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축구인)

 





'''최강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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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대한민국'''}}}
{{{-2 68대



'''클럽'''
'''전북 현대'''}}}
{{{-2 4대




'''톈진 톈하이 역대 감독'''
박충균
(2018)

'''최강희
(2019)
'''

선샹푸
(2019)

'''다롄 이팡 역대 감독'''
베른트 슈스터
(2018)

'''최강희
(2019)
'''

라파엘 베니테즈
(2019~ )

'''상하이 선화 역대 감독'''
키케 플로레스
(2019)

'''최강희
(2019~)
'''




'''최강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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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김용세
FW
피아퐁
FW
강득수
MF
박상인
MF
이흥실
MF
박항서
DF
장외룡
DF
한문배
DF
'''최강희'''
DF
김철수
GK
김현태
'''198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김용세
FW
정해원
FW
함현기
MF
조민국
MF
이흥실
MF
윤성효
DF
조영증
DF
김평석
DF
'''최강희'''
DF
박노봉
GK
김현태
'''198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기근
FW
함현기
FW
신동철
MF
최진한
MF
김상호
MF
황보관
DF
'''최강희'''
DF
최태진
DF
손형선
DF
강태식
GK
오연교
'''199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기근
FW
고정운
MF
김현석
MF
이영진
MF
김주성
MF
'''최강희'''
MF
이상윤
DF
정용환
DF
박현용
DF
테드
GK
김풍주


[image] '''올해의 감독상'''
'''2015년'''

'''2016년'''

'''2017년'''
엔제 포스테코글루
(호주 국가대표팀)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호리 다카후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타카쿠라 아사코
(일본 U-20 여자 국가대표팀)
찬유엔팅
(이스턴 SC)
타카쿠라 아사코
(일본 여자 국가대표팀)

[image] '''올해의 감독상'''
'''2008년'''

'''2009년'''

'''2010년'''
차범근
(수원 삼성 블루윙즈)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박경훈
(제주 유나이티드)
'''2010년'''

'''2011년'''

'''2012년'''
박경훈
(제주 유나이티드)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최용수
(FC 서울)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황선홍
(FC 서울)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황선홍
(FC 서울)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주제 모라이스
(전북 현대 모터스)



'''상하이 뤼디 선화'''
'''上海绿地申花足球俱乐部'''
''' 이름 '''
'''최강희'''
'''崔康熙 | Choi Kang-hee'''
''' 본관 '''
삭녕 최씨#
''' 출생 '''
1959년 4월 12일 (64세)[1] /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아주리#
''' 국적 '''
대한민국 [image]
''' 신체 '''
176cm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colbgcolor=#165db9> ''' 선수 '''
한일은행 축구단(1979)
육군 축구단(1980~1982 / 군 복무)
포항제철 돌핀스(1983)
'''현대 호랑이/울산 현대 호랑이(1984~1992)'''
''' 감독 '''
수원 삼성 블루윙즈(1998~2001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2002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2003~2004 / 코치)
'''전북 현대 모터스(2005~2011)'''
대한민국 대표팀(2011~2013)
'''전북 현대 모터스(2013~2018)'''
톈진 취안젠(2018.12~2019.01)
다롄 이팡(2019)[3]
상하이 선화(2019~)
''' 국가대표 '''
30경기(대한민국 / 1988~1992)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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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65db9> ''' 본관 '''
삭녕[32]
''' 번호 '''
'''3'''
''' 별명 '''
강희대제, 봉동이장, 개구리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감독 '''
다비도비치(2005/알이티하드) ◀(2006/전북 현대 모터스) ▶ 부치올드 (2007/우라와 레즈),,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감독 '''
리피(2015/광저우 헝다) ◀(2016/전북 현대 모터스) ▶ 부치올드 (2017/우라와 레즈),,
1. 개요
2. 특징
2.1. 별명
2.2. 특기
5. 평가
5.1. 인격적인 부분
5.3.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
5.3.1. 반론
6. 수상
6.1. 선수
6.2. 감독
6.2.1. 팀
6.2.2. 개인 수상
7.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상하이 선화 감독을 맡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태어나 서울 용두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이영진대구 FC 감독과는 용두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우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실업리그 데뷔 이후, 1983년 프로에 입단하고 K리그 MVP 1번, 베스트 일레븐 4번을 수상했다. 28살에 국가대표가 되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경기 풀타임 출전, A매치는 30회 출장하였다. 2013년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으로도 선정 되었다. 이른바 대기만성형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최강희가 현역일 때, 언론에서는 강인한 체력으로 필드를 누비는 그를 '스태미너의 화신'으로 불렀다. 700경기 출전의 대기록을 세운 김병지 선수가 선정한 소속팀 베스트일레븐에서는 우측풀백으로 선정되었다. 김병지는 최강희의 선수시절을 "지칠줄 모르는 체력의 화신' 영리한 경기 운영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2005년 전북 현대 모터스에 감독으로서 부임을 하여 그 해 FA컵 우승, 2006년,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2017년 K리그 클래식을 5회 우승하며 전북이라는 팀을 중위권에서 K리그 클래식 신흥명문의 반열에 올려놓은 K리그의 히트상품 '닥공축구의 창시자'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한시적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을 맡아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2013년 6월 18일 지역예선 경기를 모두 마치고 이전부터 공언한 것처럼 최강희 감독은 사의를 밝히고 전북으로 복귀하였다. 최강희호의 최종 전적은 7승 2무 5패(공식전 5승 2무 2패)
한 팀에서 감독으로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모든 대회 우승을 달성하며 '3관왕 트리플 크라운'[4]을 달성했고, K리그 클래식 감독상을 3번 수상하는 등, 2015년에는 마침내 '단일팀 최다승 154승'[5]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K리그 최고의 감독' 자리에 올라섰다. 2017년에는 김호, 김정남 감독에 이어 세번째로 통산 200승을 달성하였다.
전북에서 대단한 역사를 남긴 최강희 감독에 대한 전북팬의 사랑은 엄청나다. 리그제패는 물론이거니와 아시아 무대의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고, 대전에게조차 승점자판기라 불리었던 보잘 것 없던 지방의 작은 중위권 팀을 맡아 한 팀의 역사와 운명을 변화시킨 감독이기 때문이다.
명장들 중에는 팬들에게 인기가 높아도 보드진에게는 백안시되는 감독들이 존재 하는데 업적이 업적인지라 전북 현대 보드진에게도 무한 신뢰를 받고 있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잠시 떠나있던 2012 시즌과 2013 시즌, 전북이 내외 안팎으로 많이 흔들리는 홍역을 겪으면서도 감독대행들을 계속 신임한 것은 "최강희 감독이 돌아오신다"라는 희망으로 전북팬들과 서포터, 그리고 구단 프런트들이 믿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특징



