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숭인(정도전)

 

[image]

'''"하늘이 정도전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1. 개요
2. 작중 행적
3. 기타


1. 개요


정도전의 등장인물. 배역은 정희태[1]. 고려 말 삼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의 한 사람. 사실 이숭인 대신에 보통은 야은 길재를 넣는데, 이것은 이색→정몽주→길재 순으로 사림파의 맥이 이어진 반면, 이숭인은 상대적으로 젊었고 중앙에서 일하느라 후학을 별로 남기지 못한 상태에서 조선 건국세력에게 처형됐기 때문이다. 향년 46세.

2. 작중 행적


드라마에서는 특별히 언급 되지 않았지만 이인임의 재종질(7촌 조카)이다. 이숭인은 이백년의 증손자이고, 이인임은 이백년의 동생 이조년의 손자. 실제로 1375년 북원 사신 영접반대로 사대부들이 귀양크리를 당할 때 이인임과의 관계때문인지 일찍 귀양이 풀렸다. 재종당숙의 정적으로서 사대부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이인임 몰락때 덤으로 최영에게 곤장을 맞고 귀양가야 했다. 이인임의 당여란 누명은 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극에서는 24화에 요동 정벌을 반대하는 이숭인에게 최영이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반영된다. 29화에서 이색의 사면 상소로 하륜과 함께 유배에서 풀려나 수시중이 된 스승 이색과 함께 이숭인, 하륜, 권근, 이첨 이 4명이 핵심당여로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33화에선 역사대로 모친상 중 과거시험관을 맡았다는 불효죄로 탄핵된다.[2] 나중에 옥에 찾아온 정도전이 고신까지는 하고 싶지 않으니 순순히 죄를 인정하라고 회유하자, 남처럼 삼봉 영감이라 부르며 '''개돼지만도 못한 사문난적'''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자니 숨이 막힌다며 눈앞에서 사라져 달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37화에선 정도전의 뺨을 때리면서 어그로를 끌었다. 진심 세게 때려 정도전의 측근들 중 한명인 남은이 분개해 아예 죽일 듯이 변해 달려들었고 정도전역의 조재현도 당시 깜짝 놀랬다고 회상한 적이 있을 정도. 정도전에게 대놓고 손찌검을 한 건 그가 처음. 이색은 물론 권근, 하륜, 후일 정적이 되는 정몽주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3] 무례한 짓이었다. 후에 이숭인이 정도전에게 가혹하게 살해당하는 복선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40화에서는 정몽주의 잔당들이 제거되는 과정에서 혼자 유독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결국 41화에서 정도전에게 우현보의 세 아들 및 이색의 차남 이종학 등과 함께 장살됐다[4] 정도전이 황거정에게 "죄인들이 살아 돌아오면 널 죽일것이고, 죄인들이 죽는다면 너에게 공신의 말석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지시를 내린다[5]. 이숭인은 엉덩이가 아니라 등에 곤장을 맞는다.[6] 극중에서 이숭인도 각오는 했지만 놀랐던지 한 대 맞고 깜짝 놀라 나를 죽이려 드는거냐고 물을 정도. 동시에 정도전은 성균관 대성전에서 "잘 가시게. 도은"이라며 명복을 빌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의 죽음에 나레이션 하나 깔리지 않아 그 안습함이 더 증가했다. 다음 화에서 죽는 배극렴조차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3. 기타


