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니콜라

 


[image]
이름
장 에두아르 마리 니콜라
(Jean Edouard Marie Nicolas)
생년월일
1913년 6월 9일
사망년월일
1978년 9월 8일
국적
[image] 프랑스
출신지
낭테르
포지션
센터 포워드
신체조건
176cm
등번호
-[1]
소속팀
'''FC 루앙 (1930~1939)'''
국가대표
25경기 / 21골 (1933-1938)
1. 생애[2]
1.1. 선수 생활
1.2. 이후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3. 수상
3.1. 클럽[3]
3.2. 개인


1. 생애[4]



1.1. 선수 생활



1.1.1. 클럽


1930년, 당시 16살이던 니콜라는 아브르 AC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키며 그의 존재를 알렸다. 1933년, 프랑스 축구계가 프로화가 되면서 니콜라의 소속팀 루앙 FC는 디비지옹 2에 소속되었지만 니콜라를 포함해 로제 리오, 베르나르 앙투아네트 등과 강력한 공격진을 구성했었다.
1936년에 FC 루앙은 디비지옹 2에서 디비지옹 1으로 승격했는데 1934년부터 1936년까지 3년 연속 디비지옹 2 득점왕에 올랐으며, 특히 1934년에는 26경기에 출전, 54골을 넣었는데 이것은 지금도 리그 2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이다. 1938년에는 디비지옹 1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했다. 1938년 5월에는 발랑시엔 FC를 상대로 무려 7골을 넣으며 9대1 대승의 1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막을 내렸고, 총 164회의 리그 출전과 193골의 기록을 써내렸다.

1.1.2. 국가대표


니콜라는 그의 소속팀 FC 루앙2부 리그 소속임에도 기량을 인정받아 19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그의 대표팀 첫 상대는 당시 유럽을 호령하던 분더팀이었고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 0대4로 셧아웃당했다.
그의 첫 득점은 1933년 3월 26일의 벨기에전에서 나왔고 니콜라는 후반 36분 3대1 승리를 이끄는 쐐기골을 넣었다.
1934년 월드컵 지역예선 룩셈부르크전에서 니콜라는 4골을 넣으며 6대1 대승에 큰 기여를 했고, 본선에서도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니콜라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반 18분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프랑스는 뒷심 부족으로 결국 연장 혈투 끝에 2대3으로 오스트리아에 패했다.
니콜라는 조국에서 열린 다음 대회에도 참가하여 1라운드에서 2골을 넣었다. 하지만 8강전의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였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1대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니콜라는 총 25회의 대표팀 경기에서 21골을 넣어 현재 프랑스 대표팀 역대 득점 순위 13위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

1.2.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니콜라는 피니스테르(Finistère)지방에 정착했고 아마추어 축구 코치 일을 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양발 사용에 능한 스트라이커.

3. 수상



3.1. 클럽[5]


  • 디비지옹 2 우승 1회: 1935-36
  • 디비지옹 도뇌르(노르망디) 우승 1회: 1932-33

3.2. 개인


  • 디비지옹 1 득점왕 1회: 1937-38
  • 리그 2 득점왕 3회: 1933-34, 1934-35, 1935-36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니콜라는 FC 루앙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4] 출처: 위키피디아, 11v11[5] 니콜라는 FC 루앙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