2.1. 별명


선수시절 별명은 개구리이다.
감독시절 별명은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중국팀들을 격파하고 올라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언론에서 붙여준 청나라의 황제인 강희제에서 따온 '''강희대제'''와 K리그에서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온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6]에서 따온 '''봉동이장'''이 있다. '왕년의 스타'들을 재활시키는 데에 뛰어난 능력으로 '''재활공장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K리그 감독으로서 언론미디어를 즐겨 이용하는 편이다. 대체로 K리그를 담당하는 미디어와 기자들은 최강희 감독의 위크있는 유머를 좋아하는 편이다.

2.2. 특기


만화에 소질이 있다고 한다. 축구를 안했으면 만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7]

3. 선수 경력




4. 감독 경력




5. 평가



5.1. 인격적인 부분


선수 시절 울산 구단에 독일식 선수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려는 차범근 감독과 불화가 생겨 대판 싸우게 되자, 차범근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캐리커쳐를 그려 선수단에 배포했고, 동료 선수들이 그 그림을 향해 다트를 던지며 차감독을 모욕했다는 일화를 십수년이 지난 시점의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해묵은 과거를 들춰내며 선배이자 자신의 은사였던 레전드를 다트판 커리커쳐로 전락시키며 조롱하듯 인터뷰를 한 태도가 비인격적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최강희는 이뿐만 아니라 비바 K리그와 포포투를 포함한 여러 언론에서 차범근을 독선적인 사람으로 비하하며 비아냥거리기를 서슴치 않았다.
애당초 그와 차범근이 불화를 겪으며 은퇴까지 향하게 된 원인에는 그의 잘못이 크다는게 축구계의 중론이다. 선수시절 최강희는 매번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며 틈만 나면 줄담배를 피워댔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했던 차 감독은 당연히 이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은사인 조중연이 현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겨우 술과 담배를 끊고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조중연이 물러나고 차범근이 현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몇 차례 의견 충돌 이후 다시 술과 담배에 빠져들었고 이런 자제력 없는 태도는 그가 조기 은퇴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다.
몇몇 팬들은 계약 문제로 차범근이 독선행위를 저질렀고 차범근 때문에 최강희가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는 앞뒤순서가 거꾸로된 개소리를 하는데 이는 최강희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차범근이 선수의 계약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되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8] 즉 양비론을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그는 차범근에 의해 자신이 강제로 억울하게 은퇴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자신도 팀의 레전드인 최진철강제로 은퇴시키기도 했다.

