혹은 인생사를 모티브로 쓴 노래다. 그리고 예능 출연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그동안 발매된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OST, 디지털 싱글 등의 퀄리티는 상당하며 이 곡들만 모아도 하나의 앨범이 완성될 정도의 분량이다. 오오오.
이에 김태원은 조금 강하게 자기 입장을 밝혔는데, 세상엔 수많은 뮤지션이 있고, 나는 내 음악을 하는 것. 때문에 다른 음악은 다른 뮤지션에게서 찾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사실 '사랑할 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 두 히트곡 모두 정말 김태원의 인생이 나락까지 떨어졌을 때 나온 곡이다. 사실, 네버 엔딩 스토리 이후[16] 곡이 비슷하다는 의견 자체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며 이는 김태원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태원의 에세이에 있는 '''"나는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마약과 감옥살이, 알코올중독도 이겨내고 현재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고통이 따라야 히트곡이 나오는 거라면 더 이상 명곡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제 어떤 스토리를, 인생의 가사를 쓰기 위해 가시밭길을 걷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라는 글에서 느껴지는 김태원의 심경 변화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2011년 남자의 자격을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이름의 합창곡을 작사/작곡했다.
SBS 힐링캠프에서 밝히길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비와 관련된 곡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고[17] , 잠 잘 때는 커튼으로 방의 창문을 막아서 어둡게 한 뒤에 스테레오사운드 오디오로 24시간 빗소리가 흘러나오는 CD를 틀어놓는다고 한다.[18]
박완규의 인터뷰에서 언급되기를, 생활고로 인한 이혼과 성대가 망가지는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비밀'이라는 곡을 들고 와서 무작정 부르도록 시키면서 그의 재기를 도왔다고 한다. # 마약을 하면서 방황하던 자신을 김재기라는 인물이 도와주었던 것처럼 자신도 방황하는 후배를 도와준 셈이다. 그리고 2007년 부활과 박완규 모두 힘든 시절에 자신을 믿고 모든 걸 맡긴 것은 박완규뿐이었다고 한다.[19] 그래서인지, 이미 2009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 이미 김태원은 콜라보를 하고 싶은 보컬 중 하나로 박완규를 지목하기도 했다.
대단한 영화광으로 약 1만 편 가량을 보았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만큼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예능에서 자주 고전 영화를 언급한다.
무릎팍도사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남자의 자격 탭댄스편에서는 백야를, 그리고 힐링캠프에서는 한혜진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언급하자 바로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였다. 2집에서, 그리고 부활의 가장 유명한 연주곡인 'Jill's theme' 또한 거장 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OST다.
2016년 앓았던 패혈증이 재발해 후각을 잃었다고 밝혔다. 한동안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였으며, 된장찌개 냄새로도 글을 쓰던 김태원이였기에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면서 아주 살짝 난 그 냄새에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2.1. 연주력
오해가 없도록 미리 써두자면, 80년대의 기타 실력은 주로 속주와 화려한 손가락 움직임[20] , 90년대에는 톤 메이킹이 한국에서는 가장 중요했다.[21] 80년대 기준으로 볼 때 김태원은 속주에 관해서는 다른 둘에게 떨어질 게 없었다. 90년대 기준으로 볼 때 두 기타리스트에 비하면 단조로운 면이 있었으나 김태원 고유의 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화려한 테크닉 면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특유의 톤 메이킹에 있어서는 폄하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셋 다 이제는 흘러가는 기타리스트고, 기타 장인에 가까운 김도균/신대철에 비해 작곡가에 가깝고 동시에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김태원이 빠른 노쇠화가 왔을 뿐이다.[22]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타리스트로서의 김태원은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연주력 측면에서 볼 때 신대철, 김도균에 비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솔직히 네임드 프로 기타리스트라 보기에는 조금 민망한 면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23] 물론 '''뮤지션'''이란 기준으로 볼 때 부족한 연주력을 멜로디메이킹 능력이나 작곡능력으로 보완하고도 남는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김태원 연주력을 저평가하는데에 주로 반박으로 나오는 말이 속주 테크니션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는 얘긴데, 최근 각 기타리스트들이 각종 매체에 나와 애드립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면 오히려 무식하게 80년대 메탈키드 스타일로 후리는 건 김태원 쪽이다. 김태원은 그냥 손에 익은 스케일을 대충 마구 후리면서 디스토션을 잔뜩 걸어 뭉개는, 그야말로 80년대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수준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 이전에는 새로운 연주 주법, 리듬, 스케일 등 기타연주에 많은 시도와 발전이 있었지만 기타연주가 어느 정도 정립된 현시대에는 기본기가 많이 부족한 기타리스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김태원은 80년대에서 더 이상 기타 연주에 대한 테크닉 등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왔으며, 기타리스트보다는 '''뮤지션''' (이라기보다도 여러 락넘버 히트곡을 작곡한 네임드 작곡가이자 장수밴드의 리더)으로서의 평가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3. 예능 출연
1991년 마약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죗값을 치르고는 주로 음악 활동만 하다가 2008년 김구라의 추천으로 라디오 스타 게스트로 처음 참여했는데 4차원적인 성격과 생활상, 음악에 대한 이해, 기러기 아빠(가족은 필리핀에 체류 중)로서의 고뇌 등 여러가지 레파토리를 많이 들려주면서 단숨에 예능의 새로운 카드로 급부상했다. 사실 첫 방송만 해도 라스에서조차도 큰 도박성 출연이라, 검증된 게스트 김흥국을[24] 붙인 뒤, 당시 매우 떨어지던 인지도로 인해 김태원이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거의 2~3분 간격으로 진지한 바탕체 자막으로 "그룹 <부활> 리더 김태원"이라고 띄워줬다.
