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image]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color=#373a3c> '''Tokyo Yakult Swallows'''
'''東京ヤクルトスワローズ'''
'''구단 법인명'''
㈜야쿠르트 구단
(株式会社ヤクルト球団)
'''창단'''
1950년 1월 25일
'''연고지'''
[image] 도쿄도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도 (1952~)
'''구단명 변천'''
코쿠테츠 스왈로즈 (1950~1965)
산케이 스왈로즈 (1965)
산케이 아톰즈 (1966~1968)
아톰즈 (1969)
야쿠르트 아톰즈 (1970~1973)
야쿠르트 스왈로즈 (1974~2005)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6~)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50~1963)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4~)
'''2군 구장'''
야쿠르트 토다 구장 (1977~)
'''모기업'''

'''감독'''
타카츠 신고 (高津臣吾)
'''킷 스폰서'''

'''마스코트'''
[image]
'''츠바미'''(左) & '''츠바쿠로'''(右)
'''일본시리즈 우승
(5회)'''

'''1978, 1993, 1995, 1997, 2001'''
'''센트럴 리그 우승
(7회)'''

1978, 1992, 1993, 1995, 1997, 2001, 2015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
2015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1회)'''

2018
'''역대
한국인 선수'''

임창용 (2008~2012)
이혜천 (2009~2010)
하재훈 (2016)
'''홈페이지'''

1. 개요
3. 역사
3.1. 태동기(1950~1969, 코쿠테츠 시절)
3.2. 1970년대
3.3. 1980~1990년대
3.4. 2000년대
3.4.1. 2009년 시즌
3.5. 2010년대
3.5.1. 2010년 시즌
3.5.2. 2011년 시즌
3.5.3. 2012년 시즌
3.5.4. 2013년 시즌
3.5.5. 2014년 시즌
3.5.6. 2015년 시즌
3.5.7. 2016년 시즌
3.5.8. 2017년 시즌
3.5.9. 2018년 시즌
3.5.10. 2019년 시즌
3.6. 2020년대
3.6.1. 2020년 시즌
3.6.2. 2021년 시즌
4. 관중수 추이
5. 인기
6. 유니폼
7. 응원가
8. 한국인 선수
9. 이모저모
10. 선수 정보
10.1. 현역(2021년/등번호기준)
10.1.1. 감독
10.1.2. 투수
10.1.3. 포수
10.1.4. 내야수
10.1.5. 외야수
10.2. OB
10.2.1. 투수
10.2.2. 포수
10.2.3. 내야수
10.2.4. 외야수
10.2.5. 역대 감독
10.3.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1. 역대 성적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도쿄. 대한민국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식품 기업인 야쿠르트사가 모기업인 팀이다.
현재 운영 주체는 야쿠르트지만, 과거 산케이신문이 구단을 인수하여 운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디어 관계 쪽으로는 여전히 산케이신문후지TV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예로 2015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마지막 4차전은 후지TV에서 생중계했고, 다음날 산케이신문 산하의 산케이 스포츠만 유일하게 야쿠르트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1면 톱으로 실었다. 그 외의 나머지 신문은 모두 요미우리 자이언츠하라 다쓰노리 감독 사임이 1면 톱기사였다.

2. 홈구장 : 메이지진구 야구장


메이지진구 야구장 항목 참조.
고시엔처럼 아마추어 야구인들의 사용이 많은 구장이라 그래서인지 센트럴 리그에서는 지방경기 일수가 요미우리한신 다음으로 많다. 매년 5~7경기를 배정하며, 그 중 아키타현코마치 스타디움, 후쿠시마현의 후쿠시마현영 아즈마 구장, 시즈오카현시즈오카 쿠사나기 구장, 에히메현봇찬 스타디움 등에서 주로 개최되고 있다.

3. 역사


1950년에 코쿠테츠 스왈로즈라는 팀명으로 창단하였으나, 1965년 산케이 스왈로즈, 1966~1968년의 산케이 아톰즈, 1969년 아톰즈, 1970~1973년 야쿠르트 아톰즈를 거쳐 1974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팀명이 변경되었다. 2006년부터 연고명을 구단의 공식명칭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도쿄 터줏대감 요미우리 자이언츠 때문에 여전히 '야쿠르트 스왈로즈' 라고만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 [1]
팀명의 스왈로(Swallow)는 '제비'라는 뜻으로, 1950년대 일본국철이 메인스폰서였을 당시에 도카이도 본선 도쿄-오사카를 달리던 특급열차의 이름인 츠바메(=제비)에서 따 온 것이다. 참고로 저 열차 이름 "츠바메"는 아직도 큐슈 신칸센에서 쓰고 있다.[2] 대충 한국철도 뉴커뮤니티스 같은 작명 센스. 그래서 산케이는 팀을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을 갈아버렸는데, 그러나 야쿠르트가 팀을 인수하고 이 이름을 다시 부활시켰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같이, 아니 이보다 더해 마스코트는 물론이고 팀명도 저작권이 외부에 있었으므로 아톰즈라는 이름을 무한히 쓸 수 없기는 했다.
일본시리즈에서 5회, 센트럴리그에서 7회 우승하였다.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를 놓고보면 요미우리, 세이부, 소프트뱅크에 이은 4위를 기록했다. 센트럴리그에서는 2위로 역사적으로 요미우리, 주니치, 한신의 3강이었던 센트럴리그 구도에서 강호의 이미지가 크지 않았던 팀 치고는 꽤나 많이 우승했다. 2012년까지 팀 통산전적은 3,803승 4,299패 288무, 승률 0.469이다. 통산 승률은 낮지만 상술했듯이 이래 봬도 2020년 기준으로 일본시리즈 최다우승 4위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 팀이 A클래스를 기록한 횟수가 겨우 '''19번'''이다. 즉, 그 중에서 센트럴 리그를 7번 우승했고, 일본시리즈에서 5번 우승했다는 것.

3.1. 태동기(1950~1969, 코쿠테츠 시절)


1950년 일본국유철도에서 노사단결 차원에서 고쿠테츠 스왈로즈라는 명칭으로 팀을 창단하였으나, 프로 출신 선수가 한 명밖에 없었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후 전설적인 대투수 카네다 마사이치가 입단하였으나, '''카네다 마사이치 원맨팀'''이라는 약팀 이미지[3]가 강했다. 저 당시 스왈로즈가 A클래스에 들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고. 정부가 관리하는 국영기업인 일본국철의 한계로 인해[4] 선수영입이 원활하지 못했고, 결국 산케이신문·후지TV의 후지산케이 그룹에 1965년에 매각[5]을 했지만 여전히 약체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3.2. 1970년대


하지만 긴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1970년 야쿠르트에게 구단이 인수된 이후[6] 1978년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의 '''관리야구'''로 첫 센트럴리그 우승에 뒤이어 일본시리즈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를 격파하고 처음으로 우승[7]을 했다. 에이스 마츠오카 히로무[8], 스왈로즈 사상 최고의 리드오프 와카마츠 츠토무, 스왈로즈 역사에 길이 남을 핵타선 클린업이었던 '''오스기 카츠오 - 찰리 매뉴얼 - 스기우라 토오루'''가 이 당시의 주요 선수였다.

3.3. 1980~1990년대


  • 순위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2
4
6
6
5
6
6
4
5
4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5
3
1
'''1'''
4
'''1'''
4
'''1'''
4
4
하지만 다음해인 1979년, 개막 초부터 연패를 거듭하면서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이 구단과의 불화 끝에 자진 사임하는 악재까지 겹치며 단 1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팀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치욕을 맛보며 다시 약체로 몰락했고, 이후 1980년대에 저 황금세대가 대부분 은퇴함과 동시에 10년 동안 A클래스는 커녕 비밀번호만 찍으면서 이렇다할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그저그런 약체팀으로 머무른다. 이후 1990년대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취임하고서 특유의 ID야구로 다시 강팀의 이미지를 회복.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코시엔 스타 출신 강속구 투수 아라키 다이스케, 神算 후루타 아츠야, 좌우 에이스 이시이 가즈히사가와사키 겐지로, 비운의 에이스 이토 토모히토[9]와 마무리 투수 '미스터 제로' 타카츠 신고,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 이케야마 타카히로와 강타자 1루수 히로사와 카츠미, 톰 오말리, 잭 하웰 등의 클린업이 가세하며 전력이 강해져 일본시리즈에서 3회나 우승(1993년, 1995년, 1997년) 을 차지하며 스왈로즈 황금시대를 일궈냈다. 그리고 2001년에도 다시 통산 5번째로 우승하였다. 그러고 보니 첫 우승인 1978년을 제외하면 홀수해에만 우승한 게 특징인데 이걸 징크스로 봐야 하나(…). 그리고 1992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10년동안 기록한 순위는 1위 아니면 4위이다. 횟수도 1위 5번, 4위 5번으로 매우 공평하다(...)
이는 팀의 고질적인 약점인 얇은 전력 때문인데, 팀 전력이 두텁지 못하다 보니 주전들을 쥐어 짜서 우승을 하고 나면 그 후유증으로 그 다음 해에는 4위를 하게 된다. 4위를 하는 동안 부상 등으로 이탈했던 전력이 다시 회복을 해서 그 다음해에 복귀를 하면 다시 그 주전들의 전력을 쥐어짜고 여기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용병이나 무명선수들, 다른 팀에서 더 이상 써먹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 방출시킨 경험과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들이 간간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다시 우승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무라 감독 시절에는 잭 하웰이나 히로사와 카츠미같은 주축 선수들을 자금력에서 앞서는 팀 에게 빼앗겨도 갑툭튀 에이스 타바타 카즈야나 중간계투진의 야마다 츠토무, 카나자와 츠기오, 마츠모토 시게루, 히로타 히로아키처럼 무명 선수들이 갑자기 대두하거나 스미 미츠오, 요시이 마사토, 츠지 하츠히코, 코바야카와 타케히코 등 타팀에서 활약하다가 기량저하 등으로 주전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야쿠르트로 이적한 뒤 부활하거나, 이토 아키미츠 등 이전에 혹사당해 기량을 잃었다고 생각한 기존 전력들이 부활해 활약하는 일들이 많았다. (망가진 선수의 커리어를 재생하는) '''노무라 재생공장'''이라 불릴 정도. 심지어는 용병 중에서도 한신에서 버림받은 토마스 오말리, 롯데에서 뛰던 헨슬리 뮬렌을 데려와서 95년 우승할 때 쏠쏠하게 써먹기도 했다. 그 이후 와카마츠 츠토무 감독 시절에도 카와사키 켄지로 등의 에이스들을 FA로 내주는 악재가 있었으나 저니맨 이리키 사토시나 외국인 투수 케빈 호지스가 선발로 깜짝 활약을 하면서 기존의 왼손 에이스 이시이 가즈히사, 신인왕 후지이 슈고와 함께 선발진 공백을 완전히 지워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의 우승 이후에도 1루수 로베르토 페타지니의 공백과 3루수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부상으로 인한 코너 내야 공백을 90년대 말 세이부의 중심 타자였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성적이 하향세를 그리던 스즈키 켄을 영입해 OPS 9할을 찍을 정도로 부활시켜 1-2년 메운다던가 하는 식으로 써먹은 적이 있고, 미국과 일본을 오가던 저니맨 우완 키다 마사오를 필승조로 써먹는 등 방출 선수나 무명 선수를 쏠쏠히 활용해왔다. 지금도 오릭스에서 방출된 사카구치 토모타카 같은 선수가 야쿠르트에서 다시 활약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 선수들의 활약이 길게는 못 간다는 점. 다른 팀에서 전성기를 보내다 방출되어 야쿠르트가 줏어온 선수들은 대부분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이기 때문에 어찌저찌 1~2년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에 그대로 스러져 결국 이 선수들이 왜 전 소속팀에서 나와야 했는지 스스로 증명을 하면서 막판에는 초라한 성적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게 되고 팀을 떠나게 된다. 무명 선수들도 대부분 1-2년 반짝한 뒤 부상이나 기량 저하로 무명인 채 커리어를 마감했다(...). 그렇게 우승을 하고 나면 그 다음해에는 또다시 주전들의 부상 + 깜짝 활약을 펼쳤던 무명 선수 및 로또 긁는 심정으로 데려온 타팀 출신 베테랑들의 제자리 복귀(...) + 전년도의 활약으로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원래 기대치만큼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용병들의 먹튀화가 트리플 크리를 먹이면서 다시 4위로 하강(...) 이 사이클을 무려 10년을 반복을 하게 된다. 이렇게 전력이 약해지는데도 못해도 4위였던 이유는 당시 센트럴 리그에서 더 불안정한 전력의 한신 타이거스,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중에 꼭 두 팀씩은 바닥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3.4. 2000년대


  • 순위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4
'''1'''
2
3
2
4
3
6
5
3
2000년대 들어서는 90년대 최강 포스는 많이 퇴색하여 01년 우승 이후로는 많이 약해졌다. 그 후 10년간은 대략 3위가 정위치라는게 대세. 00년대에 이미 인기팀 3강(요미우리, 주니치, 한신)중 한팀이 B클래스가 되면 남는 A클래스 자리를 채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특이하게 00-09년의 10년간 1위부터 6위까지를 다 경험한 유일한 팀. 다만 상위권 6번(1위 1회, 2위 2회, 3위 3회)하위권 4번(4위 3회, 5위 1회, 6위 1회)으로 항상 중박은 치는게 보통이였다.
때문에 전력분석관들에게는 맨날 다크호스 취급. 어차피 5, 6위 베이스를 맨날 깔아주는 히로시마 와 요코하마, 그리고 맨날 2위만 하는 주니치 이 세팀은 매년 그게 그거라 예상하기 쉽고 만년 최강전력인 요미우리, 분위기 타는 한신을 제외하면 가장 순위고 활약이고 점치기 힘든 팀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LG 트윈스에서 페느님으로 불리던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황금기의 끝무렵이던 03년까지 이 팀에서 활약하였다. 그외에는 임창용이나 이혜천, 세스 그레이싱어등을 한국에서 영입하는등 한국과 관련있는 용병이 많아 한국에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 시기이기도 하다.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일본시리즈에 우승한 마지막 해인 2001년에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의 일본시리즈 대결에서 4승1패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3.4.1. 2009년 시즌


2009년에는 다테야마 쇼헤이 등 선발진들이 활약하고, 임창용이 7월까지 '''0.00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면서 잘 나가다가 임창용이 2군으로 내려간 후 한때 '''5위'''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임창용이 다시 1군으로 승격한 이후 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다시 재역전하여 2009년 10월 9일에 있었던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임창용이 1.2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내며 승리, 센트럴리그 '''3위'''를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였다. 근데, 최종성적은 71승72패1무. 승률이 5할도 안된다. 그리고 2위 주니치와 맞붙어 2패로 광탈하여 시즌을 끝냈다.

3.5. 2010년대


  • 순위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4
2
3
6
6
1
5
6
2
6


2000년 후반부터 부상자에 시달렸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부상 병동화가 옮아온 건지 매년 제 상태로 시즌을 진행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야전병원'(ヤ戰病院)이라 부를 정도이다.
이 시기의 스타선수라면 역시 아오키 노리치카. 다만 아오키가 2011년 시즌 이후 MLB로 건너간 이후 특출난 스타선수가 나오지 않다가, 최근에는 호타준족의 2루수 야마다 테츠토가 아오키를 이어 야쿠르트 등번호 1번의 계보를 이어받으며 간판스타로 활약중이다.
2012년까지 5년연속 꼴찌를 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를 대신하여 2013년부터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가 2015년 14년만에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년만에 5위로 추락하더니 우승하고 겨우 2년만에 다시 꼴찌로 되돌아갔다.

3.5.1. 2010년 시즌


작년 3위의 흐름을 잇지 못하고 고질병 스러운 부상자 속출에 따른 분위기 다운으로 6월까지 승률 3할 때의 최하위를 달렸다. 결국 타카다 시게루감독이 휴양 시켜 버리고 당시 1군 코칭 스탭이던 오가와 준지 감독을 1군 감독 대행으로 올렸다.
많은 팬들은 6월밖에 안됐는데 성급한 거 아니냐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원래 스카우트 출신이라 선수 보는 안목이 있었고 2군 감독 경험이 길었던[10] 오가와 감독이 정말 빠르게 팀을 수습하여, 안좋은 흐름을 끊었다. 아오키 노리치카를 다시 1번으로 돌리고, 만년 후보였던 하타케야마 카즈히로를 과감히 4번에 기용하는등, 선수층을 제법 많이 물갈이 하여 이게 적중하였고 부상자 대신 2군에 있던 젋은선수들을 대거 기용해서 좋은 흐름을 잡았다.
결국 6월까지 거의 반시즌을 말아먹어 놓은 탓에 A클래스 진입은 실패했지만, 당시 3위던 한신 타이거스와 시즌 마지막까지 0.5게임차의 치열한 경쟁을 벌일정도의 저력을 발휘했다. 순수하게 오가와 감독이 지휘하던 시기의 성적만 뽑으면 승률 6할을 넘어 다음 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3.5.2. 2011년 시즌


상술한 홀수해 징크스일 수도 있는 것이 2011년 한때는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니 전년 후반기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서 초반부터 굉장히 오랜 시간을 선두권에서 보냈다. 특히 7월에는 2위 주니치 드래곤즈와 10게임차가 나는등 거의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8월부터 선발진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 그동안 잘 치던 클린업이 급 선풍기 화 하면서 망했어요. 결국 9월말에 2위 주니치와 원정 4연전에서 1승 3패로 참패를 당해 1위를 내준후, 그대로 DTD하여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요미우리에게 2승 1패로 힘겹게 이겨 올라갔지만, 클라이맥스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주니치에게 어드밴티지 포함 2승 4패로 패퇴했다.
그리고 2위면서 득점보다 실점이 많은 진기록을 세웠다(…).