5.2.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사건이 터지면서 K리그에 다시 한 번 팝콘파티가 열렸다. 그러나 이후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논란이 됐다.
사령탑 최강희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불발되면서 팬들이 수준 높은 경기를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면서 "(전북에 부임하면서) 우승은 할 수 있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팬들께서 경기장의 열정적인 문화를 만들어 주셨다. 다시 일어서도록 하겠다. 올 시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 K리그의 관심 없는 팬이라면 이게 왜 문제라고 볼 수 있으나, K리그 팬들은 빼앗겼다는 발언이 잘못됐다면서 최강희를 비난했다. 그리고 K리그 팬들에게 사과와 매수에 대한 반성 없는 건 덤.
최강희, "징계부터 잘못...강등 고려했다"
징계 받았을 때와 매수 사건 터졌을 때와의 반응과 정반대되어 까이고 있다. 그리고 책임진다면서 그대로 넘어가기에 더 까이고 있다.
최 감독은 '심판 매수'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인 지난 5월 24일 "분명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사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5일 "그때는 정말 100% 그만두려고 했다"며 "이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당시 속마음을 밝혔다. 그만두려고 했다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의미 없어졌다고 말하며 말을 번복했다.
그는 '''"모든 우승컵은 심판 매수로 이룬 것이고, 범죄 집단처럼 돼버렸다"'''고 힘들었던 심경을 말했다.
30년 전부터 관행적으로 돼 온 일들이 다 밝혀진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구단도 하나 없는데 전북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심판들이 전북에 배정받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며 "그래서 정말 우리 홈에서만큼은 최소한 5대 5로 봐달라고 애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심판매수에 대해 구단도 피해자라고 호소하고 있다

5.3.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며 대표팀을 월드컵 예선탈락의 위기에 몰아갔다. 카타르손흥민버저비터 결승골, 레바논김치우버저비터 프리킥 동점골이 없었거나, 당장 우즈벡이 최종예선에서 단 2골만 더 넣었다면 조예선 3위로 플레이오프로 밀려나 이기더라도 남미와 진출권을 놓고 싸워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있었다. 쿠웨이트를 상대로 비기기만하거나 UAE가 레바논과 비기기만해도 출전이 확정되는[9] 조광래의 상황보다 몇배는 더 위험한 상황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58~82년까지 한국의 월드컵 실패사를 살펴보면 기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종 예선이나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위험도는 낮았을 지 몰라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면 한국의 월드컵 실패사 중에서도 최악의 흑역사가 될 일이었다. 위에서 말한것처럼 애당초 맡고 싶지 않았던 팀을 은사인 조중연의 강요로 떠맡은 측면이 있고[10], 몇몇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 항명을 하는 등 개판 오분전인 대표팀이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적어도 확실한 봉합 정도는 해줘야 했는데 감독 말기엔 거의 자포자기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서 확실히 대표팀이 몰락하는데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또한 대표팀을 지휘하는 내내 편협한 선수선발을 거듭했다는 주장이 있다. 홍명보가 자기가 잘알고 파악 가능한 런던파 위주로 팀을 맞춰가는 모습을 드러냈다면, 최강희 또한 K리그에서 몇경기 실적이 좋았던 선수를 뽑고 버리고 뽑고 버리는 행태로 국가대표팀을 마치 K리그 올스타팀처럼 사용했다는 것. 가장 중요한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해 대표로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게 하고, 뽑은 선수를 몇경기 지나지 않아 다시 내치고 부르지 않는 등 선수선발에 대한 단기적인 계획도 장기적인 계획도 모두 전무했다. 그런 와중에도 공격수 선발은 이동국, 김신욱, 박주영에게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고,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이 셋을 제외한 공격수는 한국에 없다고 선을 긋는 편협함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기사 그는 홍명보가 그러지 않은 척하며 주야장천 박주영만 원했듯, 그러지 않은 척만하며 소속팀 전북에서 인연이 깊은 애제자 이동국을 주야장천 거의 대부분 경기에 주전 붙박이로 기용하였고, 그 결과는 최종예선 7경기 출전 1골과 지역예선 탈락 위기였다. 그는 이동국이 답이 없는 모습으로 일관하였음에도 집착하며 엄청난 기회를 부여하였으나,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손흥민은 상대 밀집수비를 벗겨내지 못하고 기복이 심하다고 디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팀에서 복귀한 2014~2015 시즌에는 리그 2년 연속 우승에도 전술, 전략 능력과 관련한 논란이 일었다. 4-2-3-1 시스템에 원톱을 중심으로 윙어를 이용한 특유의 축구전술에 전혀 전술적인 발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강희는 전술과 지략이 뛰어난 지도자는 아니다. 대신 선수단 장악과 관리 및 저조한 컨디션으로 바닥을 치거나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체된 선수의 포텐을 끌어내는데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전형적인 매니저 유형의 지도자다. 이에 그의 지지자들조차 과거 감독대행 및 팀 수석코치를 역임한 이흥실[11]처럼 전술적으로 유능한 코치가 팀에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더블 스쿼드 관리 실패는 특별히 전술적인 실패라기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을 선호하는 최강희 감독의 스타일 때문인지 노장들 위주로 팀을 꾸려온 것이 문제가 되었다. 기껏 다시 데려온 전북의 두 전설적인 외국인 선수인 에닝요와 루이스가 나이를 못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동국, 윌킨슨, 김형일 등 노장 선수들도 시즌이 진행될수록 체력이 잘 회복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인지 2016 시즌을 앞두고 즉시 전력감의 선수들을 거의 쓸어오다시피 영입하고 있다. 앞에 글에서 에두 이적자금이라고 썼지만 얼마전 인터뷰에서 아직 에두 이적자금은 쓰지도 않았단다. 그리고 이 스쿼드를 중심으로 16시즌에는 아챔 우승, 17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무엇보다 이 두 시즌에는 뻔히 보이는 전략이 아닌 유연성과 경기력 관리 측면에서도 팬들의 평가가 상당히 높아진 상태.

