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

 


<color=#fff> ''' 이난영 '목포의 눈물' '''

<color=#fff> ''' KIA 타이거즈 응원가 '목포의 눈물' '''
KIA 타이거즈 인수 초창기에 잠실야구장에서 부르는 모습.[1]
1. 개요
2. 가사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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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5년에 발표된 노래로 민요풍의 가락과 구슬픈 곡조가 잘 살아있어 '남행열차' 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이자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지금도 매년 목포에서는 '이난영 가요제'를 열고 있다. 나라 잃은 한을 말하는 노래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고자 '삼백년 원한 품은'을 '삼백련 원앙풍'으로 바꿔 불렀다.
특히 1970-80년대, 상대적으로 차별받던 호남 사람들의 설움을 달래줬고 호남을 대표하는 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가로도 매우 유명했다.[2] 1980~90년대 당시를 지배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면 경기장 중립 규정 때문에 5~7차전을 잠실에서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3] 이 때 해태 팬들의 응원석 쪽에선 이 노래가 나오면 가히 종교집회를 연상케 하는 그 무엇이 응원석을 맴돌았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혀가 꼬여서 노래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역전 홈런이나 안타, 삼진이라도 나오면 울면서[4] 이 노래를 불렀다. 호남 출신의 아버지를 둔 1980년대[5] 생이라면 이 주제를 가지고 한 번 물어보자. 상세하게 설명해주실 것이다. '''한 마디로 호남의 한(恨)이 담겨있는 노래'''다.[6]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1997년 외환 위기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이 때를 시작으로 약해졌으며, 해태를 인수한 기아는 해태 타이거즈의 색채를 빼기 위해 아예 이 노래를 의도적으로 응원가에서 빼버렸다.[7] 이후 팬덤의 교체와 프로야구의 스포테인먼트화를 거치면서 목포의 눈물은 점차 잊혀져 갔고, 현재 타이거즈의 젊은 팬 중에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지경에 이르렀다.
결정적으로 2009년 한국시리즈 6차전, 그리고 7차전 우승 확정 즈음 슬그머니 응원가로 복귀했는데, 하필이면 위에 서술된 대로 가사를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바로 호응이 끊겨버렸다. 이후에는 거의 불리지 않는다.
목포 유달산에 가면 노래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난영과 목포의 눈물 노래를 기리기 위해 매년 이난영 가요제를 개최한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길이 재앙으로 남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오프닝 음악으로 쓰였다. 그런데 정작 영화의 배경은 부산광역시다.
원래는 목포의 노래 였다고한다 나중에 목포의 눈물로 바뀐거라고.

2. 가사


'목포의 눈물' 가사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삼백 년 원한 품은[8]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쪼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9]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3. 관련 문서



[1] 치어리더의 응원동작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지금 부르는 남행열차와 응원동작이 똑같다. 남행열차가 목포의 눈물 응원동작을 물려받은 셈이다.[2] 목포의 눈물이 처음 야구장에서 불려진 것은 해태 타이거즈가 두 번째로 우승했던 1986년부터 였다고 당시 타이거즈 선수단 주치의로 활동했던 임채준 박사가 증언했다.[3] 실제로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11회 우승 중 무등야구장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게 1987년(對 삼성 라이온즈) 우승 딱 한 번이었다. 즉, 한국시리즈의 우승을 결정짓는 11번의 경기 중 딱 한 번만 홈 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는 얘기다.[4] 임채준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에 온 일본인 지인들과 1986년 한국시리즈를 보러 갔는데 우승 직후 관중들이 엉엉 울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매우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에 임 박사가 배경 상황을 설명해줬다고 한다.[5] 호남인의 한(恨) 정서가 극대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정서의 밑바탕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6] 넗게 보면 해방이전 일제시대 조선인들의 한(恨) 이 담긴 음악이다.[7]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인데 중간중간에 부활했다가 없어지는 것을 반복해 2000년대 중후반에도 잠실 야구장에서 한 팬이 준 가사판을 김주일 응원단장이 받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첫 음을 높게 잡으면 삑사리가 나니 주의하라면서 7~8회 지고 있을 때는 목포의 눈물을, 이기고 있을 때는 남행열차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당시 올림픽 혹은 WBC 이후에 유입된 팬들이 많아서 가사판을 들고 다녀야 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질 때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강해서 호응이 좋지만은 않았다.[8] 처음에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으로 바꾸어 부르다가 광복 후 고쳤다.[9] 서남 방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