이 출연 한 방에 방송국에 새로운 예능카드로 떠오르고, 이후 이경규의 눈에 띄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게 되면서 본격 예능인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김태원의 발굴로 김구라까지 재평가 받을 정도로 2008년 예능계 최대의 발견 중 하나. 참고로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운영하는 음악평론사이트 'IZM'의 김구라 인터뷰를 보면 벌써 전부터 예능출연을 마지막 돌파구로 여기고 김구라에게 부탁한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전부터도 채제민 등은 김태원의 예능출연을 적극 권장했다는 증언도 있었기에 이는 침체기에 빠진 부활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벌써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볼 수 있다.
2009년 11월에는 생애 처음으로 광고를 찍었는데,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채 핑크색 스키복을 입고 출연했다. 김태원의 뒤태만 보고 여자로 착각해 다라가 리프트에 같이 탔던 한 남자가 얼굴을 보고 망연자실한다는 줄거리의 광고였는데, 여기서 김태원은 리프트에 함께 앉아 심드렁하게 '''"혼자 왔니?"''' 라는 단 한 마디 대사만 한다. 사실 이 대사를 치는 장면은 고소공포증이 심각해 리프트에서 덜덜 떠는 게 보여서 풀샷으로 촬영된 것이며, 당시 스태프들이 딱 한 마디만 하라고 부추겼는데 그리하여 간신히 나온 대사가 "혼자 왔니?" 였다고... 사실 원래 대본상의 대사는 훨씬 길었다고 한다.[25] 하지만 실제 광고 방영 후에는 저 짧은 한마디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가 빵 터져 오랫동안 유행어가 되었다. 보러가기
청춘합창단 지휘와 작곡을 담당하며 "독설과 폭로, 강한 유머 코드만이 난무하던 예능계에 '''인간적이고 따스한 예능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가져왔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능인으로서도 뮤지션다운 색깔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대성공을 한 것이다.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하는, 즉 본인에 대한 소재가 떨어졌기 때문에 홀연히 예능에서 싹 하차했었다고 직접 언급했으나 클라스는 영원한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조커(2019) 드립도 바로바로 튀어나오곤 한다. 뻘하게 터트리는 능력은 정말 대단한듯.
3.1. 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고정 멤버로 활동했다. 상상 이상의 '''허약함'''으로 '''국민''' '''할매'''의 칭호를 획득하였다. 본의 아니게 이윤석의 '''국민약골''' 캐릭터를 빼앗은 격.[26] 2010년 8월 22일자 방영분에서는 '''요정'''이 되었다. 음악인으로서의 모습과 너무 갭이 심해서 많은 팬들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예능을 통해서 부활과 자신의 음악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의견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다. 멤버들도 이에 절대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실제로 예능 애호가인 드러머 채제민은 김태원의 예능 진출을 적극 추천했고, 베이시스트 서재혁은 예능 출연을 반대했지만 김태원의 예능 진출은 첫 날부터 성공하게 된다. 예능 출연은 부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11년 2월 남자의 자격 암 특집을 위해 위암 검사를 받았다가 위암 초기 판정을 받고 16일 1차 수술, 22일 2차 수술을 마치고 26일 퇴원하였고 3일도 안 되어 예정되었던 부활 정규 콘서트에 임하여 깊은 감동을 주었다. 원래 수술에 대해선 프라이버시 문제로 방송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링크. 암 수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이후의 건강한 모습은 암환자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기에 이후 관련 공익 CF나 강연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김태원은 건강검진을 잘 안 받았는데 이때의 검진이 그를 살렸다. 즉, '''남자의 자격이 김태원을 살렸다.'''[27]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수한 음악인을 허망히 보내야 했을 수도 있다. 이전에도 간경화로 생명이 위독한 것을 함께 출연하던 김국진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병원으로 실어갔다 하니 한 예능프로그램이 사람을 두 번이나 살린 것이다.
3.2.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2010년 12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국내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다른 두 심사위원에 비해 관대한 편이지만 떨어질 사람은 결국 다른 두 사람이 떨어뜨리므로 김태원이 관대하게 해준다고 이득을 본 사람들도 없다. 슈퍼스타K에서 서인국과 다른 몇몇을 광적으로 깠던 이승철과는 상반되는 이미지.
평가는 일단 위트 있게 이야기해주는 편이지만, 냉정하게 짚을 것은 다 짚어낸다. 그야말로 '''촌철살인 심사'''. 두 사람이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음정을 틀린 사람을 잡아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론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닌 느낌이 와닿는 사람을 추천하여 더더욱 공감을 자아냈다.