5.3.1. 반론


K리그 선수 기용 문제 역시 해외파의 숫자 자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로테이션 멤버들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실제로 출전 시간을 살펴보면 해외파들 역시 조광래 감독 시절보다 줄었을 뿐[12] 이 시절 부진했던 박주영이나 지동원을 제외하면 상당한 출전 시간을 보장받았다. 따지고 보면 박주영도 클럽에서의 모습에 비해 정말 많이 뛴 거다.[13] 그리고 이동국은 최강희 체제에서 오랜만에 국대에 자주 뛰게 되었지만 위 항목처럼 항상 주전은 아니었고, 이동국과 박주영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김신욱 선발에 이동국 후보로 놓기도 하는 등 전북 선수라고 이동국을 항상 주전으로 쓴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동국같은 전북 선수 위주로 국대를 돌렸으면 권순태, 최철순같은 그가 클럽에서 애지중지하는 이런 선수들은 왜 당시 국대 한 경기도 못 뛰었겠나?
오른쪽 풀백 경우에는 실제로 K리그 선수들 위주로 기용했는데[14] 애초에 해외에서 뛰고 있는 선수도 드물었고 그나마 해외파이던 차두리는 당시 '''가족 문제로 인해 새 팀인 뒤셀부르크에서 적응도 못 하고 주전 경쟁도 제대로 못 해 FC 서울로 이적해 처음으로 뛴 K리그에 적응해야 했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차두리를 기용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사실상 박주영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물론 박주영과 달리 차두리는 클럽에서 제대로 뛰고 있었지만, 선수가 심적으로도 혼란스럽고 이적으로 적응도 필요한 시기에 국대에 무리하게 부르는 것은 항상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다른 포지션을 보면 당시 QPR로 이적한 윤석영은 '''최강희호에서도 성인 국대에서 꾸준히 뛰었다.''' [15] 이용과 윤석영의 예로 보듯이 '''무조건 K리그 선수라고 기용하지는 않았고 무조건 해외파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최강희에 대한 비판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기성용'''의 경우에는 잘 생각해보면 최강희에게 매우 억울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최강희는 '''기성용을 거의 매 경기마다 선발하고 기용했다.''' 그나마 마지막 조별 예선에서만 선발하지 않았는데[16] 그것 하나로 기성용에게 디스받고 해외파를 지지하는 팬들에게도 마구 까이는 계기가 되었던 것. 애초에 기성용은 최강희호 초기부터 어디선가 감정이 상했는지 쭉 불만을 표시했다. 해외파를 무시해서 불만이 터진게 아니라 본인이 경기를 나서던 초기부터 쭉 디스했다.
손흥민의 경우에는 당시 함부르크 입단 후기나 레버쿠젠 입단 초기인데 이 때 손흥민이 분데스리가 최고 활약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리그 우승팀 바이에른 뮌헨[17] 선수들이나 준우승팀보루시아 도르트문트[18] 선수들을 싸그리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당시의 손흥민은 미래가 매우 기대되는 특급 유망주였지, 분데스리가 최고 선수까지는 아니었다. [19][20]
예를 들면 슈틸리케호 시절, 막 오스트리아 리그에 진출한 유망주 황희찬이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잘 뛰고 있다고 해서 왜 '''황희찬을 안 쓰고 황의조, 이정협같은 선수들을 선발로 쓰냐'''며 슈틸리케에게 따지는 셈인 것.[21] 아직 유망주이거나 막 유망주 티를 벗어난 선수를 성인 국대에서 기용 안 한다고 감독을 비난 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당장 국대 선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독이 욕 먹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런 선수들이 그 기량을 꾸준히 유지하란 법도 없다. 손흥민도 최강희호 시절에는 성장할 여지가 많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보다 더 단점이 많았기에 이 후처럼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 했다.

