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민정당

 

'''立憲民政党(りっけんみんせいとう)'''
Constitutional Democratic Party[1]
일본 제국자유주의 성향의 정당.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중점으로 한 자유민권운동가들에 의해 1927년 창당되었다.
보수주의 정당인 입헌정우회와 함께 여러 총리를 배출한 주요 양당이였으며 자유주의, 리버럴 포지션을 담당했다. 긴축제정과 금본위제 (부활) 주장 등이 대표적. 결과적으로는 1930년 집권 이후 1년만에 금본위제를 철회해야 했고 경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대표 정치가로는 두 차례 집권한 와카쓰키 레이지로가 있다. 1926년, 1931년 두 차례 집권하였으나 자리를 매번 1년 전후로밖에 지키지 못했다. 집권할 때마다 와타나베 은행 파산 등 쇼와 금융공황과 세계대공황이 발생했다(...)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 역시 높은 지지를 받은 총리였나 우익 청년에게 암살 미수를 당해 총리 대행을 시데하라 기주로 당시 외무대신에게 잠시 맡기고 오랫동안 치료와 투병을 해야 했으며,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총리직에 복귀해 무리하다가 피격 10개월 만에 사망했다. 이때 와카쓰키 총리가 하마구치 총리의 후임으로 재입각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엔 입헌정우회와 정권을 여러 차례 교대하였으나 의석이 비슷한 경우가 많아 내각이 매우 불안정했다.[2] 특히 처음 참여한 1928년 16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216석, 정우회가 218석, 기타 31석으로 당시 정국의 혼란이 가속화되기도 했다.
1930년 하마구치의 지도 아래 17대 총선에서 273으로 정우회의 174석을 크게 누르며 처음으로 1당으로 발돋움하였으나, 전술한 경제정책의 혼선과 세계 대공황으로 1932년 18대 총선에서는 146:301으로 큰 폭으로 패했다. 다시 4년 뒤인 1936년에는 205:175로 다시 1당을 탈환하였으나, 정권은 계속 불안정하여 자당 총리를 배출하지는 못했을 뿐더러, 불과 1년 만인 1937년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 해 총선에선 민정:정우 179:175로 크게 따라잡혔다.
1940년 군부에 의해 강제해산되며 공식적으로는 대정익찬회에 흡수된다.

[1] 공교롭게도 후일 2017년 등장한 일본의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공식 당명도 Constitutional Democratic Party of Japan이다.[2] 엄밀히 말하면 1926년 말 쇼와가 즉위했으니 후술하는 모든 내용은 쇼와 시대 초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