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image]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1]
<color=#373a3c> '''Yokohama DeNA BayStars'''
'''横浜DeNAベイスターズ'''
'''구단 법인명'''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株式会社横浜DeNAベイスターズ)
'''창단'''
1949년 11월 22일
'''연고지'''
[image] 가나가와현 [image] 요코하마시
'''현재 연고지로 이전'''
1955년[2]
'''구단 연고지 변천'''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1950~1952)
교토부 (1953~1954)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1955~1977)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1978~)
'''구단명 변천'''
타이요 훼일즈 (1950~1952)
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953)
요쇼 로빈스 (1954)
타이요 훼일즈 (1955~1977)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978~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3~2011)
쇼난 시렉스 (2군: 2000~2010)[3]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12~)
'''홈 구장'''
시모노세키 구장 (1950~1952)
오사카 구장 (1953~1954)
카와사키 구장 (1955~1977)
요코하마 스타디움 (1978~)
'''2군 구장'''
요코스카 스타디움
'''모기업'''

'''감독'''
미우라 다이스케 (三浦大輔)
'''킷 스폰서'''

'''마스코트'''
[image]
'''DB 스타맨''' & '''DB 키라라'''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60, 1998'''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1960, 1998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17
'''역대 한국인 선수'''
송재박 (1983~1987)
'''홈페이지'''

'''1960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59년 난카이 호크스

'''타이요 훼일즈'''

196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97년 야쿠르트 스왈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9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60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59-요미우리 자이언츠

'''타이요 훼일즈'''

1961-요미우리 자이언츠
'''1998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97-야쿠르트 스왈로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9-주니치 드래곤즈
1. 개요
3. 구단 역사
3.1. 2008년 이후
3.1.1. 2008년 시즌
3.1.2. 2009년 시즌
3.1.3. 2010년 시즌
3.1.4. 2011년 시즌
3.1.5. 2012년 시즌
3.1.6. 2013년 시즌
3.1.7. 2014년 시즌
3.1.8. 2015년 시즌
3.1.9. 2016년 시즌 : 18년만에 진출한 포스트시즌
3.1.10. 2017년 시즌 : 19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 하지만...
3.1.11. 2018년 시즌 : 2년간의 달콤한 꿈은 끝났다
3.1.12. 2019년 시즌 : 1998년 이후 최고의 정규시즌 순위
3.1.13. 2020년 시즌
3.1.14. 2021년 시즌
4. 관중수 추이
5. 인기
6. 팀 특징
6.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6.3. 응원가
6.4. 영구결번
6.5. 기타
8. 선수 명단(2021년 시즌)
8.1. 감독 및 코치
8.2. 투수
8.3. 포수
8.4. 내야수
8.5. 외야수
8.6. OB
8.6.1. 감독
8.6.2. 투수
8.6.3. 포수
8.6.4. 내야수
8.6.5. 외야수
8.7. 팀 출신 메이저리거
9. 역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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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공식적인 센트럴 리그 샌드백'''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전통의 약체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팀이다.
팀 역사만 보더라도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일본 시리즈 우승 2회로 매우 초라한 편이고, 팀의 통산 승률도 '''12개 구단 중 꼴찌'''라는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9시즌 전까지 총 69시즌동안 NPB 통산 '''4969패'''라는 어마무시한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12개 구단 통틀어서 최다패이다. 결국 2019년 6월 15일 교류전 기간에 만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패배하며 '''NPB 최초로 5000패'''를 달성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4]
그리고 현존하는 센트럴리그 팀 중 유일하게 '''홈구장에서 리그 우승을 단 한번도 결정지은 경험이 없는 팀'''이다. 이 팀은 그나마 있는 2번의 리그 우승을 전부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결정지었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은 98년에 홈구장에서 결정지어서 홈 팬들 앞에서 헹가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팀명에 쓰는 마스코트는 오랫동안 훼일즈[5], 즉 고래를 써왔었는데 당시 모기업이 고래잡이를 했었기 때문. 하지만 고래잡이가 점점 논란거리가 되어서인지 1993년부터 베이스타즈라는 아주 일본스러운 영어로 바꾸었다. 말 그대로 요코하마 만(Bay)의 별들이라는 뜻.[7]
2011년 시즌까지 방송국인 TBS 테레비가 모기업으로서 운영해 왔으나, TBS조차도 꿈도 희망도 없는 요코하마보다 요미우리의 경기 중계에 더 힘을 쏟아왔다. 모기업도 버린 안습 그 자체인 셈. 2010년 시즌 종료 후 구단 매각을 선언하여 유력 후보로 住生活グループ[8]이 거론되었으나, 교섭결렬로 2011년 시즌 까지는 TBS 테레비가 구단을 운영해 왔다.
결국 2011년 11월 4일, 모바일 게임 사이트 '모바게(Mobage)'[9]를 운영 중인 DeNA(디엔에이)가 요코하마의 모기업인 TBS 홀딩스와의 매입 협상을 완료하고 구단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회사 재무 구조와 향후 사업계획 등의 실사를 마치고 12월 1일 구단주 회의에서 DeNA의 요코하마 구단 인수를 승인함에 따라 팀 명칭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약호도 요코하마의 横에서 DeNA의 De(혹은 ディ)로 바뀌고 표기도 요코하마 DeNA로 변경되었다. 근데 익숙한 것도 있고, 너무 길기도 해서 일본 언론에서조차 그냥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지역명 빼고 간단히 'DeNA'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2.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


<color=#373a3c> '''제1구장'''
<color=#373a3c> '''제2구장'''
[image]
[image]
'''요코하마 스타디움'''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

3. 구단 역사


[image]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사용한 로고.
2005년 창단해서 2013년 첫 일본시리즈 진출 후 우승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과 함께 2016년까진 일본프로야구에서 일본시리즈에서 패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었다. 1998년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 패하기 전까지는[10] 일본프로야구 12개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일본시리즈에서 단 1게임도 진 적이 없는 구단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기도 했다.하지만 소프트뱅크와의 2017년 일본시리즈 판도를 보면 첫 패배를 안을 가능성이 농후했고, 결국 4-2로 탈락하면서 승률 100%는 깨졌다.
1950년 포경(고래잡는)회사인 다이요 어업을 모기업으로[11] 하는 '''다이요 훼일즈(大洋ホエールズ)'''로 시모노세키시에서 창단된 뒤 1953년 영화회사인 쇼치쿠가 모기업인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하여[12] '''다이요쇼치쿠 로빈스(大洋松竹ロビンス'''로 이름을 바꾸고 쇼치쿠의 텃밭인 교토부연고지 이전. 그 뒤 1954년 '''요쇼 로빈스(洋松ロビンス)'''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으나[13] 1955년 쇼치쿠가 야구단에서 손을 떼면서 다시 '''다이요 훼일즈'''로 이름을 바꾸면서 가와사키시로 연고지를 바꾸면서 가와사키 구장으로 입성한다. 1978년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개장에 맞춰 요코하마시로 연고지를 옮겨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横浜大洋ホエールズ)''', 그 후 1993년 포경업에 대한 세계적인 여론 악화와 맞물려 기존의 포경업 이미지를 버리고자 시민구단을 표방하면서 팀 이름에서 기업명을 빼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즈(横浜ベイスターズ)'''가 되었다. 그 후 2001년 못나가는 팀에 쌓여가는 적자, 본업인 원양어업 및 수산물 가공업의 부진으로 지분의 80%를 보유하고 있던 마루하[14]TBS 테레비 측에 지분을 다 떠넘기면서 구단에서 완전히 손을 탈탈털고 TBS 테레비가 2011 시즌까지 단독으로 운영했다.
모기업이 고래나 잡고 어묵이나 만들어 팔던 회사였던 덕분에, 구단에 대한 지원이 빈약하여 태생적으로 센트럴리그 공인 '''동네북'''의 운명을 짊어져 왔다.
그래도 1950년대에는 모기업조차 없어서 시민들의 성금으로 운영하던 진정한 시민구단인 카프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그 후 마쓰다가 경영권을 인수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안정된 재정 상황을 바탕으로 강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반면 다이요는…. 그러나 2000년대까진 두 팀 다 짠돌이 모기업 덕분에 하위권에서 친하게 지내는 단짝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다이요 훼일즈 시절인 1959년 리그 꼴찌를 차지한 뒤[15],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일본시리즈 3연패를 이끈 명장 미하라 오사무를 감독으로 영입하여 1960년 리그 우승[16]을 차지하고, 일본시리즈에서 다이마이 오리온즈(치바 롯데 마린즈의 전신)을 4승 무패로 꺾고 우승하였는데, 전년도 꼴찌팀이 다음해 일본시리즈에서 바로 우승한 최초의 경우다. 에이스 아키야마 노보루, 구원투수 곤도 마사토시를 중심으로 한 투수진에 신인인 콘도 아키히토와 젊은 교타자 콘도 카즈히코의 활약, 그리고 감독 스스로도 '초2류선수' 라고 부른 시마다 겐타로, 스즈키 타케시 등이 명포수 도이 키요시과 조화를 이뤄 얻어낸 그야말로 깜짝 우승.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다시 꼴찌로 추락, 다음해인 1962년 한신 타이거스와 치열한 우승경쟁을 한 끝에 2위로 우승을 놓친 후로는...1969~1971년의 연속 3위를 제외하고 약 40년간 몇몇 연도를 빼고 하위권으로 지내왔다. 참고로 이 1962년이 한신 타이거스가 양대리그 분립후 처음으로 차지한 리그 우승이다.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의 맹주이자 일본프로야구에서 거인과 쌍벽을 이루는 초절정 인기팀인 한신 타이거즈보다 리그 우승도 일본시리즈 우승도 먼저였다.
[image]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 직후 환호하는 사사키 카즈히로다니시게 모토노부
일본시리즈 두 번째 우승은 1998년에 나왔다. 명실상부한 베이스타즈 최고의 전성기로, 당시 일본프로야구 특급 마무리었던 사사키 카즈히로이시이 타쿠로, 하루 토시오, 스즈키 타카노리, 로버트 로즈, 코마다 노리히로, 사에키 타카히로, 다니시게 모토노부 등이 포진한 머신건 타선을 앞세워 두번째 우승을 차지한 것. [17]
2ch 야구판의 익명의 롯데 담당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뭔가가 잘못되어서 운좋게 우승했는데 그걸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팀'''…이라고는 하는데 이 시기의 요코하마는 강한 팀이었다. 1997~1999년 까지의 3년간이 안습의 역사로만 점철된 팀의 최고 전성기 였으며, 사이토 다카시, 노무라 히로키, 미우라 다이스케, 카와무라 타케오의 선발진은 조금 약한 편이기는 했지만 머신건 타선[18][19]과 투수출신인 곤도 히로시 감독의 마무리 사사키 카즈히로를 중심으로 한 절묘한 투수진 운용으로[20] 구단 역사상 2번째로 3년 연속 A클래스를 기록한 시기였다.[21]
1997년 후반기부터 갑자기 팀이 미치기 시작, 당시 최강이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맞짱을 뜰 정도로 상승세를 타면서 2위로 시즌을 종료.[22] 1990년 이후 7년만에 A클래스에 진입하더니 급기야는 1998년엔 리그 우승을 거두고,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마저 꺾어버리며 3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도 차지해버렸다. 리그 우승의 순간, 일본시리즈 우승의 순간. [23]
1999년은 개막 초반에 비틀거려 하위권으로 쳐지는 바람에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리그의 주도권을 내주고 끝내 우승은 놓쳤지만 그래도 시즌 끝나고 나니 3위였다. 그래도 이 해 '머신건 타선'만큼은 절정에 달해서, '''팀타율이 2할 9푼 4리'''에 달하고, 용병 로버트 로즈가 '''192안타[24], 타율 .369, 35홈런 153타점'''의 역대급 활약을 하는 등 절호조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2000년 시즌을 끝으로, 팀을 더 강하게 탈바꿈 시킬 확실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바라던 선수들과의 갈등으로 자율야구를 추구하던 곤도 감독이 사임을 한 뒤, 정반대 스타일의 관리야구의 대명사인 모리 마사아키를 감독으로 맞이한게 결정적으로 패착이 됐다. 세이부 라이온즈에서는 일본시리즈를 6번이나 우승하는 등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모리였지만 이 팀에 와서는 그동안의 팀컬러에 맞지 않는 관리야구로 팀이 서서히 공중분해. 1999년 시즌을 마치고 팀의 기둥뿌리였던 사사키 가즈히로가 메이저리그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3년연속 A클래스 +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들의 끗발로 2001년까지는 어떻게 버티며 2년연속 3위를 차지해 5년 연속 A클래스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음은 누가 봐도 확연했다.[25] 결국은 2002년 49승 86패로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완전 몰락. 모리는 도중 사임.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이 팀이 65년이 넘는 긴 역사 동안 리그 A클래스(1~3위)에 오른 적은 '''딱 17번 뿐이다.''' 현재 있는 12구단 중 21세기 신생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제외한 나머지 11구단 중 꼴찌이며[26] '''심지어 일본시리즈 우승을 1번도 못 이루고 10년도 전에 해산한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22번) 보다도 밀린다.''' [27]
아래가 그 17번 A클래스의 연표.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 괄호 안의 숫자는 당시 순위.
'''1960(1)''' - 1962(2) - 1964(2) - 1969~1971(3) - 1979(2) - 1983(3) - 1990(3) - 1997(2) - '''1998(1)''' - 1999~2001(3) - 2005(3) - 2016~2017(3)
팀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역지명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 90년대 후반부터 불리해질 수 밖에 없었던 비인기팀의 한계 때문에 최고의 신인은 늘 교진군과 같은 인기 많고 자금력 좋은 구단들에게 빼앗겼던 것이나, 구장이 유흥가와 가까운 탓에 이기면 기뻐서 한 잔 걸치고 지면 잊기 위해 한 잔 걸치는 막장스런 팀 분위기, 코치들의 역량 부족 등이 어우러져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모기업이 강한 팀을 만들어서 팬 수를 늘리고 인기팀이 되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가지기는 커녕 구단을 회사 경영에 방해가 되는 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고, 12개 구단 체제를 깰 수 없어서 마지 못해서 근근이 연명만 가능한 수준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1. 2008년 이후



3.1.1. 2008년 시즌


이전부터 캐망이였지만 특히 08년 시즌부터 부터 3년 연속 연속 꼴찌를 기록하는 등 일본인에게 '''동네북'''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2008년은 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한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타율(.378)[28]보다 더 낮은 승률(.338)을 기록'''. 후새드 안습.[29]

3.1.2. 2009년 시즌


3년연속 꼴찌의 책임을 물어 시즌 중반부터 원 감독인 오오야 아키히코 감독을 중간에 짤라버리는[30] 초강수를 뒀다...만 어차피 팀 꼬라지가 막장이라 그놈이 그놈. 결국 2010년부터 명 투수 조련사로 불리는 오바나 타카오 전 요미우리 투수코치가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해의 기록은 51승 93패로 정규시즌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승차 42.5 게임'''(...)[31]. 그리고 2년연속 90패 초과. 1년만 더 90패를 초과하게 되면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기록 갱신 ''' '''

3.1.3. 2010년 시즌


2010 시즌을 앞두고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트레이드로 선발투수 시미즈 나오유키를, FA로 포수 하시모토 타스쿠[32]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한국계 미국인 혼혈 강타자 터멜 슬레지를 영입하는 등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시즌 초반부터 삽질을 거듭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바닥을 깔아주며 센트럴리그 4위까지 올라가는 등 선전했으나, 역시나 한계였던지 야쿠르트가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꼴찌로 주저앉고 말았다.
감독으로 명투수코치 출신인 오바나가 감독을 맡았는데도 투수진이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줄곧 센트럴리그 꼴찌를 달리다가, 결국 센트럴리그 3년 연속 꼴찌가 확정되었다. 그것도 '''3년연속 승률 3할대'''. 더불어 사상최초로 '''3년연속 90패'''도 확정. 8-8-8-8을 찍은 시절의 롯데 자이언츠도 3년연속 90패는 안 했다.[33] '''역시 센트럴리그 공인 동네북.'''
또한 이 해 '''일본 최초 최하위 기록 20번(...)'''이란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달성했다. 참고로 이 전까지 최다 최하위 기록을 가지고 있던 건 그 안습의 콩라인 킨테츠 버팔로즈(19번).. 또한 '''일본 최초 90패 기록 6번'''까지 달성했다. 참고로 이전 최다 기록도 킨테츠 버팔로즈(5개)가 가지고 있었다..
물론 투수력만 구려서 못 이긴다고 생각하면 착각. 팀타율 역시 1위와 3푼 이상이 차이나는 압도적인 꼴등을 기록했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사회인 야구에서 뛰다가 2010년 신인으로 입단한 카가 시게루. 신인임에도 꼬박꼬박 로테이션을 지키며 145이닝을 던져서 방어율 3.66이라는 훌륭한 피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정한 타자들은 그에게 '''3승 12패'''라는 처참한 기록만 안겨주었다 . 그의 항목에 올라와 있는 방어율 순위표를 보면 참 눈물이 쏟아진다.
오프시즌에 구단 매각관련해서 홍역을 치렀으나 결국 매각처와의 교섭결렬로 2011년까지 계속 이 꼴로 갈듯. 게다가 뒤숭숭한 팀 분위기에 FA최대어인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타구단과 교섭하겠다고 선언, 재정축소로 그냥 풀어주는 분위기상 팀 전력은 더 나락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때문에 이 해 드래프트는 즉전력으로 쫙 깔고, 4명 지명하고 끝내는 팀도 있는판에 8명이나 대량으로 지명하여 전력 땜빵을 시도하고 있다. 이래저래 안습. 그나마 무라타 슈이치는 어떻게 어떻게 잔류시키는데에는 성공했으나, 우치카와 세이이치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떠나버렸다. 사실 우치카와의 경우는 오이타 출신이기 때문에, 인접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당히 선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력도 좋아 항상 우승후보로 꼽히고 못해도 플옵은 가는 팀이라 요코하마보다 싼 값을 불러도 갈 판이었다. 금상첨화로 돈지랄로 유명한 호크스의 모기업은 당연히 우치카와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다. 안 뺏기는게 이상한 상황.
그래도 그 와중에 FA로 풀린 한국계로 유명한 모리모토 히초리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3.1.4. 2011년 시즌


여전히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지라 새로 들어온 신인 선수나 용병들을 마운드에 올리거나 타석에 올리지만 마찬가지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2011년은 통일구 덕분에 유독 두드러진 투고타저의 시즌이 돼서 무라타나 브렛 하퍼, 터멜 슬레지의 장타력만으로 해결해야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곤란하게 됐다.거기다 3월 11일 야쿠르트와의 시범경기에선 1-3으로 지던 7회 초에 지진이 나서 사상 초유의 지진 콜드패(...)까지 당했다.
다행히도(?) 투고타저의 시즌을 맞이해서 선발투수 타카사키 켄타로의 안정적인 투구[34]와 더불어 에지리 신타로[35]의 계투가 빛을 바라고 있다. 투고타저의 시즌이긴 하지만 오바나 감독의 투수 조련술이 어느정도 빛이 난듯한 느낌. 마무리도 확실하다 야마구치 슌이 확실하게 마무리 해줄 수 있는 투수이다.[36] 그외에도 시노하라 타카유키, 후지에 히토시, 우시다 시게루 불펜들도 잘 던진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었던 투수들인 만큼 오바나 감독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사례.
다만, 다른 투수들은 별볼일 없는데다가...큰 문제는 확실한 선발을 해줄만한 선수가 타카사키 켄타로 말고는 없다는 점...2010년까지 히로시마가 마에다 켄 한 명 가지고 버틴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37] 이것은 요코하마가 올시즌도 꼴찌에 3할 승률을 할 수 밖에 없어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타선도 시원찮지만...어차피 2011시즌은 투고타저의 시즌이기도 하고 다른 팀에 비해서 딱히 팀타율[38]이 밀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투수진의 안정이 남은 기간의 성적을 책임진다고 볼 수 있겠다.
투고타저의 시즌이니 만큼 오바나 감독이 마운드 하나는 제대로 휘어잡는 수 밖에 없을 듯. 얼마나 투고타저의 시즌이 심한지 요코하마에서 3할타자가 안나올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됐다. 7월 30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슬렛지 선수가 5타석 5안타 3홈런(!) 8타점이라는 성적을 기록해 9-5로 승리하였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 3홈런 때리는 것도 힘들고 8타점 올리는도 쉽지 않다. 올시즌 투고타저라지만 의미있는 기록이 하나 나온셈이다.
결국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2011년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진 거 없이 '''4년연속 최하위 확정'''. 거기다 '''4년 연속 승률 3할대'''를 기록. 다행히도(?) 전력 절약을 위한 시간제한 규정 덕분에 '''무승부가 미친 듯이 늘어나서'''(11무승부) 사상 초유의 '''4년연속 90패는 면했다'''. 그럼에도 86패를 했으니 만약 지진이 안 나고 예년처럼 연장전이 시간 제한 없이 12회까지 가는 승부였으면 아마도 4년 연속 90패는 확실하게 했으리라 예상된다. 그리고 팀을 떠난 우치카와로부터는 '''긴장감 없는 팀, 뛰는 보람이 없는 팀'''이라고 공개 인터뷰 상에서 디스까지 당했다.
결국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희망도 없어지고, 거기다 홈에서 주니치가 우승을 확정짓고 오치아이 감독을 헹가래 치는 꼴을 직관하는 굴욕까지 겪게된 타선의 주축 무라타 슈이치가 팀에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2011시즌 종료 후 FA권을 행사해서 팀을 떠나버렸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개판의 극을 달리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투수진을 지금과 같은 투수왕국으로 만들고, 2000년대 중반에 무능한 호리우치 밑에서 붕괴됐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운드를 완전히 재건하면서 투수조련의 달인으로 불렸던 오바나 타카오를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리빌딩을 꾀하여 더딘 속도이지만 마운드쪽은 그나마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른바 오바나 효과...[39] 그런데 그 오바나 감독도 2011년을 끝으로 구단이 매각되면서 경질되었다.

3.1.5. 2012년 시즌


위에 언급된 대로 2012년 시즌부터는 DeNA를 모기업으로 새출발 하게 되었다. 구단 매각을 계기로 내년 시즌엔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할 수밖에...그리고 새 감독을 인선했는데 원래 쿠도 키미야스가 유력했으나 이사람이 '''나 선수 겸업할 거임''' 하면서 뻗대는 바람에 결국 감독 인선이 무산되었고[40] 검토끝에 요미우리 자이언츠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간판타자였던 나카하타 키요시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헌데 이분... 요미우리 출신 답지 않게 상당히 개그맨 기질이 탁월하시다.[41] 요코하마의 팀 분위기에는 딱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팬들은 경기에서 죽을 쑤든 팀이 꼴찌로 떨어지든 감독 인터뷰가 재미있다며 낄낄낄(…).
그런데 문제는 나카하타가 나가시마 시게오의 대표적 심복으로 골수 요미우리 OB라는 점이다. 본인으로서는 오매불망 요미우리의 감독 자리만 바라고 타팀의 코치 제안도 거절하고 해설자 생활만 했건만 정작 요미우리는 후배인 하라 타츠노리[42]로부터 정말 새카만 후배인 타카하시 요시노부[43]로 바통을 넘겨줄 준비를 하면서 본인은 감독 후보로 고려도 안 하는 상황. 그대로 가다가는 프로에서 감독생활 한번 못 해보고 그대로 죽겠다 싶어서(...) 교진으로서의 프라이드를 포기하고(...) 요코하마의 지휘봉을 잡았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감독이 된 요미우리 OB들의 성과가 별로 좋은 적이 없었다는 점[44]. 보통 이런 경우 감독이라는 인간들이 자기 팀의 전력상승보다는 요미우리의 내부의 사정에 더 관심을 보이면서 맡은 팀이 어떻게 되든 말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팀이 더더욱 막장화가 가속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해서 꾸준히 팀을 응원해 온 팬들은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개그맨 기질이 뛰어나서 기자들에게는 인기가 많지만 과연 선수들과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나카하타가 우익정당인 '타치아가레 닛폰(일어나라 일본)'의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도 있어서 은근히 욕을 얻어먹는 중.
결국 2012년 시즌도 별로 나아진 건 없어보인다. 아니 더 나빠 보인다. 시즌 초반부터 히로시마의 에이스 마에다에게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하는 등 4경기 연속 완봉패로 38이닝 연속 무득점을 기록. 그리고 2012년 7월 19일 시점에서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1게임차, 5위 한신 타이거스와 6게임차로 '''독보적 꼴찌'''.
그리고 2012년 6월 28일에는 요미우리 하라 타츠노리 감독의 불륜 협박 사건에서 나카하타 감독이 야쿠자에게 하라 감독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편 2012년 7월 18일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홈 경기에서 4-0으로 승리, '''시즌 최초로 3연승'''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요코하마는 2012 시즌 최초로 타구단과의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당시 야쿠르트 상대로 7승 1무 5패)(...). [45] 그러나 결국 팀 전력은 어디 안 가는 듯 후반기 야쿠르트의 폭풍반격으로 상대전적 10승1무13패로 열세로 끝났다. 올스타전 이후로 3승8패로 완전히 열세.
신임 감독 나카하타가 위에서 우려했던 것 처럼 팀을 팽개친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로지 요미우리 감독직만 바라보고 해설자 생활만 했던 초짜 감독이 4년연속 최하위에 승률 3할대를 기록하던 팀에 천지개벽을 일으키기를 기대하는 것도 결국은 무리였다. 2012년에 완전히 폭망해서 리빌딩 모드에 들어간 한신 타이거즈조차도 한번도 넘지 못한 채 5위와 9.5게임차라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게임차로 '''당당히 5년연속 최하위'''를 차지. '''5년 연속 승률 3할대'''도 덤. 이제 이 팀조차도 비교를 불허하는 영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비밀번호는 '''6-4-6-6-6-6-6'''[46]. 참고로 저 4는 혼동하면 안 되는게 NPB는 센트럴리그 6팀 퍼시픽리그 6팀이고 가을야구는 각 리그별 3위까지 할 수 있으니 한국야구로는 5를 찍은 것과 같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라면 점점 패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이것도 다 '''시간제한 무승부 규정 덕분'''이다. [47] 시즌 종료 5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80패를 기록, 5년 연속 85패의 기록은 기록은 면할 가능성이 커졌...나 했더니 '''그 남은 경기를 다 패하면서 기어이 5년연속 85패의 기록을 달성하는 근성을 발휘했다(...).''' 2년만 더 꼴찌에 머무르면 자신들이 세운 6년연속(1954~59) 최하위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20년 연속 B클래스 기록에 도전하는 이 팀이나 연속 최하위 기록에 도전하는 이 팀이나...