사실 비중이 공기라서 그렇지 가만보면 '''툭하면 얻어맞고 쫓겨나는 안습동네북''' 신세. 이인임 집권 시절에는 그의 전횡에 반대하다가 다른 사대부들과 함께 유배형에 처해지고, 최영 집권 시절에는 요동 정벌에 반대했다가 최영에게 '''시범타''' 격으로 국문을 당하고 또 유배당한다. 이성계가 집권한 후에는 이색 일파에 섰다가 '''불효자식'''이라는 되도 않은 죄목으로 또 유배를 떠나며, 사형 정몽주 덕에 기껏 복귀했나 싶더니 정몽주가 암살당하자마자 또다시 유배행. 최후조차도 유배지에서 곤장 두드려 맞다가 비명횡사하는, 안습하기 짝이 없는 생을 살았다.[7] 더더욱 슬픈 것은 고려시절 그와 함께 고려를 사수하려 했던 하륜, 권근, 이첨은 조선왕조에서 높은 직위에 올라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 이숭인은 겨우 45에, 곱게 죽지도 못하고 허리위로 올라오는 매에 맞아 처참하게 죽었는데 하륜은 70, 이첨은 60, 권근은 57세로 다들 얄미울 정도로 오래 살았다.
'''양지, 임견미, 염흠방, 정몽주와 더불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8]
여담으로 이숭인이 1화에서 정도전의 과격한 행보를 두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조선 건국 후 하륜이 이숙번을 설득할 때 정도전을 '''계란으로 바위를 부순 자'''로 평한다.
이숭인은 이성계일파와 정도전에게 하륜,권근과 다르게 아니꼽게 보일수밖에 없는것이 공양왕이 폐위되기 직전까지도 그를 보필하고있었고 오히려 배극렴등 신진무장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등 유독 친고려적인 행보를 많이 보였다. 더군다나 정도전이 이색과 우현보를 사형시켜야한다고 상소를 올렸을때 정도전의 뺨을 거세게 후려친 이(!)도 바로 이숭인이었다. 그의 행보를보면 정도전의 제거대상에 안오를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륜은 정도전을 동문취급해주고 권근은 그나마 말로만 정도전을 욕했지 뺨을 치거나 고려에 대한 충정을 대놓고 드러낸적이 없었다.
정도전과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이가 달가운 건 아니었다. 그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사이 정도. 오히려 행동거지가 신진사대부 답지 않은 정도전을 고깝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이인임과 싸울때는 같은 편이기도 했고, 정몽주가 정도전을 유배에서 풀어주려 했을때 그것을 반대한 염흥방에게 정몽주, 권근 등과 함께 역정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도전이 고려를 버리고 역성 혁명을 하고 스승에게도 무례하게 대하자 완전 반대노선을 타고 그 까칠한 성격이 정도전에게 직접적인 모욕을 주고 심기를 건드리자 신진사대부 중에서도 유난히 혹독하게 다뤄지며 젊은 나이에 죽는다.


[1] 후에 tvN 드라마 미생에서 자원2팀 안영이의 상사인 정과장 역을 맡았다.[2] 역사상 기록으로도 삼년상 중에는 과거를 주관하면 안된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또한 3년상 중 태연히 육식을 했다는 것도 이유였다. 권근은 이숭인의 아버지 이원구가 너무 나이가 많아 그의 생전에 이숭인이 과거의 사관을 누리는 영광을 보았으면 했기 때문이라며 이숭인을 비호했다.[3] 물론 일단 정도전에게 베프 중에 베프였긴 했어서 이숭인과는 입장이 다르다. 게다가 정도전이 먼저 통수를 친것도 어느정도 작용한다. 무엇보다 멱살 잡을때의 정몽주는 정도전과 아예 적을 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정도전의 멱살을 잡으면서 이제 싸울 마음이 드냐고 했는데 이를 의미하는 건 절친인 정몽주가 이제 정도전과 아예 적대할거라는 뜻이다.[4] 드라마와 달리 실록에서는 장형으로 인해 죽은 것은 8명이다.[5] 원래 황거정은 정도전의 당여로서 개국공신에 들었을 뿐 아니라,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에까지 오른다. 뒷날 하륜을 포함한 태종의 친위 세력이 이 '장살 스캔들'을 탄핵, 1411년 황거정은 가산을 적몰당하고 폐서인된채 귀양을 가고 자손의 벼슬길이 막히게 된다. 5년이 지난 후에야 정도전과 황거정의 자손에 대한 금고형이 풀리게 된다.[6] 정도전 졸기에 있는 기록이기도 하지만, 등에다 때려대서 장살 당하는 장면은 기존의 볼기를 치는 이미지와 다르기에 충격이 더했기도 했다.[7] 작중에는 안나오지만 고려사를 보면 자기를 해하려는 자들을 피해 담을 넘어 도망가기도 하고, 쫓기던 중 자기의 정적인 이성계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등 비참한 모습이 많이 나온다.[8] 그나마 이숭인이 덜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그럴만도 한게 양지는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모진 고문을 받고 백성들에 의해 돌팔매질 당하고 처형당하기 직전에 처참하게 매질당한 후 단칼에 베여 쓰러졌고, 임견미와 염흠방은 참형을 당해 목이 날라갔고,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수하들에 의해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후 조영규의 철퇴에 맞고 피범벅인채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