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카와 타케히로
1. 개요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내야수. '''미스터 요코하마'''
2. 경력
연고지의 명문고 요코하마 고교 출신으로 2004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6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입단 2년차부터 3년차까지는 스위치 히터로 전향했으며, 2년차인 2006년 진구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전에서 대타로 1군 무대에 데뷔하여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 후 2007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안타를 '''우타석'''에서 뽑아냈다. 그 후 다시 좌타석에만 전념하며 2008년에 개인 첫 홈런을 기록한다.
2009년부터 주전 내야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규정타석에 진입, .242 112안타 2홈런 24타점 19도루를 기록하였고, 2010년에 커리어하이인 .294 153안타 36도루를 기록하게 된다.
모기업이 DeNA로 바뀐 2012년부터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前주장 무라타 슈이치을 대신하여 팀의 주장을 맡게 되었고 꾸준히 주전 자리를 지켰었다. 2015년에는 팀의 세대교체를 위해 츠츠고 요시토모에게 주장직을 넘기게 되었다. 또한 이 해에 오승환을 상대로 개인 통산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2016년에는 유격수 자리는 쿠라모토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며, 2루 자리도 타격에서 가능성을 보인 미야자키 토시로나, 시즌 중반 합류한 용병 엘리안 에레라에게 밀리며 .209 62안타 2홈런 14타점 35득점 6도루를 올리는 데 그치고 만다. 그 와중에 8월 13일 하마스타에서 펼쳐진 히로시마전에서 개인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하게 되었다.
2017년에는 야쿠르트에서 영입한 다나카 히로야스, 2년차 시바타 타츠히로와 함께 2루수 돌려막기의 일원으로 시즌 중반 어느정도 출전 했지만 결국 시즌 막판부터 시바타를 주전으로 밀어주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완전히 밀려서 결국 팀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과 함께 19년만의 일본시리즈에 진출하며 큰 기쁨을 누리는 것을 요코스카에서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기나긴 암흑기를 함께 해왔고 팀의 주장까지 해왔던 그와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팬들도 많았다.
2018년에는 시즌 내내 기회를 받지 못하는 듯 하다가 순위 경쟁이 한창 치열하던 후반기부터 1군에 올라와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A클래스 경쟁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팀은 이 시즌에 아쉽게도 4위에 그치며 A클래스가 좌절되었다.
2019년, 다나카 히로야스가 은퇴를 했지만 그 자리를 요미우리가 내다버린 나카이 다이스케가 꿰차면서 또다시 입지가 좁아졌다. 4월 중순까지 2군을 전전하다가 팀이 10연패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1군에 등록되었고 4월 29일 요미우리와의 도쿄돔 원정경기에서 '''연패를 끊는 결승 2점홈런'''을 작렬시키며 팀의 10연패를 끊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2] 이날 이후로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나 싶었는데... 얼마 못가고 타율이 2할 초반대로 곤두박질쳤다. 그래도 통산 1000안타를 거의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인지라 라미레즈 감독이 어떻게든 기록 달성을 위해 자주 기용할 것으로 보여진다. 8월 4일 요미우리전에서 1000안타 달성에 성공하였다.
2020시즌부터는 본인이 동경하던 야쿠르트의 사카구치 토모타카와 같은 등번호인 42번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즌 개막 이후 줄곧 2군 경기만 뛰었는데 이 기간동안 중견수 알바도 뛰는 등 이리저리 구른 모양... 시즌이 거의 막바지가 다 되어가는데도 콜업 소식이 들리지 않다가 10월 말, 전력 외 통보를 받고 퇴단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2군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다.
3. 플레이 스타일
50미터를 5.9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2할 후반대는 기대해볼 수 있는 평균 이상의 컨택을 가진 준족 교타형 내야수이다. 타석에서 가능한 빠르게 승부를 보는 편인데,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신인때는 전형적인 똑딱이었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뜬금포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까지의 파워도 생겼다. 입단 당시에는 어깨도 강한 편이라는 평을 들었으나 막상 프로에서는 그런 평가가 쏙 들어갈 정도로 강견을 어필하지 못했다.
주전으로 기용할 시 꽤나 많은 희생번트를 기록한다. 한때는 리그 도루 2위를 기록하기도 한 준족이었으며 언제부턴가 도루가 확 줄긴 했지만 주력 자체는 여전히 빠른 편이다. 종합하자면, 팀 배팅과 작전수행에 능하고 보기보다 열심히 빠르게 뛰는 선수.
하지만 유망주 시절은 물론이고 고참이 된 지금도 플레이에 엉성한 면이 많이 보인다. 이 선수의 가장 큰 단점은 수비인데, 수비범위는 넓지만 포구와 송구 모두 평균 이하인 데다가 불필요한 발동작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2009년에 유격수로 풀 타임 출장하여 17실책을 기록한 이후에는 '통한의 미스'라는 불명예스런 명칭이 생겼으며 이로인해 지금까지도 수비 잘한다는 인상은 못 주고 있다. 이시카와가 노쇠화한 이후, 후임 유격수이자 2루수인 쿠라모토 토시히코가 치명적인 실책을 반복해도 그를 다시금 밀어내지 못하는 것은 이시카와의 수비가 쿠라모토보다 딱히 낫다고 보기 힘든 탓도 있다. 이와는 별개로 유격수, 2루수, 외야수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수비 활용도는 은근 높다.
부족한 점도 많은 선수지만, 그래도 팀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통산 1000안타와 100도루를 기록한 준수한 테이블세터이자 준 프랜차이즈급 내야수.
4. 이모저모
흔히 일본야구의 웃긴 영상 등으로 올라오는 이 상황에서의 1루주자가 바로 이시카와다.
한때는 차세대 유격수로 주목 받기도 했고, 미남은 아니어도 틀 잡힌 체격의 훈남 이미지가 있던 덕에 여성팬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