일부에서는 손흥민을 최강희가 쓰지 않고 이동국만 썼으므로 최강희가 까여도 마땅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최전방 공격수인 이동국과 윙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하던 손흥민'''을 동등 비교한 것 자체가 이미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역할과 포지션이 완전히 다른 선수들을 비교하면서 국내파를 중시하느라 해외파를 무시한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모함이다. 손흥민을 안 쓴다고 깔려면 그 자리에 쓰이던 이청용이나 염기훈이나 지동원을 예시로 듣는 게 맞고 이동국 경우에는 위에 언급했듯이 박주영, 김신욱과 로테이션을 뛰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최강희가 손흥민을 안 썼다? '''손흥민은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8경기 중 6경기에 출전했다.'''[22] 따라서 손흥민을 안 쓰는 대신 이동국을 썼다며 최강희를 까는 건 그야말로 네이버 축구기사 댓글란에서나 볼법한 축알못스러운 한심한 소리인 것이다. 애초에 이들은 공격수라면 다 똑같이 보는 수준의 한심한 축구 지식을 가지고 있다. 손흥민을 공격에 프리롤로 풀어놓으면 최강희의 노답 전술보다 우월한 활약을 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론으로 감독을 비판하는게 이들이다.
한마디로 최강희가 국가대표팀에서 해외파를 무시하고 K리거의 기분만 챙기며 K리그 올스타팀처럼 운영했다는 것은 엄연히 기록되어있는 데이터를 무시한 모함이다. 언제부터인가 최강희가 해외파를 무시하고 발탁하지 않아서 그들의 불만이 쌓였다는 프레임이 굳어지고 있는데, 기록상으로만 봐도 해외파들은 최강희호에서도 꾸준한 출전기회를 보장받고 있었다. 애초에 그 어떤 축구팬들도 유럽에서 좋은 활약 보이는 선수들의 실력이 K리거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기성용, 손흥민 등이 K리거보다 못 하다고 진심으로 주장하는 축구팬이 있는가? 단지 해외파/국내파라는 철저한 이원론적 구분으로 인해 한 팀으로 융합되지 못 하는 현상, 해외 리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즌 내 몇 경기 제대로 출전도 못 하는 선수들이 폼이 좋은 아시아 리그 선수들보다 무조건적으로 중용받는 현상이 문제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해외 리그에 있다고 반드시 아시아 리그의 선수들보다 폼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여러 사례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K리그 선수들로만 구성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레바논에게 져놓고도 다리 부러진 이청용을 조기복귀시켜야 한다는 망언을 하던 전임감독처럼 해야 해외파를 대우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6. 수상