"여기까지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항상 이제부터입니다", "음악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자기 안에서 찾아내는 거다", "승패를 떠나서 그대는 이미 기적입니다", "인생이 후렴만 있나. 앞으로 살면서 1, 2절을 만들어야 한다. 후렴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 등의 '''김태원 어록'''이 만들어질 정도로 주옥 같은 심사평이 연일 화제가 되며 위대한 탄생에 비판적이던 여론을 뒤바꾼 일등 공신.
일반 대중들에게도 탁월한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알리며 '''국민멘토'''로 칭송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심사위원들(위탄+슈스케)보단 훨씬 긴 오디션 심사 경험이 있고 그가 키워낸 인재들이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김재기, 이성욱, 신해철, 정단, 정동하, 김동명 등 레전설들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 1 성공의 가장 큰 이유라고 평가받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 슈퍼스타K 시리즈와 차별화 시키려 애썼던 멘토 스쿨 편에 들어와 무엇을 달리 하려 했는지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멘토 스쿨 참조.
놀러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위탄 멘토를 꼭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직 다섯명의 멘토가 비공개일 때 김태원이 멘토라는 게 밝혀져서 제작측에서 교체를 검토했을 때 먼저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고. 위탄을 꼭하고 싶었던 이유는 예능을 하면서 너무 할머니 이미지만 굳어지고 음악인의 이미지를 잃는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결국 위탄 시즌 1 그랜드 파이널에 제자 두 명(백청강, 이태권)을 올리면서 가장 성공한 멘토로 남았는데 위탄 시즌 2의 실패는 김태원과 같은 차별화된 멘토의 부재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이다. 시즌 3에서 다시 멘토에 합류.
4. 여담
- 예능에서 기상천외한 언변으로 큰 재미를 주고 있으나, 김태원이 하는 오만가지 썰들의 상당수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단지 뻥에 불과하다는 점은 유념하자. 워낙 어렸을 때부터 구라를 잘 지어내는게 습관화 돼서, 즉흥적인 썰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도가 튼 스타일. 심지어 보지도 않은 영화도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친구들에게 자기가 그 영화를 본 것처럼 즉흥적으로 스토리를 지어내서 신나게 얘기해 줬는데, 친구들이 다들 재밌어했다고 한다.[28] 그렇게 상상력을 동원해 구라썰을 지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썰을 풀던 장기가 먼 훗날 예능에서 빛을 발하게 된 것. 성인이 된 후에도 구라소설 창작솜씨가 여전하다는데, 이건 그의 친구나 같이 작업한 음악인, 남자의 자격 팀 등 동료 연예인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김태원의 특징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가 김태원의 얘기는 절대 믿지 말라고 할 정도이다. 오죽하면 본인이 직접 방송에서 '김억삼'이라고 말하기도했다. 김태원이 억마디 말을 하면 그 중 3가지만 진실'이라는 뜻의 줄임말. 김태원 본인도 자신의 얘기에 과장이나 허구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어쨌든 많은 이들이 시청하는 방송에서 즉흥적으로 튀어나오는 소설 창작 본능을 발휘하곤 하는 버릇 때문에 의도치 않게 왜곡된 정보를 퍼트리기도 한다. 예를들어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음악은 좋은 음악이냐 나쁜 음악이냐로 구분되는거지 장르간의 상호 비하나 갈등같은건 좋지 않은 거라면서,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도 "음악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보다 무섭다"라고 말한 바 있다고 인용하는 바람에 한국 인터넷상에서 폴 매카트니가 실제 그런 말을 한 것처럼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폴 매카트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김태원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또 즉흥적으로 허구썰을 지어내어 말해버린 것. 역시 김억삼이란 별명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29]
- 국민할매로 워낙에 유명해서 나이가 많은 것 같고 나이가 많아보이지만 사실은 1965년 4월 12일생으로 이경규보다는 5살 어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이승환[30] 과 동갑이다. 절친인 김종서, 김국진과도 동갑.[31] 이승철과는 단 1살 차이로 이승철이 1살 어리다.
