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전국시대)

 

李園
생몰년도 미상
전국시대 시기 초나라의 인물.
본래는 조나라 사람으로 자신의 여동생을 데리고 초나라로 와서 초고열왕에게 여동생을 바치려 했는데, 초고열왕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시간이 지나면 여동생이 총애받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이로 인해 이원은 먼저 춘신군을 섬기기로 하면서 춘신군의 사인이 되었으며, 이원은 춘신군에게 휴가를 요청해 고향으로 갔다가 고의로 휴가 기간을 어기고 돌아와 춘신군을 만났다.
춘신군이 늦은 것에 추궁하자 제나라의 왕이 사신을 보내 자신의 여동생을 데려가려고 해서 같이 술자리를 하다가 늦었다고 하며, 춘신군이 여동생을 만나보기를 요청하자 만남을 주선했다. 이원은 춘신군에게 여동생을 바쳤고, 그 여동생은 춘신군의 사랑을 받아 아들까지 임신했다. 이원은 여동생과 계략을 모의해 여동생이 춘신군에게 초고열왕에게 자신을 바쳤다가 아들을 낳으면 춘신군의 아들이 국왕이 될 것이라 꼬드겼다.
춘신군이 그 말을 수락하고 이원의 여동생을 초고열왕에게 천거해 첩으로 바쳤으며, 이원의 여동생이 아들을 낳으면서 그 여동생은 왕후, 춘신군의 아들은 태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초고열왕의 총애를 받아 이원은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으며, 이원은 춘신군이 이 일을 누설할까 우려해 비밀리 결사대를 양성해 그를 죽이려고 했다. 기원전 238년에 초고열왕이 죽자 이원은 궁중에 진입해서 궁문 안에 군사들을 매복시켜뒀다가 춘신군이 궁문으로 오자 죽이고 머리를 잘라 밖에다가 버렸으며, 이원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은 왕위에 올라 초유왕이 되었다.
그가 언제까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초유왕이 죽고 초애왕이 즉위하자 부추가 초유왕이 고열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초애왕까지 의심했으며, 이로 인해 부추가 초애왕을 죽이고 이원의 집안도 멸족되었다.

1. 킹덤(만화)


'''공식능력치'''
'''시기'''
'''무력'''
'''지휘력'''
'''지력'''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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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신군을 살해한 후, 염파로 하여금 와린을 부르게 한 자리에서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 진나라가 침략하기 전에 조정을 재구축하고 이를 발판으로 초나라를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을 밝힌다. 그리고 와린의 힘[1]을 빌리기 위해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재상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머리를 숙인다.
이후에 이어진 와린과의 단독 회담에서는 자신이 춘신군을 죽인 이유를 밝힌다.[2] 이 과정에서 와린의 과거와 관련된 트라우마를 건드리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설득하는데 성공[3], 법령을 바꾸어 와린과 함께 공동재상이 된다. 이후 업 공방전에서 왕전이 이끄는 진나라 군이 열미를 나와 조의 왕도권으로 진군한다는 보고를 받을 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 작가는 이원을 잔챙이로 그릴까 했으나, 거물중의 거물인 춘신군을 죽이고도 흠 잡히기는 커녕 되려 정권을 장악한 양반이 보통 인물일 리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의 캐릭터로 바꾸었다고 한다.

[1] 이때 와린의 역량이 드러나는데, 남부 지성까지 합치면 초나라 내 최대규모인 30만이나 되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고.[2] 작중에서는 고열왕에겐 자식이 없었기에 다음 왕위는 동생이 즉위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헌데 문제는 이 동생이 살육을 즐기는 정신이상자였기에 즉위하면 암군이 될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고열왕의 허락 하에 춘신군의 아이를 밴 이원의 여동생은 후궁이 되고, 태어난 아이는 왕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나 왕이 죽은 후 춘신군은 왕위를 아이가 아닌 고열왕의 동생으로 하여금 잇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암군을 만드는 것보다 왕가의 혈맥을 뒤에서 끊는 것이 더욱 중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이원 자신과 아이를 낳은 여동생이 죽을 것은 뻔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목숨을 걸고 자객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결국에는 이원이 춘신군을 암살하면서 이 분쟁도 끝났다.[3] 자기 혼자 재상이 되면 초는 평범한 나라로 부활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과열되어가는 전란기에 나라를 재구축하기 위해 와린의 힘을 빌려달라는 요지로 간곡히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