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조선)

 

1. 소개
2. 인생
2.1. 효종 시절
2.2. 숙종 시절


1. 소개


인조 ~ 숙종 대의 역관 관리.
장희빈으로 유명한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 장옥정의 5촌 당숙.

2. 인생



2.1. 효종 시절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과 각별한 친분이 있었으며, 특히 효종의 절대적인 신임과 비호를 받았다.
장현을 향한 효종의 절대적인 신뢰를 한 이유는 북벌정책을 추진한 효종에게 청과 조선의 외교와 청의 무기 밀입에 장현이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인듯하다.

2.2. 숙종 시절


5촌 조카 장옥정을 대왕대비 자의대비전의 궁녀로 들여보냈다고 한다.
장씨의 입궁 시기는 사실 설이 분분하다. 흔히 사극에서는 서인에 맞선 남인의 책략으로 그녀가 입궁했다고 나오는 경우도 있으나 경신환국 당시 장씨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장씨가 10세의 어린 나이에 아비 장형을 잃고 생계가 어려웠던 탓에 궁녀가 되었다는 주장과 당숙 장현의 권고를 받아 막내딸인 장씨를 입궁시켰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장현 본인은 남인과 정치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삼복의 옥으로 남인이 쑥대밭이 되면서 정치적 어려움을 겪게되었다. 한마디로 막대한 부를 갖고 있었으나 세력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으로 보인다. 생부 장형의 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에 따르면 희빈 장씨가 어린 나이에 간택되어 입궁해 성장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실록에도 머리를 스스로 땋아 올리기 전에 입궁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갑술환국이 발생한 후 장희재의 친족이라는 죄목으로 노론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지만 배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