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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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산업 회장'''
대림산업 창업

'''1대 이재준'''

2대 이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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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載濬.
생몰기간: 1917년 7월 30일 ~ 1995년 11월 29일.
호는 수암(修巖)이다. 대림산업의 창업주이다.
1917년 경기도 시흥군 남면 산본리(現 군포시 산본신도시)[1]에서 조선의 선조의 7남 인성군의 9대 종손 이규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군포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한성정미소'를 세워 사업을 시작해 1939년 10월 10일에는 대림그룹의 모태가 된 '부림상회'를 세워 건설자재만 취급하다가 해방 뒤인 1947년 6월부터 '대림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해 특유의 근검절약과 성실함으로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로 키워내으며, 1954년 서울증권을 세우고 1977년에는 대림대학교의 전신인 '대림공업전문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1980년에는 기아기연을 인수해 현재의 오토바이 전문 메이커 대림자동차로 키워냈다. 1976년에 금탑산업훈장을, 1981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생전에 그는 건설공사 현장을 시찰하면서 구부러진 못 하나가 떨어져 있어도 곧바로 불호령을 내리는등 부하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절약을 강조할 정도였으며, 또 시간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는 등 매사가 철두철미했다. 또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앞에 나서는 것도 꺼려 보수적인 기업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주위의 어려운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한 일면도 지녔다.
1988년에는 아들 이준용을 부회장으로 부임시켜 권력을 사실상 승계했음에도 일선에서 업무를 수행해오다가 1993년부터 명예회장으로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독서와 운동으로 여생을 보내다 1995년 11월 29일 오후 9시 30분,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위로는 형인 정치인 이재형이 있고 아래로는 아들 이준용이 있다.

  • 이규응(1882 ~ 1948) / 前妻 남양 홍씨[5](1880 ~ ?), 後妻 양남옥[6](1886 ~ 1962)
    • 이재형(정치인)(1914 ~ 1992) / 妻 전주 류씨[2](1917 ~ 1990)
      • 이두용
      • 이철용(1943 ~ ) / 妻 김미영(1946 ~ )
        • 이해림(1971 ~ ) / 妻 우윤정(1971 ~ )
          • 이태주(2004 ~ )
          • 이한주(2005 ~ )
          • 이성주(2007 ~ )
        • 이해청(1972 ~ ) / 妻 이상아(1973 ~ )
        • 이해광(1974 ~ ) / 妻 전효진(1980 ~ )
    • 이재준(1917 ~ 1995) / 前妻 이경숙(1916 ~ 1942), 後妻 박영복(1921 ~ 2014)
      • 이준용(1938 ~ ) / 妻 한경진(1940 ~ 2014)
        • 이해욱(1968 ~) / 妻 김선혜(1971 ~ )
          • 이동훈(2001 ~ )
        • 이해승(1969 ~ ) / 妻 김경애(1968 ~ )
          • 이신영(1999 ~ )[*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 이부용(1944 ~ 2018) / 妻 이선희(1948 ~ )
        • 이해영(1971 ~ ) / 妻 권은희(1971 ~ )
        • 이해성(1973 ~ ) / 妻 정희경(1974 ~ )
        • 이해서(1974 ~ ) / 妻 방지원(1984 ~ )
    • 이재원
    • 이재우
    • 이재연(1931 ~ ) / 妻 구자혜(1937 ~ 2009)
      • 이선용(1961 ~ ) / 妻 오은주 (1965 ~ )[3]
        • 이해성(1998 ~ )
      • 이지용(1963 ~ ) / 妻 추재희 (1967 ~ )[4]
        • 이해민(1992 ~ )

[1] 당시 전주 이씨 집성촌이었다.[2] 류인희(柳仁熙)의 딸이다.[3] 오세중 세방여행 창업주의 딸[4] 추경석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5] 홍재욱(洪在旭)의 딸이다.[6] 남원 양씨 양승환(梁升煥)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