- 무릎팍도사에서 아들에게 자폐증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딸, 아들이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자신이 기러기 아빠 신세인 것도, 아들의 자폐증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상처를 받는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 한국에서 저평가되는 뮤지션 중 하나. 특히 예능에 출연하게 되면서 김태원을 잘 알지 못하는 초중딩들 사이에서 일명 '미친' 할매로 통하고 있다. 물론 예능에 출연함으로 김태원 자신은 물론 부활이 젊은 층에서도 꽤나 유명해졌으니 김태원 본인은 만족하고 있겠지만, 한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초중딩들에게 저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32] 그래도 시청률 20%를 돌파한 위대한 탄생 시즌 1에서 국민멘토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학생이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김구라와의 친분으로 유명하다. 라디오 스타에 꽂아준 것도 김구라라고. 그래서인지 이경규가 강호동 앞에만 서면 파워업하는 것처럼, 김구라도 김태원 이야기만 나오면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인다. 김태원이 김구라의 팝지식을 인정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댄다는 평을 벗은 점도 있으므로 상호 보완적이기도. 어쨌든 김구라가 무명 시절일 때 만나서 팝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곤 하는데, 아주 무명이던 시기는 아니고 지상파에서 활약하기 직전이였다. 케이블에서 구봉숙이 MC를 봤던 '쏜데이서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김태원의 모습을 보면, 그때 김구라를 처음 본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김태원 본인은 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가 당시 인터넷 방송 황봉알/김구라의 시사대담에서 "김태원은 사랑 노래밖에 안하는 가수다" 라는 말을 했는데 이걸 김태원의 친형이 들었고 김태원의 친형이 직접 만나서 "내 동생이 사랑 노래만 하는지 아닌지 이야기 한 번 해보라" 라고 주선을 해줘서 처음 만나봤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술한 쏜데이 서울 김태원편을 보면 전에 만나봤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또 김억삼 본능으로 뻥을 친 것인지, 쏜데이 서울에서 모르는척 한 것인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바오로. 독실한 신자인 아내의 소원이 온 가족이 미사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입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가톨릭 관련 행사나 강연에도 참여하고 주보에 글을 실은 적도 있다. 그리고 이 이름을 걸고 '폴 제페토'라는 기타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옆에 붙은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만든 장인의 이름. 그런데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와는 달리 품질은 많이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듯하다. 그래도 커스텀 오더(주문제작)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웬만한 하이엔드 기타가 부럽지 않다고... 무엇보다도 폴제페토가 좋은 인지도를 얻은 이유는 은퇴한 노령 장인과 장애인을 고용하고, 수익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는 데 있다. 이러한 사회적기업 성격에 주목한 최근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노사문제로 논란이 된 모 업체와 비교하며 호평하는 뉴스 댓글을 볼 수 있다.
- 예능에서 체력이 바닥이라고 자주 어필하는 국민할매이나, 부활 정규 콘서트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하루에 2번씩 개최하는 경우가 흔하며 금, 토, 일은 공연 스케줄로 꽉 차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 많은 공연을 전부 라이브로 소화해낸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어떤 의미에서 강철 체력이라 하겠다. 하지만 라디오스타 크리스마스 특집 참여 당시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복수가 7kg씩 차서 죽을 뻔했을 정도로 건강 문제가 심각했으며 대마초 후유증도 심각했던 편.[33]
- 예능프로에서 뭐든지 재밌게 얘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떠벌리는걸 좋하는게 아니라, 인간관계적인 갈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은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상처나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되도록 언급을 회피하거나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한다.[34]
- 표절에 대해서 결벽증 수준으로 싫어한다. 곡 작업이 시작되면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어떠한 음악이 아닌 음도 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가둔다. 부활 초기에는 아예 사람이 없는 외딴 지역이나 무인도에 가서 작곡을 했다고 하며,[35] 엘리베이터에 층 도착 소리도 자신의 음악에 섞이는게 싫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도 안탄다고 한다. 다만 이 이야기가 잘못 전파돼서 김태원은 자신이 작곡한 노래 외에는 아예 듣질 않는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으나, 의외로 아이돌 노래나 최신 가요들도 꾸준히 듣는다. 그래서 방송에 다른 가수와 출연하면 얼굴은 못알아보지만 최근에 나온 노래를 의외로 알아듣는 경우가 꽤 있다.
- 2014년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의 인간극장에 출연했다. 자폐아 아들과의 이야기를 다뤘다.
- 2015년 8월 25일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는데, 치아 문제 때문에 5~6년 전부터 제대로 된 음식은 못 먹는다고 한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좋아했었으나 어금니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던 탓에 돈까스로 대체하고, 갈수록 더 안 좋아지는 치아 상태로 인해 돈까스마저 끊어버리고 짜장면으로 대체, 거기서 더 안 좋아져 짜장면까지 못 먹었다고 한다.[36] 그 후로는 음식을 거의 앞니로밖에 씹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 날 셰프들은 치아가 좋지 않더라도 김태원이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쓴 요리를 내놓았다.
-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밝혀진 바로는 잇몸이 영 좋지 않다고 한다. 어금니가 빠져서 앞니로만 씹는다고 하고, 부실한 잇몸 때문에 임플랜트도 못하고 있다고...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된 증상의 후유증.
- 2017년 2월부터 대중문화를 이끄는 힘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독자적으로 참신한 공연을 기획/제안하는 새로운 시도, 컬처 규레이션-(현대카드 UNDERSTAGE) 김태원Curated를 진행하고 있다. 한 시대를 함께 해 온 문화의 동반자이자 음악을 듣는 이로, 노래를 하는 이로 어우러질 수 있었던 그 시간들에 매 순간 감동한다. 음악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통해 같은 시대의 감성과 추억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앞으로도 영원히'라는 공연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이 문서를 읽는 컨텐츠가 업로드되었다. 살펴본 부분은 프로필부터 3번 문단까지. 영상에서 문서의 잘못 서술되어 있었던 부분을 언급하기도 했다.[37] PC 영상 화질처리 오류로 인해 재업로드되었다. 사실 이 문서에 있는 것들 대부분 본인이 직접 방송에서 한 말을 적은 것에 불과하지만 예능이라 과장한 것도 있으니 매체에 너무 속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 학창시절 서대문의 통이었다고 한다.라디오스타 방영분을 보면 동갑내기 김국진이 먼저 증언하는 걸 보면 사실 인듯하다. 그 당시 별명은 서대문의 고릴라(...)
