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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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원영 (Lee Won-Young)
생년월일
1981년 3월 13일 (43세)
국적
대한민국
포지션
수비수
신체
186cm
출신학교
보인정보산업고등학교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2000~2006)
경찰 축구단(2001~2003, 입대)
전북 현대(2007)
제주 유나이티드(2008)
부산 아이파크(2009~2011)
알이티파크(2011)
부산 아이파크(2013~2014)
파타야 유나이티드 FC(2015)
부산 아이파크(2016)
파타야 유나이티드 FC(2017~2018)
사뭇 사콘(2019~)
1. 소개
2. 클럽 경력
2.1. 포항 스틸러스
2.2. 전북 현대
2.3. 제주 유나이티드
2.4. 부산 아이파크
2.6. 부산 아이파크 2기
2.7. 파타야 유나이티드
2.8. 부산 아이파크 3기
2.9. 태국 무대 복귀
3. 여담
4. 관련 문서


1. 소개


대한민국축구선수로 현재 사뭇 사콘에서 뛰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포항 스틸러스


2000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는 19세라는 어린나이에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십자인대 무릎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결국 이듬해 2001년 경찰청 축구단에 입소하게 된다.
2003년 경찰청축구단 전역 후 다시 포항스틸러스에 복귀하였지만 불행하게도 2004시즌 초반, 또다시 시즌 아웃에 가까운 부상을 당하며 좌절을 겪었다. 이후 1년간 재활을 거친 후, 2005년 부임한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에 의해 전격 발탁, 프로 데뷔 6년만에 1군 데뷔전을 치룸과 동시에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였다. 1군 도약 후, 좋은 하드웨어와 헤딩경합 능력으로 세트피스에서도 곧잘 득점을 기록하는등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 전천후 수비수로 명성을 높였다.

2.2. 전북 현대


2007년 전북 현대최강희 감독의 구애로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전북에서는 최진철, 김영선과 로테이션으로 계속 출장하며 나름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FA로 데려온 선수치고는 약간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3. 제주 유나이티드


2007년 시즌 종료 후 최강희 감독의 수비진 리빌딩 계획에 따라 이요한 선수와 1:1 트레이드 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제주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

2.4. 부산 아이파크


2009년 부산 아이파크황선홍 감독의 부름을 받고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다.
부산에서는 배효성의 빈자리를 채우며 안착해,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2~3달에 한번씩 부상을 당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일이 잦은편이어서 아쉼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매시즌 20경기 이상 출장해 부산 수비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2.5.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2011년 팀동료 김응진, 홍성요 등과 함께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되어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
결국 2011년 6월 자진 신고를 했지만, 연맹은 영구제명과 함께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시간 300시간의 징계를 당하며 리그에서 제명당했다.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의 알이티파크로 이적하였다. 알이티파크 구단은 그의 주장을 믿고 그를 영입 6개월간 그와 함께 하다 결국 FIFA의 전 세계적 지침으로 인해 그와 중도 계약해지를 하였다.
그렇게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계속된 재판을 하였고, 2012년 6월 1일 돈은 받았으나 승부조작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사회를 열어 승부조작에 연루된 그를 비롯한 김응진, 홍성요의 영구제명징계를 풀었다.

2.6. 부산 아이파크 2기


이원영은 영구제명 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운동을 했었는데, 그렇게 긴 시간 혼자서 몸을 만들고 유지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주장했던 무죄를 선고 받은뒤 2013년 원 소속팀인 부산 아이파크로 복귀 할 수 있었으며, 1년 6개월간 팀 없이 혼자서 컨디션을 유지 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복귀 후 전성기의 기량 못지 않은 활약으로 13년도 리그와 컵 대회를 소화 하였다.
동료들과 후배들의 이야기를 따르면 그는 팀 내에서 개인관리및 프로정신이 굉장히 뛰어난 선수로 평이 나있었다.그렇게 그는 그것을 뒷받침 하듯 팀의 상위 스플릿 진출의 기여와 또 본인의 최고의 해를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며, 2013년~2015년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다.

2.7. 파타야 유나이티드


2016년 임종헌 감독의 부름을 받고 태국 2부리그 파타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그 후 그는 팀을 디비전1 에서 타이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키는데 일조한다.그의 기록을 보면 수비수로서 시즌 10골을 넣는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임종헌 감독 말로는 혼자서 타지에 와서 외로운 싸움이었는데 말이 통하는 선수인 이원영이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2.8. 부산 아이파크 3기


시즌 후 그는 다시 부산의 요청으로 2016년 부산아이파크로 돌아오게 되었다.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 소식을 접한 뒤 파타야 측의 잔류 요청에도 부산행을 결정했다고하며, 2016시즌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1년간 그는 이렇다 할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으며, 부산은 승격에 실패하였다.

2.9. 태국 무대 복귀


시즌 종료 후 2017년 다시 태국 프리미어리그 파타야 유나이티드로 재입단하였으며, 2019년 사뭇 파콘으로 이적하였다.

3. 여담


  • 2013년 이름을 이정호에서 이원영으로 개명하였다. 개명 이후 부산에서 주장을 맡는 등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을 본 팀의 막내급 후배 이정기가 개명을 결심하는 데에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배는 개명 이후 국가대표까지 승선했다.

4.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