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화(응답하라 1997)
1. 개요
1950년생. 성시원의 어머니. 전형적인 경상도 아지매이자 작중 최고 대인배. 아버지인 동일과 다르게 시원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게 내버려둔다. 시원이 반에서 꼴찌를 해도 '''"가시나, 결국 해냈네."''' 라면서 쿨하게 넘기는 편. 그래서 시원이 아빠와 자주 티격태격하는 것과는 달리 엄마와는 그런 모습이 거의 없다.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 부모님들 중 사이가 가장 격렬하다. 시원의 교육문제에서부터 동일의 반찬투정 등으로 인하여 남편인 동일과 자주 싸우는데, 부부싸움을 할 때 지지 않으려고 언성을 높인다던가, 동일/태웅과 고스톱을 하다가 결국 지자 화를 참지 못하고 동일의 뒤통수를 치는 등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그러나 부부 금슬은 매우 좋은데,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을 때 동일과 합심하여 응급실에서 환자 코스프레를 한다던가[2] , 딸인 시원에게 차 안에서 검열삭제를 하려는 걸 들키기도 했다.
"먹다가 모자라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음식을 하면 동네잔치는 거뜬히 할 정도로 푸짐하게 준비한다. 한 뼘 두께의 김치전[3] , 대야 반쯤 담긴 샐러드, 김밥천국에서 볼 수 있는 김밥탑, 최소 대형 김치통 2통이 가득차는 메추리알 조림... 시원이 서울로 올라갈 때는 아예 큰 박스 하나 가득 음식을 담아 보냈다. 오죽하면 시원이 일화에게 양 조절이 안되냐며 푸념할 정도다.
전학 간 친구인, 미래의 태웅형제의 어머니인 문정미를 보러 고등학교 시절 광주에 갔다가 연애편지를 윤준혁에게 대신 전해줘야 할 것을 오해해[4] 정미의 편지를 성동일에게 전해주다가 오히려 동일의 답장을 자신이 받고서 동일과 맺어졌다.
한편으론 막장드라마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는데, 남편 성동일이 위암으로 수술 후 암병동에 입원해있을 때 같이 입원해있던 환자들과 같이 드라마를 시청할 때 남자주인공이 암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꼭 죽여야하냐며 작가에게 사정해[5] 결국 드라마의 결말을 바꾸게 만들었다.
이에 동일을 비롯한 암병동의 환자들은 기뻐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동일은 결국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 완치하게 된다.부산 시원이 엄마입니더. 작가님. 우리 신랑이 위암이랍니더.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고 숨도 쉬지 않습니더. 아 아버지 불쌍해서, 우리 신랑 불쌍해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더. 근데 작가님. 인간이 참 그렇게 죽을 것 같은데도 알게 모르게 내가 테레비 보고 울고 있더라고예. 참 염치없지예?
작가님. 작가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아십니꺼? 하루에 항암을 5시간 씩하고 말기라고 이제는 포도당 주사나 맞고 있는 아지메들도 작가님 드라마 하는 시간에는 어데 이런 수다쟁이들이 없습니더. 승호 아버지 멋있다고, 싹싹하다고, 서울 남자 채보라고... 그런데 그 승호 아버지가 암에 걸린 이후로는 우리 병실에 웃음이 사라지셨습니더. 작가님. 정신나간 여편네가 미친 소리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승호 아버지, 한번만 살려주시면 안되겠습니꺼? 암에 걸려도 살 수 있다, 행복하게 다시 잘살 수 있다고 한번만 빌어주면 안되겠습니꺼? 우리 아저씨랑 동호하고 아지메들, 당신 암이라 카는 소리듣고 하루도 기분 좋을 날 없으십니더. 작가님.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 사람들, 함 웃게 만들어주면 안되겠습니꺼? 작가님..... 내가.... 우리 신랑한테 해줄 수 있는게 그 것 밖에 없어서 그럽니다. 진짜 안되겠습니꺼?
응답하라 1997 제6화 사랑, 안하던 짓도 하게 만든다 중에서
동일과 마찬가지로 큰 딸인 송주의 이른 죽음으로 인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원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게 놔두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88에도 연속해서 출연, 역시 성동일과 부부다. 다만, 응4의 성동일과 응7의 성동일이 먼 친척지간으로 나오는 반면, 응4의 이일화와 응7의 이일화는 어떤 관계인지 전혀 나온 바가 없다.
2. 여담
원래 이 배역은 조혜련에게 갈 예정이었다.기사 신원호 PD가 응답하라 1997의 캐스팅을 시도할때, 캐스팅을 거부하는 배우들이 많아 고민했다고 한다.[6] 그래서 고민 끝에 조혜련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그러나 중국에서 칩거중이었던 조혜련은 신원호 pd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이후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때 응답하라 1997이 초대박 난 것을 봤다고 한다. 이후 마지막 회에 조혜련이 카메오로 나오려 했지만 분량 문제로 좌절되었다.고 한다.
[1] 고교시절[2] 예전에 오토바이와 사고가 났을 때는 임플란트 비용까지 받아냈다고 한다.[3] 너비가 한 뼘이 아니라 '두께', 즉 '''높이가 한 뼘'''이다! 당연히 한 장은 아니고 대략 20~30장 정도 쌓아올린 것이다.[4] 정미가 윤준혁을 지칭할 때 입은 야구재킷을 가리켰지만, 그것은 원래 성동일의 재킷이었지만 윤준혁이 잠깐 빌려입고있었다. 또한 두 남학생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바람에 사람을 오해한다.[5] 그리고 동일은 일화가 작가에게 사정하는 것을 뒤에서 모두 듣고 있었다.[6] 당시 tvN의 인지도는 지금과 달랐다. 응칠이 초대박을 치면서 tvN의 드라마도 급격하게 성장했다. tvN이 처음으로 흑자본게 2015년이라고 하니 과거엔 어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