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신군

 




'''군호'''
춘신군(春申君)
''''''
(嬴)
''''''
(黃)
''''''
(歇)
'''최종직위'''
상방(相邦)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44년
1. 소개
2. 생애
3. 이화접목
4. 대중문화 속의 춘신군

[clearfix]

1. 소개


고대 중국 전국시대의 인물이다. 전국사군자중 한 명으로 초나라 고열왕 시절 때의 상방이었다.

2. 생애


춘신군의 본명은 황헐이며, 고열왕의 아버지 경양왕 밑에서 일하다 진나라가 초를 공격하려 할 때 사자로 보내져 소양왕을 설득해 초와 진의 동맹을 결성하는 것에 일조한 대신 후에 고열왕이 될 태자와 함께 진에 볼모로 보내지게 되었다.
고열왕의 아버지 경양왕이 병에 걸리자, 진왕에게 귀국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춘신군은 고열왕을 마부로 위장시켜 초로 탈출시키고, 자신은 진왕에게 사실을 고했다. 분노한 진왕은 춘신군을 죽이려고 하나, 신하들의 만류로 용서한다.[1] 경양왕 사후 고열왕이 즉위하자, 재상에 임명되었다.
그 뒤로 진에 맞서 다른 나라의 연합군을 이끌어 조나라를 구원하고, 노나라를 멸망시키기도 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활약했다. 이후 합종군의 총지휘권을 맡고 진나라를 쳤으나, 함곡관에서 진의 군대에게 대패하였다.
참고로 함곡관 전투에서 춘신군이 진나라의 야습에 겁을 먹고 멋대로 도주하여 합종군이 패했다는 이야기를 믿고 춘신군을 무슨 찌질이 마냥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절대 정사의 내용이 아니며''' 단순히 '''소설'''인 열국지의 내용일 뿐이다. 게다가 여기에 덧붙여서 이목이 춘신군을 탓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역시 단순한 '''소설'''의 내용일 뿐이며 정사에는 저런 내용이 '''전혀 없다.'''[2] 오히려 정사에서는 함곡관 전투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그래도 진소왕을 설득하여 진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을 멈추고 반대로 동맹을 성사시킨 데다가, 볼모로 잡힌 태자를 몰래 도망시켰으며, 노나라를 정복하고 초나라의 국력을 회복시키는 등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자.
한국 위키피디아에서는 황성통사를 참조해 그가 신라로 피난왔던 증조부 경수공 덕분에 어린시절을 신라에서 보냈었다는 기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중국측 기록인데, 중국에서는 경수공이 한국 황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내려오나 정작 한반도에서 황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황락은 기록에 없어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3. 이화접목


사기에 따르면 사군자 중 말년이 가장 비참하다. 초세가에 따르면 춘신군은 고열왕이 죽은지 얼마뒤 궁궐에서 이원에게 살해당하고, 춘신군 황헐의 일족은 멸족을 당하게 된다.
이원이 춘신군을 살해한 이유를 두고 춘신군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고열왕이 후사가 없자 여러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으나 고열왕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이원이라는 자의 누이동생과 으쌰으쌰해서 임신하게 한 뒤 왕에게 넘겼고, 당연히 그 아이는 태자로 책봉되었다. 이때 빈객 중 주영이라는 사람이 "이원은 권력을 노리고 있으니 제가 죽여버리겠습니다" 라고 간언했으나 춘신군은 "내가 걔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별일 있겠냐?" 이라 답했고, 주영은 춘신군의 안목에 실망하고 이원의 보복이 두려워 춘신군 곁을 떠났다. 고열왕이 죽자 이원은 주영의 예언대로 미리 육성해둔 자객들로 '''춘신군의 목을 날려버리고 가족들을 몰살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원의 누이동생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왕이 되었다. 이것이 이화접목의 고사다.
그러나 이 내용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초세가에 춘신군이 이원에게 살해당한 기록은 있지만 고열왕 이후 즉위하는 초유왕을 시작으로 초애왕 그리고 초나라의 마지막 왕 부추까지 모두 고열왕의 아들들이다. 초유왕과 초애왕은 어머니가 같아 둘 다 춘신군의 아들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부추는 어머니가 달라서 고열왕이 진짜 불임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4. 대중문화 속의 춘신군