3.5.3. 2012년 시즌


이제는 말하기도 지겨운 팀 전체의 스페랑카화가 절정에 달한 해였다. 임창용을 포함하여 주력급 부상 이탈자가 '''11명'''에 달하는 안습한 상황. 이중 절정은 주전포수 아이카와 료지인데, 4월에 한번 약 1개월 반을 골절상으로 이탈한 걸로 부족했는지 8월에 또 한 번 골절(…). 2ch에서는 골밀도 드립까지 나올 정도로 개그를 자아냈다.
말이 부상이탈 11명이지 부상자로만 팀 하나가 나올 지경(…). 이 때문에 4월을 선두로 마쳤으나 교류전에서 무섭게 DTD를 시전하여 교류전 최하위로 한때 5위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다.
그래도 이 와중에 각종 신인들과 2012년 NPB 최고 대박 외국인으로 투고타저속에서 1년차에 3할을 찍은 라스팅스 밀렛지, 백업포수였던 나카무라 유헤이의 분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여태까지 백업에만 그쳤던 타카이 유헤이, 매년 구단 전통스럽게 존재하던 신인 좌완 2년차 캐망(…) 징크스를 그럭저럭 잘 극복한 아카가와 카츠키, 어깨 빠지도록 애니콜로 등판한 우완 오시모토 타케히코와 좌완 히다카 료등등, 왠지 타팀에서 보면 듣보잡들이 하나 둘씩 갑툭튀하여 활약하였다.
그 결과 15년만에 B클래스 탈출을 꿈꾸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9월 초에 결국 끌어내려서, 시즌 종료시 68승 65패로 3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히로시마는 DTD를 체험하며 비밀번호 15자리를 기어이 찍고 만다.
재밌는 건 강팀에게 강하고 약팀에게 약했다는 점. 2위 주니치는 항상 중요할때 야쿠르트에 발목을 잡혀서 망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11구단중 가장 분전한 편. 반면에 만인의 호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는 10패나 퍼주는 인심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요코하마의 첫 3연전 스윕이자 마지막 스윕도 한번 선물해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상대전적 및 나고야돔 전적에서 앞서고 주력 이탈로 해볼만 하다고 평가되던 주니치와 맞붙었으나, 부상 복귀한 주력급들의 컨디션과 경기감 난조로 3시합동안 3점밖에 못내는 빈타에 허덕이다, 결국 3차전 8회말에 주니치 4번 블랑코에게 역전 만루홈런 한방 쳐맞고 격침. 1승 2패로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패퇴하며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3.5.4. 2013년 시즌


선발진을 보자면 4월초부터 에이스 다테야마 쇼헤이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며 시즌 아웃되었지만, 신인 오가와 야스히로가 두 자릿수 승리(8월 23일 기준 12승으로 다승 선두)와 2점대 자책점으로 선발진을 지탱해 주고 있다. 이시카와 마사노리가 방어율 3.45,리그 10위(8월 23일 기준)로 오가와의 뒤를 이어 분전하고 있지만 3승 7패, 승률 3할의 안습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더 안습한 것은 실점이 54점인데 자책점이 41점으로 13점이나 차이난다. 3선발이라 할 수 있는 신인(2011년 입단이지만 풀타임 선발은 올해가 처음) 야기 료스케도 방어율이 3.62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5승 8패로 승률 5할이 안된다. 작년 그럭저럭 성적을 냈던 아카가와는 3년차가 되더니 탈탈 털렸고, 아카가와와 비슷한 성적을 냈던 무라나카 쿄헤이는 4승 7패, 방어율 4.53으로 애매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중계-마무리를 보자면 작년 33세이브와 1.82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임창용의 공백을 메꿨던 토니 바넷은 불놀이를 하며 7점대 자책점에 1승 7패로 충격과 공포의 성적을 올리며 마무리 자리를 뺏겼다. 부상 후 돌아온 셋업맨 마츠오카 켄이치도 마찬가지로 7점대 자책점(...). 작년 분전했던 오시모토도 5.70의 방어율로 망했고, 히다카 료는 2경기 16.20의 막장스러운 성적만을 기록한 채 사라졌다. 신인 이시야마 다이치가 21홀드포인트, 작년 1.21의 방어율로 갑툭튀한 야마모토 테츠야가 12홀드-11세이브로 팀의 중심계투 역할을 맡고 있다.
타자진을 보자면 발렌틴과 여덟 난쟁이 수준이다. 8월 23일 기준 규정타석에 들어와 있는 선수는 발렌틴, 하타케야마 가즈히로 세 명밖에 없다. 발렌틴이 0.332(3위)/0.452(1위)/0.786(1위) 44홈런(1위,8월 22일 45,46호를 쳤지만 공식 사이트에 반영이 되지 않음) 96타점으로 리그를 씹어먹고, 30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일본 신기록 갱신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밀렛지(0.251/0.329/0.436 16홈런 49타점)와 하타케야마(0.221/0.282/0.376 12홈런 51타점)는 잉여롭기 그지없다. 기준을 200타수로 낮춰도 선수들 중에서도 3할은 여전히 발렌틴 혼자며, 2할7푼대 선수도 세 명, 발렌틴을 제외하면 두 명밖에 없다. 그나마 밀렛지는 중간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
야쿠르트의 2013 시즌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팀 평균자책점/타율 모두 센트럴 리그 5위에 위치해 있는 것이 이를 나타낸다. 시즌 초반에는 4할 중반대의 성적으로 혼전의 중위권 싸움을 하고 있었으나 교류전에서 3할(7승 16패,0.304)의 승률을 거두며 12개 구단 중 11위[11]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DTD를 시전 중. 그나마 이번 시즌 센트럴 리그 자체가 2강 4중 이라서 3위 히로시마와의 경기차가 6경기밖에 안나는 것이 그나마 희망이라면 희망이라 할 수 있었으나...
시즌 최종 성적은 144전 57승 83패 4무(승률 0.407)로 '''1위 요미우리와 28.5게임''', 3위 히로시마와 11.5게임차 꼴지를 차지하며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6년 연속 꼴찌를 막아줬다.
시즌 후 남은 것은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아시아 최초 60홈런 달성[12]과 대졸 신인 오가와 야스히로의 단독 다승왕과 승률왕, 그리고 신인왕 .[13] 시즌 중반기부터 털리긴 했어도 새롭게 발견한 선발 야기 료스케와 이시야마 다이치, 야마모토 테츠야의 발견정도가 희망이라 할 수 있다. 19년 동안 뛰며 내야의 철벽수비를 책임진 레전드 미야모토 신야까지 은퇴하며 2013년의 야쿠르트는 정말 안습한 모습을 보였다.

3.5.5. 2014년 시즌


팀의 레전드인 타카츠 신고가 투수코치로 팀에 복귀했다.
4월 22일 기준으로 팀 ERA가 '''5.95'''라는 초월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순위는 밑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깔아주고 있는 덕에 꼴찌는 아니지만 서로 겨우 1경기 차이며, 4위인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경기차가 꽤 나고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팀의 승수의 반절을 책임지고 있던 소년가장 오가와 야스히로가 18일 선발등판 도중 3회에 오른손에 강습타구를 맞고 골절상을 입어 완치에만 '''최소 6주'''가 걸린다는 정밀진단이 나왔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 결국 걱정은 현실이 돼서 교류전에서 한신,카프와 함께 리그 만년 꼴찌 베이스보다 낮은 성적을 남기며 시원하게 망했다.
원래 칠때 시원하게 치고, 못칠땐 더럽게 못치던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8월 들어서면서 말그대로 폭발. 연속시합 2자릿수 안타, 8월 팀평균 타율이 4할대에 근접하는등 미친듯한 공격성을 보여주고 있다.투수진을 제물로 삼아 공격을 얻었다는 말이 나오는 수준의 시합들을 벌이고 있는데, 8월 5일 한신전에서는 패배했지만 한신의 메신저를 상대로 20-11(...)[14],그 후 8월 7일에는 13-4, 지금까지는 은행 취급 당하면서 털리던 요코하마를 8 월8일 12-3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도대체 이런팀이 왜 리그 꼴찌인거냐는 한탄이 팬들사이에서 터져나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투수진은 답이 없었고 9월 29일 히로시마 원정경기에서 패하며 2년 연속 꼴찌 확정. 1위 요미우리와는 21게임차, 5위 요코하마와는 '''6.5게임차'''로 2년 연속 꼴찌확정. 타선은 타출장 0.279(1)/0.339(1)/0.412(2)로 리그 최상위의 성적이고 규정 타석 채운 3할 타자가 5명에 20홈런 이상도 3명으로 리그 톱의 성적을 달렸다. 2루수 주전자리를 차지한 야마다 테츠토는 타출장 0.324(3)/0.403(4)/0.539(3)의 비율스탯과 29홈런 89타점 106득점 15도루을 기록하며 포텐을 터트렸다.[15] 수비만 믿고 본다던 외야수 유헤이[16]도 3할-20홈런을 치는 대활약으로 베스트나인에 선정. 다만 지난 시즌에 대활약을 했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112경기동안 '''31홈런''' '''69타점'''이라는 해괴한 성적으로 기대에 못미친것이 흠.
문제는 투수진. 문자 그대로 '''붕괴수준'''이다. '''ERA 4.67'''로 혼자서 다른 세계서 놀고 있다.[17]선발진에선 에이스 오가와는 시즌 중 부상을 당하고나서 롤러코스터 피칭, 한때 에이스던 이시카와는 선발 로테이션을 유일하게 지키긴 했지만 커리어 로우, 작년에 발견했던 선수들도 폭망. 그래도 아키요시 료[18] 라는 신인이 불펜을 지탱하며 또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결국 오가와 준지 감독이 사의를 표명하며 쓸쓸하게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됐다.

3.5.6. 2015년 시즌


[image]
오가와 감독의 뒤를 이어 수석 타격코치던 마나카 미쓰루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FA시장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의 에이스였던 나루세 요시히사를 3년 6억엔에 영입했다. 과거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답이 없는 투수진에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겠지만, 2013, 2014 시즌을 말아먹은 전력에서 보면 또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아 보이기도. 애초에 원소속팀이던 지바에서도 1년 계약을 제시했을 정도니. 또한 주전 유격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닛폰햄에서 베테랑 유격수 오비키 케이지를 3년 3억엔에 데려왔다. 나카무라 유헤이에게 주전 포수를 내준 아이카와 료지가 FA를 선언, 교진으로 이적했다.
시즌에 들어서면서 주전 외야수인 블라디미르 발렌틴과 라스팅스 밀리지 가 둘 다 부상으로 이탈하고 마는 악재를 겪었다. 그런데 작년의 투수붕괴를 우려했는지 타선 강화는 아예 포기하고(...) 그냥 투수에, 특히 불펜에 외국인 선수들을 올인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일단 미치 데닝이라고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던 외국인 타자를 한 명 데려오긴 했는데 1군 최저연봉 1440만엔의 1/4밖에 안 되는 연봉 360만엔(...)이라는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19] 투수진은 개막 후 14경기 연속 3실점 이하를 기록하여 1956년 니시테츠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리그 시작 초반에는 과연 작년과 같은 팀인지 의심이 들만큼 일취월장한 투수력과 밀리지와 발렌틴이 빠졌음에도 강력한 타선으로 인해 상위권을 질주. 4월 중순까지 리그 1위를 유지하는 등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5월 초부터 재작년부터 발목을 잡던 투수력이 다시 하락하며 9연패를 하는등 극심한 부진을 겪으면서 순위도 수직하강. 한때는 최하위 자리까지 내려가는 수모를 당했지만, 교류전 돌입과 함께 살아나면서 팀 승률 5할 전후를 유지하는 중. 리그 1,2위인 교진과 DeNA가 한신, 야쿠르트와는 반대로 교류전에서 나란히 망하면서 승패 득실을 엄청나게 깎아먹은지라 어부지리로 A클래스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타선의 경우 외국인 2명의 이탈 외에도 유헤이를 비롯한 작년 주전들의 부진, FA 오비키의 먹튀화 등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으나, 타선의 축인 야마다 테츠토가 여전히 날아다니면서 퍼시픽의 야나기타 유키에 비견될 정도의 활약을 펼치고 있고, 하타케야마가 리그 홈런왕 페이스로 장타를 쳐주고 있으며 만년 내야유틸이던 아라나미가 프로 8년차만에 뜬금 각성하는 등 긍정적인 요소도 제법 있어서 작년 만큼의 폭발감은 아니지만 리그 평균 수준은 해 주고 있다. 360만엔의 남자 미치 데닝은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동점홈런, 역전 만루홈런을 기록하면서(두 경기 다 역전승) 연봉 치고는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사실 야쿠르트가 잘 친다기보단 한신과 교진 타선이 워낙 망해서 리그 중간이라고 봐야겠지만(...).
투수진은 리그 반환점도 안 돈 시점이기에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겠으나, 교류전까지의 성적은 매우 양호한 편. 약한 타력을 괜찮은 투수력으로 보완해서 그럭저럭의 성적을 내던 야쿠르트의 과거 팀 컬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13년에 완전 망하고 14년에도 미묘한 성적을 보여주었던 외국인 토니 바넷과 올랜도 로만이 귀신같이 동시에 부활하고, 새로 1군 외국인 자리를 채우게 된 로건 온드두섹 역시 리그 최상위 셋업으로 활약하고 있다. 불펜의 안정화에 힘입어 선발진도 오가와, 이시카와의 에이스카드 2장이 살아나면서 작년에 비하면 그럭저럭 봐줄만 한 성적을 찍고 있는 중.
이렇게 타선도 투수진도 나름 살아나면서 '''5할에서 겨우 +2이던 한신에게 싹쓸이 승을 거둬''' 7월 3일 기준으로 팀득점 2위, 팀 평균자책점 3위를 찍으면서 '''리그 단독 1위'''에 올라섰다. 그렇지만 세리그 자체가 2, 3, 4, 5위까지 '''1위와 반게임차'''라는 카오스에 빠져버렸다. 사실 6위 주니치와도 4게임차밖에 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원인은 역시 교류전에서 세리그 모두가 망한 탓이 크다. 졸지에 거인의 최대 천적과 함께 선두권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8월 17일 현재 5할에 겨우 +1임에도 불구하고 교진에 승률이 조금 앞서 세리그 2위 자리에 앉았다.
9월 22일 현재 약 10경기를 남기고 있는 상황에서 2, 3위 교진, 한신에 2경기 앞서 1위를 사수중. 한신과 교진이 분위기가 안좋아지는 와중에 유일하게 승수를 쌓고 있어 우승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9월 25일 기준으로 2위 교진과는 2게임 차, 3위 한신과는 4.5게임 차이며, 이 날 4위 히로시마가 한신에게 3-0으로 패하면서[20] '''3시즌 만에 A클래스 복귀를 확정지었다.''' 매직넘버는 '''5.'''
9월 26, 27일에 열리는 교진과의 원정 2연전은 2015시즌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시리즈이다. 교진이 2연전을 쓸어담을 경우 '''승차가 없어지게 되고,'''[21] 야쿠르트가 2연전을 쓸어담으면 4게임 차가 되며 '''매직넘버가 1이 된다!''' 그렇게 맞이한 2연전에서 26일 경기는 3-4로 패, 27일 경기는 2-1로 승리하여 1승씩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매직넘버는 '''3.'''[22] 9월 28일 주니치와의 홈 경기에서 2-6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교진은 한신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하면서 매직넘버가 1로 줄어 '''14년만의 세리그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기게 되었다!''' 9월 29일 히로시마와의 홈 경기는 4-2 패배를 당했다. 매직넘버는 아직 '''1.'''
10월 1일 경기는 일본 전역에 비가 오면서 센트럴 리그 경기가 모두 취소되었다.[23] 야루르트 VS 한신 경기는 10월 2일에, 교진 VS DeNA 경기는 10월 3일로 편성되었다. 결국 10월 2일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 한신전에서 11회 연장 승부 끝에 6번 타자 유헤이의 끝내기 안타로 1-2 승리, 14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10월 14일부터 펼쳐지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의 상대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결정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도입된 이후 난생 처음 리그 우승팀의 입장에서 어드밴티지 1승을 먹고 자신만만하게 임했건만 믿었던 불빠따가 전부 배신을 때리면서 상대팀 투수인 우츠미 테츠야의 역투에 제압당했다. 그러는 사이에 상대팀의 4번타자인 사카모토 하야토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허용하는 등 1대4로 패배. 기껏 1승을 먹고서도 1경기만에 1승1패의 동률 상황이 되면서 일본시리즈 진출 플랜이 어긋나게 됐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에서 오가와와 바넷의 계투로 요미우리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고 4회말 하타케야마의 희생플라이와 유헤이의 땅볼로 2점을 선취하고 6회말에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2타점 적시타로 추가점을 내면서 4대0으로 승리. 다시 2승 1패로 앞서나갔다. 이어진 3차전에서도 선발 다테야마의 6이닝 무실점을 비롯하여 필승조들의 계투로 2경기 연속 영봉승을 기록하면서 2대0으로 승리, 시리즈 전적을 3승 1패로 만들었다. 다음날 열린 4차전은 초반 상대팀의 야수선택과 실책성 플레이를 틈타 3점을 선취했으나 5회초에 상대팀 타선에서 유일하게 제 역할을 했던 아베 신노스케의 2타점 적시타로 1점차로 추격 당했다. 이어진 7회초 1사 1, 2루에서 이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7할에 가까운 맹타를 휘두르고 5회초에도 적시타를 때렸던 요미우리 타선의 유일한 희망 아베를 투수땅볼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분위기를 굳혔다. 결국 8, 9회 요미우리의 공격을 무난하게 넘기고 어드밴티지 포함 4승 1패의 전적으로 14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서는 상대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압도적인 전력을 뛰어넘지 못하고 1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일본시리즈에 관해서는 2015년 일본시리즈 항목 참조.