3.1.6. 2013년 시즌


꿈도 희망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개막 이후 연승으로 3256일, 약 9년만에 리그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DTD가 발동. 결국 3위로 떨어져 어렵사리 A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주니치에서 데려온 토니 블랑코가 기록적인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며 타선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팀이 되었다. 후반기에는 유망주 카지타니 타카유키가 생각지도 않던 타격포텐 대폭발을 보여주며 팀의 미래를 밝게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투수력.. 결국 교류전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퍼시픽리그 팀들에게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교류전에서 7승 17패로 최하위로 굴러떨어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교류전 종료 시점까지는 야쿠르트가 부진을 보이면서 밑바닥을 깔아주고 있는 덕분에 최하위까지는 아니지만 3위부터 6위까지 3.5게임차 안에서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잘하면 탈꼴찌 뿐만 아니라 꿈에도 그리던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가능성도, 못하면 연속 최하위 타이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있는 불안불안한 상태. 8월 11일 현재 5위지만 그래도 3위인 주니치와는 단 3게임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꼴지 야쿠르트와의 게임차도 단 3게임.
결국 10월 8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최종전에서는 7대 5로 승리했지만, 최종 순위는 달라지지 않은 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3게임 차이인 5위로 이번 시즌을 마쳤다.[48] 올 시즌에 완전히 막장화된 야쿠르트보다도 더욱 높은, 독보적인 팀 방어율 4.50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서[49], 꼴찌는 면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성적이다. 그래도 팀 타율은 요미우리와 더불어 리그에서 가장 높은 .262로 공동 1위를 기록했 다. 그리고 2007년 시즌 이래 최고 승률, 다시 말해서 최근 6년 동안 가장 적은 '''79패만을''' 당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자(...) 최종 성적은 64승 1무 79패.
오프시즌에는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FA로 베테랑 우완 선발요원인 구보 야스토모를 영입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를 잠시 경험했던 베테랑 좌완 다카하시 히사노리를 영입했다. 야수쪽에서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이대호와 클린업을 이루던 우타 3루수 아롬 발디리스를 영입했다. 그런데 영입과정에서 정말로 바보같은 짓을 하고야 말았는데 구보 야스토모의 보상선수로 팀에서 가장 경험많은 포수인 쓰루오카 가즈나리를 한신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2014년 시즌은 포수 최고참이 20대 중반인데다 출전경기수도 100경기 남짓한 경험이 부족한 구로바네 도시키,다카조 슈토와 신인포수 미네이 히로키 등으로 1년을 운영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3.1.7. 2014년 시즌


그래도 팀을 체질개선하겠다는 새 구단주의 의욕이 통했는지 점점 팀같은 팀의 꼴을 갖춰는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비밀번호 연장을 막은 건 아니지만'''.
나카하타 감독도 경험치가 쌓이면서 선수시절 전매 특허였던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살려서 팀을 잘 추스르고 있다. 처음 부임시 우려됐던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으며, 선수들도 과거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점점 탈피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시즌 전, 한국의 타자 '''강정호'''를 일본 캠프에 초청하여 함께 경기를 가지기도 하였다.[50] 비록 순위는 5위였지만 시즌 중반에는 한 때 3위자리를 넘보기도 했고 4위인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불과 1게임차로 아깝게 5위에 그쳤다. 승수도 증가하여 4위인 주니치와 같은 67승이나 거뒀으며 패수도 최근 7년간 가장 적은 75패에서 멈췄다. 그리고 2007년이후 '''무려 7년만에 승패마진을 마이너스 한자릿수로 줄였다(...)'''
일단 투수진에서 FA로 영입해온 쿠보 야스토모가 12승 6패로 에이스 역할을 해줬고, 영건인 이노우와 야마구치 듀오, 용병 기예르모 모스코소가 안정적인 로테이션을 형성하면서 선발투수진에서 계산이 서게 되었다. 기존에 마무리투수를 맡았던 호르헤 소사의 부진으로 대신 중간계투로 호투하고 있던 신인 미카미 토모야에게 맡기면서 뒷문이 개선되며 DeNA의 수호신으로 각성하였고, 그리고 팀내 최고참 미우라 다이스케는 스팟 스타터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는 등 선발진이 최근 몇년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요코하마 성적 상승의 원동력이다. 타선에서는 주니치와 오릭스에서 데려온 블랑코와 발디리스가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토종 4번타자인 쓰쓰고가 3할 22홈런으로 타선의 중심을 잡아줬고 시즌 도중에 쿠바에서 영입한 율리에스키 구리엘[51] 등의 활약으로 장타력 부족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난 안습의 세월처럼 궤멸적인 타선은 아니었다.그리고 1위인 요미우리를 상대로 13승 11패로 유일하게 상대전적에서 앞섰다.
2014 시즌을 정리하면 '''최근 몇년의 안습상태에서 벗어나 조금씩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시즌'''이라고 할 수 있겠다.

3.1.8. 2015년 시즌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쿠바 정부의 방침상 쿠바리그를 끝내고 와야하고 부상 등을 이유로 개막 후 늦게 합류하는 것이 확실시 된지라 2014년 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요코하마 킬러 호세 로페스를 영입. 팀의 주축 타자 중 하나로 평가받은 구리엘이 빠진 타선으로도 오픈전 2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뽑아내며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런데, 믿고 있던 구리엘이 부상을 핑계로 합류를 미루다 음신불통이 되는 사태까지 발전하자 결국 참다못한 프론트가 폭발, 구리엘을 계약해지 해버렸다.[52] 결국 거인한테 버림받은 로페스[53]와 작년 부진하던 아롬 발디리스 등을 데리고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작년에 보이던 희망의 싹이 드디어 개화한 건지 전 타선이 불을 뿜고, 답이 없던 선발진이 연일 호투를 하기 시작하면서 4월 8일 '''8년만에 3연승으로 3저금'''(...)을 이루어 내며 마찬가지로 포텐셜을 폭발시키고있는 주니치와 공동수위에 등극했다. 2015년 5월 30일 현재 그 요미우리를 앞선 '''1위(!)'''를 기록중... 이지만 현재 2위인 요미우리와 경기차는 1경기 밖에 되지 않아 언제 1위에서 내려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승리를 쌓아가며 페이스를 유지해 나가더니 교류전을 앞두고 무려 승률 5할 + 11승으로 당당히 1위자리를 차지했다. 이에 미디어들도 1998년 이후 17년만의 우승을 언급하기 시작하는 등 설레발의 조짐이 보이고 시작했다.
그러나 세-파 교류전 첫 판인 '''파리그 꼴찌'''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대결에서 루징시리즈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4연속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며 6월 4일자로 선두 자리를 요미우리에게 내주고야 말았다(...). 결국 전년도 퍼시픽리그 꼴지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게 3연전 스윕을 당한 것을 비롯, '''10연패'''를 기록하며 그동안 쌓아왔던 저금이 다 털리고 승률 5할조차 붕괴된 채로 교류전을 마치고 말았다. 교류전 최종 성적은 3승 1무 14패로 역대 최저인 1할 7푼 6리. 상세히 살펴보자면 타격은 중심타자였던 쓰쓰고가 한참동안 이탈한 것 치고는 그럭저럭 쳐 줄만큼 쳐 줬지만, 투수진이 리그전에 비해 매우 부진한 탓이 컸다. 완전히 붕괴수준이 된 것은 아닌데, 타격진이 잘 친 날에는 투수진도 개털려서 지고 반대로 투수전이 벌어진 날에는 질 만큼의 점수만 딱 내 주고 져버리는 투타의 불균형이 심각했다.
그래도 쌓아둔 저금이 워낙 많았고, 다른 세리그 팀들 역시 파리그 상대로 딱히 좋은 성적을 낸 팀은 없어서[54] 2위는 유지했다. 그리고 세리그는 수위와 최하위 사이의 게임차가 고작 4.5게임이라는 혼전 상태가 되었다.
2015년 7월 시작 시점에서 5위까지 굴러떨어졌다. 그나마 맨 밑에 더 빨리 내려가는 팀이 있어 최하위까지는 안 처진 게 다행. 그러나 선두와의 차이는 2게임도 안 된다.
전반전 마지막 카드였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연전에서 자이언츠를 3연벙시켜버리며 단독 수위로 등극했다. 이로써 요미우리는 4년만에 승률5할미만으로 전반전을 종료했고 요코하마는 '''8년만에 승률 5할이상으로 전반전을 종료했다''' 물론 현재 세리그가 수위와 꼴찌가 4게임차밖에 안나는 혼전상태라 금새 뒤집힐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요코하마로썬 방심은 금물. 게다가 하필 후반전 첫카드가 요코하마가 세리그중 유일하게 약한모습을 보여주고있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상대인지라...결국 올스타전 이후에 야쿠르트에 게임을 헌납하면서 후반기 시작은 1위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8월이 되자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면서 신나게 털리고 털려 결국 5할에서 -8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9월 23일부로 6시합을 남기고 CS진출 트레직 넘버가 소멸하여 10년 연속 B클래스가 확정됐다. 안습. 그리고 시즌 내내 바닥을 기었던 주니치에게조차 추월 당해서 '''3년만에 최하위로 복귀하고 말았다.''' 전년도까지 겨우겨우 줄여놨던 승패마진의 적자도 -18로 늘어났고 3년만에 다시 80패를 채웠다. 그동안 전년도 우승팀에서 최하위까지 추락한 팀들은 있었지만 같은 시즌에서 올스타전 끝날 때까지 1위를 하던 팀이 최하위로 추락한 건 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1위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결국 비밀번호는 '''6466666556''' ......
결국 나카하타 키요시 감독이 10월 3일부로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후임은 알렉스 라미레즈, 쿠와타 마스미, 트레이 힐만, 신도 타츠야가 거론되는중. 다만 쿠와타의 경우는 나가하타처럼 요미우리 출신이란 게 변수. 결국 알렉스 라미레즈가 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언젠가 NPB에서 감독을 하고 싶다는 라미레즈의 꿈이 결국 이루어진 것.
여담으로 한 시즌 68폭투를 기록하여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 폭투 타이기록을 세웠다.(...) 팀에 베테랑 포수가 없고 포수 자리를 돌아가며 맡은 구로바네, 미네이, 다카조 등[55]이 전부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생긴 일.

3.1.9. 2016년 시즌 : 18년만에 진출한 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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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출범 5주년 시즌. 과거 역사는 잊지 않으려는지 5주년 엠블럼에 67도 써져 있다.
3월 25일 히로시마와의 개막전에선 신인 시바타 타츠히로의 선제 2타점 적시타, 야마구치 슌 대신 선발로 등판한 이노 쇼이치의 7이닝 무실점의 호투, 미카미 토모야-야마사키 야스아키가 주니치 타선을 틀어막으며 2-1로 승리, 라미레즈 감독에게 첫승을 안겼다. 하지만, 이후 2연패를 기록하며 루징 시리즈로 시즌을 시작했다. 포수 도바시라 야스타카가 '''신인 1호''' 홈런을 기록한 것이 위안거리.
그러나 초반부터 4연패만 두번이나 하는 등 죽을 쑤며 최하위로 쳐져있다. 작년 시즌에는 그나마 시즌 초~중반 1위를 달리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초반부터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아직 시즌 극초반이다보니 아직 뭐라 그다지 말할수도 없는상황.
현재까지의 양상을 보면 타선의 부진이 꽤 심각한 편이다. 팀타율이 '''0.230''', 팀도루 3개로 양대리그 독보적인 꼴찌이다. 츠츠고 요시토모가 분전하는것이 타선 중에선 위안거리... 아주 가끔 타선이 맹폭발해서 크게 이기기도 하지만 거기에 우주의 기운을 다 쓰는 모양... 그나마 츠츠고 요시토모, 야마사키 야스아키, 이노 쇼이치 등 작년시즌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던 선수들이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좋은 점 중에 하나다.
다만 아직은 완전히 희망을 놓을 단계는 아닌 것이, 투수진은 제법 훌륭하게 갖춰놨기 때문이다. 5월 6일 현재 요코하마는 팀 방어율이 12구단 중 2위로 꽤 좋으며, 지금까지 34시합 모두 '''선발투수가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즉, 선발 로테이션은 붕괴는 커녕 아주 잘 돌아가고 있으며, 게다가 미카미 토모야 - 야마사키 야스아키로 이어지는 승리계투조는 12구단 중 최고를 다툴 레벨이다. 특히 1년차 대졸 신인임에도 바로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한 이마나가 쇼타의 예가 그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마나가는 5월 6일 시합에서 마침내 선발승을 따내기 전까지 5번의 등판에서 모두 퀄리티 스타트와 평균자책도합 2.4대를 기록했음에도 평균 0.5점(...)의 득점지원을 받으며 0승 4패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5월 6일 히로시마전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대망의 첫승을 기록하였다.
답이 없던 타선도 카지타니 타카유키의 복귀로 생기가 살아났으며 (복사근 부상으로 잠깐 2군에 내려가 있던) 츠츠고 요시토모도 곧 돌아올 예정이니 타선 부활을 바탕으로 순위를 올릴 희망은 있다. 따라서 앞으로 더 지켜볼 여지는 있다.
정말 희망이 생긴 것인지 5월 들어서 3연속 위닝시리즈 및 한신과 시리즈 타이를 이루었고 5월 17일 요미우리전도 승리를 챙기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다음날도 가지타니의 홈런포로 1:0 승리를 거두며 또 위닝시리즈를 확정지었다! 덕분에 1위와의 승차가 9게임에서 4.5게임차까지 줄었다!! 최근 13경기 9승 1무 3패라는 호성적으로 점점 기대감이 커지고는 있다...
팀이 분위기를 타고 있다는 것은 똑같이 이마나가를 예로 들어보면 확연한데,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 경기도 결정적인 빈타로 막혀서 4연패를 하던 이마나가가 이제는 거꾸로 안 될 것 같은 경기도 적절하게 득점이 터지면서 3연승을 기록중이다. 5월 21일 현재 요쿄하마의 선발투수들은 아직도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간 적이 없으며 (46시합 연속), 5월 17일에는 기예르모 모스코소가 아예 완투를 해버리고 이어서 다음날 5월 18일에는 이시다 켄타가 8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먹는 이닝이 점점 늘어나는 굉장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번 시즌은 요코하마 암흑기의 상징과도 같았던 중간계투의 무한 혹사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상당히 위화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5월 29일 시점에서 6연승을 하면서 리그 3위를 기록중이다. 6월 1일 현재 팀방어율이 3.04로 양대리그 통틀어 '''팀방어율 1위'''이다!
그러나 6월 4일, 치바 롯데전에서 이마나가 쇼타가 3이닝 5실점을 기록한 이후 그의 타석때 대타로 제이미 로맥이 나오면서 올 시즌 처음으로 조기강판 당한 선발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3회말에 바로 츠츠고의 쓰리런과 로페스의 백투백이 터지며 패전이 지워졌다.
5월 31일부터는 우려하던 교류전이 시작되었으나, 결과 7승 11패로 (작년을 생각해보면) 나름 준수한 성적을 냈다. 다만 순항을 이어가던 팀 사정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졌다. 특히 선발투수들의 피로가 슬슬 드러나면서 조기 강판, 대량 실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타선에서는 최근 타격감이 절호조에 달해있던 로페스가 발가락 부상으로 빠진 것이 뼈아프다. 카지타니도 아무런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2할대 초반에 머무르면서 그저 츠츠고 혼자 타선을 이끌며 간간히 로페스의 백업으로 나온 미야자키가 홈런 몇개를 때린 수준. 교류전 마지막 주간에는 홈 6연전에서 6전 전패를 기록했는데 '''그야말로 4월의 요코하마로 그대로 돌아왔다'''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게임차는 여전히 촘촘하지만 6월 21일 현재 5위로 떨어진 상황. 리그 재개 후 얼마나 잘 추스리느냐가 관건이다.
6월 24일부터 다시 세리그가 열리자마자 당일 기준으로 '''평균자책점이 0.88'''이고 시즌 동안 '''총 자책점이 10점'''이였던 교진스가노 도모유키를 '''2.1이닝 9실점'''으로 탈탈 털었다! 그 다음날도 약속의 8회를 연출하고 다시 2위 등극
7월 초까지 2~4위를 주니치 드래곤스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야쿠르트를 스윕시켰으나 혹시나 했더니 다음 3연전 요미우리에게 피스윕... 전반기 마지막 9연전을 기점으로 임시 선발들의 등판이 상당히 잦아졌다. 사실 6월까지 요코하마는 위에 상술되어 있듯이 가장 확고한 선발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7월 9일까지를 기준으로 선발투수로 등판해 본 적이 있는 선수는 단 7명으로 리그에서 가장 적은 수치였다. 그러나 10일 구니요시, 11일 미우라, 그리고 12일에는 신인 구마바라 등 땜빵급 투수들이 차례차례 선발로 등판했다. 문제는 이 투수들이 결국은 초반부터 탈탈 털렸다는 점(미우라는 24년 연속 안타를 기록했으나 6실점) 그나마 모스코소 대신 올라온 용병 페트릭은 2실점 호투와 함께 타선에서도 2안타 2타점으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전반기 마지막 3연전 3위 경쟁 중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맞대결에서 2승 1패를 거두면서(둘째날 로페스의 끝내기 홈런) 40승 44패 3무, 3위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주니치 드래곤스가 후반기들어 DTD를 시전하면서 B클래스 그룹과 적잖은 차이로 3위를 유지하고 있다. 2위 요미우리에 1게임 내외 차이를 유지하며 순위싸움을 지속하는 중. 7월 26~28일 3일간은 순위싸움의 경쟁상대인 주니치를 상대로 2승1패의 위닝시리즈를 거두었다. 그러나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등판한 모든 투수가 실점하며 2:15로 거하게 털렸다. 그러고서는 7월 29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는 최근 불붙은 타격감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19 : 3이라는 거한 점수차로 히로시마를 영혼까지 털었다. 19득점은 무려 17년만이다. 후반기 들어 홈런 페이스가 무시무시한 츠츠고 요시토모의 연타석 홈런 대활약이 컸다. 현재 세리그 압도적 톱인 히로시마를 상대로 스윕을 가져갈 수도 있었으나 마지막 날 4-2 리드 상황에서 폭풍 난타+에러로 역전패했다. 어쨌든 히로시마를 상대로 위닝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 듯 하다.
8월 초에 4~5위 그룹인 한신과 주니치, 그리고 2위싸움 중인 교진과의 카드가 예정되어 있기에 상당히 중요한 열흘이 될 듯 하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A클래스를 굳히면서 다시 2위까지 올라설 수도 있고 아니면 DTD의 서막이 열릴 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중요한 일정이라고 강조를 했는데 한신에게 루징으로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시나리오로... 마무리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3경기 모두 최악의 피칭을 선보였다는 점. 1일차에는 8회말에 고토 G. 타케토시가 극적인 동점 홈런을 쏘아 올렸건만 9회에 폭풍 4실점을 범하며 패전투수가 되었고, 2일차에는 세이브를 기록하긴 했으나 피홈런을 허용하며 1점차 어렵게 세이브를 올렸다. 3일차에는 9회초 2점차 리드에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점을 허용하여 블론세이브. 게다가 10회초에 마운드에 올라온 마이크 자거스키 또한 2실점 하며 5:7 패배. 이로써 한신과 게임차가 고작 4게임차가 되었다.
주니치와의 시리즈는 DeNA 여름 대행사 STAR☆NIGHT DAY로 펼쳐진다. 축 쳐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꼭 위닝을 가져가야 하는데... 첫번째 대결에서 9회초 2-1 리드 상황에서 야마사키가 또 다시 털리면서 3실점으로 블론세이브와 패전을 기록하였다. 츠츠고가 34호 홈런을 쏘아올린 것이 그나마 정신승리감... 다행히 남은 2경기는 승리하며 위닝시리즈를 가져갔다. 2경기 모두 세이브 요건이였지만 야마사키는 등판하지 않았다. 다나카 겐지로-미카미 토모야 체제로 9회를 틀어막았다. 이마나가도 교류전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승리를 챙겼다.
도쿄돔에서 교진과의 시리즈는 루징으로 마무리했다. 원래 도쿄돔에서 드럽게 못하긴 했지만 이번 시리즈 역시나 드럽게 못했다. 이틀 연속 4안타-2득점이라는 물 잔뜩 먹은 타격으로 깔끔히 2연패.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카지타니의 홈런 포함 4안타 행진과 츠츠고의 35호 홈런이 나왔고, 오랜만에 야마사키가 마무리로 등판하여 세이브 1피안타 무실점의 세이브를 챙겼다. 이로서 2위 교진과 4.5게임차, 4위 한신과 5게임차로 진짜 미칠듯이 잘한다거나 미칠듯이 못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3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8월 중순 진짜 미칠듯이 못하고 있다. 8월 셋째 주에 펼쳐진 4경기를 합한 점수가 고작 '''3점'''. 게다가 주말에는 완전히 맛이 간 주니치 상대로도 루징을 기록하며 4위 한신 타이거스에 3.5게임차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주중 한신과의 3연전을 깔끔히 3연패하면서 한신에 0.5게임차로 쫓기게 되었다! 타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8월 26~28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무려 스윕을 거두게 되어 재도약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타선 또한 3경기 동안 도합 38안타 24득점을 내면서 되살아났다. 이 주에 한신은 야쿠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스윕패를 당하는 바람에 5위로 밀려나게 되었으나, 4위 야쿠르트와의 경기차가 2.5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9월 2~4일 한신 원정에서 2승 1패를 기록하여 4위 야쿠르트와의 승차를 2게임차로 유지하였는데, 하필이면 6~8일 홈에서 야쿠르트와 대결을 가지게 되었는데, 6, 7일 경기를 모두 승리함으로서 위닝시리즈를 예약한 상태이며 9월 7일기준 4게임차로 승차를 벌림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가져가며 클린치넘버 10으로 가을야구에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7일 경기에서는 포텐이 만개한 츠츠고 요시토모가 홈런왕 경쟁을 하는 야마다 테츠토가 보는 앞에서 39호 홈런을 날리면서 생에 첫 홈런왕 타이틀에 한발짝 더 다가감과 동시에 무라타 슈이치(현 요미우리)가 45홈런을 친 이후로 8년만에 40홈런을 치는 구단 내 일본인 타자 겸 구단 최초로 40홈런 고지를 밟는 일본인 좌타자에 바짝 다가서게 되었다. 물론 25년만의 우승에 근접한 히로시마의 선수들도 있지만 개인 기록이 출중해서 만약 팀이 98년 일본시리즈 이후 18년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56]한다면 히로시마의 스즈키 세이야, 아라이 다카히로 및 크리스 존슨 등과 더불어 강력한 MVP 후보로 손색없는 활약을 보이고 있는 중.
9월 10일 주니치와의 대결에서 야마구치 슌이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마무리 자리로 돌아와 무실점으로 막으며 클린치넘버를 8로 줄였다. 여담으로 이 날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도쿄돔에서 25년만의 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베이스타즈는 '''센트럴 리그에서 우승을 해본 지 가장 오래된 팀'''이 되었다.[57] [58]
9월 13,14일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마지막 한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야쿠르트와의 맞대결이다. 9월 13일까지 야쿠르트와의 게임차는 3.5게임. 3위 요코하마와 이미 6.5경기 이상이 벌어져 있는 한신과 주니치가 남은 시즌 거의 전승에 가까운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 한 이 맞대결에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막차의 향배가 갈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게 벌어진 9월 13일 경기에서 쓰쓰고의 대망의 40홈런을 포함해 DeNA가 홈런 4방을 몰아치면서 11대3으로 대승을 거두며 야쿠르트와의 게임차를 4.5게임으로 벌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두 발짝 더 다가섰다. 쓰쓰고는 구단 사상 일본인 좌타자 최초의 40홈런의 쾌거를 달성했다. 9월 14일 경기는 패했으나 15~17일 열리는 한신과의 3연전에서 첫 두경기를 1승 1패로 나눠 가지는 동안 야쿠르트가 1패를 추가하면서 시즌 종료까지 7경기를 남겨두고 클린치넘버를 4로 줄였다. 남은 경기를 거의 전패를 하면서 야쿠르트가 거의 전승을 하지 않는 이상 창단 이후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아주 유리해진 상황이 됐다!
9월 18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연장 11회 혈투끝에 호세 로페스의 끝내기 쓰리런 홈런으로 승리를 거두고 4위 야쿠르트가 최하위 주니치에게 1대8로 지면서 마침내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클린치 넘버가 1까지 줄어들었다! 1경기라도 이기면 자력 진출이고, 남은 경기를 모두 지더라도 야쿠르트가 1경기라도 패하면 진출이 확정된다. 그리고 9월 19일 경기에서 센트럴리그 우승팀 히로시마를 3대1로 물리치고 '''대망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무대를 밟게 되었다.''' 팀 사상 최초이자 이로써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출범한지 10년만에 NPB 소속 전 12개 팀이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경험하게 되었다. [59]
2016년 9월 20일 팀의 레전드인 미우라 다이스케가 은퇴를 선언하였다.
9월 24일 요미우리와의 경기를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하며 극적으로 승률 5할을 달성하였다! 만약 남은 경기를 전승하고 요미우리가 DTD를 시전해 준다면 극적으로 2위도 가능한 상황. 그러나 도쿄 야쿠르트한테 발목이 잡히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모든 경기를 원정경기로 치르게 되었다.
10월 8일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 5-3으로 승리를 거두며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특히 시즌 말부터 선보인 비장의 타선인 2번 카지타니-3번 로페스-4번 츠츠고가 전부 홈런을 터뜨리며 신바람 승리를 이끌었다. 마무리 야마사키는 2피안타 (1피홈런) 1실점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긴 했지만...
10월 9일 2차전에서는 8회에 혈을 뚫는 초노 히사요시의 역전 적시타로 패했으나, 3차전에는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미네이 히로키의 결승타로 4-3 승리.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해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개장 후 첫 가을야구 원정팀이 되었다.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첫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첫 히로시마 포스트시즌 홈경기 상대 등 기록이라는 기록은 다 쓰고 있다. 그리고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1승을 거두게 되면 하더라도 구단 사상 처음으로 1년에 150경기 소화 기록도 올릴 수 있다.
다만 파이널 스테이지 이후의 DeNA는 완벽히 시즌 초 노답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 물론 상대가 무려 19.5게임차나 나는 우승팀 히로시마이긴 하지만, 시즌 히로시마 상대로 12승 13패의 호적세에 로페스, 츠츠고, 시라사키 등이 히로시마의 강한 면모를 보여줬기에 나름 타격전이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현실은 '''2경기 0점'''(...) 사실 히로시마도 불꽃 타선에 비해 5득점, 3득점으로 부진한 편인데 DeNA는 출루가 귀할 지경이다. 3차전엔 22이닝만에 득점을 올리는 엘리안 에레라의 투런 홈런이 터져 나왔고 이시카와와 가지타니의 호수비, 선발 이노와 마무리 야마사키의 무실점 호투에 힘입어 드디어 구단 첫 파이널 스테이지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4차전에서 21안타를 주고받는 무지막지한 타격전 끝에 8-7로 패하며 가을야구는 끝났다. 딱 150경기 하고 끝난 셈. 그리고 일본시리즈에 간 지 가장 오래 된 센트럴 리그 구단으로 남았다.[60] 오프시즌이 되면서 팀의 선발로테이션을 지켰던 투수 야마구치 슌이 FA를 행사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선발진에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현재는...