- 본인 말로 영어 이름은 말콤 맥도웰이라고 한다.(...) 남자의 자격에서 영어 관련이면 항상 들먹이던 이름.
5.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락 ROCK 樂
방송보기 다시보기
2010년 12월 11일 KBS2에서 그의 음악적 일대기를 담은 4부작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락 ROCK 樂'이 방영되었다. 기획 의도는 지금은 국민할매라 불리며 예능화된 김태원의 모습을,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인생을 통해 서울의 음악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재미있고 너무나 역동적 이야기 소재에 의외로 연기자까지 호평을 받아 인기를 끌었다. 전 매니저인 백강기씨의 말로는 순서가 바뀐건 있어도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하니 김태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한다. 부활의 팬이라면 중간중간 삽입되는 부활의 명곡을 찾는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할 것이다.
근데 재연배우가 김할머니를 '''너무 안 닮았다'''(...) 김태원은 자기가 노민우와 닮았다면 데뷔 때 음악계를 석권했을 거라고 했다(...) 너무 과거의 연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묘사되어 첫사랑에게 매우 미안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진 건 무척이나 영광이고, 한국 락 음악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감사한다는 뜻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생애를 마친 위인에 대한 일대기가 드라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누구보다도 현역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김태원에 대한 드라마가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김태원의 극적인 삶에 대한 높은 평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이므로 일부 사실과 다른 각색이 있을 수 있으므로 '''유념'''하자. 당장 ─아들과 관련한 사정을 아직 밝히기 전이었던 터라─ '네버 엔딩 스토리'가 작곡되던 상황의 묘사도 실제와 차이가 있고, 나머지 묘사들도 철저히 김태원의 시선에서 서술되다보니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괜히 김태원과 그 주변인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드라마의 묘사를 근거로 삼는 오류는 피하도록 하자.
또한 레스폴 카피모델을 Gibson이라고 칭하는 고증오류도 있음을 주의하자.
5.1. 드라마 오프닝
어느날 갑자기 김태원이 예능 프로에 등장했다. 그것도 국민할매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시나위의 신대철, 백두산의 김도균과 함께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던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하지만 그의 기타는 1등이 아니었고 몇몇의 심금을 울렸던 파란만장한 기타소리는 우스꽝스러운 별명 뒤로 잊혀지고 있었다.
- 1965년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서 태어난 김태원, 13세 기타를 처음 만지다.
- 17세 가출 첫 사랑과 동반자살시도, 고교퇴학
- 학력고사 340점 만점에 89점, 1984년 첫 무대는 관광캬바레,
- 아버지 손에 잡혀간 정신병원, 두 번의 감금 생활
'''"열등감에 몸부림치며 방황하는 오늘의 모든 청춘을 위해 이 드라마를 바칩니다."'''
5.2. 각 화 제목
- 제1화 기타를 잡아라
- 제2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 제3화 마지막 콘서트: 회상III
- 제4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Never Ending Story
5.3. 출연
- 태원 - 노민우
락락락 방송 5년 후인 2015년 12월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팬미팅특집에서 김태원의 팬으로 출연해서 모나리자를 같이 불렀다. 노민우는 이전 기획사와의 계약문제로 인해 10년만에 지상파 음악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는데, 김태원과 함께 출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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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 - 장경아
- 현주 - 홍아름
- 태원모 - 조양자
- 태원부 - 황범식
- 여사장 - 정영숙
- 수연모 - 이덕희
- 승철 - 이종환
- 태윤 - 강두
- 대철 - 데빈
- 종서 - 방중현
- 강기 - 장현성
- 지웅 - 조선형
- 태순 - 조순창
- 상범 - 주호
- 대두 - 이원
- 효진 - 홍지영
- 상미 - 이혜리
- 병찬 - 안재민
- 준교 - 박시헌
- 영진 - 남민호
- 성태 - 임한국
- 동팔 - 강신하
- 재범 - 김혁
- 종수 - 박호
- 여배 - 채선중
- 승철매니저 - 김윤태
- 교도소짱 - 김학준
- 태원(아역) - 윤상민
- 태원형(아역) - 노영학
- 태원딸 - 황정원
- 태원아들 - 안성훈
- 특별출연
- 김종서: 김태원의 삼촌 역. 김태원의 멘토다.
- 부활
6. 주요 음악 작품
록밴드 부활과 부활(밴드)/앨범 목록, 김태원(음악인)/음악 활동 문서를 참조하자.
김태원은 프로 기타리스트로 데뷔한지 30년이 지났지만 기타 솔로 앨범을 낸 적이 없다. 부활 초기 음반인 1집과 2집에서는 속주플레이와 블루지한 연주, 클래식과 록을 접목시킨 독특한 분위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그 이후는 기타 테크닉에 치중하거나 기타 솔로를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곡 전체 또는 그룹 전체의 사운드 완성도를 높히기 위한 기타 연주를 하였다. 솔로 기타리스트라기 보다는 밴드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김태원의 기타 연주는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따뜻한 기타톤, 깊은 비브라토와 밴딩, 최대한 감정을 담은 연주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꽉 차는 감동을 주는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활은 앨범을 낼때마다 1~2곡 정도 연주곡을 넣었다. 이 연주곡을 통해 김태원의 기타 연주 스타일 변화도 느낄 수 있다.