3.5.7. 2016년 시즌


전년도에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대치는 한껏 높아졌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 3연전을 시원하게 3연패하면서 좋지 않은 스타트를 끊었다. 허나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홈 3연전에선 1차전 오가와 야스히로의 완투승, 2차전 이시카와 마사노리의 7이닝 1실점 호투로 2승 1패 위닝시리즈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작년의 우승은 플루크였다고 자백하는 듯 막장화의 길을 걸으면서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쳐졌다. 특히 투수력의 붕괴가 눈에 띄는데 전년도에 맹활약하면서 투수진의 기둥역할을 한 불펜의 외국인 투수 트리오는 완전히 해체되었고[24] 후반기에 자리를 잡는 듯 했던 선발 로테이션도 완전히 망가졌다. 전년도 드래프트 당시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유난히 주목을 받은(...) 도요 대학 출신의 드래프트 1위 하라 '''주리'''[25]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이다. 그나마 하라가 로테이션 투수에 걸맞는 활약이라도 한다면 성공한 드래프트라고 칭찬이라도 하겠지만, 현실은 정말로 로테이션을 채울만한 투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직 기량이 완성되지 못한 신인을 억지로 로테이션에 쑤셔넣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수준.
시즌 개막부터 주력들의 줄부상으로 팀을 꾸려나가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이다. 팀에서 제대로 활약하는 선수라고는 전년도에 완전히 포텐셜이 만개한 주포 야마다 테츠토나, 오릭스 버팔로즈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몇 년간의 부진으로 방출된 것을 중견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주워온 사카구치 토모타카, 비율스탯은 그냥저냥이지만 홈런은 잘 치는 블라디미르 발렌틴, 장타력은 거의 없지만 야마다 앞에서 안타라도 잘 치고 나가주는 가와바타 신고 정도. 그나마 가와바타도 후반기에 들어와서 부상으로 결장중이다.. 야마다는 전년도에 이어 홈런 1위, 도루 1위에 아름다운 비율스탯을 찍으며 팀의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도루까지 포함해서 타격 8관왕에 도전 중. 하지만 투수진은 그야말로 '''멸망'''.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팀 평균자책점이 5점대를 찍으면서 리그 탑급의 공격력을 가지고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최하위인 상태로 교류전에 돌입했다. 리그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세리그가 전반적으로 혼전 양상이라 교류전 돌입 당시 1위와 단 5.5게임차. 그렇다고 희망을 가질만한 상황이냐 하면 그렇게 보기도 힘든 것이 5월 내내 최하위에 고정되어 순위와 게임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 이대로 가면 작년에 시즌 내내 클라이맥스 시리즈 추격권은 유지했지만 결국 추격만 하고 끝난 히로시마 꼴로 최하위를 못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교류전에 들어와서는 모두의 예상대로 퍼시픽 리그 팀들의 보약 노릇을 하면서 교류전에서도 최하위로 쳐져 있다. 교류전 들어가기 전에도 나빴던 성적이 교류전 와서 더욱 나빠졌다. 문제는 저 3승 9패가 전년도 일본시리즈의 맞상대이자 전년도보다 더 잘나가며 센트럴리그 팀들에게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취급을 받는(...) 소프트뱅크와는 아직 붙지도 않은 상태의 성적이라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대로 가면 최근 4년동안 최하위만 3번을 기록하는 불명예를 쓸 가능성이 높다. 그 최하위를 안한 한 해가 우승이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소뱅에게 당연히 루징시리즈를 기록했고 이어진 사이타마 세이부에게도 루징을 기록하면서 6승 12패로 교류전에서 오릭스 버팔로즈와 최하위권에 쳐져있다.
외야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팀을 거쳐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던 하재훈과 계약하였다.관련기사. 6월 8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날인 9일 일본 첫 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애초에 줄부상당한 주전 외야진의 공백을 잠시 메꾸는 수준의 보험용 계약이었는지라 데뷔 10일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26]
6월 14일 시점에서도 여전히 리그 최하위를 순항중. 그래도 교류전 시작 전까지 1~5위가 2.5게임차 이내 혼전인 와중에 야쿠르트 혼자 독보적 최하위를 달리고 있었던 때에 비해 교류전 사이에 히로시마는 쭉 치고 올라가고 나머지 세리그 팀은 부진하면서 많이 추격한 상황이다. 물론 아직 탈꼴찌는 하지 못하였으나 7월 2일 기준으로 2위인 DeNA와 단 2게임차 밖에 나지 않는다. 그리고 7월 3일, 한신의 부진으로 최하위를 드디어 탈출했다!
그러나 전반기 막판 한신과의 맞대결에서 연패하면서 다시 최하위로 추락. 38승 1무 49패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히로시마를 제외한 모든 팀의 DTD 덕분에 상위권 추격의 가능성은 있지만 팀 전력이 받쳐주지를 못하기 때문에 후반기에 극적인 분위기 반전이 없는 한 한신과의 최하위 탈출 경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7월 22일~24일 나고야돔에서 열린 주니치와의 3연전을 싹쓸이하며 주니치를 끌어내리고 4위 등극에 성공했다(!!!) 아직까지 A클래스보다는 최하위가 더 가까운 승차이긴 하지만 마냥 최하위권에 있던 시절보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8월에 차곡차곡 승을 쌓으면서 DTD를 시전한 한신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섰고 9월 시점에서 3위 요코하마를 맹추격하고 있다.
6경기 남은 기준으로 최소 4승을 해야 6강을 바라볼 수 있다. 3패하는 순간 요코하마 DeNA 승률을 앞설 수 없으므로[27] B클래스가 확정된다. 그러나 이 와중에 9월 18일 주니치에게 8-1로 대패한데다 DeNA가 그날 6-3으로 승리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결국 경기가 없던 9월 19일에 DeNA가 히로시마를 이기며 야쿠르트는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막판 계속해서 패배를 거듭하며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했다.

3.5.8. 2017년 시즌


2017년 시즌 항목이 생성된 건 5월 15일(...)... 세리그 다른 5개팀 대비 상당히 늦었다.
시즌 개막은 요코하마에게 위닝시리즈로 출발했지만, 바로 이어진 한신, 히로시마를 상대로 5연패, 주니치와의 첫 시리즈도 첫경기를 내주면서 연패를 6으로 늘리며 곧장 DTD를 시전했고 그 뒤로는 루징과 스윕패를 계속 반복하면서 5월 15일 현재 36경기 15승 21패 세리그 5위로 밀려나갔다. 1위 한신(!)과는 8게임차, 최하위 주니치와는 단 2게임차. 그 후로는 5위 자리에 거의 고정되다가 5월 중순에 4연승으로 한번 반짝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내 5연패.
교류전에서도 상황이 매우 안 좋다. 교류전에 들어가기 직전의 주니치 전에서 1승을 거둔 뒤 교류전 들어와서 다시 1무 포함 9연패. 16경기에서 1승1무14패를 기록하면서 구단사상 최악의 연패 신기록을 세운 팀에게 조차 깔린 최하위 신세가 됐다. 그 팀이 10경기 만에 교류전에서 첫 승을 거두면서 마침내 교류전에서도 최후의 0승클럽 멤버가 되면서 최하위로 추락했다. 게다가 그 팀이 연패 신기록을 쓰면서 관심이 집중된 덕분에 그 팀보다 더 형편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11개 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그 팀을 비웃을 수 없는 상황까지 추락했다. 이대로 가면 2015년의 우승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걸린 뽀록이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게 될 듯.
타자 중에서는 야마다 테츠토가 2할2푼의 타율에 홈런도 7게로 헤매고 있는 상황이며 2년전의 타격왕인 가와바타는 부상으로 출전조차 못하고 있고, 타점왕 하타케야마는 이제 노쇠화가 온 듯 전년도에 이어 부진이 더 깊어지고 있다. 타선에서는 유헤이와 발렌틴만이 그나마 밥값을 하는 중. 투수진에서는 선발진에서 오가와 야스히로이시카와 마사노리가 그럭저럭 역할을 해주고 있으나 새로온 용병인 부캐넌이 2.60의 방어율에도 불구하고 2승 4패에 그치고 있는 게 뼈아프다. 투타 모두 그럭저럭 구색은 갖추고 있으나 뭐하나 특출난 구석이 없고 특히 교류전에서의 연패가 치명타가 되어 최하위 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교류전 마지막 주에 롯데, 닛폰햄을 상대로 4연승을 거두면서 체면치레를 했으나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면서 5승 1무 12패로 교류전 최하위가 확정되고 말았다.
7월 초에도 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다가 7월 7일 메이지 진구 홈 경기에서 3-8으로 앞서고 있던 경기를 9회초에 6실점하며 9-8로 대역전패를 당하는 참담한 결과까지 보여주었다. 그것도 에이스인 오가와 야스히로고육지책으로 마무리라고 쓴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경기에다가 오가와에게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일단 시험 가동한다고 9회 5점차 리드에서 등판시킨 거였는데 첫타자부터 홈런을 허용하더니 원아웃 잡고 또 홈런을 얻어맞고, 그리고 나서도 계속 위기상황을 자초하더니 결국에는 대타로 나온 아라이 타카히로의 역전 3점 홈런으로 KO당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가장 믿었던 에이스의 1이닝 6실점 대역전패로 선수 본인에게나 팀에게나 상처는 더욱 커졌고 결국 분노한 야쿠르트 팬들이 클럽 하우스 앞에서 마나카 감독 사퇴를 요구하는 청문회를 벌이기도 했다. [28]그 다음 날도 8-2로 털리면서 탈꼴찌는 더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 3-2로 앞선 9회초 세이브 상황에서 다시 오가와를 올렸으나 또다시 아라이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고 블론세이브. 경기는 결국 연장 12회까지 가서 무승부로 끝났다. 난국을 타개하겠다고 짜낸 고육지책인 오가와의 마무리 전향은 처참한 실패만 남기며 소득없이 2경기만 날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댓가는 참혹했다. 7월 들어서 아예 승리와는 담을 쌓더니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7월 12일 요미우리전에서 패배하면서 '''시즌 2번째 10연패'''의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다. 한 시즌에 10연패를 두 번 이상 당하는 것은 팀 역사상으로는 1970년 이후 47년만에 3번째 기록이고 올스타전 이전에 10연패를 두번 당한 것은 61년 전인 1956년 '''타카하시 유니온즈''' 이후의 기록이다.
연패행진은 올스타전 이후에도 계속돼서 후반기 첫 상대인 요코하마를 상대로 2연패로 출발하면서 '''연패가 12연패로 늘었다'''. 더 심각한 건 7월 중순도 다 지나가는 시점까지 '''월간 무승'''을 기록 중이라는 점. 지금 상황이면 과연 7월달에 승리는 할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된다. 참고로 11연패 이상은 이 팀이 '''"야쿠르트 아톰즈"'''라고 불리던 1970년 이후 '''47년만의 기록이다'''. 다음날 경기도 3대 5로 패하면서 후반전 첫 3연전을 싹쓸이 3연패로 시작했다. 3연전 기간동안 1점차, 1점차, 2점차로 패하면서 안되는 팀의 전형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7월 들어 여전히 무승인 가운데 '''13연패'''를 기록. 참고로 팀의 최다 연패 기록은 앞서 언급한 아톰즈 시절인 1970년에 기록한 '''16연패'''로 센트럴리그 최다연패기록이기도 하다.[29] 다음 상대인 한신 타이거스와의 3연전을 싹쓸이 당하면 자기들이 세운 불명예 기록을 다시 한번 기록하게 되며 만약 그 시점이 되면 불멸의 기록이라고 여겨졌던 1998년 치바 롯데 마린즈의 18연패의 기록도 눈앞에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부상으로 팀 전력이 말이 아니라고 해도 마나카 감독이 올 시즌 종료까지도 못 버티고 무기한 휴양이란 이름의 해임 통보를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한신과의 주말 3연전 첫경기인 7월 21일 경기도 11대1로 대패. 연패를 '''14연패'''로 늘렸다. 이제 농담 안 하고 센트럴 리그 타이 기록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 지만 22일 경기에서 2-6으로 한신에 승리를 거두며 '''14연패 탈출 및 감격의 7월 첫 승'''을 기록하였다.
결국 8월 22일 마나카 미츠루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구단은 2015년 우승을 높게 평가해 사퇴를 만류했으나, 마나카 감독 본인의 의사가 워낙 완강해 사퇴서가 수리되었다. 후임으로는 후루타 아츠야선수 겸 감독이토 토모히토 1군 투수코치 그리고 히어로즈에서도 뛰었던 다카쓰 신고 2군 감독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후루타는 선수회 회장하면서 구단주들에게 찍힌 것도 있고 선수 겸 감독 시절에 성적이 시원찮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라고 추측되었는데, 9월 25일 후임감독으로 마나카의 전임인 오가와 준지가 취임할 것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무래도 2년연속 촤하위의 오명을 쓰고 물러났지만 빈약한 선수진에도 불구하고 대행시절 '''승률 6할'''을 찍은 것과 취임 첫 2년간 우승 경쟁에 참여할 정도의 호성적을 거둔 게 영향을 미친 듯.
결국 9월 14일 주니치에게 1대2로 패하면서 '''3년만에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이 후에도 패만 거듭하다가 9월 23일 한신과의 홈 경기에서 8:1로 지면서 47년만에 90패. 그러고도 패배행진은 멈추지 않아서 10월 1일 주니치와의 홈 경기에서 6:4로 역전패, 95패째를 기록하며 '''한시즌 최다패 구단 신기록을 갈아치우는[30]''' 불명예까지 안게 되었다. 10월 1일 시점에서 승패마진은 무려 '''-50'''. 2년 전의 일본시리즈 상대팀은 +50도 찍었었는데(...). 시즌 마지막까지 계속 지면 암흑기의 요코하마를 뛰어 넘어 시즌 100패의 유력 후보였던 2005년 창단 첫 해의 라쿠텐의 패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위기까지 몰렸지만 9월 30일 경기에는 이겨서 2005년 라쿠텐 꼴은 면하게 됐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요미우리에게 10대6으로 역전패하면서 2005년의 라쿠텐보다 1패 모자란 96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최종 승패마진은 -51. 12개 구단 최악의 성적. 결국 마나카 감독이 사임하면서 후임감독으로 오가와 준지 전 감독이 4년만에 감독으로 복귀하였다.
2년전의 우승팀이긴 했지만 이러한 몰락은 어느정도 예견 된 것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2010년 이후로 심화된 부상병동화로, 2017년도 어김없이 부상자로만 팀 하나가 나올 수준으로 주력급이 줄줄이 이탈했고, 후반기부터는 아예 전력이 없는 상태로 싸우는게 만성화 된 결과이다. 또한 연이은 FA및 신인 픽 실패도 이유로 꼽힌다. 몇년간 영입한 FA는 대부분 실패라는게 지배적인 평가이다. 나루세 요시히사오비키 케이지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신인은 야마다 테츠토 이후 제대로 1군에 정착하여 리그급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나오지 못했다. 또한 이팀의 특징이었던 숨은 외국인 전력 영입도 몇년간 실패중이고, 그나마 리그를 씹어먹던 블라디미르 발렌틴도 부상 및 기복으로 1년내내 활약하지는 못했다.
또한 팀의 팬덤도 문제점으로 꼽히는데, 전통적으로 굉장히 온건한 팬덤이다보니 팀이 이 모양이 돼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크게 비판도 없어서 언제나 평타만 치는 팬덤도 팀이 나태해지는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신 같은 경우에는 결과가 실망스러우면 팬들이 고시엔을 썰렁하게 만들고 지역의 각종 매체들과 심지어는 주주총회에서까지 책임을 추궁하는 등 구단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반면 이 팀은 성적이 나빠도 무관심 혹은 동정하는 여론은 있어도 날카롭게 비판하는 여론은 드물다. 역대 최악의 시즌인 2017 시즌조차도 관중동원은 증가를 기록할 정도니 구단이 위기의식을 가질 수가 없다고 팬들이 자조하는 형편.
물론 팬덤에서도 팀 부진의 핵심인 부상자 속출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문제점 중 하나인 구장의 시설 문제와 선수의 컨디션을 꾸준하게 유지시킬 책임이 있는 트레이닝 파트의 부실을 지적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시설은 구장이 구단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구단이 하고 싶어도 개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부실한 시설로 다른 구단에 비해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가 힘든 점은 트레이닝 및 케어 파트의 강화로 커버를 해야하나 그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신처럼 팬덤의 규모가 크고 강성이면 팬들의 여론에 밀려서라도 투자를 할텐데 팬덤의 온건한 성향에 익숙한 구단은 그런 기반 시설에 통크게 투자를 한다는 마인드가 돼 있지 않아 구색만 갖춰놓는 수준이다. 당장 2군 구장 및 시설만 해도 12개 구단 중에서 낙후돼 있기로 손꼽히는 수준이고 모기업도 야구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2년전 시리즈 상대팀처럼 수십억엔을 쏟아 부어서 2, 3군 및 부상자 관리를 위한 최신식 시설을 건설하고 또 그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서 지자체들이 인센티브를 약속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이는 풍경은 꿈도 못 꿀 형편이다. 그런 관계로 매년 연례행사인 주력급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은 단시일 내에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의 드래프트에서 성공작이 많지 않은데 특히 2014년 드래프트 지명자에서는 2017 시즌 종료 기준 육성선수 1명을 포함한 지명자 8명 중에서 무려 6명이 방출된 상태며, 그나마 생존자인 2순위 카자하리는 통산 10경기 등판 7.53, 3순위 야마카와는 1군 등판이 아직도 없는 수준. 요코하마가 이 해에 야마사키 야스아키, 이시다 켄타, 쿠라모토 토시히코 등의 수준급 선수들을 지명해서 19년만의 일본시리즈의 주축이 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 그 이후 드래프트에도 하라 쥬리가 괜찮고, 야마사키 코타로와 호시 토모야가 가능성을 보인 것 외에는... 물론 지명자 중에 고졸 신인들도 많기에 기대는 걸어볼만 하나 이들이 과연 몇명이 클 지, 또 언제쯤 포텐을 터뜨릴지 장담이 안되는 상황이니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위에 적힌 대로 소프트뱅크처럼 팜에게 기량 향상에 최상의 조건들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엉망인 수준이니...
그것도 모자라 이번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단 한명의 선수도 차출되지 못했다.