3.1.10. 2017년 시즌 : 19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 하지만...


개막 3연전을 야쿠르트와의 루징시리즈로 시작하더니 이어진 요미우리와의 3연전도 루징. 2승 4패로 개막 5연패 중인 최하위 주니치 드래곤즈를 맞았으나 주니치에게도 역전패. 시즌 출발이 아주 좋지 못하다. 분위기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작년의 분전도 허사가 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위험도 있다.
선발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이노, 이시다, 이마나가가 버티고 있고, 기대보다는 혹평 속에 입단했던 신인 좌완 하마구치가 상당한 호투를 펼치며 선발 자리를 꿰차며 나름 좌완 왕국이 되었다. 클라인과 윌랜드도 돈값어치는 못하는 듯 하지만 그동안 요코하마의 외국인 꼬라지를 생각한다면 뭐... 다만 문제는 불펜진. 지난 시즌 불펜의 핵심 멤버였던 스다 코타, 다나카 켄지로, 미카미 토모야가 모두 난타를 당하며 방어율이 하늘 높이 치솟은 가운데, 육성 출신 영건 좌완 스나다 요시키와 용병 패튼, 마무리 야마사키만 간간히 버티는 수준이다. 타자에서는 작년 이맘 때 부상으로 쉬던 카지타니가 맹활약 중이지만 개막 9경기까지도 츠츠고가 홈런을 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다만 호세 로페즈가 출루율-타율 차이가 3푼이 안되는 말아먹은 선구안에도 3할이 넘는 타율에 홈런을 양산하면서 라미레스 감독의 현역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으며, 노망주 미야자키 토시로가 수위타자에 근접한 타율과 적절한 갭파워를 보여주며 주전 3루수로 자리잡았다.
말하기가 무섭게 4월 13일 경기에서 이마나가가 5이닝 8실점으로 탈탈 털렸으며, 14일 경기에서는 마무리 야마사키가 털리며 작년 필승조 4인이 모두 털렸다! 이로써 또 한신전 루징 확정. 작년에 압도적 우승팀인 히로시마와도 백중세였고 그 외 팀들에게 모두 우위를 가져오고도 한신한테만 유독 털리는 바람에 3위에 그쳤는데 올해도 한신 상대로 쉽지는 않아 보인다. 결국 야마사키를 셋업으로 내리고 팻튼을 마무리로 내세우게 되었고 야쿠르트를 상대로 효과를 보는 듯 했으나 히로시마를 만나 결국 팻튼마저도 털렸다(...) 그러나 19일 각성한 이마나가 쇼타가 단 1안타만 허용하며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둔 데 이어 20일에는 3점차의 리드에서 다시 동점을 허용하며 이틀 전 악몽이 떠오르는 듯 했으나 연장에서 카지타니의 결승 적시타와 더불어 5-3 승리. 이로서 무려 히로시마를 상대로 위닝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는 5할에 도달했다가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4위권에 머물러 있다. 로페스와 카지타니는 빛나고 있으나 그 외 타자들은 힘을 못쓰는 경우가 많으며 불펜진도 돌아가면서 계속 무너지고 있는 점이 아쉽다. 결국 돌고돌아 야마사키가 다시 마무리로 돌아왔다. 그나마의 선발진도 이시다가 부상으로 이탈했으며 필 클라인이 부진하면서 타이라[61], 미즈노 등 땜빵이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 결과 어찌어찌 4위권을 달리고 있지만 현재 세리그 6개구단 중 득점 6위, 실점(최소) 6위를 기록하고 있다. 끝내 5위로 추락했다가 다시 4위로 복귀한채로 교류전을 맞이했다. 그리고 교류전 초반 요미우리의 부진을 딛고 승률 5할은 안 되지만 3위로 부상했다. (전년도에도 3위는 했지만 승률 5할은 안 됐다.) 교류전 시작인 닛폰햄과의 카드는 역시나 루징인 1승 2패로 시작했으나 한신을 제외한 모든 팀이 루징이나 스윕을 당했으므로 본전은 뽑았다. 소프트뱅크 3연전 역시 1승 2패로 루징으로 마무리했으나 자이언츠가 오릭스에게 시원하게 스윕당하면서 경기수 차이는 더 벌어졌다. 파리그 선두인 라쿠텐과의 3연전은 2승 1패로 이번 시즌 교류전 첫 위닝시리즈를 기록했다. 그리고 교류전 최종성적 9승 9패로 반타작을 거두며 예년에 비하면 나름대로 잘 버텼다.
그리고 6월 30일 요미우리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승률 5할에 복귀함과 동시에 교류전 막바지 무렵부터 시작된 2위 한신의 연패 행진에 편승하여 한신과의 승차를 2.0게임으로 줄이며 이제는 2위 자리도 넘보고 있다. 특히 6월 마지막 경기였던 30일 요미우리전에서는 상대팀의 에이스인 스가노 도모유키에게 고작 2안타만 뽑고도 3대1로 승리를 거두며 행운도 따라주고 있다. 7월 1일 도쿄돔 요미우리전에서 8회말 2-1 리드 상황에서 무라타 슈이치에게 역전 3타점을 맞고 패색이 짙었으나 그 후 공격에서 1번타자 쿠와하라가 '''9회초 투아웃 초구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드디어 그렇게 고대하던 승률 5할의 벽을 넘어섰다. 이어진 7월 2일 경기에서 지난 오프시즌에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한 상대팀 선발인 야마구치 슌을 상대로 4이닝 동안 9안타를 몰아치며 분노의 6득점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등 폭풍 19안타를 뽑아내며 요미우리의 마운드를 유린, 9대1로 압승을 거두면서 요미우리와의 3연전을 싹쓸이했다. 요코하마 팬들 입장에서는 배신자에게 철퇴를 가한 속이 시원해지는 경기였을 듯.
그리고 나서 7월 5일부터 2위 한신과의 3연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5일 경기는 비로 연기되었으나 6일 경기에서 4대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한신과의 승차를 1게임으로 줄였다. 7일 경기까지 승리하면 공동이기는 하지만 2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찬스를 맞았다. 그러나 이 중요한 때 5-10으로 박살나면서 역전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이어진 나고야 돔 원정 3연전에서 최근 홈에서 극강모드를 발동 중인 주니치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거두면서 요미우리에게 루징시리즈를 기록한 한신과의 승차를 다시 1게임으로 줄였다. 다만 올스타전을 앞둔 마지막 시리즈가 리그 선두를 달리는 히로시마와의 원정경기라 전반기 내에 한신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듯. 일단 게임차가 더 벌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정거리에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7월 11일에 히로시마에게 5:2로 승리했지만 하필 같은날 한신이 주니치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반기 3위가 확정이 되었다. 그래도 전반기 피날레에 B클래스 팀들과 거리를 상당히 벌려놓음으로써 후반기를 편히 맞이하게 된것은 긍정적이고 2년연속 클라이맥스 진출 가능성이 생긴것은 좋으나 19년 만에 홈에서 포스트시즌을 맞이할려면 적어도 2위는 해야 할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후반기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할것이다.
후반기 시작이 매우 좋다. 첫시리즈 였던 야쿠르트와의 홈3연전을 쓸어담으며 2위 한신과의 차이를 0.5게임차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이후 한신이 알아서 내려와주며 단독 2위까지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이후 부침을 겪으며 다시 한신에게 2위 자리를 내주고 2.5게임차 3위에 머무르는 데 그친다. 이러한 와중에 4위에서 역전을 노리는 요미우리에게 연패를 거듭하고 있는 점, 특히 3시즌간 필승조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해줬던 미카미 토모야 지속적으로 털리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뼈아프다.
그리고 최근에 요미우리에게 싹쓸이 당해 2게임차까지 쫓겼으나 후에 벌어진 히로시마와의 3연전에서 삼연끝을 달성해 잃어버린 3승을 쓸어 담으므로써 요미우리와 경기차를 벌렸다. 비록 3위에 머무르긴 하나 히로시마에게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해 히로시마와 만난다면 순위적인 핸디캡을 안고 있어도 꽤 선전할거라 예상해본다.
다만 9월달에 들어와서 DTD의 기운이 더 강해지는 가운데 4위 요미우리가 바싹 추격해오고 있는 형국이다. 올스타전 이후 요미우리와의 맞대결에서 2승1무8패의 성적을을 거둔 것이 치명적이다.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1.5게임차의 리드를 유지하는 중인데 9월 셋째주 주중 히로시마 3연전 주말 요미우리 2연전이 고비가 될 듯. 게다가 언제나 그렇듯이 요미우리가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면 여기에 편승한 미디어들의 편파성 보도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분위기도 불리하게 돌아가고 팀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포스트시즌 마지막 진출권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면 더더욱.
결국 9월 8~10일 한신과의 3연전에서 3연패를 당하면서 4위 요미우리와는 승차 없이 승률에서만 앞서는 3위자리를 간신히 유지했다. 이제 진짜로 똥줄이 타는 상황까지 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다음주의 일정은 히로시마와의 3연전 뒤에 하루 쉬고 요미우리와의 2연전이다. 여기서 잘못하면 단숨에 DTD를 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리고 기어이 9월 13일 경기에서 히로시마에게 패배함으로써 같은 날 한신에게 승리를 거둔 '''요미우리에게 3위 자리를 내주고 4위로 내려 앉았다'''.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의 팀 운영에 대한 비판과 불만도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팀 전체가 시즌 막판 고비에서 이렇게 똥줄타는 경험을 한 적이 적어서 팀의 주축인 젊은 선수들이 일제히 부진한 모습을 가운데 이러한 난국을 앞장서서 타개할 노하우와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의 부재가 뼈아프다. 14일 경기는 히로시마가 매직넘버 2인 상태에서 맞이하는 경기라 경기 결과에 따라 이날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는데다 히로시마는 다음 날 경기가 없기 때문에 총력전을 할 가능성이 높아 더더욱 어려운 경기가 예상된다. 결국 14일 경기도 4대5로 패하면서 루징시리즈. 같은 날 한신과의 경기를 무승부로 끝낸 요미우리와의 승차는 1게임으로 벌어졌다. 주말에 벌어지는 요미우리와의 맞대결 2연전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맞이한 9월 16일 요미우리와의 맞대결에서 1대0으로 신승을 거두고 공동3위로 복귀했다. 마지막 한 자리 남은 포스트시즌 행 티켓의 향배가 점입가경이다. 그러나 9월 17일 경기에서 요미우리에게 1대6으로 완패하면서 다시 4위로 후퇴. 이제 맞대결도 없고 요미우리보다 한 경기를 더 치른 상태라 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남은 경기도 7승 13패로 호구노릇을 한 한신과 무려 5게임이나 남겨놓고 있다. 경기 편성도 9월 24일부터 고시엔과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오가는 5연전으로 편성되어 있어 현재 팀분위기 상으로는 한신에게 5전 전승을 거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3승2패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듯. 한신의 다음은 우승팀인 히로시마이다. 남은 경기 중 7경기를 1, 2위팀과 맞붙는 일정이라 남은 스케줄의 절반이 5, 6위팀인 주니치, 야쿠르트와의 대결인 요미우리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더욱 불리하다.
9월 18일 경기는 야쿠르트를 상대로 4대2로 승리하면서 이날 경기를 패한 요미우리와 다시 동률 3위를 기록했다. 19일에는 경기가 없고 요미우리와 주니치의 경기만 있어 그 경기 결과에 따라 다시 단독 3위가 될 수도, 4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 경기에서 요미우리가 주니치를 상대로 2대10으로 완패하면서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단독 3위로 올라갔다. 그 후 요미우리가 한신에게 2대0으로 승리한 후에 히로시마에게 0대5로 패하면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승차가 0게임으로 줄었다가 다시 0.5게임으로 벌어졌고 오랜만에 경기에 나선 9월 23일 주니치를 흠씬 두들겨 패며 13대 5로 대승을 거둔 사이 요미우리가 히로시마에게 2대 3으로 패하면서 게임차가 다시 1.5게임차로 벌어졌다. 다만 24일부터 최대의 고비가 될 한신과의 5연전이라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신이 2017년 DeNA상대로는 전적이 매우 좋고 반면 요미우리 상대로는 약하기 때문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요코하마를 만나고 싶어할 수도 있지만, 정작 한신도 아직 2위가 확정되지는 않은 상황이라 전력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
3위 사수의 고비가 될 한신과의 5연전 적지에서 벌어진 첫 두 경기에서 2대0, 7대0으로 연속 영봉승을 거두며 3위자리를 지켰다. 이제 하루 쉬고 무대를 홈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으로 옮겨서 한신과의 나머지 3경기를 치른다. 그리고 나서 바로 홈에서 우승팀 히로시마와 2연전으로 되어 있다. 그 고비만 넘기면 시즌 마지막 두 경기는 5위가 확정된 주니치전이다. 이 잔여경기에서 4승 이상 거두면 자이언츠가 모두 이겨도 요코하마를 앞설 수 없으므로 2년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자력으로 확정한다.
그러나 9월 27일 한신과의 홈 3연전 첫경기에서 1, 2회에 2점씩을 뽑으며 4대0으로 앞서 나갔으나 6회에 3점을 내주고 9회초에 마무리 야마사키 야스아키의 퐈이야로 동점을 내주며 연장전에 돌입했다. 결국 경기는 4대4 무승부로 끝났으며 마일스 마이콜라스를 4일 휴식 후 등판시키는 강수를 둔 요미우리가 주니치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승차는 다시 0.5게임으로 줄어들어 다시 클라이맥스 시리즈 티켓의 향방이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다만 요코하마가 무승부가 더 많은 관계로 요미우리와의 승차가 0게임이 돼도 요코하마가 승률에서 앞서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게임 차이나 마찬가지. 다만 한신을 추격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무승부로 상황이 희망대로 돌아가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완벽히 무너지며 승차 없는 3위가 되었다. 한신도 6강에 승선하며 남은 티켓은 단 한장. 다행히도 3연전 마지막은 승리하며 0.5경기차로 다시 도망. CS 희망을 이어갔다.
9월 30일 경기에서 요미우리와 나란히 패함으로써 0.5게임의 승차는 유지했다. 남은 3경기 중 2승 이상을 하면 진출 확정. 혹시나 요미우리가 남은 2경기를 모두 패하면 남은 결과에 관계없이 니시노미야행 티켓을 끊는다. 다음 경기 요코하마 DeNA 승-자이언츠 패이면 더 갈 것도 없이 바로 한신전 준비. 다행히 DeNA 승, 교진 패가 성립하면서 10월 1일 당당히 자력으로 CS 진출을 확정지었다. 선발투수 위랜드가 무려 7실점 (6자책)점을 하고도 홈런 포함 3안타 4타점을 내며 교체 상황인데도 대타 없이 타석을 그대로 위랜드에게 맡기는 장면이 압권. 로페스의 타점왕 타이틀과 미야자키의 타율 타이틀 또한 거의 확실히 되는 경기가 되었다. 위랜드가 이 경기에서 단일시즌 10승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두자리수 승리를 기록한 최초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팀의 2년연속 A 클래스는 위에서 얘기했던 팀 최고 전성기였던 5년연속 A클래스 시절 (1997~2001)이후 무려 16년만이고 통산으로 해도 1969~1971년 시즌과 더불어 통산 3번째이다. 현 감독 알렉스 라미레스는 이 답없던 팀에서 2년 연속 A클래스를 경험한 사상 3번째 감독이 되었다. 아울러 시즌 5할승률도 확보했는데 요코하마의 '''시즌 5할승률 이상은 2001년 이후 무려 16년만'''이다.[62] 참고로 18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지난 시즌도 승률은 4할대였다.
2017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스테이지에서 1패 후 2연승으로 2위 한신을 제압하면서 2년 연속 업셋을 달성함과 동시에 2스테이지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격돌, 1패 뒤 4연승으로 제압하고 시리즈 스코어 4-2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한다. 3위 자리에서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우승한 건 2010년 치바 롯데 마린즈 이후 2번째며, 센트럴 리그에서는 최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마지막까지 야스아키 점프를 보겠다는 의지로 끝까지 싸웠지만 전력의 차이를 결국 넘지 못하고 시리즈 스코어 2-4로 패배, 위대한 도전은 일본시리즈 패배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압도적이라고 평가되던 전력차를 결국 넘지는 못했지만, 19년만에 진출한 2017년 일본시리즈에서 대등한 승부를 보인 점[63]과 팀의 주축 선수들이 매우 젊다는 점을 들어 전문가들이 내년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평가를 남기며 2017년을 마무리하였다. 17년 시즌 시작할때는 바닥을 깔지는 않겠지만 잘해도 중위권으로 예상한다던 평가를 크게 뒤집은 것이다.

