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가수)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2. 생애
1921년 5월 28일,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이별하고 조부모의 밑에서 자랐다. 15세의 나이였던 1936년에 평양방송국 개국 기념 콩쿠르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었고, 다음 해인 1937년에 '연락선은 떠난다' 라는 곡을 발표하며 정식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당시 목포의 눈물을 발표해 많은 인기를 누렸던 가수 이난영과 함께 최고 인기 여가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가수 김정구와 '만악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이라는 곡을 발표했고, '처녀야곡', '불망의 글자', '항구의 무명초', '잘 있거라 단발령' 등의 곡을 발표했으며, 이 곡들도 히트를 쳤다. 또한, 오케레코드의 이철과도 연인이 되어 슬하에 아들 둘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이철이 병으로 사망하자 연주가인 한두식과 결혼했다.
이후 1960년대에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자 일본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으며, 1973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생활했다. 1979년에는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기 시작했다. [1] 미국에서 머무르던 중에 지병이 심하게 악화되어서 2003년에 작고했다.
한때 오케 레코드사 사장 이철과 결혼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와전된 소문에 불과 했고 남편 이셨던 한두식씨와는 서로 초혼 이셨다고 함. 당시 이철 사장의 부인은 일제 강점기 당시 배우 아니면 가수 또는 무용가로 알려진 현송자 씨라고 한다...
3. 대표곡
- 연락선은 떠난다
- 역마차
- 울어라 은방울
- 샌프란시스코
- 고향초[2]
4. 기타
-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활동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로 활동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