3.5.9. 2018년 시즌


2018년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구성에 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과 재계약에 합의하였고, KBO리그 LG 트윈스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 데이비드 허프, 주니치에서 2년간 활약했던 투수 조던 노베르토, 마이너리그에서 주로 활약한 맷 카라시티를 영입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주니치 드래곤즈와 더불어 하위권 후보인데 이 팀은 위에서 기술한대로 선수들의 기량이 문제가 아니라 로스터 상의 선수들이 잦은 부상으로 전원 사이버화(...)되는 것이 문제라 일단 부상만 없다고 가정하면 투수력이 조금 약해보이기는 해도 2017시즌의 성적을 찍을 정도로 답이 없는 로스터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팬들은 그 로스터에서 다음 시즌에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걱정하고 있다(...).
2018년 1월 30일 MLB에서 6년간 뛰던 구단 프랜차이즈 스타인 아오키 노리치카가 3년 총액 10억엔(한화 약 97억원) 규모에 계약하면서, 야쿠르트는 부동의 테이블세터를 얻게 되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감독은 시원찮은 사람으로 뽑았지만 은퇴후 해설자 생활을 하며 장외에 머물러 있던 OB 미야모토 신야를 수석코치로 영입한 것. 선수시절부터 팀 리더로 인망이 두텁고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던 인물이라 팀 내에 만연한 늘척지근한 분위기를 쇄신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실제로 취임 직후 마무리 훈련부터 선수들을 매섭게 몰아붙이면서 훈련을 주도해왔다.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차기감독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이고 복귀한 오가와 감독은 미야모토가 지도자 수업을 받는 동안 조언과 서포트 을 해줄 역할로 보고 있다. 또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카프의 강타선 구축에 큰 공헌을 한 이시이 타쿠로를 타격코치로, 주루플레이의 지휘자였던 카와다 유스케를 외야수비주루 코치로 새롭게 영입했다.
요코하마와의 개막 3연전을 위닝 시리즈로 장식하고, 요미우리에게 싹쓸이 3연승을 기록하는 등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한 때 2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반등하는가 했더니 최하위 후보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3연전 스윕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우승후보 히로시마에게도 스윕을 당하고 골든위크가 시작되는 4월 28~30일의 3연전에는 요미우리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앙갚음을 당하면서 이내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번 시즌은 연례행사인 선수들의 부상 퍼레이드는 없지만 새로 데려온 데이비드 허프가 영 신통치 않는 등 팀 전체가 뭐하나 특출난 구석이 없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면서 하위권 탈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세리그가 파리그에게 호구잡인 교류전에서 (파리그 하위 2팀이긴 하지만) 롯데, 라쿠텐을 연속으로 때려잡으면서 5위 주니치와 0.5게임차는 물론, 2위 DeNA와 2게임차 까지 줄어들었다! 다만 강호 세이부, 닛폰햄, 소프트뱅크 와의 대결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상위권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을듯. 그 동안 교류전에서 졸전을 펼쳐온[31] 과거와는 달리 첫 경기 패배후 무려 7연승을 달리며 선두로 나섰다. 특히 교류전 패왕에게 위닝시리즈를 확정지으면서 더욱 기세를 올렸다. 선두 히로시마를 비롯한 다른 센트럴리그 팀들이 변함없이 이번 시즌에도 먼지나게 털리면서 퍼시픽리그 팀들에게 승수 조공을 하는 와중에 리그에서 혼자 교류전에서 잘나가면서 센트럴리그의 판도를 혼돈으로 몰아갔으며 순위도 단 3일만에 최하위에서 3위로 점프했다. 2005년 교류전이 시작된 이래 야쿠르트가 소뱅에게 우세를 보인 건 2012년 이후 통산 두번째이다(!). 게다가 파리그 1위팀 세이부와의 3연전 또한 위닝을 가져가며 2위까지 등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어가 6월 17일 니혼햄을 5-1로 제압하며 '''창단 첫 교류전 우승'''을 달성한다. 여담으로 교류전 우승은 야쿠르트가 해놓고 MVP는 오릭스의 거포 요시다 마사타카가 가져갔다.
이 기세를 모아 한 때 2위까지 등극하는 데 성공했지만, 애초에 2~6위 승가 1~2에 불과할 정도로 답 없이 촘촘하기 때문에 안심할 수가 없는 상황. 2위에 오른지 얼마 안가서 바로 6경기 1승 5패를 달리며 6월 23일 단독 꼴찌 자리로 돌아갔...다가 또 이후 폭풍 5연승을 달리며 29일에 2위로 재등극해버렸다(;) 그런데 또 바로 폭풍 8연패로 맨 밑바닥으로 추락. 전반기가 끝난 시점까지 7월 무승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후반기 시작 이후 7연승 포함 남은 7월 기간 9승 3패를 기록하며 순위를 만회하였고 8월 이후 5할 승률을 꾸준히 유지하며 8월 16일 다시 요미우리로부터 2위 자리를 탈환하였다. 특히 선발진에서 그동안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하라 주리가 8월 16일 요미우리전에서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선발 3연승으로 힘을 보태면서 데이비드 뷰캐넌만이 버티고 있던 상대적으로 약한 선발진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한편 타격에선 야마다 테츠토가 7월 한 달 동안에만 타율 .425 7홈런 8도루를 기록하면서 2년만에 트리플쓰리를 눈앞에 두게 되었고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8월 19일 일찌감치 3년 연속 30홈런을 달성하는 등 작년과는 다른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제 남은 시즌 동안 촘촘히 얽혀있는 2위 자리를 수성하기 위해선 (8월 19일 현재 1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는 11경기(...) 차이고 히로시마는 벌써 매직 넘버를 세고 있는 중이니...) 마운드에서의 분발이 필요한 상황.
9월에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마운드를 타선의 집중력으로 커버치면서 5할 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9월 4일 주니치 전에서 3:9로 뒤진 상황에서 홈런 2개 포함 9회 6득점하여 결국 12:9로 승리하였고, 9월 8일 요코하마 전에서도 타카이 유헤이의 9회 결승 홈런 포함 2홈런으로 7:6 역전승을 거두었다.
세리그 팀타율 1위를 랭킹하고 있는 현 타선이 잘 나가는 이유는 역시 아오키 노리치카의 존재. 아오키는 9월 8일 현재 타율 .328로 리그 타격 4위를 찍으며 스왈로즈의 테이블세터 역할을 든든히 수행중이다. 거기에 타율 .323에 아오키와 함께 테이블세터진을 구성하고 있는 사카구치 토모타카, .315 9홈런(팀내 3위)로 중하위타선에서 충실히 역할을 해주는 타카이 유헤이 등도 야쿠르트 타선의 응집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마운드는 좋지 못한 편인데, 선발진 뷰캐넌(9승 10패 4.05)-이시카와 마사노리(6승 5패 5.12)-오가와 야스히로(6승 5패 3.00)-하라 주리(4승 7패 3.54)-맷 카라시티(6승 2패 4.50)는 9월 8일 현재 아무도 10승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뷰캐넌이 10패로 리그 최다패 투수에 랭크되어 있다. 데이비드 허프의 부진으로 시즌 초부터 선발진에 계속 구멍이 생긴 사이 구원진만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후의 긴테츠 출신 현역 선수 중 하나인 콘도 카즈키는 63경기 6승 3패 32홀드로 세리그에서 경기 수와 홀드 수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7세이브를 올리며 새로운 마무리가 된 이시야마 타이치도 59경기에 등판하여 이기는 경기나 지는 경기나 계속 등판하고 있다. 타선에선 아오키의 복귀로 많은 힘이 실리는 기회를 얻었지만 마운드는 필승조가 안정화된 것 을 빼면 작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탓이다. 시즌 종료까지 2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
2위 자리를 유지하여 A클래스에 등극해도 리그 우승은 언감생심인 것이, 매직 넘버를 세고 있는 1위 히로시마와의 전적은 5승 16패로 철저히 압살 당하고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리해도 히로시마와 리그 우승을 겨루려 하면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 무엇보다도 문제는 현재의 성적 자체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교류전 우승빨로 유지하고 있는 순위라는 점이다. 실제로 교류전 성적을 제외한 리그 내 대결만 계산했을 경우 순위는 5위까지 추락하며 앞으로도 교류전에서 이번 시즌 처럼 호성적을 거둘 가능성은 그동안의 행적을 봤을 때 매우 희박한지라 결국 실제 전력은 겉보기보다 훨씬 허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문제이다.
불안한 2위 자리를 지키던 야쿠르트는 9월 11일 한 게임 차로 바짝 뒤쫓던 3위 요미우리와의 3연전 첫경기에서 오가와 야스히로의 8이닝 1실점 호투로 4:1로 승리하였다. 또한 5할 승률도 다시 회복하였다. 이 요미우리 3연전은 야쿠르트 2위 수성에 가장 큰 고비가 될 시리즈인데, 5위 요코하마나 꼴찌 주니치와의 게임 차는 각각 5경기, 5.5경기 차로 제법 차이가 나고, 4위 한신은 취소된 경기가 너무 많아 잔여경기가 많이 밀린 탓에 14연전을 치뤄야 하므로, 체력적 소모가 심해져 제대로 된 순위 싸움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요미우리 3연전을 내준다면, 2위를 내주는 것은 물론 얼마 남지 않은 시즌 동안 엄청난 소모를 각오해야한다. 우선 첫 경기를 이겨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12일 경기는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타선은 단 3안타로 막혔지만, 결국 무승부를 거두면서 경기차가 좁혀지는 것을 막았다. 요미우리는 이 경기 연장 11회와 12회에 두번이나 보내기번트에 실패하면서 자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미우리와의 승차는 2게임차를 유지하였다. 13일 경기는 아오키의 결승홈런으로 4:2로 승리하며 요미우리와 3경기 차로 승차를 더 벌렸다. 이어진 한신과의 2연전에서도 하라 주리의 8이닝 무실점으로 4:0, 야마나카 히로후미의 6.2이닝 3실점 호투로 6:4로 각각 승리하면서 한신을 꼴찌로 보내버리고 3위와 5게임차까지 벌려놓았다. 투수진들이 분발한 결과 2위 수성에 큰 고비였던 요미우리, 한신전에서 4승 1무를 거둬 2위 확정에 청신호가 켜졌다.
불안불안한거 치고는 이상하게도 8월부터 2위자리를 잘 방어하고 있는데 이게 야쿠르트가 잘해서가 아니라 후반기 들어서 다른 경쟁 구단들 상태가 영 안 좋아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야쿠르트의 투수력은 빈말로도 좋다고 쳐주기 힘들고, 그나마 릴리프에서 잘 막아주던 콘도와 이시야마가 후반들어 노예질에 지쳤는지 슬슬 방전되는거 같은 상황인데도 타구단 빠따가 후반기들어서 하향평준화 하고 있는 바람에, 투수력이 약하고 타력이 강한 올해의 야쿠르트가 이상하게 이득을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전반기에 호구잡혀서 까먹은 각 구단별 승패마진도 거의다 되찾았고 역전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얘네가 잘 하는게 아니라 다른애들이 못해서... 라는 것. 그나마도 이게 '''히로시마 빼고''' 라서.... 히로시마에게는 여전히 호구잡힌 모습이라, 이대로 가면 CS진출은 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히로시마 원정가서 깔끔하게 털릴것 같은 모양새다.
그 와중 3위인 요미우리가 꽉 잡아 내려간다를 시전하며 도쿄 야쿠르트와의 승차가 5경기로 벌어지고 B클래스 코앞까지 왔다. 이대로라면 큰 문제 없는 한 6강 복귀는 성공할 듯. 9월 23일 현재 요미우리가 남은 7경기를 모두 이겨도 야쿠르트는 7승 7패 반타작만 하면 2위가 확정된다.
한편 9월 26일 히로시마와의 시합에서 0:10으로 완패를 당하며 눈앞에서 히로시마의 센트럴리그 3연패를 지켜봐야 했다. 선발 뷰캐넌은 5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면서 리그 최다패(11패)를 갱신했고, 타선은 단 2안타에 그치며 완패를 당해버렸다. 히로시마에게 7연패,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에서 1승 8패의 처참한 기록을 이어갔다. 단 4승만 거두면 2위는 확정이고, 이미 리그 우승은 언감생심이었지만, 그래도 CS 원정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 이런 식의 무기력한 경기력을 이어간다면 일본시리즈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27일 시합에선 유헤이의 결승 쓰리런으로 9:3으로 이기긴 했다. 어제 우승 파티로 밤새 논 히로시마이긴 했지만...)
30일에는 2010시즌 34홀드를 올리며 통산 13시즌 127홀드를 기록했고 한때 임창용, 이가라시 료타와 필승조를 이루기도 했던 마쓰오카 켄이치와 2013시즌 25홀드를 올리며 통산 9시즌 55홀드를 기록한 좌완 야마모토 테츠야가 은퇴를 선언했다. 각각 36세와 33세로 아직 등판할 수 있는 나이이긴 하나, 전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뛸 수 없던 탓이었다. (올 시즌 마쓰오카는 13경기, 야마모토는 3경기에만 등판했다.) 나카오 히카루 같은 젊은 계투진을 키우고자 하는 팀의 의중도 반영된 결과이긴 하지만, 이제 더욱 뎁스가 얇아진 마운드를 어떻게 보강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이다. 10월 2일에는 나루세 요시히사, 사토 요시노리, 오마츠 쇼이츠, 히야네 와타루, 우구모리 아츠시, 큐코 켄타로, 키쿠사와 류스케, 후루노 마사토 등 8명을 한꺼번에 방출하였다. 나루세와 요시노리는 현역연장을 희망하고 있다. 올 시즌 잉여자원이었던 나루세나 오마츠 등 30줄이 넘은 선수들을 방출한 것이 팀 쇄신을 위한 포석인지는 선수 육성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요시노리는 아직 28세 인데다 오래된 부상 때문에 그렇지 160키로 속구를 던지던 임팩트가 남아있으니 새 팀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29일과 30일에 예정되어있던 요코하마와의 경기는 태풍으로 전부 취소되었다. 요코하마와 요미우리가 물고 물리는 양상을 보이는 사이 이제 2승만 거둬도 2위를 확정짓게 되었지만, 계속 경기가 취소됨에 따라 시즌 막판 운용이 더욱 복잡해지게 되었다.
10월 1일 요미우리 전에서 오비키의 연타석 홈런, 유헤이의 시즌 11호 쓰리런 홈런 등으로 8:5로 승리했다. 이 승리로 야쿠르트는 '''3년 만에 CS 진출을 확정'''지었고, 이 날 선발 등판한 오가와는 요미우리 전 8연승을 이어가며 가네다 마사이치의 기록과 나란히 하며 거인킬러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구원 등판한 콘도와 이시야마가 각각 2실점 한 것은 좋게 보기 어렵다. 결국 두 계투진에게 지워진 피로가 시즌 말미에 터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러났다. 다음날 요코하마와의 경기도 1점차의 박빙의 승부에서 이기면서 바로 2위도 확정지었다. 이로써 CS 1스테이지는 진구 구장에서 개최 확정.
9월에도 괜찮았지만 10월들어서 이미 가을야구가 확정됐는데도 이상하게 잘 이기는 중이다. 마지막 한경기 남은 시점까지 10월 무패를 달성하였고, 승패마진 +10이라는 전반기 꼴지팀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까지 올라갔다.
시즌 전체로 보면 엄청나게 롤코를 탔는데, 4월에 잘나가다 갑자기 연패하면서 바닥을 보고, 그러다 교류전에서 반등해서 2위까지 올라가더니 리그전 복귀후 다시 추락. 전반기를 꼴찌로 마쳤는데 후반기에 또 분위기 타고 올라가더니 2위에 안착한 뒤로 9윌 이후로 위태위태하면서 꾸준히 2위자리의 방어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10월에는 CS가 확정 되었는데도 기세를 늦추지 않고 계속 승수를 쌓아서 시즌 종료기준 승패마진 +9을 달성하였고, 히로시마 제외한 전 구단에게 승패마진 + 인 상태에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단 유일하게 밀리는 히로시마한테는 거의 호구수준으로 6승 19패로 승률이 .2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렇듯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3년만에 포스트시즌 복귀에 성공했으나 우려되는 점도 있는 시즌이다. 2018시즌이 야쿠르트의 행보는 그 위에 넘사벽이 하나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14년만의 우승의 기쁨에 들떴던 2015시즌과 거의 판박이다. 시즌 초반 바닥을 기었던 팀이 부상하게 된 계기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교류전의 우승 덕분이었고 8월 말까지 리그 팀 간 대결에서의 승률은 5위를 기록하면서도 교류전으로 일종의 분식회계를 한 덕분에 2위 이하 팀들이 8월 하순이 다 되도록 승률 5할 밑에서 맴도는 이전투구 상황에서 쳐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9월초까지 혼란한 포스트시즌의 틈바구니에서 슬금슬금 빠져나오더니 9월 중순 이후 승수가 쌓이면서 시즌 막판까지 와보니 2위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즉 올해의 선전 역시 2015년 시즌처럼 본인들의 실력보다는 센트럴리그의 전체적인 막장화의 틈에서 일종의 파도타기를 잘한 성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개개인의 성적은 야마다 테츠토, 블라디미르 발렌틴, 아오키 노리치카, 사카구치 도모타카, 다카이 유헤이 등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썩 뛰어나지 않은 편이고[32] 투수는 마무리로 갑툭튀한 이시야마 다이치가 분투한 것, 그나마 3선발 정도 역할은 해줄 정도로 성장한 하라 주리나 부상으로 결장이 있었던 에이스 오가와 야스히로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린 선수가 없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는 이미 지난 2년 간의 경험이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올해의 성과는 성과대로 자축하되 선수 개개인이 자기자신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으면 당장 내년, 내후년 시즌에 또 쓴맛을 볼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숙제를 남긴 시즌이라 할 수 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의 상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CS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요미우리에게 두 경기 동안 단 1점만 얻으면서 1:4, 0:4로 하극상을 당해버렸다. 1차전에서 요미우리 상대 8연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던 오가와 야스히로를 선발로 내세웠지만 타선이 단 4안타에 그치며 요미우리 투수진들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더욱이 2차전에서는 요미우리 선발 스가노 토모유키에게 '''CS 사상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당하며 깔끔하게 발렸다.
타선에서는 아오키가 부상으로 결정한게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CS같은 단기전 2연패를 타자 한명 없던게 모든것의 원인이라고 보는건 지나치게 결과론적이고 근시안적인 분석이다. 애초에 아오키의 WAR는 팀 내 2번째인 3.3으로, 야마다(8.6)보다 비중이 훨씬 낮다.