3.1.11. 2018년 시즌 : 2년간의 달콤한 꿈은 끝났다


시즌 후 굉장히 빠르게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하고 있다. 시즌이 끝나고 1주일 사이에 3명의 선수가 방출 통고를 받았고 2명의 새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 지난 시즌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로페스, 윌랜드, 패튼, 에스코바와 재계약에 성공했으며, FA로 한신의 전천후 유틸리티 야마토를 영입했다. 중견수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적이 있지만 본업은 센터 내야수인 선수로, 주전이 정해지지 않았던 2루수 자리, 전경기 출장했지만 수비불안을 노출하며 팬들의 극딜을 당한 구라모토의 유격수 자리 어디든지 메꿀 수 있어 올 시즌 내야진의 운용이 주목된다. 보상선수로는 우완 투수 유망주 오나카 유야를 보냈다.
2월 28일 한국의 SK 와이번스와의 연습경기에서 SK 와이번스 투수진들에게 꽁꽁 묶이며 타자들이 압살당했고, 결국 1-1로 맞서던 9회초에 최승준에게 역전 적시타를 얻어맞고 2-1로 패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기세가 있고 야쿠르트, 주니치 최소한 두 팀이 확실하게 바닥을 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못해도 지난 두시즌 정도의 성적은 올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대부분이었고 희망적인 관측을 하는 쪽에서는 2위나 20년만의 '''우승'''을 예측하는 전문가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개막 전부터 선발진 운용에 비상이 걸리고 말았는데, 고정 선발을 맡아줄 이마나가, 하마구치, 윌랜드가 모두 어깨 통증이나 위화감을 호소하며 휴식과 재활에 들어간 상태라 그나마 고정 선발 멤버이지만 작년 말미에 실망스러운 피칭을 보여주었던 이시다가 돌고 돌아 개막전 선발이 되었고 보험용 용병으로 데려왔던 바리오스와 고졸 2년차 교야마가 선발 공백을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개막 첫 경기부터 수비 하나만 믿고 FA로 데려왔던 야마토의 '''수비 실책'''을 시작으로 지난 시즌 96패의 야쿠르트에게 거하게 털리며 시작했다. 2ch에서는 "타격 안되는 구라모토"라면서 벌써부터 까기 시작.
예상과 달리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는데, 걱정했던 선발진은 대체 자원인 교야마, 이이즈카, 아즈마가 모두 호투를 보인 반면, 타자들이 심각한 물빠따로 점수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월 4일 경기에서 팀타율이 1할대로 추락했다가 4월 8일 2할대로 다시 올라가며[64], 주전 대부분이 2할을 밑도는 수준이며 카지타니의 부상 대체로 들어온 신인 가미자토가 혼자서 리드오프로 팀을 먹여 살리는 수준. 시즌 초반의 행보는 지난해와 비슷하게 하위권으로 쳐진 상태에서 시작했다. 다만 지난 시즌처럼 극적인 반등이 가능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듯
히로시마와의 3연전을 위닝으로 가져간 데 이어 교진전 싹슬이 포함 4월 8일 13년만의 7연승을 달리며 타격 스탯 세탁과 함께 팀도 단독 수위로 올라섰다(!) 아직 극초반이긴 하지만 5월 중순 경부터 본격적인 발동을 걸었던 지난 2년과 다르게 흐름을 빨리 잡은 것은 긍정적인 면 4월 10일에 야마사키 야스아키의 100 세이브 달성은 덤. 4월 15일 경기도 신인 교야마가 구단 사상 최초로 데뷔 첫 3경기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되는 활약으로 17년만의 8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결국 연승은 4월 17일에 패배하며 8에서 끊겼는데, 언젠가 끊기는 법이니 패배 자체에는 개의치 않지만, 하필 지지난해 FA로 교진에 이적한 야마구치 에게 완투패로 당한 것이 대해 팬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 중(...) 2일 뒤 경기에서 이겨서 연패만큼은 안 줬지만.
그렇게 수위를 달리다가 4월 24~26일에 벌어진 히로시마와의 맞대결에서 싹쓸이 3연패를 당하면서 4연패로 2위로 내려앉았다. 그 사이에 8연승으로 기세를 올린 요미우리에게 덜미를 잡혀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내려앉았다.
4월30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 패함으로써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NPB 복귀 후 첫번째 승리의 제물이 되는 안습함을 겪었다. 시리즈 자체는 위닝 시리즈였지만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위닝시리즈를 거뒀는데도 이긴 것 같지가 않다는 의견이 꽤 많다. 그 이후 흐름은 도로아미타불(...) 타격은 개막전 부진때보다 더 답이 없는 평균 1.6득점의 공격력으로 패배를 쌓으면서 결국 한신, 요미우리에 뒤진 4위로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특히 2할 2푼대까지 떨어진 츠츠고와 부상 복귀 후 최악의 부진으로 다시 팜으로 강등된 이마나가의 부진이 치명적이다.
다만 이후 한신이 팀 타선의 2할 2푼대에 머무르는 극악의 타격 부진을 보이면서 5위로까지 추락한 덕분에 다시 3위로 올라오는데 성공했다.
교류전 시작이 좋다. 라쿠텐과의 3연전 중 우천취소된 1경기를 뺀 2경기를 모두 이기며 2전 전승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상대인 교류전 패왕 소프트뱅크에게 3연전 스윕패를 당하였다. 전년도 일본시리즈에서 호투를 보여준 좌완 듀오 이마나가 쇼타하마구치 하루히로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접전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세 경기를 다 내주고 말았다. DeNA의 3연패로 센트럴리그는 '''또''' 수위 히로시마를 제외한 모든 팀이 승률 4할대로 추락한건 덤. . 라쿠텐전에 이어 세이부전까지 우천 취소가 되었고 주말에도 비 예보가 있기 때문에 일정이 꼬일 것으로 보인다. 만약 추가로 취소 된다면 남들 교류전 끝난 이후 며칠간의 휴식을 취할 때 게임을 뛰어야 하는 것은 물론 여차하면 시즌 말에 편성될 가능성도 있다.
2년 만의 5연패로 위기가 왔으나 야쿠르트를 제외한 세리그 팀들이 여전히 동반 뻘짓 중이며, 주말 닛폰햄 3연전은 걱정되었던 우천이 3연전 마지막 날 5회말 강우콜드승으로 이득이 되어주는 등 무려 11년 만의 닛폰햄전 우위와 더불어 첫 싹쓸이승을 3연승으로 반등했다. 그러나 이후엔 최근 2년 동안 교류전에서 도합 10승 2패를 거두어 교류전 성적 회복에 쏠쏠한 도움을 주었던 거두었던 롯데와 오릭스를 상대로 루징을 당하며 최종적으로는 8승 10패로 마무리. 물론 전통적인 교류전 호구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잘한 결과이지만, 작년 시즌 거두었던 5할 승률에 도달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여담으로 19일 라쿠텐전 패배로 12개구단 최초로 '''교류전 200패''' 째를 달성하셨단다(...) 사실 교류전 기간동안 주전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저 성적을 찍은거라 완전히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 교류전 개막시리즈인 라쿠텐전에서 호세 로페즈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진것을 시작으로 카지타니, 소토 등의 주축선수들이 나란히 부상으로 빠졌다. 급기야 지바 롯데전에선 주포 츠츠고마저 등 통증을 호소하며 빠졌다. 그래서 오릭스전에서는 2군급 스쿼드로 싸울 수 밖에 없었다.
6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는 98년도 우승의 기운을 받고자 당시의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6연전인데, 깔끔하게 한신에게 3연패를 당해버렸다. 팬들은 98년으로 돌아가랬더니 2002년으로 돌아가버렸다고 성토. 그러나 29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선 8회 카미자토의 동점 3점 홈런과 9회 사노의 끝내기 2루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어째 3년째 한신에게 호구 잡히고 1위 히로시마는 잘 잡는 모양새.
7월 9일. 포수자리를 맡던 미네이 히로키와 토바시라 야스타카의 극심한 타격침체와 수비 불안에 지친 구단은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2:2 트레이드로 포수 유망주 타카죠 슈토, 강정호 빠돌이로 알려진 3루수 시라사키 히로유키를 내주고 2014년 퍼시픽리그 골든글러브+베스트나인 수상의 실적을 가진 포수 이토 히카루와 노망주 투수 아카마 켄을 데려왔다. 이토는 2014년 커리어 하이 이후 수비에서 다소 기복 있는 모습을 보이며 신예 와카츠키 켄야에게 주전 자리를 뺏겼지만 그래도 일본프로야구의 물빠따 포수들 사이에서는 비벼볼만한 타격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지지부진한 주전 포수 육성 기조를 다소 뒤집고 베테랑 포수를 추가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영입.
7월 26일 현재 5위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다시 BayBall의 재림이 우려되고 있다.
8월에 들어 다시 순위는 오르고 있으나 DeNA, 사이게임즈의 투자 논란의 여파가 여전하기에 팬들의 불만은 여전한 편. 그리고 오를것만 같았던 순위는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다. 7월 31일부터 시작된 홈에서의 요미우리 3연전을 시원하게 스윕으로 말아먹으며 8월을 시작하더니 이어진 히로시마 3연전도 루징시리즈로 마감했다. 8월 3일 경기의 경우 9회까지 6-3이었는데 9회 초만 막으면 무난하게 이길 경기를 야마사키 야스야키가 3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연장전에 접어들었고 11회 쿠라모토의 끝내기 안타로 겨우 이기는 등 이겨도 이긴게 아닌 경기를 했다. 8월 11일 까지 최근 10경기 성적이 2승 8패로 BaysBall을 시작한거나 마찬가지인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경기의 양상을 보면 선발 투수가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버텨준 경기도 타선이 적시에 터져주지 않아 추가점을 내지 못해 지기도 했고 불펜이 난조를 보이며 쉽게 이길 경기도 힘겹게 이기는 경우도 있었다.
타선은 득점권 침묵이 심각하다. 로페즈-츠츠고는 대부분의 찬스를 거하게 말아먹으며 득점권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그나마 꾸준한 타격감을 보여주는 미야자키 토시로조차도 정작 쳐줘야 할 때 못 치는 경우가 많다. 8월 10일 경기만 봐도 2사 만루 찬스에선 2루 땅볼로 물러나더니 8회 주자 없는 상황에선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세리그에서 나름 강력한 상위타선을 갖추고도 팀 득점은 처참한 수준인데 현재까지도 300점대 득점에 쳐져있는 팀이 바로 한신과 요코하마다. 더 웃긴건 팀 홈런이 2위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 결론적으로 그 많은 홈런의 대부분이 다득점으로 연결되는 홈런보다 승패에 영향력이 크지 않은 홈런이 대부분이었다는 거다. 여름에만 야구하는 계절한정 타자 쿠와하라의 거품도 슬슬 꺼져가고 있고 여전히 적임자를 찾지 못한 2루도 팀 득점에 마이너스 요소가 되고 있다. 유격수로 쓰기엔 불안한 쿠라모토를 그나마 부담이 덜한 포지션인 2루로 전향해서까지 기용했지만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며 완전히 폐급타자로 전락했고 싹수가 보이던 시바타도 1할과 2할을 넘나드는 저조한 타율로 한숨만 짓게 하고 있다. 대주자용도로만 기용하려던 미야모토가 뜬금포 2방으로 잠시 2루자리를 꿰차기도 했지만 얼마 못 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교류전 전후로는 야마시타가 잠깐 올라와서 반짝하다가 진짜 반짝만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렇다보니 돌고돌아 베테랑인 이시카와 타케히로까지 나오는 판... 이제는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네프탈린 소토를 2루에 기용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런데도 공격력 강화의 효과는 거의 보지 못하는 중... 그나마 포수는 이토 히카루를 트레이드로 데려오면서 조금 나아지는 듯 했으나 결국 이토 마저도 미네이와 토바시라와 함께 1할대로 추락. 유격수자리는 야먀토가 지켜줄거라 믿었으나 부상으로 1달간 자리를 이탈한것도 모자라 스위치히터를 포기하자마자 도로 식물타격으로 돌아와버렸다.
거기다가 라미레즈 감독은 8번 투수를 아직까지도 고집하고 있어 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미 시즌을 치르면서 8번 타석에서 공격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수도 없이 나왔는데도 끝까지 8번 투수를 고집하고 있다. 한창 공격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8번 타석에서 흐름이 끊어져 빅이닝의 기회를 날리면 바로 다음 이닝에 위기를 맞고 실점을 하는 레퍼토리가 올해들어 자주 연출이 되었음에도 일절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시즌 8번 투수라는 변칙적인 타순으로 재미를 봤지만 올해는 오히려 팀의 공격 흐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완전히 찍혀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팀의 가장 큰 부진의 원인은 지난해 요코하마의 선발진을 이끌던 3명의 좌완 선발투수들인 이마나가와 이시다, 하마구치가 나란히 부상과 부진으로 제 기량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마나가는 주특기인 인코스 공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매 경기 제구가 흔들리고 실투가 나오면 어김없이 장타를 얻어맞는 악순환이 반복되고있다. 하마구치는 고질적인 제구 불안이 발목을 잡고 있어 기복이 심하다. 최근에는 기복조차도 없이 나올때마다 4실점은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는 모습... 이시다는 구위며 제구며 갈수록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가 위랜드도 시즌이 갈수록 난타를 당하고 있어 가뜩이나 무너진 선발 로테이션에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시즌 초반 좋은 모습을 보이던 쿄야마는 얼마 못 가 난타를 당하며 기량 부족이 여실히 드러냈고 에디 바리오스도 롤러코스터를 타는듯한 피칭 내용으로 안정감을 심어주지 못한 채 기약없는 2군행을 지시받았다.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한 이노 쇼이치는 부진한 선발진의 해결책으로 선발로 기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선발 불펜 가릴거 없이 시원하게 털렸다. 데뷔시즌부터 에이스 노릇을 하던 아즈마 카츠키도 최근에는 무더위의 영향인지 체력적으로 지친 모습이 눈에 띈다. 타이라 겐타로가 놀랍게도 최근 요코하마 선발진 중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펜은 그런대로 선발보다 조금 낫지만 마무리 야마사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다보니 몇 해 전부터 호구가 잡혔던 한신을 상대로 정말 앞뒤 가릴거 없이 신나게 난타당하고있다... 8월 11일 현재 상대 전적은 '''4승 11패'''(...).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거기다 저 11패 중 6패를 랜디 메신저한테 당했다... 덕분에 메신저는 요코하마 덕분에 시즌 10승을 일찌감찌 찍었다. 메신저의 올 시즌 요코하마전 성적은 '''45이닝 6승 0.80'''이다. 요코하마전 성적을 제외하면 5승밖에 못 한 평균 이하의 투수가 되는건데 요코하마가 정말 명기의 정신으로 메신저의 스탯을 관리해줬다(...) 결국 11일 경기도 8-3으로 완패하며 한신전 패수는 12로 늘어나버렸다.
8월 12일 그간 침묵했던 타선이 모처럼 터지며 12-5로 한신에 승리를 거두었다. 멀티홈런을 기록한 네프탈린 소토가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고 야마토는 요코하마 이적 후 처음으로 4안타 경기를 치렀으며 그간 홈런이 없었던 츠츠고가 오랜만에 시즌 23호 대포를 쏘아올렸다. 그리고 8월 14일 주니치전에선 선발 타이라 겐타로가 비시에도에게 선제 2점홈런을 허용하는 등 초반부터 위태로운 경기를 하였지만 조금씩 점수차를 좁혀갔고 4-5로 뒤진 9회 초 2사 이후에 주니치의 새로운 마무리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2득점에 성공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그리고 이어진 9회말에는 야마사키가 여전히 흔들리긴 했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1이닝을 지우면서 2연승을 달성했다. 승차가 조금 벌어진 상황이지만 아직 A클래스 경쟁을 할 저력이 남아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8월 하순 기준으로 간간히 이기기는 하지만 여전히 투타의 균형은 답이 없는 상황. 1달만에 돌아온 야마토가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타격감을 보여주며 1번타자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고 타선은 그런대로 점수를 잘 내주고는 있으나 투수진의 부진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다 8월 22일 요미우리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둔 이후 다음날 경기에서도 6-0으로 승리하며 시즌 첫 2경기 연속 영봉승을 거두었다. 선발로 재전향한 이노 쇼이치와 떠오르는 에이스 아즈마 카츠키의 호투가 빛을 발했다. 이어진 야쿠르트 원정에서도 하마구치가 5이닝을 2실점으로 틀어막고 내려간 뒤 불펜진의 이어던지기로 단 1실점만 허용하면서 6-3 승리를 거둬 근 1달만에 3연승을 달리고 있었지만 이어진 2경기에서 25일엔 위랜드, 26일엔 이마나가가 차례대로 무너지면서 루징시리즈로 마감. 26일 승리를 거둔 주니치에 밀리며 최하위로 떨어졌다. 시즌 극초반 히로시마와 자웅을 겨루며 기세좋게 1위 경쟁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28일 현재는 세리그에서 유일하게 50승에 도달하지 못한 유사야구팀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9월 시작도 좋지 못하다. 호구잡힌 한신과의 원정 3연전으로 시작했지만 첫 경기는 4:1 리드중에 우천 노게임이 선언되어 좋은 흐름이 깨졌다. 이후 펼쳐진 2경기도 시원하게 패배했다. 9월 4일 요미우리전에서 1승을 거두었는데 이날 선발투수였던 아즈마 카츠키가 신인으로서는 역대 최초로 요미우리를 상대로 4전 4승을 거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날 거둔 승리가 시즌 10승으로 요코하마는 2년 연속으로 1년차 대졸 신인이 첫 시즌에 10승을 올리게 되었다. 사실상 신인왕을 확정짓는 경기가 되면서 답이 없는 팀에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라도 생긴 셈. 이후 펼쳐진 아쿠르트 3연전에서 첫 경기를 미야자키와 로페즈의 백투백 홈런에 힘입어 4:1로 승리했지만 바로 다음날 경기에서 6:3으로 리드중인 경기를 6회부터 야금야금 실점하며 동점을 만들어주더니 기어이 9회에 유헤이에게 결승 홈런을 얻어맞으며 7:6 역전패를 당했다. 유헤이는 이날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각각 팀의 첫 득점과 결승점이 되는 한 방이었다. 어쨌든 또다시 파죽의 2연승 후 패배로 이날 승리한 꼴찌 주니치와의 승차는 다시 반 게임 차이로 좁혀졌다.
그리고 13일에 1위 히로시마에게 연패하면서 '''20년 연속 우승 실패'''가 확정되었다. 이날 최하위였던 주니치가 한신에게 이기면서 순위가 역전당한 바람에 최하위로 굴러떨어진건 덤. 아직 3위 요미우리와의 게임차가 3.5게임으로 근소하기 때문에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은 남아있긴 하지만 팀 꼬라지를 보면 좀 어려울듯 하다.
9월 16일 한신전에서는 두 번이나 9실점을 하면서(선발투수 후지나미 신타로에게 만루홈런, 오야마 유스케가 한이닝 2홈런 포함 6안타 7타점) 4대 20으로 대패하면서[65]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운이 따랐는지 단기간에 4위로 복귀. 집안팎으로 터져 내려오고 있는 3위 자이언츠가 눈 앞에 보일 정도까지 왔다. 다만 4~6위간도 1게임 내외 차이라 시즌 끝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가시밭길이 눈 앞에 펼쳐졌다. 20-4로 참패한 그날 이후 정신을 좀 차렸는지 9월 17일 부터 6승 1패의 상승세를 내달리고 있다. 9월 23~25일간 치뤄진 히로시마 원정 3연전에서 2승 1패 위닝시리즈를 거두면서 히로시마의 우승을 다시금 늦추었고[66] 25일 경기가 없던 요미우리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8일 경기에서 에이스인 아즈마를 등판시켜 스가노를 내세운 교진과 맞섰지만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다 9회말 통한의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다시 반 게임차 4위로 내려왔다. 그렇지만 경기가 취소된 와중에 요미우리가 또 지며 하루만에 공동 3위로 복귀했다.
그리고 10월 첫날 만난 한신을 10-0으로 압살하고 요미우리가 패배한 덕에 단독 3위에 올랐으나, 2일에 야쿠르트에게 패배하면서 제자리 걸음이 됐다. A클래스 경우의 수는, 요코하마 5경기, 요미우리 2경기를 남겨 둔 상황에서 요미우리 2승시 4승 1패, 1승시 3승 2패, 0승시 2승 3패를 하면 A클래스로 시즌을 마감하고 CS에 진출 할 수 있다. 불안요소는 남은 경기가 모두 원정이고, 한신과의 아직 일정이 안정해진 시합이 순위에 영향을 안줄지도 모르는 상황인점.
그러나 야쿠르트에게 모두 잡히는 바람에 4위로 추락. 두 경기 모두 추격의 기회를 여러번이나 잡고도 뒤집지 못하면서 1점차로 패배하였다. 2연전의 첫 경기에선 타카하시 케이지의 첫 승 제물 이 된 것은 덤. 자력진출을 위해서는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왔다. 요미우리가 2경기 다 잡는다면 지는 순간 끝. 다음날 요미우리만 경기하기에 디엔에이는 요미우리가 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뭐 야쿠르트 입장에서는 딱히 봐줄 이유가 없는게, 진구 구장에서의 상대전적으로 보면 요코하마나 요미우리나 그게 그거라서 누가 올라와도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10월 6일 한신에게 통한의 끝내기패를 당하며 자력 3위 가능성이 사라졌다. 이제는 한신이 남은 요미우리전을 잡아주고 DeNA는 3경기 전승을 해야 한다는 실낱같은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 문제는 남은 경기중 하나가 히로시마전인데, 오세라의 다승왕이 걸린 시합이라 대충하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츠츠고 요시토모를 1번타자(!), 센트럴리그 홈런왕이 확실시 되는 네프탈리 소토를 2번타자'''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강수를 두고 재역전으로 이기며 다음 주에 결판이 나게 되었다.
그러나 10월 9일 히로시마 전에 이어 또다시 1번 츠츠고, 2번 소토의 타순에 무실점으로 버티던 선발 타이라를 첫번째 위기가 오자마자 승리투수 권리를 눈앞에 둔 4⅔이닝만에 강판시키는 등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야쿠르트에게 4-1 승리를 거두었으나 요미우리가 한신을 9-4로 누르며 4위가 확정되어 딱 한 장 남은 6강 티켓을 놓쳤다. 막판 3연패가 크게 작용한 것.
물론 2018년 시즌은 이 때 외에도 삐걱거리는 일은 많았으며 2015년보다야 덜하지만 중요할 때마다 무너져 '''다시''' B클래스로 추락해버린 팀에 팬들은 한숨이 나올 듯. 마운드는 투수진의 부진과 부상으로 정상적인 전력이 아니었다고 감안한다 쳐도, 의외로 추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득점력이다. 세리그 유일한 40홈런을 치며 1년차에 리그 홈런왕이 된 소토, WBC 후유증에 시달리던 작년과 달리 38홈런을 친 츠츠고, 수위타자 시즌인 작년보다 13개 많은 28홈런을 친 주전 3루수 미야자키 등 파괴력 넘치는 중심타선을 갖고 세리그 최다인 181홈런을 쳤지만, 정작 팀 득점은 그 똑딱이 집단 한신보다도 적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 충격적. 팀 득점 꼴찌를 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일단 팀 타율, 출루율 모두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막강한 파워의 상위타선은 사실 출루율이 높은 타입인 츠츠고를 빼면 소토, 로페즈, 미야자키, 카지타니 모두 막스윙 성향이 강해 타율과 파워에 비해서는 다소 출루율이 낮았고, 그들을 뺀 센터라인 포지션의 하위타선은 그냥 쉬어가는 타선 그 이상이하도 아니었다.[67] 하위타선에서 리그 평균 수준의 타격 생산성을 보인 타자가 단 한 명도 없었을만큼 상하위 타선의 극단적인 양극화도 타격 생산력을 저하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덤으로 로페즈는 시즌 중반, 카지타니는 시즌 대부분을 부상으로 이탈했었고 리드오프를 맡아줘야 했던 쿠와하라도 극심한 기복을 보여줬으며 츠츠고는 7월 한 달 동안 고작 8타점밖에 올리지 못하며 득점권타율이 2할 3푼대에 그치는 등 타점 먹방을 바랬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다음 시즌 반등을 위해선 마운드 재건과 함께 타선 재정비가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네오와 더불어 또다른 대어급 고졸 내야수로 평가받는 코조노를 지명했으나 히로시마가 교섭권을 얻었고 대신 지명한 대졸 투수 카미챠타니를 야쿠르트와 중복 지명하여 교섭권을 따냈다. 우완 선발 요원이 이노 쇼이치정도밖에 없는 좌완 편중 투수진의 밸런스를 맞춰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순위으로 대학야구 강타자인 이토 유키야를 지명하는 등 상당히 성공한 드래프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5순위로 지명받은 포수 마시코 쿄스케는 팝타임이 소프트뱅크의 포수 카이 타쿠야에 비견될만큼 빠른 선수로 평가 받는다.