6.1. 선수


  • 프로축구선수권대회 MVP : 1986
  • K리그 베스트 11 : 1985, 1986, 1988, 1991

6.2. 감독



6.2.1. 팀



6.2.2. 개인 수상


  • 헬로! 풋볼 팬즈 어워즈 베스트 코치 : 2009
  • K리그 클래식 감독상 : 2009, 2011, 2014, 2015, 2017
  • AFC 아시아 올해의 감독상 : 2016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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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파온라인3 전설의 선수 최강희는 한국의 람으로 평가받으며 한국 우측풀백으로서 밸런스가 있고 수비안정감이 있어 쓸만한 선수라고 한다.
  • 2014년을 기점으로 이재성, 이주용이라는 걸출한 라이징 스타를 과감히 키워 냄으로서[23] 재활공장장이라는 이미지는 어느정도 씻어내는 데 성공. 하지만 여전히 베스트 일레븐에서는 꽤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편으로서, 기용되는 평균 나잇대가 다소 높은 편이다. 2014년 현재, 아직 데뷔하지 못한 신인들도 꽤 된다! 2015년에는 김형일, 이호, 에닝요, 에두 등을 영입하며 다시 재활 공장장 이미지가 나오나 했으나 이호와 에닝요의 활약이 좋지 않은 와중에 최보경[24]을 주전급으로 키워내며 유망주에 대한 관심을 잊지는 않았다. 그리고 에닝요가 결국 자신의 활약에 실망하여 팀을 떠나게 되자 그의 공백을 루이스를 다시 데려오며 해결하려 한다.
  • K리그 최고의 윙 전술 감독으로 꼽힌다. 최강희 감독 자신이 선수시절에 윙백이어서 그런듯. 이 부분은 전북 현대 모터스 항목을 참조바람. 하지만 2011년 챔피언 결정전 이후 인터뷰에서 '미드필드에서 경기 운영을 잘 하는 선수를 영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처럼 측면을 이용한 전술을 선호하지만[25] 무조건 닥치고 윙 수집 정도까지는 아니다.
  • 인터넷 사용에도 능숙해서 미니홈피나 팬클럽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해서 소녀팬들이 많은데 봉동에 있는 훈련장에는 선수 팬보다 감독 팬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그런데 2008년 시즌 전에 조재진, 강민수 등 대어를 영입하며 나름 알차게 보강을 했으면서도 수비조직력이 막장을 치달으면서 하위권을 달려 욕을 많이 먹던 중, 9월 8일에 구단 홈페이지에 '성적에 대한 책임은 무조건 내가 지겠다. 믿고 기다려 달라' 는 내용의 장문의 을 올리고 이후로 축구에 집중하겠다며 그때부터 미니홈피와 팬클럽 활동을 줄였다. [26] 참고로 이때부터 연승을 거두며 부진에서 탈출하여 6위로 정규리그를 마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4위로 시즌을 마쳤다.[27] 2009년에는 팀 운영에 주력하기 위해 미니홈피와 팬클럽까지 폐쇄하더니 결국 우승. 그런데 2010년부터 축구계에 하도 트위터바람이 불다보니 그 유혹에 끌리시다가 결국 카카오톡을 하고 계신다는 듯.
  • 동명이인인 탓에 간혹 인터넷에서 '최강희 사진'이란 제목에다 감독 최강희의 사진을 올려놓는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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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은 전북 프런트에서 선물로 준 녹-검 사선 줄무늬 넥타이를 자주 매고 다니고, 최강희 감독이 맸던 넥타이를 하사(?)받을 정도로 공인된 전북빠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될 당시에 "최강희 감독 선임 K리그와 전북에 피해줬다" 라며 인터뷰로 심정을 밝히기도 하였다.
  • 2005년 이전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탈바꿈시킨 최강희 감독과 전북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현재 리그 내에서의 위상으로 K리그 클래식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보는 시선이 있다.
  • 최강희 감독이 7년동안 전북을 어떻게 이끌었는가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 창단 20주년 전북에서 고속성장의 10년을 같이 한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 체제는 5년 내에 구단재정의 절반을 직접 벌어 해결하고 10년 후에는 자생하는 구단으로 끌어간다는 플랜을 세웠다.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의 10년 특별 대담기사1편2편
  •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전북은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 수석코치였던 이흥실 감독대행 체제로 가게 된다. 그러나 2012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이 초반 2경기 모두 1:5로 대패하고 결국 전북 팀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난을 당하자 최강희 감독을 그리워 하는 전북 팬들의 그리움이 짙어지고 있다.
  • 전북 현대는 최강희 감독 부임 후, 강팀으로 도약하며 아시아에서도 대륙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시아의 축구팬이라면 전북을 모르는 축구팬이 없으므로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홍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 전주시에서 문화협력 교류차 프랑스 파리와 베르사유 등을 방문했는데 전주시에서 왔다고 하니, 베르사유에서 전북을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전북현대는 리옹과 자매결연을 맺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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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시즌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진행한 전지훈련에서 마라도나와 만나 친구를 하기로 했다.
  • 결혼 이후부터 지금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SPOTV의 인터뷰 코너에서 '리그 경기에서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리그 홈 경기에서 만원 관중을 기록하면 헤어스타일을 바꿀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28]
  • 2017년 7월 2일 폭우 속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18라운드 경기에서 비에 홀딱 젖은 모습으로 인해 검열삭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모습이 공식기사로 올라오며 봉동이장이라는 별명과 검열삭제가 합쳐진 봉두[29]라는 별명이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7.1. 아 이 식빵 무지 달다 팬케이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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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FC 서울을 상대로 경기하던 중, 모래반지 빵야빵야, 야 우규민 나오냐급의 짤방이 나왔다. 이 움짤이 처음 게시된 것은 국내 야구 갤러리로 보이며# 처음에는 심판판정에 대해 찰진 식빵을 곁들여 항의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곧이어 '보이는대로 들리는 짤'이라는 제목으로 여기저기에 퍼져나가며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속출하게 된다.
  • 아 이 식빵 무지 달다 팬케이크 아니야?
  • 야이 심판 미친 X끼야 페널티킥 아냐?!
  • 아니 X발 빙신아냐 빨리 가라니까?!
  • 야 심판 븅X짓한다 매일 이렇게 하냐?!
  • 야이 X발 무슨짓하냐[30] 페인팅 아니야
  • 안지만 미친 X끼야 베팅하냐?
  • 아니 스파이 미친새끼야 메딕하라니까?!
  • 아니 X발 무슨 카이사베인하라니까?!
  • 아니 X발 무슨 겐지메르시하라니까?!
  • 야 피시방 몇시까지냐 빨리 가즈아
  • 야이 X발 민재X끼야 베이징을가냐? 어?
이 중에서 '''아 식빵 무지 달다 팬케이크 아니야?'''가 험악한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대사 내용 및 입모양과의 싱크로율로 인해 가장 큰 파급력을 이끌어 냈고, 그 결과 위 움짤은 '최강희 팬케이크 짤'로 통칭되었고 최강희는 졸지에 팬케이크 성애자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본 발언을 심판에 대한 욕설과 항의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최강희 감독이 이 장면에서 한 말은 '''"아, 정말(증말) 미치겠네! 왜 그걸 안 차?"'''라는 말이었다고 한다.[31] KBS의 중계 사운드에도 마침 이 말소리가 잡혔기 때문에 해당 장면을 자세히 들어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전 상황에서 김신욱이 상대편 골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절호의 득점찬스를 놓친 직후에 나온 장면이기 때문에 이 쪽이 더 전후 맥락에도 맞고 설득력도 있다.
'''이제는 더빙판도 나왔다.''' 참고로 오버워치의 겐지 역을 맡은 대원방송 3기 성우 김혜성이 더빙한 것이다.
결국 2016년 연말의 광화문에 촛불과 함께 등장하였다(...) 링크