3.5.10. 2019년 시즌


용병 선수들 중 블라디미르 발렌틴, 데이비드 뷰캐넌, 데이비드 허프는 잔류하고 맷 카라시티, 제이슨 어키데즈, 조던 노베르토는 방출했다. 이 중 허프는 보류명단에서 제외당했으나 협상 끝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용병 투수를 두 명 정도 더 데려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중 한 명은 소프트뱅크에서 뛰는 로베르트 수아레즈의 형 앨버트 수아레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트레이드로 주축 계투진이던 사이드암 투수 아키요시 료와 유틸리티 내야수 야치 료타를 내주고 2016년 퍼시픽리그 신인왕 투수이던 타카나시 히로토시와 젊은 내야수 오타 켄고를 받았다. 불안요소는 나루세 요시히사 등 피홈런이 많았던 투수의 문제가 극대화되는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2018년 파리그 최다 피홈런 투수인 타카나시가 버틸 수 있겠냐는 점. 한편 소프트뱅크에서 전력외 통보를 받은 노장 투수 테라하라 하야토, 이가라시 료타와 계약을 맺었다.[33]

개막전 상대는 한신 타이거스. 오사카 돔에 원정가서 3연전을 치러 1승 2패를 거뒀다. 그나마도 1승이라도 거둬서 단독 최하위가 되는 불상사는 면했다.
4월 10일 히로시마 원정에서 10회초 12점을 내는 막판 화력쇼를 펼쳤다. 모든 팀들과의 첫 3연전을 마친 4월 15일 기준 센트럴리그 단독 선두를 달리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하는 중.
그러다 주니치, 요미우리에게 루징시리즈를 내주는 바람에 2위로 떨어지고, 그 뒤로도 히로시마와 한신이 야금야금 쫓아오는 동안 치고나가지 못하면서 한신과 함께 공동 3위에 랭크.
이후엔 잠깐 한신을 따돌리며 단독 3위를 찍었으나 5연패를 당하며 도로 제자리. 다만 한신도 히로시마에 스윕패를 당하며(...) 야쿠르트를 추월하지 못하고 사이좋게 공동 3위를 기록 중. 그리고 그 한신과의 3연전에서 스윕을 당하며 8연패에 빠짐과 동시에 4위로 추락한다. 그리고 원래 5위였던 주니치와의 3연전 또한 스윕을 당하면서 - '''11연패'''를 기록하고, 주니치 대신 5위까지 내려가고 만다. 이어진 카프와의 3연전 또한 스윕패를 당하면서 시원하게 '''14연패'''. 결국 주니치와의 2경기를 스윕한 요코하마에게마저 밀려 꼴찌가 되고 만다. 게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다음 상대가 요코하마다.
2017년 문단에도 나오지만, 이 팀의 최다 연패 기록은 야쿠르트 아톰즈 시절인 1970년에 기록한 16연패로 센트럴 리그 최다 연패 기록이다. 다음 상대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3연전을 싹쓸이 당하면 꼴지는 물론이고 자기들이 세운 불명예 기록을 경신하게 되며 1998년 치바 롯데 마린즈의 18연패의 기록도 눈앞에 다가오게 된다. 하다 못해 두자릿수 연패를 2번 달성하고 구단 사상 최다패를 기록한 2017년마저 14연패에서 끊었는데, 그걸 뛰어넘어 결국 5월 31일 단두대 매치에서마저 2-3으로 지며 49년만에 '''15연패'''를 달성했다. 여기에 6월 1일 경기에서도 요코하마에게 0:7로 지면서 구단 기록 타이이자 센트럴리그 기록 타이인 '''16연패'''를 달성. 다행스럽게도 마지막은 5-2로 이기면서 1998년 치바 롯데 마린즈가 세운 18연패 기록까지는 가지 않게 되었다.
한번 꺾인 기세는 6월달에 들어와서도 회복하지 못하고 교류전에서도 부실한 퍼포먼스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교류전 우승으로 최하위에서 반등의 계기를 만들고 2위까지 약진하는 원동력으로 삼았으나 올해는 그런 것도 없이 예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갔다. 비로 순연된 오릭스와의 한경기를 남겨놓고 6승 11패로 잘해야 10위 아니면 11위인 처지인데 비록 오릭스가 퍼시픽리그 최하위긴 하지만 교류전에서만큼은 10승1무6패로 선전한 만큼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결국 마지막 오릭스전도 패하면서 6승 12패, 전체11위의 성적으로 교류전에서도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기는 커녕 상위팀과의 승차가 더 벌어진 상태로 다시 리그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2년만의 최하위를 피할 수 없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6월 3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서 15안타 5사사구를 얻어내고도 단 3득점만 기록하는 극한의 변비 야구 속에 루징 시리즈를 확정지었고, 이로써 13시리즈 연속 루징 시리즈 이하를 기록하게 되었다. 6월 경기가 모두 끝난 시점에서 28승 46패 승률 .378로 압도적 리그 최하위를 달리고 있으며, 다른 11개 팀과의 상대전적을 봐도 상대전적 5할을 찍는 팀조차 하나도 없고 모조리 5할 미만이다. 퍼시픽 리그 6팀과의 상대전적이 모두 1승 2패인 것도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7월 31일 기준으로 5위 주니치와 5게임차 최하위를 기록중이다. 승패마진은 -20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 팀 득점은 420득점으로 세리그 전체 2위, 팀 홈런도 102개로 세리그 전체 3위에 오를만큼 타선의 생산성은 세리그 꼴찌인 팀 타율[34]을 보완하고도 남지만 마운드가 그야말로 개판오분전. 세리그 팀 방어율 5위인 주니치의 3.91을 아득히 뛰어넘은 4.72의 팀 방어율을 기록중이다. 타선이 벌어놓은 점수를 투수들이 다 깎아먹는 셈. 마찬가지로 마운드 사정이 좋지 않은 옆동네의 사자네보다도 팀 방어율이 높다. 마땅히 반등할 요소도 없는 절망적인 팀 상황에서 그나마 희망을 안겨주는것은 2년차 고졸 내야수 무라카미 무네타카가 팀의 새로운 주포로 착실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8월 29일에 요코하마와의 3연전을 스윕 당하면서 21경기 남은 시점에서 이번 시즌에 12구단중 최초로 우승 가능성이 완전 소멸했다. 5위인 주니치와도 이미 7게임차가 벌어진 상태로 이변이 없다면 이번 시즌 최하위는 거의 확정일 듯 싶다.
그리고 9월 8일에 요미우리와의 3연전 2경기째에 패배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권도 완전 소멸하였다. 이날 오가와 감독은 사의를 표명했고 내년 감독감으로 유력했던 미야모토 수석코치도 퇴단을 발표하여 내년도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9경기 남은 시점에서 올해도 파리그 포함 12구단중 가장 빠르게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올해 사의를 표명한 오가와 감독 후임으로 내년 감독은 타카츠 신고를 내정했다고 한다. 또한 미야모토 수석코치도 퇴단함에 따라 수석코치는 미야데 류지 1군 타격코치를 승격할 예정이라고 한다. 새로운 1군 투수코치로는 사이토 다카시를 영입하였다.
시즌 후 블라디미르 발렌틴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FA 이적했으며 데이비드 뷰캐넌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새로운 외국인 타자로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2015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이자 14년에 아오키와 함께 뛴 적이 있는 베테랑 유격수 알시데스 에스코바를 영입했다. 9월 11~13일 사이에 진행된 요미우리 전도 스윕패를 당하면서 센트럴리그 최하위의 자리를 더욱 굳히게 되었다.

3.6. 2020년대


2020
2021
2022
2023
2024
2025
2026
2027
2028
2029
6









2020년대도 답이 없는 6부터 시작했다.

3.6.1. 2020년 시즌


개막전 상대는 주니치 드래건스 홈 구장인 메이지 진구구장에서 개막 3연전을 치러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승 2패를 기록했다.
작년의 막장 성적에 주포 발렌틴마저 빠지며 암울했던 시즌 전 전망과는 달리 잠깐 리그 선두 저리를 차지하기도 했고 교진에게 선두를 내준 뒤에도 히로시마, 주니치 등다른 팀들의 몰락이란 호재의 도움도 받으며 시즌 초반 용케 A클래스 전선을 사수하고 있다. 4할 출루율의 사카구치 토모타카와 강한 2번타자로 기용되는 야마다 테츠토의 테이블 세터진은 야마다의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출루율은 리그 평균 이상) 리그 최고이며 작년 신인왕 무라카미 무네타카가 더더욱 다듬어진 모습으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1년만에 세리그 최고 타자 반열에 올랐다. 노쇠화 우려로 좌익수로 옮긴 아오키 노리치카도 3번타자 역할을 부족함없이 해내고 있으며 중견수 자리는 3할 5푼의 고타율로 각성한 야마사키 코타로가 이어받으며 세대교체도 적중. 구장 환경에 비해 다소 장타력이 부족한 포진에 체력관리가 필요한 노장들도 많고 뎁스도 습자지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높은 출루율로 끈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수진은 올해도 객관적으로 좋은 모습은 아니며 간간히 두 자릿수 실점을 내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왼손 오가와로 불리는 하이키킹 좌완 다카하시 케이지가 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테라시마 나루키나 시미즈 노보루처럼 망픽으로 여거지던 근해의 상위 라운더들이 불펜에서 활약을 보여주는 등 새로운 자원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밝은 면도 보여주고 있다. 수아레스를 뺀 외국인 투수들이나 이시카와, 콘도 등의 베테랑들이 죄다 부진한 것은 최대 불안요소.
하지만 원체 빈약한 전력은 어쩔 수 없었는지 8월이 지나면서 추락하기 시작, 5할 승률이 붕괴되었고 8월 24일 현재 5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다. 25~27일간 진행된 요미우리전에선 무기력하게 스윕패를 당하면서 최하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름값에 비해 떨어지는 타선의 파괴력[35]과 불혹의 이시카와 마사노리가 로테이션을 돌아야 하는 얇은 선발진, 확실하게 내세울만한 필승조 불펜의 부족함이 리그 최하위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최하위를 달리지만 곧 마흔을 바라보는 아오키가 날아다니고 여전히 삼진은 많지만 그래도 소년가장 역할을 하는 무라카미의 재능이 터진거, 야마자키가 주전으로서 경험을 많이 얻는게 위안거리. 아오키는 야쿠르트라서 울며 겨자먹기로 주전으로 쓰는 정도의 선수가 아니라 리그 OPS 3위라서 어느 팀에 가든 닥주전이다.
문제는 야마다 테츠토가 2020년 시즌 중에 FA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와 소뱅 등 큰 손들이 2루수 보강에 혈안이 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만약 오프시즌 중에 야마다를 잔류시키지 못한다면 80년대 수준의 암흑기가 다시 재현될 우려가 있다. 야나기타 유키가 체결한 일본 최고액 계약을 경신할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팬들은 야마다에게 얼마를 안겨줘야 잔류를 해줄 것인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3.6.2. 2021년 시즌


2012년 이후로 10년 가까이 1년 포스트시즌 진출하면 2년을 거하게 말아먹고 또 1년 포스트시즌 진출하고...의 사이클을 반복 중이다. 징크스대로라면 2021년 시즌은 뭐가 잘못되는 일이 있더라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해이긴 할텐데 그동안 1년 뽀록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에 안주하다가 2년을 말아먹는 과정에서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갈수록 전력이 약화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만약 FA가 된 야마다를 잔류시키지 못한다면 이번 해는 그 뽀록조차도 없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그 오가와마저 FA다. 선발투수중 가장 에이스인 오가와와 팀의 간판스타 야마다를 둘다 놓칠경우 처참한 암흑기가 예상된다. 둘다 핵심 선수이기 때문에 야쿠르트는 둘중 한명이라도 잡아야 최악은 면할 수 있다.
다행히도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마련해 둔 계약조건을 제시하면서 야마다 테츠토를 7년계약으로 눌러 앉히는데 성공했다. 뒤이어 팀의 마무리 투수인 이시야마 타이치도 잔류가 확정되면서 팀 전력에 큰 손실이 발생하지는 않게 되었다. 오가와 야스히로는 타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는 전망이었으나 결국 잔류를 택하면서 FA를 통한 외부 유출을 모두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전 시즌에는 부진했지만 지금까지 스왈로즈를 하드캐리 해왔던 슈퍼스타와 에이스 선발투수, 그리고 클로저까지 모두 붙잡는데 성공하면서 스토브리그를 나쁘지 않게 보내는 중이다.
용병투수 중 스캇 맥거프는 2년 보장금액 200만 달러+옵션의 재계약을 맺었다. 사실 2019년 허프랑 크게 차이도 없는 성적이라 너무 퍼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야쿠르트의 투수진을 생각하면 그럴 만 한 소비. 2년 연속으로 시즌의 절반 이상을 부상으로 날렸지만 나올 때는 철벽투를 보여주는 알버트 수아레스하고도 1년 50만달러+옵션의 재계약을 맺었다. 규정타석 UZR 꼴찌+WAR 꼴찌+직구 홈런 0개[36]의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한 알시데스 에스코바는 방출. 우완투수 사이 스니드와 내야수 호세 오수나 그리고 외야수 도밍고 산타나를 영입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했던 릭 밴덴헐크를 영입했다. 벤델허크 영입하기 전에는 베테랑 우치카와 세이치도 영입했다. 스토브리그에서 소극적이던 작년과는 달리 팀 프렌차이즈 스타들의 FA, 최근 성적이 개판이라 전력보강을 위한 차원으로 올해는 적극적으로 영입에 시도하고 있다.

4. 관중수 추이


'''연도별'''
'''총 관중'''
'''일일 평균'''
'''2012년'''
'''1,322,678명 (-1.9%)'''
'''18,321명'''
'''2013년'''
'''1,432,695명 ( +8.3%)'''
'''19,899명'''
'''2014년'''
'''1,438,775명 (+0.4%)'''
'''19,983명'''
'''2015년'''
'''1,657,511명 (+15.2%)'''
'''23,021명'''
'''2016년'''
'''1,779,460명 (+8.9%)'''
'''25,063명'''
'''2017년'''
'''1,862,731명 (+3.2%)'''
'''25,871명'''
'''2018년'''
'''1,927,822명[37] (+3.5%)'''
'''27,152명'''
'''2019년'''
'''1,955,578명 (+1.4%)'''
'''27,543명 (+1.4%)'''

5. 인기


같은 연고지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비해 팬이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경우 메이지진구 야구장 홈 경기에서도 원정 온 구단의 팬들이 더 많다고 한다. 전반적인 인기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더불어 센트럴리그 구단 중에선 인기가 없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2019년 요코하마가 야쿠르트도 못 해본 200만명 이상의 관중동원을 기록하면서 아예 바닥을 찍었다.특히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아예 그냥 한신 홈구장처럼 되어버린다. 비슷한 예로 요코하마 스타디움오릭스 버팔로즈의 홈구장 오사카 돔도 한신전이 있는 날에는 한신 팬들의 숫자가 더 많아서 한신 홈구장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2013년 이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경기에서도 히로시마 팬들이 더 많이 올 정도이다(...).
전국구까지는 아니어도 지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주니치 드래곤즈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는 달리, 야쿠르트나 요코하마는 공룡 구단 교진이 먹다 남긴 것이나 다름 없는 도쿄와 그 인근의 팬베이스를 갖고 있으니 오히려 빅마켓에 자리한 것이 불리한 상황. 하지만 과거 도쿄돔에 있을 때 닛폰햄 파이터즈나 요코하마보다는 독자적인 팬베이스를 구축하고 있고 성적도 그나마 나은 편이라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이렇게 보면 야쿠르트도 인기가 가장 높은 도도부현이 있겠나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사실 있다. 나가노현인데, 현 내에서는 야쿠르트를 응원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참고로 나가노현야쿠르트의 개발자이자 창업자인 시로타 미노루(1899~1982)의 출생지다.[38]
다만 진구 구장에 한신 타이거스 굿즈샵이 먼저 들어왔다는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정확히는 진구 구장 내에는 '''어느 구단의 굿즈 샵도 없다'''. 이는 진구 구장 자체가 야쿠르트 구단 소유의 구장이 아닌 아마추어 야구 목적으로 만들어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 특정 구단의 굿즈샵 입점을 금지시켜 놓았기 때문. 그리고 이 정책은 지금도 유효하기에 야쿠르트 구단 굿즈샵은 지금도 구장 밖의 가까운 곳에 있을 뿐, 구장 안으로는 못 들어온다.
위의 한신 굿즈삽 얘기가 와전된 것은 진구 구장 길목에 한신 팬클럽 소유의 점포가 있는데 이게 진구 구장에서 제일 가깝고, 처음에 코쿠테츠 시절에는 공식 굿즈샵을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
그래서 야쿠르트 구단에서 구단 공식 굿즈를 시합 시작 4시간전부터 종료후 1시간까지 임시 천막을 세워서 팔고 있다. 게다가 구장 근처에도 오피셜 샵이 없었다가 2014년 5월 25일 야쿠르트 공식 굿즈샵이 오픈했다! 명칭은 야쿠르트 공식 굿즈샵 1호점 스타디움거리점으로 가이엔마에역에서 진구 구장으로 가는길 도중 오른쪽을 보면 계단을 조금 내려가 반지하식으로 굿즈샵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2019년 현재는 맞은편 지상 매장으로 이전했다. 기존 매장보다 조금 더 내부가 넓어졌다.
그리고 7월 21일에는 2호점인 츠바쿠로점이 오픈했다. 진구 구장 뒤쪽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입구 간판이 보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굿즈샵이 보인다. 츠바쿠로점의 특징은 이름에 걸맞게 굿즈샵 가운데에 떡하니 서있는 마스코트 츠바쿠로의 등신대 장식물. 홈경기가 있는 날 굿즈샵에선 이 등신대를 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참고로 진구 구장은 수도권 구장중에서는 표값이 가장 싼 편으로, 요미우리, 한신이 원정왔을때만 지정석을 살짝 올려받긴 하지만 그 올려받은 게 다른 구장이랑 비슷한 수준의 저렴함을 자랑한다. 티켓 가격에 있어서는 굉장히 양심적인 운영을 하는편. 게다가 거인/한신 올려받는것도 귀여운 수준인게,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정작 한신전인 경우는 가장 싼 지정석이 '''아예 없어진다'''. 그리고 도쿄돔은 어린이 요금도 없어서 가족끼리 가도 짤없이 성인요금 다 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난민마냥 제대로 보기도 힘은 입석을 논외로 치면 일본내에서 가장 비싸게 받는 수준이며, 한신의 경우도 요미우리 원정에 한해서 특별요금이 적용되는 등, 인기 카드 특별요금이 있다고 해서 진구 구장이 비싸다는건 그야말로 사실왜곡 수준.
참고로 그 올려받는다는 지정석도 올린 가격으로 1, 3루 불펜 바로 옆자리가 4천엔으로, 구장마다 특색이 있으니 1:1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보통 다른 구단이면 기본 5-6천엔 하는 자리를 저정도 가격에 제공한다. 다만 자리가 더럽게 좁다. 사람들이 못지나가는 건 당연하고 앉아만 있어도 앞자리 등받이가 무릎이나 정강이에 닿는 수준. 옆간격도 좁아서 양 옆으로 남자 관중이 앉으면 양쪽에서 밀려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꼿꼿한 자세로 관람을 하게 된다. 물론 좌석 좁은건 진구 구장뿐만 아니라 일본내의 야구장 대부분이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진구 구장 특유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가까운 도쿄 돔만 봐도 좌석간 거리는 진구랑 별반 차이 없다.
득점을 하거나 7회 아래의 도쿄온도를 부르며 '럭키 세븐' 응원을 할 때는 팬들이 비닐우산을 펴서 응원한다. 아래 항목에서 민요노래에 맞춰서 우산을 흔드는 식으로. 여기에는 수가 적은 홈팀 관중 수를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설과, 비싼 응원도구를 살 필요 없이 누구나 쉽게 응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건 아래에서 설명할 오카다 마사야스 씨와 관계가 있다.

6. 유니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유니폼 항목 참조.

7. 응원가


자세한것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응원가, 도쿄온도 참조

특이하게 타령조 민요를 대표 응원가로 사용하고 있다. 바로 도쿄온도(東京(とうきょう音頭(おんど)인데[39] 이 노래는 니시조 야소(西條八十: 1892~1970)가 1933년 작곡한 유행가로, 도쿄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인천연안부두, 부산부산 갈매기와 비슷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도쿄온도 항목 참조.