3.1.12. 2019년 시즌 : 1998년 이후 최고의 정규시즌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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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창단 70주년 기념 로고>'''
구단 창단 70주년을 맞이하게 된 시즌. 시즌 종료 후 이마나가, 쿠니요시, 미카미를 호주 프로야구 리그의 캔버라 캐벌리로 파견하였고 시즌내내 팔꿈치 통증으로 부진하던 조 윌랜드와 계약을 포기하였다. 계약을 포기하여 무직 상태가 된 윌랜드는 이후 기아 타이거즈로 이적. 네프탈리 소토, 호세 로페즈와의 계약을 상당히 빠르게 완료하였고 용병투수 3인방 스펜서 패튼, 에드윈 에스코바, 에디 바리오스도 함께 가기로 결정하였다. 전력외 통보를 받은 선수들을 대상으로도 나름 활발히 움직였는데 요미우리에서 방출된 유틸리티 플레이어 나카이와 과거 구단에서 지명하였다가 방출했던 투수 코무라를 영입하였다. 라미레즈 감독은 일단 나카이를 유틸리티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한 바 있지만, 2루수 자리를 맡을 자원들이 시바타, 쿠라모토 등 공수에 걸쳐 시원찮은지라 상황에 따라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전망. 하지만 라미레즈 감독은 팀 득점력 강화를 위해 소토를 2루수로 활용하려는 계획이 있는지라 소토는 2루수비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카이의 위치는 유틸리티 자원으로 굳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방출된 요코하마 OB 요시무라 유키와[68] 데라하라 하야토를 다시 데려오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실행되지는 않았다.
1월 23일에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젊은 좌완투수 레미 코데로를 육성선수로 영입했다. 97년생의 어린선수이고 189cm, 88kg의 체격을 가지고 있는데 외야수 경험도 있는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 다만 마지막 실전경험이 2016년을 끝으로 없는데다 그나마 기록된 성적들도 투타 모두 시원찮기 때문에 장기적인 육성 계획을 가지고 지켜볼 명목으로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스프링캠프 기간동안 치른 연습경기와 최근들어 진행되고 있는 시범경기를 통해 소토를 2루수로 기용하겠다는 방침은 확고히 굳혀진것으로 보인다. 주포 츠츠고는 18시즌에 이어 이번시즌에도 타격폼 변경이라는 모험을 강행한다. 그리고 외야경쟁 역시 치열한데 17시즌 츠츠고-쿠와하라-카지타니의 외야 라인을 완성시켰으나 18시즌에는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날린 카지타니의 공백을 틈타 카미자토 카즈키가 그 자리에 들어갔었고 그 당시의 활약을 토대로 19시즌 외야 경쟁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대타 등으로 자주 출전한 좌타자 사노 케이타, 오프시즌 기간만 되면 맹타를 휘두르는 대졸 2년차 쿠스모토 다이시, 거기에다 라미레즈 감독이 포스트 츠츠고라며 장기적으로 밀어주려고 하는 우타 거포 유망주 호소카와 세이야까지 있다. 현재까지의 외야 경쟁 진행 상황은 츠츠고의 자리는 확정이고 중견수와 우익수 자리가 불투명한 상황. 쿠와하라는 타격침체로 2군 캠프로 내려가있으며 카지타니 역시 유구골 골절, 허리 수술로 인해 2군에서 시즌을 준비중이다. 최근 상황을 보면 카미자토와 쿠스모토가 꾸준히 시범경기에 출장하며 외야 경쟁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고 2군에서 조정을 마치고 올라온 쿠와하라도 타격감을 조율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음을 어필하고 있다.
대망의 개막전 결과는 8-1 완승. 지난시즌 부진을 만회하듯 8이닝 무실점 11K로 호투한 이마나가 쇼타의 호투가 매우 돋보이는 경기였다. 타선에선 경기 후반 2타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올리고 8회 쐐기홈런을 때리며 혼자 5타점을 올린 츠츠고의 활약이 뛰어났다. 3년만의 개막전 승리로 좋은 출발을 보이는 듯 했으나... 30일 경기를 9-1로 완패하며 어제의 좋은 기세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다. 지난시즌부터 밀어주던 쿄야마 마사야가 2회까지는 호투했으나 4회부터 급격히 무너졌고 시범경기에서 159km/h를 뿌리며 팬들을 설레게 한 쿠니요시 유키는 추격조로 등판했으나 4실점으로 거하게 털리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였다. 타선은 타선대로 주니치 마운드에 철저하게 봉쇄당하며 4안타 1득점에 그쳤다. 이날 선발 등판한 주니치의 야마이 다이스케는 불혹의 나이임에도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주니치에 시즌 첫 승리를 안겨주었다. 3차전에서는 2:2의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다가 9회말에 터진 사노 케이타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하며 개막시리즈를 위닝시리즈로 장식하였다.
하지만 뒤이어 치러진 진구 구장 원정에서는 선취점을 뽑고도 스펜서 패튼의 2경기 연속 퐈이야(...)로 이길 경기를 허무하게 내주며 기세가 꺾였다. 다행히 3연전 마지막 경기는 10점을 뽑은 타선의 활약으로 승리하면서 3연전 스윕은 면할 수 있었다. 주말 3연전은 요미우리와의 홈 시리즈인데 5일 경기에서 이마나가 쇼타를 내세웠지만 상대 투수 스가노 도모유키가 완투승을 거둬버리면서 또다시 패배. 시즌 초반 행보가 꽤 들쑥날쑥하다. 이후 치뤄진 요미우리와의 2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요미우리를 시즌 첫 연패로 빠뜨리며 다시 5승 4패를 기록. 침체된 분위기를 어느정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어진 한신과의 주중 3연전 첫 경기부터 안 좋은 의미로 역대급 경기력을 선보이며 8:12로 참패했다. 단순히 8:3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를 내 준것 이 아니라 불펜의 방화+치명적인 포구 실책[69]이 겹친, 그야말로 전형적인 Baysball식 야구를 보여주며 무너진 것이다. 거기다 포수인 우메노 류타로에게 역대 69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허용한것은 덤...두번째 경기에서는 10안타에 2득점밖에 못하는 빈공을 보였으나 상대 한신은 여기에 더 떠서 1안타로 침몰하며 승리. 세번째도 5-2로 잡으며 위닝시리즈는 가져갔다.
4월 16일부터 19일까지의 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승패마진을 모두 깎아먹고 현재는 정확히 5할에 걸쳐있다. 그리고 결국 히로시마와의 원정 3연전을 모두 내주면서 5할 승률이 붕괴되었고 히로시마에게 시즌 첫 스윕을 조공하고 말았다. 21일 경기에서는 오프너 전략까지 꺼내며 맞섰으나 오프너로 등판한 쿠니요시 유키가 1회에 4실점으로 일찌감치 무너지면서 뭘 해도 안 되는 갑갑한 야구를 보여주고 있다.
4월 23일 한신전에서는 병살타만 4개를 쳐 자멸야구의 끝을 보여주며 8:3으로 패배. 연패 숫자는 6으로 늘어났다. 네프탈리 소토가 또다시 한신전에서 포구 실책을 저지른건 덤... 그리고 이어진 2경기에서도 타선의 침묵과 불펜의 방화로 패배하면서 8연패. 순위도 한신에게 밀리며 최하위로 굴러 떨어졌다.
4월 27일 교진전에서도 11안타 4사사구를 얻어내고도 4득점에 그치는 변비 야구를 선보이며 4-5로 석패, 연패 숫자를 9까지 늘렸다. 28일 경기에서는 유망주 쿄야마가 무너지며 결국 '''10연패'''를 채우고 말았다.. 29일에도 8회까지 뒤지고 있었으나, 이날 2019년 첫 선발출장한 베테랑 이시카와 타케히로의 투런이 터지며 간신히 연패를 끊어냈다. 이후 치러진 야쿠르트와의 홈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상승세를 타는 듯 했으나 또다시 한신을 만나 스윕패를 당하며 연패의 나락으로 빠져버렸다. 아직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대 한신전 전적이 '''2승 7패'''로 올해도 어김없이 한신의 호구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신전 스윕패로 인해 양대리그 팀들 중 가장 먼저 20패에 도달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5월 6일 교진전에서는 아즈마 카즈키가 초반부터 무너지며 2-10으로 완패했고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에서 치뤄진 5월 8일 경기에서는 7회에만 7실점하며 역전패, 5연패의 늪에 빠졌다.
그렇게 꼴지를 달렸으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무려 '''14연패'''를 기록, 5위로 올라섰다. 마침 다음 상대가 야쿠르트라, 시리즈 결과에 따라 경기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것이 위안거리.
그렇게 펼쳐진 단두대 매치. 첫 경기는 3점을 먼저 낸 뒤, 8회에 터진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2타점 적시타로 야쿠르트에게 추격을 당했으나 끝내 3-2로 이겼고, 두번째 경기는 7-0 승리, 야쿠르트에게 16연패를 선사한다(...)[70] 그러나 마지막 경기에서 2-5로 스윕승에 실패. 지바까지 갈 뻔한 기록을 끊어주고 교류전에 들어갔다.
여담으로 올해 모기업의 상태가 저번 해보다 더 악화되어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리한 IP 팔이 시도와 유벤투스 스폰서 등으로 인해 구단 내 재정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린 교류전에서 오릭스에게 1승 2패로 밀린 뒤 사이타마 세이부 상대로 1패 후 2승으로 교류전 반타작은 맞췄다. 이후 치러진 지바와의 3연전은 위닝시리즈로 마무리. 6월 15일 소프트뱅크전 패배로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구단 통산 5000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교류전 최대의 난적이라 할 수 있었던 소뱅을 상대로 1승 1무 1패를 거둔 이후 닛폰햄전에서도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요미우리와 함께 유이하게 센트럴 소속으로 교류전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하면서 분전하고 있다. 6월 21일 라쿠텐과의 3연전 1차전을 승리하면서 2014년 이후 5년만에 교류전 흑자를 확정지었다. 교류전 최종성적은 10승 1무 7패로 퍼시픽 리그 팀들 상대로 나름 잘 비볐다. 라쿠텐, 닛폰햄, 세이부, 롯데 상대로는 우세, 오릭스 상대로는 열세, 소프트뱅크 상대로는 대등.
교류전이 끝난 후 개시된 첫 시리즈는 6월 내내 상태가 안 좋은 히로시마와의 홈 3연전. 2승 1무로 선전하면서 승패 마진을 -1까지 줄였다. 그 사이 3위 한신이 주니치와의 2연전을 모두 패하면서 공동 3위까지 올라왔다. 당장 7월 2일부터 한신과 3위자리를 놓고 정면승부를 벌여야한다. 그러나 요코하마는 올해 한신전 전적이 3승 9패로 매우 좋지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시리즈가 될 전망이다. 다행히도 한신전 위닝시리즈에 성공하며 단독 3위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2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교류전을 죽쑤고 이후에도 5연패를 하며 추락중인 히로시마와의 경기차를 반 게임차까지 좁힌 것. 한신전에 이은 요미우리와의 3연전에서는 1승 2패에 그쳤지만 같은 기간 히로시마가 한신을 상대로 스윕 당하며 3위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이후 야쿠르트와의 3연전에서도 1승 2패에 그쳤지만 한신과 히로시마가 전부 스윕패를 당하는 바람에 '''전반기를 2위(한신과 공동)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시즌 초 답 안나오는 팀 소리를 들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 다만 승률이 5할 미만(…).
올스타 브레이크 후 첫 경기이던 히로시마와의 3연전에서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며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이어진 주니치와의 4연전에선 3승 1패를, 고시엔 원정에서 한신과의 3연전을 2승 1무로 마감하면서 단독 2위자리를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있다. 1위 요미우리가 히로시마를 만난 이후 주춤하는 사이 10게임까지 벌어졌던 승차도 5.5게임차이로 좁혀졌다.
이어 주니치, 야쿠르트와의 3연전에서 연달아 위닝시리즈를 가져가며 선두 요미우리와의 승차를 조금씩 더 좁혀나갔고 8월 2일부터 치뤄진 요미우리와의 3연전을 스윕하며 요미우리와의 승차를 0.5경기차까지 좁히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8월이 되자 부상 악령이 덮쳐오기 시작했다. 주전포수였던 이토 히카루가 손가락 골절로 이탈하더니 요미우리전에서 통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스펜서 패튼이 분을 참지 못하고 냉장고를 가격하다 오른손이 골절되었다. 그래도 여기까진 어찌저찌 버티나 싶었지만 히로시마 원정경기에서 주전 3루수 미야자키 마저 왼손 유구골 골절을 당하며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되었다. 결국 3루수 공백을 메우기 위해 8월 9일 주니치와의 홈경기에선 '''츠츠고 요시토모가 5년만에 3루수로 출전하였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2홈런 7타점으로 대활약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역시 전력공백을 메꾸기는 어려웠는지 11일 이후부터 5연패를 기록하고 만다.[71] 이 과정에서 잠시 3위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이후 치러진 2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히로시마에 1.5게임차 2위를 유지중이다. 하지만 그놈의 호랑이 공포증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면서 한신 원정 3연전을 깔끔히 스윕패. 6년 연속으로 한신전 열세를 확정지었다. 이후 치러진 선두 요미우리와의 원정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거두었고 야쿠르트와의 홈 3연전은 아예 스윕해버리며 진구 구장에서의 참패를 완벽히 갚아주었다. 8월 마지막 시리즈인 히로시마 원정은 위닝시리즈로 마치고 상대전적에서 유일하게 열세인 한신을 만난다. 첫 경기는 뇌우로 인해 노게임 처리. 두번째 경기는 츠츠고의 끝내기 투런에 힘입어 7:5 승리를 거두었으나 세번째 경기에서는 2:9로 패배. 이 사이 선두 요미우리가 주니치전 피스윕 포함 뜻밖의 5연패를 당하면서 게임차이가 2.5게임차이까지 좁혀졌다. 그 덕분에 소멸되었던 요코하마의 자력 우승 가능성이 다시 살아났는데… 요코하마도 주니치에 스윕을 당하는 바람에 도로 4경기차로 벌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요미우리와의 홈 3연전에서도 루징시리즈를 기록, 요미우리의 매직넘버를 다시 켜주고 말았다(9경기). 그 후 어찌저찌 쫓아가고 있긴 하지만… 19일 현재 1위 요미우리와 3게임차,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 매직넘버는 4.
요미우리에게 루징을 당하며 리그 우승은 요미우리에게 돌아갔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A클래스를 지켜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 진출한 뒤 두 팀을 떨어뜨리고 일본시리즈에 올라가는 것 뿐.
9월 24일 주니치를 꺾으며 2위를 확정지었다. 이 순위는 '''1998년 리그 우승 이후로 페넌트레이스 최고 성적이다!''' 이제 NPB 만년 호구팀 타이틀은 오릭스에게 완전히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다![72] 이제 리그 우승 타이틀과 12구단 양대 통합 승률 1위 타이틀과 일본시리즈 우승 타이틀만 획득하면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강팀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
이후 한신이 기적적으로 3위를 확정지으면서 퍼스트 스테이지의 상대는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 매우 밀리는 한신을 상대하게 되었다. 내심 근소하게나마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히로시마가 올라오길 바랬지만 결국 한신이 극적으로 올라와버렸으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부터 엄청난 난관에 부딪히게 된 셈. 2년전처럼 상대전적의 열세를 극복하고 한신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결국 최근 몇년 간의 역학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승 2패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 경기 다 2점차 이내의 접전이었는데 7대1로 앞서나가다 대역전패를 당한 1차전이 매우 아쉬운 결과가 됐으나 2차전에서도 오토사카의 끝내기 홈런으로 간신히 승리했고 3차전에서는 타선이 침묵. 불안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종료 직후, 구단 측에서는 츠츠고 요시토모의 포스팅 허가와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의 1년 연장 계약을 발표했다

3.1.13. 2020년 시즌


6월 19일 홈 구장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와의 개막 3연전에서 1승 2패의 루징시리즈를 기록했다. 3연전내내 몹시 답답한 경기였었는데 개막전에선 소토 한 명 빼고[73] 팀 전체가 무작정 맞추고 보는 스윙에만 일관하다 오세라의 투구수를 크게 줄여주며 완투승을 헌납했고[74] 토요일 경기에선 3: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야금야금 점수를 뺏기더니 급기야 7회에 초노 히사요시의 대타 역전 2타점 적시타를 시작으로 스즈키 세이야의 만루홈런까지 터지며 대거 7점을 헌납하고 완패했다.
일요일 경기 역시 선발 타이라 켄타로가 단 1실점만을 허용하고 불펜진들도 웬일로 무실점을 펼치며 선방중이었지만 그놈의 타선이 신인 모리시타에게 완벽히 틀어막히며 모리시타의 데뷔 첫 승 제물이 되는 듯 했다. 다행히도 9회말 연속 4안타가 터지며 간신히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이후 주니치전 스윕, 한신전 위닝시리즈로 상승세를 이어나갔으나 선두 요미우리에게 루징시리즈를 당하며 상승세가 꺾였다.
6월 26일 이후로는 연패도 없고 연승도 없는 기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승과 1패를 번갈아가면서 하는동안 순위는 2~3위를 왔다갔다 하는 중. 그러나 7월 15일 주니치 드래곤스를 상대로 패배한 후 내리 5연패를 하면서 순위도 4위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이후로는 3위권에서 그럭저럭 버텨 냈지만 7월 26일 최하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상대로 홈에서 0-6으로 이기던 게임을 '''8회와 9회 각 5점씩 총 10점을 허용'''해 10-6으로 역전패를 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역전 만루포를 맞은 야마사키 야스아키와 게임이 이 지경이 되도록 손을 쓰지 않았던 알렉스 라미레즈 감독은 으리으리하게 욕을 먹었다.
결국 마무리 교체라는 강수를 뒀는데 야마사키 대신 미시마 카즈키를 마무리로 기용하면서 뒷문이 어느정도 안정화되었다. 8월 들어서는 5할 언저리 승률만 유지하고 있는 중. 그러다가 8월 15일 야쿠르트전에서 오가와 야스히로한테 노히트를 헌납하였다... 2010년대에만 3번째 노히트 허용. 거기다가 3번 다 홈구장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허용했다.[75] 요코하마가 8월들어 이렇게 5할 유지에만 급급한 이유는 부상자들의 공백이 상당히 크다. 펜스플레이 도중 부상을 당한 타일러 오스틴은 이제서야 리햅 경기를 뛸 준비를 하는 중이고 좌우 선발 원투펀치 이마나가 쇼타, 타이라 켄타로의 복귀도 아직 불투명하다. 신인 투수 사카모토 유야는 발목 염좌이후 이제서야 실전 등판을 마쳤다. 시즌 후반기에 선두 요미우리와의 경기가 많기 때문에 부상자들이 언제 복귀하느냐가 이번 시즌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부상자들의 공백을 메우면서 버티는데도 한계점에 도달했는지 5할 승률이 끝끝내 붕괴되었고 순위도 주니치에 밀린 4위로 내려앉았다. B클래스로 떨어진 이후 얼마 뒤에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거기다 시즌 내내 부동의 4번타자로 활약했던 사노 케이타가 허리 통증으로 선발에서 제외되더니 선발 복귀전에선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다. 사노의 공백은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10월 27~29일간 진행된 요미우리와의 홈 3연전을 모조리 쓸어담으며 요미우리의 우승 헹가레를 저지함과 동시에 다시 5할 승률을 회복했다. 한신과의 3연전을 1승 1무 1패로 마치는 동안 3위 주니치가 6연패를 당하면서 반 게임차까지 승차가 좁혀졌다. 11월 3일부터 주니치와의 올 시즌 마지막 3연전을 치르는데 이 3연전 결과에 따라 A클래스 여부가 갈리게 되었으나 3연전을 주니치에게 모두 내주면서 2년만에 B클래스가 확정되었다.
11월 14일. 옆동네에서 가을야구가 한창 진행중일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정규시즌 최종전을 가졌고 9회말 카미자토 카즈키의 역전 끝내기 안타로 라미레스 감독 체제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3.1.14. 2021년 시즌


오프 시즌 원 클럽맨 내야수 이시카와 타케히로를 퇴단시키고 용병선수인 호세 로페스와 스펜서 패튼 역시 떠나보냈다.[76] 라미레스가 물러나면서 비어있던 감독자리에는 세간의 예상대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미우라 다이스케 2군 감독이 1군 감독으로 승격했다. 하지만 부임하자마자 팀의 고참 선수였던 외야수 카지타니 타카유키와 투수 이노 쇼이치가 FA를 행사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순탄치 않은 앞날이 예상된다. B랭크 FA였던 카지타니의 보상선수로는 타나카 슌타가 지명되었다. 센터 내야진의 보강을 위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FA유출이라는 암초를 만났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유출 가능성이 농후했던 네프탈리 소토를 3년 계약으로 잔류시켰고 타일러 오스틴 역시 잔류가 정해졌다는 점. 그리고 토미 존 수술을 받았던 아즈마 카츠키가 12월 중순무렵에 불펜에서 피칭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즈마가 성공적으로 복귀를 한다면 이노의 이탈로 공백이 생긴 선발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4. 관중수 추이


<rowcolor=#373a3c> '''연도별'''
'''총관중'''
'''일일 평균'''
'''2013년'''
''' 1,425,728명 (+8.3%)'''
'''19,802명'''
'''2014년'''
'''1,564,528명 (+9.7%)'''
'''21,730명'''
'''2015년'''
'''1,813,800명 (+15.9%)'''
'''25,546명'''
'''2016년'''
'''1,939,146명 (+5.4%)'''
''' 26,993명'''
'''2017년'''
'''1,979,446명 (+3.5%)'''
'''27,880명'''
'''2018년'''
'''2,027,922명 (+2.4%)'''
'''28,166명'''
'''2019년'''
'''2,283,524명[77] (+12.6%)'''
'''31,716명 (+12.6%)'''[78]
해가 갈수록 계속해서 팬덤이 커지고 있다. 불과 '''5년만에 "경기당 평균 관중"이 1만명이나 증가하는 등''' 현 시점 센트럴 리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관중이 늘어나고 있는 구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모기업인 DeNA의 공이 크다고 볼수 있다. 구단을 짐짝처럼 취급했던 다이요 어업, TBS 테레비과는[79] 달리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모기업이 본거지인 요코하마와 팀에 애정을 가지고 제대로 구단을 경영해보려는 의지는 가지고 있다. 정말로 DeNA가 모기업이 된 것이 천만다행. 요코하마 스타디움 항목에도 DeNA가 새 구단주가 되고나서 프로 구단으로서 자립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2016년 마침내 관중도 잡고 성적도 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일본시리즈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다만 2018년 이후 성적 부진과 더불어 유벤투스 스폰서비 상승과 관련된 구단의 투자 비중 감소로 인해 다시 Baysball의 재림이 시작된다는 우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여태 관중 상승 추이도 모기업의 부풀리기 의혹도 어느정도 존재하는 모양이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하위권을 전전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관중증가는 확실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고 2019년 후반기 들어 요미우리, 히로시마와 치열한 3파전을 전개하는 양상이 되자 새로 증축한 관중석까지 관중이 들어차며서 창단이래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3만관중 동원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2018년 결산에서 모기업인 DeNA의 다른 사업분야는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80] 유일하게 야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사업만이 흑자를 기록하면서 모기업의 이익 감소분을 메웠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확실히 TBS 시절과 지금은 분위기도 팬들의 호응도도 다른 구단이 되었고 만년 하위팀을 이렇게까지 바꾼 것은 DeNA 구단측의 노력을 평가해야할 부분이라 하겠다.[81][82][83]

5. 인기


도쿄 인접지역인 요코하마를 연고지로 한다는 점과 전통적인 약체인 팀 특성상 센트럴리그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함께 인기가 없는 팀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DeNA사가 구단을 인수한 뒤로는 적극적인 자세로 구단 경영에 임한 결과 상술했듯이 관중수가 히로시마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구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1년 구단 팬클럽의 회원수가 1만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팀이 19년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던 2017년에는 8만 7천명 대로 크게 늘어나는 등 관중 뿐만이 아니라 팬덤수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이외에도 홈구장 리모델링을 통해 관중석 증축을 진행하는 등 관중 유치에 상당히 힘을 쏟고 있다. 매년 실시하는 스타나이트 데이, 2018년 실시했던 1998년 유니폼 복각 이벤트 등 다양한 마케팅을 실시하며 노력하고 있다.
의외로 한국에서도 이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이승엽이 한창 요미우리에서 뛰던 시절 상대팀으로 종종 보이기도 했고 모기업이 게임회사인지라 이쪽 경로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있는 듯.
2019년에는 아직 시즌중이지만 6월까지 평균관중이 3만명을 넘어섰다. 양대 리그를 합쳐도 한신, 요미우리, 소프트뱅크 다음가는 관중수다. 관중석 증축효과와 마케팅의 성과가 결실을 맺은 결과. 이제 비인기 구단이라는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84]