* ( )는 부활 앨범
- 인형의 부활 (1집)영상
- 2월7일 (2집)
- Jill's Theme (2집)영상
- 8.1.1 (3집)
- 별 (3집)영상
- 그리움 그리는 그림 (3집)
- 시간의 칠 (4집)
- 이분쉼표 (4집)
- 불의발견Ⅰ,Ⅱ, Ⅲ (5집)
- 이상시선Ⅰ,Ⅱ, Ⅲ (6집)
- Color (7집)
- 눈먼 아이가 본 풍경 (8집)
- 시계의 반대방향 (8집)
- Promenade (9집)
- Rain (9집)영상
- Over The Rainbow (9집)
- 4.1.9 코끼리 탈출하다 (10집)
- Second 8.1.1 (10집)
- 1971여름 (11집)영상
- 부활 (13집)
2014년 10월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뜨거운 안녕에 레드 제플린의 Kasmir과 영화 쉘부르의 우산 테마곡인 I'll Wait For You를 편곡 연주하였고, 2015년 4월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홀로아리랑에 애국가를, 12월에는 노민우와 함께 출연하여 조용필의 모나리자에 잉베이 맘스틴[38] 의 Icarus' Dream Suite Opus4 #를 편곡 연주하였다. 2017년 4월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여 사랑의 의지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김태원은 음악 대가들이 남긴 곡으로 편곡하고 멜로디를 구성해보면서 보통 본인이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작가나 가수가 나오는건데 이들의 곡을 듣고 자란 세대로서 조건없는 선물을 받고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7. 음악인 가족
딸 김서현이 2013년 1월 31일 데뷔했다. 싱글 타이틀은 'Into The Skies'로 가수 본인이 작사 및 작곡한 곡. 다만 한국어 버전 가사는 작사가가 따로 있다.
같이 지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 중이라고 한다.
8. 저서
'''우연에서 기적으로'''
보러가기
당신이 없는 완성작이란 없습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퍼즐에서 그대는 완결에 필요한 마지막 한 조각입니다. 전 우주에서 단 한 명의 누군가도 소외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약 1년에 걸친 집필을 거쳐 2011년 11월 21일에 발매된 에세이집으로 김태원이 생각날 때마다 녹음하고 친필 메모를 적어 원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타 에세이나 자서전과 달리 김태원의 의식 내면의 흐름과도 같은 문체와 구성이 특징이다. 김태원의 오랜 지인이 삽화를 담당하였고 아들인 우현 군의 그림이 표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수익금 전액은 장애인들을 돕는 서울 가양동 천주의성요한수도회[39] 에 기부된다고 한다.
마약 범죄로 인한 수감과 정신과 치료, 밴드를 하면서의 갈등을 가감 없이 서술하였고 그렇기에 대가 없이 베푼 포용과 선의가 어느날 기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내어 단순한 연예인 자서전이 아닌 에세이집으로서 평단과 기자들의 반응 또한 호의적이다.
9. 방송
9.1. 예능 프로그램
- KBS2 해피 선데이 - 남자의 자격 (고정 멤버)
- KBS2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 (고정 게스트)
-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 (아내 동반 출연, 게스트)
- KBS2 개그 콘서트 - 감수성 (카메오-대왕대비역)
- 엠넷 the PUB (진행)
-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멘토)
- MBC 나 혼자 산다 (고정멤버, 29화까지)
- 엠넷 비틀즈 코드 시즌2 (진행)
- tvN 근대가요사 방자전 (고정멤버, 2화부터)
- MBC 위대한 유산 (고정 멤버)
- MBN 도시탈출 외인구단 (고정 멤버)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게스트)
- E채널 내 딸의 남자들 : 아빠가 보고있다 (아빠 출연자)
- MBC 오지의 마법사 (고정 멤버)
-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 (게스트)
9.2. 드라마
- 2004년《MBC》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 - 본인 역(부활 멤버들과 카메오 출연)
- 2010년《KBS》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락 ROCK 樂 - 본인 역(특별 출연)
- 2010년《MBC》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 뒷모습이 여자 같은 남자역(카메오 출연)[40]
- 2012년《tvN》응답하라 1997 - 뒷태가 예쁜 남자 역(카메오 출연).