8. 한국인 선수


나름 한국과 인연이 많은 구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선수인 임창용, 이혜천이 2000년대 후반에 플레이한 것이 가장 큰 인연이다. 임창용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였다. 임창용이 '미스터 제로'로 불릴 정도로 정상급 활약을 펼쳤고, 임창용이 등판하면 2ch 야쿠르트 응원 스레드가 '임'(イム)으로 도배가 된 적도 있었다.[40] 임창용은 11년까지 부동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였으나, 2012년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여 몇 경기 못던지고 시즌 아웃. 결국 퇴단하고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 이혜천은 좌완 중간계투로 2년간 그럭저럭 활약하다 귀국했다.[41] 이후 한국인 선수와는 인연이 없다가 2016년 5월에 시카고 컵스 마이너, 일본 독립리그 소속 팀인 도쿠시마 인디고 삭스에서 뛰던 외야수 하재훈과 계약하였으나 하재훈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 종료 후 퇴단해 도쿠시마로 돌아갔다.[42]
그 외에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은데, LG 트윈스에서 활약한 로베르토 페타지니, 우리 히어로즈 초창기에 잠시 뛴 타카츠 신고가 대표적인 야쿠르트 출신의 외국인 선수. 그 외에도 이리키 사토시, 케빈 호지스 등이 야쿠르트를 거쳐 KBO에서 뛴 외국인 선수들이다. 2020시즌에는 데이비드 뷰캐넌이 삼성에서 뛴다. 한국에서 뛰던 용병을 데려가 성공한 사례도 있는데, KIA 타이거즈에서 뛰던 걸 데려와 야쿠르트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한 세스 그레이싱어가 있다. 2018년에는 LG 트윈스 출신 데이비드 허프가 입단했다.
이렇게 한국과 인연이 많았던 이유는, 가난한 팀이기 때문에 교진이나 한신처럼 비싸고 검증된 메이저리그 출신을 데려오기 힘들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보강을 할 수 있는 한국이나 대만 등의 리그에 주목을 하고 있기 때문. 영입 성공사례만 저 정도고 김동주나 배영수 등 한국리그의 에이스들에게는 다 한번씩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성공만 한다면야 임창용이나 그레이싱어, 대만에서 데려온 올랜도 로만처럼 어마어마한 가성비 대박을 칠 수 있지만 허프나 이혜천, 리오스처럼 실패할 확률도 높은 방법이기도 하다. 비슷한 케이스가 역시 돈이 없어 도미니카 공화국에 카프 아카데미를 세워 용병을 키워 쓰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사례[43]. 2010년대 후반 현재는 한국프로야구가 평균연봉이 많이 올라서 더이상 가성비좋은 꿀단지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리그 출신 선수 영입은 비교적 뜸한 상태고, 한국리그 선수들의 올라간 몸값을 감당가능한 한신같은 빅클럽 쪽에서 한국리그 출신을 데려가는 추세다.
팀 역사를 빛낸 선수들 중에도 재일교포 선수들이 눈에 띈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다승(400)과 탈삼진(4,490) 1위 기록 보유자인 '천황' 가네다 마사이치가 대표적이다.
재일교포 선수로 우에다 츠요시[44]가 있었으나 2020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선수는 아니지만 장내 아나운서 패트릭 유가 한국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 이중국적이라는 듯.[45]

9.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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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코트는 제비인 츠바쿠로[46], 츠바미[47]가 있다. 사진의 오른쪽의 슬림한 제비인 엔타로[48]가 있었으나 2013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하여 '한 마리 평범한 제비'가 되었다고 한다(...). 산케이 아톰즈일때는 데즈카 오사무아톰을 마스코트로 쓰기도 했다. 여담으로,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에서 유일하게 유니폼을 입지 않은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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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이후 엔타로 대신 멕시코 출신(...)의 야쿠르트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토르쿠야[49]가 새 마스코트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녀석이 관중석에서 더 자주 보인다.)
  • 또한 츠바쿠로는 진구 구장 홈경기 도중 '오늘의 한 마디(今日のひとこと)'로 스케치북에 뭔가를 적어서 전광판에 보여주곤 하는데, 재미있는 드립이 많다. [50]
  • 이 구단의 대표적인 팬으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산케이 아톰즈 시절부터 팀을 응원했고, 이 팀 소속의 외국인 타자였던 데이브 힐튼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진구 구장 외야석에서 반년 동안 썼다고 하니 대단한 열성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등단한 해(1978년)에 야쿠르트는 구단 사상 첫 센트럴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했다. "선수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후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당시 쓴 짧은 수필인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대해'에는 약팀을 응원하는 팬의 심정이 절절히 드러나있다(...). 2013년에는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클럽 명예회원에 위촉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글을 한 편 남기기도 했다.'구장에 가서 홈 팀을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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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한 H2로 유명한 아다치 미츠루도 스왈로즈의 열성 팬.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다치 미츠루의 그림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야쿠르트 팬클럽 모집 일러스트##나 팬 클럽 카드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야쿠르트의 선수들을 모티브로 한 듯한 캐릭터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H2에서 히로의 친구이자 포수로 나온 노다 아츠시는 야쿠르트의 전설적인 포수인 후루타 아츠야를 모티브로 했으며, 크로스게임에서는 아예 특정 선수가 작품의 주된 모티브로서 언급된다. 그 선수의 이름은 이가라시 료타. 일본인 최초로 당시 최고구속인 158Km를 찍은 강속구 투수이자 작중에서 언급되는 '시속 160km를 던질 수 있는 남자'. 재미있는 것은 이가라시 료타가 2008년 부상으로 빠지면서 마무리 투수의 공백을 임창용선수가 메우게 되었다는 것. 이가라시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실패한 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나름 잘 활약한 후 많은 나이로 인해 퇴출되어 선수생활을 마무리짓게 되...는가 싶더니, 친정팀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복귀하게 되었다!
  • 반대로 정작 구단의 오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임을 공언해서 빈축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단을 산케이에서 인수한 야쿠르트 사장 마츠조노 히사미가 "교진(요미우리)에게는 져도 된다" 등의 발언을 남긴 것[51]. 다만 마쓰조노의 오너로서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족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 놀랍게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야쿠르트 광팬이다. 산케이 스왈로즈 시절부터 응원해온 골수중의 골수팬. 자기 저서나 방송에서 여러차례 빠심을 드러내고있다.
  • 최근 주목받는 야구만화인 그라제니의 주인공 본다 나츠노스케가 소속된 진구 스파이더스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모티브로 한 팀이다. 감독, 코칭스태프, 주요 선수들,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중에서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그것들과 유사한 점들이 발견되기도.
  • 한국에서는 야쿠르트가 스폰을 서는 것에 착안하여 유산균으로 불리고 있다.
  • 영구결번은 없지만, 1번과 6번, 27번을 명예번호로 사용한다. 와카마츠 츠토무의 등번호인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예정이었으나, 그 상징성을 높이 사서 팀을 짊어지는 선수들에게만 물러주는 식으로 사용하도록 바꾸었다. 와카마츠 이후 야쿠르트의 1번 계보는 다음과 같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로 꼽히는 이케야마 타카히로가 91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하다가 반납, 이후 이와무라 아키노리에게 1번을 물려 받고 계속 사용하다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 3년간 결번 상태였다가 다시 2010년부터 아오키 노리치카가 이 1번을 달기 시작하였다. 아오키 노리치카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5년간 결번 상태였으나, 2010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이자 2루수 포지션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야마다 테츠토가 2015시즌 종료 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는데 역시나 23번을 떼고 1번을 달게 되었다. 6번은 야쿠르트 한팀에서만 2100안타를 기록하고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 야구대표팀 주장을 맡기도 한 명 유격수 미야모토 신야의 은퇴 이후로 준영구결번 상태이다. 27번 역시 후루타 아츠야의 은퇴와 함께 명예번호로 처리됐다. 1번과 마찬가지로 팀을 짊어질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결번이 되는 번호이다. 본래 2009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FA로 이적해 온 아이카와 료지에게 이 등번호를 물려 줄 예정이었으나 부담감 때문인지 본인이 거절하는 바람에 현재는 결번 상태. 더불어 27번은 89년 용병 투수가 사용했던 해를 제외하고는 오야 아키히코 등 역대 야쿠르트 스왈로즈 주전 포수들이 쭉 착용했던 번호이기도 하다.
  • NPB 역사상 최장시간 경기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2년 9월 11일 한신전에서 6시간 26분동안 경기했다.
  • NPB 정규시즌 시합 중 한 이닝에 가장 많은 연타수 안타를 올린 팀[52]으로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다. 2009년 6월 14일 오릭스전에서 5회초에 11연타수 안타를 기록했다. 그 이닝에 낸 득점은 10점.
  • 의외의 사실일수도 있는데, 이미 해체된 팀들과 라쿠텐을 뺀 나머지 NPB 11구단 중 유일하게 한 시즌 팀 득점 700점을 달성한 적이 없는 팀이다.
  • 2008년부터 장내 아나운서를 맡아온 DJ 패트릭 유(Patrick Yu)는 일본 국적 없이 한국, 미국 이중국적 보유자다. 아버지가 독일계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인 프로필에 모국어를 영어와 일본어 바이링구얼이라고 올려둔 걸 보면 고향이자[53] 삶의 터전인 일본의 국어인 일본어에 아버지의 모국어인 영어 두개만 배운 듯. 이 사람은 B리그의 선로커즈 시부야의 장내 아나운서도 겸임한다.

10. 선수 정보



10.1. 현역(2021년/등번호기준)



10.1.1. 감독



10.1.2. 투수


  • 11. 오쿠가와 야스노부
  • 12. 이시야마 타이치 [54]
  • 14. 다카나시 히로토시 [55]
  • 15. 릭 밴덴헐크
  • 16. 하라 쥬리 [56]
  • 17. 시미즈 노보루
  • 18. 테라시마 나루키
  • 19. 이시카와 마사노리
  • 20. 키자와 나오후미
  • 21. 야마노 타이치
  • 24. 호시 토모야
  • 26. 사카모토 코시로
  • 28. 요시다 다이키
  • 29. 오가와 야스히로
  • 35. 스기야마 코키
  • 37. 스캇 맥거프 - 미국 국적.
  • 38. 우메노 유고
  • 40. 이치카와 유타
  • 43. 알버트 수아레스
동생은 한신의 로버트 수아레스. 동생과는 달리 이 사람은 메이저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다. 베네수엘라 국적.
  • 44. 오니시 히로키
  • 47. 다카하시 케이지
  • 48. 카나쿠보 유토
  • 53. 하세가와 히로키
  • 54. 사이 스니드 - 미국 국적.
  • 56. 스즈키 유타
  • 61. 쿠보 타쿠마
  • 62. 사이우치 히로아키
  • 63. 나카오 히카루
  • 64. 오시타 유마
  • 67. 가데카루 코타
  • 68. 미야다이 코헤이
  • 69. 콘노 류타
  • 99. 쿠라모토 하루타카

10.1.3. 포수


  • 2. 나카무라 유헤이
2014년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한 포수.
  • 30. 니시다 아키히사
  • 32. 마츠모토 나오키
  • 33. 우치야마 소마
  • 45. 시마 모토히로
라쿠텐의 주전 포수였으나 노쇠화로 인해 방출을 요구하여 야쿠르트에 입단.
  • 57. 코가 유다이
  • 59. 오무라 하지메

10.1.4. 내야수


  • 1. 야마다 테츠토 - 2021년 시즌부터 스왈로즈의 캡틴이 되었다.
  • 3. 니시우라 나오미치
  • 5. 가와바타 신고
  • 6. 모토야마 히유
  • 7. 우치카와 세이치
  • 10. 아라키 타카히로
  • 13. 호세 오수나
  • 36. 히로오카 타이시 [57]
  • 39. 미야모토 타케시
  • 46. 오오타 켄고
  • 55. 무라카미 무네타카 [58]
  • 58. 나가오카 히데키
  • 60. 타케오카 류세이
  • 65. 마츠모토 유
  • 66. 요시다 타이세이

10.1.5. 외야수


2020년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FA로 소프트뱅크로 가게 되면서 주전을 차지한 93년생 젊은 외야수다. 입단 이후 백업 요원으로만 나오다가 주전을 차지하자 1번부터 5번, 원래부터 2번과 3번을 번갈아가던 야마다가 2020시즌 너무 심각한(...) 나머지 3번등 여러 타선을 오가기도했다. 초반엔 3할 가까이 치다가 그 이후 부진으로 2할 7푼 정도 쳤다.
  • 41. 타카이 유헤이
선수등록명은 "유헤이". 좌완 파이어볼러 유망주였다가 타자로 전향한, 이토이 요시오같은 케이스.[59] 다만 현역 NPB 최고의 선구안과 참을성을 자랑하는 이토이와는 달리 박종윤 스러운 볼삼비를 보여준다.
  • 42. 사카구치 토모타카
마지막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출신 현역 선수. 전성기인 오릭스 시절에는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하는 중견수였으나 오랫동안 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버려진 걸 야쿠르트가 줏어갔는데 그곳에서 나름 부활을 이뤄냈다. 2020년에는 주전 1루수로 뛰고 있다. 통산 스탯을 보면 타격이 나쁘지는 않지만 똑딱이라서 1루수를 보기에는 부적합한데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3루수로 키우려고 하다 보니 타격이 되는 1루수 자체가 없어서(...)[60] 그나마 눈야구가 잘 돼서 OPS가 높은 편인[61] 사카구치가 1루수를 보는 것. 20시즌 풀타임으로 무홈런을 기록해댔던 과거와는 달리 9개나 쳤다.
  • 49. 와타나베 다이키
  • 51. 하마다 타이키

10.2. OB



10.2.1. 투수


코쿠테츠 스왈로즈 시대부터 산케이 스왈로즈, 산케이 아톰스 , 아톰스, 야쿠르트 아톰스,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대까지 팀명이 바뀌는 동안 한번도 다른팀에 이적없이 살아남은 유일한 선수
1978년 야쿠르트 첫 우승 때의 에이스. 원클럽맨으로, 191승을 기록해 가네다 마사이치의 뒤를 이은 스왈로즈 프랜차이즈 통산 승수 2위이다.
1972년 신인왕 겸 1972~73년 2년 연속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 수상자. 부상 때문에 데뷔한지 10년 만에 일찍 은퇴했지만, 현역 시절엔 위의 마츠오카와 함께 야쿠르트의 주축 선발투수로써 활약하며 1978년의 첫 우승에 공헌했다. 여담으로 프로에 간 이유는 다름아닌 나가시마 시게오오 사다하루와 대결하고 싶어서였다고, 실제로 오 사다하루는 야스다를 상대로는 통산 타율 .254로 다른 팀들의 주축 투수들에 비해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62]
원조 고시엔 아이돌. 오 사다하루의 모교이기도 한 와세다실업고를 고시엔 준우승으로 이끌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의 인기는 후에 나올 후배들인 PL학원고등학교의 구와타 마스미-기요하라 가즈히로, 세이료 고교의 마쓰이 히데키, 요코하마 고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 손수건 왕자로 유명한 고교 후배 사이토 유키, 그 라이벌 이었던 고마자와대학 도마코마이고교의 다나카 마사히로 등의 고교시절 인기 따위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시절 아들을 가진 부모들의 상당수가 자기 자식의 이름을 다이스케라고 짓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였으며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할 때 프로의 주목을 받았으며 추첨 끝에 야쿠르트가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하여 입단시켰다. 그러나 인기가 가져온 중압감에 못 이겨서인지 프로에서는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면서 평범한 성적을 올리는 데 그쳤고 1996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하지만 결국 요코하마에서도 재기의 발판을 찾지 못한채 그해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통산 성적 39승 49패 2세이브, 방어율 4.80.
[63]
2015년 센트럴리그 홀드왕이었으며, 2016 시즌 중 탈퇴. 2015년에는 토니 바넷이 인성문제를 제어하는 역할을 해서 크게 사고가 안 터졌으나 토니 바넷이 메이저리그 계약을 따내며 미국으로 돌아간 2016년 시즌 도중에 구단과 팀 동료에게 폭언을 하는 바람에[64] 무기한 근신 징계를 받았다. 구단에 빠르게 사과해서 징계는 곧 풀렸으나 구단과의 관계로 인해 멘탈이 나가서 일본에서 뛰기 싫다고 계약 해지를 요청하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미국으로 간 후에 시즌 후반기는 메이저리그에 복귀해서 뛰었으나 2016년을 끝으로 메이저를 밟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만 전전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뛸때 성적 자체는 첫 해는 특급 셋업, 두 번째 해는 그냥저냥 괜찮은 마무리였으나 런해 버리면서 흑역사가 된 케이스. 참고로 시즌 중 런한 두번째 시즌 연봉이 180만 달러였다. 이걸 다 받아갔는진 모르겠지만 다 받아갔으면 흑역사에 먹튀까지 추가.[65]

10.2.2. 포수


오오야 아키히코, 야에가시 유키오에게 밀려 2군에 주로 머물렀던 백업포수. 이후 1978년 트레이드로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로 이적했지만 라이온즈에서도 기존의 주전포수였던 와카나 요시하루에게, 세이부 라이온즈 이후로부턴 한신에서 트레이드로 온 슬러거 포수 타부치 코이치와 왕년의 대타자 노무라 카츠야에게 밀리며 결국 선수생활 내내 백업에 머무르다가 1980년 은퇴했다. 이후 세이부에서 배터리 코치, 프런트 등으로 근무하며 네모토 리쿠오와 80~90년대의 세이부의 황금기의 기틀을 다지는데 기여를 했다. 이후 1999년 닛폰햄 파이터즈 2군 배터리 코치 역임을 끝으로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1970년대 야쿠르트의 주전 포수. 조총 어깨의 암살자[66]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의 강한 어깨를 앞세운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맹활약하며 1978년 야쿠르트의 첫 우승에 공헌했다. 도루저지율 5할을 4번이나 기록했으며 통산 도루저지율도 .433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로, 후루타 아츠야에 뒤이은 통산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은퇴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2차례에 걸쳐 감독을 역임했다.
NPB 사상 최저속 100홈런 기록을 갖고 있는 인물. 본래는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한 거대 포수 유망주로써 큰 기대를 모았으나, 같은 해 하위권으로 입단했던 오오야 아키히코에게 밀려나 백업을 전전하였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오오야의 기량이 저하되면서 비로소 주전 포수자리를 차지하며 80년대 야쿠르트의 암흑기를 지탱했다. 80년대 후반 들어 후루타 아츠야, 하타 신지 등에 의해 주전포수 자리에서 밀려나긴 했으나, 그후로도 대타로 활약하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가장 느리게나마 통산 100홈런을 치기도 하는 등 24년간이나 야쿠르트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은퇴 이후 야쿠르트에서 코치/스카우터를 역임했다.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넘어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공수겸장 명포수.
홈런도 많이 치고 도루도 많이 하는 호타준족 공격형 포수 유망주였으나 기대치만큼 자라주지 못하고 치바 롯데 마린즈로 트레이드.
야쿠르트 구단 사상 첫 FA 영입 선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주전 포수였다가, 후루타 은퇴 이후 도저히 주전포수 자원을 못 키워내던 야쿠르트로 FA 이적했다. 잘 가동될 때는 2할 후반대 타율/10홈런 가까이를 때려내는 준수한 포수였지만 야쿠르트 이적 이후 위의 골밀도 드립까지 나올 정도로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야쿠르트의 야전병동화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아베 신노스케의 공백을 메울 포수 뎁스 자원을 찾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두번째 FA 이적을 했지만 이곳에서도 부상에 시달리며 3시즌만에 은퇴. 은퇴후에도 요미우리에 남아서 1군 배터리 코치로 근무하고 있다.