6. 팀 특징



6.1. 팀 이름이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


그나마 이 팀에서 뛰는 스타급 선수로는 오랫동안 팀 투수진을 떠받쳐온 '반초(대장)' 미우라 다이스케정도였으나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 미우라는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선수지만 팀이....[85] 그 외에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는 재일교포 모리모토 히초리가 있었고 한국에서 활약한 카도쿠라 켄이 일본프로야구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낸 곳도 여기였다.
한 때 이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는 2007, 2008년 센트럴리그 홈런왕이자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거포 3루수 무라타 슈이치가 있...었으나, '''2012년 시즌에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해버렸다...''' 그리고 '''일본 턱돌이'''로 유명하며 고타율과 2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홈런을 쳐내어 우리나라를 울리기도 했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이 팀 소속이'''었'''다.
이러다 보니 '''결국 팀에서 뛰는 주목받는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나카하타 감독 시절에는 담당 기자들도 선수보다는 감독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록으로 쓰일만한 뭐 한마디 안 나오나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오죽하면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은퇴 경기에서 "DeNA는 나카하타 감독이 가장 눈에 띈다. 선수가 주목받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여기에는 요코하마 프런트의 행보도 한몫 거드는데, 툭하면 구단의 레전드로 남을 선수를 제대로 못 지켜서 팬들의 원성이 매우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붙박이 유격수 이시이 타쿠로가 2009년에 히로시마로 이적하여 은퇴 후 히로시마 코치로 정착, 마찬가지로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야수 사에키 타카히로가 2011년에 주니치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주니치 코치로 정착, 미우라 다이스케와 함께 요코하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외야수 긴조 다쓰히코 역시 2015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요미우리의 코치로 정착하였다. 이 케이스의 공통점은 구단 측에서 빡빡하게 은퇴 권고와 전력외 통지를 날렸고 선수와 구단간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것인데,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인기 선수들을 좀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렇게 쉽게 내쳐버리는 선택이 팬 입장에서는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코하마의 팬 입장에서는 이 선수들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지금 봐도 어색할 정도이다.
이렇다보니 웃픈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상대팀 선수의 은퇴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준다(...) 상기된 이시이 타쿠로는 전날 히로시마에서 은퇴 경기 및 은퇴 행사를 진행한 뒤 다음 날,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의 원정경기에서 진짜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특전 영상, 꽃다발 전달, 경기 후 구장 한바퀴를 일순하며 팬들과 하이터치 등 마치 홈팀 선수가 은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86]정작 같은 날 은퇴 경기를 치룬 DeNA의 포수 니이누마 신지는 묻혔다. 뭐 물론 둘이 워낙 급이 다르긴 하지만... 98년 우승 당시 요코하마의 주전 포수이면서, 주니치의 선수 겸 감독이던 다니시게 모토노부 또한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고 마지막 타격을 한 것이 요코하마 스타디움. 구장을 일순하며 다이요 시절부터 요코하마를 거쳐 주니치 시절까지 응원가 메들리, 다니시게의 자녀들의 꽃다발 전달식, 헹가레 등 홈구장에서 볼 법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 로테이션의 이노 쇼이치와 야마구치 슌이 주목할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다른 팀의 주축 선수보다 개성도 화제성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야마구치는 2016년 말 FA로 요미우리로 이적. 그나마 2014년 시즌 들어와서 츠츠고 요시토모가 3할 22홈런으로 토종 4번타자로서 활약을 보이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서 떠오르고 있고 그리고 2015년 입단한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마무리로 혜성같이 등장,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2010년대 중반, 리빌딩 이후 투수진에는 야마사키, 야수진에는 츠츠고가 팀을 대표하는 스타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츠츠고는 2019 시즌 종료 이후 메이저리그 포스팅에 참가할 것을 선언하였고 구단이 수락하여 또 스타선수가 빠지는 상황을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6.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아래는 요코하마 팬으로 사는 십계명이라고 한다.[87]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2. 경기 도중 단 한 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1998 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최근 몇 년간 센트럴리그 꼴지를 도맡아해온 베이스타즈의 상황을 비꼬는 유행어로 '''베리그'''가 있다. 매년 다른 팀과 엄청난 차를 벌리면 꼴등으로 가라앉은 채 그대로 시즌이 끝나버리는 거의 독립적인 위치라는 점 때문에 베이스타즈가 사실은 다른 리그였다! 라는 뜻으로 센트럴리그를 줄여서 세리그, 퍼시픽리그를 파리그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어, 베이스타즈에서 「베」를 따 베리그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베이스타즈 혼자 소속된 리그'''이지만 자국리그나 타국 리그에서 헤매는 팀들을 여기로 승격시켜서(...) 순위를 가리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파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MLB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한화 이글스가 여기 단골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결국 매년 수위는 베이스타즈가 차지한다. 물론 패가 많을수록 순위가 높은 베리그 기준으로. ?
이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는 'ベイスボール[88]'이라는 표현도 곧잘 쓰이는 모양. 굳이 한국에서 쓰이는 비슷한 표현이라면 '유사야구' 정도.
물론 2016년부터는 십계명이 모두 뒤집혀졌다고 할 수 있다.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 이기는 날이 더 많아졌다.
2. 경기 도중 단 한 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 이제는 희망과 좋은 점이 많이 보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 성적이 오르자 해탈했던 팬들이 다시 일희일비 모드가 되었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 이젠 즐겁게 야구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 2015년에 입단한 용병 호세 로페즈가 2017년에 세리그 안타-타점 2관왕으로 우뚝 섰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 상대가 그렇게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에이스들이 등장했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과거엔 신인들이 최후의 밧줄이라는 느낌이였다면, 이제는 연이은 루키들의 성장 덕분에 진정한 의미로 즐거워졌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1998 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 이제는 2017년 일본시리즈 진출 순간이나 일본시리즈 4차전 영상을 돌려봐도 될 듯 싶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 이제는 이기는 야구를 기대할 수 있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다만 2018년에 와서는 다시 옛날 십계명을 찾아 쓰는 상황이 찾아오고 있다가 아니였다가를 반복하다가 2020년에 와서 쓰쓰고가 빠진 상황에서 무관중경기로 리그를 치뤄야하자 다시 이런 상황이 오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3. 응원가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응원가 문서 참조.

6.4. 영구결번


강팀이던 시절도 있었고 다이요 시절도 포함하면 명구회 회원인 히라마츠 마사지마츠바라 마코토를 비롯하여 이시이 타쿠로, 사사키 카즈히로 등 나름 레전드 선수들이 있지만 구단 정식 영구결번은 없다.[89] 상기한 대로 레전드들과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것도 있고, 결번대신 번호를 물려주는 경향이 있는 일본야구 문화의 특성 덕분에.. 그나마 미우라 다이스케가 은퇴하며 18번을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투수코치로 부임한 미우라가 사용하다가, 2021시즌에 감독에 부임하며 번호를 81번으로 교체했다. 어디까지나 '준'영구결번이라, 나중에 미우라의 뒤를 이을만한 투수가 등장하면 본인 합의하에 물려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6.5. 기타


  •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98년 베이스타즈의 우승을 기념하며 국물이 파란색인 베이스타즈 라면을 팔던 칸톤(廣東)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듯. 2014년 현재는 폐점.
  • 교류전에 매우 약하다. 2005년 교류전 시작 이래 2017년 종료 시점까지 129승 200패 7무승부, 승률 .392로 교류전 통산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무려 2할 넘게 차이가 날 뿐만아니라 바로 위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도 통산 승수에서 15승 정도 차이가 나는 압도적 꼴찌이다. 교류전 꼴찌도 5번으로 최다. 이러한 체질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2015년 시즌으로 교류전 돌입 전에 승률 5할 + 11승으로 1위를 기록하며 17년만의 우승 설레발까지 나왔지만 교류전에서 3승 14패로 참패하면서 최하위를 기록. 그 전까지 벌어놓은 저금을 다까먹고 내려 앉아 마침내 시즌 끝날 때는 최하위까지 굴러 떨어졌다. 2018년에는 비로 연기되어 교류전 마지막 경기가 된 치바 롯데전을 패함으로써 기어이 해를 넘기지 않고 교류전 통산 200패를 채우고 말았다. 교류전에서 통산 200패를 기록한 건 12개구단 최초.[90]
  • 팀의 마스코트로는 남성 캐릭터인 DB 스타맨과 여성 캐릭터인 DB 키라라가 있다. 모기업이 DeNA로 변경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마스코트로 이전 마스코트였던 홋시, 홋시나, 홋시조[91]는 졸업(?)하여 예전에 쓰던 마스코트가 되었다. 참고로 얘네 '햄스터'다. 그러니 팬들은 그런거 무시하고 대부분 너구리 취급 하고 있으며 소속팀 포수 토바시라는 얘네를 고양이로 알고 있었다고... DB 스타맨은 인형탈이 인형탈이다보니 다른 구단 마스코트들에게 굴욕도 자주 당한다.예시1(2분부터) 예시2
  • 5주년 기념으로 마린 군(マリンくん)을 선보였다. "왜 남의 팀 이름을 자기네 팀 마스코트 이름으로 쓰냐"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이 마스코트는 롯데가 "마린즈"라는 이름을 쓰기 전인 요코하마 다이요 시절[92] 썼던 마스코트다. 롯데의 마린즈보다 뼈대 깊은 마린인 셈.
  • 요코하마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해 활약한 선수들이 이적 후에 남긴 코멘트가 있는데 가관이다[97].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 구단 OB에 전 감독들까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 우치카와 세이이치(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요코하마에서는 누굴 믿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93], "아무 긴장감도 없는 곳에서 플레이하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플레이 하는 게 보람이 느껴진다."
    • 무라타 슈이치 - (요코하마 소속이던 당시 WBC 대표로 참가하고 나서) "프로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수비연습을 했다." "이대로 (요코하마에서) 질질 선수생활을 끝내고 싶진 않다."
    • 후루키 카츠아키(오릭스 버팔로즈 → 미국 독립리그 하와이 스타즈[94]) - "(요코하마에 재적하고 있던 때부터 이적하고 싶어서) 연습이 제대로 안됐다"
    • 츠루오카 카즈나리(요코하마 → 요미우리 → DeNA → 한신 타이거스) - "(자이언츠의 연습을 보며) 1군의 선수가 이렇게 (많이) 연습하는 줄은 몰랐다."
    • 가토 고스케(현 후쿠시마 호프스) - "강한팀은 강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걸 하루에도 몇차례씩 느끼고, 저도 빨리 그 (강한) 팀의 일원이 되고싶습니다."[95]
    • 쿠도 키미야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 "요코하마의 선수는 연습안해"
    • 카도쿠라 켄 - "야구소년들이여, 프로가 되고 싶겠지. 챤스는 있어! 하지만 요코하마는 관둬."
    • 니시 토시히사 - "(거인에서 요코하마로 이적 후) 점점 자신이 요코하마에 물들어 가는 기분이 든다. 여기 있으면 나까지 망쳐지는 것 같아."
    • 아롬 발디리스 - "요코하마 시절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나를 도와주는 코치도 선수도 없었다." [96]
    • 타카기 유타카(80년대에 주전 2루수로 활약한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OB) - "요코하마의 (동계훈련) 캠프를 가보면 모자도 안쓰고 있고 스파이크도 신고 있지 않은 놈도 있다. 벌써 빈둥빈둥하고 있으니."
    • 나카하타 키요시(전 감독) - "(감독이 먼저) 인사를 했으면 (너희도) 인사 좀 해라."
  • 고유와 전통을 매우 중시하는 센트럴 리그 특성과는 달리 정말 이것저것 많이 변했다. 웬만해서 센트럴 리그는 연고지, 모기업 주체, 팀명에 큰 변화가 거의 없지만[98] DeNA는 연고지도 시모노세키-교토-카와사키-요코하마[99], 운영 주체도 타이요-타이요쇼치쿠 공동-다시 타이요 단독(=마루하)-TBS-DeNA, 팀명도 웨일즈-로빈스-웨일즈-베이스타즈... 마케팅 부분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며 팀 분위기도 여타 센트럴 리그 팀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다.
  • 히로시마한신과 더불어 센트럴 리그 20세기 최후의 일본시리즈 우승팀들 가운데 하나다. 그나마 요코하마가 저 둘보다 나은 것은 요코하마는 그래도 마지막 우승이 90년대 후반이라는 점이다. 히로시마는 84년, 한신은 85년 이후로 현재까지 우승이 없다[100]. 이웃 퍼시픽리그와 비교해도 수치스러운게 거기는 퍼시픽리그 유일의 20세기 우승팀이 있다는 점이다.
  • 공식 명칭은 베이스타'즈'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포털이나 기사 등에서는 왜인지 기본적으로 베이스타'스'로 표기하고 있다. 더 희한한건 그동안 한국에서도 'STARS'의 팀명을 사용했던 농구의 안양 SBS 스타즈나, 여자농구와 남자배구의 KB(손해보험) 스타즈 모두 '즈'를 공식 표기를 사용했었는데, 유독 DeNA만 베이스타'스'라고 표현한다는 점
  • 구단 공식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야구단 구독자 수 3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2위는 두산 베어스. 일본 내에서는 12구단 중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요미우리에게 내줬다.
  • NPB 최초로 구단 통산 5000패를 달성한 팀이다. 9월 5일 기준 4061승 239무 5024패 승률 .447을 기록중으로 현존하는 구단들 중 최저승률을 기록중이다(...)[101] 별로 달갑지않은 기록인건 맞으나 1950년부터 리그에 참가한 팀이 30년대에 창단한 선배 구단들보다도 빠르게 5000패를 먼저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요코하마에 이어 두 번째로 5000패를 달성한 팀은 오릭스 버팔로즈.
  • 위의 2011시즌 단락에도 써 있지만,21세기 전무후무한 지진 콜드패를 당한 팀이다.물론 세계로 범위를 넓혀 보면 경기 중은 아니지만 경기 시작 30분 전에 지진으로 경기가 취소된 도 있다.

7. 유니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유니폼항목 참조.

8. 선수 명단(2021년 시즌)



8.1. 감독 및 코치


  • 81. 미우라 다이스케 : 감독
  • 83. 아오야마 미치오 : 1군 수석코치
  • 77. 츠보이 토모치카 : 1군 타격코치
  • 84. 시마무라 잇키 : 1군 타격코치
  • 72. 카와무라 타케오 : 1군 투수코치
  • 73. 키즈카 아츠시 : 1군 투수코치
  • 88. 나가이케 야스오 : 1군 내야수비·주루코치
  • 71. 코이케 마사아키 :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 79. 니이누마 신지 : 1군 배터리코치
  • 89. 후지타 카즈오 : 1군 불펜 전담 배터리코치
  • 76. 타시로 토미오 : 순회 타격코치
  • 87. 니시 토시히사 : 2군 감독
  • 82. 만에이 타카시 : 2군 총괄코치
  • 70. 시모조노 타츠야 : 2군 타격코치
  • 90. 오오무라 이와오 : 2군 타격코치
  • 78. 오오카 토모카즈 : 2군 투수코치
  • 86. 우시다 시게키 : 2군 투수코치
  • 95. 후지오카 요시아키 : 2군 투수코치
  • 85. 야나기다 시게오 : 2군 수비·주루코치
  • 97. 타나카 히로야스 : 2군 수비·주루코치
  • 74. 츠루오카 카즈나리 : 2군 배터리코치

8.2. 투수


  • 11. 아즈마 카츠키
  • 12. 사카구치 코스케
  • 13. 이세 히로무
  • 14. 이시다 켄타
  • 16. 오누키 신이치
  • 17. 미시마 카즈키
  • 19. 야마사키 야스아키
  • 20. 사카모토 유야
  • 21. 이마나가 쇼타
  • 22. 이리에 타이세이
  • 24. 사이토 슌스케
  • 26. 하마구치 하루히로
  • 27. 카미차타니 타이가
  • 28. 카츠마타 아츠시
  • 30. 이이즈카 사토시
  • 34. 히라타 신고
  • 35. 미카미 토모야
  • 40. 마츠모토 류노스케
  • 41. 사쿠라이 슈토
  • 42. 페르난도 로메로
  • 43. 신도 타쿠야
  • 45. 마이클 피플스
  • 47. 스나다 요시키
  • 48. 쿄야마 마사야
  • 53. 이케야 소타
  • 54. 아사다 소타
  • 56. 타카다 타쿠토
  • 58. 무토 유타
  • 59. 타이라 켄타로
  • 62. 에드윈 에스코바
  • 64. 카자하리 렌
  • 92. 쿠니요시 유키
  • 93. 나카가와 코오
  • 94. 카사이 타카마사

8.3. 포수


  • 10. 토바시라 야스타카
  • 29. 이토 히카루
  • 32. 마시코 쿄스케
  • 36. 타카죠 슈토 - 2018시즌 오릭스 버팔로즈로 트레이드 되었으나 2019시즌 종료 후 방출. 이후 요코하마에 재입단
  • 39. 미네이 히로키
  • 50. 야마모토 유다이
  • 57. 아즈마 쥰페이

8.4. 내야수



8.5. 외야수


  • 00. 미야모토 슈메이
  • 1. 쿠와하라 마사유키
  • 8. 카미자토 카즈키
  • 23. 타일러 오스틴
  • 33. 오토사카 토모 - 아버지가 미국인인 혼혈 선수.
  • 37. 쿠스모토 타이시
  • 52. 호소카와 세이야
  • 61. 에비나 타츠오
  • 63. 세키네 다이키

8.6. OB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존 12개 구단 중 한국인 선수(재일교포 제외)와 인연이 없는 유일한 구단이다.

8.6.1. 감독


  • 미하라 오사무 (1960 - 1967) - 팀 첫번째 우승당시 감독
  • 벳토 카오루 (1968 - 1972, 1977 - 1979) - 카와사키 구장 시대 타이요 훼일즈의 최후의 감독이자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최초의 감독. 3년 연속 A클래스의 성적을 올리는 등 만년 하위권을 달리던 이 팀에서 몇 안되는 좋은 성적을 거둔 감독이다. 감독직 은퇴 후에도 2년간 타이요에서 구단 대표를 맡기도 했다.
  • 아오타 노보루 (1973)
  • 미야자키 카나메 (1974)
  • 아키야마 노보루 (1975 - 1976)
  • 도이 준 (1980 - 1981)
  • 세키네 준조 (1982 - 1984)
  • 콘도 사다오 (1985 - 1986)
  • 코바 타케시 (1987 - 1989) - 다이요와 B클래스 동지(...)였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리그 우승 4회, 일본시리즈 우승 3회로 이끈 명장으로 5년 장기계약을 체결했으나, 3년 연속 B클래스를 기록하며 중도해임되었다.
  • 스도 유타카 (1990 - 1992) - 선수로썬 다이마이 오리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구단에서 우승을 경험했던 인물이었다. 은퇴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세이부 라이온즈 등에서 오랫동안 지도자를 맡았고 이 구단에선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 다만 감독 경력은 1992년 시즌 도중 성적부진으로 사임하며 흑역사가 되었다..
  • 콘도 아키히토 (1993 - 1995)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초대감독. 선수 시절 첫해인 1960년 다이요 웨일스를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신인선수로서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감독으로썬 B클래스만 주야장천 찍고 해임당했고 이후 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으로 취임해선 1998년 NPB 최고 기록인 18연패(連敗) 를 찍는 흑역사를 남기고 그 해 바로 짤렸다(...)
  • 오오야 아키히코 (1996 - 1997, 2007 - 2009)
선수 시절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명포수로 활약한 인물로, 1기 감독으로썬 팀의 비밀번호를 끊어냈지만, 2기 감독으로썬 좋지 못한 성적만 거뒀다. 결국 2기 감독을 맡던 2009년 시즌 도중 해임당했다.
  • 곤도 히로시 (1998 - 2000) - 팀 두번째 우승당시 감독. 이 팀 역사상 넘사벽급의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자율방임노선으로 인해 선수들과 알력을 일으키며 재계약에 실패한다(...)
  • 모리 마사아키 (2001 - 2002) - 전 소속팀에서는 팀을 리그 우승 8번, 일본시리즈 우승 6번으로 이끈 명장이었으나 이 팀에서는 첫 해 3위에 이어(그나마도 4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승률에서 밀리는데 승수 높아서 겨우 억지로 된 순위.) 이듬해 꼴찌로 꼬라박으며 팀의 암흑기를 열어버렸고 결국 그해 시즌 말 도중해임되었다.
  • 야마시타 다이스케 (2003 - 2004)
  • 우시지마 가즈히코 (2005 - 2006) - 2002~2015년의 암흑기 가운데 유일한 A클래스(2005년)를 기록했던 감독. 그러나 이듬해 최하위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다만 실제 사임 이유는 성적 향상에 뜻을 두지 않던 구단의 태도에 질려서라는 설이 유력하다.
  • 오바나 다카오 (2010 - 2011) - 소프트뱅크 호크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투수코치 역임. 투수코치로는 굉장히 높게 평가받으나 감독으로서는 영 아니올시다 였다.
  • 나카하타 키요시 (2012 - 2015)
  • 알렉스 라미레즈 (2016 - 2020)

8.6.2. 투수


  • 곤도 마사토시 (1953 - 1973)
  • 아키야마 노보루 (1956 - 1967) - 첫 우승당시의 에이스였던 언더핸드 스로 투수. 선수생활 동안 거둔 193승은 히라마츠에 이은 구단 통산 최다승 2위 기록.[102] 은퇴 후에 감독도 맡았지만 최하위권만 찍고 해임당했다.
  • 이나가와 마코토 (1962 - 1968) - 선수 생활은 7년밖에 안 될 정도로 짧았지만 이 후 투수 코치, 스카우트, 숙소장까지 맡다가 2012년 용퇴할때까지 다이요-요코하마에 헌신, 구단으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다. 홈런왕 오 사다하루에게 제 1호 홈런을 맞은 투수이기도 하다.
  • 히라마츠 마사지 (1967 - 1984) - 구단 사상 최다승인 201승을 찍은 투수이자 구단 사상 유일한 200승, 12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 최다승 2회를 기록한 명투수. 당연하지만(?) 명구회에도 가입했으며 유일한 다이요-요코하마 원클럽맨 투수 출신 가입자다.[103] 2017년에 이토 쓰토무, 호시노 센이치와 함께 일본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니이하리 신지 (1965 - 1968) - 선수생활은 4년, 통산성적은 9승 6패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선수가 바로 최초의 도쿄대학 출신 프로야구 선수다. 프로 데뷔 계기가 약간 특이한데, 대학 졸업 후 훼일즈의 모기업 타이요에 입사했다가 당시 타이요 사장 겸 구단 오너였던 나카베 켄키치에게 "남극해에 2~3년 갖다온 셈 치고 한번 프로 가서 뛰어봐라"란 말을 듣고 자회사 출향 형식으로 훼일즈에 입단하면서 데뷔했다. 은퇴 후엔 모기업 타이요로 복귀해 기업인으로 활동.
  • 사이토 아키오 (1977 - 1993) - 1977년 신인왕. 타이요에서 선발, 마무리로 번갈아 뛰면서 최다 세이브 3회, 구원왕(최다 세이브 포인트) 2회, 방어율 1위 1회, 우완투수 최초 100승 - 100세이브 기록을 차지했다. 가와사키시 시절의 타이요 훼일즈,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세 시대를 전부 경험한 유일한 선수.
  • 엔도 카즈히코 (1978 - 1992)
  • 카게하타 미츠노리 (1984 - 1994)
  • 다이몬 카즈히코 (1984 - 1993) [104]
  • 나카야마 히로아키 (1986 - 1991) - 구단의 흑역사 1. 요코하마 다이요에서 선발, 셋업맨, 마무리로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구단의 기대가 컸던 선수였지만 1991년 오프시즌에 요코하마 시내에서 여자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나카야마 본인이 잘못을 인정했고 피해자 측에서 합의를 받아들이면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후 다이요에서 방출됨과 동시에 일본야구기구에서 무기한 자격 정지를 받고 야구계를 떠나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복귀를 바라던 팬들이 모임을 만들어 21만명이 서명하면서 일본야구기구는 무기한 자격정지를 해제하였고, 1993년에 주니치 드래곤즈의 직원으로 입사하였고 1994년에 지배하 선수등록을 하며 복귀하게 되었다. 중간계투 셋업맨으로 준수하게 활약하며 재기에 성공했고 1999년에는 주니치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 이후 패전처리를 전전하다가 2001년 시즌을 끝으로 주니치에서 방출되고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대만프로야구팀 중신 웨일스에서 활약한 후 은퇴하고, 현재는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 마츠모토 유타카 (1986 - 1993)
  • 아이카와 히데아키 (1986 - 1993)
  • 니우라 히사오(김일융) (1987 - 1991)
  • 토모리 유이(데니 토모리) (1987 - 1996, 2003 - 2004) - 미국계 혼혈 선수. 요코하마 시절엔 무명이었지만 세이부 이적 후엔 미국식 이름인 '데니'라는 등록명으로 활동하면서 계투진으로 활약했다.
  • 노무라 히로키 (1988 - 2002)
  • 모리타 코키 (1988 - 1997)
  • 오카모토 토루 (1988 - 1995)
  • 타나베 마나부 (1989 - 1997)
  • 사사키 카즈히로 (1990 - 1999, 2004 - 2005)
  • 미즈오 요시타카 (1991 - 1994)
  • 와타베 타카시 (1991 - 1994)
  • 사이토 다카시 (1992 - 2005)
  • 시마다 나오야 (1992 - 2000)
  • 우도 카츠야 (1992 - 1996)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대 최초의 선발 투수. 199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이름을 걸고 치르는 첫 시합(4월 10일 도쿄돔, VS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의 개막전 선발투수를 맡았다.
  • 미우라 다이스케 (1992 - 2016) - 다이요 시대부터 요코하마, DeNA 시절까지 1군 기록이 있는 유일한 프랜차이즈 선수, 최후의 다이요 전사
  • 이가라시 히데키 (1993 - 2001)
  • 코히야마 마사히토 (1993 - 2001)
  • 토카노 히사시 (1993 - 2000)
  • 모리야마 료지 (1993 - 1995)
  • 나가노 요시나리 (1993 - 1996)
  • 오카 토모카즈 (1994 - 1998, 2010 - 2011)
  • 카와하라 류이치 (1994 - 2004)
  • 후쿠모리 카즈오 (1995 - 2003)
  • 요네 마사히데 (1995 - 2002)
  • 이토 아츠노리 (1995 - 1996)
  • 아라키 다이스케 (1996)
  • 요코야마 유키야 (1996 - 2003, 2007 - 2009)
  • 팻 마홈스 (1997 - 1998)[105]
  • 카와무라 타케오 (1997 - 2008)
  • 모리나카 마사오 (1997 - 2003)
  • 코미야마 사토루 (2000 - 2001)
  • 키즈카 아츠시 (2000 - 2010)
  • 나카노와타리 스스무 (2000 - 2003)
  • 라파엘 베탄코트 (2000)
  • 셰인 바워스 (2001 - 2002)
  • 에디 게일라드 (2003 - 2004)
  • 세드릭 바워스 (2004 - 2005)
  • 카도쿠라 켄 (2004 - 2006)
  • 우시다 시게키 (2004 - 2013)
  • 마크 크룬 (2005 - 2007)
  • 야마구치 슌 (2006 - 2016) - 2016년 선발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고 호기롭게 FA를 선언해 요미우리로 이적했으나, 병원에서 음주 폭행 사건을 터뜨리며 불구속 입건과 잔여시즌 출장정지와 해당분 연봉 미지급 크리, 약 1억엔에 달하는 손해를 보며 자신과 팀에 상당한 흑역사를 남겼다.
  • 쿠도 키미야스 (2007 - 2009) : 선수시절에만 우승반지를 11개를 낀 우승청부사. 그러나 다녀간 팀 중 요코하마만 우승시키지 못했고, (세이부, 다이에, 교진은 모두 우승에 성공.)팀에 대해 장렬히 비판했다.
  • 테라하라 하야토 (2007 - 2010)
  • 라이언 글린 (2009)
  • 레스 왈론드 (2009)
  • 첸웨이 (2009 - 2010) -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고, 정식 선수로 등록된 적도 없는 이 선수의 의의는 바로 중국 본토 최초의 요코하마 선수[106]라는 것. 톈진 라이온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요코하마에 육성선수로 입단하였으나, 2군에서 4경기 던지고 방출당해 톈진 라이온스로 돌아가서 아직까지 뛰고 있다. 정확히는 톈진과 요코하마 두 구단간의 교류로 인해서 NPB 경험차 요코하마로 임대된 것이라고 한다.
  • 스티븐 랜돌프 (2009 - 2011)
  • 크리스 부첵 (2010)
  • 왕이정 (2010 - 2013)
  • 카가 시게루 (2010 - 2018)
  • 브랜든 만 (2011 - 2012) - 요코하마에서는 보험용으로 데려와서 별 활약 없이 사라졌는데 방출 6년 후에 뜬금없이 메이저리그에 34세의 나이로 데뷔를 해서 주목받았다. 그리고 그 유명세 덕분에 7년 만에 일본에 복귀하는 데 성공.
  • 천관위 (2011~2014)
  • 하야시 마사노리(2012 - 2017)
  • 호르헤 소사 (2013 - 2014)
  • 엔옐베르트 소토 (2013 - 2014)
  • 오사다 슈이치로 (2013 - 2016)
  • 타카하시 히사노리 (2014 - 2015)
  • 카키타 유타 (2014 - 2017) - 현 시점 DeNA 시대 출범 이후 최악의 1라운드 망픽. 13년 드래프트에서 3구단 경합 끝에 하즈레픽으로 입단했으나 입단 첫 시즌부터 팔꿈치에 이상이 생기고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것도 모자라 해가 갈수록 기량이 퇴보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1군 마운드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채 2017년을 끝으로 방출당했다.
  • 오카지마 히데키 (2015)
  • 듀웨인 빌로우 (2015)
  • 재크 페트릭 (2016)
  • 타무라 죠 (2016 - 2019)
  • 필 클라인 (2017)
  • 조 윌랜드 (2017 - 2018)
  • 미즈노 코야 (2017 - 2019)
  • 아야베 카케루 (2015 - 2019) - 구단의 흑역사 3. 1군 통산 1승이 전부인 듣보잡 투수로 2019년 7월달에 18명의 여성과 불륜 혐의로 근신 처분을 받았었고 이후 청소년 보호 위반 및 아동 매춘, 포르노 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2019년 10월 11일에 불구속 기소됨과 동시에 방출.
  • 테라다 코키 (2018 - 2019)
  • 나카우시로 유헤이 (2018 - 2019)
  • 에디손 바리오스 (2018 - 2019)
  • 새미 솔리스 (2019)
  • 이노 쇼이치 (2013 - 2020)