- 2012년《MBC》시트콤 엄마가 뭐길래 - 고깃집 고객 역(카메오 출연)
- 2012년《영화》원더풀 라디오 - 까페 주인 역(카메오 출연)
- 2012년《영화》전국노래자랑 - 본인 역(부활 멤버들과 카메오 출연)
- 2014년 인간극장
- 2016년《웹드라마》마음의 소리 - 불후의 명곡 전설 역(카메오 출연)
- 2017년《영화》청춘 합창단 - 또 하나의 꿈(특별 출연)
9.3. 라디오
9.3.1. 진행
- MBC 라디오 원더풀라디오 김태원입니다(2016. 5. 30~2018. 2. 2. 진행)
라디오 DJ를 맡았다. ,
9.3.2. 게스트
-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2003, 2005, 2007, 2009, 2011, 2012, 2015)
- KBS 라디오 임백천의 뮤직쇼(2003)[41]
- KBS 라디오 김구라의 가요광장(2005, 고정)
- MBC 라디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2004듣기, 2006)
- SBS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스쿨(2009, 2015, 2016)
- KBS 라디오 소유진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2010)
- KBS 라디오 홍진경의 두시(2011)
- SBS 라디오 2시탈출 컬투쇼(2011)
- 경인방송 iFM 채제민의 도깨비라디오 (2012)
- MBC 라디오 허수경의 음악동네(2012)
-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스윗 소로우입니다(2012)
- KBS 라디오 최강희의 야간비행(2012)
- SBS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2012, 2013, 2014, 2018)
- 국민TV라디오 채제민 김민기의 디디쇼(2014, 2015)
- 경인방송 iFM 박완규의 희희락락(2014)
- KBS 제3라디오 이형걸의 희망나무(2015. 2/1, 2/8, 2/15, 2/22, 일일 디제이)
- KBS 라디오 임백천의 라디오 7080(2015~2017, 고정)[42]
-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아침 김창완입니다(2016)
-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시즌2(2016)
- KBS 라디오 매일그대와 유열입니다(2016)
- KBS 라디오 특별기획 라디오90년 미래100년 빅콘서트(2017)
- MBC 라디오 박준형 정경미의 2시만세(2017)
- KBS 라디오 임백천의 라디오 7080(2018)
- SBS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다임(2019)
9.4. 광고
[1] 오지의 마법사 12화에서 무역학과를 나와서 음악으로 무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2] 남자의 자격에서 원래 177cm였는데, 허리가 굽어서 2cm가 줄었다고 한다.[3] 남자의 자격 66회 출연[4] 라디오스타에서 한 발언인데 이 발언 직후 "아시죠?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은 거?"라면서 약올렸다(...).[5] 신해철이 '놀러와'에서 밝힌 것처럼 김태원의 카피 레파토리 No.1은 개리 무어의 'Parisienne Walkways'. 그 외에 김종서와 공연할 때마다 하는 것처럼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Rock n' Roll' 등을 많이 했다.[6] LOUDNESS 문서에도 이 이야기가 있다. 증언자는 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명 베이시스트 이태윤. 남자의 자격에서 증언했다.[7]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작사작곡한 노래로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했다.[8] 이쪽은 진짜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성욱이 무릎까지 꿇었다고 한다. 부활이 조금 여유가 생기고 불렀어야 할 1순위는 이쪽이다. 여담으로 이성욱은 이후 다시 사회에 복귀해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으며 통신쪽 일을 하다가 그의 노래를 들은 김태원의 "너는 노래만 해라."라는 말에 다시 가수로 복귀.[9] 행사비 120만 원을 4등분했다. 아이들 한달 분유값조차 안 됐다고 한다. 때문에 부활을 탈퇴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조언을 해주고, 곡을 주는 등 괜찮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현재는 다시 부활의 보컬이다. [10] 박완규의 말에 따르면 론리나잇의 "이런 시간엔 더 그리워" 한 문장을 녹음하는데 2주가 걸렸다고 한다. 더군다나 뭐가 맘에 안 드는지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며 "새벽에 들려오는 파도소리처럼 해보라"는 등 시적인 표현을 하며 그 느낌을 살리라는 방식이고, 본인이 만족할 때까진 넘어가지 않아서 보컬 입장에선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보컬들이 녹음 작업만 거치면 살이 쭉쭉 빠진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고, 10키로에 가깝게 살이 빠졌다고 한다. 다만 7집이 망한 이후로는 꽤 느슨해지고, 정동하가 들어온 후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이는 전술했듯이 남격에서도 본인이 언급했다.[11] BOSS(Roland의 기타 이펙터 브랜드)의 GT-6는 멀티 이펙터다. 이펙터 여러 개 들고 다니기 귀찮은 사람이나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기계다.[12] 떠먹는 아이스크림 '패밀리'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서 물로 만든 다음 꿀꺽꿀꺽 마신다든지 쥐포 수십마리를 사서 기름에 튀긴 후 TV보면서 2시간 반동안 다 먹는다든지...[13] 그 당시 짜장면 1그릇 가격. 그 돈으로 탑골공원에 갔다고 한다. 이유는 말하고 싶어서. 점심은 무료 급식.[14] 마찬가지로 이승철도 힐링캠프에서 광고비를 받지 못 했다는 것과 행사 개런티가 회였다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매니저, 기획사 쪽과 문제가 있었던 듯 하다. 가요계가 그야말로 주먹구구 막장이던 시절이라,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15] 더운 여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는 소속사의 부정적인 의견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거리에만 걸어다녀도 사랑할수록 노래가 계속 나오고, 이 때의 수입으로 그랜져를 캐시로 샀다고 밝혔다.[16] 대표적으로 정동하와 함께한 10~13집.