10.2.3. 내야수


키누가사 사치오 이전 일본프로야구 연속경기 출장 기록(1246경기)을 갖고 있던 1루수로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경기인 156경기(1956)를 출장한 선수이기도 하다. 타점왕 2회의 좋은 타격을 갖춘 1루수지만 통산 390도루의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력도 갖고 있던 다재다능한 선수로, 유격수 키즈카 타다스케-3루수 카게야마 카즈오 등과 함께 뛰어난 수비를 자랑하던 난카이의 '백만 달러의 내야'의 일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타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고쿠테츠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적 첫 해 도루 커리어하이인 40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올랐다. 1966년에는 스왈로즈 감독에 취임하며 스왈로즈 선수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의 일본프로야구 감독이 되기도 했고 68년에는 난카이의 감독직도 맡았지만 5-5-6위만 찍으며 영 신통치 않은 성적만 냈다. 재미있게도 감독을 맡은 3년동안 모두 다른 이름의 팀(고쿠테츠 스왈로즈-산케이 스왈로즈-난카이 호크스)을 지휘했다.
現 다저스 감독인 항목의 인물과는 동명이인으로 이쪽은 1933년생 파나마인 좌투좌타 1루수였다. 아톰스 시절의 주포로 일본 생활 7년간 통산 183홈런을 기록했다.
선수 시절에는 투지넘치는 허슬 플레이로 '싸움꾼 시로'(ケンカ四郎)란 별명이 붙었던 2루수. 1년차에 무려 에나츠 유타카를 제치고 센트럴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비교적 빠른 은퇴 이후 스왈로즈에서 코치직을 맡다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의 퇴임 다음 해인 1980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스왈로즈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67]의 스왈로즈/아톰즈에서 데뷔한 선수 출신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첫 해 2위를 맡은 이후로는 계속해서 B클래스만 찍다 1984년 시즌 도중 해임. 이후 메이저리그 코치 연수를 거쳐 90년대 장기간동안 요미우리의 코치를 맡았다. 2002년 간기능 부전으로 사망.
와카마츠로부터 이어지는 야쿠르트 등번호 1번 라인의 후계자. 1988~92년 5년 연속 30홈런을 넘기고 통산 304홈런을 기록하며 베스트나인을 5회 차지한 거포 유격수로 1991년에는 골든 글러브도 수상하는 등 공수를 두루 갖춘 선수였다.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를 꼽을 때 항상 거론되는 선수 중 하나. 하지만 한 세대 위의 거포 유격수이던 우노 마사루처럼 삼진왕 3회를 차지할 정도의 호쾌한 선풍기 기질을 보이며 '붕붕마루'(ブンブン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3루수로 포지션을 변환하며 이와무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80년대의 야쿠르트 암흑기와 90년대의 황금기 모두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위의 이케야마와 함께 중심타선을 이루던 우타거포 1루수/코너 외야수로 이쪽도 풀스윙 기질에는 뒤지지 않는 호쾌한 스타일의 타자였다. 이케야마와의 콤비는 '이케토라 콤비'라 불렸으며 개인적으로도 절친한 사이였다고. 1995년 야쿠르트의 우승 이후 FA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으나 그곳에서는 기대치에 걸맞는 활약을 하지 못했고, 이후 한신 타이거즈에서 대타 요원으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2003년 한신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함께한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라이벌 구단인 요미우리와 한신 두 팀 모두에서 4번타자로 출장한 유일한 선수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직전 해까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프랜차이즈 4번타자로 활약하던 선수였으나, 오프시즌에 FA권을 취득했음에도 당시 FA로 인한 연봉 상승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구단주들의 담합으로 시즌 개막 이후까지 소속팀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버블 활황으로 돈이 넘쳐나던 일본의 야쿠르트가 당시 일본인 최고연봉 선수이던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2배가 넘는 연봉을 지급하는 강수를 두며 야심차게 데려왔다. 입단 당시 야쿠르트 구단에서 '50홈런을 기대한다'는 의미로 등번호 50을 지급할 정도였고 미디어의 관심도 지대했는데, 그런 부담에도 5월 5일 데뷔전부터 홈런, 다음날 1경기 3홈런을 치는 임팩트있는 데뷔를 했으며 이후에도 맹타를 이어가며 부상 등으로 93경기에만 출장했음에도 .327 31홈런 73타점의 정상급 타격성적을 찍었다. NPB 사상 최초로 규정타석 미달로 30홈런을 넘긴 선수라는 기록도 남기는 등 현역 메이저리거의 클래스에 걸맞는 강렬한 활약상을 남겼다. 실력적 이유로 일본에 온 것이 아니었고 일본에서의 전국적인 미디어의 관심도 부담스러워했기에 다음 해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메이저 계약을 맺고 뛰었으나, 어깨 부상을 당한 뒤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했다. 여담으로 2004년, 법원 판결로 다른 FA 미아 선수들과 함께 당시 MLB 구단주들의 FA 담합으로 인한 손실액을 보상받았으며 약 7백만불 이상을 수령했다고 한다.
1992년 타격왕, 홈런왕과 MVP를 차지한 거포 3루수.
위의 하웰을 요미우리로 보낸 뒤 대체자로 데려온 선수로, 이전 수년간 한신 타이거즈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고 뛰어난 친화력으로 팬들에 사랑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오말리 대신 보다 장타력있는 선수를 원했던 한신의 방침 때문에 야쿠르트로 이적한다. 오말리는 이적 첫해 바로 고시엔보다 작은 진구 구장을 홈으로 쓰며 커리어하이인 31홈런을 쳤고 한신은 그 이후 2002년 닛폰햄에서 FA로 카타오카 아츠시를 사오기 전까지 7년간 외국인 3루수들을 돌려막았으나 오말리의 직계 대체자인 스캇 쿨바 정도를 빼면 대부분 말아먹었다(...). 일본에서 뛴 모든 시즌에 3할-두자릿수 홈런을 넘기고 첫 시즌을 빼면 출루율 4할을 빼먹은 적이 없는 최고급의 중장거리 타자였다. 은퇴 이후에는 한신에서 주미 스카우트, 타격 코치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고 지금도 간간히 간사이 미디어에서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왈로즈 등번호 1번 라인의 3대 계승자. 1군에 정착한 99년부터 메이저 진출 전 마지막 시즌인 06년까지 8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친 강타자 3루수로 2004년에는 .300 .383 .583 44홈런 108타점의 괴물 성적을 내기도 했다[68]. 이 때는 센트럴리그 단일시즌 기록인 173삼진을 당하는 등 파워풀한 스윙이 매력인, 등번호 선배 이케야마 스타일의 타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탬파베이 레이스로 이적한 뒤에는, 메이저 투수들의 차원이 다른 공에 적응하기 위해 컴팩트한 스윙을 가져가면서 일본에서 이전 3년간 연속 30+홈런을 치던 파워는 실종되고 주로 리드오프 요원으로 뛰었다. 메이저 첫 해에는 3루수로 뛰었지만 2년차에 탑 유망주 에반 롱고리아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2루수로 포지션이 변경되었고, 레이스의 2008 월드 시리즈 진출을 이끈 주역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다음 해 2루 자리에서 병살 처리를 하다 크리스 코글란의 거친 슬라이딩에 걸려 큰 부상을 당한 뒤 커리어가 제대로 꼬였고, 이후 미국과 일본에서 소속된 어느 팀에서도 이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2014년 야쿠르트를 마지막으로 1군 무대를 떠났다. 그 후 독립리그베이스볼 챌린지 리그후쿠시마 호프스라는 구단의 감독 겸 선수로 뛰다 2017년 선수로서 완전히 은퇴하고 호프스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나중에 코글란이 또다른 동양인 내야수인 강정호를 슬라이딩으로 보내버리자 한일 야구팬들 사이에서 잠시 언급되기도 했다.
[69]

10.2.4. 외야수


최후의 코쿠테츠 스왈로즈 선수
일본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현역으로 활동 중 사망한 외국인 선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감독이었던 그 매뉴얼 맞다. 1978년 야쿠르트의 창단 첫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97년 홈런왕을 차지한 스위치 히터. 타격 이외에도 유쾌한 성격과 여러 기행들로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선수들과 장난을 즐기는 건 기본에 외야수비 연습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던가, 타격연습용 헬멧에 스티커 사진을 잔뜩 붙여놓는다던가 하는 모습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브라질 국적의 일본계 선수로, 육성을 기대한 야쿠르트가 거의 유학생 신분으로 받아들여 외국인 선수 범위로 입단했으나 이후 출전 기회를 늘리기 위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장타력을 갖춘 타자로 브라질 국가대표팀에도 여러 차례 선발되었지만 일본에서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2008, 2009년 도루왕. 이시이 가즈히사의 FA 보상선수로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입단한 선수. 입단 시점에 32세란 적지 않은 나이의 선수였지만 늦게 타격에 눈을 떠 젊은 시절부터 주목받던 주력을 늦게나마 살릴 수 있게 되며 2시즌 모두 42도루를 기록하는 주전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다만 나이와 부상 탓에 활약이 길지는 못했다.
한국 국적의[70] 재일교포 4세 선수이다. 본명 주강사. 츠요시라는 이름을 먼저 정해두고 본명은 이를 한국식으로 읽은 것. 여담으로 'FRIDAY'라는 잡지에 야쿠르트 멤버들의 모임 사진[71]이 기사로 실렸을 때 이 선수만 야쿠르트 선수가 아닌 야마다 테츠토의 지인으로 실린 적이 있다(...)[72] 참고로 2군 구장에서 말을 걸어본 한국인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말을 어느정도는 한다고 한다. 2020년 최악의 타격부진 끝에 방출당해 은퇴. 은퇴 직후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10.2.5. 역대 감독


역대
이름
활동 연도
연수
비고
팀 명칭
1대
니시가키 토쿠오
西垣徳雄
1950 ~ 1953
4년

고쿠테츠 스왈로즈
2대
후지타 소이치
藤田宗一
1954 ~ 1955
2년

3대
우노 미츠오
宇野光雄
1956 ~ 1960
5년

4대
스나오시 쿠니노부
砂押邦信
1961 ~ 1962
2년
1차
5대
하마자키 신지
浜崎真二
1963
1년

6대
하야시 기이치
林義一
1964 ~ 1965년 4월 27일
1년 4개월
1965 시즌 도중 퇴임
7대
스나오시 쿠니노부
砂押邦信
1965년 4월 27일 ~ 동년 잔여 시즌
6개월
2차, 시즌 도중 팀 명칭 변경
(고쿠테츠→산케이)
산케이 스왈로즈
8대
이이다 토쿠지
飯田徳治
1966 ~ 1967
2년

산케이 아톰즈
9대
벳쇼 다케히코
別所毅彦
1968 ~ 1970년 8월
2년 8개월
1969년 팀 명칭 변경
(산케이 아톰즈→아톰즈)
1970년 팀 명칭 변경
(아톰즈→야쿠르트 아톰즈)
1970년 시즌 도중 해임. 잔여 경기는 '''오가와 요시하루'''가 대행
야쿠르트 아톰즈
10대
오가와 요시하루
小川善治
1970년 8월 ~ 동년 잔여 시즌
3개월
감독 대행
11대
미하라 오사무
三原脩
1971 ~ 1973
3년

12대
아라카와 히로시
荒川博
1974 ~ 1976.5
3년
1976년 시즌 중 해임
잔여 경기는 히로오카 타츠로가 대행
야쿠르트 스왈로즈
13대
히로오카 타츠로
広岡達朗
1976.5 ~ 1979.8
4년 3개월
1976년 시즌은 감독대행
'''팀 역사상 최초의, 1978년 센트럴리그, 일본시리즈 우승감독'''
1979년 시즌 도중 사임. 잔여 경기는 '''사토 타카오'''가 대행
14대
타케가미 시로
武上四郎
1980 ~ 1984.4
4년 4개월
1984 시즌 도중 퇴임
1984년 5월 하순까지는 나카니시 후토시가, 그 후 대행의 대행으로 '''도바시 마사유키'''가 시즌 종료 때까지 대행
15대
도바시 마사유키
土橋正幸
1984.5 ~ 1986
2년 7개월
1984년 시즌은 감독대행
16대
세키네 쥰조
関根潤三
1987 ~ 1989
3년
센트럴리그 최후의 1920년대생 감독
17대
노무라 카츠야
野村克也
1990 ~ 1998
9년
'''1992~1993년, 1995년, 1997년 센트럴리그 우승 감독'''
'''1993년, 1995, 1997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
18대
와카마츠 츠토무
若松勉
1999 ~ 2005
7년
'''2001년 센트럴리그, 일본시리즈 우승감독'''
19대
후루타 아츠야
古田敦也
2006 ~ 2007
2년
선수 겸 감독
20대
타카다 시게루
高田繁
2008 ~ 2010.5
2년 5개월
팀 사상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감독
2010년 시즌 도중 해임. 잔여 경기는 오가와 준지가 대행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1대
오가와 준지
小川淳司
2010.5 ~ 2014
3년 7개월
2010 잔여 시즌은 감독 대행
22대
마나카 미쓰루
真中満
2015 ~ 2017
3년
'''2015년 센트럴 리그 우승 감독'''

23대
오가와 준지
小川淳司
2018 ~ 2019
2년
2차
24대
타카츠 신고
高津臣吾
2020 ~



10.3.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1. 역대 성적


<color=#373a3c>­
리그 우승[73]
­
2위
<color=#373a3c>­
3위

B클래스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
''''''
''''''
'''승률'''
'''포스트시즌'''
1950
7위/8팀
<colbgcolor=#0066b3> 7위
'''고쿠테쓰 스왈로즈'''
138
42
94
2
.309

1951
5위/7팀
5위
107
46
59
2
.438

1952
5위/7팀
5위
120
50
70
0
.417

1953
6위/6팀
6위
125
45
79
1
.363

1954
5위/6팀
5위
130
55
73
2
.430

1955
5위/6팀
5위
130
57
71
2
.445

1956
4위/6팀
4위
130
61
65
4
.485

1957
4위/6팀
4위
130
58
68
4
.462

1958
4위/6팀
4위
130
58
68
4
.462

1959
4위/6팀
4위
130
63
65
2
.492

1960
6위/6팀
6위
130
54
72
4
.431

1961
3위/6팀
<color=#373a3c> 3위
130
67
60
3
.527

1962
6위/6팀
6위
134
51
79
4
.392

1963
4위/6팀
4위
140
65
73
2
.471

1964
5위/6팀
5위
140
61
74
5
.452

1965
6위/6팀
6위
'''산케이 스왈로즈'''
140
44
91
5
.326

1966
5위/6팀
5위
'''산케이 아톰즈'''
135
52
78
5
.400

1967
5위/6팀
5위
135
58
72
5
.446

1968
4위/6팀
4위
134
64
66
4
.492

1969
5위/6팀
5위
'''아톰즈'''
130
58
69
3
.457

1970
6위/6팀
6위
'''야쿠르트 아톰즈'''
130
33
92
5
.264

1971
6위/6팀
6위
130
52
72
6
.419
1972
4위/6팀
4위
130
60
67
3
.472
1973
4위/6팀
4위
130
62
65
3
.488
1974
3위/6팀
<color=#373a3c> 3위
'''야쿠르트 스왈로즈'''
130
60
63
7
.488

1975
4위/6팀
4위
130
57
64
9
.471

1976
5위/6팀
5위
130
52
68
10
.433

1977
2위/6팀
2위
130
62
58
10
.517

1978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30
68
46
16
.596
'''일본시리즈 (4-3 vs 한큐)'''
1979
6위/6팀
6위
130
48
69
13
.410
1980
2위/6팀
2위
130
68
52
10
.567

1981
4위/6팀
4위
130
56
58
16
.491

1982
6위/6팀
6위
130
45
75
10
.375
1983
6위/6팀
6위
130
53
69
8
.434
1984
5위/6팀
5위
130
51
71
8
.418

1985
6위/6팀
6위
130
46
74
10
.383
1986
6위/6팀
6위
130
49
77
4
.389
1987
4위/6팀
4위
130
58
64
8
.475

1988
5위/6팀
5위
130
58
69
3
.457

1989
4위/6팀
4위
130
55
72
3
.433

1990
5위/6팀
5위
130
58
72
0
.446

1991
3위/6팀
<color=#373a3c> 3위
132
67
63
2
.515

1992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31
69
61
1
.531
일본시리즈 (3-4 vs 세이부)
1993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32
80
50
2
.615
'''일본시리즈 (4-3 vs 세이부)'''
1994
4위/6팀
4위
130
62
68
0
.477

1995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30
82
48
0
.631
'''일본시리즈 (4-1 vs 오릭스)'''
1996
4위/6팀
4위
130
61
69
0
.469

1997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37
83
42
2
.615
'''일본시리즈 (4-1 vs 세이부)'''
1998
4위/6팀
4위
135
66
69
0
.489

1999
4위/6팀
4위
135
66
69
0
.489

2000
4위/6팀
4위
136
66
69
1
.489

2001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40
76
58
6
.567
'''일본시리즈 (4-1 vs 긴테쓰)'''
2002
2위/6팀
2위
140
74
62
4
.544

2003
3위/6팀
<color=#373a3c> 3위
140
71
66
3
.518

2004
2위/6팀
2위
146
72
64
2
.529

2005
4위/6팀
4위
146
71
73
2
.493

2006
3위/6팀
<color=#373a3c> 3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146
70
73
3
.490

2007
6위/6팀
6위
144
60
84
6
.417

2008
5위/6팀
5위
144
66
74
4
.471

2009
3위/6팀
<color=#373a3c> 3위
144
71
72
1
.497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주니치
2010
4위/6팀
4위
144
72
68
4
.514

2011
2위/6팀
2위
144
70
59
15
.543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요미우리)'''
파이널 스테이지 (2-4 vs 주니치)
2012
3위/6팀
<color=#373a3c> 3위
144
68
65
11
.511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주니치)
2013
6위/6팀
6위
144
57
83
4
.407

2014
6위/6팀
6위
144
60
81
3
.426

2015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43
76
65
2
.539
'''파이널 스테이지 (4-1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1-4 vs 소프트뱅크)
2016
5위/6팀
5위
143
64
78
1
.451

2017
6위/6팀
6위
143
45
96
2
.319

2018
2위/6팀
2위
143
75
66
2
.532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요미우리)
2019
6위/6팀
6위
143
59
82
2
.418