8.6.3. 포수


  • 도이 기요시 (1956 - 1968)
  • 이치카와 카즈마사 (1981 - 1993)
  • 와카나 요시하루 (1983 - 1988)
  • 타니시게 모토노부 (1989 - 2001)
  • 아키모토 코사쿠 (1990 - 2000)
  • 야마네 요시노부 (1992 - 1998) - 구단의 흑역사 2. 현역 시절엔 타니시게 모토노부, 아키모토 코사쿠 등에게 밀려 백업 이하만 전전하던 이름없는 포수였지만, 은퇴 이후 이나가와카이 소속 야쿠자가 되었다가 사기사건으로 체포되면서 나쁜 쪽으로 현역 시절보다 훨씬 더 유명해져버렸다(....)
  • 오츠카 요시키 (1992 - 1996)
  • 카와사키 요시후미 (1994 - 2000)
  • 아이카와 료지 (1995 - 2008)
  • 츠루오카 카즈나리 (1996 - 2008, 2012 - 2013)
  • 니누마 신지 (1998 - 2012)
  • 나카무라 타케시 (2002 - 2004)
  • 타케야마 신고 (2003 - 2011)
  • 나카지마 사토시 (2003)
  • 쿠로바네 토시키 (2006 - 2017)
  • 호소야마다 타케시 (2009 - 2013)
  • 니시모리 마사시 (2012 - 2019)

8.6.4. 내야수


  • 곤도 아키히토 (1960 - 1973)
신인으로서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오른 선수이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초대감독으로 1993~1995년까지 역임했다.
  • 클리트 보이어 (1972 - 1975)
  • 존 시핀 (1972 - 1977)
카와사키 시절 말기 타이요의 중심타선으로 활약한 외국인 선수.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해 잠시 뛴 후 은퇴했다.
  • 야마시타 다이스케 (1974 -1988)
70~80년대 팀을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1976년부터 83년까지 8년연속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3 - 04년에는 팀의 감독도 역임했지만 팀의 하락세를 막지는 못했 다. 젊었을 적에는 날렵한 인상의 미남으로 여성 팬들에 인기가 많았지만 나이가 먹어 감독을 역임할 즈음엔 후덕한 인상의 대머리 아저씨가 되어 자학개그 소재로 써먹기도.
  • 마츠바라 마코토 (1962 - 1980)
60~70년대 팀을 대표하던 강타자이자 일본프로야구계의 진정한 무관의 제왕. 무관의 제왕에 소개된 다른 선수들은 타격과 관련된 주요 타이틀만 못 땄을 뿐 신인왕, 골든글러브, 베스트나인 등등 기타 수상경력이 있는 '불순물'임에 반해 이 선수는 선수생활 20년동안 통산 2095안타, 331홈런, 1180타점을 기록한 강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도 수상하지 못한 순도 100% 무관의 제왕이다. 이 정도 성적을 남긴 선수가 주요 타격 타이틀은 고사하고[107] 포지션별로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나 베스트나인 조차도 수상하지 못한 이유는 포지션 때문인데 이 선수의 주 포지션이 1루수와 3루수였다. 문제는 이 사람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기가 나가시마 시게오오 사다하루의 전성기와 정확히 겹친다는 것(...). 저 두 사람이 3루와 1루에서 포지션 관련 상을 쓸어가니 상을 받을래야 받을 수 가 없었다. 그나마 이 사람이 현역으로 있는 동안 시즌 최다안타는 2번 기록했지만 그 당시에는 최다안타는 수상항목이 아니었다(...)[108]안습. 원래 포수로 입단했음에도 불구하고 타격을 살리기 위해 미하라 오사무 감독의 제안으로 최초에는 3루수, 그리곤 곧 1루수로 보직을 변경했음에도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다리 찢기 캐치가 전매특허였을 정도로 우수한 수비수이기까지 했으니 골든글러브[109] 한 번조차 없는 것은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 다이요 역사상 최초의 2000안타 선수이며 다이요 시절 기록한 330홈런은 2017년 현재까지도 아직 구단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야말로 미스터 웨일스였다만 저 기록은 정말 눈물만 나올 뿐(...) 그나마 다행히도 1975년 올스타전 2차전에서 맹활약해서 MVP를 얻은 적은 있고, 현역 마지막 해인 198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되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맛보고[110] 은퇴해서 안습아닌 듯 안습인 현역 커리어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는 했다.[111]. 2009~2010년에 KIA타이거즈에서 인스트럭터로 타자들을 지도한 적이 있어서 이름 정도는 들어본 국내팬들도 있을 것이다.
  • 타시로 토미오 (1973 - 1991)
요코하마 타이요 시절 팀의 강타자로써 활약하며 타이요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 은퇴시합에서 만루홈런(!)을 쏘아올린 것과 2011년 SK 와이번스에서 코치직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 모토이 미츠오 (1979 -1984)
  • 타카기 유타카 (1981 - 1993)
  • 타카하시 마사히로 (1983 - 1996)
2011년에 기아 타이거즈에서 수비코치로 뛰었던 인물로 선수시절엔 준족의 유격수였다. 플루크 시즌인 1988년엔 159안타와 연속경기 무실책을 기록했지만 이후 이시이 타쿠로에게 밀리면서 내외야 유틸리티로 전략했고 치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당한다.
  • 쵸시 토시오 (1984 - 1991)
  • 시미즈 요시유키 (1988 - 1992)
  • 신도 타츠야 (1988 - 2000)
1998년 우승 당시의 주전 8번타자 내야수. 타율은 다소 낮으나 두자릿 수 홈런을 친 시즌이 꽤 있을 정도로 의외의 장타력을 보유한 선수였다. 후에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 후 은퇴.
투수로 입단했지만 타자전향 후 3루수, 유격수로 뛰며 명구회 가입까지 했던 선수. 빠른 발을 이용한 베이스러닝과 넓은 수비범위가 장점이었으며 골든글러브, 도루왕도 해본 적 있는 나름 간판스타였으나 노쇠화로 인해 팽당한 후 히로시마 카프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독특한 게다리타법으로 유명하다.
  • 무라타 슈이치 (2003 - 2011)
  • 타이론 우즈 (2003 - 2004)
  • 후지타 카즈야 (2005 - 2012)
  • 나이토 유타 (2006 - 2013)
  • 니시 토시히사 (2007 - 2009)
  • 야마자키 노리하루 (2009 - 2017)
  • 나카무라 노리히로 (2011 - 2014)
  • 우치무라 켄스케 (2012 - 2016)
  • 토니 블랑코 (2013 - 2014)
  • 시라사키 히로유키 (2013 - 2018)
  • 아롬 발디리스 (2014 - 2015)
  • 야나기다 시게오 (2014 - 2016)
  • 율리에스키 구리엘 (2014)
  • 야마모토 무사시 (2016-2018) - 등록명 무사시(武白志). 전 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인 야마모토 고지[112]의 아들로 고등학교 때 고시엔에서 장타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입단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본인의 희망과는 달리 요코하마만이 육성 3순위로 지명하는 결과가 나와서 드래프트 당일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사회인이나 대학을 가서 좀더 기량을 갈고 닦으라는 주변의 충고를 무시하고 프로를 지망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데 그 때문에 드래프트 때는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선수라는 인상을 주었다. 다만 이 선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도 되지 않아 부친상을 당하게 됐는데 이미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 일이 알려지고 나서 이 선수가 무리하게 프로를 지망한 것도 자신을 꿈을 위해서 거주지까지 옮긴(이 선수는 고시엔 진출의 가능성을 위해서 후쿠오카 국제대학 부속고에 진학을 했는데 이 때문에 살던 집을 팔고 온 가족이 아무 연고도 없는 후쿠오카로 이사를 하면서까지 아들을 지원했다.) 아버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한시라도 빨리 프로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참고로 본인의 아버지가 44세때 얻은 자식으로 상당한 늦둥이이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2군에서도 털리면서[113] 3년 만에 방출. 이후 프로 크리켓 선수에 도전하게 되면서 야구는 완전히 은퇴했다.
  • 아우디 시리아코 (2017)
  • 마츠오 타이가 (2017 - 2019) - 제적시절 등록명 타이가(大河).
  • 카리노 유키카즈 (2017 - 2019)
  • 나카가와 타이시 (2018 - 2019)


8.6.5. 외야수


초창기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강타자. 일본 프로야구 시즌 최다타점(161), 최다득점(143), 최다루타(376) 기록 보유자이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시즌 50홈런을 기록했다. 모두 일본에서 양대리그가 시작된 1950년의 기록인데 이 해의 기록이 타율 .355, 51 홈런, 161 타점, 출루율 .450, 장타율. 729로 OPS만 무려 1.179를 기록했다(...) 다만 이 선수의 소속팀은 1952년 타이요와 합병한 쇼치쿠 로빈스 소속이었고 쇼치쿠가 타이요와 통합됐을 무렵에는 히로시마로 이적한 상태였기 때문에 훼일즈/베이스타즈 OB로 치기엔 무리다. 나름 일본프로야구의 족적을 남긴 강타자이긴 하나 쇼치쿠 팀의 항목이 없어서 일단 합병 후 잠시나마 함께 역사를 공존해 왔던 이 팀에 들어와 있다고 보는 게 좋다.
  • 콘도 카즈히코 (1958 - 1972)
  • 타카기 요시카즈 (1972 - 1987)
  • 야시키 카나메 (1978 - 1993)
  • 야마자키 켄이치 (1981 - 1993)
  • 가토 히로카즈 (1983 - 1990)
  • 송재박(요시모토 히로시) (1983 - 1987)
  • 카를로스 폰세 (1986 - 1990)
  • 오카와 타카시 (1986 - 1995)
  • 짐 파치올렉 (1988 - 1991)
  • 요코타니 아키마사 (1988 - 1995)
  • 미야자토 후토시 (1989 - 1997)
  • 이노우에 준 (1989 - 2002)
  • 카와바타 카즈아키 (1990 - 2000)
  • 히라츠카 카츠히로 (1990 - 1993)
  • 하타야마 히토시 (1991 - 1999)
  • 스즈키 타카노리 (1991 - 2008)
  • 코노 준키(홍순기) (1992 - 1993)
  • 오사나이 타카시 (1992 - 1993)
  • 사에키 타카히로 (1993 - 2010)
머신건 타선의 일원 중에서는 비교적 늦게까지 팀에 남아서 활약하던 선수. 입단 당시엔 1루수였고, 이후 외야를 겸업하였다. 1997년 4월 4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와일드피치 때 홈으로 들어오던 중 오심으로 아웃되면서 선동열에게 행운의 시즌 첫 세이브를 안겨준 당사자이기도 하다. 특이사항으로 현역 시절 1루수로서 무려 3차례나 히든 볼 트릭을 성공시킨 바 있는데 그 중 마지막은 2006년 이승엽을 상대로 성공시킨 것이었다.
  • 글렌 브랙스 (1993 - 1996)
  • 하루 토시오 (1994 - 2001)
  • 타무라 히토시 (1995 - 2006, 2013 - 2015)
  • 이시이 요시히토 (1997 - 2002)
  • 아라이 유키오 (1998 - 2000)
  • 나카네 히토시 (1998 - 2003)
  • 킨죠 타츠히코 (1999 - 2014)
  • 다나카 카즈나리 (1999 - 2006)
  • 후루키 카츠아키 (1999 - 2007)
  • 코이케 마사아키 (1999 - 2008, 2012 - 2013)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함께 요코하마 고교의 고시엔 제패를 이끈 동기 선수였다.
한국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나름 한국계 외국인 선수.

8.7. 팀 출신 메이저리거



9. 역대 성적


<color=#373a3c>­
리그 우승[115]
­
2위
<color=#373a3c>­
3위

B클래스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
''''''
''''''
'''승률'''
'''포스트시즌'''
1950
5위/8팀
<colbgcolor=#0066b3> 5위
'''다이요 훼일즈'''
140
69
68
3
.504

1951
6위/7팀
6위
108
40
64
4
.385

1952
4위/7팀
4위
120
58
62
0
.483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
''''''
''''''
'''승률'''
'''포스트시즌'''
1953
5위/6팀
5위
'''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30
52
77
1
.403

1954
6위/6팀
6위
130
32
96
2
.250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
''''''
''''''
'''승률'''
'''포스트시즌'''
1955
6위/6팀
6위
'''다이요 훼일즈'''
130
31
99[116]
0
.238

1956
6위/6팀
6위
130
43
87
0
.331

1957
6위/6팀
6위
130
52
74
4
.415

1958
6위/6팀
6위
130
51
73
6
.415

1959
6위/6팀
6위
130
49
77
4
.392

1960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30
70
56
4
.554
'''일본시리즈 (4-0 vs 다이마이)'''
1961
6위/6팀
6위
130
50
75
5
.404

1962
2위/6팀
2위
134
71
59
4
.546

1963
5위/6팀
5위
140
59
79
2
.428

1964
2위/6팀
2위
140
80
58
2
.580

1965
4위/6팀
4위
140
68
70
2
.493

1966
5위/6팀
5위
130
52
78
0
.400

1967
4위/6팀
4위
135
59
71
5
.454

1968
5위/6팀
5위
133
59
71
3
.454

1969
3위/6팀
<color=#373a3c> 3위
130
61
61
8
.500

1970
3위/6팀
<color=#373a3c> 3위
130
69
57
4
.548

1971
3위/6팀
<color=#373a3c> 3위
130
61
59
10
.508[117]

1972
5위/6팀
5위
130
57
69
4
.452

1973
5위/6팀
5위
130
60
64
6
.484

1974
5위/6팀
5위
130
55
69
6
.444

1975
5위/6팀
5위
130
51
69
10
.425

1976
6위/6팀
6위
130
45
78
7
.366

1977
6위/6팀
6위
130
51
68
11
.429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
''''''
''''''
'''승률'''
'''포스트시즌'''
1978
4위/6팀
4위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
130
64
57
9
.529

1979
2위/6팀
2위
130
59
54
17
.522

1980
4위/6팀
4위
130
59
62
9
.488

1981
6위/6팀
6위
130
42
80
8
.344

1982
5위/6팀
5위
130
53
65
12
.449

1983
3위/6팀
<color=#373a3c> 3위
130
61
61
8
0.500

1984
6위/6팀
6위
130
46
77
7
.374

1985
4위/6팀
4위
130
57
61
12
.483

1986
4위/6팀
4위
130
56
69
5
.448

1987
5위/6팀
5위
130
56
68
6
.452

1988
4위/6팀
4위
130
59
67
4
.468

1989
6위/6팀
6위
130
47
80
3
.370

1990
3위/6팀
<color=#373a3c> 3위
133
64
66
3
.492

1991
5위/6팀
5위
131
61
69
1
.469

1992
5위/6팀
5위
131
61
69
1
.469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
''''''
''''''
'''승률'''
'''포스트시즌'''[118]
1993
5위/6팀
5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30
57
73
0
.438

1994
6위/6팀
6위
130
61
69
0
.469

1995
4위/6팀
4위
130
66
64
0
.508

1996
5위/6팀
5위
130
55
75
0
.423

1997
2위/6팀
2위
135
72
63
0
.533

1998
1위/6팀
<color=#373a3c> 우승
136
79
56
1
.585
'''일본시리즈 (4-2 vs 세이부)'''
1999
3위/6팀
<color=#373a3c> 3위
135
71
64
0
.526

2000
3위/6팀
<color=#373a3c> 3위
136
69
66
1
.511

2001
3위/6팀
<color=#373a3c> 3위
140
69
67
4
.507[119]

2002
6위/6팀
6위
140
49
86
5
.363

2003
6위/6팀
6위
140
45
94
1
.324

2004
6위/6팀
6위
138
59
76
3
.437

2005
3위/6팀
<color=#373a3c> 3위
146
69
70
7
.496

2006
6위/6팀
6위
146
58
84
4
.408

2007
4위/6팀
4위
130
71
72
1
.497

2008
6위/6팀
6위
144
48
94
2
.338

2009
6위/6팀
6위
144
51
93
0
.354

2010
6위/6팀
6위
144
48
95
1
.336

2011
6위/6팀
6위
144
47
86
11
.353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
''''''
''''''
'''승률'''
'''포스트시즌'''
2012
6위/6팀
6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144
46
85
13
0.351

2013
5위/6팀
5위
144
64
79
1
0.448

2014
5위/6팀
5위
144
67
75
2
0.472

2015
6위/6팀
6위
143
62
80
1
0.437

2016
3위/6팀
<color=#373a3c> 3위
143
69
71
3
0.493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요미우리'''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히로시마)
2017
3위/6팀
<color=#373a3c> 3위
143
73
65
5
0.529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4-2 vs 히로시마)'''
일본시리즈 (2-4 vs 소프트뱅크)
2018
4위/6팀
4위
143
67
74
2
.475

2019
2위/6팀
2위
143
71
69
3
.507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한신)
2020
4위/6팀
4위
120
56
58
6
.491