[17] 'Lonely night'은 원래 'Rainy night'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속사에서 비가 올 때 듣는 노래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제목을 바꿨다고 김태원이 비틀즈코드에서 언급했다.[18] 심리학적으로 볼 때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람이 비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체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는 보라색과 상응되는 부분이다. 13집이 보라색이기도..[19] 2011년 '비밀'이 크게 히트해서 잊혔지만, 2007년에 박완규는 부활을 세션으로 하여 김태원 작곡의 '사랑해서 사랑해서'와 '사랑해'라는 곡으로 싱글을 낸 적이 있다.[20] 잉베이 맘스틴이 불러온 속주 광풍 때문에 1980년대 내내 한국의 록 음악 팬들 사이에선 무조건 '''빨리 치는 놈이 최고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게 사그라든 건 너바나(미국 밴드)를 선두로 얼터너티브가 등장하면서부터다. [21] 이런 측면에서 대중들한테는 외면받았지만, 당대의 뮤지션들에게 충격을 준 게 유앤미블루이다. [22] 김태원의 나이는 65년생으로 김도균/신대철과 큰 차이가 없으나 이 문서에도 적혀있듯 약물 중독의 후유증으로 셋 중에 가장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린 없다. 물론 나이로 보면 원숙함이 더해져 노련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나이긴 하지만...[23] 현재보단 덜하지만 과거 전성기 시절 기준으로도 다소 떨어진다.[24] 이후 김태원이 단독으로 출연한 무릎팍도사에서 김흥국을 '''예능계의 초능력자'''라고 극찬했다.[25] 뒤에 따로찍어서 붙인 "이런 덴 여자친구랑 왔으면 좋을 텐데 말야"가 덧붙는 버전이 있는데, 그것까지가 대본에 있던 대사였다고다.[26] 이후 이윤석이 라디오 스타에서 말하길, "'''나는 산 송장이었는데, 진짜 송장이 와버리니까...'''"[27] 본인이 직접 그렇게 표현했다[28] 김태원이 어렸을 땐 컴퓨터 영상파일은 물론 비디오(VCR)도 없었던 시절이므로 극장에 가지 않는 한 영화를 보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연령제한이 있는 영화들은 학생들 입장에선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그림의 떡일 뿐이다.[29] 저 위에 이 문서를 읽을 당시 이 억삼이라는 부분에 찡그리면서 부정을 하긴 했지만 부정을 하면서도 또 억삼이 모드가 발동해버린 덕택에 그냥 코미디 정도로 인식할 정도.[30] 물론, 여기는 너무 심각할 정도로 동안이기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되는 게 현실이다. 진짜 극과 극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31] 정확하게는 김국진은 빠른 65년생이지만 학교를 빨리 들어가지 않고 보통의 65년생과 같은 친구로 다녔으며 생일도 입춘 이후 출생이므로 뱀띠다. 근데 사실 김종서도 빠른 나이고, 김국진과는 달리 일반적인 형태 일찍 학교를 다녔다.[32] 물론 예능에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 세대는 대부분 아예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33] 사실 대마초로는 저런 후유증이 생기지 않는다. 방송에 나와서 했던 금단 증상에 대한 말들, 아래의 심각한 치아 문제들은 2016년 아내가 쓴 책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에서 밝히기를 80년대에는 약국에 가면 감기약을 몇십개씩 포장해서 병으로 팔았는데 감기약 성분중에 중독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었다고 한다. ('러미라' 라는 상품명으로 유명한 '덱스트로메토르판' 이다. 약리적으로는 기침을 유발하는 중추신경계 쪽에 작용하여 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이다. 허나 뒤늦게 과량 복용 시 정신적인 의존성이 나타나는 것이 발견되었고 2003년 10월부터 향정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코푸시럽 정도 빼면 시장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심지어 이 성분이 함유된 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향정신성의약품 문서에서도 볼 수 있다. ) 그것을 한꺼번에 복용하곤 했다고 한다. 약물중독은 맞았던 듯.[34] 반대로 일일이 바로잡기 부담스러운 경우 상대방들이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대철의 경우 김태원과 학창시절 라이벌 구도와 관련한 추억담이 나오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편인데, 실제로는 김태원을 그렇게까지 크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 신대철의 라이벌이라는 소리를 듣던 기타리스트는 이오공감으로 유명했던 작곡가 오태호였다. 락 인 코리아의 속주파 기타리스트에서 현재 작곡가로 전향. 그리고 이건 다른 역대 보컬이나 역대 멤버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수 있으므로, 관련한 정황 묘사들은 좋은 소리건 안 좋은 소리건 걸러서 들어야 한다는 걸 감안하자.[35] 다만 대마초 흡연 때문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작곡 작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긴 하다.[36] 돈까스는 정말 엄청나게 좋아했다고 한다. 매일 1끼 이상은 돈까스를 먹었으며 멤버들을 데리고 외식을 가도 늘 메뉴가 돈까스라 같이 외식하러 가는 걸 싫어할 정도였다고 한다. 치아 상태가 안좋아진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돈까스를 먹으며, 좀 먹기 쉬운 햄버그 스테이크라도 먹는다고 한다.[37] 수박 겉핥기식 서술이라고...... 특히 방송에서의 발언은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된 것도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38] 한때는 잉베이 맘스틴 같은 기타연주자가 되는게 꿈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39] 광주의 유명병원인 요한병원이 이 수도회 소속이다.[40] 당시 동네에 치한이 돌아다녀 신세경이 불안해하는 에피소드에서 출연, 여잔 줄 알고 접근한 치한을 역관광 보내신다(...)[41] 억삼이 라는 별명을 이때부터 사용했다[42] 매주 토요일 김태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코너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