2020
6위/6팀
6위
120
41
69
10
.373

<color=#373a3c> ''' NPB 통산 71시즌'''
'''리그우승 7회'''
<color=#373a3c>
<color=#373a3c> '''9513'''
<color=#373a3c> '''4280'''
<color=#373a3c> '''4919'''
<color=#373a3c> '''314'''
<color=#373a3c> '''.465'''
<color=#373a3c> '''일본시리즈 우승 5회'''

[1] 자이언츠는 NPB 창설 이전인 1934년부터 1946년까지, 치바 롯데(1950년부터 1973년까지 도쿄 연고)는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도쿄 명칭을 사용했다. 즉, 동시에 두 팀 이상이 '도쿄'라는 이름을 쓴 적은 없다.[2] 정확히 말하자면 큐슈 신칸센 이전에 같은 구간을 달리던 특급 츠바메의 이름이 신칸센이 개통하자 그쪽으로 옮겨진 것. 이 과정에서 신야츠시로역 평면환승을 이용한 릴레이 츠바메가 다니기도 했다. 그 외 JR 히가시니혼타카사키선 전좌석 지정석 특급으로 스왈로 아카기가 있지만 운행구역 외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3] '치면 병살, 지키면 실책, 달리면 아웃'이라는 구호도 있었다고 한다.[4] 1960년대부터 신칸센이나 전국에 널리고 널린 로컬선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일본국유철도의 재정 상황은 더더욱 힘들어져 갔다. 여기에 세이칸 터널세토대교 건설은 보너스. 참고로 일본국유철도가 '''해체 전 마지막으로 흑자를 기록했던 연도'''가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했던 1964년. 그 뒤로 일본국유철도는 '''1987년 민영화 전 까지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많던 특정지방교통선들은 대다수가 적자 83선으로 대표되는, '''돈 안 되는 지방 적자 로컬선'''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결국은 국철재건법에 의해 공사가 정지되거나, 폐선되거나, 혹은 제3섹터로 넘어가게 되었다. 야쿠르트로 인수된 이후의 이야기지만, '''국철이 적자로 허덕거리던 1980년대 초반에''' 일본국유철도는 '''자기네 예산으로''' 메이지진구 야구장의 보수공사를 해주기도 했다.[5] 정확히는 1962년 8월에 구단매각을 전제로 후지TV, 산케이신문과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당시 구단의 명칭 및 구단 법인의 회사명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구단 운영의 주도권이 사실상 후지TV, 산케이신문으로 넘어갔다.#[6] 정확히는 1969년, 적자경영을 견디지 못한 산케이 측에서 야쿠르트에게 구단 주식지분 일부를 넘기면서 산케이+야구르트가 공동으로 구단을 경영하다가 (그래서 팀명이 모기업명이 안붙은 '''아톰즈'''가 된 것) 시즌 종료 후 산케이가 구단 운영을 포기하면서 야쿠르트에게 구단이 인수되었다.[7] 만년 꼴지였던 스왈로즈의 우승은 그 밖에도 여러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 중 소설가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대표 소설인 '야구감독'은 스왈로즈의 우승을 소설화 했다.[8] 여담으로 팀 응원가 '''"날아올라라 야쿠르트 스왈로즈(とびだせヤクルトスワローズ)"''' 를 직접 불렀다. 현재도 간간히 구장에서 불려진다.[9] 변화가 크고 빠른 고속 슬라이더로 야쿠르트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혹사로 인하여 33살의 나이로 2003년도에 은퇴를 하였다. H2에서 쿠니미 히로가 후반부에 고속 슬라이더를 마스터 하는 장면은 이 선수의 오마쥬로 추정된다.[10] 1999 시즌부터 2군 감독을 역임했으며, 그 전에 1993~95 스카우터, 96~98 2군 수비, 주루 코치 경력도 있었다.[11] 꼴지는 요쿄하마. 그런데 시즌 성적에선 그 요코하마에게 밀리고 있다.[12] 시즌 최종성적 130경기 439타수 145안타 '''60홈런(1위)''' '''131타점(2위)''' '''94득점(1위)''' '''0.330(2위)'''/'''0.455(1위)'''/'''0.779(1위)'''. 잉여로운 야쿠르트 타선만 아니었다면 블랑코를 제치고 타점 1위도 먹을 수 있었으나...답이 없는 야쿠르트의 타선때문에...규정타석을 채운 선수가 발렌틴밖에 없다.[13] 시즌 최종전에서 공동 다승왕을 노리던 히로시마 에이스 마에다 겐타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패전을 먹였다.[14] 그 날 메신저는 2안타 4타점을 적립했다.[15] 안타, 득점, 2루타, 총루타 1위. 안타의 경우 193개를 쳤는데 일본인 우타자 안타 시즌기록을 세웠다.[16]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케이스다.[17] 1위 요미우리부터 5위 한신까지 모두 3점대. 5위 한신도 3.88로 야쿠르트랑 1점 가까이 차이난다.[18] 무슨 이유에선지 다음 일본야구 기록실이나 국내 야구기사등에서는 아키요시 요시라고 쓰고있다. 야쿠르트 공홈과 위키백과에서는 아키요시 료라고 표시.[19] 다만 일본프로야구도 1군 최저연봉 제도에 맞춰서 1440만엔보다 연봉이 적은 선수는 등록일자에 맞춰서 추가수당을 주는 제도가 있다보니 실제로 받은 돈은 저거보다는 많다(...) 2015년 기준 1군 등록 1일당 7만 6천엔을 추가로 줬고, 데닝은 90일정도 1군에 있었으니 680~690만엔 정도를 더 받았다. 그래서 합치면 대충 1000만엔이 좀 넘으며 달러로는 10만 달러 정도는 된다. 그래서 실제로 데닝이 받아간 돈은 보통의 육성형 용병보다는 많은 편. 저렴하게 데려오는 보험용 대체용병 수준의 몸값은 됐다. 물론 팀에 외국인 타자들이 죄다 부상으로 나가리돼서 강제로 1군에서 주전 자리를 보장받은 점이 크지만.[20]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한신의 마무리 오승환은 시즌 41세이브를 거두면서 NPB 외국인 최다 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21] 단, 승률에서는 앞서기 때문에 1위는 유지할 수 있다.[22] 여담으로 3위 한신이 히로시마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2위도 확정지었다.[23] 한편 퍼시픽 리그는 이날 모두 돔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렸기 때문에 경기를 열 수 있었다.[24] 철벽 마무리였던 토니 바넷텍사스 레인저스로, 올랜도 로만은 야쿠르트에서 뛰기 전에 에이스로 활약했던 대만프로야구라미고 몽키스로 이적했다. 마무리 투수 자리를 맡게 된 로건 온드루섹만 남았었으나, 온드루섹도 팀 수뇌진과 기용 등을 놓고 불화를 겪다 16시즌 도중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하며 완전 해체. 결국 토종 사이드암 투수인 아키요시 료가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25] 원래 처음부터 1순위 지명을 고려한 선수가 아니라 메이지 대학 출신의 다카야마 준을 놓고 한신 타이거스와 경합 끝에 추첨에서 떨어져서 대체 1순위로 지명한 선수이다. 참고로 다카야마 추첨 당시 제비를 뽑은 마나카 미쓰루 감독이 자기가 뽑은 제비가 당첨인 것으로 착각하고 인터뷰에서 다카야마에게 메시지까지 보낸 상황에서 나중에 확인한 결과 본인의 착각이었음이 판명되어 개망신을 당했었다(...)[26] 하재훈은 7월 10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나 주로 대타로 출전했고 7월 31일 2군으로 내려간 뒤 시즌 끝까지 2군에 머물렀다. 시즌 종료 후 퇴단한 뒤 다시 일본 독립리그로 향했다. 독립리그에서 외야수와 투수를 겸하다가 2019년도 신인 2차 지명에서 SK 와이번스에 2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완전히 투수로 전향해 2019 시즌 세이브왕에 올랐다.[27] DeNA 전패 시 승률 0.464, 야쿠르트 3승 3패시 승률 0.458.[28] 참고로 옆나라의 수도 연고팀도 2011년에 팀이 DTD를 시전하자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29] 결국 이해 시즌은 최하위로 마감했는데, 성적이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무려 '''33승 92패 5무 승률 .264(!!!)'''에 1위와의 승차는 '''42.5게임차.''' 1970년 야쿠르트 이후로 현재까지 세리그에서 2할 승률을 찍는 팀은 없다(...)[30] 이전 최다패 기록은 '''창단 첫해인 1950년에 기록한''' 94패였다. 거기다 이때는 '''공기업'''이었던 고쿠테츠가 경영하던 시절이었다.[31] 2017년까지 야쿠르트의 교류전 통산성적은 교류전에서 약하다고 소문난 요코하마와 히로시마의 바로 위이다. 두 팀이 워낙 교류전 약체 이미지가 강해서 가려져 있을 뿐 야쿠르트도 두 팀 못지 않은 퍼시픽 리그의 호구였다. 특히 2017년에는 교류전 시작하자 마자 10연패를 하면서 일찌감치 최하위를 확정짓고 21세기 최악의 시즌을 열어 젖히기도 했다. 그 10연패도 분쿄 구에 있는 이웃 팀의 역사적 삽질 덕분에 묻혀버리는 안습함까지 더해졌다.[32] 심지어 타선의 파괴력도 메이지진구 구장의 타자친화적 파크팩터를 감안하면 세이버메트릭스상으로는 리그 평균 수준까지 떨어진다.[33] 테라하라는 4경기 선발 등판을 제외하면 1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이가라시는 45경기 출장에 불펜 스윙맨으로 그나마 제값을 해주었다.[34] .239 [35] 야마다 테츠토는 그 망했다던 2017년보다도 OPS가 더 떨어지며 FA로이드라는 말이 무색하게 부진했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던 알시데스 에스코바는 OPS 6할대의 똑딱이에다가 수비지표가 완벽하게 망하면서 1년만에 퇴단했다. 사카구치 토모타카는 커리어 최다인 9홈런을 기록중이지만 컨택이 무너져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주전으로 나서며 3할을 찍어주던 야마자키 코타로는 9월부터 극심한 타격 침체에 빠진탓에 타율이 2할 5푼으로 떨어졌다. 평균 이상의 타격 생산력을 보이면서 타선을 이끄는건 노장 아오키와 소년가장 무라카미 뿐인 셈. 여기서 주전 경험이 많이 없어 피로도등의 문제로 뻗을만 할 야마자키와 노쇠화 문제로 생산성이 떨어져갈 사카구치를 뺀 나머지는 먹튀라 해도 무방하다.[36] 규정타석 충족 선수 중 직구 홈런 0개를 기록한 선수는 야스다 히사노리, 겐다 소스케, 에스코바 셋 뿐이다. [37] 구단 신기록[38] 회사 관련 지역 때문에 팀 연고지가 아니어도 인기가 있는 팀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있다. 이쪽은 세이부 회사의 발상지인 시가현에서 인기가 좋은 편.[39] 온도(音頭)는 2/2박자를 가진 일본 전통 민요로서 한국에서는 선창(先唱, 노래나 구령을 앞서서 부르는 것.)으로 번역된다. 주로 마츠리 같은 축제때 들을수 있는 노래인데, 큰북을 두드리면서 한명이 선창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제창으로 추임새를 넣는 노래다. 여기서 선창을 하는 사람의 명칭이 音頭였고 이것이 장르의 명칭이 되었다. 각 지역마다 이런 온도가 존재한다. 당연히 도쿄 온도는 도쿄 지방에서 불리는 온도를 말한다.[40] '임'의 일어인 イム를 붙이면 佛의 약자(仏)가 나오기 때문.[41] 그 뒤 주니치의 모리노 마사히코가 탈세로 세금을 물어내게 되자 참교육자로 재평가받았다(...).[42] 하재훈은 야쿠르트 퇴단 이후 2017년에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면서 야쿠르트에서 뛰던 기간은 유예기간 기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는데, 이는 일본프로야구는 프로야구 리그도 아니라는 말이 되어 야쿠르트 및 일본프로야구 팬들에게 까였다. 그래도 나중에 SK에 입단해서는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으면서 이미지를 회복했다.[43] 비슷하게 야쿠르트도 브라질 출신의 일본계 선수들을 저렴하게 육성형 용병처럼 써먹으려고 영입하기도 했다. 마츠모토 유우이치가 대표적. 카프도 타마키 시게오라는 일본계 브라질인 선수를 90년대에 드래프트로 영입한 적이 있다.[44] 上田剛史. 한국 이름 주강사(周剛史). 재일교포 4세로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45] 다만 일본에서 태어나 쭉 일본에서 살아온 케이스. 특히 고등학교도 국제학교다 보니 한국 쪽 정체성을 특별히 갖고 있으리라 보기는 어려워보인다.[46]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96.[47]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3. [48] 등번호는 야쿠르트에서 따온 8960. 버팔로 벨의 치마를 들췄다가 픽시브에서 변태 취급을 당했다.[49] トルクーヤ, 야쿠르트를 거꾸로 뒤집은거다(...) 등번호는 역시 이름에서 따온 0698.[50] 요미우리 마스코트인 쟈비트가 따라하기도 했다.[51] 뭐 그다지 나쁘다고는 할수 없는것이, 1986년 월드 시리즈때도 자기가 회장인 리그의 팀이 이겼음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빨강양말 팀이 졌다고 징징댄 내셔널리그 회장님 지아바티도 계셨으니 뭐..[52] 중간에 아웃이 되면 끊기지만 주루 미스로 인한 아웃은 상관없다.[53] 도쿄도 태생이다.[54] 마무리 투수. 2012년 드래프트 1위. 18시즌 35세이브를 찍으며 수호신으로 활약했다.[55] 2016년 퍼시픽리그 신인왕. 18시즌 후 아키요시 료 등과 2:2 트레이드를 통해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입단했다. 그러나 니혼햄 당시에도 피홈런이 많던 투수였는데 타고투저 구장인 진구구장을 홈으로 쓰더니 19시즌 6점대 방어율로 폭망. 20시즌엔 그래도 적응이라도 했는지 4점대 까지 감량하는데 성공했다. [56] 입단 당시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잠깐 주목받은 선수(...) 오가와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며 답이 없는 야쿠르트 투수진에 희망을 주는듯 했으나 5.4의 방어율로 타카나시 만큼 폭망. 여담으로 19시즌 16연패 당시 연패를 끊은 DeNA전 선발투수이자 승리투수였다.[57] 2019시즌 .203 10홈런을 기록한 내야 유망주. 2020시즌엔 컨택이 많이 미숙해 주로 대타로 나왔다. 97년생의 젊은 나이에 상당한 외모로 저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다.[58] 야쿠르트의 오가와를 이을 차기 소년가장(...) 2019시즌 센트럴리그 최다 피삼진과 함께 신인왕을 달성했다. 2020시즌 드디어 재능이 만개했는지 39의 나이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는 아오키보다 타율이 높고 여전히 삼진왕이지만 홈런과 타점,타율 모두 상위권에 올라왔다. 그러나 수비가 영 좋지 않은것이 흠.[59] 이토이랑 다른 점은 유헤이는 1군에서 투수로 꽤 많은 경기에 나왔다. 타자전향을 프로에서 어느 정도 짬밥을 먹은 후에 한 것이니... 근데도 중심타선을 맡을 정도로 성공했으니 타고난 재능인듯.[60] 하타케야마가 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발렌틴의 빈자리를 매꿀 야마사키로 인해 앞으로 외야로 갈일이 없어졌다.[61] 물론 1루수 후보들 중 높다는 거지 이 선수의 OPS는 보통 7할대 초중반 정도에 커리어하이가 딱 8할이다.[62] 당시 자이언츠 킬러 또는 교진과의 경쟁심이 강했던 타 팀의 주축 투수들을 상대로 오가 기록한 성적(타율)은 타이요히라마츠 마사지는 무려 .370을, 주니치호시노 센이치는 .318, 한신에나츠 유타카는 .287이었다. 이 선수들이 전부 야스다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의 커리어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야스다에 비해 오에겐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다.[63] 왜 그런지는 카와이 카즈미 항목 참조.[64] 히야네 와타루라는 백업 외야수가 실책을 해서 블론세이브를 한 일이 있었는데 덕아웃에서 대놓고 구단과 팀 동료에게 폭언을 하다가 감독에게도 꾸짖음을 듣고 징계를 먹었다. 여담으로 블론세이브를 만들어버린 히야네 역시 2016년 이후로 점차 출장기회가 줄어들다가 2018년을 끝으로 방출.[65] 런하기 전까지의 2016년 성적은 30경기 3승 1패 11세이브 2홀드 ERA 2.45였다.[66] 원문은 鉄砲肩の殺し屋[67] 최초의 스왈로즈 선수 출신 감독은 상술한 1966년 산케이 아톰즈 시절의 이이다 토쿠지였지만 이이다는 원래 난카이 호크스에서 데뷔. 스왈로즈에서 데뷔한 선수로 최초의 프로야구 감독이 된 것은 1973년 롯데 오리온즈카네다 마사이치.[68] 그런데 베스트나인은 5홈런을 치고도 우승 프리미엄+베테랑 예우에 힘입어 주니치의 타츠나미 카즈요시에 넘겨주어야 했다. 역으로 골든글러브를 이와무라가 가져갔다.[69] 생긴 것 뿐만 아니라 나이도 똑같다. 거기다가 선구안과 클러치 히팅 능력이 좋은 교타자 스타일의 타격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또한 발이 느리고 뚱뚱한 거포이긴 하지만(시즌 30홈런과 통산 200홈런을 기록한 최준석에 비해서는 커리어하이 26홈런, 통산 128홈런으로 홈런 갯수가 한참 적지만 2011년의 통일구 사태 때 23홈런으로 센트럴리그 홈런 2위도 기록할 정도로 파워는 진퉁이었다.) 교타자 타격으로 인해 포텐이 터진 한두해를 제외하면 15홈런 안팎의 홈런 생산 능력을 가진 것까지 비슷하다. 심지어 2015년 커리어하이를 찍고 쭉 하락세를 타는 것도...(사실 하타케야마는 몸무게는 100kg 안팎이라 최준석보다 키가 7cm 더 작은 것을 감안해도 최준석이랑 비교하면 홀쭉하다.)[70] 2020년 기준 재일교포 선수 중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최후의 선수였다.(더 있을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 공개하고 다니는 선수는 유일하다.) 이젠 은퇴하면서 2021 시즌 기준으로는 없다.[71]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고 유흥을 워낙 좋아하는 야마다 테츠토가 친한 선수 몇 명이랑 유흥을 즐기는게 찍혔다(...)[72] 본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2015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이후의 맥주 끼얹기 행사에서 지인 남성(원문 知人男性)이라고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참가했다고... 사실상 컨셉으로 미는 듯하다. 참고로 모리후쿠 마사히코양석환도 이런 일화가 있다.[73]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