<color=#373a3c> ''' NPB 통산 71시즌'''
'''리그우승 2회'''
<color=#373a3c>
<color=#373a3c> '''9500'''
<color=#373a3c> '''4119'''
<color=#373a3c> '''5096'''
<color=#373a3c> '''299'''
<color=#373a3c> '''0.448'''
<color=#373a3c>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 국립국어원 표기 용례에 따르면 '요코하마 데나 베이스타스'가 된다.[2] 카와사키랑 요코하마는 같은 카나가와현에있고 도시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1955년 부터 계속 같은 연고지인 것으로 간주한다.[3] 2000년부터 2010년까지 2군 팀만 이름을 달리해서 쇼난 시렉스(湘南シーレックス, Shonan Searex)라고 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넥센 히어로즈(1군)와 화성 히어로즈(2군), 2019년부터의 키움 히어로즈(1군, 앞의 넥센 히어로즈와 같은 팀)와 고양 히어로즈(2군, 뒤의 고양 다이노스와는 다른 팀), 또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NC 다이노스(1군)과 고양 다이노스(2군)의 관계와 같다.[4] 이 기록이 더욱 놀라운 점은 1930년대에 창단한 팀들을 모조리 제치고 가장 먼저 달성했다는 점. 위의 표에도 나와있지만 이 팀이 창단하고 리그에 참여한 해는 '''1950년'''이다. 여담으로 한신과 오릭스도 2019시즌에 요코하마의 뒤를 이어 통산 5000패를 달성했는데 이 두 팀은 그래도 각각 1935년, 1936년에 창단하고, 1936년 시즌부터 참여했으며, 팀 통산 승률이 5할은 넘는다.[5] 한글로 웨일즈나 웨일스로 표기하기도 한다. 현대 영어의 많은 화자들이 Whales의 wh 부분을 /hw/(정확히는
[
ʍ
]
)로 발음하지 않고 /w/로 발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6] 타카하시 유니온즈를 흡수하여 다이에이 유니온즈가 된 후 해체.[7] 전형적인 일본식 영어라서 미국 매체들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탬파베이 레이스처럼 지명 자체에 '베이'가 붙고 팀명에도 그걸 사용하는 케이스들처럼 착각해서 요코하마 + 베이스타즈가 아니라 요코하마베이 + 스타즈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금은 요코하마 뒤에 DeNA가 붙었으니 오해의 가능성이 줄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코하마 DeNA 베이' + '스타즈'로 오해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참고로 그냥 '스타즈'는 캐삭빵에 패해 마이니치 오리온스로 흡수되어 해체되긴 했지만 '다이에이 스타즈'라는 팀[6]이 있었다. '이글스' 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고라쿠엔 이글스' 란 팀이 있었다가 해체되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골든이글스''' 란 이름이 붙은 이유.[8] 쥬세이카츠 그룹 - 건축 관련 기업의 합동기업.[9] 모바일 게임의 일본식 표기인 モバイルゲーム를 줄인 モバゲー를 그대로 로마자로 적어서 Mobage라고 쓴 것이다.[10] 이 날 패전투수가 바로 하마의 반쵸 미우라 다이스케였다.[11] 그래서 팀명에 훼일스(고래)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12] 팀 승률 3할 미만은 상상도 못할 벌금 부과라는 사실상 캐삭빵을 해서 히로시마 카프까지는 살아남았고, 쇼치쿠가 3할에 못 다다르며 다이요와 합병했다.[13] 앞의 요쇼는 다이요(大洋)의 '''요(洋)'''와 쇼치쿠(松竹)의 '''쇼(松)'''을 따서 지은 것이다.[14] 다이요어업에서 마루하로 개칭한 이름. 참고로 마루하는 개명 이전에도 다이요 어업에서 썼던 브랜드로 타이요 웨일스 시절(정확히는 카와사키 시절) 동그라미 안(참고로 동그라미는 일본어로 '''마루''')에 히라가나 'は('''하''')'가 박힌 로고를 소매패치로 쓰기도 했다.[15] 1954년부터 6년연속 최하위였다.[16] 그리고 창단 이래 최초의 리그 A클래스.[17] 근데 한신은 양대리그 시대 이전엔 리그 우승을 4번 하긴 했다.[18] 이 때의 요코하마 타선은 특별히 거포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어서 단타, 2루타 위주로 득점을 내기는 했지만 타선이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듯, 1번부터 8번까지 정신을 못차릴 정도의 연타로 상대팀 마운드를 KO시키는 게 주특기였다.[19] 이 시기동안 요코하마는 1997년에서 2000년까지 수위타자를 독점한다. 스즈키 타카노리(1997년, 1998년), 로버트 로즈(1999년), 긴조 타츠히코(2000년).[20] 가장 큰 특징은 시마다 나오야, 수염마인 이가라시 히데키, 곤도의 긴테츠 시절 애재자이던 아와노 히데유키, 사사키의 후계자로 기대되던 요코야마 유키야나 왼손 스윙맨 세키구치 이오리중간계투진의 로테이션화를 들 수 있다.[21] 1969~1971년 다이요 훼일스 시절 벳토 카오루 감독 휘하에서 3년 연속 3위를 기록한 이후 두번째. 괜히 거인의 별의 호시의 라이벌 "사몬 호사쿠"가 다이요 소속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22] 이 해가 나가시마 시게오교진군 2기 감독 시절 유일한 B클래스(4위)를 찍은 해였다. 전년도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14게임차 나던 걸 뒤엎고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선(일명 '''메이크드라마'''.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선 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패배했다) 다음 해 하위권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지도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23] 세이부는 1985년 일본시리즈에서 한신 타이거스에 유일한 승리를 헌납한 팀이기도 하다.[24] 당시 센트럴리그 최다안타기록. 이 기록은 2005년 202안타를 친 아오키 노리치카에 의해 깨지고, 2010년에 214안타를 친 맷 머튼에 의해 다시 한번 깨진다.[25] 그 예로 5년 연속 A클래스의 마지막 해인 2001년엔 '''3위팀 주제에 승률이 4위팀이었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밀렸다.''' 당시 베이스타즈의 성적은 69승 67패 4무 '''승률 0.507''' 이었고 카프의 성적은 68승 65패 7무 '''승률 0.511''' 이었다. 이렇게 기묘하고 이상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1위와의 게임차도 3위인 베이스타즈가 8인데 4위인 카프가 7.5인 못 웃을 상황까지 벌어졌다. 왜 이런 상황이 됐냐면 '''이 해엔 승률이 아니라 승리 수로 순위를 결정지었기 때문(...)'''[26] 1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73번), 2위는 한신 타이거스(50번), 3위는 주니치 드래곤즈(49번), 4위는 오릭스 버팔로즈(47번), 5위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45번), 6위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44번), 7위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9번), 8위는 치바 롯데 마린즈(26번), 9위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22번), 10위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18번).[27] 이렇듯 만년 약체팀 취급을 받다보니 실제로 캠프 기간 중 한국 야구팀과 일본야구팀이 연습경기라도 할라치면 모 사이트에서 "한화 이글스가 어떤 팀이냐"라는 질문이 들어오는 경우 한국야구 사정을 잘 아는 유저로부터 '''NPB로 치면 암흑기 요코하마'''라는 한마디 대답으로 정리되는 수준.[28] 일본프로야구 사상 우타자로서는 단일시즌 최고 타율 기록이다.[29] 이 때부터 우치카와가 완전히 각성(?)하게 되어서 3할 타자에 장타력도 보유한 중장거리형 타자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5년 후, 한국에 있는 이 팀과 운명이 똑같던 팀이 굴욕을 한 번 더 겪게 되었다. 당시 타격 1위가 0.348, 2위가 0.345, 한화 승률은 0.331. [30] 잔여 시즌은 타이요 훼일즈 시절의 레전드였던 타시로 토미오 코치가 대행을 맡았다. 2011 시즌에 SK 와이번스의 코치를 맡았던 그 분 맞다. SK 이후 요미우리, 라쿠텐의 코치를 역임했다가 2019년 다시 친정팀 코치로 복귀했다.[31] 이를 간단하게 비교해볼것 같으면 1986년 뉴욕 메츠와 당시 동부지구 최하위였던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승차가 '''44 게임'''이었다.[32] 하시모토는 롯데에서 백업포수로 뛰면서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준수한 공격형 포수였으나 부상으로 먹튀화되어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계약기간 종료 후 방출당해 은퇴했다.[33]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이, 요코하마는 144경기에서 90패를 한 거고, 롯데 자이언츠는 133경기에서 2년 연속 90패를 했다는 것. 요코하마가 144경기 중 54승 90패를 거두었다면, 승율이 .351이 되는데, 한국프로야구 기준으로 3할5푼 승율 찍을려면 133경기에서 47승 86패이다. 즉, 일본에서의 90패와 한국의 85패가 승율이 같다는 소리.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2001년 70패, 2002년 97패, 2003년 91패, 2004년 72패로, 85패 이상도 2년연속으로 끝냈다.[34] 7월30일 현재 4승 7패 108.2이닝 '''방어율 2.73'''[35] 7월30일 현재 2승 2패 39.2이닝 '''방어율 2.50'''[36] 7월30일 현재 1승2패 '''18세이브 방어율 2.01'''[37] 그나마 히로시마는 2011년에는 벌링턴이 가세하면서 좀 나아지긴 했는데 이번에는 마에다가 부진의 늪 속으로... [38] 7월30일 현재 .238으로써 주니치나 요미우리보다 높다 센트럴 리그 4위[39] 오바나 타카오가 요코하마의 감독을 맡으면서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진은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다.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코치였다는 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경우에는 워낙 재능이 훌륭한 선수가 많았던지라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40] 선수로써는 사실상 끝난거나 다름없는데도 현역을 고집해서 몆 년 전에만 해도 노장의 투혼이라고 박수를 받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쓸 데 없는 똥고집 부린다고 야구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있다. 나이로 보았을때 코치로 시작하기에도 많은 나이라 지도자 전향이 더 늦어지면 프로에서 감독 코치하긴 힘들듯 하다. 하지만 2015년 시즌에 아키야마 코지의 뒤를 이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41] 오해하지 말 것은 요미우리 선수 시절에도 개그맨 기질로 유명했다.[42] 나가하타보다 4살 아래[43] 나가하타보다 '''19살 아래'''. 이러니 빡칠 만 하다...[44] 묘하게도 이런 예가 비슷하나마 미국에서도 존재한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빌 벨리칙 코칭 스태프 출신 감독들 역시 성과가 안 좋았는데 오펜시브 라인 코치였던 에릭 맨지니는 라이벌 뉴욕 제츠감독으로 영전해 갔으나 중,하위권을 맴돌다 끝났으며,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였던 조쉬 맥대니얼 또한 덴버 브롱코스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역시 성적문제로 해임되었다. 그나마 맥대니얼은 친정팀으로 돌아오기라도 했지..[45] 7월 16일과 17일의 시합에서도 야쿠르트를 상대로 각각 7-5, 6-2로 승리(둘 다 홈 경기). 이 탓에 안그래도 히로시마에게 추격당하던 아쿠르트는 7월 19일 현재 공동 3위가 되었다(...) 여담으로 히로시마는 그 전인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3경기에서 요코하마를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였다.[46] 참고로 2006 시즌의 경우, 완전 폭망해서 이승엽 혼자서 버티던 교진군이 5위 찍었다(...)... 07년 5위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6위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47] 위키백과에 등재된 시즌 기록에 의하면, 5년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동안 승수는 48-51-48-47-46. 어째 '''승수도 같이 줄어들고 있다(...)'''[48] 2013년 10월 9일 기준으로 센트럴리그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는 6게임, 4위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1게임, 그리고 꼴찌 야쿠르트 스왈로즈와는 5게임 반 차이.[49] 다시 말하면 투수진이 아직도 막장이라는 뜻이다... 안습. 참고로 야쿠르트는 팀 방어율 4.26을 기록[50] 강정호는 캠프 때 열심히 했는지 일본 야구팬들에게 굉장한 호응을 받으며, 차기 KBO 리그에서 FA가 되면 영입하고 싶은 선수 였을 정도로 당시 주가가 높았다. 이를 기점으로 강정호는 리그를 개박살 낼 실력으로 FA는 아니여도 포스팅 시스템 제도로 인한 한국 내야수 최초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하는 계기가 된다.[51]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타석에서 병살타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공헌했던 그 구리엘 맞다.[52] 이후 구리엘은 미국 언론과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논지의 인터뷰를 해버려서 요코하마 팬들한테 영구 까임권을 획득했다. [53] 2014년 성적이 22홈런 57타점 '''타율 0.243'''으로 매우 완벽한 공갈포였다.[54] 한신 말고는 아무도 세리그에서 승패마진 + 를 내지 못했다![55] 이 시즌 기준으로 고졸 10년차, 28세의 구로바네가 포수 최고참이었다.[56] 요코하마 DeNA의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클린치 넘버가 0이 되면 드디어 전 구단이 클라이맥스 시즌 출전 경험을 갖게 된다.[57] 마지막 우승이 히로시마 2016년, 야쿠르트 2015년, 요미우리 2014년, 주니치 2011년, 한신 2005년, 요코하마 1998년.[58] 요미우리 2012년, 주니치 2007년, 야쿠르트 2001년, 요코하마 1998년, 한신 1985년, 히로시마 1984년. [59] 본인은 1998년 일본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나와서 패전투수가 된 바 있다. 현재 요코하마 선수 중에서 요코하마 유니폼을 입고 포스트시즌을 경험해 본 유일한 선수이다.[60] 히로시마 2016년, 도쿄 야쿠르트 2015년, 한신 타이거스 2014년, 자이언츠 2013년, 주니치 2011년, 요코하마 디엔에이 1998년. 그런데 2015년까지 둘 다 2010년대엔 진출한 경험이 없었으니 진 쪽은 오래된 구단으로 남게 되는 처지이긴 했다.[61] FA로 요미우리로 이적한 야마구치의 보상선수다.[62] 2016년 이전 마지막 A클래스를 기록한 2005년의 성적은 69승 70패 7무, 승률 .496으로 아쉽게 5할 승률을 찍지 못했다. [63] 2승 4패로 겉만 보면 그렇게 좋지 않은 성적이겠지만, 상대가 강팀인 소프트뱅크인데다가, 점수도 1차전(1:10 후쿠오카 승), 4차전(6:0 요코하마 승)을 제외하고는 전부 1점차 승부였다.[64] 오릭스가 팀타율 꼴찌로 밀려났다.[65] 20실점은 무려 22년만이다.[66] 주니치가 하나라도 이겼으면 디엔에이가 이긴다 해도 히로시마 우승 확정인데 보기 좋게 피스윕을 당해버러서...[67] FA이적생 야마토와 중견수를 번갈아가며 맡았던 쿠와하라 마사유키, 카미자토 카즈키가 2할 4~6푼 가량의 타율을 기록했고 나머지 타자들은 절망적인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했다. 특히 포수쪽의 타격 침체가 매우 심각했는데 지난시즌 플래툰으로 기용되었던 토바시라와 미네이는 두명 다 1할 8푼도 치지 못했다(...)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이토 히카루 역시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타격으로 한숨을 자아내는데 그쳤다.[68] 후쿠오카 출신이다.[69] 이날 요코하마는 총 3번의 포구 실수가 나왔는데 첫 번째가 우익수인 소토의 타구 판단 미흡으로 인한 낙구, 두 번째가 파울플라이를 놓친 이토 히카루였다. 그나마 저 두 개는 팀이 리드를 잡고 있을때 나온 플레이인데 문제는 8회말 8:7로 턱 밑까지 추격한 상황에서 나온 포구 실책이다. 이 당시 요코하마는 2아웃 만루상황에서 야마사키 야스아키를 올렸고 상대타자인 후쿠도메 코스케를 뜬공으로 잡아내는 듯 했으나 우익수인 소토가 아마추어 선수들도 안 할 치명적인 포구 실수를 저질렀다. 한신은 주자 3명이 모두 홈을 밟으며 순식간에 역전을 당했고 멘탈이 터져버린 야마사키는 2점을 더 헌납하며 흐름을 완전히 내 주고 말았다. 참고로 이날 선발투수였던 신인 투수 카미챠타니 타이가의 데뷔 첫 승은 이번에도 허무하게 날아가버렸다.[70] 16연패는 야쿠르트 구단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이자 센트럴리그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이다.[71] 5연패 과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 주니치전에선 5:1로 이기던 경기를 불펜 난조로 인해 10:5까지 벌어졌다가 9회말 희망고문끝에 10:8로 패배했다. 야쿠르트 3연전이 최악중의 최악이었는데 첫 경기는 야마사키가 공 7개만에 3점을 내리 퍼주며 4:2로 이기던 경기를 4:5로 끝내기 패. 두번째 경기는 5:1로 이기고 있다가 선발 카미챠타니가 4회에 와르르 무너지며 역전을 허용. 어찌저찌 7:7을 만들었으나 결국 결승점을 내주며 8:7패배. 마지막 경기는 아예 초반부터 개박살이 나며 15:2로 참패했다. 상대선발 이시카와 마사노리가 7회까지 노히트를 기록할만큼 타선이 전혀 힘을 못 썼다. 그리고 히로시마와의 3연전 첫 경기는 오세라 다이치에 완벽히 틀어막히며 완봉패.[72] 연속 B클래스 자체로 보면 주니치가 더 길지만 그래도 오릭스와는 달리 21세기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은 해봤다. 주니치의 가장 최근 리그 우승은 2011년, 가장 최근 일본시리즈 우승은 2007년.[73] 9회 2아웃에서 오세라와 17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를 벌인 끝에 볼넷 출루했다.[74] 그것도 모자라 오세라는 이날 데뷔 첫 홈런까지 쳤다...[75] 2012년 마에다 켄타, 2013년 야마이 다이스케 이후 3번째[76] 로페스는 2020시즌 도중에 용병제한이 풀리는 권한을 얻으면서 용병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지만 노쇠화에 따른 기량저하로 인해 그를 주전으로 쓰기 애매하다고 판단한 요코하마 구단측에서 계약을 하지 않았다.[77] 구단 신기록[78] 구단 신기록[79] 이미 다이요 훼일즈 시절부터 스스로 강팀이 되려하기보다는 적당적당히 운영비 아껴가면서 요미우리전의 떡고물이나 받아먹자라는 자세가 이 팀의 고질적인 분위기로 정착해 있었다.[80] 문어발 같은 계열사 운영들과 과다한 IP 팔이로 인해 생긴 일이다.[81] 다만 최근에 일어난 유벤투스&호날두 이슈와 겹쳐 모기업 계열사는 유벤투스에 큰 돈을 쓰면서 모기업 야구단에 대한 투자가 마케팅,경영 부분에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지에서의 비판은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다.[82] 심지어 관중 동원을 위해 게임사 이벤트를 이용하여 DeNA,Cygames 등의 자회사들과 콜라보를 하여 숫자 자체로는 관중동원력을 늘린 것에 비해 경기가 어느정도 진행되면 관중 수가 훅 감소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KBO의 nc도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83] 추가로 2020년 코로나19 이슈로 인한 무관중경기로 리그를 진행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와 여태 한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존재한다.[84] 불과 10년 전인 2009년의 요코하마 평균관중수가 17000명대였다. 이는 당시 평균관중수 전체 1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으며 '''그 관중없다던 오릭스와 지바 롯데보다도 관중동원력이 형편없었다.'''[85] 실제로 2015년 시즌 이후로 주니치 드래곤즈의 대대적인 세대교체 움직임으로 팀에 재적했던 수많은 베테랑들이 옷을 벗으면서 2016년 시즌 현역 투수중에서 최연장자가 됐다.[86] 거기다 이시이가 1993년부터 써 왔던 응원가가 히로시마 이적 후에도 계속해서 쓰인 덕분에 양 팀 팬들 모두가 이시이의 응원가를 같이 부르는 광경이 펼쳐졌다. 요코하마 팬들이 반복해서 응원가를 부르면 반대편 히로시마 팬들이 스쿼트 응원으로 이시이의 이름을 연호하는 진풍경이 경기 내내 펼쳐졌고 마지막 타석때는 양 팀 팬들의 응원가 열창에 이시이도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87] 출처 리라하우스.[88] 일본어로 '베이스볼'을 본래는 가타카나로 ベースボール이라 표기하는데, 베이스타즈를 조롱할 때의 '베이스볼'은 '베이스타즈(ベイスターズ)'의 ベイス를 따서 ベイスボール이라 적는 것. 영어로 표현하면 Baysball쯤 되는 표현이다. '베이스'와 '볼' 사이에 '베이스타즈'의 별을 집어넣어 'ベイス★ボール'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별은 흰색으로 넣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검은 색인데, 일본 야구 매체에서 보통 승리를 '흰 별'(○, 시로보시), 패배를 '검은 별'(●, 쿠로보시)라 표현하기 때문이다.(...)[89] 정확히는 '''있었긴 했다.''' 1997년부터 2012년까지 등번호 100번을 '''구단에 큰 공헌을 한 저명한 인물들'''의 영구결번으로 삼았지만, 2013년부터 육성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한 이마이 킨타에게 이 등번호가 주어지면서 영구결번이 해체되었다. 이후 2015년 이마이가 방출된 후엔 그 해 이마이와 똑같이 육성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한 아미아 케이쇼가 이 등번호를 쓰는 중.[90] 의외로 교류전이 처음 시행된 2005년에는 19승 17패로 선전하였다. 뭐 이때는 A클래스를 찍은 해였다고는 쳐도 꼴찌로 곤두박질친 2006년에도 15승 21패라는 그렇게 막장스러운 성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교류전 최약체로 전락한 이유는 2007년 14승 1무 9패를 찍은 이후 2008~2013년까지의 교류전 성적이 워낙 개판이었기 때문. 2014년엔 13승 11패로 선전하기도 했다. 2016년 이후의 교류전 성적을 보면 그런대로 중박은 치는 모습.[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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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홋시, 왼쪽이 홋시나, 오른쪽이 홋시조. 참고로 2004년에 모 예능과 연계하여서 온갖 기행을 일삼는 스페셜 마스코트 '블랙 홋시'가 등장한 적이 있다. 충혈된 눈 위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며, 이른바 '유성 점프'라는 근본없는 다이빙으로 상대팀 마스코트와 팬들을 약올리는 역할을 했었다.
[92] 당시 롯데의 팀명은 롯데 오리온즈.[93] 우치카와 본인은 그런뜻으로 했던 말은 아니었다고 후에 부정했지만, 그럼 위의 발언은 원래는 뭔뜻이었냐는말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94] 중간에 격투기 선수로 전향해 경기를 가진 적이 있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 프로 시절에는 장타력은 있는데 선구안과 컨택이 막장인 2군 본즈로도 유명했다. 커리어 하이는 22홈런을 친 2003년인데, 타율은 .208, 37타점에 그쳤다.[95] 지바 롯데에 이어 두번째 방출, 한신에 완전히 정착했으나 2015년을 마지막으로 또 방출.[96] 발디리스는 오릭스에서 연봉문제로 재계약이 결렬된 후 요코하마로 옮겼는데 요코하마에서도 반쯤 먹튀였던 상황이었다. 쿄세라 돔에서 꾸준히 15~18홈런씩 쳐줬으니 타자친화구장인 요코하마로 가면 20홈런은 거뜬히 넘길 줄 알았는데 홈런 갯수는 그대로고 다른 타격스탯과 수비까지 하락. 물론 먹튀였다고 하지만 오릭스 시절에는 별 말 없이 잘 지냈던 걸 보면 암흑기 시절 요코하마는 그 오릭스보다도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97] 오죽했으면 요코하마에서 떠난 선수들의 코멘트 모음도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는 그 중의 아주 일부분만 발췌해서 적는다.[98] 요코하마 외에는 그나마 야쿠르트가 많은 편이긴 한데 어쨌든 이쪽도 도쿄 연고를 유지하고 있고 팀명도 '아톰즈'로 잠깐 바꿨다가 창단 당시의 '스왈로즈'로 돌아갔다.[99] 센트럴 리그 팀 중 유일하게 연고지 이전한 구단이다.[100] 그래도 히로시마는 84년 우승이 구단의 세번째 우승이었지만 한신은...에고, 눈물 좀 닦자...[101] 참고로 일본시리즈 우승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킨테츠의 통산 승률은 .467이다.[102] 소속팀이 강팀이었으면 최소한 200승은 찍고 명구회 갔을지도 모르는 성적이다.[103] 일본에서는 다이요-요코하마 외에 다른 구단에 소속된 적이 없는 선수라면 사사키 가즈히로도 있다.[104] 이 선수는 다이요 시절에 빈볼을 맞은 상대팀 용병타자가 쫒아오자 줄행랑 쳐버린 웃픈 흑역사가 있다. http://blog.naver.com/littleladykr/120045644261[105]NFL 캔자스시티 치프스 주전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의 아버지.[106] 정확히는 동료 왕징차오와 같이 입단했다. 왕징차오 역시 1군에 못 올라오고 2010년 방출.[107] 3대 타격 타이틀(수위타자, 홈런, 타점)을 수상하지 못한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예도 있다. 대신 기요하라는 최고출루율을 수상한 적은 있다.[108] 2천안타를 치고도 아무런 상도 못 받은 인물은 마츠바라가 유일하다. 다만 베스트나인으로 한정하면 딱 1명 더 있는데 바로 주니치, 닛폰햄 출신의 오오시마 야스노리. 그러나 오오시마는 1983년 카케후 마사유키와 공동으로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수상한 바 있기에 마쓰바라만 더욱 안습하다(....)[109]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당 포지션에서 가장 좋은 수비를 보인 선수'에게 골든글러브가 수여된다.[110]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 닛폰햄의 에나츠 유타카를 상대로 대타 동점홈런을 날리는 등 맹활약했다.[111] 하지만 본인은 이적 회견장에서 울면서 "요미우리로 이적해도 전혀 기쁘지 않다. 다이요에서 우승을 맛보는게 내 목표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다이요 훼일즈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하긴 오랫동안 뛰었던 정든 친정팀에서 1번도 우승을 맛보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으니 본인에겐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을 듯.. 이후 요코하마 구단에서 25번을 가장 기대되는 야수에게 부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드래프트 1순위로 기대를 받으며 입단한 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최초에는 25번을 받았으며 (다음 해에 곧 2번으로 변경했고 2011년에는 FA 선언하고 소프트뱅크로 튀고나서 틈만 나면 전 소속팀을 디스하는 등 배은망덕의 길을 걷고 있다.), 거인으로 이적하기 전의 무라타 슈이치, 또 지금의 츠츠고 요시토모까지 쭉 25번을 달게 하고 있다.[112] 히로시마의 레전드와는 발음만 같은 동명이인, 히로시마의 레전드는 한자로 山本浩二, 이 선수의 아버지는 山本功児로 쓴다. 이 선수의 아버지도 현역시절 다이아몬드 글러브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등 괜찮은 선수였지만 전자의 선수가 후덜덜한 업적을 남겨서 빛이 바랜 감이 있다.[113] 거포 유망주라면서 2군에서도 홈런을 못 쳤고, 커리어하이인 해의 2군 타율이 .213이었다.[114] 보스턴과 몬트리올 시절 김선우와의 악연으로도 한국 팬들에게 알려진 선수. 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봉중근이나 서재응이 Jung Bong, Jae Seo로 표기되었던 것처럼 메이저 시절에는 주로 '오카 토모'라는 약칭으로 이름이 표기되었기에 메이저 올드팬들은 그 이름으로 더 잘 기억할 것이다.[115]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116] 센트럴리그 겸 구단 사상 시즌 최다패 기록 1위(...)[117] 히로시마와 승률 0.0003 차이로 3위[118] 2006년까지는 리그 플레이오프 없음.[119]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승률에서 4리 차로 밀렸으나, 이해 센트럴리그가 승리수로 순위를 결정지은 관계로 승수가 1승 더 높았던 요코하마가 3위를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