[1] 공식 프로필에선 1959년 생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는 호적상의 생년이며, 그와 절친한 사이인 최덕주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1957년 생이라고 주장한다.[2]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3] 시즌 도중 사임[4] K리그 클래식, FA컵, AFC 챔피언스리그[5] 2015년 7월 26일 수원전[6] 전북 현대 모터스의 전용 연습구장과 클럽하우스가 있는 지역. 인근 완주산업단지에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있다.[7] 1991.7.18. 경향신문. 2011년 우승이후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만화들을 공개했는데 재미있게도 현재의 닥공과는 달리 어린 시절에는 공격보다는 수비를 강조했었다.[8] 구단이나 모그룹의 입김이 강한 한국 프로 스포츠판에서 감독이 선수의 연봉협상을 주도하고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구단에서 그것을 인정한 적은 없다. 만약 최강희의 주장대로 차범근이 마음대로 연봉을 결정하고 선수에게 통보만하는 독재를 저질렀다면 당시 사제지간을 맺은 선수의 입이나 한창 차범근 죽이기로 여론이 하나로 뭉쳤던 98년도에 이미 그것이 밝혀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즉 차범근이 마음대로 연봉을 결정하고 선수에게 통보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최강희 본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데다 증거조차 없는만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애시당초 차범근이 강제로 담배를 입에 물리고 피우게 한게 아니라면 누워서 침뱉기나 다름 없는 소리다.[9] 실제 UAE가 4:2로 레바논을 꺾었다[10] 조중연 뿐만 아니라 현대가에서도 은근한 강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몽준 명예회장과의 식사회동등. 한마디로 전방위적인 압박에 등떠밀려 국대감독을 수락한 것[11] 실상 전북 특유의 닥공전술의 핵심에 있었던 전략가이며 현장 축구인들에게도 전술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코치라는 평가를 받는 지도자다. 경기마다 상대팀에 맞선 전술과 전략을 가장 많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유형의 지도자이며, 학구파이기도 하다. 다만 전북 감독대행에 막상 오르고나서, 펩 과르디올라가 구사하는 쓰리백 전방압박 축구의 도입과 공격수 정성훈의 중앙수비수 기용(이때는 수비수 부상이 너무 많아 아예 수비진이 파탄날 지경이라 어쩔 수 없었다.) 등 파격적인 전술을 너무 많이 추구했고 이에 팀이 흔들리며 다소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나야만 했고 감독으로 취임한 안산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중이다. 최근 K리그에서도 전술가형 감독은 김학범, 남기일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성과를 찾기 힘든 편이고, 스타들을 장악하는 매니저 형으로 평가받는 최용수나 정반대 스타일의 덕장 매니저 형인 서정원 등이 주목받는 실정이다.[12] 다만 석현준의 경우는 조광래 감독도 애초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실제로 그가 뽑힌 데에는 아약스에 이제 막 프로 경기에 나선 석현준을 국가대표급으로 포장한 해축빠들의 언플이 컸다. 이 무렵 국가대표팀에만 오면 삽질했던 박주호도 기용되지 않는 등 조광래 감독이 해외파라고 100% 신뢰한 것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월드컵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선수들의 어린 나이만 믿고 경쟁 대신 주전 확보를 우선시한 점이었다.[13] 조광래호 시절 박주영은 아스날 이적 초기이기 때문에 클럽에서도 의욕적이었고 아직은 AS 모나코 시절 좋은 폼이 남아있었다. 최강희가 이동국을 끌어다 쓴 것도 박주영이 셀타비고 시절까지 거치면서 완전히 폼이 망가지자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수준이 되어서이지, 최강희 본인은 오히려 박주영, 이동국, 김신욱 말고 쓸만한 한국 공격수 누가 있냐면서 박주영을 옹호했다. 박주영이 군대 문제로 사고를 쳤을 때에도 연락을 시도하고 나와서 기자회견 좀 해달라고 했는데 이를 박주영이 무시하고 잠적한 것이지 적어도 최강희가 박주영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적은 없다.[14] 이마저도 홍명보호의 주전 풀백인 이용은 기용하지 않았다. K리그의 실력파 선수라고 모두 기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 당시에 기용한 선수로 최효진, 신광훈, 오범석, 고요한 등이 있는데 문제는 이 중에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15] 어처구니 없는 점은 윤석영을 처음 국대에 부른 것이 최강희이다. 