4.1.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


[image]
'''공식능력치'''
'''시기'''
'''무력'''
'''지휘력'''
'''지력'''
'''정치'''
가이드북
70
90
98
?
성우는 우치다 유야.
지력은 작중 이목백기 다음으로 높고 악의, 오봉명, 창평군[3]과 동급이다.
왕의의 사망 소식이 중화전토에 전해질 때 초나라에서 얼굴을 처음 드러냈다. 그 후 이목과의 비밀회담에서 오랜만에 등장한다.
이후 합종군의 맹주를 맡아 진나라를 공격한다. 물론 실질적인 수장은 중화 전토에서 가장 핫한 무장인 이목이고, 본인은 합종군 세력의 균형이나 명망을 감안해 명목상의 지휘를 맡은 것뿐이다.[4] 지휘력이 90으로 상당히 높긴 하지만 합종군에는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있고 이목이 합종군 전체를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하는 일은 얼굴마담 뿐. 춘신군 본인의 표현으로는 '걱정 마라, 실질적인 지휘는 이목이 할 거고 '''난 니들 엉덩이나 걷어차는 역할이다.'''' 라고.(...) 실제로 무력은 70에 불과하지만 어마어마한 명망과 '''미친 듯이 무서운 인상''' 때문에 군기반장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치솟은 눈썹의 각도부터 일반인과 다르다.
결국 합종군이 정면공격으로 함곡관을 돌파하는 데 실패하고, 이목이 최를 돌파하는 데 실패하자 합종군을 진나라에서 철수시킨다. 물론 막판에 합종군에서 빠진 제나라에게 빡쳐서 제나라의 몇 개 성을 박살내 버리긴 하지만, 나라 하나를 갈아엎을 규모의 합종군으로 한 일치곤 정말 보잘것없는 실적이다.[5] 그 뒤 합종군 실패의 책임을 지고 정계의 중심에서 얼마간 밀려났다. 이후 고열왕의 첩이 실은 춘신군의 옛 연인이라 고열왕이 얻은 아들이 실은 춘신군 아들이라는 뒷 사정[6]이 있었으며, 그 첩의 오빠인 이원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살해 당한 이유는 바로 '''말을 바꾸었기 때문인데''' 갑자기 고열왕이 사망한 이후로 정신나간 왕제에게 왕위를 물려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이으면 결과적으로 초 왕실의 핏줄이 끊어지게 될 테고, 춘신군은 왕가의 핏줄을 끊는 것이 암군이 될 왕제가 왕위를 잇는 것보다 훨씬 더 죄가 크다고 여겼다. 왕실의 핏줄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대의 사고 방식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임무군을 대머리라고 대놓고 부르지를 않나 오르도보고 멍청이라고 하는 등 입이 상당히 거친 편.
킹덤 공식문제집에 따르면, 작가는 춘신군의 이름에서 미인의 이미지를 떠올렸기에[7] 약간 나이가 든 꽃미남의 비주얼로 그렸으며, 그의 말투가 험한 것은 이목과의 대비를 의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춘신군은 작가가 사마천의 사기 중에서도 매우 좋아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전개에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캐릭터를 키워보고 싶었다고 한다.

4.2. 삼국지 시리즈


[image]
삼국지 12, 13
고대무장으로 등장한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1/무력 68/지력 84/정치력 91로 약간 만능형 능력치. 전법은 창군견수
삼국지 13에서도 당연히 등장한다. 능력치는 전작과 같고 전법은 공수지휘, 중신특성은 병참관리. 특기는 상업6 / 문화3 / 순찰6 / 설파8 / 교섭8 / 언변8 / 인덕3 / 견수7 / 수영6 으로 여러 모로 쓸모가 많지만 실제 행적에서 유세나 언변에 뛰어났던 점을 살렸는지 외교 관련 능력이 돋보인다. 특히 부락탈취 특화라서 어중간한 지장 내보내면 마을 순식간에 털린다.

