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혁

 


'''이름'''
전인혁
'''직업'''
가수, 기타리스트
'''출생'''
1980년 2월 2일 (44세),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성수초등학교
신양중학교
자양고등학교
서울재즈아카데미
'''가족'''
1남 1녀 중 장남
기혼(2013 ~ )
'''자녀'''
아들 전 설(2015년생)
'''신체'''
178cm, 65kg, O형
'''데뷔'''
1999년 야다 1집 앨범 '''Wear to Healing YADA'''
'''경력'''
야다(1999 ~ 2004)
플라워(2004 ~ 2006)
전인혁밴드(2015 ~ 현재)
'''소속사'''
TB 엔터테인먼트
'''링크'''

1. 개요
2. 활동 내역
4. 관련 문서


1. 개요


야다의 메인 보컬과 플라워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가수. 대표곡으로는 '이미 슬픈 사랑', '진혼', '사랑이 슬픔에게', '슬픈 다짐' 등이 있으며 다른 가수들의 작사, 작곡에도 다수 참여했다.
고음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스크래치라는 특유의 창법[1]과 록보컬 특유의 파워풀함이 특징이다. 남자들의 노래라 불리우는 야다의 록발라드에 있어 이런 특징이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켜 지금도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들이 탄생했다. '이미 슬픈 사랑', '진혼', '슬픈 다짐' 등[2] 대표곡들의 고음 파트는 전부 그가 불렀다.

2. 활동 내역


1999년, 그의 나이 19살에 밴드 야다의 기타리스트 겸 메인 보컬로 데뷔했으며 뛰어난 보컬 실력과 고음 라이브를 통해 야다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야다의 대표곡인 '이미 슬픈 사랑'은 유일하게 차트를 운영했던 SBS 인기가요에서 6개월 간 차트 순위에 있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뒤 '진혼', '사랑이 슬픔에게' 등이 큰 인기를 끄는 등 주목을 받았지만 2004년에 소속사 문제로 인해서 그룹이 해체되었다.
나중에 슈가맨에 나와서 근황을 전하기를 당시 야다는 금융계열 기업으로 상당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소속사에서 활동했는데 대표의 횡령사건으로 인해서 팀이 해체되었다고 한다.
야다 해체 이후 2005년에 고유진이 속해 있던 플라워에 들어가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플라워 4집 중 '그대 간 그 길에서'는 그가 직접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맡았다.
그가 플라워에 들어가서 기타를 치고 있을 때 야다의 팬들은 굉장히 가슴 아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다와 플라워는 동시기에 활동하던 밴드였고 인기도 비슷했는데 순식간에 해체를 한 뒤 메인 보컬이 라이벌 밴드에 들어가서 노래는 부르지 않고 기타나 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굴욕적이라고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그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는 기타고, 음악 인생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기타를 선택할 것이라 말할 정도로 기타리스트로서의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플라워의 기타리스트로 들어간 것도 원래 그가 갈망하던 음악적 길을 택한 것이라고 하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3] 본래 야다에서도 기타리스트로 오디션을 봤는데 작곡가가 이미 슬픈 사랑을 들려주고 후렴구 한 번 불러보라고 해서 그 때부터 보컬도 맡은 것이라고 한다.
4집 이후 군복무를 마친 다음에는 솔로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 경연에 참가하면서 본인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은 실용음악전문학원의 원장을 맡아 후생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한다. 군대에서 자대배치를 받고 들어갔는데 자신의 소대원들이 환영식으로 이미 슬픈 사랑을 제창하였고 그 자리에서 40분 동안 야다 시절의 히트곡을 줄줄이 불렀다는 여담. 그 후 부대 행사 때 마다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 그런 계기로 한동안 기타리스트의 길을 가느냐 보컬의 길을 가느냐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지만 군생활 덕분에 다시 노래를 해야 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2013년에 1살 연상인 약사와 결혼했다. 2016년부터 전인혁band로 활동했다.

3.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복면가왕 62차 경연에서 워터파크 우수고객 플라밍고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이 경연에서 보기보다 과묵해요 앵무새, 라듐 앤 블루스 퀴리부인을 이기고 결승까지 가는 등 선전했다. 참고로 워낙 특색있고 강렬한 목소리였던터라 첫 소절만 듣고도 많은 사람들이 정체를 눈치챘다. 여담으로 이용진이 훗날 출연해 당시 주변 사람들이 플라밍고를 자신으로 오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중에 정체를 밝힌 다음 근황을 전했는데, 야다 활동 당시에는 소속사에서 선글라스를 쓰고[4] 활동하라고 해 당시 유명했던 노래들에 비해 본인 인지도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많은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에는 락 밴드에서는 꽃미남 스타일들의 락 보컬이 대세였던터라 강한 인상이 있었던 그에게 내린 조치였다고. 당시 인기를 구가했던 이브김세헌이라든지, Y2K의 마츠오 형제들이 [5]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랬던 터라 야다 쪽의 프론트맨은 서브보컬 및 베이시스트인 김다현이었고 진혼 때부터는 본인이 센터로 되었지만 계속해서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활동해 여전히 김다현 쪽이 더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솔로 싱글 앨범으로 다시 가수 활동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4. 관련 문서



[1] 이전 서술에서 허스키 보이스라 적혀있었으나, 기본적인 목소리 자체가 허스키하지는 않다. 고음에서 특유의 저 발성을 사용하는 것. 오히려 기본적인 목소리 자체는 몽환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 맑은 미성이다. 전인혁이 부른 솔로곡으로는 Believe, 약속, 망각, 플라워에서 부른 그대 간 그 길에서 등이 있으며 이 곡들에서 깔끔한 미성을 많이 들을 수 있다.[2] 각각 야다 1집, 2집, 3집 타이틀곡이다.[3] 사실 플라워 멤버가 되기전에도 레코딩 세션을 담당한 적이 있다. 프로 기타리스트를 지향하던 본인은 '내가 원했던 게 이건데..' 라며 음악적 갈망이 커졌고, 이것이 해체 후 플라워의 기타리스트로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4] 이 부분에 대해 근황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전인혁은 야다의 멤버 중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합류한 멤버들을 보자마자 너무 잘 생겼다고 생각하였고 소속사도 이에 전인혁에게 선글라스를 쓰게 권유한 것이다.[5] 센터는 메인 보컬인 고재근이 섰지만 인기는 마츠오 형제가 압도적이었다.