국대에 데뷔시켜 준 감독을 SNS에다 디스한 것.[16] 당시 스완지에서 부상을 당해 클럽에서도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아 후반기 경기를 뛰지 못 했다.[17] 12-13 시즌에는 트레블을 달성했다. 그리고 당시 핵심 선수인 프랑크 리베리는 발롱도르 최종후보 3인에도 들어갈 정도였다.[18] 이 두 팀은 2013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서로 맞붙으면서 엄청난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19] 손흥민에 대한 평가는 그가 EPL로 이적한 후 재평가되고 있다. 물론, 국내 축구팬들이 비판한 오프더볼의 움직임과 수비가담능력 등등은 그 당시에도 말이 많았지만 일명 해외파빠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수였다. 또한 손흥민 원톱은 본인조차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음에도 손흥민 만능론에 입각한 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20] 물론 손흥민이 토트넘에 적응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꽤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국 국가대표팀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으로 인정받고는 있지만, 최강희호 시절의 손흥민은 아직 그 수준에 달하지 못 했었다. 어린 유망주를 국대에 불러다가 왜 안 쓰냐고 난리치는 극성 해축빠 팬들은 이후 이승우, 이강인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21]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황희찬이 두 선수보다 좋은 모습도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도 황희찬이 그만큼 성장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황의조도 상당히 성장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 역시 황희찬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선수의 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지, 나중가서 이런 선수를 왜 과거에 안 썼냐고 하는 것은 결과론적인 비판에 불과하다.[22] 심지어 3월 28일 카타르 전에서는 '''이동국의 터닝 발리 슛이 골대에 튕겨나온 것을 손흥민이 밀어넣어''' 득점한 적도 있다. 최강희가 손흥민을 아주 안 썼다는 의견은 틀렸다고 볼 수 밖에 없다.[23] 특히 단순한 윙이었던 이주용은 아예 레프트 백으로 크게 내려갔는데 공격형 풀백으로서 주전으로 자리잡았다.[24] 2014 시즌에 영입했으나 그 당시에는 로테이션급에 불과했다.[25] 최강희 감독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거스 히딩크가 등장하기 전 대한민국 축구는 독일식 축구를 롤 모델로 삼았다. 다만 당시 여러 여건상 독일 축구를 직접 전수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본류와는 다른 자기류로 발전했다. 최강희나 조광래 세대 감독들이 이런 자기류 독일 축구의 마지막 계승자인 셈이다. 본 프레레 감독 시절 독일을 대파한 것은 이 자기류 독일 축구로 종가 독일 축구를 꺾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26] 본문 중 'LG야구가 현재 꼴지인데, 리그 36게임 남은거 다 이기면 플레이오프 갈 수 있다는 팬들이 있는데 내가 이런 걸 바란다면 나의 사치겠죠?'가 그 구절이다. [27] 전반기 3승 2무 8패, 후반기 9승 1무 3패. 글 초반부의 LG 트윈스 디스처럼 DTD를 시원하게 비웃었다. [28] 전주시서울특별시수원시 같은 K리그 빅 마켓 지역이 아님에도 축구 열기가 상당하다. 이들 도시를 물리치고 홈경기 평균 관중수 1위도 찍었을 정도. 그러나 메인 연고지인 전주시 도심에서 외곽지역인 월드컵경기장으로 오는 대중교통편이 극악 수준으로 개망인지라 웬만해서는 만원 관중 채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A매치 경기에서는 만원사례를 이룬 적이 있지만 K리그 경기에서는 단 한 번도 만원 관중을 기록한 적이 없다. 전북 현대의 홈경기로는 2011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2차전 당시 찾아온 4만1805명의 관중이 전북 현대의 전주성 단일 홈경기 최다 관중 동원 기록. 다만 워낙에 전주를 비롯한 전북지역의 축구 열기가 뜨거운 만큼 교통 문제만 해결된다면 만원 관중도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29] 봉동 [30] 혹은 무식한 X끼야[31] 사실, 최강희 감독은 심판이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경우에도 현장에서 잘 항의하지 않는 감독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