4.3. 중국 드라마 미월전에서


[image]
드라마 미월전의 등장인물. 황헌 役
미월의 첫사랑으로 어린 시절 스승 굴원을 따라 궁에 입궁했을 때 마주쳐서 투닥거리다가 그녀가 공주인 것을 알고 친해지게 된다. 미월이 궁에서 쫒겨난 것을 안쓰럽게 여겨 계속해서 찾아가는 등 내색은 안하지만 확실히 미월을 여자로서 좋아한다. 미월이 궁에 들어간 이후 본인도 젊은이들끼리 지식을 논하는 대회를 위해 입궁해 굴원의 제자답게 여러 명을 논파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문제는 이 모습을 보고 미인 공주가 첫눈에 반해서 들이대기 시작한 것. 물론 오로지 미월만 바라보는 그는 철벽으로 일관하면서 나름의 예의를 차렸으나, 미인이 미월을 도둑으로 몰아 모함하고 자신을 좋아해서 그랬다는 소리를 하자 빡쳐서 '''"홀로 죽는 한이 있어도 너와는 혼인하지 않는다."'''며 차갑게 뿌리친 뒤 미인을 끌고 가 범인이 미인이라고 초위후에게 고했다.
이후 미월이 월화대에 감금되었을 때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소재를 알아내고는 그곳으로 단신으로 쳐들어가 병사들과 맞서다가 부상을 입고 죽을뻔하다가 미주 덕분에 살아났다. 쇠약해진 미월을 정성스럽게 돌보며, 왜 이 정도로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주는지 묻는 미월에게 '''월아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여인이니까.'''라고 답하며 둘의 관계를 확인사살.
그리고 소사명제날 어쩌다 춤을 추게 된 미월과 짝을 맞춰 노래를 부르게 되자 표정관리가 안될 정도로 좋아죽는다. 그 직후 바로 초회왕에게 미월과 혼인하고 싶다고 청하나 위후에게 저지된다. 이후 위후가 혼사를 진행시켜주겠다고 했을 때는 미심쩍으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인정받았다고 생각해 기뻐했으나 서로의 사주를 보려고 하니 신부측 생일이 미월과 다른 등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더니... 혼인 상대로 고려된 것은 미월이 아니라 그토록 싫어하는 미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기함한다.[8] 그리고 미월이 미주를 따라 혜문왕의 잉첩으로 따라가게 되면서 그는 미주의 도움을 받아 도중에 같이 사랑의 도피를 하기로 계획한다.
그러나 미주의 행렬이 의거왕의 습격을 받고 미월이 붙들리자 그것을 구출하려고 의거왕과 일전을 벌였으나, 의거왕의 부하가 휘두른 칼을 피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공식적으로 생사불명 상태에 놓인다. 그리고 어떤 부부에게 발견되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는 게 확인되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여긴 어디? 난 누구? 상태에 놓였다'''(...) 본인이 진나라에서 깨어나서 진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정작 미월은 그가 살았다는 것도 모르고 그의 복수를 하기 위해 혜문왕의 후궁이 되었기에 두 사람은 그렇게 엇갈리고 만다. 이후 기억을 되찾아 미월과 재회하지만 미월은 이미 혜문왕의 총애를 받으며 아이까지 가진 상태였고. 이후 미월이 연국 인질로 고초를 당하는 상황임을 알자 의거왕과 같이 미월을 구출해내고 '''다시 시작하자'''고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옛날이 되었고, 너무도 멀리 와버린 것을 아는 미월이 그 마음을 거절하면서 둘의 관계는 그렇게 영영 끝나고 만다.
그리고 차라리 그렇게 끝나면 좋았겠지만 미월이 진의 태후로 등극하면서 둘의 관계는 이제 옛 연인이 아니라 정적이 된다.
물론 위에 있는 역사상의 춘신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훨씬 후대의 인물이라 이 드라마에서는 모두 가상의 설정이다. 미월(선태후)와 춘신군의 활약 시기는 대략 50여년 정도 차이가 난다.[9][10]
[1] 태자는 이미 돌아갔고 이 사람은 태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충신으로 살아서 돌아가면 중용될테니 차라리 잘 대접해서 돌려 보내주자는것.[2] 애초에 사기 이목열전에는 이 함곡관 전투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도 않는다.'''[3] 이 중 오봉명과 창평군은 가이드북 2 기준.[4] 사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사기에서는 초 고열왕이 합종군의 맹주를 맡고, 실질적인 총지휘는 어디까지나 춘신군이 한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상술했듯이 이목열전에는 이 전투에 대한 기록 자체가 없다.[5] 사실 작중에서 압도적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합종군은 진을 갈아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군세도 아니었다고 한다. 진나라는 이미 당시에 전국시대 최강이었으며 합종군에 대항해 20만 이상의 대군을 일으켜 방어에 나섰을 정도다.[6] 본래라면 고열왕의 동생이 왕위를 이어받아야 하지만 동생인 왕제군이 나라를 이끌기에는 자질이 없었다. 이원과 와린의 대화에서 잠깐 '''그 모습'''이 나오는데... 초점이 없는 눈을 하고 알몸으로 큰 칼을 든 채 사람 시체를 갈고리에 꿰어놓고 알몸인 여자들 머리를 자르고 대신 돼지 머리를 올려놓는 등 제대로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이원과 춘신군이 그런 계획을 꾸민 게 이해가 간다. [7] "봄(春)에 얘기하는(申) 너(君)"[8] 위후가 네 혼사를 허락해준다느니 입을 털었으나 그 상대가 미월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계속 이름을 언급안하며 교묘하게 그를 속인 것.[9] 춘신군은 거의 소양왕 영직의 아들뻘이다. 사실상 이 드라마는 춘신군과 그의 할머니뻘 정도 되는 여인과 애정관계를 놓은 것이다.[10] 춘신군은 진 시황제가 즉위하고 10여 년을 더 산 사람이다. 그것도 암살로 인해 죽었는데, 안 그랬다면 더 오래 살았으며, 더구나 시황제의 고조할머니가 드라마 주인공 미월인 선태후인데 비록 드라마이지만 너무 왜곡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